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관.채 세가
6. 진.기 세가

무왕이 죽고 나서, 성왕의 나이가 어렸으므로 주공 단이 왕실을좌지우지했다. 관숙과 채숙은 주공의 행위가 성왕에게 불리하게 될까 의심하여 즉시 무경을 끼고 반란을 일으켰다. 주공 단은 성왕의명을 이어받아 무경을 쳐서 주살하고 관숙도 죽였으며, 채숙을 쫓아내어 그를 옮겨 살게 하면서 전차 열 대와 종 일흔 명을 주었다. 그리고 은나라 유민들을 두 부류로 나누었으니 그중 하나인 미자 계를송에 봉하여 은나라의 제사를 이어나가게 하고, 다른 하나인 강숙을 봉하여 위衛나라 임금으로 삼았으니 이 사람이 위 강숙衛康叔이다. 계 재를 염冉 땅에 봉했다. 염계와 강숙은 모두 좋은 품행을 가지고 있어서 이에 주공은 강숙을 천거하여 주나라 사구司형법과 규찰담당관로 임명하였고, 염계를 주나라의 토목공사 등 담당관으로 삼아 성왕이 다스리는 것을 돕게 하니 그들은 모두 천하에 아름다운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 P180

애후 11년, 당초 애후가 진나라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고, 식후息侯식나라의 제후 또한 진나라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식 부인息夫ㅅ이 시집가는 길에 채나라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애후가 불경스럽게 대했다. 식후는 노여워하며 초나라 문왕文王에게 청하여 말했다.
"우리나라를 공격해 오는 척하여 내가 채나라에게 구원을 요청하면 나라가 반드시 올 테니 초나라가 이 틈을 타 그들을 공격하면공을 세울 수 있습니다."
초나라 문왕은 그의 말에 따랐고 채나라 애후를 사로잡아 귀국했다. 예후는 초나라에 구 년간 억류되어 있다가 초나라에서 세상을떠났다. 애후는 모두 이십 년 동안 자리에 있다가 죽었다. - P182

목후는 그의 여동생을 제나라 환공에게 시집보냈다. [목후] 18년,
제나라 환공이 채희와 뱃놀이를 하는데 부인채희이 배를 흔들자 환공이 그만두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멈추지 않자 환공이 노여워하여 채희를 돌려보냈는데 관계를 끊지는 않았다. 채후목후가 여동생이 돌아온 것을 보고] 화가 나 그의 여동생을 다른 곳에 시집보내버렸다. 제나라 환공은 노여워하며 채나라를 쳤다. 채나라는 무너져마침내 목후가 사로잡혔고, 제나라는 다시 남쪽 초나라 소릉까지 이르렀다. 얼마 있다가 제후들이 채나라를 위하여 제나라 환공에게 사죄하자 제나라 환공은 채후를 채나라로 돌아가게 했다. - P183

〔영후] 12년, 초나라 영왕이 영후로 하여금 그의 아버지를 시해하게 하고는 채 영후를 신초나라의 읍 이름 땅까지 꾀어내, 병사들을매복시켜 놓고 그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다음 그를 죽이고, 그의사졸 일흔 명도 함께 죽였다. 공자 기질로 하여금 채나라를 포위하도록 했다. 11월, 채나라를 멸망시키고 기질을 채공蔡公채현蔡縣의 현령이란 의미으로 삼았다. - P184

태사공은 말한다.
"숙과 채숙이 반란을 일으킨 일은 기록해 둘 만하기에 충분치않다. 그런데 주나라 무왕이 붕어하고 [뒤이은] 성왕은 어렸으므로천하 사람들이 의심하게 되자 동복동생인 성숙과 염계와 같은 무리여남은 명이 보필하였다. 이로 인하여 제후들이 결국 주나라를 받들게 되었으므로 그들의 사적을 세가』속에 덧붙여 두기로 한다." - P188

공공 16년, 진나라의 공자 중이가 달아나는 길에 조曹나라에 들렀는데, 조나라 왕이 예의 없이 대하니 중이는 기회를 보아 그의 갈비뼈를 부러뜨리려고 했다. 희부기釐負羈가 [조나라 왕에게] 간언했으나 듣지 않자 중이에게 사사로이 잘 대해 주었다.
[공공] 21년, 진나라 문공 중이가 조나라를 정벌하여 공공을 붙잡아 귀국하면서 군사들로 하여금 희부기의 종족이 살고 있는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도록 했다.
어떤 사람이 진나라 문공을 설득하여 말했다.
"예전에 제나라 환공이 제후들을 모았을 때 다른 성씨의 나라들도 회복시켜 주었는데, 지금 군주께서는 조나라 임금을 가두고 같은성씨의 제후를 없애려 하니 어찌 제후들에게 명을 내리실 수 있겠습니까?" - P190

백양 3년, 나라 사람이 꿈을 꾸었는데, 많은 무리들이 사궁宮사직의 토지 신에게 제사 지내는 묘당에 모여 조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모의하고 있으려니 조숙 진탁이 제지하면서 공손강이 정치를 할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청하자 그렇게 하도록 허락했다. 아침이 되어조나라에서 찾아보았지만 이런 사람은 없었다. 꿈을 꾼 자가 자신의아들에게 경계하여 말했다.
"내가 죽고 나서 네가 공손강이 정치하게 된다는 소문을 듣거든 반드시 조나라를 벗어나 조나라의 재난을 만나는 일이 없도록해라!"
백양은 자리에 오른 뒤에 사냥하는 일을 즐겼다. [백양] 6년, 조나라의 벼슬하지 않은 사람 공손강도 사냥을 좋아하여, 흰 기러기를잡아 백양에게 바치고는 사냥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에게이 틈에 정치적인 일을 말했다. 백양은 매우 기뻐하면서 그를 총애하게 되어 그에게 사성司이라는 자리를 주어 정치에 관한 일을들었다. 꿈을 꾸었던 사람의 아들은 즉시 [조나라에서) 달아났다. - P192

태사공은 말한다.
"내가 조나라의 공공이 희부기를 등용하지 않고, 〔대부大夫들이타는 수레에 미녀 삼백 명을 태웠다는 것을 검토해 보니 오직 덕이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탁이 꿈에 나타난 것은 어찌 조나라의 제사를 보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만일 공손강이 그의 정치를 제대로 닦지 아니하였다면 숙 탁의 제사가 소홀하게 되었을 것인저!" - P193

진陳나라의 호공 만滿은 우나라 임금 순舜의 후예다. 옛날에 순임금이 서민이었을 때 요堯임금이 두 딸을 그에게 아내로 주어규예嬀訥에서 살도록 했다. 그의 후손들이 그것을 성씨로 삼았으므로 규씨嬀氏를 성으로 삼은 것이다. 순임금이 붕어하고 나서 천하를 우禹임금에게 전해 주었고, 순임금의 아들 상균에게 나라를봉해 주었다. 하후夏后의 시대에 [순임금의 후손들 중에 어떤 사람은 [봉국을] 잃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계속 이어나가기도 했다.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 주왕을 멸망시키고 나서 비로소 순임금의 후예들을 찾다가 규만을 얻게 되자, 그를 진陳 땅에 봉하여 순임금의 제사를 받들도록 하였으니 이 사람이 호공이다. - P197

여공은 나라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그 여자가 채나라 사람과 음란한 짓을 하였고 여공도 여러 차례 채나라에 가서 음란한짓을 했다.
[여공] 7년, 여공에 의해 피살된 환공의 태자 면의 세 형제는 장남을 약躍이라 하고, 가운데를 임林이라 하고, 막내를 저구杵臼라 한다. (그들] 모두 채나라 여인으로 하여금 여공을 유혹하게 하여 그여자를 좋아하게 하고는 나라 사람들과 함께 여공을 죽이고 약을자리에 오르게 했으니, 이 사람이 이공이다. - P199

[선공] 21년, 선공은 나중에 애첩을 두었는데 그녀가 아들 관봤을낳자, 그를 자리에 오르게 하고 싶어 곧 그의 태자 어구御寇를 죽였다. 어구는 평소에 여공의 아들인 완完을 아꼈는데, 완은 화가 자기에게까지 미칠까 두려워 곧바로 제나라로 달아났다. 제나라 환공이진陳나라 완으로 하여금 경이 되게 하려고 하자, 완이 말했다.
"이리저리 떠도는 신하인 제가 다행히 화를 면하게 된 것은 당신의 은혜 덕분이니, 감히 높은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환공은 그를 공정백공의 관직을 총괄함으로 삼았다. 제나라의중懿仲대부 이름이 진경중을 사위로 맞고 싶어서 점을 쳤더니점치는 자가 말했다.
"이는 봉황 두 마리가 날며 함께 우는 소리가 대단한 것이로다.
씨 성의 후손은 강씨 성의 나라에서 성장하게 될 것이다."(그의)오 대 자손들은 창성하여 정경正卿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며, 팔대 이후에는 그보다 높은 자리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 P200

[영공] 14년, 영공은 그의 대부大夫인 공녕孔寧, 의행보儀行父와함께 하희夏나라 목공의 딸이며 진나라 대부 어숙御叔의 아내와 사통하고는 그녀의 옷을 입고 조정에서 희롱했다. 설야(진陳나라 대부)가 간하여 말했다.
"임금과 신하가 음란하니 백성들이 무엇을 본받겠습니까?" - P201

영공이 간통한 두 대부에게 [설야의 간언을 밀고하자 두 대부는 설야를 죽일 것이니 영공은 말리지 말라고 하고는 마침내 설야를죽였다.
〔영공] 15년, 영공은 두 사람공녕과 의행보과 하씨夏氏 집에서 술을마셨다. 영공이 두 대부를 놀리며 말했다.
"징서희의 아들가 그대를 닮았소이다!"
두 대부는 대답했다.
"또한 공을 닮기도 했지요."
징서는 노여워했다. 영공이 술자리를 끝내고 나올 때 징서가 마구간 문에 쇠뇌를 숨기고 있다가 영공을 쏘아 죽였다. 공녕과 의행보는 모두 초나라로 달아났고, 영공의 태자 오는 진나라로 달아났다. 징서가 스스로 자리에 올라 진후陳侯가 되었다. 징서는 본래 진陳나라의 대부大夫였다. 하희는 어숙御叔의 아내이며, 징서의 어머니이다. - P202

[애공] 34년, 당초에 애공은 정나라의 여자들을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큰부인이 도태자를 낳고, 작은부인이 언偃을 낳았다. 두 애첩도 있었으니, 큰첩이 유留를 낳았고, 작은첩이 승勝을 낳았다. 유는 애공에게 유독 총애를 받았는데 애공은 그의 동생 사도徒 초招에게 유를 부탁했다. 애공이 병이 들자, 이해 3월에 초는 도태자를 죽이고, 유를 세워 태자로 삼았다. 애공이 노여워하여 초를죽이려고 하자 초가 군대를 일으켜 애공을 포위하니 애공은 스스로목을 매어 죽었다. 초는 드디어 유를 세워진陳나라 임금으로 삼았다. 4월에 진陳나라가 초나라에 사신을 보내 이 사실을 알렸다. 초나라 영왕은 진나라에 난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고는 진나라 사자를 죽이고 공자 기질로 하여금 군대를 일으켜 진나라를 치게 하니, 진나라군주 유는 정나라로 달아났다. 9월에 초나라가 진나라를 포위했다.
11월에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기질로 하여금 진공으로 삼았다.
초가 도태자를 죽였을 때, 태자의 아들은 이름이 오吳였는데 진晉나라로 달아났다. - P204

초나라 영왕이 진나라를 멸망시킨 지 오년 만에 초나라 공자 기질이 영왕을 시해하고 대신 왕의 자리에 올랐으니, 이 사람이 평왕이다. 평왕이 막 [왕의 자리에 올랐을 때 제후들과 잘 지내려고 옛날 진陳나라 도태자 사의 아들 오를 찾아내 그를 진후陳侯로 세웠으니, 이 사람이 혜공이다. 혜공이 자리에 올라 애공이 죽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 이어받아 그해를 원년으로 삼았으니 비어 있는 기록이 오년이나 된다. - P205

기나라의 동루공東樓公은 하후夏后 우禹의 후손이었다. 은나라때에 때로는 제후에 봉해지기도 하였고, 때로는 끊어지기도 했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멸망시키고 나서 우임금의 후손을 찾아내 동루공을 얻게 되어 [무왕은 그를 기로 땅에 봉하고는 하후씨의 제사를 받들게 했다. - P207

주나라 무왕 때에는 후백侯伯에 봉해진 자들이 거의 일천 명이 넘는다. 유왕과 여왕 이후에 이르러 제후들이 무력으로 공격하면서 서로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다. 강江, 황黃, 호胡, 침沈과 같은 국가들은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 채집하여 전에 기록하지 않는다.
태사공은 말한다.
"순의 덕행은 지극하다고 말할 만하구나! 하우에게 제위를 양보했지만, 후손들이 제사를 지킨 것이 삼대하, 은, 주를 거치면서어졌다. 초나라가 진나라를 멸망시키자, 전상이 제나라에서 정권을 장악하여 마침내 나라를 세우게 되었고 백 대代에 이르도록 끊어짐이 없었고 자손들도 수가 많았으며, 봉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우禹에 이르러 주대周代 때 오로지 기나라만이 너무나 작은 나라여서 그것을 헤아릴 수도 없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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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十一月 過魯 以太牢 祠孔子 上還過沛宮 置酒 悉召故人父老 酒酣 上自爲歌起舞 泣謂沛父兄曰 游子悲故鄕 朕自沛公 以誅暴逆 遂有天下 其以沛 爲朕湯沐邑〈出史本紀〉

황제가 고향을 지나 주연을 베풀어 옛 친구와 웃어른들을 불러 모아 놓고 술이 취하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그가 부른 노래가 대풍가다.

< 대풍가 > - by 유방
大風起兮雲飛揚
威加海內兮歸故鄉
安得猛士兮守四方
대풍(大風 -> 본인을 말함)이 일어나서 구름을 날렸도다.
해내(海內)에 위엄을 떨치고 고향으로 왔도다!
이에 용맹한 장사를 얻어서 사방(四方)을 지키리라!

○ 上從破布歸 疾益甚 愈欲易太子 張良諫不聽 叔孫通 諫曰 晉獻公 以驪姬之故 廢太子 立奚齊 晉國亂者數十年 秦以不蚤(早)定扶蘇 令趙高 得以詐立胡亥 自使滅祀 此陛下所親見 今太子仁孝 天下皆聞之 陛下必欲廢適(嫡)而立少 臣願先伏誅 以頸血汙地 帝曰 吾直戲耳 叔孫通曰 太子天下本 本一搖 天下震動 奈何以天下戲乎 時大臣固爭者多 上知群臣心 皆不附趙王 乃止不立 〈出史叔孫通傳〉

한 고조가 병이 심해져서 태자를 바꾸고자 하였다. 장량이 간했으나 듣지 않았고 숙손통이 뼈 때리는 말로 간언(태자가 효성스러운데 굳이 적자를 폐하고 태자를 교체한다면 자신은 죽어 목의 피로써 땅을 더럽히겠다)하니 그제서야 자신이 한 말은 농담이었을 뿐이라며 물러선다. 이제 태자 교체책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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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연 소공 세가

소공이 서쪽 지역을 다스릴 때 수많은 백성들의 마음을 많이 얻었다. 소공이 고을과 성읍을 순시할 때에는 팥배나무가 있었는데 그아래에서 정치적 사안에 대한 송사를 판결하였고 후侯와 백伯으로부터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그 자리를 얻어 직분을 잃는 자가없었다. 소공이 죽자 백성들은 소공의 정치를 그리워하고 팥배나무를 생각하여 그 나무를 함부로 베지 않고 「감당」이라는 시를 지어 그의 송을 노래했다. - P158

지금 [연나라 왕이] 나라를 자지에게 맡긴다고 말했으나 관리들 중에 모두 태자 쪽 사람이아닌 자가 없었다. 이는 명의상으로 자지에게 맡긴 것이지 실제로는태자가 권력을 장악한 것이다."
[연나라] 왕은 이 때문에 삼백 석 이상 관리들의 인수를 거두어서자지에게 넘겨주었다. 자지는 왕의 자리에서 군왕의 직권을 행사하였다. 쾌는 늙어서 정사를 듣지 못하고 도리어 [자지의] 신하가 되었으며 나라의 일은 모두 자지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 P165

맹자가 제나라 왕에게 말했다.
"(주나라] 문왕과 무왕 때에 했던 것처럼 지금 연나라를 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제나라] 왕이 장자로 하여금 다섯 도都의 병사들을 거느리고아울러 북쪽 땅의 민중들을 이용하여 연나라를 공격했다. [연나라]군사들은 싸우러 나가지도 않고, 성문도 닫지 않았으니 연나라 왕쾌는 죽고 제나라는 크게 승리하였다. 연나라의 자지가 죽은 지 이년 만에 연나라 사람들은 함께 태자 평을 세웠으니 이 사람이 연나라 소왕昭王이다. 연 소왕은 무너진 연나라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자신을 낮추고 예물을 후히 하여 어진 자를 초빙했다. - P166

악의樂毅가 위魏나라로부터 왔고, 추연이 제나라로부터 왔으며, 극신이 조趙나라로부터 왔으니 선비들이 다투어 연나라로 달려온 것이다. 연나라 왕은 사람이 죽는 일이 생기면 일일이찾아가 조문하고 유족들을 위문하는 등 백관들과 함께 기쁨과 고통을 같이 했다. - P167

태자 단은 몰래 장사 스무 명을 양성하고 형가로 하여금 독항督亢연나라 남부의 비옥한 지역의 지도를 진나라에 바치게 하면서그 틈을 타 진나라 왕을 습격하여 찔러 죽이도록 했다. - P171

왕은 그것을 알아차리고는 형가를 죽이고 장군 왕전王으로 하여금연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연왕 희] 29년, 진나라가 연나라의 계城을 공략하여 차지하자연나라 왕은 달아나 요동遼東까지 옮겨 가 살면서 태자 단을 죽여그의 머리를 진나라 왕에게 바쳤다. - P172

태사공은 말한다.
"소공 석은 어질다고 말할 수 있구나! 팥배나무 밑 사람들백성들이 그것팥배나무을 그리워하는데 하물며 그 사람소공에게는 어떠하겠는가? 연나라는 밖으로는 만맥蠻과 붙어 있고 안으로는 제나라,
진晉나라와 국경이 맞닿아 있어 강대국 사이에 끼어 근근이 살아가는 가장 약소국이어서, 거의 멸망할 뻔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사직에 제사를 받든 지 팔구백 년이 되어, 희씨 성들 가운배 가장늦게 멸망하였으니, 어찌 소공의 공적 때문이 아니겠는가!"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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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1월 1일은 내게 특히나 고통스러운 날이었다. 불행한사람들은 아마도 기념일이나 생일이 되면 다 그렇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면, 그 고통은 과거와의 보다 생생한 비교만으로 끝날 것이다. - P317

어쩌면 가능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르지만, 가능하다고 믿으려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 열망이나 필요만으로도 충분하다. - P317

사랑을 할때는 그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모두 담기에는 너무도 크다고느낀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빛을 퍼뜨리지만 거기서 사랑을 멈추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게 하는 어떤 표면을 발견하며, 그리하여 우리 자신의 애정이 되돌려지는 이런 - P318

우리가 매일 쓰는 시간은 탄력적이다. 우리가느끼는 정열은 시간을 확대하지만, 남에게 불어넣은 정열은시간을 줄어들게 하여 습관이 나머지 시간을 채운다. - P323

우리가 낱말 속에집어넣는 진실이란 직접 자신을 위해 길을 트지 못하며, 거역할 수 없는 자명성을 타고나지도 못한다. 동일한 종류의 진실이 낱말 속에 형성되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야 한다. - P324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은 사랑이무엇인지 알기 위해 시간을 보내지 않고 다음 날 약속의 가능성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낸다. 사랑을 단념하는 사람들은 슬픔이 무엇인지 알려 하지 않고 가장 다정해 보이는 표현을 그슬픔을 초래한 사람에게 전하고자 한다. 말할 필요가 있다고느끼지만 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걸 말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만 말한다. ********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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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는 결이 달라 보이지만 어쨌든!

오데트가 대답했다. "전 남의 말을 잘 믿는 얼간이랍니다. 남이말하는 걸 그대로 다 믿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슬퍼하는 그런사람이죠." 자기만의 삶을 살면서 그녀를 속이는 스완 같은남자와 결혼해서 처음에는 매우 괴로웠다는 걸 그녀는 암시하고 있었다.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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