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 본기

유방이 정장이었을 때 대나무 껍질로 모자를 만들고는 구도求盜도적 잡는 부하를 설현으로 보내어 다스리게 하면서 항상 그것을 머리에썼으며 귀하게 되어서도 늘 그 모자를 썼다. 이른바 ‘유씨관劉氏冠이 바로 이것이다. - P336

"평소 들은 대로라면 유계 당신에게 진귀하고 기이한 일이 많이있었다 하니 당신은 분명 귀하게 될 것이오. 또한 거북점과 시초점을 쳐 보니 유계 당신만큼 길한 사람은 없었소."
유방은 누차 사양했지만 무리 가운데 감히 나서는 이가 없었으므로 유계를 패공으로 세웠다. 유방은 패현의 관청에서 황제黃帝를 기리고, 치우에게 제사 지내고는 짐승을 죽여 피를 북에 바르고 깃발은 모두 붉은색으로 했다. 예전에 죽음을 당한 뱀이 백제의 아들이고 죽인 자가 적제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붉은색을 숭상하게 된 것이다. 이에 소하, 조참, 번쾌 등과 같은 뛰어난 젊은 관리들이 패현의젊은이 이삼천 명을 모아 호릉과 방여方與를 공격하고 돌아와 풍읍을 지켰다. - P340

"항우는 사람됨이 성급하고 사나우며 교활하고 상해를 입힙니다.
항우가 일찍이 양성을 공격했을 때 양성에는 남아 있는 무리가 없었으니 모두 그들을 묻었거나 지나가면서 남김없이 죽여 멸망시키지않은 것이 없습니다. 더구나 초나라가 여러 번 진군해 빼앗으려 했으나 이전에 진왕진승과 항량이 모두 싸움에 졌습니다. 차라리 장자長者를 보내 의로움을 붙들고 서쪽으로 나아가게 해 진나라의 부형들에게 알려주는 편이 낫습니다. 진나라의 부형들은 그들의 군주로인해 고통당한 지 오래이니 지금 만약 장자가 가서 포악함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분명 함락될 것입니다. 항우는 성급하고 사나우니 현재로서는 보내지 말아야 합니다. 유방만이 평소 관대한 장자이니 보낼만합니다."
결국 항우를 허락하지 않고 유방을 보내 서쪽 땅을 점령하게 했다. 유방은 진왕과 항량의 흩어진 병사들을 모아들이면서 탕현을 지나 성양咸陽에 도착했다. 거기서 강리의 진나라 군사와 대치한끝에 진나라의 두 부대를 모두 쳐부쉈다. 이때 초나라 군대는 출병해 왕리를 공격해 크게 이겼다. - P344

남양 태수의 문객 진회가 말했다. "완성은 커다란 군의 도성으로 성 수십 개가 이어져 있는데, 백성은 많고 쌓아 둔 양식은 풍부하며 관리들과 백성들이 항복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모두 성에 의지해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온종일 머물며 공격하면 죽거나 부상당하는 병사들이 많을 것이고, 병사를 이끌고 완성을 떠나면 완성의 군대가 반드뒤를 쫓을 것입니다. 당신이 전자를 따라 함양에 먼저 진입하게되면 왕이 된다는 약속을 잃을 것이며, 후자를 따르면 강대한 완성의 군대가 뒤쫓아 올 걱정을 할 것입니다. 제게 당신을 위한 계책이하나 있으니 차라리 투항을 약속받고 그곳의 태수로 봉한 후 그에게완성에 머물러 지키게 하고 당신은 그 병사들을 이끌고 함께 서쪽으로 가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면 여러 성의 항복하지 않은 자들이 - P346

이 소식을 듣고 다투어 문을 열고 기다릴 것이니 당신이 지나쳐 가는 데 거침이 없을 것입니다."
유방이 말했다.
"그대 말이 옳소." - P347

10월, 유방의 군대가 마침내 제후들보다 먼저 패상에 도착했다.
진나라 왕 자영은 흰말이 이끄는 흰 수레를 타고 목에는 끈을 맨 채황제의 옥새와 부절을 봉해 막고 지도 옆에서 항복했다. 여러 장수중 어떤 이가 진나라 왕을 죽이라고 말했다. 유방은 말했다.
"회왕이 나를 먼저 보낸 것은 내가 관용을 베풀 수 있을 것이라 여겨서요. 게다가 사람이 이미 항복했는데 또 죽이는 것은 상서롭지못하오." - P348

남쪽으로 평음진平津을 건너 낙양에 이르렀다. 신성의 삼로동공董公이 유방의 행렬을 가로막고 의제가 죽은 까닭을 이야기했다. 유방은 그 말을 듣고 팔뚝을 드러낸 채로 대성통곡했다. 마침내의제를 위해 상을 치르고 사흘 동안 제를 올렸다. 그러고는 사자를파견해 제후들에게 알렸다.
"천하가 함께 의제를 세우고 신하로 섬겼습니다. 항우가 의제를강남으로 쫓아내 죽이니 대역무도합니다. 과인이 직접 상을 치르니제후들은 모두 흰 상복을 입으십시오. 그리고 관중의 병사를 모두출동시키고 삼하三河하동, 하내, 하남의 병사들을 소집해 남쪽으로 장강과 한수를 따라 내려가 제후왕들과 함께 의제를 시해한 초나라 죄인을 쳐부수고자 합니다." - P355

정월, 제후 및 장상이 함께 한왕 유방을 높여 황제로 삼기를 청했다. 유방이 말했다.
"나는 황제란 어진 자만이 받을 수 있는 호칭이라고 들었소. 헛된말과 빈말로 제위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나는 감히 황제의 지위를 감당할 수 없소."
여러 신하들이 모두 말했다.
"대왕께서는 가난하고 미천한 평민에서 일어나 포악하게 반역한자들을 정벌해 천하를 평정하고 공적이 있는 자에게 땅을 나눠 주고 - P365

왕후로 봉하셨습니다. 대왕께서 황제의 존호를 받지 않는다면 모두의심하고 믿지 않을 것입니다. 신 등은 목숨을 걸고 황제가 존호를받도록 하는 것을 고수할 것입니다."
유방은 여러 번 사양하다 어쩔 수 없이 말했다.
"반드시 이익이라고 여기니 나라에 이익이 되겠구려."
갑오일, 범수氾 북쪽에서 유방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 P366

고조는 말했다.
"군막 속에서 계책을 짜내천리 밖에서 승리를 결판내는 것은 내가 자방구房장량만 못하오.
나라를 어루만지고 백성들을 위로하며 양식을 공급하고 운송 도로를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은 내가 소하만 못하오. 백만 대군을 통솔해싸우면 어김없이 이기고 공격하면 어김없이 빼앗는 것은 내가 한신만 못하오. 이 세 사람은 모두 빼어난 인재이지만 내가 그들을 임용할 수 있었으니 이것이 내가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이오. 항우는 범증 한 사람만 있었으면서도 그를 중용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그가 나에게 사로잡힌 까닭이오." - P367

8월, 조나라의 상국 진희가 대나라 땅에서 모반을 일으켰다. 황상고조이 말했다.
"진희는 일찍이 나의 관리였는데 매우 믿음이 있었소. 대나라 땅은 내게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에 진희를 열후로 봉해 상국의 신분으로 대나라를 지키게 했는데, 지금 왕황 등과 함께 대나라 땅을 협박해 강탈하려 하다니! 대나라 땅의 관리와 사람들은 죄가 있지 않으니 대나라 땅의 관리와 백성을 사면하시오." - P373

병인일, [고조를] 안장했다.
기사일, 태자를 세워 태상황의 묘지에 갔다. 신하들이 모두 말했다.
"고조는 미천한 평민 출신에서 일어나 어지러운 세상을 다스려정도正道로 돌이키고 천하를 평정해 한나라의 태조太祖가 되었으니공로가 가장 높다."
이에 제왕의 호를 바쳐 고황제皇帝라고 했다. 태자가 이전의 호칭을 이어받아 황제가 되니 효혜제孝惠帝이다. 군과 제후국의 제후들에게는 각자 고조의 사당을 세워서 매년 때맞춰 제사 지내게 했다. - P379

태사공은 말한다.
"하 왕조의 정치는 질박하였다. 질박함의 병폐가 소인小人백성들로 하여금 거칠어지게 했기 때문에 은나라 사람들은 공경함으로 그것을 계승했다. 공경함의 병폐는 소인들로 하여금 귀신을 섬기게 했기 때문에 주나라 사람들은 예의로 그것을 계승했다. 예의의 병폐는소인들을 불성실하게 했기 때문에 불성실함을 구원하는 데는 충성만 한 것이 없다. 삼왕의 다스림 방법은 순환하는 듯하다가 끝나서는 다시 시작된다. 주나라 왕조와 진나라 왕조 사이는 지나치게 예악을 중시한 병폐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진나라 왕조의 정치는 병폐를 고치지 않고 도리어 형법을 가혹하게 했으니 어찌 잘못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한나라 왕조가 일어나 전대의 병폐를 계승하기는했어도 이를 개혁해 백성들을 곤하지 않게 했으니 하늘로부터 법통을 얻은 것이다." - P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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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낮에는 부쩍 따뜻해진 날씨에 윗동네도 매화 꽃망울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날이 따뜻해지니 산책할 때도 사람이 많더라. 그래서 늦은 오후 찰칵했다.

4년 전 봄 창덕궁 후원에 갔었다. 그 때 봄꽃이 이른 시기에 한꺼번에 피어서 문화 해설자분께서도 이런 적이 처음이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올해도 왠지 그럴 예감이… 게다가 가물어서 꽃이 예쁠지 모르겠다.
나무들이 어찌나 버석거리는지 물 공급이 시급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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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3-03-09 0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4년전이면 저도 그곳에 ㅎㅎㅎ
궁궐 산책 엄청 좋아하는데(고딩 때 부터)
화창해야 할 봄날
서울 미세먼지 최악입니다
봄꽃들 피기전에 비가 내려야

거리의화가 2023-03-09 07:07   좋아요 0 | URL
비가 너무 안 내려 걱정입니다 오늘 비 예보가 있는데 조금이라도 내리면 좋겠어요. 봄에 궁궐 산책은 특히 최고입니다! 올해는 꼭 나들이가봐야겠어요.

희선 2023-03-09 0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걷다가 매화 봤어요 제가 사는 곳보다 더 밑에 지방은 매화 더 빨리 피었더군요 요새 따듯해서 어느새 피었나 봅니다 어쩌면 제가 걸은 곳은 더 따듯한 곳이었을지도... 같은 지역이어도 꽃이 빨리 피는 곳 있고 늦게 피는 곳 있잖아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3-09 07:10   좋아요 0 | URL
네 이번주는 따뜻했는데 다음주엔 평년기온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꽃들의 개화시기가 이제 예전 같지 않은 것이 기후위기 탓이 크다고 해요. 올 봄에 많이 걸으면서 꽃들 구경해야겠습니다!

다락방 2023-03-09 0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밤사이에 비가 조금 왔었나봐요. 오늘 출근하는데 땅이 젖었더라고요. 그리고 뭔가 축축한 느낌. 근데 싫지 않았고요, 아 봄이 오네, 했습니다. 봄이 오는건 왜이렇게 좋을까요, 거리의화가 님?

거리의화가 2023-03-09 09:17   좋아요 1 | URL
제가 페이퍼에도 몇 번 소개했나 싶은데 저는 봄을 가장 좋아합니다. 어떤 계절도 봄은 이길 수 없어요. 봄은 계절의 시작인 만큼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잖아요. 어떤 것이든 시작할 수 있다는 활기를 주어서 좋습니다. 저도 오늘 촉촉한 땅의 습기를 보며 그래도 비가 약간은 내렸구나 싶어서 다행이다 생각했어요. 오늘 조금 더 내리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그레이스 2023-03-09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울엔 아직 매화만 피었어요.
거리의 화가님께 마음으로 일지매를 보내며 안부를 전합니다.~크

거리의화가 2023-03-09 21:47   좋아요 1 | URL
이곳도 햇빛이 따스한 곳에는 꽃망울이 올라왔고 그늘진 곳은 아직이에요^^; 올 봄에는 나들이도 많이 하실테니 봄꽃 사진들이 제법 올라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난티나무 2023-03-10 0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왓 꽃송이가 늠 이쁘네요^^

거리의화가 2023-03-10 09:55   좋아요 0 | URL
이쁘죠^^ 이제 곧 꽃들이 많이 필 것 같습니다. 꽃들 때문에 봄이 더 좋은 것도 있네요^^
 

○ 夏五月 帝置酒洛陽南宮 上曰 徹侯諸將 毋敢隱朕 皆言其情 吾所以有天下者 何 項氏之所以失天下者 何 高起王陵 對曰 陛下嫚而侮人 項羽仁而愛人 然陛下使人攻城略地 因以與之 與天下同其利 項羽妬賢嫉能 有功者害之 賢者疑之 此其所以失天下也 上曰 公知其一 未知其二 夫運籌帷幄之中 決勝千里之外 吾不如子房 鎭國家, 撫百姓 給餉餽 不絶糧道 吾不如蕭何 連百萬之衆 戰必勝, 攻必取 吾不如韓信 三者皆人傑 吾能用之 此所以取天下者也 項羽有一范增 而不能用 此所以爲我禽(擒)也 群臣 悅服 〈出史本紀〉
한 고조가 술자리를 베풀고 자신은 천하의 주인이 되고 항우는 주인이 되지 못한 것이 어째서이냐 신하들에게 기탄없이 말해보라 한다. 자신에게는 3명의 걸출한 신하들이 곁에 있었는데(장량, 소하, 한신) 이를 잘 썼고 항우는 범증이 있었는데 그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음이 아닐까 하고 고기와 왕릉이 말하였다.

○ 項羽已滅 田橫懼誅 與其徒五百餘人 入居海島中 帝恐其爲亂 乃使人赦橫罪 而召之曰 橫來 大者王 小者侯 不來且擧兵加誅 橫乃與其客二人 乘傳詣洛陽 未至三十里 自殺 帝拜其二客 爲都尉 以王禮葬之 橫旣葬 二客穿其冢旁 皆自剄下從之 帝聞之大驚 聞其餘尙五百人 在海中 使使召之 至則聞橫死 亦皆自殺 〈出史田儋傳〉

역이기를 죽였던 제나라의 전횡이 항우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자신에게 돌아올 화살이 두려워 500명의 신하와 더불어 섬에 들어가 있었다. 한 고조는 이들의 반란을 두려워하여 전횡의 죄를 사면하겠으니 자신에게 찾아오라 이른다. 하지만 전횡은 황제를 만나기 전에 자살하였고 전횡을 맞으러 간 두 사람도 그를 장례치르고 나서 자살하였다. 섬에 있던 500명을 소환했는데 그들도 전횡이 죽은 것을 알고 주인을 따라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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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견으로는 나라고 민족이고 간에 그거는 다사람이 살아남기 위한 울타리가 아니겠소? 생각해보시오. 왜놈들이 우리 백성을 청풍당석에 앉히놓는다면 어느 누가 칼 들고나갈 깁니까. 그러나 지금 바로 이 시간에도 왜놈은 우리 백성들 갑데기를 벗기고 있으며 조만간에 우리 조선사람들 씨를 말리고 말 것이오. 그러니 우리 모두 목이나 매달아 죽어부리까그래야만 되겄소? 공부깨나 했다는 사람, 너 남 지간에 한다는말이 일본은 심이 세다, 세계에서는 강국이다, 대항해보아야바위에 계란 던지기다, 그럴 바에야 더 배워서 시기를 기다리는 기이 낫다, 제기랄! 호랭이 앞에서 기다리보아야 잡아묵히기밖에 더하겠소. 살아남을라카믄 심약한 인간은 창을 맨들고 함정도 파고 덫도 놓고, 환하게 다 알믄서 소선생은 와 딴전을 피우는 깁니까?" - P53

"삼림조합 사건이 터진 단천(端川)이라는 곳은 원래부터 반일세력이 강했다 하더군요. 연해주가 가까운 관계로 공산당 조직도 상당히 뿌리가 박혀 있고, 그간에도 농민동맹과 청년동맹이 주축이 되어 누에고치 공동판매 반대, 관제인 군농회(會) 반대, 농촌학취체반대, 화전민 정리반대 등등 대항이 계속되었는데, 삼림조합 반대에서 일은 크게터진 거지요."
"장풍탄광에서 일이 터졌을 직에 전국에 번진 학생운동맨크로 전국의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지 않을까 사람들은 생각했는데, 그기이…………."
관수의 말이었다.
"한쪽은 쑤시고 한쪽은 초병 마개만큼 단단하게 틀어막아야,
다 쑤시면 일 안 되지. 게다가 조선놈 공부하는 거는 달갑지 않아도 노동자들이야 부려먹어야 하니까." - P61

양조장을 경영하는 사업가 김두만 씨, 누가 뭐라 하건 중후한 중년 신사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연장망태 어깨에걸머지고 다니던 김목수, 술 도매상이랍시고 차린 좁은 점포에웅크리고 앉았었던 김씨, 그런 모습들은 세월의 물결에 실리어가버린 지가 오래다. 아들형제 기성과 기동이가 다니던 중학교학부형 회장직의 관록도 이제는 몸에 배었으며 천장절(天長節)이다, 명치절(明治節)이다 하며 일본인 국경일의 의식에는 귀빈으로, 그것도 어지간히 자연스러워졌고 사람들은 뒷구멍에서 험담을 하면서도 앞에서는 꾸벅꾸벅 절을 했으며 서장 나으리,
시장 나으리, 그런 높은 사람들 모인 자리에 참석도 하고, 싫든좋든 진주서는 손꼽히는 명가 양교리댁의 당주인 양재문도 김두만을 만나면 손을 내민다. 비빔밥집은 걷어버리고 안방 어부인으로 자리를 굳힌 서울네, 해서 김두만은 양조장나으리라 아양을 떠는 기생집에도 드나들게 되었다.
"돈 좋지. 돈 좋고말고, 아암 돈같이 좋은 기이 어디 있노." - P67

동북지방 산중에서 짐승같이 더럽고 무지하게 살아온 일부 일본 인종이라 할지라도 명희나 여옥과 같이 교육받고 의식이나 생활의 풍도가상류에 속하는 여성들조차 억압과 모멸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는 매일반이다. 그들은 대일본제국의 반사경인 것이다. 학식이있고 없고 간에 부하고 빈하고 간에 아이건 어른이건 간에 식민지에서의 그들은 모두 국책의 충실한 반사경. - P99

"명문거족의 딸들은 기왕의 누려온 그 특권으로 해서 새로운 학문도 시집가는 혼수같이 되어전과 다름없는 며느리 아내로 낙착이 되었지만 그럴 수 없는 계층의 여자들은 오히려 신분이 떨어져 버린 느낌이야. 남의 소실 후처댁이 심지어는 광대취급이고 소수가 사회 일각에서 뭔가 해보겠다고 가시밭길을 걷는데 말로는 존경한다, 평가하는데는 교육받은 여자라는 것이 보탬이 되기도 하고 남과 다르다는 것 때문에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는 거지. 호기심의 대상으론 시골이라고 다를 없어. 더했음 더했지. 구경거리가 된다는 것을." - P110

"요즘 식자 좀 들었다 하면 사회주의다 무정부주의 공산주의하고들 말 많이 하는데 난 때론 무서워져. 어째서 내가 그들의적인가 하구, 그들은 모두 착하구나 같은 사람은 모두 악하구,
반드시 환경이 지배하는 거니? 그렇다면 그런 말하는, 그런 이론을 믿는 사람 대다수는 노동자도 농민도 아니지 않아. 북만주에 가서 독립운동하는 소위 양반의 후예보다 농민이 더 위대하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니니."
"그 말엔 나도 동감이야. 가난하다고 다 착하다는 논리는립될 수 없지. 그 속에도 고약한 사람 많아. 권좌에 앉혀놓으면포악무도할 요소를 가진 사람 말이야. 또 민중을 믿는다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고, 그러나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현실을 통해서 그들을 이해해야 하는 거 아닐까? 반드시 환경이 지배하는 것 아니라 할 수는 있으나 일면 고난이 사람을 맑게 하는 것도 사실이지. " - P126

"하지만 피해를 어떻게 물질에만 둘 수 있겠니. 이런 말 또하면 넌 배고파보지 않은 자의 호사스런 얘기라 하며 공박할지모르지만 오늘만 해도 바닷가에서 뱃사람들이 떠들고 깔깔대고 했을 때 기분이 나쁠 정도가 아니었어. 겁이 나던걸. 그 경우난 여자였으니까 말이야, 약자에 대한 심리적인 일종의 포악성을 느꼈어. 순간 내 가슴을 치는 것은 인간성에 대한 절망비슷한 것이었는데 내 의식 속에도 가난한 사람은 피해자다,
따라서 늘 당하기만 하는 약자, 착한 사람이다, 하는 것이 잠재해 있었던 것 같았어. 오히려 그들이 뱃사람 아닌 경찰관 그런부류의 인간이었더라면 기분이야 나빴겠지만 절망 같은 것 느꼈을까?"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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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관계란 가능한 거의모든 결과를 만들어내며, 따라서 우리가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도 만들어 낸다. 이 작업은 우리 욕망이나 ㅡ 빨리 진행하려고 하면 도리어 방해가 되는 ㅡ 삶 자체로 인해 더욱느리게 진행되어 우리 욕망이나 삶이 멈추었을 때 비로소 실현된다. 스완은 이 사실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미 깨달았으며, 또 그의 삶에서 ㅡ 그의 죽음 후에 일어날 일의 예시로서 - 처음 만났을 때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가 열정적으로 사랑했으며 더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고서야 한 결혼이, 다시 말해 스완의 마음속에서, 그의 모든 삶을 함께 보내고 싶어그토록 열망하고 절망했던 존재가 죽고 나서야 한 결혼이 바로 이런 사후의 행복 아니었던가? - P86

삶의 복잡함이 책읽을 시간을 거의 주지 않고 유럽 지도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더욱이 앞으로 이 변화가 어쩌면 더 심해질 거고, 또 시급한 새로운 문제가 도처에서 제기되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작가에게 단순한 재사(才士)가 아닌 다른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제 말에 동의하시겠죠? 이 재사는 순수 형식의 가치에 대한 부질없고 하찮은 논쟁으로 우리 밖과 안에서 몰려오는 이중의 ‘야만인들‘ 물결에 우리가 시시각각 휩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합니다. 제 말이, 이런 신사분들이 소위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고 일컫는 신성불가침 학파를 모독한다는 걸 잘 압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에는 단어들을 조화로운 방식으로 배열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임무가 있어요. - P89

때로 저속하며, 남에게 책처럼, 그것도 자신의 책이 아니라 지루한 책처럼 떠들어 대는 작자, 적어도 그의 책이 지루하지 않다면 지루한 것은 바로 베르고트라는 인간이라네. 가장 모호한 정신에 기교를 부리는재능을 가진 그는 우리 조상들이 허풍쟁이라고 불렀던 인간이자 또 자기가 하는 말을 말하는 방식 때문에 더 불쾌하게만드는 그런 자라네. - P91

우리 누구나 자신의 말이나 동작이 어느 정도까지 타인에게 보이는지를 정확히 계산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중요성을 지나치게 과장할까 봐 두려워서, 또 타인에 의해 형성된 추억이 그들이 사는 동안 차지하게 될 부분을 지나치게 큰 비율로 확대하면서, 우리는 우리 말이나 태도의 부차적인 부분들이 거의 상대방의 의식 속으로 뚫고 들어가지 못할 거라고 상상하는데, 하물며 우리가 함께 대화를나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으리라고는 더더욱 상상하지 못한다. - P96

수천 년에 걸친 인류 생활에서 모든 것은 다 잊히기 마련이라고 주장하는 신문 연재 소설가의 철학은 모든 사물의 불멸을 예언하는 그 반대의 철학보다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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