"불쌍한 아이들." 하고 프랑수아즈가 철책에 이르자마자벌써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가엾게도 저 젊은이들은 초원의 풀잎처럼 베이겠죠. 생각만 해도 너무 충격적이에요."
하고 ‘충격을’ 받은 가슴에 손을 얹고 덧붙였다.
"참 근사하지 않아요? 프랑수아즈 아주머니, 목숨을 아끼 - P159

지 않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니?" 하고 정원사는 일부러 프랑수아즈를 ‘흥분시키려고‘ 말했다. 그의 말은 헛되지 않았다.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고요?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면 그럼 뭘 아껴야 하죠? 하느님께서 결코 두 번 주시지 않는 단 하나의 선물인데, 그런데 슬프게도! 오, 저런 저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는 건 정말이에요! 이 눈으로 1870년에도 봤지만, 저들은 저 한심한 전쟁에서도 죽는 걸 조금도 겁내지 않았어요. 미치광이나 다를 바 없죠. 교수형에 매달 밧줄만큼도가치가 없는 놈들이에요. 인간이 아니라 사자인걸요."(프랑수아즈가 인간을 사자에 비교하는 것은 그녀는 사아자라고 발음했다. 전혀 칭찬이 아니었다.) - P160

훗날 내가 책 한권을 쓰기 시작했을 때조차도, 몇몇 문장의 질이 계속해서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하게 할 만큼 충분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때면, 나는 베르고트의 작품에서 내가 쓰려고 하는 것과 유사한 문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문장을 즐기는 것은단지 그의 작품을 읽는 순간뿐이었다. 왜냐하면 나중에 나 자신이 직접 그 문장들을 써 나가면서부터는 내 생각이 지각한것을 정확히 반영하는 데에만, ‘닮게 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내가 쓰는 것이 과연 내 마음에 드는지 어떤지는 물을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정말로 좋아한 것은 그때 내가 쓴 것과 같은 문장이나 그런 관념 들뿐이었다. 나의 불안하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노력은 그 자체로 사랑의 표시였으며, 기쁨은 없지만 그래도 심오한 사랑의 표시였다. 그리하여 갑자기 다른 사람의 작품에서 그런 문장을 발견하면, 다시 말해 양심의 가책이나 엄격한 잣대를 가질 필요 없이, 또는 번민할 필요도 없이 그런 문장을 발견하면, 마치 요리사가 한 번은 요리를 하지 않아야 비로소 음식을 음미할 시간을 얻는 것처럼, 그런 문장들을 좋아하는 취향에 즐겁게 자신을 맡기는 것이었다. - P173

일반적인 우리 의견들의 박물관에서는, 새로운 작가의 특이한 모습에서 ‘위대한재능‘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델을 찾아내기까지는 아주 오랜시간이 걸린다. 그 모습이 너무도 새롭기 때문에, 우리가 재능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것에 독창성, 매력, 섬세함, 힘 따위의 이름을붙인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는 이 모든 것이 바로 재능이라는걸 알게 된다. - P178

한 존재가 어떤 미지의 삶에 참여하고 있어서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그 미지의 삶 속으로 뚫고 들어가게 해 줄 수 있다고 믿는 것, 바로 이것이 사랑이 생겨나기 위해 필요한 전부이며, 사랑이 가장 중요시 하는 것으로,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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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樂毅圍二邑三年未下或讒之於燕昭王曰樂毅智謀過人伐齊呼吸之間剋七十餘城今不下者兩城爾非其力不能拔欲久仗兵威以服齊人南面而王爾昭王於是置酒大會引言者斬之遣國相立樂毅爲齊王毅惶恐不受拜書以死自誓由是齊人服其義諸侯畏其信莫敢復有謀者
頃之昭王薨惠王立惠王自爲太子時嘗不快於樂毅田單聞之乃縱反間曰樂毅與燕新王有隙畏誅而不敢歸以伐齊爲名齊人唯恐他將來卽墨殘矣燕王已疑得齊反間乃使騎劫代將而召樂毅毅遂奔趙燕將士由是憤惋不和田單乃身操版鍤與士卒分功妻妾編於行伍之間盡散飮食饗士令甲卒皆伏使老弱女子乘城約降燕軍益懈
田單乃收城中得牛千餘爲絳繒衣畫以五采龍文束兵刃於其角而灌脂束葦於其尾燒其端鑿城數十穴夜縱牛壯士五千人隨其後牛尾熱怒而犇燕軍燕軍大驚視牛皆龍文所觸盡死傷而城中鼓譟從之老弱皆擊銅器爲聲聲動天地燕軍大敗走齊人殺騎劫追亡逐北所過城邑皆叛燕復爲齊齊七十餘城皆復焉乃迎襄王於莒入臨淄封田單爲安平君

○ 田單將攻狄往見魯仲連仲連曰將軍攻狄不能下也田單曰臣以卽墨破亡餘卒破萬乘之燕復齊之墟今攻狄而不下何也上車弗謝而去遂攻狄三月不克田單乃懼問魯仲連仲連曰將軍之在卽墨坐則織蕢立則杖鍤爲士卒倡當此之時將軍有死之心士卒無生之氣所以破燕也今將軍東有夜邑之奉西有淄上之娛黃金橫帶而騁乎淄澠之間有生之樂無死之心所以不勝也田單曰單之有心先生志之矣明日乃厲(勵)氣循城立於矢石之所援枹鼓之狄人乃下

악의를 음해하려는 세력에 대해 연 소왕은 그 자를 악의가 보는 앞에서 내쳐서 다시는 도전하는 이가 없게 했다.
연 소왕이 죽고 나서 아들인 혜왕이 올랐을 때 전단이 간교한 말을 부려 왕을 혹하게 하여 기겁으로 하여금 장수가 되게 하고 악의는 제나라로 달아나게 된다. 연나라 군사들은 해이해진 상태에서 천여 마리의 소에 붉은 비단옷을 걸치고 소 뿔에 병기와 칼날을 묶은 뒤 기름을 부은 갈대를 소꼬리에 묶어 그 끝에 불을 붙여 놓고 연나라 군대로 달려나게 한다. 이 때문에 연나라에 뺏긴 70여의 성이 모두 제나라에 돌아오게 된다.
전단이 북쪽 오랑캐를 공격하여 세 달이 되어도 함락시키지 못하자 노중연에게 조언을 얻은 뒤 마침내 북쪽 오랑캐를 항복시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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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리 주위 사물의 부동성은 그것이 다른 어떤 것이아니라 바로 그 사물이라는 확신에서, 그리고 그 사물과 마주한 우리 사유의 부동성에서 연유하는지도 모른다. - P20

습관! 능숙하면서도 느린 이 조정자는, 잠시 머무르는 숙소에서 몇 주 동안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다가, 우리가 찾아내면 행복해지는 그런 것이다. 습관의 도움 없이 정신이 가진 수단만으로는 우리의 거처를 살만한 곳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 P24

우리의 사회적 인격은 타인의 생각이 만들어 낸 창조물이다. "아는 사람을보러 간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아주 단순한 행위라 할지라도,
부분적으로는 이미 지적인 행위다. 눈앞에 보이는 존재의 외양에다 그 사람에 대한 우리 모든 관념들을 채워 넣어 하나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전체적인 모습은 대부분 그 사람에 대한 관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관념들이 그 사람의 두 뺨을 완벽하게 부풀리고, 거기에 완전히 부합되는 콧날을 정확하게 그려 내고, 목소리 울림에 마치 일종의 투명한 봉투처럼 다양한 음색을 부여하여, 우리가 그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발견하는 것은 바로 그 관념들인 것이다. - P43

내가 언제나 슬픈 마음으로 올라가는 이 가증스러운계단에서는 바니시 냄새가 났다. 이 냄새는 내가 매일 저녁마다 느끼는 그 특별한 슬픔을 흡수하고 고정해, 이런 후각적인것에 대해 별 볼일 없는 내 지성보다는 내 감성에 더 잔인하게느껴지는 것이었다. 마치 잠을 자면서 느끼는 치통을, 우리가이백 번이나 계속해서 구하려고 애쓰는 물에 빠진 소녀라고지각하거나,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몰리에르의 시구절로 지각하다가, 잠에서 깨어나면 우리 지성이 치통이라는 생각으 - P58

로부터 모든 영웅적인 행위나 시 운율에 대한 속임수를 제거함으로써 커다란 안도감을 주는 것과도 같다. 그런데 이런 안도감과는 반대로, 내 방에 올라가야 한다는 슬픔은 계단 특유의 바니시 냄새를 흡입함으로써 정신적인 침투보다 더 독성이 강한 - 아주 빨리, 거의 순식간에, 갑작스럽고도 엉큼하게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 P59

나는 켈트족의 신앙이 아주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신앙에 따르면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은 어떤열등한 존재나 동물,식물 혹은 무생물 속에 갇혀 있어, 우리가 우연히 나무 곁을 지나가거나, 그 영혼의 감옥인 물건을 손에 넣는 날까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잃어버린 존재가 된다. 그러다 그날이 오면영혼은 전율하고 우리를 부르며,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는 순간 마법이 풀린다고 한다. 우리 덕분에 해방된 영혼은 죽음을정복하고, 우리와 더불어 살기 위해 돌아온다.
우리 과거도 마찬가지다. 지나가 버린 과거를 되살리려는노력은 헛된 일이며, 모든 지성의 노력도 불필요하다. 과거는우리 지성의 영역 밖에, 그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우리가 전혀 생각도 해 보지 못한 어떤 물질적 대상 안에 또는 그 대상이 우리에게 주는 감각 안에 숨어 있다. 이러한 대상을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우연에 달렸다. - P85

정신이 진실을 발견해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매번 정신은 스스로를 넘어서는 어떤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심각한 불안감을 느낀다. 정신이라는 탐색자는 자기 지식이 아무 소용없는 어두운 고장에서 찾아야만 한다. 찾는다고? 그뿐만이 아니다. 창조해야 한다. 정신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어떤것, 오로지 정신만이 실현할 수 있고, 그리하여 자신의 빛 속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과 마주하고 있다. - P87

결국 우리가 되돌아가는 곳은 항상종탑이었고, 종탑이 언제나 모든 것을 지배했다. 종탑은 예기치 않은 뾰족한 봉우리로 마을 집들을 불러내면서, 마치 수많은 인간 속에 몸을 파묻어도 내가 결코 혼동하는 일이 없는 신의 손가락처럼 내 앞에 모습을 내밀었다. 오늘도 지방 대도시나 파리의 잘 모르는 거리에서 길을 묻는 나에게, 한 행인이가야 할 길을 알려 주면서, 성직자 모자처럼 뾰족한 끝을 추켜올리는 수도원 종탑이나 병원 탑을 마치 무슨 표지처럼 가리켜 보일 때, 거기서 내 기억이 소중하면서도 이제는 사라져 버 - P123

린 종탑 형상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특징을 찾아내기라도 하면, 나는 하던 산책이나 해야 할 심부름을 잊어버린 채 몇 시간이고 꼼짝 않고 서서는 내 마음 깊숙이에서 망각의 강으로부터 빠져나온 땅이 건조해지며 단단해져서는 건물이라도 지을 수 있다는 듯이 기억을 더듬는다. 혹시 내가 길을 잘못 들지나 않았는지 확인하려고 뒤돌아보던 행인은 이런 내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면 난 아마도 조금 전 행인에게 길을 물었을 때보다도 더 초조하게 가야 할 길을 찾으며길모퉁이를 돌겠지만………… 그러나 그 길은 내 마음속에 있기에……… - P124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듯이, 나도다른 사람들의 두뇌라고 하는 것은 거기에 무엇을 넣든 특수한 반응을 일으킬 수 없는 무기력하고 온순한 그릇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할아버지 댁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람의 소식을부모님의 두뇌에 넣으면서, 동시에 그녀를 소개받은 일에 대한 내 호의적인 판단도 내가 바라는 대로 부모님께 전해질 수있다고 생각했으며, 또 조금도 그 사실을 의심치 않았던 것이 - P145

다. 그러나 불행히도 부모님께서 할아버지의 행동에 대한 판단을 하려고 했을 때에는, 내가 그분들에게 암시한 것과는 전혀 다른 원칙을 따르는 것이었다. - P146

방안은 겨우 책을 읽을 정도로 밝았고, 빛의 찬란함에 대한 감각은, 퀴르 거리에서 카뮈가 먼지 쌓인 상자를 두들기는 망치 소리로 느낄 수 있었는데(카뮈는 프랑수아즈를 통해 우리 아주머니가 ‘쉬고 계시지 않으니까‘ 소리를 내도 괜찮다는 연락을 받았다.)그 소리는 더운 날이면 더욱 낭랑하게 울려 퍼져서 대기 속으로 진홍색 행성들을 멀리 날려 보내는 듯했다. 또한 빛의 감각은 내 앞에서 여름 실내악을 연주하듯, 작은 음악회에서 연주하는 파리 떼가 윙윙거리는 연주 소리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실내악은 우연히 날씨 좋은 계절에 들으면 나중에그 계절을 기억하게 되는 인간의 음악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빛의 감각을 환기한다. 파리 떼의 음악은 보다 필연적인 관계로 여름에 연결되어 있다. 화창한 날씨에 태어나 화창한 날씨와 더불어서만 다시 태어나는 이 음악은, 그런 나날의 본질을 함유하면서 우리 기억 속에 그 이미지를 일깨우는 동시에, 그런 나날이 돌아왔다는 것을, 실제로 우리 주위에 있다는 것을, 그래서 즉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음을 확인해 준다. - P151

내가 독서를 하는 동안, 안에서 밖으로 진리 발견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 중심적인 믿음 다음에 오는 것은, 바로 내 - P153

가 참여하는 행동들이 주는 감동이었다. 그런 날들의 오후는평생 동안 경험하는 것보다 더 많은 극적인 사건들로 가득 차있었다. 그것은 내가 읽고 있는 책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로, 그사건들과 관계되는 인물들은 사실 프랑수아즈의 말대로 ‘실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 인물의 기쁨이나 불운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모두 이런 기쁨이나 이런 불운에 대한 이미지의 매개를 통해서만 생겨나는 것이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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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당신 세 번째 - 인간다움의 가능성을 넓힌, 가만한 서른 명의 부고 가만한 당신
최윤필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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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당신 첫 번째 부고와 두 번째 부고의 책을 읽지는 못하고 어쩌다 보니 세 번째 부고를 바로 읽게 됐다. 최윤필 기자라는 이름은 종이신문을 구독하면서 알게 되었고 그의 글을 몇 번 읽다보니 좋아서 어느새 <가만한 당신> 칼럼이 언제 실리나 기다리는 독자가 되었다.

세 번째 부고에는 남들보다 앞서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사람들, 비정상적인 현실에 의문을 가지고 폭로하거나 기록한 사람들의 사연이 실려 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들의 부고를 보는 일인데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이는 그들이 현장에서 부딪히며 감내했을 상황이 자연스레 떠오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 사회는 특히나 소수자에 대해서 인색하다. 과거를 돌아보면 나는 학교 다닐 때도,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늘 튀지 않으려고 했다. 다수의 의견에 묻어가는 것이 편하니까 남들과 다른 소수가 되는 순간 질문을 받거나 공격을 당하거나 하는 상황을 너무 많이 보았다. 우리는 왜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는가 생각했던 적이 많다. 남들과 다르다고 결정받는 순간 그 사회에서 그는 매장당하고 쫓겨나게 된다.

서른 명의 주인공들은 스스로 소수자가 되었거나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나서서 투쟁한 이들이다. 이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이런 결행을 할 수 있었을까.' 그 결정들이 비록 전부 옳은 것이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정의를 위해 몸소 싸우기 위해 나서는 것만으로 이들은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케이트 밀렛은 페미니즘 이론의 고전이자 2세대 페미니즘의 정전인 『성 정치학』을 쓴 주인공이다. 그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즘 2세대의 슬로건에 해당하는 이론적 철학적 뼈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1970년 무렵 그가 양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레즈비언 진영으로부터는 당당하지 못했다고 비판받고 온건 진영으로부터도 너무 나갔다며 비판받는다. 이후 그의 삶은 너무나 비극적이다. 가족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 수감되고 13년 간 리튬을 복용했으며 만성적으로 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함께 운동을 했던 2세대 페미니스트들이 학자나 교수로, 저널리스트로 지속적인 활동을 하는 동안 밀렛은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지도 못하고 대중에게도 오랫동안 그렇게 잊혔다. 이후에 자신이 썼다고 하는 칼럼의 내용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대중을 한 때나마 흔들었던 그가 이제는 하루를, 앞 날을, 미래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다니 말이다. 부도 명예도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가난하고 힘이 없고 곁에 지켜주는 이가 없다면 누구든 마지막은 쓸쓸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 가슴을 갑갑하게 만들었다.

1998년 밀렛은 <가디언>에 「잊힌 페미니스트의 시간The Feminist Time Forgot」이란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나는 내가 이룬 것들을 잘 팔아먹을 재주도 없고, 취업할 능력도 없다. 나는 미래가 두렵다. 모아둔 돈을 다 쓰고 난 뒤 닥쳐올 가난이, 감당해야 할 굴욕이, 어쩌면 노숙자의 삶이 겁이 난다." 그 무렵의 그는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베티 프리던과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을 언급하며 "그들은 모두 뛰어난 정치인들이지만, 나는 아니다. '여성해방의 케이트 밀렛'도 아니다"라며 냉소하던 때의 그와 달랐다. (P43~44)

이문자의 이름을 처음 듣고 본다. 한국 여성운동계에서 이렇게 중요한 분을 이제야 알았다니 참으로 죄송한 마음이다. 1983년 6월 '여성의 전화'는 가정 폭력을 추방하고 남녀 평등 관계를 수립해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를 이룰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이문자는 1988년 자원봉사자로 '여성의전화'에 참여한 이후 상담부장과 부설 쉼터 관장, 여성인권상담소장 등을 역임하는 동안 수많은 여성 전문 상담가들을 양성하고 성폭력 관련 법 제정 등의 여러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한 투쟁에 앞장섰다. 주변의 활동가들이 정치인이나 공직계로 나서서 이름을 날리는 동안 그는 피해자 여성들의 곁을 떠나지 않으면서 정년 퇴직 후에도 '여성의전화' 활동을 계속 거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그의 이름이 알려지지 못했으나 '여성의전화' 활동가들에게는 '대모'나 '큰언니'로 불리며 존경을 받았다.
오랜 세월 가정 폭력은 외부에서 간섭하면 안 되는, 가정 내에서 해결해야 할 것으로 잘못 인식되었다. 여성은 폭력의 피해자로 소리 없이 죽어가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이럴 때 '여성의전화'가 피난처이자 해방구가 되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타협이 정치력의 주요한 일부라면, 이문자는 정치력 있는 활동가가 아니었다. 입에 발린 소리를 혐오했고 스스로도 자신을 직설적이라고, "때로는 거칠고 다혈질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P85)

왕슈핑은 1991년 저우커우시의 한 혈장 센터 부책임자로 발령받는다. 1985년 9월 미국에서 수입한 혈우병 혈액제제에서 HIV 바이러스가 발견된 이후 중국 당국은 혈장 경제를 통해 중국인의 피로 직접 약을 생산하여 감염을 막기로 한다(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이런 말도 안되는 방법을 쓰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왕슈핑은 혈액 샘플 조사를 하며 C형 항체 양성반응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C형 간염이 바이러스 감염 증식의 의심 요소임을 시 보건국에 보고하였다. 그는 조사방식에 C형 간염을 포함시키고 채혈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건의했으나 당국은 묵살했다. 1996년 전국의 혈장 센터가 폐쇄되기까지 최소 300만 명이 혈장을 팔았고 이 중 많은 수가 에이즈로 고통받았다. 왕슈핑은 옳은 말을 했다가 내부고발자로 찍혀 결국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1인당 월2회 매혈 횟수 규제는 무의미했다. 한 남성은 이삼일마다 피를 1리터씩 팔았다고 말했다. 채혈 센터에는 하루 평균 적게는 200명, 많게는 500~600명씩 몰려들었다. 그들은 한 번에 500밀리미터씩 두 차례 1리터의 피를 봅은 뒤, 혈장을 분리하고 남은 혈액을 식염수와 섞어 다시 수혈받았다. (...) 1990년대 혈장 경제의 매혈 주체는 주로 여성이었다. 남자의 피는 가문과 혈통의 정수인 반면, 여자의 피는 어차피 생리혈로 흘려버릴 피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P203~204)

비록 때늦은 부고 인사지만 독자에게도 이들을 기억하고 새롭게 각성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또 세상에 맞서 싸우며 살다간 이들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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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1-24 0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피를 파는 거 하니 위화 소설 《허삼관 매혈기》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한국도 예전에 피를 팔았던 적 있는 것 같더군요 예전에 죽은 사람이어도 몰랐던 사람을 알기도 하겠네요 이렇게 글이 되면 덜 잊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거리의화가 님 남은 연휴 편안하게 보내세요 많이 춥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1-24 12:40   좋아요 3 | URL
희선님 안 그래도 본문에 <허삼관 매혈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이 소설도 읽어보려구요.
다양한 분들의 부고를 읽으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어요. 날이 많이 춥습니다. 남은 연휴 잘 보내세요^^

새파랑 2023-01-24 09: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리뷰를 읽고 책 표지를 다시보니까 표지가 좀 슬퍼보이네요 ㅜㅜ
서른번째 이야기가지 나오겠군요~!!

거리의화가 2023-01-24 12:41   좋아요 4 | URL
슬프게 쓰려는 의도는 없었는데. 이런 책 리뷰쓰는게 저는 더 어렵더라구요ㅠㅠ 쓰고 나서 마음에 안 들어서 지울까 고민했습니다. 서른 분의 부고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저마다의 사연으로 감동이 있습니다.

2023-01-24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24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 趙王得楚和氏璧秦昭王欲之請易以十五城趙王以問藺相如對曰秦以城求璧而王不許曲在我矣我與之璧而秦不與我城則曲在秦臣願奉璧而往使秦城不入臣請完璧而歸相如至秦秦王無意償趙城相如乃紿秦王復取璧遣使者懷歸趙而以身待命於秦秦王賢而弗誅禮而歸之趙王以相如爲上大夫

조나라의 화씨벽을 인상여가 지켜낸 이야기. 여기에서 완벽이란 단어가 나왔음

【壬午】三十六年秦王會趙王於河外澠池王與趙王飮酒酣秦王請趙王鼓瑟趙王鼓之藺相如復請秦王擊缶秦王不肯相如曰五步之內臣請得以頸血濺大王矣左右欲刃相如相如張目叱之左右皆靡王不豫爲一擊缶罷酒秦終不能有加於趙趙人亦盛爲之備秦不敢動
趙王歸國以藺相如爲上卿位在廉頗之右廉頗曰我見相如必辱之相如聞之每朝常稱病不欲爭列出而望見輒引車避匿其舍人皆以爲恥相如曰子視廉將軍孰與秦王曰不若相如曰夫以秦王之威而相如廷叱之辱其群臣相如雖駑獨畏廉將軍哉顧吾念之彊秦之所以不敢加兵於趙者徒以吾兩人在也今兩虎共鬪其勢不俱生吾所以爲此者先國家之急而後私讐也廉頗聞之肉袒負荊至門謝罪遂爲刎頸之交

조나라와 진나라의 만남에서 인상여의 계책으로 조나라의 체면을 세우다

조나라 재상 염파와 인상여의 문경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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