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辛未】 內史勝滅韓虜韓王安以其地置潁川郡

【癸酉】 王翦擊趙軍大破之遂克邯鄲虜趙王遷

○ 燕太子丹怨王欲報之將軍樊於期得罪亡之燕太子受而舍之太子聞衛人荊軻之賢卑辭厚禮而請見之欲使劫秦王反諸侯侵地不可因刺殺之軻曰今行而無信則秦未可親也誠得樊將軍首與燕督亢之地圖奉獻秦王秦王必說(悅)見臣臣乃有以報乃私見樊於期曰聞購將軍首金千斤邑萬家願得將軍之首以獻秦王秦王必喜而見臣臣左手把其袖右手揕其胸則將軍之仇報而燕見陵之愧除矣樊於期曰 此臣之日夜切齒腐心也遂自刎以函盛其首太子豫求天下之利匕首使工以藥焠之以試人血濡縷人無不立死者乃遣入秦

【甲戌】 荊軻至咸陽王大喜朝服設九賓而見之荊軻奉圖以進於王圖窮而匕首見因把王袖而揕之未至身王驚起袖絶荊軻逐王王環柱而走秦法群臣侍殿上者不得操尺寸之兵左右以手共搏之且曰王負劍負劍王遂拔劍以擊荊軻斷其左股遂體解以徇於是益發兵伐燕戰於易水之西大破之燕王斬丹獻王王復進兵攻之

○ 王問於將軍李信曰吾欲取荊於將軍度用幾何人而足李信曰不過用二十萬問王翦王翦曰非六十萬人不可曰王將軍老矣何怯也遂使李信蒙恬將二十萬人伐楚

【丙子】 王賁伐魏魏王假降殺之遂滅魏楚人大敗李信李信犇還王翦曰必不得已用臣非六十萬人不可於是將六十萬人伐楚

【戊寅】 王翦虜楚王負芻以其地置楚郡

【己卯】 王賁攻遼東虜燕王喜

溫公曰燕丹不勝一朝之忿以犯虎狼之秦輕慮淺謀挑怨速禍使召公之廟不祀忽諸罪孰大焉而論者或謂之賢豈不過哉夫爲國家者任官以才立政以禮懷民以仁交隣以信是以官得其人政得其節百姓懷其德四隣親其義夫如是則國家安如磐石熾如焱火觸之者碎犯之者焦雖有彊暴之國尙何足畏哉丹釋此不爲顧以萬乘之國決匹夫之怒逞盜賊之謀功墮(隳)身僇社稷爲墟不亦悲哉夫其膝行蒲伏(匍匐)非恭也復言重諾非信也糜金散玉非惠也刎頸決腹非勇也要之謀不遠而動不義其楚白公勝之流乎荊軻懷其豢養之私不顧七族欲以尺八匕首彊燕而弱秦不亦愚乎

○ 初齊事秦謹與諸侯信齊亦東邊海上秦日夜攻三晉燕楚五國各自救以故齊王建立四十餘年不受兵後齊相及賓客多受秦間金勸王朝秦不修攻戰之備不助五國攻秦秦以故得滅五國

진나라가 한->조->위->초->연->제를 멸하며 전국을 통일

연나라의 태자 단은 위나라의 형가를 이용하여 진시황을 죽이려했으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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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1 - 3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1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서로가 서로를 외면해야 버틸 수 있는 세월이다. 동학 집단의 분열은 오래되었지만 사이비 교도까지 탄생할 지경이 되었다. 동학은 늙었고 해외에 있던 임시정부는 동력을 잃었다. 환의 죽음, 길상이와 의돈이의 체포가 독립 운동의 한 시기가 종료되었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농촌은 지주와 마름의 횡포로 소작인들은 점점 농사를 포기하고 산촌으로 내몰린다. 그리고 스스로를 놓아버린 기화(봉순)의 운명은 애처롭고 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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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2-04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ㅠㅠㅠㅠ 넘 슬프네요.. 저 13권인데 아직도 1930년이예요. 광복까지 한참 남았어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3-02-04 22:08   좋아요 0 | URL
13권도 슬픈가요? 왠지 12권도 슬플 것 같은 예감이ㅠㅠ

독서괭 2023-02-05 11:03   좋아요 1 | URL
12,13권은 인물보다는 역사에 대한 슬픔이 좀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ㅠㅠ

바람돌이 2023-02-04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토지가 3부부터는 좀 동력이 떨어졌던 기억이..... 1,2부는 진짜 와 어떻게 이런 글을 쓰지? 어떻게 이렇게 인간에 대해 깊게 이해할 수 있지하면서 읽었거든요. 뭐 1,2부에 비해서라는거지 그래도 토지는 토지니까..... ^^ 이제 반 왔네요. 화이팅입니다. ^^

거리의화가 2023-02-04 22:09   좋아요 0 | URL
인물 교체도 많이 되었고 또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슬프게 흘러가는 탓도 있는 것 같아요.
1,2부는 좀 스펙타클한 사건들도 다양하게 있었고...ㅎㅎ 암튼 남은 분량도 힘내보겠습니다^^
 

느릿느릿 세 번이나 진흙탕에서 신발 건져,
황석 선생 비방 적힌 책 한 권을 얻었다네.
逡巡三進泥中履,
爭得先生一卷書
장량은 노인 앞에 꿇어앉아 간절하게 말했다.
"크신 성함을 알고 싶습니다."
노인이 말했다.
"잘 기억하거라. 13년 뒤 곡성(城)10 동쪽에 어떤 임금을 장사 지내게 될 것이다. 그 빈 땅에서 황석(黃石)을 하나 얻을 것인데 그것이 바로나다. " - P139

동남쪽 패현에 당도하자 뭔가왕성한 기운이 서려 있는 듯했다. 진시황은 이곳에 틀림없이 이인(異人)이 있을 것으로 여기고 세밀하게 방문 조사하고 혹시 그런 사람이 있으면 바로 주살하여 후환을 없애라고 분부했다. 그러자 이사가 말했다.
"구름 기운이 출몰하는 것은 우연에 불과합니다. 폐하께서는 무슨걱정을 그리 심하게 하십니까? 만약 사람을 보내 조사하다 백성을 동요시켜 오히려 다른 우환이 생길까 두렵습니다."
진시황이 말했다.
"경의 말이 옳소." - P140

항우가 대답했다.
"글쓰기는 이름을 쓰는 기술에 불과하고, 검술은 한 명을 상대하는기술에 불과합니다."
항량이 말했다.
"그럼 이제 뭘 배우고 싶으냐?"
항우가 말했다.
"저는 만 명의 적과 상대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 P142

어사가 일이 끝났음을 보고하자 이사가 간언을 올렸다.
"폐하의 순행 기간이 오래 지속되면서 온갖 변고가 생겨 나라의 상서로움이 증명되지 못하고 있으니 백성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지 못할까두렵습니다. 차라리 어가를 돌려 돌아가셔서 변방의 방비를 엄정히 하시고 나라 안을 편안하게 위무하시면서 두 손을 모으고 무위(無爲)의정치를 하시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럼 저절로 무사하게 될 터인데, 하필이면 어가를 멀리까지 몰고 나가 사단을 만들며 온종일 불편해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시황제는 이사의 말에 따라 어가를 되돌렸다. - P143

"부소는 현명하고 결단력이 있으며 강직하고 전도유망하오. 평소에공과 잘 지내지 못했는데 만약 임금이 되면 몽염을 승상으로 삼고 공의 인수를 빼앗아 그에게 줄 것이오. 그럼 공은 고향으로 쫓겨나 서민으로 강등되어 서서히 화를 당할 것이고 결국 죽은 뒤 장사 지낼 땅도찾지 못할 것이오. 공은 어찌하여 스스로 깨닫지 못하시오?"
이사는 오랫동안 깊이 신음하다 말했다.
"공의 말에도 일리는 있지만 폐하의 마지막 부탁을 차마 저버릴 수없소."
조고가 말했다.
"마지막 부탁을 따르다가 몸이 위태로워지는 것과 마지막 부탁을 저버리고 권력을 오래 유지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게 더 나은 일이오? - P145

몽염이 다급하게 제지하며 말했다.
"황상께서는 신에게 30만 군사를 이끌고 변방을 지키라 하셨고, 또태자마마를 이곳에 오래 머물게 하며 군사를 감독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이것은 천하의 중임입니다. 이렇게 중임을 맡기시고도 사약을 내리시다니요? 이는 아마도 중간에 속임수가 있는 듯합니다. 직접 만나뵙고 사정을 아뢴 뒤 과연 거짓이 아니라면 그때 죽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부소가 말했다.
"군부의 명령이 이미 내려졌으므로 거스를 수 없소. 어명이 당도했는데 그것이 어찌 사실이 아니겠소? 만약 다시 주청을 올린다면 더욱더불효를 더하는 일이 될 것이오."
부소는 마침내 독주를 마시고 죽었다. - P148

자영이 간언을 올렸다.
"몽씨는 진나라의 대신이고 모사입니다. 그가 어느 날 버려지면 이로써 절개를 지키려는 사람이 없어질 것입니다. 이 일로 신료들은 믿음을갖지 못할 것이고 투사들은 굳은 의지를 버릴 것입니다."
진이세는 자영의 간언을 듣지 않고 몽씨의 구족(九族)을 몰살하려했다. 몽염은 그 소식을 듣고 탄식했다.
"나는 많은 공을 세워진나라 3세 동안 신임을 받았고 지금도 군사30여 만을 거느리고 있다. 이 세력만으로도 충분히 반란을 일으킬 수있다. 그러나 차라리 대의를 지킬지언정 망령되이 행동하지 않는 것은감히 선조의 가르침을 욕되게 할 수 없고 선왕의 은혜를 잊을 수 없기때문이다."
그리고 끝내 짐독을 마시고 죽었다. - P152

유방이 뱀을 벤 뒤 사방에서 귀의해오는 사람이 수백 명이 되자 그의 위엄과 명성이 자못 주위를 진동하게 했다. 패현의 관리소하(蕭何)와조참(曹參)은 진나라가 더욱 포악하게 변해가고 세금과 부역을 과중하게 부과하는 것을 보고 패현 현령을 보좌하여 사람들을 모아 진나라에 반란을 일으키기로 했다. 그리하여 번쾌에게 유방을 불러와 함께 상의하자고 했다. 유방은 번쾌와 함께 수백 명의 휘하 인원을 거느리고패현으로 왔다. - P158

아내가 이아이를 낳을 때 집안에서 봉황 다섯 마리가 우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성장하면 틀림없이 귀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마을에도 세도 있는 집안 자제들이 있지만 모두 어리석어 제 딸의 배필이되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런데 마침 장군의 모습을 뵈니 힘은 솥을 들어올릴 정도고, 용기는 만 명의 적을 상대할 만합니다. 그리고 의군을 일으켜 천하 평정에 뜻을 두고 계시니 진정 세상을 덮을 만한 영웅이십니다. 부디 제 여식을 배필로 삼아주십시오."
항우는 바로 일어나 재배하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 우공은 우희(虞姫)를 불러 항우에게 인사를 시켰다. - P171

환초가 말했다.
"영 장군의 무예와 용력은 천하무적입니다. 옛날에 여산 공사장에서노역을 하다 도망친 뒤 장강을 건너 저에게 투신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영 장군을 머물게 하고 여비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각자 어진 주인을 만나면 합심하여 보좌하고 함께 부귀를 도모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전에 이곳에서 의군을 모아 거병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확신하지 못했는데 뜻밖에도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영포가 말했다.
"어려운 일인데도 장군께서 의군을 일으켰으니 저도 이에 호응하고싶습니다."
항우는 매우 기뻐하며 영포를 인도하여 항량을 만나게 해주었다. 항량도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천군만마를 얻기는 쉽지만 훌륭한 장수 한 명을 얻기는 어렵소. 지금영 장군을 만났으니 마치 만리장성을 얻은 듯하오." - P174

지금의 대책을 말씀드리면 먼저 초왕의 후예를 옹립하여 사람들의 여망에 따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럼 천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항 장군은 자신을 위하지 않고 초왕의 후예를 옹립하여육국의 원수를 갚으려 하시니 이는 진실로 천하의 의거다.‘ 이렇게 되면 민심이 기꺼이 복종하고 제후들도 호응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비록 진나라가 강하다 하더라도 일거에 격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항량이 말했다.
"참으로 훌륭한 대책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범증을 군사로 삼고 바로 사람을 보내 초왕의 후예를 두루 찾게 했다. - P182

"너는 늘 칼을 차고 거리를 돌아다니는데, 그 칼로 나를 찌를 수 있겠느냐? 찌를 수 없다면 내 가랑이 아래로 지나가야 한다!"
그러자 한신은 고개를 숙이고 가랑이 아래로 기어갔다. 시장 사람들은 모두 그를 비웃으며 겁쟁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관상을 잘 보는허부(負)라는 사람이 한신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왕후장상이 될 만한 고귀한 관상을 갖고 있소. 틀림없이 천하의 대장군이 될 것이며 부귀를 누림이 가볍지 않을 것이오."
한신이 웃으며 말했다.
"하루에 밥 한 끼도 못 먹는 주제에 무슨 부귀를 바랄 수 있겠소?" - P190

항량이 대로하여 말했다.
"나는 회계에서 군사를 일으킨 이래 가는 곳마다 적수가 없었다. 이까짓 외로운 성 하나를 쳐부수는 것이 무에 어려울 게 있겠느냐? 장함은 내 이름만 듣고도 간담이 서늘해졌을 것인데, 어찌 감히 성을 나와우리 진채를 칠 수 있겠느냐? 너 따위가 대체 무엇이기에 감히 함부로 - P198

계책을 운운하며 우리 군사의 사기를 떨어뜨린단 말이냐?"
장함은 결국 한신을 문밖으로 끌어내게 했다. 송의가 한신의 계책을듣고 황급히 말했다.
"전투에 승리한 뒤 장수가 교만해지고 병졸이 나태해지면 반드시 패배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 병졸들은 나태해진 지 오래입니다. 진나라는지금 성안에 포위되어 곤경에 처한 듯 보이지만 연일 정예군을 잘 먹이며 힘을 비축하고 있습니다. 또 장함은 진나라의 명장이라 갑사(甲士)를부리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진실로 장함은 한신의 말처럼 이해관계를잘 파악하는 자이니 한신의 말도 훌륭한 계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항량은 더욱더 송의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날 밤 장함은 과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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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子】 宗室大臣諫曰諸侯人來仕者皆爲其主遊間耳請一切逐之於是大索逐客客卿楚人李斯亦在逐中行且上書曰昔穆公求士西取由余於戎東得百里奚於宛迎蹇叔於宋求丕豹公孫支於晉幷國二十遂霸西戎孝公用商鞅之法諸侯親服至今治彊惠王用張儀之計散六國之從使之事秦昭王得范睢彊公室杜私門此四君者皆以客之功由此觀之客何負於秦哉臣聞太山不讓土壤故能成其大河海不擇細流故能就其深王者不却衆庶故能明其德此五帝三王之所以無敵也今乃棄黔首以資敵國却賓客以業諸侯所謂藉寇兵而齎盜糧者也王乃召李斯復其官除逐客之令卒用李斯之謀兼天下

객을 쫓아버리는 명령을 없애고 이사의 관직을 복직시킴 (하지만 이사는 후에 진나라를 멸망하게 만드는 원인 중의 하나로)


【戊辰】 韓王納地請爲藩臣使韓非來聘韓非者韓之諸公子也善刑名法律之學見韓之削弱數以書干韓王韓王不能用於是韓非作說難孤憤五蠹說林五十六篇十餘萬言

한나라의 힘이 쇠약해지자 한비자가 자주 상소하여 한왕에게 간언하였으나 왕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己巳】 初燕太子丹嘗質於趙與王善王卽位丹爲質於秦王不禮焉丹怒亡歸

연나라 태자 단이 조나라에 볼모로 있었음에도 왕(진시황)과 사이가 좋았다. 진시황이 즉위하고 태자 단이 진나라에 볼모로 갔는데 진시황은 그를 예우해주지 않았고 단은 화가 나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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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히 B. 필립스(Ulrich B. Phillips): 1918년 옛 남부의 노예제가 아프리카 미개인들과 본토 태생의 그 후손들에게 영광스러운 문명의 인장을 남겼다 -> 한두 세기 전 니그로들은 아프리카 야생에 살던 니그로다, 미국에 끌려온 이들과 후손들은 일정량의 문명을 획득했고 근대문명사회의 삶에 어느 정도 적응했다, 니그로의 진보는 문명화된 백인들과 어울린 결과다, 막대한 수의 니그로들이 문명화된 백인 국가에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한데 앞으로 이들이 백인 남성들의 나라에서 평화로운 체류가 어떻게 가능하며 진보와 후퇴 중 어떤 식으로 흘러갈까. 이 문제를 해결하는 법은 플랜테이션 시스템이다.


미국 남부 노예제. 아주 오래 전부터 이어져왔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노예제.

그런데 이 노예들 중에서도 여성 노예의 특수한 상황은 탐구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여성 노예는 ‘성적으로 난잡하다’, ‘모계중심 성향을 갖는다‘라는 편견으로 여성 노예의 상황은 가려져 있었다. 


노예제 논쟁은 1970년대 들어서서 다시금 부상하면서 출판물은 쏟아졌지만 노예 여성을 조명하는 책은 출간되지 않았고 노예제 시절 흑인 여성에 대한 관심도는 떨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흑인 가정에 대한 허버트 거트먼의 연구는 돋보인다. 

거트먼은 흑인 가정의 활력이 노예제의 가혹함보다 더 강력했음을 입증하는 문서를 증거로 제시. 

‘아내다운 성향’을 공식화하고, 노예 여성은 노예제라는 특수 상황에서 가정 내 꿈이 좌절되었다는 점 이외에 백인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 거트먼이 가정, 노예 공동체 전체에서 흑인 여성들을 다차원적으로 고찰했다면 그의 주장은 더 강력해졌을 것이다.


노예 시스템은 흑인을 재산으로 정의하였다. 소유주 입장에서 노예는 무성의 존재로 인식되었다. 흑인 여성들은 그들의 눈으로 볼 때 비정상적이었다.


노예무역이 공식적으로 폐지되면서 노예로 운영되던 목화 산업 소유주들은 노예 여성의 출산 능력에 주목했다. 노예의 재생산으로 사업을 이끌어가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이들은 노동력 증대의 도구로 전락하였고 낳은 자식은 그저 똑같은 노예로 취급될 뿐이었다. 

게다가 여성이어서 성적 억압에 취약했다. 그것은 강간으로 행해졌다. 소유주의 경제적 지배력이 성적 통제력과 맞물리면서 이루어지는 행태다.


임신한 여성들은 정상적으로 농장 노동을 해야 했고 하루치 할당을 채워야 했으며 항의하면 다른 일반 노동자들이 받는 채찍질까지 당해야 했다.


여자 노예들은 자유로운 노동자나 남자 노예보다 훨씬 이익이 많이 남았다. 유지 비용이 덜 들었기 때문이다. 


산업화로 여성은 어머니와 주부로 규정되고 이는 열등함의 표시였다. 하지만 노예제의 위계는 이 19세기 여성성 이데올로기에 들어맞지 않았다다. 남녀 노예는 모두 노예일 뿐이었다. 하지만 여성 노예가 여전히 불합리한 부분은 더 있지 않았던가? 일반화하기에는 애매하다. 


흑인 가정에 대한 악명 높은 보고서인 1965년 연구인 ‘모이니핸 보고서’에서 말하는 바는 흑인 사회 내 사회경제적 문제가 모계중심의 가족 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억압의 근원은 남성 권위자가 부재해서 빚어진 문제다.

->  그래서 남성 권위자를 세워야 한다!라는 요구(남성우월주의)로 이어졌다.


한편 사회학자 리레인워터(Lee Rainwater)는 일자리, 임금인상, 경제개혁책을 제안, 민권운동과 시위를 지속해야 한다고 부추겼다. 그럼에도 모이니핸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 결과 흑인들은 어머니와 자식 간의 우월적 관계를 강조, 남자와는 약한 연결고리를 가진 가정을 꾸린다는 주장이 횡행하게 된다.


E. 프랭클린 프레이저(E. Franklin Frazier)는 노예제가 흑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극적으로 묘사, 흑인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한편 흑인 여성들의 독립성과 자립성을 오독하여 경제적 필연성도 전통도 남성적 권위에 대한 복종심을 주입하지 못했다며 개탄(니그로 가족: 1939년 출간)



노예제와 자유 속에서의 흑인 가정(by 허버트 거트먼, 1976년 출간): 남편, 아내, 아이가 노예로 마구 팔려가면서 가족은 생이별하면서 가정이 붕괴되었다. 그럼에도 가족의 유대 관계와 문화 규범, 같이 있고자 하는 욕구는 유지되었다. 


흑인 여성들은 백인 여성들처럼 가정 내 역할에서 중요성이 낮게 평가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흑인 여성들이 흑인 남성을 지배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노예생활 실상을 왜곡하는 것이다.


요단강아 흘러라(by 유진 제노비스)에서 흑인들이 노예제에 결부된 가부장제를 받아들였다는 주장. 대부분의 여성이 자기 남자들이 수모를 당할 때마다 자신 역시 같은 신세가 된다? 딸들에게는 강인한 여성 모델이 필요한 것처럼 아들들에게는 강인한 남성 모델이 필요하다? -> 전형적인 가부장주의


미국 니그로 노예 반란(American Negro Revolts by 허버트 앱시커)에서 노예로서 자신의 운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흑인 여성은 드물다? 


노동과 폭력에 내몰린 노예들은 도망했고 그들과 후손들은 도망 노예 공동체를 남부 전역에 만들었다. 이 공동체는 플랜테이션을 상대로 약탈 원정을 떠나기 위한 기지 역할을 하면서 봉기 지도자 파견 등 노예들의 안식처 역할을 했다. 

저항 행위에는 도망이나 봉기, 사보타주만이 아닌 읽고 쓰는 능력을 은밀하게 습득하고 지식을 타인에게 전달(야학)하는 것도 있었다. 

알렉스 헤일리가 자기 조상들의 삶을 다룬 소설 ‘뿌리’에서 독학을 하고 몰래 신문을 읽으며 정치 현안을 익히고 이웃들과 나누는 모습이 묘사된다. 


노예 소유주들은 흑인 여성들의 기를 꺾기 위해 강간이라는 테러를 권장했다. 그럼에도 성적 학대 문제가 문헌에는 얼버무려지고 노예 여성들이 백인 남성의 성적 관심을 부추긴다고 넘겨짚는다.


여러 세대 여성들이 노예제 시기에 자행된 성범죄의 증거를 보존하기 위해 행했던 시도를 기록인 코레기도라(Corregidora,  by 게일 존스Gayl Jones)


톰 아저씨의 오두막(by 해리엇 비처 스토Harriet Beecher Stowe)는 노예제 폐지 운동 계열의 문학 중 유명 -> 이 책으로 많은 여성들이 노예제 반대 투쟁에 결집

하지만 작품 속 노예의 삶은 현실을 왜곡한 측면이 있다. 작품 핵심 여성 인물이 당대 대표 모성상을 옮겨놓은 흑인 여성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앨리자는 흑인 얼굴을 한 백인 모성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거트먼에 따르면 제도화된 노예 규범들이 여성들에게 혼전성관계를 할 수 있는 자유를 크게 부여했음에도, 여성들은 결국 영구적인 결혼생활에 정착해 자신과 남편의 소득을 바탕으로 가정을 꾸렸다. 모권사회 이론과 대립하는 충분한 기록을 바탕으로 설득력을 갖춘 거트먼의 주장들은 엄청나게 소중하다. 하지만 거트먼이 가정 내에서, 그리고 전체 노예 공동체 내에서 흑인 여성들의 다차원적인 역할을 구체적으로 탐구했더라면 그의 책은 훨씬 더 강력해졌을 것이다. - P31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딸이 똑같이 노예 소유주의 절대적인 권한에 복속되어 있는데 노예들 사이에서 남성우월주의가 힘을 얻는다면 명령 체계에 위험한 균열이 촉발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노동자로서의 흑인 여성들은 ‘더 약한 성‘이나 ‘주부‘로 대우받을 수 없었으므로, 흑인 남성들은 ‘가장‘이라는 인격의 후보일 수 없었고 ‘가족 부양자‘는 확실히 아니었다. 결국 남자, 여자, 아이가 모두 비슷하게 노예 소유 계급의 ‘부양자‘였기 때문이다. - P35

노예 여성과 아이들은 노예를 고용하는 대부분의 직물, 대마, 담배공장에서 노동력의 큰 비중을 차지했다. (...) 노예 여성과 아이들이 설탕 정제와 쌀 도정 같은 ‘힘든 분야‘에서 일할 때도 있었다. (...) 수송과 벌목 같은 다른 중공업들도 노예 여성과 아이들을 상당히 많이 사용했다. - P39

산업자본주의가 촉발한 가정과 공적 경제의 분열은 그 어느 때보다 여성의 열등함을 확고하게 굳혔다. 지배적인 선전물에서 ‘여자‘는 ‘어머니‘와 ‘주부‘의 동의어가 되었고, ‘어머니‘와 ‘주부‘ 모두에는 치명적인 열등함의 표시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흑인 여성 노예들 사이에서 이 어휘는 어디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 노예제의 경제적 배열은 새로운 이데올로기 안에 포함된 위계적인 성역할을 부정했다. 그러므로 노예 공동체 내에서의 남녀 관계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패턴에 부합하지 않았다. - P41

노예 거주 구역의 가정생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주제는 성평등이다. 노예들이 주인의 권력 강화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수행했던 노동은 평등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흑인들은 자신의 가정과 공동체생활의 울타리 안에서 찬란한 위업을 힘들게 달성할 수 있었다. 이들은 노예로서 겪는 동등한 억압에서 파생된 소극적인 평등을 능동적인 특징으로 바꿔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의 사회관계를 특징짓는 평등주의이다. - P49

수많은 여성들이 노예제를 피해 북부로 도망쳤다. 가장 극적인 도주를 시도한 인물 중 하나는 앤 우드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이었다. 앤 우드는 마차 한 대에 무장한 소년과 소녀 들을 태우고 자유를 향해 달렸다. 이들은 1855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출발했고 그 후 노예 추격꾼들과 총격전을 벌였다. 이 중 두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볼때 나머지는 북부에 도달했다. - P52

노예제 폐지론자 사라 그림케는 앤 우드처럼 저항에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 한 여성의 사례를 설명한다. 이 여성은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주인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수차례 시도하다 워낙 많은 매질을 당해서 "두 상처 사이에 손가락 하나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다. 이 여성은 기회만 있으면 플랜테이션에서 도망치려고 했기 때문에 결국은 무거운 무쇠목걸이 족쇄가 채워졌다. 그리고 이 목걸이 족쇄를 부숴버릴 것을 대비해서 주인은 여성의 앞니를 식별용으로 뽑아버렸다. 그림케이 따르면 이 여성의 주인들은 자선을 베푸는 기독교 가족으로 알려져 있었음에도 - P53

노예제 시기에 진행된 제도화된 강간의 패턴을 백인 남성의 성적 충동의 표현으로 봐서는 곤란하다. 마치 순결한 백인의 여성성이라는 허상이 그것을 잠재울 수 있었으리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식의 설명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강간은 지배의 무기, 억압의 무기였고, 그 내밀한 목표는 노예 여성의 저항 의지를 억누르고, 그 과정에서 노예 남성들의 사기를 꺾는 것이었다. - P57

노예제 폐지 운동에 가담했던 백인 여성들은 흑인 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특히 분노했다. 여성 노예제 반대 협회의 운동가들은 백인 여성들에게 흑인 자매들을 지켜주자고 호소할 때 여자 노예들이 겪는 끔찍한 강간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이 여성들이 노예제 반대 운동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큰 기여를 하긴 했지만, 노예 여성의 복잡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흑인 여성들은 기실 여성이었지만, 노예제 시기의 경험들-남자들과 함께 하는 고된 노동, 가정 내에서의 평등, 저항, 매질과 강간-은 이들을 대부분의 백인 여성들과 구분 짓는 어떤 성격상의 특징을 발전시키도록 부채질했다. - P61

엘리자 같은 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대다수 흑인 여성들 가운데 눈에 띄는 별종이었을 게 분명하다. 이들은 어떤 경우에도 주인의 채찍질을 감내하고 자기 가족을 위해 일하며 이들을 지키고 노예제에 맞서 싸웠던, 구타와 강간을 당하면서도 절대 굴복하지 않았던 모든 여성들의 축적된 경험을 대변하지 못한다. 명목상의 자유를 누리게 된 여자 후손들에게 고된 노동과 인내, 자립의 유산을, 끈기와 저항, 성평등에 대한 굳은 의지를, 요컨대 새로운 여성성의 표준을 제시하는 그런 유산을 남긴 것은 바로 이런 여성들이다. ******************************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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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02-03 09: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에도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저도 비슷한 부분 읽고 있는데 임신해도 대부분 봐주질 않았던걸 보면 노예가 된 흑인여성이
남성의 ‘타자‘인 여성 축에도 못들었던 비극적인 상황이 조금이나마 그려지더군요...

거리의화가 2023-02-03 09:46   좋아요 2 | URL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초반부터 강하게 느껴져요. 그리고 그 상황은 글만 보는데도 괴롭더라구요. 발췌문에는 도저히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비슷한 부분 읽고 계시다니 의지가 됩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진짜 읽어봐야겠다 싶어요. 뿌리도 읽고 싶긴 한데...(내용이 제가 다 좋아하는 것들ㅎㅎ) 암튼 미미님 화이팅입니다!

단발머리 2023-02-03 10: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님이 이렇게 잘 정리해 주셔서 즐겁고 힘찬 시작이 될 거 같아요. 저는 아직 책이 어디에? ㅋㅋㅋㅋㅋㅋ 책 어디 있나요? 두 달 전쯤에 구입해두었는데 이제 찾으러 가야 합니다. 어제 오늘 2월 여성주의 페이퍼 계속 올라와서 마음이 급해지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거리의화가님 글 읽으면서 ‘흑인 여성은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거짓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더 궁금해졌고요. 그리고 흑인 사회를 가모장 사회라 규정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뿌리>도 읽고 싶고요. 거리의화가님 덕분에 숙제가 더 늘어났네요. 이런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얼른 시작할게요. 3일인데 벌써 마음 급한 1인 드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02-03 11:36   좋아요 2 | URL
책 찾으셨나요? 아직 찾으시는중?ㅋㅋ 두달 전에 구입이라니 역시 빠르신 분!ㅎㅎㅎ 이번 달은 페이지 수가 제법 되서인지 다들 일찍 시작하시네요^^ 2월이 짧아서인 탓도 있는 것 같고요.

저도 ‘흑인 여성이 문란하다‘라는 부분에서 어째서? 왜? 했구요. 구체적으로 찾고 싶은데 체력이 안되네요~ㅎㅎㅎ 뿌리는 역시 원서 밖에 없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읽고 싶더라구요. 숙제해주시면 저도 감사하게 읽겠습니다. 흐흐~ 화이팅!

책읽는나무 2023-02-03 21: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관련서 책들이 많네요?
제목에서처럼 인종, 계급에 관한 글이라 심오한 책이리라 이미 짐작이 되긴 했습니다만,
지난 달 책 끝머리에 흑인 페미니즘과 포스트식민주의 이론과 연장이 되는 좋은 읽기 시간이 되겠군요?^^

거리의화가 2023-02-03 21:57   좋아요 2 | URL
네 맞아요. 저도 지난달 페미니즘 이론을 정리하고 이 책을 시작하니 흑인 여성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서 더 깊이 확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도서들은 대부분 원서들이네요. 번역된 것은 톰아저씨의 오두막! 이 책은 읽어봐야할 것 같아요. 다미여에서도 나왔으니 말입니다ㅎㅎㅎ

바람돌이 2023-02-04 0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관련도서 하고 보다가 다 원서인거 보고 깨갱..... ㅠ.ㅠ
저는 지금 2장까지 읽었는데 책 재밌어요.

거리의화가 2023-02-04 22:07   좋아요 0 | URL
오 어느덧 2장까지 읽으셨군요^^
ㅋㅋ 아무래도 번역 안된 책들이 많은 것 같더라구요. 마지막에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라도 번역되어 있으니 다행이죠. 이 책은 특히 계속 언급되어 읽어봐야할 것 같습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