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말은 몇 세기가 지나도 그 의미가 변하지 않는 데 반해, 이름은몇 해도 안 되는 기간에 의미가 변한다. 우리의 기억과 마음은 누군가에게 충실하게 머무를 정도로 그렇게 크지 않다. 우리의 현재 상념에는 산 사람 옆에 망자를 간직할 자리가 충분치 않다. - P374

우리는 두 힘 중 하나를 선택해서 몰두할 수 있다. 하나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오는, 우리가 받은 심오한 인상으로부터 오 - P402

는 힘이며, 다른 하나는 외부에서 오는 힘이다. 첫 번째 힘을동반하는 것은 기쁨으로, 창조자의 삶에서 발산된다. 또 다른힘은 외부 사람들을 동요하게 만드는 움직임을 우리 안에 끌어들이는 것으로 즐거움을 동반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위적인 도취감을 느끼고 즐거움을덧붙이지만, 이런 도취감은 금방 권태나 서글픔으로 바뀌곤해서 그토록 많은 사교계 인사들의 얼굴이 울적해 보이며, 또그토록 불안한 상태가 때로는 자살로 이어지는 것이다. - P403

한 인물을 인위적으로 확대할 때는 다양한 주관적 관점이 작용하는 법이며, 그럼에도 이 모든존재들에게는 어떤 객관적 현실이 존재하며, 따라서 그들 사이에는 그래도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P439

상상력이 함께 하지 않기에 우리는 저녁 식사를 하며 권태를 느끼고, 상상력이 함께하기에 책을 읽으며 즐거워한다. 그렇지만 문제의인간은 항상 동일하다. 퐁파두르 부인이 그토록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한 까닭에 우리는 부인을 알고 싶어 하지만, 결국 그녀 옆에서 느끼는 권태감은 현대의 예술 후원자들 옆에서, 너무 평범한 탓에 감히 그들 곁으로 다시 돌아갈 결심조차 하지못하는, 그런 후원자들 옆에서 느끼는 바로 그 감정이다. 하지만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는 그들이 다 같은 친구라고 - P439

생각하지만, 우리를 대하는 모습에서 그들은 차이를 드러내며, 그러나 이 차이는 결국은 상쇄되기 마련이다. - P440

나는 스완과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잠시 얘기를 나누고 나서어쩌다 게르망트 사람들이 전부 드레퓌스 반대파가 되었는지물었다. "우선 그 사람들 모두가 사실은 유대인 반대파기 때문이라네." 경험상 그중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걸 잘 아는 스완이, 하지만 그렇게 대답했다. 그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상대방이 자신과 같은 견해를 공유하지 않은 것을 설명하기 위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유를 대기보다는,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선입관이나 편견이 상대방에게 있다고 가정하는 편을 더 좋아했다. 게다가 너무 일찍 삶의 끝에이른 그는 괴롭힘에 시달리느라 지쳐 버린 짐승마냥, 이런 박해를 증오하고 조상들의 종교적인 품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게르망트 대공에 대해서는, 사실 유대인 반대파라는 말을들었습니다만." 하고 나는 말했다. - P458

드레퓌스 지지가 스완을 지극히 순진한 사람으로 만들어그의 사물을 보는 방식에, 지난날 오데트와 결혼했을 때보다더 현저하게 충동적이고 일탈적인 양상을 부여했다. 이런 최근의 계급 이탈은 실은 자기 계급으로의 복귀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그에게는 명예로운 일이었으며, 그리하여 조상들이걸어온 길, 귀족들과의 교제로 이탈했던 길로 그를 다시 돌려보냈다. 스완은 그토록 명철한 순간에도,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자질 덕분에 사교계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볼 기회가 있는 그런 순간에도, 조금은 희극적이고 무분별한 행동을 했다. 그는 자신의 찬미와 경멸의 온갖 기준을 드레퓌스주의라는 새로운 기준에 맞춰 재정립했다. - P460

"제가 맹세해요. 그들은 언제나모든 것에 대해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고는 못 배겨요. 그런데실은 가진 의견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처음에는 우리의 의견을 묻는 데 인생을 보내고, 다음에는 그 의견을 우리에게 다시 전해 주는 데 허비하죠. 그들은 기어코 이건 좋은연주였다, 저건 좋지 않은 연주였다라고 말해야 직성이 풀리니까요. 다를 게 하나도 없는데 말이죠. 테오도시우스의 동생이(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네요.) 한 오케스트라의 모티프에 대해그게 무언지 제게 물었죠. 그래서 전 대답했어요."라고 공작부인은 반짝이는 눈과 아름다운 붉은 입술로 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아, 물론 그건 오케스트라의 모티프라고 불리는 거죠.‘라고요. 사실 그는 내 말에 만족하지 않았나 봐요. " - P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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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도 아주 구식이어서 그런지 저는 옛 작품이 그렇게 싫지 않습니다. 아마도 제 말을 안 믿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저녁에 제 아내가 피아노 앞에 앉으면 오베르나 부아엘디외, 심지어는 베토벤의 옛 곡을 청하는 일이 가끔 있죠. 바로제가 좋아하는 곡들이니까요. 하지만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면 바로 잠이 오더군요."
"그 점은 당신이 틀렸어요."라고 게르망트 부인이 말했다.
"바그너 음악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긴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는 천재예요. 「로엔그린」은 걸작이고, 「트리스탄」에도 여기저기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어요. 그리고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실 잣는 소녀들의 합창은 일품이죠." - P299

나는 그녀의 눈과 무겁게 질질 끌면서 씁쓸한 맛을 풍기는 목소리를아보기 시작했다. 이 눈과 이 목소리에서 나는 콩브레 자연의많은 걸 되찾을 수 있었다. 물론 목소리가 때때로 거친 대지를나타내기까지는 여러 요소들이 작용했다. 거기에는 게르망트가문의 한 분파로서 지방에 더 오래 남아 보다 대담하고 야생적이며 도발적인 가문의 지방색 짙은 근원이 있었으며, 품위란 것이 입술 끝으로 말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님을 잘 아는 진짜 품위 있는 사람들과 지적인 사람들의 습관, 그리고 또한 부르주아들보다 그들 영지의 농민들과 더 가깝게 지내는 귀족들의 습관이 있었다. 이 모든 특징들은 게르망트부인의 여왕과 같은 위치 덕분에 더 쉽게 전시되었고, 감추어진 모든 것들을 밖으로 드러나게 할 수 있었다. - P306

"마마께서는 졸라가 손에 닿는 것은 모두 웅장하게 만든다는 걸 주목하셨겠죠. 바로……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만 만진다고 생각하시겠죠. 하지만 그는 그걸로 뭔가 거대한 걸 만든답니다. 그는 서사시에서 말하는 진흙탕의 시인이에요! 분뇨담의 호메로스예요! 그 사람은 캉브론의 말을 쓰는 데 대문자가 충분치 않나봐요." - P314

"엘스티르의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딱히 박식할 필요도 없네. 그의 그림은 단순한 채색 스케치에 지나지 않으며, 그렇게 정교하게 작업된 것도 아니네. 스완은 뻔뻔스럽게도 우리에게 그가 그린 「아스파라거스 한다발」을 사게 하려고 했네. 그 그림은 여기 우리 집에 며칠 동안 있었네. 그림 속에는 자네가 지금 삼키는 것과 똑같은 아스파라거스 한 다발밖에 아무것도 없었지. 하지만 나는 엘스티르가 그린 아스파라거스를 삼키길 거절했네. 300프랑이나 요구했거든. 아스파라거스 한 다발에 300프랑이라니! 맏물이라고 해도 20프랑이면 족한데 말이야! 아스파라거스 한 다발 값으로는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생각했네. 이런 것들에 그가 인물을 추가하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뭔가 경박하고도 비관적인면을 띠기 시작했는데, 내 마음에는 들지 않더군. 자네처럼 세련된 정신과 뛰어난 두뇌를 가진 사람이 그런 것들을 좋아하다니 좀 놀랍네." - P318

억양이나 단어 선택에서 사람들은 게르망트 부인의 대화를 이루는바탕이 직접 게르망트 가문에서 나온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공작 부인은 새로운 사상과표현에 젖은 조카 생루와는 전적으로 달랐다. 칸트의 사상과 보들레르에 대한 향수로 혼란스러울 때 앙리 4세 시대의 세련된 프랑스어를 구사하기란 힘든 일이며, 따라서 공작 부인의 언어가 가진 순수함 자체도 실은 어떤 한계의 표시로 그녀에게서 지성과 감성 - P321

은 온갖 새로운 것들에 닫혀 있었다. 이 점에서도 게르망트 부인의 정신은 바로 그것이 배제하고(바로 나 자신의 상념을 구성하는 질료인) 또 그것이 배제함으로써 간직할 수 있었던 것, 즉우리를 진력나게 하는 성찰이나 도덕적인 배려와 신경증으로왜곡되지 않은 그런 유연한 몸의 멋진 활기로 나를 기쁘게 했다. 내 정신보다 훨씬 이전에 형성된 부인의 정신은 해변에서작은 무리의 소녀들이 걷는 모습이 내게 주었던 것과 유사했다. - P322

전에는 그들이 내가 생각도 할 수 없는 삶을 누린다고 상상했으나, 지금은 다른 남자들이나 다른 여자들과 비슷하며 단지 동시대 사람들에 비해 조금 뒤처진, 그러나 불균등하게 뒤처진 모습이었다. 즉 대다수 포부르생제르맹 부부들처럼 아내는 황금시대에 멈출 정도로 현명했지만, 남편은 과거의 척박한 시대로 내려갈 만큼 불운했으며, 다시 말해 아내는 여전히루이 15세 시대에 머무르는 데 반해, 남편은 말만 화려한 루이필리프 시대에 살고 있었다. 게르망트 부인이 다른 여자들과비슷하다는 사실에 나는 처음에는 일종의 환멸 같은 것을 느꼈지만, 지금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또 좋은 포도주의 도움을 받아 찬미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 P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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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김윤아 콘서트를 다녀왔다. 솔로 콘서트는 오랜만이라 긴장도 되었지만 오히려 편안한 마음도 있었다. 커플들도 많았지만 나처럼 혼자 온 이들도 많았다.

공연장이 대학교 안이여서 간만에 젊음(!)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공연장을 찾는다고 헤매다가 처음 부닥친 건물이 알고 보니 공과대학이어서 나의 대학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속으로 공대생들 화이팅!을 외쳤다는). 분수대에 분수는 끊임없이 나오고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무척 찌는 날씨만 아니였다면 캠퍼스를 배회할 것을 그러기엔 너무 무더웠다.

공연은 전체적으로 "사랑의 시작과 끝!"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사람은 본디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이므로 끊임없이 사랑을 갈망하는 존재가 아닐까. '행복한 사랑은 없네'라는 콘서트의 부제가 말해주듯 뭘 모르던 때의 사랑은 낭만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지만 사랑의 본질은 어쩌면 추악하고 더러운 것이라 생각한다.
내게 사랑은 욕망이라는 단어와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끝까지 탐하며 쫓아가면 그 끝은 파멸이라는 것과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고 심하게 회의적이다. 이런 사람이 결혼을 한 게 아이러니하기는 하나 오히려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고 현실적이어서 기대치가 낮아서 가능한 부분인 것 같기도 하다.

노래 사이에 김윤아의 이야기가 더해져 공연 마지막이 되면 한 줄기의 스토리가 완성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에는 노래 사이에 관객과의 소통과 대화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이 방식이 마치 연극에서 배우들이 하는 대사처럼 느껴져 신선했던 것 같다.

특히 오랜만에 듣는 도쿄 블루스, 강, 담, 유리가 정말 좋았다.




가창은 말해 무엇하리오. 2시간 20분 간 완벽한 기승전결의 서사가 이어졌고 앵콜곡이 되자 눈물이...



그리고 책과 커피를 샀다.
공교롭게도 모아 놓으니 붉은 계열이 되어 버렸네.

첫 번째 책은 7월의 여성주의 책인 <성의 변증법>이다. 표지도 강렬해서 기가 살짝 죽는데 내용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아 걱정이 된다. 7월 초부터 바짝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두 번째는 바바라 터크먼의 <8월의 포성>이다. 1차 세계대전 개전 초기를 다룬 전쟁사로 정평이 나 있는 책인데 기존 책의 중고가가 어마무시해서 사려고 해도 엄두가 안났는데 마침 딱 새로 나와주어 감사한 마음으로 질렀다. 두껍지만 양장본이 아니라 무겁지도 않아 마음에 든다.
커피는 알라딘 일산 블렌드라고 하는데 그냥 물 많이 타서 숭늉처럼 마시려고 샀다^^;



토요일에 집에 들어오니 거의 일요일이 된 시간이어서 무리하지 말자라고 생각하고 일부러 오늘 휴가를 미리 내 놓았고 오늘까지 푹 쉬었다. 덕분에 컨디션은 괜찮다.


<한국전쟁의 기원> 시리즈를 완독하여 6월에 큰 독서 목표는 끝낸 셈이라 마음이 홀가분하다.


장마가 시작되었는데 짧은 시간 내에 급격하게 국지적으로 비가 내린다고 하여 걱정이다. 다들 비 피해 없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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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6-26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김윤아 콘서트라니~참 좋으셨겠어요! 고등학생 때 노래방 가면 꼭 누군가는 부르던 노래가 자우림의 일탈이었는데 ㅎㅎ 나중에 솔로 1집 사서 한동안 빠져있기도 했던 기억입니다.
한국전쟁의 기원 같은 벽돌이를 금방 완독하신 화가님께 존경의 눈빛 발사!!!😍😍😍

거리의화가 2023-06-27 13:12   좋아요 1 | URL
<일탈>은 노래방에서 불러줘야 제맛인 곡이죠! 한참 공부로 스트레스 쌓였을 때 그 곡은 정말 해소제같은 곡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솔로 1집 명반이죠. 저도 정말 좋아하는 음반입니다^^
<한국전쟁의 기원> 미국 정치계 인물들 이름이 많이 나오고 그 관계들이 어지러워서 좀 몽롱해질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땐 그러려니 하고 전체적인 흐름만 잡고 가는 식으로 가야지 다 잡으려다간 힘들더군요. 감사합니다^^

희선 2023-06-27 0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던 책 다 보셔서 기쁘시겠습니다 그 뒤 콘서트에 가셨군요 대학 안에 있는 공연장이어서 색다른 느낌이 들었겠네요 덜 더웠다면 둘레도 걸어봤겠습니다 비가 오기 전에 좀 더웠죠 비가 오고도 습기가 심해서 좀 덥기도 합니다 장마 시작부터 비 많이 온다고 말해서 걱정하기도 했네요 큰 피해 없이 지나가면 좋을 텐데...

거리의화가 님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6-27 13:09   좋아요 1 | URL
저는 대학 안에 공연장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보통 올림픽홀 공연장이나 블루스퀘어 같은 전용 공연장 같은 곳만 갔었어서 색다르더군요. 말씀하신대로 좀만 덜 더웠어도 돌아봤을텐데 그러기엔...ㅋㅋㅋ
희선님 이번 한주도 즐겁게 보내세요*^^*

자목련 2023-06-27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시간 보내셨네요. 콘서트에 가 본 기억이 너무 너무 멀리 있네요.
<한국전쟁이 기원> 6월에 완독하셨다니 계획적이고 의미있는 독서였겠구나 싶어요.
이제 7월의 독서로 돌입하시는 건가요?

거리의화가 2023-06-27 13:11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좋았어요. 콘서트 저도 자주는 못가고 결국 좋아하는 가수가 공연한다고 하면 그때 한번씩 가는 것 같아요. 이번엔 1년 만이었네요^^
<한국전쟁의 기원> 6월을 넘기지 않고 끝내서 마음이 후련합니다!
지금 읽고 있는 책 중에 한두 권 정도 더 읽으면 7월로 넘어가지 않을까 싶어요.

레삭매냐 2023-06-27 1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지난 토요일 너무
무더웠습니다.

그래도 독서모임의 시간
은 즐거웠네요.

<8월의 포성>이란 책은 처음
들어보는데 바로 땡기네요.
이 책은... 희망도서로다가 도
서관을 이용해 볼까 합니다.

거리의화가 2023-06-27 16:28   좋아요 0 | URL
오후 5시가 넘은 시각이었는데 해가 작열하고 끓어오르고 있더라구요. 도심의 지열까지 더해져서 장난이 아니었네요. 심지어 콘서트 끝나고 나왔는데도 후텁지근한 공기가...ㅎㅎ

독서모임 즐거우셨겠어요. 예전엔 종종 했었는데 이젠 서울에 가려면 3시간 정도는 생각하고 가야 해서 부담이 되더군요ㅠㅠ

<8월의 포성> 매냐님도 좋아하실 책일 듯합니다^^

책읽는나무 2023-06-27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대생 파이팅!!! ㅋㅋㅋ
저도 함께 외쳐봅니다^^
자우림 김윤아는 이제 자동적으로 화가 님 가수같아요^^
저는 지인들이 동네나 부산 인근에 가수들 콘서트 공연 있다는 소식이 뜨면 보자!!!! 그래서 따라가는 편이어서 나의 가수는 정녕 보진 못했네요.
최근에 변진섭 가수가 남쪽에 내려온대서 보고 왔어요. 목소리는 여전하던데 외형이 조금 변해서 깜놀했네요ㅋㅋㅋ
김윤아 가수 공연도 보고 싶어요. 남쪽엔 안내려오나 봅니다?
작년 겨울엔 알리랑 정동하 가수 듀엣 공연 봤네요. 저 지금 여기서 웬 자랑을?ㅋㅋㅋ

다시 책 얘기로~
<한국전쟁의 기원> 완독은 축하드리며 부럽기도 합니다^^
목표를 세우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고야 마는 화가 님! 믿음직 합니다^^
7월의 여성주의 책은 <성의 변증법>이로군요? 벌써부터 긴장됩니다. 어려울까봐서요.ㅜㅜ
여성주의 책은 읽을 수록 어려워 공부가 더더 많이 필요하겠단 생각을 매번 하면서도 돌아서면 공부를 하지 않다가 또 그 달의 책을 잡고 읽으면 어렵네? 공부해야지! 늘 이러고 있는 제가 참...한심하단 생각도 들어요.ㅋㅋ
강렬한 책 표지의 두 권이 눈에 확 띄네요^^

거리의화가 2023-06-27 17:57   좋아요 1 | URL
ㅋㅋ 공대생 건물 오랜만에 갔는데 반갑더라구요. 같은 학교 출신도 아닌데도 왜 연대감이 느껴지는지!ㅎㅎ

좋아하는 가수들은 많은데 자우림, 김윤아 이야기만 유독 해서 그런게 아닐까 싶네요. 공연 갔다는 이야기도 적었었고!
세월이 가면 외모야 뭐... 그래도 목소리가 안 변하셨다면 관리를 그만큼 열심히 한 것이 아닐까요? 성대도 관리 잘해줘야하더라구요. 자우림 공연은 지방 간간히 있었어요. 이번 솔로 콘서트는 아쉽게도 서울에서만 5, 6일 진행하는 것 같더라구요. 언젠가 지방에서도 하면 좋겠네요.

성실성 빼면 내세울 게 없는 저라. 저는 목표를 세워야 진도가 나가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ㅋㅋ <성의 변증법> 표지에서부터 아우라가 뿜뿜입니다. 아직 들춰보진 않았는데 이 책이 여성주의 책 읽기로 재독인 걸로 아는데 저는 이번에도 조금이라도 얻어가자라는 생각으로 읽어야겠습니다.
 

그 자신이 부자인 푸아 대공은 열다섯 명의 젊은이로 구성된 우아한 사단에 속했으며, 뿐만 아니라 생루도 가담한 보다 폐쇄적이며 항상 붙어 다니는 4인방 그룹에 속했다.
언제나 함께 초대받는 그들을 사람들은 제비족 4인방이라고불렀고, 항상 같이 산책하는 모습을 보아 왔으므로 성관에 초 - P156

대할 때도 서로 통하는 방을 주었다. 더욱이 이들 4인방이 모두 미남인 탓에 이들이 은밀한 관계라는 소문도 떠돌았다. 나는 생루에 대해서는 가장 단호한 방식으로 그 소문을 부정할수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중에 이 소문이 네 사람 모두에게 사실로 판명되었지만, 이들 각자는 반대로 나머지 세 사람에 관한 소문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욕망을, 아니 차라리 원한을 해소하려고, 아니면 상대방의 결혼을 방해하거나 비밀이 발각된 친구를 지배하려고, 상대방에 관한소식을 알려고 무척 애를 썼다. - P157

사유의깊이를 작품에 반영하기 위해 예술가가 직접 작품 속에 자신의 사유를 표현할 필요는 없다. 신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창조’가 너무 완벽해서 창조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무신론자의 부정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 P172

엘스티르는 자신이 느낀 것에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제거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노력은 우리가 자주 시각이라고 부르는 그 논리적 추론의 집합체를 해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엘스티르는놀랍게도 자신이 그린 ‘흉물‘을 싫어하는 사람들, 샤르댕이나페로노, 그리고 사교계 인사들이 좋아하는 다른 수많은 화가 - P179

들을 찬미했다. 그들은 엘스티르가 실재 앞에서 그 자신을 위해(어떤 유형의 탐색에 대한 취향을 보여 주는 특별한 지표와 더불어) 샤르댕이나 페로노와 동일한 노력을 했으며, 따라서 엘스티르가 자신을 위해 작업하기를 멈출 때면 이들 화가들에게서 자신과 동일한 유형의 시도와 자신의 작품을 예고하는 단편들에 감탄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사교계 인사들은 그들로 하여금 샤르댕의 그림을 좋아하게 하고 적어도별다른 거북함 없이 그 그림을 보게 한 ‘시간‘이라는 전망을생각 속에서나마 엘스티르의 작품에 첨가하지 못했다. - P180

게르망트 사람에게 있어(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지적인 존재란 남을신랄하게 비판하고 악의적인 말을 할 줄 알고 논쟁에서 이긴다는 걸, 또 그림이나 음악과 건축에 관해 상대방에게 맞서고영어를 말할 줄 안다는 걸 뜻했다. 쿠르부아지에는 지성에 대해 이보다 호의적이지 않았으며, 만약 그들 세계에 속하지 않는 누군가가 지성인이라면, ‘필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일 놈이다.‘란 의미와 그리 멀지 않았다. 쿠르부아지에에게 있어 지성이란 도적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지렛대 같은 것으로, 그 덕분에 하와인지 아담인지도 전혀 알지 못하는 놈들이 가장 존경받는 살롱의 문을 부수고 들어오기 때문에, 따라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받아들이다간 머지않아 반드시 후회하게 되리라 여겼다. 아무리 무의미한 말도 사교계 인사가 아니라 지적인 사람이 말하면, 쿠르부아지에 사람들은 그 말을 체계적으로 불신했다. - P217

평등 사회에서의 예절은 철도의 발달과 비행기의군사적 이용보다 더 큰 기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설령 예절이 사라진다 해도 그것이 불행이라는 증거는 아무 데도 없다.
끝으로 사회란 사실상 민주화되어 감에 따라 점점 더 은밀한방식으로 서열화되어 가는 게 아닐까? - P239

사교 생활의 공허함이 망가뜨린 게르망트 부인의 지성과 감성은 너무 자주 흔들리는 탓에, 뭔가에 열중하다가도 금방 싫증을 내고(그녀가번갈아 추구하다 버린 지성의 유형에 또다시 끌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 어느 마음이 착한 남자에게서 발견한 매력도 그 남자가 지나치게 자주 그녀 집에 드나들거나 그녀가 줄 수 없는 조언을지나치게 그녀에게서 구하면 곧 귀찮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는데, 부인은 이런 귀찮음이 그녀의 찬미자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여겼지만, 실은 우리가 쾌락을 추구하는데도 쾌락은 얻 - P266

지 못하고 그저 쾌락을 추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때 느끼는 무력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공작 부인에게서 판단의 변화는 그녀의 남편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었다. 남편은 그녀를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에게서 언제나 강철 같은 성격, 그녀의 변덕에도 무관심하고 아름다움도 경멸하는 난폭한 성격, 결코 남에게 굽히지 않는 의지를 느꼈으며, 이런 의지의 지배를 받을 때에야 예민한 인간은 비로소 안정을 찾는 법이다. - P267

공작에게서 삶의 모든 관심사는 그가 한 번도 사랑한적 없으며 계속해서 배신해 온 이 여인의 외부 세계에 있었다.
공작 부인이 피로를 느끼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게르망트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목걸이가 안감에 걸리지 않도록 바로잡 - P282

아 주면서 손수 외투를 부인에게 입혀 주는 등 열성적이고 정중한 보살핌으로 출구까지 길을 내는 모습을 보았는데, 한편부인은 이러한 남편의 보살핌에서 단순한 처세술의 표시만을 보는 듯 사교계 여인의 냉담한 표정으로 받아들였고, 때로는 더 이상 잃어버릴 환상이 남지 않은 미망에서 깨어난 아내의, 조금은 냉소적인 씁쓸함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런 겉모습에도 ㅡ 이미 지나간 먼 시절, 그러나 아직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그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먼 시절로 마음속 깊은곳의 의무를 표면으로 옮겨 놓은, 예절의 또 다른 부분인 이런겉모습에도 공작 부인의 생활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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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기원 2-2 - 폭포의 굉음 1947~1950 현대의 고전 16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범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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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불안한 시기에는 늘 그렇듯 대립과 음모의 흔적이 없는 주말은 없었다. 전형적인 여름 날씨와는 대조적인 기사, 그러니까 "(미)군 전투부대는 긴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승선항으로 얼마나 빨리 이동할 수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 대기 상태에 있었으며 그 검증은 7월 1일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기사가 묻혀 있는 것을 주의 깊은 독자만 깨달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미국과 일본에 있는 미군 전투부대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 검증을 위해)경계 태세에 있었다. 이것은 우연일 가능성이 컸지만, 중국이 타이완을 침략할 수 있다는 예측과 관련된 것이었다. 6월에 세계에 배치된 미군 병력은59만1000명이었다. 거기에는 미국 국내의 10개 전투 사단 36만 명과 가장큰 규모의 해외 파견부대인 주일미군 10만8500명이 포함됐다(독일에는 8만명이 파병됐다. 일본에는 4개 사단-제7사단, 제24사단, 제25사단, 제1기갑사단이 주둔했다. - P243




한국전쟁 발발 한 해 전 1949년 6월 무렵 38도선을 둘러싸고 수많은 전투가 일어났다. 전투는 한국전쟁의 개전 초 작전과 복사판이었으며, 시간만 다를 뿐이지 특징은 같았다. 1949년 북한은 전투를 벌일 준비가 덜 되어 있었지만 1950년은 그렇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1949년 전투는 남한 정부가 주도적으로 일으켰는데 이는 한국 정부 지도층의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들은 미군이 한반도에 계속 주둔하며 자신들의 이익과 영토를 지켜주길 원했다.

1950년 1월 5일 트루먼과 애치슨은 타이완 문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로서는" 타이완 방위 계획은 없다 밝혔다. 흔히 애치슨 라인은 남한이 범위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으로 오해되어 스탈린이나 김일성에게 청신호를 켜주고 한반도를 분열로 몰고 간 외부적 요인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일본은 방어되며, 위협받는 그 밖의 국가(한국 같은)는 공격받을 경우 처음에는 스스로 방어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상황은 다시 평가될 것임을 암시한 것이었다(P70). 애치슨의 방위선은 정치와 경제적으로 "거대한 초승달 지대"를 만들어 일본부터 인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확보해 발전시키려는 구상이었다. 평양은 미국이 이승만 정권을 유지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고 믿었고 애치슨의 이런 의도는 북한 정권의 동요였다고 판단했다.

6월 7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은 남북 정치 지도자들의 회담을 촉구하는 발표를 하면서 6월 19일 38도선에서 만날 것을 제안했으며, 8월 초 한반도 전체에서 선거를 실시해 평화통일을 이루고 해방 5주년 기념일에 새로운 통일 국회를 소집하자고 요구했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은 남한의 무소속 의원들에게 특별성명을 발표해 호소하면서 여운형을 "조국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조선 민족의 애국자"라고 불렀고, 김구가 암살된 것을 애도했으며 김규식의 통일 노력을 칭송했다. 그들은 인민위원회의 복구를 요구했다. 무초는 북한이 이런 요구와 관련된 선전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았다고 말하면서, 그 주장은 "겉으로 보기에 합리적이며 "아직도 38도선의 철폐를 갈망하는 남한 여론 대부분과 국회의 "혼란스러운 자유주의 세력"에게는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지방의회가 구성될 가능성은 없겠지만, 한국 전역에서 그로 인해 초래될 결과는 "전면적 내전의 전초단계"가 될 수도 있다고 무초는 지적했다. - P160~161

북한은 6월 19일 남북 의원의 회의를 개최하고 8월 15일까지 남한 국회를 북한의 최고인민회의에 통합할 것을 요구했다. 물론 이는 선전 책략이자 공격을 은폐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남한에서는 5월 30일 총선 결과 이승만 세력이 아닌 중도파와 온건 좌익이 승리했기 때문에 북한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조만식과 남로당 지도자인 김삼룡, 이주하를 교환하자는 파격적인 제안도 내건다. 하지만 교환 방식에 합의를 찾지 못했고 6월 23일 북한은 6월 26일 정오에 교환하자고 제안했다(교묘하다). 이건 대놓고 전쟁 전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면서 준비를 착실히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장제스가 직면한 난제는 타이완섬을 지키려는 국제협력주의자들과 총통을 옹호하는 반격론자를 조화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공군력은 나라를 구할수 있는 만능의 수단으로 생각됐기 때문에 국민당은 중국 본토의 연안 도시들을 폭격하고 남한에 공군기지를 확보해 만주를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장제스가 주력한 것은 미국 정치를 조종해 자신의 정권을 보호할 수 있는 지원을 얻는 것이었다. 미 해군은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 P190

타이완은 설탕, 바나나, 원자재를 일본으로 수출하고 일본의 기계와 기관차, 옷감 등을 수입하며 1948년 무렵부터는 미국의 태평양 영해에서 전략적 가치이자 경제적 효용 가치가 있는 땅이었다. 하지만 1950년 초 장제스는 벼랑 끝에 내몰려 있었다. 하이난섬은 4월 셋째 주에 속수무책으로 함락되었고 워싱턴은 지원을 끊으면서 국민당은 수렁으로 빠지고 있었다. 장제스는 쿠데타/암살 위기에 직면하고 필리핀과 한국에 망명을 신청하기까지 한다. 미국은 중국 정책이 위기에 빠졌다 판단했고 6월 초 타이완 문제는 유엔 위원회로 넘어간다. 하지만 6월 22일 무렵 맥아더는 타이완이 연합국에 갖는 가치가 크기 때문에 장제스의 권한은 유지시키고 타이완은 유지되어야 한다 주장한다. 러스크 장관은 장제스에 대한 쿠데타 계획을 애치슨에게 제안했고 트루먼에게 그 사안은 상신되었다. 트루먼이 결정하기 전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 장제스 정권은 한국 전쟁으로 존속될 수 있었다.

누가 한국전쟁을 일으켰는가? 저자는 세 가지 모자이크를 제시한다. 세 가지 모두 음모론(또는 가설?)이며 소련과 북한이 침공을 은밀히 준비했다는 설, 남한이 이유 없이 기습했다는 설, 남한이 전쟁을 유도했다는 설을 이야기한다.

널리 제기되는 주장 가운데 하나는 북한이 지도부의 파벌 다툼 때문에 침공했다는 것이다. 박헌영과 그 세력은 남한에 있는 자신들의 기반을 잃을까 우려했고 전면 공격을 일으키면 대중이 호응해 봉기해 공산주의의 승리를 신속히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보겠지만, 이런 가설은 CIA, 김일성 지도부, 일본에서 작성된 한국 관련 자료 그리고 미국의 중요한 일부 학자가 동의한 특이한 사례다. 그 가설의 장점은 6월이라는 시점에 공격이 시작된 까닭을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한에 있던 유격대가 1950년 봄에 정말 소멸되고 거기에 토지문제가 더해졌다고 가정하면, 그 가설은 설득력 있는 주장이 될 수 있다. - P116

또 다른 학설은 북한은 한반도의 분단이 고착화하기 전에 통일을 추구하려고 행동에 나섰다는 것이다. 지금 독자들은 이것을 충분히 납득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미묘한 시점이라는 요소가 있다. 몇 년 동안 북한은 이승만이 "북침해 한반도를 강제로 통일시키려고 한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은 1945~1946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 요구와 1948년 5월 총선거,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분단주의가 아니라 북침의 기반을 놓으려는 행동으로 언제나 해석했다. 내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1950년 5월에 처음으로 북한 문서는 이승만이 한국의 영구적 분단을 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전쟁 이후 상투적 표현으로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이것은 전쟁 이전 북한의 표현에서 중요한 변화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앞의 주장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어떻게 남한이 한반도의 항구적 분단을 바라는 동시에 북한을 공격하려고 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 P120

6월 25일 이른 아침 전쟁이 서부에서 동부로 확산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첫 번째 모자이크, 다시 말해 잠들어 있고 준비를 갖추지 못한 남한을 38도선 전역에 걸쳐 갑자기 전면적 침공을 개시했다는 판단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조지프 대리고는 전투가 시작됐을 때 38도선에 있었던 유일한 미군이었다. 그는 누군가의 포성에 잠을 깼다. 초기 전투에 관한 그 밖의정보는 모두 한국군 정보원에서 나왔으며, 1949년 여름에 얻은 증거가 보여주듯, 그것은 전혀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증거조차도 전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몇 시간에 걸쳐 번져나갔으며, 한국군 제6사단은 적어도 하루 정도 먼저 경고를 받았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문산·춘천이나 동해안에서 그리 좋은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남한 부대들이 저항으로 보기 어려운 반격을 하거나 싸움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군은 개성과 의정부를 돌파할 수 있었다. 북한이 투입한 병력도 군사전략 측면에서 보면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존미어 샤이머는 치밀한 논리를 전개한 저작에서 전격전술을 사용할 때 "전략적 돌파"를 성공시키려면 공격 측의 병력이 3대 1 정도 우세해야 한다고 서술했다. 6월 25일 이후의 전투 과정은 고전적 전격작전과 비슷하다. 하지만 전투 데이터의 순서를 따라가보고 증거들에 살펴보더라도 이는 비슷한 규모이거나 더 큰 규모의 적을 상대로 진행된 전격전이었다. - P296~297

국내와 국외에서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던 이승만과 장제스는 봉쇄를 먼저 실시한 뒤 반격을 추진하기를 바란 반면, 애치슨은 한국과 타이완을 모두 방어하기로 결심하고 장제스를 축출하려고 했으며 봉쇄 지역 주변에서 공산 세력이 먼저 공격하기를 바랐다. 당시의 모든 상황은 이처럼 긴장되고흥미로웠다. 1950년 여름 헨리 월리스는 딘 애치슨에게 분노가 담긴 서한을 보내 이승만이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애치슨은 격렬히 반대하는 답장을 보냈지만, 미국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무의식적 실언 가운데 하나가 담겨 있었다. "진지하고 성실한 학자라면 거기에 아무 의문을품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 공산군은 도발을 받기는 했지만 경고도 정당한 이유도 없이 대한민국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증거도 1950년 6월 25일 새벽 남한이 먼저 공격했음을 여전히 입증하지 못한다. 남한이 먼저 공격했다면 다음 두 사항을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 첫째,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그런 도발을 이용해 남한을침략할 태세를 갖췄다는 명백한 증거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북한의침공을 정당화해주는 한국적 맥락일 뿐이다. 둘째, 정말 남한이 38도선을넘어 공격했다면, 1년 전 한국군 2개 대대가 월북한 것을 감안할 때 도발은북한에 동조하는 내부의 적이 일으킨 자작극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그렇다면 침공은 북한이 일으킨 것이 된다. - P320

북한이 명분 없는 공격을 시작했다는 판단은 한반도가 놓인 환경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바로 2년 전 38도선을 "국제적 경계선으로 만드는 데 유엔이 이용됐다(이승만을 포함한 어떤 한국인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5년 전 미국은 고대부터 이어진 통일국가를 분열시키기 시작했고 소련의 큰 도움을 받아)때 이른 "냉전"을 심화했으며, 반동·친일 세력을 후원해 한국인들의 열망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 국무부의 정책에도 역행하면서 남한 단독 정부를 수립했다. 이런 일이 모두 이뤄지면서 한국인들이 한국을 침공하는 최악의 역설이 가능하게 됐다. 진실은 남한이라는 국가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북한에는도발이었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 P341

저자는 세 모자이크 중 두 번째 모자이크의 가능성이 그나마 높다고 이야기한다. 2권 첫번째에서도 의견을 냈지만 어느 것도 100% 증명할 수 있는 설은 없다고 생각한다.

1950년 6월 시작된 전쟁은 1953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스탈린이 더 이후에 죽었다면 미소 지도부의 교체가 늦어져 전쟁이 더 길어졌을지 모르겠다. 한반도의 내전은 군인들 뿐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들의 사상이 잇따르고 주요 기반 시설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분단 체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뼈아픈 현실이다.

이 책은 미국과 북한에 대한 자료를 검토하여 그 부분은 세밀한 반면 중국, 특히 소련에 대한 검토는 상대적으로 많이 약하다. 그래서 소련에 대한 입장은 빈 공간이 많은데 소련의 기밀 문서는 나중에 해제된 것이 많기 때문이다(이조차 여전히 기밀 자료들이 있을 것으로 판단). 이와 관련해서는 다른 한국 전쟁 책들로 빈 공간을 메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내부적 입장을 이만큼 잘 다룬 책은 드물 것이다. 궁금한 독자들은 일독을 권한다.

『타임』지는 소련이 "미국의 시간"을 잘못 계산했음을 보여주는 "많은 증거가 있다고 보도했다. 그래서 그들은 36시간 동안 ‘침묵‘했던 것이었다. "미국의 행동을 예측했다면 소련은 말리크를 유엔으로 보내 미국이 주도한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게 했을 것이다. "이것은 최근 소련이 저지른 최악의 실패였다. 달리 말하면 스탈린은 은밀히 침공을 계획했고, 물질적으로 소련을 능가하는 초강대국과 세계 전쟁을 벌일 위험을 각오했으며, 전략과 전술 모두 차례로 큰 실패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는 소련의 전략에서 남한이 지닌 가치와 전쟁이 일본과 서방의 재무장에 줄 영향 그리고 미국의 참전 의지를 잘못 판단한 것이다. 그는 시간조차 잘못 계산했다. - P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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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3-06-26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빠른 시간에 대작을 완독하셨네요! 거리의화가님 완독 축하드리고,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3-06-26 18:20   좋아요 1 | URL
가능한 이달 내에 읽으려고 부지런히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님 감사합니다^^

희선 2023-06-29 0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북이 갈라지고 오랜 시간이 흘렀네요 이제는 통일을 바라는 사람은 적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북한은 정보가 별로 없기도 하네요 북한은 남한 정보를 얻는다고도 하던데... 한 나라가 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죠 오랫동안 따로따로였으니... 나라를 빼앗긴 것도 나라에 힘이 없어서였고, 독립을 하고 다른 나라 간섭을 받았네요 그런 게 없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 해도 둘로 갈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독립운동 한 사람이 중국쪽 일본 미국으로 나뉘었으니... 전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3-06-29 09:15   좋아요 1 | URL
통일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좀 어색하게 느껴지죠. 남한이라는 단어도 이제는 어색한 듯 합니다. 한국이라는 국명이 자연스러워졌고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북한을 굳이 알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북한학을 전공한다든지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북한도 많은 것을 과거 자신들도 희생했던 전쟁인만큼 이제는 더 신중해지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