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플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읽고 있는 책들이 있다. 


이 책은 '한국문학을 권하다'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이태준의 중단편소설 모음집이다. 중단편이라 잠깐 짬이 났을 때 읽기에도 부담이 없어서 읽고 있다. 오랜만에 이태준의 소설을 읽지만 역시 좋은데 그시절 인텔리의 삶이 아니라 소시민들의 일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문장들이 섬세하고 아름다운데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비애와 슬픔이 어린 아름다움이라 더 값지다. 예를 들어 「그림자」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고요한 달 아래 고요한 밤길이다.

그러나 이렇게 고요하고 아름다운 달밤에 나뭇잎들의 가지에서 흩어지는 슬픔도 있다. 이것을 자지 않고 길 위에서 굴리고 있는 심술궃은 바람도 있다.

어느 날 어느 곳에서 그가 나의 옷깃을 스치며 지나간들 내가 무엇으로 그의 걸음을 막을 수 있으랴.

모두가 한낱 그림자로다.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스스로의 인생이 온통 그림자로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겠지만(이것은 사회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인생의 특정 시기를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되어 살아가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을 것 같다.



또 김초엽의 신간 소설을 읽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SF 장르임에도 허상처럼 느껴지지 않고 계급과 환경, 차별 등의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금속 피부를 이식하는 사람의 이야기라던지 여러 개의 자아를 현실화한 이야기 등등.

인간과 지구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도 돋보인다. 

이제 반 정도 읽은 것 같은데 역시 김초엽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하면서 그의 이야기는 현실 SF 문학이라고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2.

3개월 반만에 인바디를 측정했다. 보통 6개월 정도 지나서 잰다고 하던데 지금 내가 운동을 잘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져서 재보았다. 근력이 조금은 늘었을 거라고 예측했으나 예상 수치보다 더 많이 나와서 놀랐다. 근력이 연령대 기준 표준 이하 범위였기 때문에 사실 운동하면서 표준 범위에만 들어와도 좋겠다 생각했다. 이번에 근소하기는 하지만 표준 범위에 들어왔다.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체중을 늘리지 않으면 안 되었었다. 체지방이 살짝 늘기는 했으나 골격근량이 1kg 늘고 기초대사량도 늘었으니 근력 운동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 같다. 

어제는 하체 운동을 했다. 마지막에 정리 운동을 하면서 플랭크를 하는데 마지막 세트에서 30초를 못 버틴 것이 아쉬웠다. 마무리로 런닝머신에서 15분을 걷고 나왔는데 살짝 힘들기는 했지만 버틸만했다. 한달 전 하체 운동하고 나서 집에 갈 때 다리가 후들거렸던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3.

다음주 여행을 앞두고 있다. 앞선 추석 연휴가 길었지만 그때는 내가 가고 싶어하는 곳은 어딜 가나 인산인해일 것이라 예약을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막상 2주도 안 되서 휴가 내고 여행을 가려니 살짝 민망하다. 다행히 큰 일이 없어서 일 때문에 못 가는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 휴가 내는게 눈치보여서 그렇지^^; 하지만 연차가 아직 10일 가까이 남아 있기 때문에 쓰는 데는 문제가 없다. 11월에는 옆지기와 함께 갈 여행도 계획되어 있어서 하반기는 여행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한다.

이번에 여행을 준비해보니 10년 만에 가는 거라 그런지 너무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무계획으로 가볼까 싶었으나 그러기에는 성격상 불안하여 지난주부터 준비한다고 하는데 뭐가 이리 할 게 많은 것 같은지. 핸드폰 데이터 안 되면 결제조차 막히고 구글 지도도 안 통하는 곳이라 걱정이 크다. 더군다나 혼자 가는 여행으로는 근 13~4년 만이다(정작 옆지기는 별 걱정 안하는 것 같음). 불안해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해보려 노력중이다. 


내내 비만 내리고 우중충했었기에 어제, 그제 반짝 내비치는 해가 참 좋았다. 걷고 운동하기에 참 좋은 계절이 되었는데 볕 쏘이고 일상을 충분히 즐기며 매일을 보내시길 바란다.




++ 추가) 페이퍼 쓰기 전 이 이야기를 제일 먼저 한다는 걸 다른 이야기 때문에 정작 빼먹었다.


아침에 신문을 읽다가 반가운 인물의 이야기를 접했다. 어릴 적 한때나마 꾸었던 직업인의 최신 소식이었던 것. 여전히 멋진 삶을 살고 계신 듯하여 참 좋았다(과거 좋아했던 사람이 나중에 보니 망가져있다던지 그러면 솔직히 기분이 좀 그렇지 않나). 

그때는 무슨 자신감으로 그 직업을 꿈꾸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일이었는데... 그때는 무얼 모를때니 직업인의 진짜 세계에 대해서 생각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꿈꾼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래도 그분을 좋아해서 직접 쓴 책도 사서 읽어보고 했던 기억이 새록하다. 누군가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생각한다. 그게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나이가 들면서 더 느끼게 된다. 부디 오래도록 건강하고 멋진 삶을 살아가시길 소망했다. 물론 나도 그러려고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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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0-17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연차가 10일이나 남았어요! 부러워요. ㅋㅋㅋ 전 이제 딸랑 3일 남았습니다.. -_-
그리고 십몇 년 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도 설렐 거 같아요. 어디로 가시는지는 지켜보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5-10-17 11:39   좋아요 0 | URL
ㅎㅎㅎ 10일 딱 하루 모자른 9일 남았더라구요^^ 상반기에 안 쓰고 아껴놓았죠ㅋㅋ
십수년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 설렘 반, 불안 반입니다. 그치만 어떻게든 되겠죠. 가볍게 가고 싶어서 노트북은 안 가져가지 않을까 싶어요. 가져간다고 해도 체력상 매일 글쓸 것 같지도 않아서!ㅎㅎ 후기는 나중에라도 남겨보겠습니다.

책읽는나무 2025-10-17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력도 늘었고 혼자 여행도 앞두고 계시고…왠지 좋은 일이 많이 생기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겁쟁이라 혼자 어행은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네요. 그래서 혼자 여행하시는 분들 참 존경스럽고 좀 부럽기도 합니다.
조심해서 잘 다녀오세요.
저도 매의 눈으로 잘 지켜보겠습니다.ㅋㅋ

거리의화가 2025-10-17 12:06   좋아요 1 | URL
근력은 정말 살기 위해 키워야했어요. 컴퓨터 앞에서 거북목에 어깨, 허리 다 안 좋아진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제 슬슬 폐경도 생각해야 하니까 골다공증도 우려되다보니!ㅎㅎ
저도 겁 무척 많습니다(번지점프 아직 한 번도 안 해본 일인). 근데 여행에서의 경험은 책에서 받는 경험과 감동과는 다른 직접적인 체험이라 와 닿더라구요. 정말 오래간만에 혼자 가는 거라 많이 긴장됩니다. 그래도 잘 되겠죠뭐ㅎㅎ

페넬로페 2025-10-17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여전히, 꾸준히 열심히 책 읽으시는 모습에 감명받습니다.
혼자서 여행도 가시고.
넘 부러워요.
저는 혼자서는 엄두가 안 나요.
사랑이 아니라 길 찾기 용도로도
꼭 남편을 대동하거든요.
늘어난 근력과 함께
혼자만의 여행
안전하고 건강하게 잘 다녀오세요.
목적지가 궁금합니다.

거리의화가 2025-10-17 12:11   좋아요 0 | URL
여행도 체력이 될 때 해야하잖아요. 가면 갈수록 체력도 한계가 있다보니 지금 미루면 나중에는 더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도 쫄보라 여행하면서 무서운 적 많은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사람들에게 묻게 되더라구요(길치에 방향치라). 다행히 지금까지 여행지에서 경험한 사람들이 대부분 친절하고 좋았었어요. 무사히 여행 잘 하고 오겠습니다. 여행지에서, 또는 다녀와서 후기로 인사드릴게요.

다락방 2025-10-17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이 혼자 여행을 가신다면, 그곳은 중국의 어디쯤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근력 늘었으니 충분히 여행도 잘 즐기실 수 있으실것 같네요. 여행 가서도 글 올려주셨으면 좋겠는데, 생각해보니 글을 올릴 수 있는 환경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소식 또 전해주세요!

거리의화가 2025-10-17 14:15   좋아요 0 | URL
앗 역시 다락방 님 단 번에 맞추시는!
데이터용 이심을 가져가긴 하는데 이게 제발 문제가 없어야만 하는. 데이터만 문제가 없다면 글은 올릴 수 있으나 그곳은 항시적으로 짐 검사를 하기 때문에 번거로워서 노트북은 안 가져갈 것 같아요ㅠㅠ 어쨌든 소식 전하겠습니다^^

독서괭 2025-10-18 12:48   좋아요 0 | URL
오오 화가님 그동안 갈고닦은 중국어 실력 발휘하고 오시는 건가요!!

거리의화가 2025-10-19 17:29   좋아요 1 | URL
괭 님 읽는 것은 그래도 좀 시간이 주어지면 어떻게든 하지만 말은 또 별개의 영역이더군요. 가면 긴장되서 쉬운 단어도 생각이 안 날 것 같아요-_-;(작년에 대만 갔을 때를 떠올리면) 그래도 최대한 파파고에 의지하지 않고 여행해보려구요^^;;; 그래도 이번엔 중국 가서 꼭 서점 가서 책은 사올겁니다!ㅎㅎㅎ

단발머리 2025-10-17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가시는 여행이시라니 부럽습니다!! 이번 여행 후에 멋진 사진이랑 후기를 자세히, 길게길게~~ 써주세요!
여행 소식도 부러운데 근력을 위해 체중을 늘려야 했다~~ 이 부분도 부러워요. 이 메카니즘을 잘 모르는 저라서요. 체중을 늘려야 한다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신나는 일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5-10-18 13:40   좋아요 1 | URL
혼자 하는 여행이 사진 찍을 때 불편한 거 빼곤 다 좋아요. 누구 기호에 맞출 필요도 없고 내 컨디션에 따라 다닐 수 있으니까요.
15년 넘게 체중 변화가 없는 사람이어서 살 찌우는데 좀 애먹었어요. 원래 밥을 많이 못 먹는데 평소보다 더 양을 늘리고 주식 중간에 단백질 관련 음식을 계속 먹어줬네요. 체중이 늘지 않으면 원래 있는 체중에서 근력량을 늘리기가 거의 힘들다고 해요. 그래서 체중을 늘리는거라고!ㅎㅎ

희선 2025-10-18 0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한 효과가 나타났군요 처음보다 많이 좋아져서 기분 좋으실 듯합니다 앞으로도 근력을 키워가시기 바랍니다 운동을 하면 버릇이 들어서 안 하면 뭔가 빼먹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겠네요

혼자 어딘가에 가시는군요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오시면 좋겠네요 안전하게 잘 다녀오시기를 바랍니다 아직이지만, 그때가 다가오면...

거리의화가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5-10-18 13:42   좋아요 1 | URL
네. 3개월여만에 1킬로그램 찌는 게 쉽지 않다고 하는데 어쨌든 운동효과가 있어서 참 다행이죠. 점점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라는 생각을 몸이 체득하는 중인 것 같습니다. 여행 다니는 중이나 다녀와서 찾아뵐게요.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오는… 남은 주말 편안하게 보내시길^^

독서괭 2025-10-18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꾸준히 운동하신 보람이 있겠어요! 저도 요즘 운동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인바디 궁금하네요. 좀 좋아졌으려나.
혼자만의 여행 부럽습니다! 충분히 즐기고 오시면 좋겠어요^^

거리의화가 2025-10-18 13:45   좋아요 1 | URL
괭 님도 열운동 중이시군요^^ 운동을 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도움이 되어서 독서할 때도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열심히 하셨으니 인바디 좋아지셨을겁니다.
즐겁게 여행하고 돌아올게요^^*
 

1.
1932년과는 달리 지금은 매순간 이윤을 내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물론 그때도 그렇기는 했지만 적어도 사회의 혁신을 위해 선택지를 고민해보기는 했던 것 같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사실상 독점 폐해 자본주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말처럼 전세계적으로 부익부빈익빈은 심각하다.
부국과 빈국의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누구는 넘쳐나는 자본을 다 쓰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더 얻기 위해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한다.
한 나라 안에서도 자본에 따른 계급이 만들어져 위계적 불평등이 생기는 것이 심화되었다.
무엇이 문제고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는 알겠는데 사실상 인간의 욕심과 자본주의의 극대화를 막아내지 않는다면 이것에 최선책을 찾을 수 있을까.

2.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기란 쉬운 일이다.
책에 나온 내용을 믿고 그대로 따르기도 생각보다 쉽다.
뉴스, 기사, 칼럼 등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는 경우도 많다.
맹신하는 것은 쉬우나 그렇게 대부분의 정보를 얻는다면 굳이 나를 스쳐가는 정보인데 그것을 보고 읽고 들을 필요가 있을까.
뇌를 거치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자세를 저자는 적나라하게 비판한다.
나조차도 어떤 정보든 따져 물으며 확인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내가 볼 때 분명한 사실은, 경제라는 기계를 다시 정상가동시키려면 더 이상 작동하는 매순간 이윤을 내라고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서부와 캐나다에서는 음식이썩어나는데 전 세계 모든 산업 지역에서는 실업자들이 굶주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음식을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가져다준다면, 그리고 그들이 서구 농부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울 수있는 작업에 배치된다면, 개별 자본가는 이윤을 내지 못하더라도 세계는 좀 더 부유해질 것이다. 개인적 이윤이란 동기는고장 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공공 부문의 조직화된 노력만이 세계의 경제 상황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1932.1.27) - P108

현대인은 대부분 사안에서 결코 성가시게 자기의견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전문적인 연구나 경험을 통해 권위를 갖추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맡기는 편이 안전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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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에도 회사 전체적으로 쉬는 바람에 어쩌다 10일 연휴를 쉬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피곤함은 가시지 않은 거지?^^; 


제목처럼 연휴 동안 맑은 휴일 찾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흐리고 비오고 맑은 하늘을 찾기가 이리 어렵다니... 기상청 예보 믿고 나갔다가 비가 오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아무튼 수요일인가 맑은 하늘을 딱 한 번 내보인 적이 있었는데 볕이 뜨겁기는 했지만 그것이 참으로 반갑게 느껴졌다. 





그 이튿날은 또 흐려서 비가 올락말락이었는데 더 있으면 또 비가 올 것 같아 모처럼 옆지기를 끌어냈다. 

산책을 하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막걸리를 먹자고 했는데 막상 보이는 것은 맥주 호프집 아니면 고깃집 밖에 없었다(고기는 그날 따라 안 끌려서). 

결국 선택한 집은 맥주 호프집. 안주는 국물 있는 돈까스 김치 나베로 시켜주고...(왠지 모자를 것 같아 소세지 튀김류도)



한동안 외식을 안하다가 함께 했는데 그 시간이 꽤나 즐거웠다. 맥주 위에 올려진 것은 샤베트인데 역시 딱히 내 기호는 아니었지만...

안주들도 괜찮았고 나누는 대화도 즐거웠다. 집에 있으면 서로 핸드폰 보거나 각자 할 일 하기 바쁘니 점점 대화를 하는 시간이 주니 말이다.


연휴 동안은 3권의 책을 읽었다. 대서양시대를 배경으로 한 동남아시아, 아메리카, 유럽 그리고 18세기의 인도에 대한 이야기까지. 대부분 굵직한 책들이어서 연휴가 아니면 사실 읽는데 꽤나 오래 걸릴 책들이었다. 

남은 10월은 여행 계획도 있고 아무래도 읽기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필라테스 운동은 다행히 계속 진행중이다. 선생님이 칭찬에 후하셔서 매번 나의 의지를 북돋운다. "예전에 안 되던 자세였는데 이젠 너무 자연스럽게 되네요." "잘하고 있어요." 등등... 선생님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매번 느낀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칭찬에 사람은 약할 수밖에 없다. 질책하는 것보다는 칭찬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그나저나 내일이 출근이라니...!!! 긴 연휴가 끝났으니 이제 다시 일에 집중해야 또 여행을 무사히 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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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5-10-12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휴에 묵직한 책 잔 읽으셨네요.
긴 연휴가 끝나서 많이 아쉬우시겠어요.
내일 출근 잘하시구요.
또 며칠 있음 주말이 다가옵니다.ㅋㅋ
근데 맥주 위에도 샤베트가!!😀

거리의화가 2025-10-13 07:56   좋아요 1 | URL
긴 연휴가 끝나서 아깝기는 한데 주말도 있고, 곧 여행 때문에 또 며칠 간의 연휴가 있으니 괜찮습니다^^
맥주 위에 샤베트 신기하죠?ㅋㅋ 딱히 제 취향은 아니었지만(뭘 섞거나 소스 얹는 걸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그래도 보는 맛이 있었어요. 출근은 했는데 하품만 나오고 있습니다!ㅋㅋㅋ 한주 활기차게 시작하시길^^
 
야만의 해변에서 - 아메리카 원주민, 대항해 시대의 또다른 주인공
캐럴라인 도즈 페넉 지음, 김희순 옮김 / 까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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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중요하다. 이름은 우리 자신을 부르는 것이며, 사람들이 우리를 언급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누구였는지를 나타내는 것이자 상대방이 그와 나의 관계를 규정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 P17


나의 이름은 사라지고 무언가가 되거나 집단화되어 통칭된다면 어떨까. ‘나를 업신여기는구나.’ 또는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구나.’하고 여기지 않을까. 과거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제대로 불리지 않았으며 지워진 채 이용 당하는 세월이 길었다. 상대를 제대로 바라보고 인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일부터 시작이다. 이 책에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 내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대항해 시대 이후 수많은 유럽인들이 기독교 선교를 위해(명목으로) 아메리카 땅에 건너갔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개종시키면서 원래의 문화는 사라지거나 동화되었고 집단 공동체가 파괴되었다. 그렇다면 원래 살던 사람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토착민’? 이제는 ’인디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일이 조심스러워진 것 같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대중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원주민’도 그렇다. 어릴 때는 ‘식인종’이라는 말도 사용됐다. 어쨌든 저자는 앞선 단어 대신 인종적, 국가적 의미를 최대한 제거한 중립적인 용어인 ‘인디저너스’라는 단어를 쓰자고 말한다.  


대항해 시대 아메리카라는 공간은 익숙하지만 대부분 유럽에서 아메리카라는 방향으로 일관되어 있었던 것 같다. 출발점은 늘 유럽과 서구였고 그곳이 문명이었다. 인디저너스들은 사물화되거나 노예화되어 유럽인들에게 흥밋거리나 유용한 도구쯤으로 전락되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야기한다면 무시하거나 배제되었던 그들의 삶과 문화는 찾을 길이 더 희박해질 것이다. 그들은 결코 피동적이거나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체념하듯 상황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자신만의 무기와 기술로 만드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다. 인디저너스들은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건너가 중재자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부를 얻은 경우도 있었다. 유럽에서 여러 대를 걸쳐 살면서 가문을 일구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때 가족이 모두 정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구성원 중 일부는 스스로 거부하거나 부득이한 경우로 내쫓겨 아메리카로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15세기경 노예는 삶의 일부였고, 이슬람 지역, 동유럽, 아프리카, 카나리아 제도 출신 사람들은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의 노에 시장에서 일상적으로 거래되었다.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신부는 인디오들의 수호자였음에도 인디저너스 수를 줄이기 위해서 아프리카 해안 지역 출신의 노예 도입을 지지했다. 이렇게 노예가 당연시되던 시절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당도했을 때 만난 사람들을 사물로 취급했다는 일은 어쩌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한 인종적, 차별적 언행이 정당화되지는 않겠지만). 

스페인으로 건너간 인디저너스들은 스페인 시민과 마찬가지로 이론적으로는 노예화로부터 보호화되었다. 그러나 스페인 왕실은 노예 제도에 세 가지 예외상황을 두었는데 인디저너스가 그 중 하나였으며, 정당한 전쟁에서(이것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지는???) 포로로 잡은 경우, 몸값의 대상에서 구조된 경우가 그렇다. 과연 인디저너스들은 노예제도의 문제와 논쟁을 몰랐을까? 저자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마르틴의 예가 특히나 기억에 남는다. 그는 “나는 자유를 원한다.”하고 외치며 노예를 벗어나기 위한 법정 투쟁을 끈질기게 했다. 멕시코 출신 마르틴은 9~10살 무렵 스페인 왕실 재정 담당 관리인 살라사르의 눈에 띄어 시동으로 일하게 되었다(살라사르는 마르틴의 얼굴에 낙인을 찍을 정도로 잔혹한 사람이었다). 이후 주인을 따라 스페인에 가게 되었고 여러 가정을 전전하며 가사 노동자로 일했다. 살라사르에게 붙잡히지 않았다면 그가 법정에 서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의 결단과 투쟁은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는 저를 때리고 벽에 밀쳤어요. 만약 다른 이들이 저를 데려가지 않았다면 아마 저를 죽였을 거예요. …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그가 저를 해치지 못하도록 저를 그의 영향권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주십시오.” 그의 외침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를 떠올리게 한다. 오늘날에도 성폭력, 데이트폭력, 가정폭력 등 수많은 사례들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제대로 분리하지 않아서 다치거나 죽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가. 


현재 인디저너스들의 문헌과 자료, 유물 등은 대부분 유럽에 소장되어 있다. 승리의 행진과 호기심의 서랍으로 시작하여 "인간 동물원"과 "민속학적 전시"에 이르기까지, 유색인종의 인간성을 말살하고 무력화하는 수집과 전시 행위는 오랜 역사가 있으며, 그 흔해 빠진 "과학적" 인종주의의 발전에 기여했다. 16세기까지만 해도 직접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아메리카인을 전시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유럽인의 의도와 이익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전시되었다. 주지하다시피 당시 인종주의는 초기 단계일 뿐이었지만, 당시의 수집가, 역사가, 민속지 학자(종종 종교인들이 "다른 민족"을 이해하는 데 관심을 보였는데, 이는 그들을 개종시키기에 유리했기 때문이다)는 사람들을 "인종"으로 구분했고, 그들을 비난하는 데에 그것을 이용하는 일을 "자연스럽고" "과학적인" 믿음으로만들었다. 유명한 물건들, 심지어 사람까지 소유하려고 했던 16세기 수집가들의 열망은 문화, 민족, 그리고 "인종"의 분류와 위계를 구축하는데에 기여했다. - P313


대항해 시대 담배, 카카오, 옥수수, 감자, 토마토 등이 물을 건너 넘어갔다. 유럽을 비롯한 서구는 자원을 상품이자 이익으로 보았으나 인디저너스들은 자신들의 땅을 명확히 인식하고 가치를 이해했다. 땅에서 얻어지는 것은 소중하며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그들의 믿음은 “상호주의와 지속가능성의 윤리에 기반한 대지와의 관계”를 의미한다. 상품화의 시대 아메리카의 물건은 세계화되었다. 그들은 유럽인에게 자신들이 가진 작물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전수해주었고 연결망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유럽인의 문화, 경계와 차별을 직접 확인한 인디저너스는 자본에 따라 일부는 부를 쌓지만 또 다른 일부는 굶는 사람들이 있는 등 심각한 불평등에 놀랐다. 유럽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거부감은 인디저너스의 공통된 반응이었다고 한다. 유럽의 불평등을 그들이 인식했다는 시실이 흥미로웠다. 


1519년 코르테스가 아메리카에 왔을 때 아길라르와 말린친을 만났고 둘은 코르테스의 현지 통역사가 되었다. 아길라르가 스페인어를 마야어로 통역하면 말린친은 마야어를 나우아틀어로 통역했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나우아틀어를 마야어로, 이를 다시 스페인어로 통역했다(지역마다 언어가 달랐다). 말린친은 스페인어를 빠르게 익혀 나중에는 코르테스의 수석 통역사가 되었다고(말린친은 나중에 코르테스 사이에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는 나중에 펠리페 2세의 비서가 된다). 인디저너스들에게는 이윤을 좇아 대서양을 건널 필요가 없었으나 많은 젊은 인디저너스들이 개인의 욕심, 가문과 공동체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대서양을 건넜다. 이처럼 그들은 대륙 간 중재자이자 통역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문화 사이를 오가는 법과 언어를 배운 “중재자들”은 중간 지대에서 자신들에게만 허락된 기회와 통찰력을 지닐 수 있었다. 

아 폽 바트스는 유럽인이 왔을 때 경례를 거부하고 깃털을 세우고 케치 복장을 하면서 위신을 세우는 것으로 ‘우리를 함부로 보지 마라!’를 강조했다면 외교관의 선례를 만든 목테수마 가문 같은 인디저너스들의 활약도 존재한다. 이들은 대서양을 정기적으로 건너고 사절단과 외교관을 스페인 궁정에 보내며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얻어내기 위해 협상했다. 인디저너스 귀족 가문 연맹이었던 틀락스칼라 상류층은 스페인과 밀접한 관계를 계속 유지했다. 


유럽에서 인디저너스의 역사는 배제되거나 억압되거나 무시되었다. 그렇지만 책에서 보듯 그들도 새로운 땅을 찾아 기회를 얻고 연결된 상업망을 이용하여 무역을 하였으며 외교 사절단을 파견하여 적극적으로 협상을 벌였다. 그들에 대한 시선을 박물관에 새겨진 어느 존재처럼 보는 일은 벗어나야 한다. 저자의 노력처럼 인디저너스 여행자를 찾아내는 일을 통해서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고 희미한 삶들은 너무 닳은 나머지 서구 역사에 아주 옅은 흔적만을 남기는 듯 보이지만, 쌓이고 쌓여서 그 여행가들에 대한 과거의 그림을 만들어가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때로는 눈에 띄고, 때로는 평범했지만, 그들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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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침범하여 깃발을 꽂고 소유권을 주장한 백인들에 대해서 고정되거나 획일화되지 않은 매우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많은 공동체들이 새로운 교역망을 맺기로 했으며(혹은 그러기를 강요당했으며), 탐나는 재화의 생산자나 공급자, 혹은 거래 당사자가 되었다. - P210

많은 인디저너스들에게 거래는 의무 및 이해, 상호주의등 더 큰 연결망의 일부로서 형성된 것이었다. 그들은 친선, 외교, 동맹이라는 틀을 설정했고, 상호 간의 이해를 바라며 아낌없이 제공했다. 목테수마 황제가 코르테스에게 "내가 다스리는 모든 영토와 그에 속하는것들은 당신의 뜻에 따를 것이며 당신에게 복종할 것입니다.......당신은당신의 나라와 당신의 집에 있습니다"라고 말한 것은 환대이지 권력의분배가 아니었다. 그러나 인디저너스의 예절과 상호 관계에 무지했던그 정복자는 그 땅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다. - P240

침략으로 인한 첫 충격이 지나간 후, 정치적 목적으로 대서양을 건넌 원주민 남성들(그리고 종종 여성들)은 더 이상 모르는 이들 사이에 내던져진고립된 개척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가 국제법이라고 부르는(국제법은 이 시기 인디저너스 외교관들의 이의 제기에 대한 답으로서 그 기초가 형성되었다) 부문의 뉘앙스에 정통한, 교양 있는 외교관들이었고, 자신들보다 앞서 대서양을 건넌 여행자와 법률 조언자, 식민지 관리들의 경험과지지를 활용할 수 있었다. - P276

대서양을 건너서 행해지던 외교적인 노력은 16세기에 도시, 주, 가문,
관을 대표하는 인디저너스 대표들이 법정에서 관심을 받고자 경쟁해면서 범위가 넓어지고 깊이도 더해졌다. 그중에는 수행원을 대동한 공식사절단, 가족과 친척, 하인을 대동한 귀족, 때때로 스페인 관리나 성직자를 대동한 개인, 혹은 혼자인 사람도 있었다. … 그들이납치되어 통역을 맡게 된 우발적 외교관이든, 가족이나 지역, 혹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며 분쟁을 중재한 자발적 외교관이든, 혹은 단지 만나본 적 없는 먼 지역의 지배자에 대한 확신이나 정보를 원했던 사람이든간에, 이 아메리카 토착 정치가들은 왕궁과 제국의 중심지에서 눈에는 소수자로서 유럽 사회의 형성 및 대서양 횡단 무역에 기여했다. - P280

승리의 행진과 호기심의 서랍으로 시작하여 "인간 동물원"과 "민속학적 전시"에 이르기까지, 유색인종의 인간성을 말살하고 무력화하는 수집과 전시 행위는 오랜 역사가 있으며, 그 흔해 빠진 "과학적" 인종주의의 발전에 기여했다. 16세기까지만 해도 직접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아메리카인을 전시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유럽인의의도와 이익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전시되었다. 주지하다시피 당시 인종주의는 초기 단계일 뿐이었지만, 당시의 수집가, 역사가, 민속지학자(종종 종교인들이 "다른 민족"을 이해하는 데 관심을 보였는데, 이는 그들을 개종시키기에 유리했기 때문이다)는 사람들을 "인종"으로 구분했고, 그들을 비난하는 데에 그것을 이용하는 일을 "자연스럽고" "과학적인" 믿음으로만들었다. 유명한 물건들, 심지어 사람까지 소유하려고 했던 16세기 수집가들의 열망은 문화, 민족, 그리고 "인종"의 분류와 위계를 구축하는데에 기여했다. - P313

작고 희미한 삶들은 너무 닳은 나머지 서구 역사에 아주 옅은 흔적만을 남기는 듯 보이지만, 쌓이고 쌓여서 그 여행가들에 대한 과거의 그림을 만들어가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때로는 눈에 띄고, 때로는 평범했지만, 그들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 P335

침략 초창기에 스페인 여성이 아메리카로 이주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으므로, 많은 남성들이인디저너스 아내를 선택하거나 강제로 취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식민지에서의 변화무쌍한 관계를 쉽게 받아들였을지라도, 인디저너스 아내나 연인과 함께 유럽으로 귀환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인디오를 완전한 국왕의 신민으로 여기고 기독교도로 취급하는 온정적인 서사가 흘러넘쳐도, 스페인 남성이 자신의 인디저너스 파트너를 유럽으로 데려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최상류층의 원주민 여성을 제외한 인디저너스 여성이 스페인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기는 매우 어려웠다. - P191

대서양을 걸쳐 형성된 가족의 연계를 추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상류층 인사들은 아메리카를 오가는 여행 허가증에 이름을 기재하지만, 가족 구성원을 포함한 다른 많은 이들은 익명의 귀족이나 사제, 행정가나 크리아도(수행원)로서,
그리고 종종 속거나 강제로 배에 탑승한 포로로서 유럽에 도착했다. - P189

인디저너스들에게는 이윤을 좇아대서양을 건널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많은 원주민들이, 특히 대부분 젊은이들이 개인적인 야망과 가문과 공동체를 위해서 동쪽으로 여행했다.
유럽인들이 남긴 자료에는 인디저너스들이 자신들의 영토를 침범한 탐험가 및 침략자들에 의해서 중재자로 "이용되었다"는 이야기들이 남아있지만, 이들은 침략자의 대리인이면서 동시에 동포들을 위한 외교관이자 브로커이기도 했다. 놀랍게도 굉장히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대서양 횡단 여정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그들의 이중 신분은 문제가 되기에충분했으며, 그들의 충성심 역시 의심의 눈초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네판틀레라스, 즉 두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들이었다. - P140

왕의 "가신"으로서, 인디저너스는 스페인 시민과 마찬가지로 이론적으로는 노예화로부터 보호되었다. 그러나 식민화 초기에 왕실은 노예제도에 세 가지 예외 사항을 두었다. 첫째, "식인종인 인디저너스는 노예로 삼을 수 있었다. 둘째, "정당한 전쟁just war**에서 포로로 잡았다면노예로 부릴 수 있었으며, 셋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몸값의 대상에서 구조된 경우에도 노예화할 수 있었다. - P80

이름은 중요하다. 이름은 우리 자신을 부르는 것이며, 사람들이 우리를언급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누구였는지를 나타내는 것이자 상대방이 그와 나의 관계를 규정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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