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 - 소돔과 고모라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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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뤼스 씨와 쥐피앵의 시선은, 적어도 일시적이긴 했지만 뭔가에 이르고자 하는 목적이 없다는 점에서 아름다웠다. 이런 아름다움의 발현을 나는 남작과 쥐피앵을 통해 처음 목격했다. 이들 두 사람의 눈에 떠오른 것은 취리히의 하늘이 아니라, 내가 아직 그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 어느 동방 도시의 하늘이었다. 샤를뤼스 씨와 조끼 재봉사를 사로잡을 수 있었던 요소가 무엇이었든 그들 사이에는 협정이 체결된 듯 보였고, 그 불필요한 시선은 이미 정해진 결혼에 앞서 베풀어지는 축제처럼 의례적인 서곡에 불과했다. 보다 자연에 가까워진 두사람은 그리고 이런 다양한 비교는, 우리가 몇 분 동안 살펴보면 동일한 인간이 연이어 인간, 인간-새, 인간-곤충 등으로 보여 그 자체로도 더욱 자연스러웠다. ―마치 한 쌍의 새처럼 보였는데, 수컷이 먼저 다가가려고 하면 암컷인 쥐피앵은 이런 술책에 어떤 신호로도 응답하지 않고 놀라지도 않은채 자신의 새로운 친구를 무심히 응시했으며, 수컷이 먼저 수작을 부린 이상 자기는 깃털을 쓰다듬는 정도로 만족하는 게보다 자극적이며 유일하게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판단한 듯보였다. - P2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 8권은 '소돔과 고모라'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는 구약성경 창세기에 죄악의 도시로 등장하며 레반트 지역에 실재했던 곳으로 여겨 지는 곳이다. 물론 샤를뤼스 같은 부류의 남자들은 삶의 가능성과 어떤 타협도 하지 않고 다른 부류의 남성, 즉 여성을 좋아하는 남성(또 그 결과 그를 사랑할 수 없는 남성)의 사랑을 추구하는 특별한 사람들이다. 난초꽃이 벌에게 수작을 부리듯, 쥐피앵이 샤를뤼스 씨의 주위를 맴도는 모습을 목격한 화자처럼 '소돔과 고모라'는 특히 동성애로 의인화되고 하느님은 이들을 벌하라 지시하여 두 도시가 망했다고 한다(구체적으로는 ⌜창세기⌟ 18~19장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벌하려는 하느님께 롯이 간청하자 하느님은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롯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자 하느님은 도시를 파괴하려 한다. 그러자 천사들이 롯과 가족들에게 도망치라고 말하면서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명하나, 롯의 아내는 뒤돌아보다 소금 기둥으로 변한다).
샤를뤼스와 쥐피앵의 만남을 보며 화자는 남성이 남성을 열망하고 쫓는 행위에 대해서 자기만의 생각을 정리한다. 알베르틴과 앙드레는 그 반대편에 서 있지만 같은 결에 있다. 화자는 이렇게 동성애에 대해서 특이함, 기이함으로 바라보는 쪽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나라면 물론 내 딸들을 이런 곳에 오지 못하도록 할 걸세. 어쨌든 여자아이들이 예쁘기는 한가? 나는 저 아이들의 얼굴을 구별하지 못하겠네. 저런, 저걸 보게나." 하고 그는 서로를 껴안고 천천히 왈츠를 추는 앙드레와 알베르틴을 가리키면서 덧붙였다. "코안경을 잊어버리고 와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저 아이들은 틀림없이 쾌락의 절절에 있을 걸세. 여자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젖가슴을 통해 쾌락을 맛본다는 걸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네. 저 아이들의 젖가슴이 완전히 붙어 있는 걸 보게나." 실제로 앙드레와 알베르틴 사이에서 젖가슴의 접촉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 앙드레가 알베르틴에게 한마디 했고, 그러자 알베르틴은 조금 전 내가 들었던 그 날카롭고도 뜻깊은 웃음을 터뜨렸다. 알베르틴은 그 웃음소리를 통해 은밀하고도 관능적인 전율을 앙드레에게 가리키고 확인하려 하는 듯했다. 그것은 미지의 축제에서 처음이나 마지막에 울리는 화음과도 같았다. - P345

악덕은(언어의 편의상 이렇게들 말하는), 마치 정령의 존재를 모르는 인간에게서 그 인간이 모르는 정령이 눈에 띄지 않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각자의 악덕은 우리를 동반하고 있다. 선함이나 교활함, 명성과 사교적 친분 관계는 그 자체로서는 드러나지 않으며 우리는 그것을 감춘 채 지니고 있다. 오디세우스도 처음 순간에는 아테나 여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 P35~36

스완은 병색이 완연해진 모습을 보인다. 그런 스완의 모습을 보고 화자는 충격을 받았다. 아픔과 고통을 마주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를 감내하기엔 아직 그의 연륜이 깊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화자는 발베크로 두 번째 방문했다. 그 방문은 첫 번째 방문 이후 할머니의 죽음을 떠올리게 했고 고통이 찾아든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기 얼마 전 시할머니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는지 나는 화자의 감정에 연민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시할머니를 뵈었을 때 모습이 스쳤지만 그 때는 이미 눈을 뜨시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슬픔이 밀려들었다. 우리를 보실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후회가 덜할까 싶기도 했지만 인생사는 알 수가 없지 않나. 결국 이런 고통은 추억 때문이 아닐까. 할머니의 부재는 화자에게 앞으로도 순간 순간 아픔처럼 다가올 것이라는 걸 짐작케 한다. 하지만 그 순간이 언제 찾아올 지 알기 어려우며 그 감정을 제어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게다가 화자는 할머니의 부재에 대한 기억에서 어릴 적 어머니에 대한 상실감의 감정이 오버랩되는 것을 느낀다. 부재는 상실이며 그리움이기도 하다. 죽고 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고 그저 기억으로 대체되어 자리할 뿐이다.

스완은 예언자의 나이에 도달했다. 물론 병의 영향 때문이긴 했지만 마치 얼음덩어리가 녹으면 모서리 전체가 떨어져 나가듯 얼굴 윤곽 전체가 사라진, 상당히 변한 모습이었다.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그가 얼마나 변했는지 나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 P169

적어도 어머니에 대한 감정과 알베르틴에 대한 감정이라는 이 두 요소는, 그날 저녁과 그 후에도 오랫동안 서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미 이날 전화에서 들은 마지막 말로부터 나는 알베르틴의 삶이 내게서 먼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물론 물리적 거리는 아니지만) 내가 그 삶을 손안에 넣으려고 할 때마다 언제나 힘든 탐색을 해야 하며, 더 나아가 그 삶은 야전 요새처럼, 또 보다 안전을 기하기 위해 우리가 나중에 관습적으로 ‘위장된 요새‘라고 부르게 된 그런 종류의 것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 P240

사랑하는 이가 죽으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될까 두려워 망자의 실제 모습만을 찬미하며, 당시 이미 우리의 모습이었으나 다른 것에 섞여 있던 모습을 배제하고, 오로지 망자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을 물려받으려 한다. 이런 의미에서(우리가 보통 듣는 그렇게 모호하고 거짓 의미에서가 아니라) 죽음은 헛되지 않으며, 망자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망자는 산자보다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그 이유는 진정한 실재란 정신작용의 대상이기 때문에 정신을 통해서만 표출되며, 우리는 나날의 삶이 감추는 것을 사유에 의해 재창조할 때에야 진정으로 그것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망자에 대한 이런 그리움의 의식에서, 우리는 망자가 생전에 좋아했던 것을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싶어 한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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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8-16 0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7권 보셨군요 7권을 보기 전에 시할머님이 돌아가셔서 책을 볼 때는 시할머님 생각이 더 났겠습니다 자신이든 상대든 살았을 때 잘해야 할 텐데... 그렇게 생각해도 잘 안 되기도 하는 거네요


희선

2023-08-16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목련 2023-08-16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 님, 연휴에 진짜 책 많이 읽으신 듯^^

거리의화가 2023-08-16 16:34   좋아요 0 | URL
책도 보고 드라마도 보고 바람도 종종 쏘이고 그랬답니다.

그레이스 2023-08-18 0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8권까지 이르니 이 책을 내가 왜 읽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정말 잘 쓴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정말 아이러니 하죠.
이왕 늦은김에 나중에 1권부터 몰아서 쓰렵니다. ㅎㅎ

거리의화가 2023-08-18 09:55   좋아요 1 | URL
저도 생각은 비슷한데(글 잘쓴다는 부분은 특히!) 그레이스님은 프루스트가 심어놓은 곳곳의 은유들을 찾아내실 정도로 제반 지식이 있으셔서 더 잘 읽어내시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몰아서 쓰는 리뷰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ㅎㅎㅎ 저도 어서 줄거리 안 까먹으려면 8권 읽어야겠습니다.
 
일본산고 -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박경리 유고 산문 박경리 산문선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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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역사일 뿐 현재와 무관하다는 인식에 대한 철저한 경계. 삶은 고뇌이지만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하는 자세. 문명을 우상화하고 자각 없는 개발에 대한 무자비한 비판. 토지를 읽은 후 이 책을 읽는다면 더 도움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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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와 역사의 정치 딕테 시리즈 3
조앤 스콧 지음, 정지영 외 옮김 / 후마니타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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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에 대한, 역사적으로 특수한 지식으로 상대화된 젠더 개념을 통해 페미니스트들은 여성과 성차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는 동시에, 역사학을 비롯한 다른 분과 학문의 정치에 비판적으로 도전하는 방법을 제공해 줄 양날의 분석 도구를 벼릴 수 있다. 그래야만 페미니즘 역사학은 단지 과거의 불완전한 기록을 바로잡거나 보충하는 시도가 아니라 역사가 어떻게 젠더에 관한 지식을 생산하는 장소로 기능하는지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 P37

"젠더"와 "역사", "정치"는 내가 모두 관심을 가지는 개념이자 용어이다. "역사"는 관심을 둔 지 꽤나 오래 되었고, "정치"는 현실 정치가 너무 답답하여 욕을 하면서도 그 끈을 놓을 수 없어 억지로 붙잡고 있는 느낌이고, "젠더"는 최근 들어 공부해보고 싶어진 용어라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가 과연 현실에서 조화될 수 있는 개념인지 솔직히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젠더 개념을 역사학을 비롯한 다른 학문 지식을 이용하여 비판적인 도구로 사용해보자 주장한다.
초반에 서문과 서론이 어렵다는 느낌이어서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을 했다. 그러나 인용한 사건이나 인물들이 생소해서 그렇지 친절한 설명에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젠더와 "정치"는 서로 대립되는 개념도 아니고, 여성 주체의 회복과 대립하는 것도 아니다. 젠더와 정치를 넓은 의미로 정의할 경우, 공과 사의 구별은 해소될 것이고, 여성의 경험에는 그것만이 가진 개별적이고 독특한 특질이 있다는 식의 주장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거와 현재 남성과 여성으로 고착된 이분법이 과연 명확한 것인지 이의를 제기하며, 남녀 이분법에 따라 서술된 역사 그 자체의 정치적 성격을 폭로할 수 있다. - P61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핵심인 파트가 젠더 개념을 설명하는 부분일 것이다. 나는 젠더를 '생물학적인 성sex'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성'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여러 페이지를 할애하여 설명해주고 있다. 성별 간 차이로 인식되는 것에 의해 사회관계들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네 가지 요소가 있다는 것이 눈에 띈다. 첫 번째는 상징(서구 기독교에서 여성을 상징하는 이브 등...). 두 번째는 상징이 가진 의미에 대한 해석에 따른 규범적 개념(범위, 한계를 설정하거나 억제하는 역할. 서구 빅토리아시대의 가정 이데올로기 같은 것). 세 번째는 정치 개념과 사회제도 및 조직에 대한 고려(젠더는 친족 관계만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경제, 정치의 영향 속에서도 구축됨). 네 번째는 정체성(개인적 면만 아니라 집단에 대한 논의까지. 시기에 따라 개개인의 문화적 경험은 달라지는 것, 집단으로도 확장할 수 있음). 난해한 개념들이라 직독직해가 안 될 수는 있지만 기존에 알고 있던 젠더라는 개념을 더 폭넓게 확장하여 정리해보는 데 의의를 두었다. 이 모든 요소가 연관되어 영향을 주지만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젠더에 대한 나의 정의는 두 가지 부분과 각각의 부분집합들로 이루어진다. 그것들은 서로 연관돼 있지만 분석적으로 구별돼야 한다. 핵심은 다음 두 명제가 뗄 수 없이 연관돼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명제] 젠더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성차에 기반한 사회관계들의 구성 요소다. [두 번째 명제] 젠더란 권력관계를 의미화하는 주된 방식이다. (...) 성별 간 차이로 인식되는 것들에 입각해 사회관계들을 구성하는 젠더는 네 개의 상호 연관된 요소들을 포함한다. 첫 번째는 복합적인(흔히 모순적인) 재현들을 떠올리게 하는 문화적으로 유효한 상징들이다. (...) 두 번째는, 규범적 개념들이다. 이는 상징들이 가진 의미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는, 다시 말해 그 은유적 가능성들에 한계를 설정하거나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새로운 역사 연구의 핵심은 불변성과 영속성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억압의 본질을 밝혀내는 데 정치 개념과 사회제도 및 조직에 대한 고려를 포함해야만 한다. 그것이 젠더 관계의 세 번째 측면이다. (...) 젠더의 네 번째 측면은 주관적 정체성이다. (...) 역사 연구가 제기해야 하는 질문은 이 네 가지 측면들 사이의 관계가 어떤 것이냐 하는 점이다. - P88~92

역사학에서 여성은 오랜동안 주변화되어 있었고 배제되어 있었다. 2부와 3부에서는 젠더와 계급의 연관성과 역사 속에서 젠더가 어떤 모습으로 묘사되었는지 확인하고 향후 여성의 이야기는 어떤 방식으로 써야 효과적인지 확인해볼 수 있다.

계급 개념의 구축에 여성적인 것이 어떻게 이용되었는지를 검토하지 않은 채 노동계급 여성에 대해 쓴다는 게 가능할까? 여성들의 문화가 여성들을 어떻게 재현하고, 여성들이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묻지 않은 채, 여성에 대한 글쓰기가 가능한가? 이런 문화적 재현과 자기 정의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가정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그 연관성을 읽어낼 수 있을까? 계급의 의미-그 용어나 정치적 기획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상징적 조직화나 언어적 재현의 역사-를 질문하지 않고서 계급에 대해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 P168
여성 노동자의 주변화는 역사적으로 생산된 효과이며 그 자체가 비판적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여성 노동자가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주변적 존재였다고 여기는 역사가들은 19세기의 담론적 조건을 무비판적으로 영속화하면서 그 작동을 분석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 - P286

1부와 더불어 인상적이었던 파트는 4부 내용이었다. '평등과 차이'라는 제목만으로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는데 내용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즘 안에서도 평등에 주목하는 입장이 있는 반면 차이에 주목하는 입장이 있다. 우리 나라도 차별금지법 문제로 시끄러운 것처럼 개인의 권리가 중요하냐 집단 정체성이 더 중요하냐라는 논쟁은 극단성을 띠게 마련이다. 집단을 선택할 것이냐 개인을 선택할 것이냐는 문제는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얼마 전 어느 영화에서 우리가 익숙했던 백인 여성 캐릭터를 쓰지 않고 흑인 여성 캐릭터를 써서 논란이 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이렇게 따지면 특정 범주로 사람을 묶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는 비단 인종 뿐 아니라 계급, 젠더로 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최근 미국에서는 백인 남성이 중요 집단으로 다시 가시화되면서 인종 차별이 발생하고 있고 한국도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역차별을 운운하며 백래시가 가시화되고 있다.

페미니즘의 역사와 정치 전략은 차이의 작동 방식에 주목하면서도 차이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이분법적 차이를 다분법적 차이들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 (...) 대신 비판적 페미니즘 관점은 항상 두 가지 행동을 포함해야 한다. 첫째는, 범주를 통해 설정된 차이들의 작동에 대한 체계적 비판, 그것이 만들어 내는 배제와 포함의 유형들-그 위계-의 폭로, 그리고 그 궁극적인 "진실성"에 대한 거부이다. 그렇지만 이런 거부가 동일성 혹은 유사성을 내포하는 평등이라는 명목 아래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것이 두 번째 움직임인데) 차이들에 근거한 평등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여기서 차이들이라는 것은 모든 고정된 이분법적인 대립항의 의미를 혼란스럽게 하고, 방해하고, 모호하게 만드는 것들을 말한다. - P306

저자는 개인과 집단, 평등과 차이는 필연적으로 긴장 관계에 있는 상호 의존적 개념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차별은 차별에 대한 항의로 정치화하고, 개인의 정체성은 집합적 정체성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그리고 그것에 맞서면서 명확해진다고. 결코 쉬운 길은 아니다. 

오늘날 최고의 정치적 해결책은 (집단이든, 개인이든, 평등이든 차이든) 최종적이고 총체적인 해결책을 주장하는 것의 위험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내가 설명해 온 역설들이야말로 물질적인 것임을 말하고 있다. 바로 그 물질적인 것을 통해 정치가 구성되고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 P371

<행복의 약속>도 잘 읽었었는데 후마니타스 딕테 시리즈 중 한 권인 이 책도 역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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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식민화와 기독교화

캘리번과 마녀는 식민화에 저항하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상징하는 템페스트』의 등장인물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정이란 신세계 주민들의 종속과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에일어났던 유럽 민중들, 특히 여성들의 종속 간에는 연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토지에서 지역공동체 전체를 강제로 몰아냈고, 빈곤이 엄청나게 확산되었으며, 민중들의 자율성과 공동체적 관계를 파괴하는 "기독교화"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또한 구세계에서 발달된 억압의 형태들이 신세계로 이전된 뒤 다시 유럽으로 재도입되는 꾸준한 교차수정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양자의 차이를 과소평가해서도 안 될 것이다. 18세기에 이르러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금과 은을 비롯한 여러 자원들이 유입되자, 국제분업이 일어나 새로운 글로벌 프롤레타리아트들을 상이한 계급관계와 규율체제로 분할했다. 이는 노동계급 내에서도 종종 갈등을일으키는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인들과아메리카인들이 겪어야 했던 유사한 처우는 자본주의의 발달을 지배하는 단일한 논리의 존재와 이 과정에서 자행되는 만행의 구조적 성격을충분히 보여 준다. 마녀사냥이 아메리카의 식민지로 확산된 것은 이와관련된 중요한 사례다. - P311

16세기와 17세기, 심지어는 18세기에마저 인간의 피(특히 비명횡사한 사람들의 피)는 여러 가지 액체에 인간의 살을 담가서 추출해낸 미라수mummy water의 형태로 많은 유럽국가에서 간질을 비롯한 여러 질병을 치료하는 데 흔하게 사용되었다.
게다가 "살, 피, 심장, 두개골, 골수 등 여러 신체 부위들과 관련된 이런식인풍습은 "사회 주변 집단에 국한되지 않고 가장 존경받는 집단 내에서도 시행되었다"(Gordon~Grube 1988: 406~407).7 따라서 스페인인들이 1550년대 이후 원주민들에 대해 느꼈던 새로운 공포는 단순히 문화적 충격에서 기인했다고 보기가 힘들다. 이는 오히려 노예로 만들려는 사람들에게서 인격을 박탈하고 이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어야만했던 식민화의 논리 속에 내재한 반응으로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 P317

스팔딩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우상숭배 캠페인은 본보기형 처벌이었다. 중세 유럽의 공개적인 교수형처럼 참가자들만이 아니라 청중들을 대상으로 교훈적인 공연을 펼치기 위한것이었다(같은 책 : 265).
이들의 목적은 사람들을 위협하고 "죽음의 공간"16을 만들어 내는것이었다. 이로써 잠재적인 반란자들이 공포에 마비되어 공개적으로구타당하고 모욕당한 사람들이 겪었던 것과 같은 시련에 맞서려 하기보다는 무엇이든 수용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도록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 지점에 있어서 스페인인들은 부분적으로 승리했다. 고문과 익명의비난, 공개적인 굴욕 앞에서 많은 유대와 우정이 산산이 부서졌다. 자신들의 신이 힘을 가졌다는 신념이 약해졌고, [지방신에 대한] 숭배는 정복되기 전처럼 집합적인 형식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은밀한 개인적 행위로 변해갔다. - P327

스페인인들이 도착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이들은 여성혐오적 신념을 주입하여 남성들에게 우호적인 방식으로 경제 및 정치권력을 재조직했기 때문이다. 전통 족장들이 권력을 지키기 위해 공동체토지를 인수하고, 공동체의 여성구성원들이 토지와 물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기 시작하면서 여성들은 이로 인한 고통 역시 감내해야 했다.
따라서 식민지 경제 내에서 여성들은 (엔코멘데로스, 성직자, 식민지대리인들을 위해) 하녀로 일하거나 공작소의 직조공으로 전락했다. 여성들은 남편들이 광산에서 강제노역]미따 일을 할 때(사람들은 이 일죽음만도 못한 일이라고 여겼다) 이들을 따라가야 하기도 했다. - P329

유럽인들의 환상 속에서 아메리카 그 자체는다가오는 낯선 백인을 유혹하며 비스듬히 누워있는 나신의 여성이었다. 때로 "인디언" 남성들 스스로가 경제적 보상이나 공적인 지위를 얻기 위해 여성 친족들을 사제나 식민자들에게 바치기도 했다. - P330

이런 기록들을 살펴보았을 때 라틴아메리카 혁명군들이 캘리번의어머니인 마녀 시코락스가 아니라 캘리번을 식민화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캘리번은 주인에게서 배운 언어로 주인을 저주하는 방식으로만 주인에게 맞설 수 있다는 점에서, 반란에 있어서는 "주인의 수단에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캘리번은 속임수에 넘어가서 자신의 해방이 강간을 통해 이루어질 수도있고, 자신이 신으로 숭배하는 신세계의 일부 기회주의적 백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주도로 성취될 수 있다고 믿게 될 가능성이 있다. 대신 "달을 통제하고, 조수간만의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마녀 시코락스(『템페스트』, 5막 1장)라면 아들에게 대지, 물, 나무, "자연의 금고" 같은 지역적인 힘과 공동체적 유대의 진가를 평가할 수 있도록 가르쳤으리라. 고난의 수 세기를 거치면서도 공동체적 유대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해방투쟁에 자양분을 공급해 왔고, 이미 어떤 약속의형태로 캘리번의 상상을 사로잡았다. - P334

노예제가 폐지된 상황에서도 부르주아의 레파토리에서는 마녀사냥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식민화와 기독교화를 통한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확장으로 인해 식민화된 사회의 신체에 확실히 이식되어 피식민 공동체 스스로 자신들의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박해를 실행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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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8-13 1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을 읽고 있는데요. 이 책이 자꾸 언급되니 읽어야 하나 막 생각이 드는..... 하지만 어려운 책 이제 안 읽고 싶어 이러면서 보관함에만 넣어두고 마는데 이렇게 열심히 읽으시는 화가님 보면서 반성합니다.

거리의화가 2023-08-13 17:42   좋아요 2 | URL
앞서 그 책을 읽고 나니 이 책을 안 읽을 수가 없었어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사실 정리하기 쉽지 않은 책이라 리뷰는 못 쓸 것 같지만 읽고 나니 잘 읽었다 싶습니다. 기회가 되면 읽어보시길 추천드려요^^
 

4장 유럽의 대마녀사냥

마법을 사형으로 처벌하기로 한 것은 찰스 5세가 1532년 제정한제국법규 <캐롤라이나> Carolina였다. 청교도 잉글랜드에서는 1542년과1563년, 그리고 1604년에 통과된 세 개의 의회법안을 통해 마녀박해가성문화되었는데, 이중 마지막 법안은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위해가 없더라도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1550년 이후에는 스코틀랜드, 스위스, - P242

프랑스, 스페인령 네덜란드에서도 마녀의 사술을 중대 범죄로 규정하고 국민들에게 마녀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규탄하도록 조장하는 법규와조례가 통과되었다. 이후 몇 년간 사형대상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마녀의 사술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해가 아니라 사술 그 자체를 중대 범죄로 규정하는 법규정들이 재차 만들어졌다. - P243

마녀사냥은 인구집단 내에 집단적인 정신질환을 유발하기 위해 멀티미디어 선동을 활용한 유럽 최초의 박해이기도 했다. 인쇄매체가 최초로 한 일은 마녀들의 세세한 악행과 가장 유명세를 탄 재판을 홍보하는 소책자를 통해 마녀로 인한 위험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Mandrou 1968 : 136). 이를 위해 예술가들을 모집했는데, 이중에 독일인 발둥Hans Baldung은 가장 지독한 마녀인물화를 많이 그렸다. 하지만 박해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법학자. 치안판사 · 악마연구자들이었는데, 이들은 종종 한 인물처럼 행동하곤 했다. 이들은 [마녀박해를 지지하는 주장을 체계화하고 비판에 답했으며, 법적인 장치를 완벽하게갖춰 놓음으로써 16세기 말엽에는 표준화된, 거의 관료적인 수준의 마녀재판 형식을 마련했다. 이는 국가 간에 자백의 형식이 유사한 이유를설명해 준다. 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업무 중에 철학자나 과학자 같은 당대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의 협력을 구할수 있었다. - P245

마녀사냥은 여성에 대한 전쟁이었다. 이는 여성을 비하하고악마화하며 이들의 사회적 권력을 파괴하기 위한 집단적인 시도였다.
동시에 고문실에서, 그리고 마녀들이 죽어가던 화형대에서 여성성과가정에 대한 부르주아적 이상이 구축되었다.
여기에서도 마녀사냥은 당대의 사회적 흐름을 증폭시켰다. 실제로마녀사냥이 표적으로 삼았던 관습과 같은 시기 가족생활과 젠더, 소유관계를 규제하기 위해 도입된 새로운 입법이 금했던 행위들 간에는 틀림없는 연속성이 있다. 서유럽 전역에서 마녀사냥이 진행되는 동안 간통을 저지른 여성을 사형에 처하는 법률이 통과되었다(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는 대역죄인과 마찬가지로 화형에 처했다). 동시에 매춘과 혼외 출산이 불법화되었고, 영아살해는 중대범죄가 되었다. 33 동시에 여성의 우정은 의심의 대상이 되었고, 부부간의 동맹을 전복할 수있다며 교단의 비판을 받았다. 이는 마녀박해자들이, 여성들이 서로를범죄의 공범으로 비난하게 만들어서 여성간의 관계가 악마화된 것과견주어볼 만하다. 또한 중세에는 "[여성]친구"를 의미했던 "가십"이라는단어의 의미가 바뀌어 경멸적인 함의를 갖게 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이는 여성의 권력과 공동체적 유대가 얼마나 침해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또 다른 사례이기도 하다. - P275

마녀사냥은 악마와마녀 간의 권력관계를뒤집어 놓았다. 이제는여성이 하수인이자 노예이며 신체와 마음이모두 악령인 존재이고, 악마는 이런 여성의 소유주이자 주인이며, 뚜쟁이인 동시에 남편으로 기능한다. 예를 들어 "의도했던 마녀에게 다가가는 것은 악마이고, "여성이 먼저 악마를 불러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Larner 1983 : 148). 악마는 마녀에게 몸을 드러낸 뒤 자신의 하수인이 되라고 요구하고, 그 뒤에는 전형적인 주인과 노예, 남편과 아내관계가 뒤따른다. 게다가 결혼생활에서 여성들이 짊어지고 갈 운명을정확하게 예시라도 하듯 마녀는 단 한 명의 악마를 맞아들인다. 하지만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에는 둘 이상의 악마를 맞아들이는 것이 가능했다. 또한 중세시대 지중해와 게르만 지역의 여성들 사이에서는 (헤라다이아나의 시장의 숙녀> la Signora del zogo처럼) 여성의 모습을 한악마를 추종하는 집단이 창궐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마녀사냥 시기 악마는 남성으로 그려졌다. - P277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모든 악의 근원이라며 비난했던 마녀사냥은,
새로운 자본주의적 노동규율에 순응하여 가족 내에서의 재산상속과 출산을 위협하거나, 노동에 들어갈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낭비하게만드는 모든 성적 활동을 범죄화하는 광범위한 성생활의 재구조화를위한 주요 수단이기도 했다. - P288

유럽 여성들의 운명과 아메리카 인디언 및 아프리카인들의 운명은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상호적인 영향을 미쳤다. 마녀사냥과 우상숭배라는 비난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지역 주민들의저항을 궤멸시키고 세계인들 앞에서 식민화와 노예무역을 정당화했다.
파리네토에 따르면 유럽당국들은 아메리카에서의 경험을 통해 마녀의존재에 대한 믿음의 발판을 마련하고 아메리카에서 발달한 것과 동일한 대량살상 기술을 유럽에도 적용시키게 되었다(Parinetto 1998). - P294

합리주의와 기계론은 세상이 자연의 착취에 열을 올리게만드는 데 기여하긴 했지만 마녀박해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다. 마녀사냥을 선동할 때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중세 말에 이르러 자신들의 정치경제적 권력을 위협하던 존재양식 전반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느끼게 된 유럽 엘리트들의 필요였다. 이 과업이 완수된 시점에, 다시말해서 사회적 규율이 복원되고 지배계급이 자신의 헤게모니가 확립되었다고 느끼는 시점에서 마녀사냥이 중단된 것이다. 그 때부터는 마법에 대한 믿음이 조롱의 대상이 되어 미신으로 매도당하면서 기억에서사라져 가게 되었다.
17세기 말부터 유럽 전역에서 이 과정이 시작되었다. 단, 스코틀랜드에서는 30년 정도 더 오래 마녀사냥이 지속되었다. 마녀사냥의 중단 - P304

에 기여한 요인 중에는, 지배계급이 스스로 자신들이 동원한 억압기제의 불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배계급의 일원을 비난의 대상으로 삼게 되면서 마녀사냥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있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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