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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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연은, 그 안에서 우리 삶을 구성하기 위한 조직과 노력의 효시 같은 걸 우리가 식별할 수 있기에 아름답게만 보인다. 우연은 마치 우리가 몇몇 이미지들을 소유하도록 예정되었다는 듯이, 이런 이미지들의 소유를 쉽게 하고, 불가피하게 만들고, 또 때로는 기억하는 걸 멈출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그런 정지의 순간 후에 잔인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우연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우리는 다른 수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 이미지들을 쉽게 망각했을 것이다. - P306~307

3권 이야기의 중심 인물이 베르고트와 질베르트였다면, 4권의 중심 인물은 엘스티르와 알베르틴이다. 두 사람 다 발베크에서 만났으며 엘스티르는 화가, 알베르틴은 화자의 마음을 훔친 사람이다.

엘스티르는 화가이므로 창조가이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것, 그게 화자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갔을 것 같다. 그림도 글도 작업하기까지 분투하는 과정이 있고 결과물이 나오면 끝이다. 끝이라는 것은 생각했던 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내 손을 떠났다는 의미다. 내가 살구를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살구 비슷한 다른 과일이 된 것처럼, 아니면 꿈틀거리는 파도를 그렸는데 그 느낌이 덜 살게 나왔다거나.
알베르틴은 어떤 사람인지 사실 정확하게 모르겠다. 화자에게 관심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나도 좀 당황한 결말이었다(소설이라 결과는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 직접 읽어보시길). 어쨌든 화자는 그를 자유로운 사람으로 생각했음이 분명한 것 같은데 이게 끝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 프루스트의 작품은 후에도 계속 인물이 등장하고 연쇄 반응처럼 작용하기도 하니까.

엘스티르의 아틀리에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일종의 실험실 같아 보였고, 그곳에서 그는 모든 방향으로 놓인 다양한 직사각형 캔버스 위에 우리가 보는 것은 모두 혼돈으로부터 꺼내어, 이쪽에는 모래사장 위에 라일락 빛 물거품을 터뜨리는 노기 띤 파도를, 저쪽에는 갑판 위에 팔꿈치를 괸 흰색 리넨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를 그려 넣었다. 젊은이의 윗도리와 부서지는 파도는, 이제는 아무도 입지 못하며 더 이상 아무것도 적시지 못한다는, 다시 말해 그것이 가졌다고 여겨지는 속성으로부터 벗어났지만 계속 존재한다는 사실로 인해 새로운 품격을 획득했다. - P322

3권에 이어 화자의 꿈과 이상을 인물과 사건을 통해 은유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소년기와 청년기의 화자의 모습을 따라가며 독자도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마법을 느낄 수가 있다.
3권에서는 문학과 연극에 주목한다면 4권은 이미지, 그러니까 미술과 사진에 집중한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림과 친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방문지를 가건 예술과 관련된 곳을 찾는다. 그 지역의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곳은 역시 박물관, 미술관만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는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비록 많은 곳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직접 가본 곳은 잔상에 오래 남아서인지 후에 이미지 검색을 할 때 익숙하면 그 때의 기억이 스치면서 흐뭇해지곤 한다.

4권을 읽으며 핵심적으로 떠오른 이미지 두 가지는 모네의 <해돋이>와 터너의 <카르케튀트> 항구였다. 두 사람의 그림 기법은 정말 다르다. 모네가 인상파의 대표 화가로 점묘법 등의 기법으로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면 터너의 그림은 세밀하고 사실적이다.

화자는 할머니와 함께 발베크에 가기로 한다. 이동 수단은 기차다. 당시의 기차는 역시 혁명적인 운송 수단이였다. 증기를 내뿜고 힘찬 소리를 내뿜으며 빠르게 앞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는 도시 이곳 저곳을 빠르게 이어주었고 마차나 배로 몇 날 며칠을 가야 하던 시절에 비교하면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를 느끼게 했을 것 같다. 물론 이는 거의 정확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시계가 등장했다는 것과도 연관이 된다.



둘은 기차를 타고 가면서 해돋이를 본다. 해돋이를 보면서 빛과 시간에 따라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사물들을 그림 같이 묘사한다. 마치 모네가 그린 해돋이처럼 선연히 번지는 붉은 태양이 그려졌다.


나는 창문에 눈을 붙이면서, 마치 빛깔 자체가 자연의 심오한 삶과 관계된다는 듯 더 잘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선로가 방향을 바꾸면서 기차도 방향을 틀었고, 그러자 아침 경치는 창틀 안에서 달빛 비치는 푸른빛 지붕이 있는 밤의 마을로, 온갖 별이 뿌려진하늘 아래 어둠의 유백색 진주 빛 때가 낀 빨래터 있는 밤의 마을로 바뀌었다. 내가 분홍빛 하늘의 띠를 잃어버리고 슬퍼했을때, 그 띠는 다시 반대편 차창을 통해 그러나 이번에는 붉은빛이 되어 나타났고, 선로의 두 번째 모퉁이에서는 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진홍빛을 발하는 변덕스럽고도 아름다운 아침의 그 불연속적이고도 대립되는 단편들을 한데 모아 새로운 화폭에 담기 위해, 이런 단편들에 대한 전체적인 시각과 연속적인 화폭을 가지기 위해, 이 창문에서 저 창문으로 계속 쫓아다니며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 P31


이제 카르케튀트 항구 그림을 비교해 보자.


같은 카르케튀트 항구를 그렸는데 앞의 두 그림들은 너무나 세밀하여 마치 사진 같이 사실적인 느낌이 든다면 마지막 그림은 마치 잔상처럼, 이어진 색채를 통해서 장소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인상파의 그림에서 사실성은 중요하지 않다. 관찰하는 사람의 눈에 비친 빛을 포착해서 그리는 것이다. 프루스트의 문장 기법이 인상파의 그림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정확하게 보여주지 않는, 흐릿한 이미지와 모호성 때문인 것 같다.

사진이 단순한 현실의 복제이기를 그치고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걸 우리에게 보여 줄 때, 사진은 나름대로 그것에 부족한 약간의 품위를 지니게 됩니다. - P210

엘스티르가 얼마 전에 끝냈으며, 내가 그날 오랫동안 바라보았던 카르케튀트 항구를 그린 그림에서 그가 도시를 그리기 위해서는 바다의 요소만을, 바다를 그리기 위해서는 도시의 요소만을 사용하면서 관람자의 정신에 예고한 것은 바로 이런 종류의 은유였다. - P324

터너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마치 사진 같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실제로 사진이 등장한 19세기에 화가들은 자괴감에 빠졌다고 한다. '앞으로 우리는 뭘 먹고 살지? 저런 혁명적인 아이템이 등장했는데?' 이런 생각이 아니였을까. 마치 오늘날 AI가 등장하여 우리 미래의 삶을 위협하듯 당시의 화가들은 사진의 등장으로 자신의 앞날을 걱정해야 하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디지털 카메라도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지 않나(아무리 레트로가 인기를 끈다 해도 그 수요가 많지는 않는 듯하다).

현실인 듯 이미지인 듯 구분되지 않는 모호함은 여전하지만 조금씩 이 묘사 기법에 익숙해지고 있다. 3, 4권의 부제는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였다. 화자에겐 발베크에서의 기억이 소녀들(!)의 모습으로, 그러니까 덩어리로 인식되고 있다. 이것이 알베르틴과의 결과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 존재를 회상한다는 건 실은 그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 눈이 볼 수 있는 한, 망각했던 모습이 다시 나타나면, 우리는 그 모습을 알아보고 그 빗나간 선을 수정한다. - P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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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4-25 09: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4권까지 완독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전 점점 이 <잃.시.찾>의 줄거리를 알기가 어려워지네요.
3권이 통 진도가 안나갑니다. ㅠㅠ
다시 또 읽어야겠다 다짐을 하게 되네요^^

거리의화가 2023-04-25 12:42   좋아요 3 | URL
한 번 흐름을 끊기면 이어나가기 쉽지 않은 책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단번에 읽기도 어려운 책이구요^^; 저도 3권이 앞의 두 권보다 좀 어려웠는데 예술적 흐름을 파악하기 어려워서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은하수님 잃시찾 읽기 응원합니다^^

그레이스 2023-04-25 12: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경계를 없앰으로 은유를 한다는 엘스티르의 그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4-25 12:44   좋아요 3 | URL
오! 저도요. 그레이스님^^ 인상파의 그림들이 대부분 경계가 흐릿하잖아요. 엘스티르의 아틀리에의 분위기, 그리고 그가 그리던 그림들도 비슷한 느낌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희선 2023-04-26 04: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은 사진이고 그림은 그림이죠 지금은 이렇게 생각해도 예전에는 달랐겠습니다 AI 나중에 어떻게 될지... 사람이 하는 일이 줄어든 건 오래되기는 했네요 그래도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일도 있겠지요 인상파 그림 같은 프루스트 글이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4-26 08:55   좋아요 2 | URL
사진과 그림은 다르지만 어떤 그림은 너무 사실적이라 사진 같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AI의 힘이 무섭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하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영역도 확대될 거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AI가 논리나 사고를 할 수는 있겠지만 사람의 미세한 감정 터치나 그런 것까지 접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요.

새파랑 2023-04-26 14: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화가님은 작품을 읽고 그림을 떠올리시는군요. 화가가 맞으십니다~!!

이대로 쭉 가시면 곧 다 읽으실거 같아요 ^^

거리의화가 2023-04-26 14:19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 13권만 남겨두고 계시지 않으셨나요? 흐름을 끊기면 시리즈는 완독이 어렵더라구요. 너무 늘어지지 않게 부지런히 읽어야 할텐데 읽을 책들이 많아서 참... 어렵습니다ㅋㅋ

새파랑 2023-04-26 14:21   좋아요 2 | URL
저 13권도 다 읽긴 읽었는데 리뷰를 어떻게 쓸수가 없어서 그냥 놔두고 있습니다 ㅋ 너무 어렵습니다 ㅡㅡ

거리의화가 2023-04-26 14:26   좋아요 2 | URL
완독은 다 하셨군요^^ 잃시찾은 1번에 이해하긴 역시 어려운가봅니다. 저도 이제 4권인데 점점 더 어려운 느낌이 드네요ㅠㅠ
 

텍스트는 맥락, 상황과 교차한다.

텍스트는 그것이 만들어진 상황context 속에 있다는 것, 상호 텍스트 의존성intertextuality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 과거에발터 벤야민이 "창조성‘의 원리라는 이름의 생산적인 인격의 교만"이라고 부른 것 (그 기능에 의해 작가가 자신의 정신에 근거하여, 자신의순수한 정신으로부터 작품을 만들어 낸다고 믿고 있는 것), 습관과 선례 그리고 수사양식의 압박에 의해 사고방식이 제한되는 것을 대부분의 인문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인문학자들은 정치적·제도적 이데올로기적인 강제가 동일한 방식으로 개별 저술가들 위에 작용하고 있음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 - P36

이 책에서 권위를 연구하면서 내가 사용한 방법론상의 중요한 개념 장치는, 전략적 위치설정과 전략적 편성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전략적 위치설정이란, 저술가가 주제로 취급한 동양적인 소재에 관한텍스트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서술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전략적 편성이란 텍스트들의 그룹, 텍스트들의 유형, 심지어 텍스트의 장르가음에는 텍스트들 자체 속에서, 그 뒤에는 문화 전체 속에서, 수량과 밀도 및 참조 능력을 확보하는 과정과 텍스트들의 관계를 분석하는 방법이다. - P49

나는 오리엔탈리즘의 텍스트를 분석하면서, 동양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묘사로서의 표상이 아니라, 조작representation으로서의 표상이라는 결코 눈에 보이지 않는 흔적에 역점을 두었다. 이러한 흔적은 분명히 예술적인 (틀림없이 상상력이 낳은) 텍스트의 경우와마찬가지로 소위 진리를 말하는 텍스트(역사서술, 문헌학적 분석, 정치적논문)의 경우에도 현저히 나타난다. 주목하여야 할 사실은 문체, 수사적표현법, 배경설정, 설명의 기교, 역사적 및 사회적 여러 조건이지, 표상의 정확함이나 어떤 위대한 원전에 대한 충실함이 아니다. - P55

문학과 문화는 정치에 대해서 또 역사에 대해서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너무나도 자주 본다. 그러나 그것을 옳다고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리고 나는 오리엔탈리즘을 연구한 결과, 사회와 문자문화는 동시에 다루지 않으면 이해할 수도, 연구할 수도 없다는 점을 강력하게 확신하게 되었다(나는 이를 문학을 연구하는 동료들에게도 확신시키고자 희망한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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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를 경계해야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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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1 - 개정2판 사기 (민음사)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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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만에 다시 읽은 사기 열전은 또 읽어도 왜 이리 재미날까. 수면 아래 잠자던 나의 지각 세포를 깨우듯 활자를 읽어나가며 그래, 이런 인물이 있었지. 아무리 오래 전에 읽었어도 읽는 순간 새롭지 않다는 경험을 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임에 분명하다.

처음에 사기 시리즈를 읽을 때는 '열전'부터 읽었었다. 재미를 보장한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중국 고대사에 대한 얼개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읽어서 그냥 이런 인물이 있나보다 하고 넘어간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헌데 책을 보니 내가 무척 열심히 읽었는지 밑줄까지 벅벅 그어가며 읽은 흔적을 발견했다(물론 기억은 없다).

본기는 '항우'를 제외하고는 당연시되는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고 세가나 열전과는 다르게 정제되어 있는 문장이라는 생각을 했다. 세가와 열전은 실려 있는 인물들만 봐도 사마천의 입김이 반영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또 대화문이 중심인 경우가 많아 역사를 모르고 사건과 인물에만 집중해도 읽기에 수월하여 그런지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열전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자객 열전'이다. 처음에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아니 무슨 자객의 일화가 역사에 실리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들은 춘추 전국 시대에 활동한 자객들로 무려 다섯 명의 활약상이 실려 있다. 이 중 인상적인 이는 역시 '진시황'(이 때는 황제가 아닌 왕자 시절)을 공격한 형가(연나라 출신)다. 형가 뿐 아니라 진시황은 수시로 노리는 자객들이 많았다고 한다. 사마천이 자객들의 일화를 열전에 포함시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들이 죽이려고 했던 대상은 결국 개인적으로 보면 원수다. 그러나 자객의 활동으로 죽을 뻔 한 사람은 자신을 돌아볼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잘못 하고 있구나.' 개인들이 모여 집단이 되는 것처럼 이들은 때로 다수의 원수가 된 사람들이었고 이를 처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객들은 뛰어든 것이다. 사마천도 그저 개인의 원한으로 뛰어든 자객보다 집단의 원한을 갚기 위해 뛰어든 자객은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 전국 시대 대표 공자들인 맹상군, 평원군, 신릉군, 춘신군의 4명의 열전도 실려 있다. 이 중 신릉군은 '위 공자 열전'으로 실려 있다.
이 네 명의 공자들은 집 안에 식객을 많이 거느린 것으로 유명한데 유독 맹상군의 식객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는 사마천의 평가가 부정적이었던 것이 후대에 영향을 끼쳤던 것이 아닐까. 명성과 이익을 쫓았던 인물평이 악수로 작용한 경우다.그렇다고 해도 선비를 집안에 들이려 한 것은 자신의 이득만은 아니고 배움에 대한 열정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지.
평원군은 다른 사람의 간언과 충고를 잘 받아들이고 나라에 충성했으며 이웃에도 잘 했기에 명망을 떨쳤으나 때론 무모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춘신군은 초나라 재상을 20년 간 지내면서 합종책을 추진했던 인물이다. 진나라에 대항하고 노나라를 접수하면서 초나라를 부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말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4명의 공자들 중 위나라 공자인 신릉군 무기는 가장 어질고 능력까지 출중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사람이다. 무엇이 달랐을까. 똑같이 빈객과 선비를 집 안에 초대했어도 초대받은 이들로부터 충성과 존경을 얻고 아니고의 차이였다고 생각한다. 또 신릉군은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났다고 한다. 전쟁과 기아 등으로 혼탁했던 시기에 이 능력은 비범함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질이었을 것 같다.

전국시대 유명한 군사가였던 악의와 정치가였던 염파, 인상여는 조나라에서 활약한 사람들이다. 조나라는 춘추전국시대에 은근한 강자였다. 서쪽에 진나라가 있었고 남쪽에 초나라, 북쪽에 연나라가 있었고 또 조나라가 있었다. 지리적으로 조나라가 이 중간에 위치해서인지 외교와 정치,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많은 인물들이 오가고 탄생하는 곳이 아니었을까.
악의는 위나라 출신이었지만 조나라에서 벼슬을 했고(물론 그 후에 활약은 연나라에서 제나라를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 염파와 인상여는 약화되었던 조나라를 부흥시키는 데 활약했던 인물들이다. 경쟁자였던 염파와 인상여가 나란히 다루어졌다는 것이 후대의 독자로서 놀라운 지점이다. 사마천의 평가는 인상여에게 좀 더 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도덕적인 면(너그러움, 인)에 대한 평가 때문인 듯하다. 인상여가 화씨벽을 가지고 진나라를 찾아가 변설하는 장면은 어디에도 꿇리지 않는 기개와 용기를 느끼게 했고 자연스레 조나라의 국격까지 높이는 모습이었다.

조나라 왕은 염파 대신 조괄을 장군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자 인상여가 말했다.
"왕께서는 명성만 믿고 조괄을 쓰시려 하는데, 이는 거문고의 괘棵를 아교로 붙여서 고정시키고 연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괄은 그저 자기 아버지가 남긴 병법 책을 읽었을 뿐 사태 변화에 대처할 줄은 모릅니다."
그러나 조나라 왕은 듣지 않고 마침내 조괄을 장군으로 삼았다.
조괄은 스스로 어릴 적부터 병법을 배워 군사에 대해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자기를 당할 자가 없다고 했다. 일찍이 그는 아버지 조사와 함께 군사적인 일을 토론한 적이 있는데, 조사는 그를 당해 낼 수없었다. 그러나 조사는 그가 잘한다고 하지 않았다. 조괄의 어머니가 조사에게 그 까닭을 묻자 조사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이란 목숨을 거는 거요. 그런데 괄은 전쟁을 너무 쉽게 말하오. 조나라가 괄을 장군으로 삼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만일 괄을 장군으로 삼는다면 틀림없이 조나라 군대는 파멸당할 것이오." - P538

언제나 함께 따라다니는 소진과 장의는 언제 읽어도 흥미진진하다. 소진이 합종을 주장했다면 장의는 연횡의 대표주자다.
소진 열전에는 소진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소진의 두 동생인 소대와 소려의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소진이 합종에 성공해 육국의 재상이 되어 13 년간이나 자리했다는 것은 평가를 떠나서 그의 능력에 출중함을 엿보이게 한다. 소진은 진나라에 갔다가 거절 당하고 나서 육국을 차례로 돌면서 유세를 한다. 그의 유세법은 탁월한데 각 나라에 맞춰 그럴 듯한 설득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나라에 가서는 닭부리가 되라'고 하고 위나라에 가서는 '싹을 잘라라'라고 하고 제나라에 가서는 '실질적 이득을 생각하라'고 한다. 사실 어디에든 통하는 말일 수 있지만 이것이 먹혀 들어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주고 설득하는 이가 필요했던 것이다. 소대와 소려는 연나라를 위해 계략을 꾸며 제나라를 물리친다.
장의 열전에도 장의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라이벌이었던 진진, 서수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들은 모두 연횡을 주장했다.
장의는 진나라 재상으로서 제나라, 초나라를 이간시켜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이 때 장의가 진나라를 가도록 만든 배후 인물이 소진이었다는 것은 놀라웠다(가신으로 하여금 장의를 화로 정신차리게 한 것). 위나라를 시작으로 초->한->제->조->연을 차례로 돈다. 진나라 혜왕이 장의를 지지했다면 뒤를 이은 무왕은 장의를 탐탁해하지 않았다. 때문에 제후들은 이 때 눈치를 보다 연횡에서 벗어나 합종을 해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때 이 사건 해결을 위해 자신이 가겠다 단언하며 위나라로 갔으나 간 지 1년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진진은 장의와 함께 혜왕의 총애를 함께 다툰 인물이고 서수는 장의와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고 장의가 죽고 나서 장의의 자리를 차지하여 활약한 인물이다.

합종에 참가하는 나라들은 양떼를 몰아 사나운 호랑이를 공격하는 꼴과 다르지 않습니다. 호랑이와 양은 서로 적수가 될 수 없음이 명백한데도 왕께서는 사나운 호랑이와 손잡지 않고 양떼 편에 섰습니다. 신은 왕의 계책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천하의 강한 나라는 진나라가 아니면 초나라이고, 초나라가 아니면 진나라입니다. 두 나라가 서로 다툰다면 그 형세는 양립할 수 없을 것입니다. - P282

합종은 초나라를 위한 일이지 조나라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제 주인이 앞에 있는데 저를 꾸짖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초나라 왕이 말했다.
"옳은 말이오. 참으로 선생의 말씀이 맞소. 삼가 나라를 받들어 합종하겠소."
모수가 물었다.
"합종이 결정된 것입니까?"
초나라 왕이 대답했다.
"결정됐소."
그러자 모수는 초나라 왕의 좌우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닭과 개와 말의 피를 가져오시오." 모수는 구리 쟁반을 받쳐 들고 무릎을 꿇은 채 초나라 왕에게 올리면서 말했다.
"왕께서 먼저 피를 마셔 합종을 약속하셔야 합니다. 다음 차례는 제 주인이고, 그 다음 차례는 접니다."
이렇게 하여 어전 위에서 합종 약속을 맺었다. 그러자 수는 왼손으로는 구리 쟁반의 피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열아홉 명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당 아래에서 서로 이 피를 마시시오. 그대들은 범속하고 무능하며 남의 힘으로 일을 이루는 자들에 불과합니다." - P408

열전은 총 70명의 인물을 다루는데 1편은 딱 절반인 35명의 인물을 다루었다. 900여페이지에 달함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2권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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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4-24 1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괄의 어머니는 정말 현명한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어요. 안다는 것과 실제로 활용한다는 것은 분명히 다른 점이 있으니까요. 멋진 서평입니다.

거리의화가 2023-04-25 09:04   좋아요 0 | URL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경지인 듯해요. 감사합니다^^

희선 2023-04-25 0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읽을 때 더 재미있으셨군요 그동안 중국 역사를 공부해서 여기 나오는 사람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을 것 같네요 그때 사람을 보고 배울 것도 많겠습니다 반대로 그러지 않아야겠다 생각하는 것도...


희선

거리의화가 2023-04-25 09:05   좋아요 1 | URL
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맞아요. 물론 역사를 몰라도 이야기만으로 재밌지만 역사를 알면 훨씬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훌륭한 인물만이 아니라 찌질하기도 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함께 실음으로써 다양한 사람이 역사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의 인간에게도 다양한 면이 있듯이요.

그레이스 2023-04-25 0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시 읽고 싶네요^^

거리의화가 2023-04-25 09:06   좋아요 1 | URL
재독 가시나요? 재독하니 더 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래서 재독, 삼독 하는 건가봐요ㅎㅎㅎ

페넬로페 2023-04-25 1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을 때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어요.
거리의화가님은 중국문학쪽 체질이신가봐요~~
저도 재독 가야할듯요^^

거리의화가 2023-04-26 09:23   좋아요 1 | URL
역사인데 문학(!) 같은 느낌이 나는 책이긴 하죠^^; 근데 역사적 배경이 없었다면 재미를 이만큼 갖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저는 아무래도 사실을 기반한 문학이 더 읽기 수월한 듯합니다.
 

오리엔탈리즘: 서양이 동양에 관계하는 방식, 타자화(이미지)

오리엔탈리즘은 ‘동양‘과 (대체로) ‘서양‘이라고 하는 것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존재론적이자 인식론적인 구별에 근거한 - P16

하나의 사고방식이다. 따라서 시인, 소설가, 철학자, 정치학자, 경제학자, 식민지 제국의 관료를 포함한 수많은 저술가들이 동양과 그 주민,
풍습, ‘정신‘, 운명 등등에 관한 정교한 이론, 서사시, 소설, 사회적 설명, 정치적 기사를 쓰는 경우 그 출발점으로 동양과 서양을 나누는본적인 구분을 수용하여 왔다.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오리엔탈리즘을, 예컨대 아이스킬로스를 비롯하여 빅토르 위고), 단테, 칼 마르크스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 P17

오리엔탈리즘이란 지정학적인 지식을 미학적, 학문적, 경제적, 사회학적, 역사적, 문헌학적인 텍스트로 분배하는 것이다. 또한 오리엔탈리즘이란 (세계를 동양과 서양이라는 불균등한 두가지로 구성하는) 지리적인 기본 구분일 뿐만이 아니라, 일련의 ‘관심‘,
곧 학문적 발견, 문헌학적 재구성, 심리학적 분석, 풍경, 사회학적 서술과 같은 매개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관심‘을 주도면밀한 것으로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오리엔탈리즘이란, 우리의 세계와 명백하게 다른 (또는 우리의 세계와 대체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지배하고 조종하며, 심지어 통합하고자 하는 일정한 의지나 목적의식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기보다도 도리어-그자체이다. 무엇보다도 오리엔탈리즘이란 하나의 담론, 곧 살아 있는 정치권력과 직접적인 대응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다양한 권력과의 불균형적인 교환과정 속에서 생산되고, 또한 그 과정 속에 존재한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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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4-24 0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엇 오리엔탈리즘 시작하셨습니까. 멋져요!!

거리의화가 2023-04-24 09:22   좋아요 0 | URL
네. 2월에 샀는데 이제 시작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꼼꼼하게 읽으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