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소유한 사람이 자신이 소유한 것을 잠시 소유하지 못하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지 궁금해서 나머지 모든 것은 그대로 둔 채, 그 한 가지만을 자기 마음에서없애 보는 것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 한 요소의 부재는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으며, 단순한 부분적인 결핍도 아닌 다른 모든 - P205

것의 전복이며, 예전 것에서는 예측할 수도 없었던 새로운 상태인 것이다. - P206

갑자기 누군가가 우리 병 중 하나를 객관적으로 보여 주면, 그병이 실제로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과 전혀 닮지 않았음을 깨닫는 것과도 같았다. "그녀는………." 하고, 그는 그녀라는 이삼인칭 대명사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사랑이나 죽음과도 흡사하지만 막연한 닮음이라기보다는, 그 실재가 우리로부터 빠져나갈까 두려워 여러 번 되풀이해서 말하는,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더 깊이 질문하게 하는 인격의 신비로움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스완의 사랑이라는 이 병은 너무도 확산되어 그의 모든 습관이나 모든 행동, 그의 생각이며 건강이며 수면이며 생명이며 심지어는 그의 죽음 뒤에그가 소망하는 것에까지도 밀접하게 섞여 그와 하나를 이루었기 때문에, 스완 자신을 거의 전부 파괴하지 않고는 그로부터 제거할 수 없었다. 외과 의사 말대로 그의 사랑은 더 이상수술할 수 없는 병이었다. - P210

사교계 생활로부터의 초연함이 절대적이지 않은아주 작은 범위 내에서 스완이 이처럼 새로운 기쁨을 맛볼 수있었던 이유는, 그가 그의 사랑이나 슬픔과는 무관하게 남아있는 그의 내부 아주 드문 부분에 잠시 동안 자리를 옮겨 살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우리 고모할머니가 그에게 부여한 ‘아들 스완’이라는 인격은 샤를 스완이라는 보다 개인적인 인격과는 구별되는 지금 가장 그의 마음에 들었다. - P211

그녀가 그를 사랑했을 때에는 "저는 언제나 - P214

시간이 있어요." 또는 "남들이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상관인가요."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그가 그녀를 만나고 싶다고 할 때마다 예의를 내세우거나 일을 핑계 대는 것이었다. - P215

"니스에서 오데트 드 크레시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나 다 안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그런 평판은 진실일지 모르지만 그들 생각이 만들어 낸것이다." 그는 이런 전설이 - 비록 사실이라 할지라도 - 오데트 외부에 존재하지, 돌이킬 수 없는 사악한 성격처럼 그녀내부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 그녀가 나쁜 짓을 하도록 이끌려 갔을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눈이 선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동정하며, 그가 품에 안고 어루만져 온 온순한 몸의 여인이어서, 언젠가 그가 그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 P218

되기만 하면 그녀의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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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져 사랑으로만 산다는 이 쾌락이, 때로는 이 쾌락의 현실성이 의심스럽기도 했지만, 결국 비물질적 감각을 즐기는 스완이 지불하는 대가가 그쾌락의 가치를 더해 주었다. 마치 바다 풍경이나 물결 소리가정말로 매혹적인지 의심하던 사람들이, 그것을 음미할 수 있는 호텔 방을 하루 100프랑에 빌리고는 아름다움, 그리고 돈에 초연한 자신들의 취향의 드문 장점을 확인하는 것과도 같았다. - P145

삶의 다른 시기에는 어떤 사람의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이나 행동에 아무 가치도 없는 것처럼 보여, 누가 그런 것에 대해 수다를 떨어도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또 그 말을 듣는 동안에도 그의 주의력 중 가장 저속한 부분만이 관심을 기울였으므로, 그런 순간에는 자신이 가장 형편없는 사람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이 낯선 시기에는 개인적인 것이 너무도 심오한 그 무언가를 지니게 되었으므로, 한 여인의 아주 작은 일과에 대해 그의 마음속에서 깨어나는 듯 느껴지는 이 호기심은, 역사에 대한 그의 지난날 호기심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수치스럽게 여겨왔던 모든 일들이, 예컨대 창문 앞에서 염탐을 하거나, 어쩌면 - P155

누가 알 것인가, 내일은 또 무관심한 사람들을 능숙하게 구슬려 말을 시키고 하인들을 매수하고 문에서 엿듣는다거나 할지, 여하튼 이 모든 일들이 필사본 판독이나 증언 비교, 기념비 해석처럼 진정한 지적 가치 있는, 진실 탐구에 적합한 조사방법인 것 같았다. - P156

우리는얼마나 실현 가능한 많은 행복을 눈앞의 쾌락을 참지 못해 희생하고 마는가? 그러나 진실을 알려는 욕망은 더 강했고, 그에게는 더 고귀한 것 같았다. 정확히 알아내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이라도 바쳤을 이 현실 상황을 저줄무늬진 창문 뒤에서 읽을 수 있으리라. 마치 예술적으로 풍요로운 귀중한 필사본을 조사하던 학자가 그 반짝이는 금빛 표지에 무관심할 수없듯이. 그는 이렇듯 따뜻하고 아름다운 반투명 물질로 만들어진 이 유일하고도 덧없는 귀중한 필사본에서 그를 열광시키는 진실을 알아낸다는 데에 쾌감을 느꼈다. 그가 방 안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우월감은 ㅡ 그에겐 그렇게 느껴야 할 필요가 있었다. – 아마도 안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자기가 안다는것을 그들에게 보여 줄 수 있다는 데 있었다. - P156

오데트가 사는 세계는, 그가 그녀를 그곳에 두느라고 시간을 보내고, 어쩌면 그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런 무섭고 초자연적인 세계가 아니라, 어떤 특별한 슬픔도 발산하지 않는 현실 세계가 아닐까!
그가 지금이라도 글을 쓸 수 있는 이 테이블이며, 지금이라도맛볼 수 있는 이 음료수며, 그가 감사하는 마음만큼이나 호기심을 품고 찬미하며 바라보는 이 모든 물건들을 포함하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이 물건들은 그의 몽상을 흡수하면서 그를 몽상으로부터 해방해주는 동시에, 물건 자체는 반대로 몽상으로 풍요로워져 만질 수 있게 실현해 보여 줌으로써 그를흥미롭게 하고, 그의 시선 앞에서 입체감을 띠며 동시에 그의마음을 진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 P195

그는 병 연구를 위해 스스로 균을접종받은 사람만큼이나 명철하게 자신의 병을 관찰하면서, 자신이 치유되면 그때는 오데트가 하는 일에 무관심해질 거 - P196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그의 병적인 상태에서 그가 죽음만큼이나 두려워한 것은 그가 처한 모든 상황의 죽음이나 다름없는 바로 그 치유였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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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속 2.8독립선언, 그 역사적 의의 - 젊은이들의 만남과 꿈
오노 야스테 외 지음, 재일한인역사자료관 엮음, 배영미 외 옮김, 이성시 감수 / 삼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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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독립선언은 도쿄에서 일어난 3.1 운동의 도화선이 된 사건으로만 생각해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목이 주는 의미와 중요성을 인지하게 되었다.

3.1 운동에 대해 축적된 연구량은 방대하다. 반면 2.8 독립 선언에 대해서는 3.1독립운동과의 관련성 측면으로만 볼 뿐 2.8 독립선언 자체에 대한 연구나 2.8 독립선언과 관련한 동아시아 연구는 더군다나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나조차도 2.8 독립선언은 3.1 운동의 전사적 사건으로만 인식했던 것 같아 부끄럽다.

2.8 독립선언은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 유학생이 '조선청년독립단'이란 이름으로 도쿄 재일조선YMCA 회관에서 발표한 독립선언이다. 이광수가 한국어, 일본어, 영어 세 언어로 기초 선언서를 작성하였고 2월 8일 오전 각국의 주일대사관, 일본의 제국의회, 언론사로 송부되었다. 1920년 상하이 잡지 《신한청년》 창간호(1920년 3월)에 중국어판도 추가로 게재되었다(이광수가 편집인).
선언서의 내용은 '한국병합'은 조선인의 의사에 따른 것이 아니다. 일본의 식민 지배가 조선 민족의 생존권을 빼앗고 있다. 국제연맹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군국주의적 침략'을 불식시키려 하고 있다. '민족자결주의를 우리 민족에게도 적용할 것을 만국강화회의에 청구'한다, 등이다. (P.17)
2.8 독립선언은 파리강화회의에서 조선의 독립문제를 논해달라는 요구를 담은 선언이었다.

조선인 유학생의 계몽 활동은 실력양성론에 근거를 두었다. 먼저 실력을 쌓아야 독립을 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직접적인 독립을 목표로 삼지 않고 합법적 활동을 근거로 삼은 것은 조선의 독립을 목적으로 한 단체를 조직하는 일이 치안경찰법으로 인해 표면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조선인 유학생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중국인 유학생을 만나 비합법 독립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1차 대전에 승전국이 된 일본은 1915년 1월 중국의 위안스카이 정권에 21항의 요구를 내건다. 21개 조 요구로 인해 일본은 중국을 단독 적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1915년 2월 11일 중국인 유학생은 도쿄에서 중국인 유학생 야오졘난과 조선인 유학생 하상연이 중화유일기독교청년회단에서 모임을 갖고 신아동맹당이라는 비밀결사를 만든다. 신아동맹당은 일본 제국주의 타도와 조선 중국 타이완 해방을 위한 조선 중국 타이완 동지들간의 상호협력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단장은 메이지 대학에 다니던 중국인 유학생 황제민이 맡았다. 구성원들은 모두 조선 중국 타이완 유학생이었는데 중국인 유학생이 중심이었다. 중국인 유학생들은 조선인 유학생들과 타이완 유학생 간의 연계 역할을 맡았다. 이들은 당원을 모집하면서 박은식의 한국통사를 배포하는 활동을 했다. 신아동맹단은 1917년 관헌의 탄압을 우려하여 자주적으로 해산했다. 이들은 비합법적 운동을 벌이고 동아시아 유학생 네트워크 조직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신아동맹단 해산 후 1918년 상하이에 건너간 장덕수가 여운형, 조동호 등과 함께 11월 신한청년당을 만든다. 이들은 알려져 있듯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특사로 파견하였다. 파리강화회의에는 혁명파 중국인들도 참여하였다. 이 무렵 조선인 유학생들은 2.8 독립선언을 준비했다. 이들은 조선이 파리강화회의에서 논의될 민족자결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보편적 인권적으로 식민지 민족들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민족자결을 요구했다.

1장에서 2.8 독립선언에 대한 재평가를 담은 outline을 잡았다면 2장에서는 2.8 독립선언 이후의 조선인 유학생들이 일본 국내 정책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대응했는지 보여준다. 3장에서는 2.8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이들과 교회 세력과의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4장은 타이완인 유학생과 조선인이 어떻게 연대했는지 알 수 있다. 5장은 5.4 운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들여다본다. 구체적으로는 반제국주의적인 흐름에서 평가할 것인지 아니면 중국 자체의 내셔널리즘 관점에서 평가할지다. 이보다는 이 이분법을 넘어서서 결국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평가해야할 수도 있겠다.

이처럼 1919년 2.8 독립선언 이전에 이미 한국, 중국, 일본, 타이완 유학생 간의 교류가 활발했다.
2.8 독립선언서가 재일본YMCA회관에서 제창, 발표되었다고 해서, 또 선언서의 구성원 대부분이 기독교도인이라고 해서 당연히 교세 세력과 기독교도인들이 중심이 됐을 거라는 것이 좁은 해석일 수 있다고 느꼈다. 독립선언서의 작성자인 이광수만 해도 교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재일본YMCA회관은 기독교도를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유학생들의 교류공간으로 더 역할하는 측면이 컸다.
2.8 독립선언서는 조선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로 출판되었다. 3.1 독립선언서와 비교되는 지점이었다. 이광수가 작성한 2.8 독립선언서 영어판은 현재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이 어딘가에 묻혀 있거나 발견된다면 그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2019년 2.8 독립선언 및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도쿄에 있는 재일한인역사관에서 열린 심포지엄을 바탕으로 기획된 것이다. 그래서 말미에 이들의 토론의 내용과 참고자료로 2.8 독립선언서의 다국어판(조선어판, 일본어판, 중국어판, 영어판)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의 사건을 다각도로 보려는 노력은 역사 공부에 도움이 된다. 2.8 독립선언을 단층적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면 이 책을 통해 다층적으로 이해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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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2 - 3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2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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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은 다양한 역사적 배경의 사건들이 등장하는 만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어려웠다. 인상적이었던 몇몇 장면의 대화를 중심으로 소감을 정리해보려 한다. 


이상현과 신태성이 시국에 대하여 논한다. 

"송병준이가 조선소작인상조회를 만들었다니 웃기는 일 아니겠소." 

"그보다 더 웃기는 얘기는 조선 내정독립 청원운동이지요. 허허헛. 친일파 송병준한테 총리 자리 줄지 뉘 알아요? 허허헛헛..." (P.152)

조선소작인상조회는 1921년 8월 27일 서울에서 송병준이 친일파 20여명을 모아 조직한 단체였다. 이 상조회는 전국 주요지역 30여 곳에 지회를 설치하고 소작인의 항일인식을 무마시키는 데 주력하였으며, 소작인이 착취를 당하는 것은 일본을 위하여 정당하고도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동척(東拓) 농장 같은 곳에는 자체적으로 지주의 이익을 위한 소작단체를 증설하도록 유도하였다. 소작인의 상조회라는 미명 아래 순수한 소작인을 착취, 선동해서 일본에 협력하다가 1930년대에 없어졌다. 그야말로 기만이다. 


조선 내정독립 청원운동은 자치론을 말한다. 식민지 조선에 독자적 의회를 설치하고 내정에 대한 자치권을 부여하자는 주장으로 송병준, 이광수 등을 비롯해 조선 귀족과 지식인들이 동조하거나 적극 협력하였다. 자치론은 1920년대 재조일본인과 총독부 관료, 일본 식민학자, 일부 지식인과 정치인들, 친일파 한국인들과 총독부의 민족 분열 정책에 회유된 일부 민족 운동 세력까지 참여하면서 결과적으로 일제 식민 통치 지배에 이용되게 되었다.


쎄리판 심(러시아에 귀화한 조선인) 집에 가게 된 송장환과 이상현은 쎄리판 심의 둘째딸인 수앵과 그의 남편 윤광오, 묵당 손유진을 만나 서로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저도 <민족개조론>인가 그거 읽고 실망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윤광오는 묵당에게 시선을 돌리며 묻는다.

"놀랄 정도로 졸문이더군. 너절해. 젊어서 그랬겠으나 아는 것 자랑이 심해."

"저는 문장가가 아니어서 그런 걸 가지고 논할 자격은 없겠습니다만 거 이상한 얘기가 여간 많지 않더군요. 어째서 이광수는 <민족개조론>에서 영국의 식민지 정책을 추켜세웠을까요? 일본이 아닌 불란서의 식민지 정책과 비교는 하고 있었습니다마는 도대체 그 저의가 뭐냐 그 말입니다."

"일본도 영국식으로 조선을 다스려준다면 용납하겠다 그 얘깁니까? 아니면  영국을 본받아 좀 잘 봐달라는 얘깁니까? 아 글쎄 노골적인 것은, 그래도 영국은 실리를 취했다 그러고 노닥거리지 않았겠습니까? 그 반역자가 따지고 들면 뭐라 대답할까요." 윤광오가 입에 거품을 물고 흥분한다.

"민족을 위해서, 왜놈들에게 눈가리개 해놓고 표면상 합법적으로 조직을 확대한다 답변할까요?" 송장환이 야유하듯 말했다.

윤광오는, "그러면 그것은 합리주의 책략인데 <민족개조론>에는 도처에 도덕을 운운하고 있지 않아요? 그건 모순입니다." (P.202~203)


이광수는 독립운동가로 출발하여 <민족개조론>을 기점으로 조선 민족 자치론으로 기운다. 소설 속 대화에서도 느끼듯이 당시에도 논란이 심했을 거라 여겨진다. 소설가로서는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이후 변절한 그는 친일 문학가의 꼬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홍이가 부산에 있는 영팔이 집을 찾아가 환국의 아들 영호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영팔이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공부도 물론 해야겠지만 학생들이라고 편하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도 은밀한 조직을 갖고 있습니다."

영호의 말은 부자연스런 것이었다. 자신을 인식해달라, 그리고 신뢰해달라, 그런 바람, 기대 때문에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을 말하는 부자연스러움이었다.

...

"독립운동이 그리 식은 죽 먹듯 쉽게 할 수 있는 일인 줄 알았나? 혁명투사는 이마빡에다 나는 혁명투사요, 써 붙여놓고 다니는 사람인 줄 알았나? 나는 운전대나 잡고 집안 걱정이나 하고 사는 놈이다만 그런 정도의 상식은 안다. 사내자식이 일을 하려면 부모 형제, 처자도 타인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정도의 상식 말이다. 너는 내 어디를 믿고 그런 말을 하느냐 말이다. 내가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이가! 너 같은 생각을 가진 놈들이 운동을 한다면 독립이 되기는 커녕 빗자루로 쓸듯이 일하는 사람 말짱 감옥행이다."

...

"앞으론 조심해! 무슨 일을 하든, 너가 생각하는 세상하고 세상은 다르다." 홍이는 성이 난 것처럼 담배와 성냥갑을 호주머니 속에 넣고 꽁초를 버린 종이를 꾸겨 쥐었다 놓고 일어선다. (P.446~447)


윤국이는 자신의 학교도 광주학생운동으로 복잡해질 거라며 서희에게 넌지시 말을 꺼낸다. 

"크게 일이 벌어질 모양입니다. 우리 학교에서도 가만 안 있을 것 같습니다. 연일 학생들이 잡혀간다는 소식이고." 

"설마 네가 주동하는 건 아니겠지?"

"상급생이 있으니까 그렇진 않지만 주동이 되면 안됩니까?"

모자는 서로 쳐다본다. 

"안 된다 할 순 없지만 너는 아버님이 서대문에 계시니까 신중히 처신하는 것이 좋겠구나. 그리고 만용은 금물이니라. 보다 큰일을 위해서 너희들은 자라야 한다."

서희 얼굴에는 애원하고 달래는 빛은 없었다.

"이번엔 어른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학생들 문제가 아닙니까?"

윤국은 불만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상대는 어른이다. 어른이다 뿐이겠느냐? 너희들이 사슴이면 그들은 사냥꾼인 게야."

"사자가 되면 될 거 아니겠습니까? 모두 사자가 되면 말입니다. 설사 우리가 학생의 신분을 잃고 정당치 못한 짓을 한다 하더라도 그네들은 근본에서부터 지엽에 이르기까지 정당하지 않았으니까요!" (P. 471~472)


광주학생운동은 3.1운동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덜 주목된 측면이 있다. 광주학생운동은 1929년 11월 3일 발생한 대표적 학생운동으로 1920년대 전국 각급 학교에서 조직된 독서회 등의 비밀조직을 통한 학생들의 민족해방의식 성장의 결과로 일어났다. 이들의 구호는 '식민지 노예교육의 철폐, 조선독립만세였으며, 구체적으로는 조선 역사의 교수, 조선어의 교수, 관료적인 교사와 무자격 교사의 배격,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 보장, 치안 유지법 폐지' 등이었다. 학생운동은 광주학생운동을 기점으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코민테른의 12월 테제로 말미암아 노농계급에 바탕을 둔 민족해방운동이 강조되면서 학생층도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운동과정에서 탈락할 수 밖에 없는 계층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었다. 


홍이가 영호를 만나 그를 햇병아리로 여기고 서희는 윤국이를 몸은 컸어도 치기 어린 젊은 매로 보는 것은 어찌 보면 비슷한 맥락 같이 여겨진다. 

그들은 이상과 현실이 병치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현실은 간단하지 않다. 홍이가 한 말처럼 이 사람이 밀정인지 친일파인지 독립운동가인지 까놓고 이야기해서 내 편인지 얼굴 보고 몇 마디 나눈다고 결코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



지난 권에서 봉순이의 운명이 너무 애처롭고 가여웠었는데 그는 결국... 주변에 민폐만 된다며 넋두리를 했다는 그의 말이 석이에게는 특히나 힘겨웠을 말이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사랑을 하는 남녀가 또 있다. 인실이와 오가타 지로다. 압제하는 권력 일본인인 오가타 지로, 피압박 민족 조선인인 인실. 특히나 인실이는 조선이 일본에게 강제로 병합당했으니 일본은 당연히 증오해야 하는 대상이고 독립을 해야 하는 민족의 구성원이었으니 오가타 지로를 향한 스스로의 사랑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가타 지로는 사랑은 개인적인 것일 뿐 사회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만 바라볼 수 있었을까. 이런 남녀가 당시 얼마나 많았을까 싶어 마음이 좀 아팠다.


오가타는 인실을 껴안는다.

"사랑은, 남녀의 사랑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나 약속하겠어요. 오가타상을 위해 결혼 안 할 거예요. 혼자 살게요. 당신에게 하는 약속이에요."

인실이는 울어버린다.

"용기가 없어요. 나는 겁쟁이예요. 부모 형제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에요. 허영도 아니에요. 남의 이목도 아니에요. 내가, 내가 나를 용서 못하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고 그래도 난 내가 당신에게 가는 것을 허락할 수 없어요."  (P.412)

오가타는 무모함으로라도 인실이를 잡아보려 했으나 인실이는 도무지 그런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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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초한지 3 원본 초한지 3
견위 지음, 김영문 옮김 / 교유서가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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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로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안타까움과 회한이 밀려오는 역사의 장이었다. 패왕 항우는 오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한신은 버림 받은 뒤 모함을 받아 여후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팽월, 영포도 목이 잘려 죽는다. 그나마 장량만이 스스로 물러나 은퇴하여 신선처럼 은거했다는 것이 달랐을까. 물론 소사도 자연사하기는 했다. 자신이 맡던 업무를 조참에게 넘겨주고 주변의 칭송을 받으며 눈을 감을 수 있었으니. 지극히 정상인데 사건 사고들이 많은 시대니 더 비정상처럼 여겨지는 아이러니다. 나는 장량의 마무리가 참 멋지게 보인다. 권세를 누리며 계속 최고위에 있어도 되었을텐데 자신이 물러날 때를 알았고 그 후에는 벼슬길을 계속 사양하며 끝내 신선처럼 노닐고 유유자적하며 살았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힘과 권세에 의지하는 사람은 잠시나마 권력과 부귀는 얻을 수 있을 지언정 그 말로는 결국 좋지 않은 듯 싶다.

역이기(역생)는 한왕의 명에 따라 한나라에 투항을 설득하기 위해 제나라로 떠난다. 이 때 조나라에 있던 한신은 제나라를 정벌을 결심하던 차였는데 역이기의 서찰을 받고 제나라에 있는 역이기를 만난다. 한신은 역이기와 성고에서 한왕과 연합하여 초나라 정벌을 논의하려했던데 괴철이 이를 막아선다. "불가하오! 한왕은 애초에 장군에게 제나라를 빼앗으라 했으므로 그 뜻이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지금 또 역생을 파견하여 제나라에 유세하라 한 것은 틀림없이 역생이 장군의 공을 탈취하려고 벌이는 일입니다." (P.36)
한신은 고심 끝에 역생의 간청을 듣지 않았는데 제왕은 역생을 기름을 가득 채운 가마솥에 삶아 죽인다(팽살). 한신은 이 소식을 듣고 분노했다고 하는데 정말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잖나.

패왕은 제왕이 한신에게 포위되어 위급한 상황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용저와 주란으로 하여금 제나라를 구원하고 한나라를 격파하라 지시를 내린다. 한신은 유수강 상류에 모래주머니를 놓아 물을 흐르지 못하게 해놓고 강 중간에 '등롱을 매달고 용저를 참하리라'(P.52)라는 나무 팻말을 세워 놓는다. 초나라 장수 용저가 등롱을 내리치자 한나라 군대는 쏟아져 나오고 유수강물은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다. 용저는 조참에게 죽고 주란은 도주한다. 한신은 주란을 추격하다 실패하였으나 제왕 전광을 사로잡았다(전횡은 도망). 이 때 한왕이 '자신과 함께 초나라를 정벌하자'라며 조서를 보낸다.

괴철은 한신에게 한나라를 배반하라고 유세한다. 삼분지계다. "두 왕의 목숨은 모두 족하에게 달려 있습니다. 양쪽의 이득을 모두 취하고 천하를 삼분하여 솔발처럼 정립하면 누구의 세력도 감히 먼저 움직일 수 없습니다. 족하께서 강력한 제나라를 근거지로 삼고 연나라와 제나라를 복종시켜 백성이 바라는 바에 따라 서쪽으로 나아가 백성을 위해 그들의 목숨을 보호해주면 천하가 바람에 휩쓸리듯 호응할 것입니다."(P.69) 하지만 한신은 육가의 반대가 있기도 했고 스스로 주저하면서 괴철의 계책은 한신에게 쓰여지지 못한다(이후 괴철은 시장통에서 미치광이 짓을 하며 혼자서 노래를 부르거나 실없이 웃고 떠들었다).

초나라 군과 한나라 군은 형양성 근처에서 전투를 하게 되는데 이 때 패왕은 한왕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네놈과 여러 해 전투를 치렀지만 아직 직접 싸워본 적은 없다. 오늘 승부를 내자. 네놈과 내가 대적하여 자웅이 결정되면 온종일 서로 대치하며 삼군을 괴롭히지 말자." 한신이 한왕과 사이에 틈이 생기고 코너에 몰려 있는 패왕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물러설 길은 없고 지금 뿐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때 한왕은 지지 않고 패왕의 10가지 죄를 이야기하며 패왕의 분노를 증가시킨다. 패왕의 창 끝을 피한 한왕이었으나 종리매 휘하의 궁수들의 화살은 피하지 못했다. 한왕의 가슴에 꽂힌 화살은 심장 깊숙한 곳까지 입은 부상은 아니었어도 피부가 찢어지는 등 한동안 병상에 일어나지 못한다.

패왕은 군량이 부족하고 형양성을 단시간에 함락할 수 없음을 깨닫고 광무에서의 일전을 위해 퇴각한다. 마침 한신도 한나라 군대에 합류하고 드디어 광무산에서 초나라와 한나라가 큰 전투를 벌인다.
"내일 장수들에게 임무를 맡기고 각각 방향을 알려준 뒤 약정한 시간이 되면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면서 스스로 묘책을 찾아야 하오." (P.91) 한신은 진채를 세우고 10진영으로 군대를 배치한 뒤 포성이 울리자 공격에 들어간다. 초나라 군사 5천명이 궁노수가 쏜 화살을 맞고 7, 8할이 쓰러지는 동안 주은과 환초가 패왕을 따라 포위망을 뚫으며 탈출한다. 한왕은 패왕 무리를 쫓았고 종리매가 태공을 이용하자 간언한다. 팽성에 구금되어 있던 태공을 군영으로 진작부터 데려왔던 터였다. "나는 생전에 우리 부모님을 봉양할 수 없겠구나." (P.104) 한왕은 역시나 아버지를 구조할 마음이었다. 그러나 장량과 진평은 패왕의 계략을 눈치채고 항복해서는 안 된다 간언한다.
한신은 초나라의 탈출로를 차단하고 광무산을 에워싼 뒤(태을진을 펼치고) 패왕 항우를 마침내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고대 중국의 진법은 보통 주역을 바탕으로 한다. 진법에 따라 배치된 군사들의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당시 전투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고 비장함과 엄정함을 느끼게 하였다.

긴 전투 끝에 휴식이 필요하다 생각한 초와 한은 홍구 회담을 통해 국경의 경계를 정하고 협정을 맺는다. 하지만 한왕은 약속을 위반하고 100만의 군대를 모으며 초나라와의 결전을 준비한다(한신, 영포, 팽월은 참가하지 않았다). 드디어 성고를 나선 한나라 백만 대군은 구리산 전투에서 매복 작전을 펼치며 승기를 잡는다. 해하 전투에서 한나라 군대와 초나라 군대는 크게 격돌한다. 이 때 패왕 항우의 기세는 마치 한 마리의 범을 보는 듯하였다. 그의 전투력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는 느낌인데 1:1로 붙어서는 당연히 이기는 것이고 심지어 1:N으로 붙을 때도 결코 밀리지 않고 상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라니 가히 탄복할 만하였다. 책에서도 대체 몇 번이나 이런 장면들이 나오는지 세다가 포기했을 정도다. 항우의 전투력은 아무튼 최고인 걸로.
하지만 그의 마지막이 찾아오고야 말았으니... 오강에서 초나라 대군의 모습은 워낙 많은 드라마와 영화로 나와 있어 그 모습을 가히 짐작할 만하지만 소설로 직접 보니 비장미가 더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는 무엇보다 한나라 장량의 계책이 주효한 탓이다. 남은 초나라 군사가 8천여명 정도였는데 고향을 떠나 전투에 임한지 오래 되었고 군량까지 떨어져 배도 고파서 다들 지쳐 있는 상태였다. 이 때 장량이 초나라 군대의 기세를 꺾기 위해 그 유명한 피리 불기 작전을 결행한 것이다. 구슬픈 피리 소리와 더해진 노래는 초나라 군대의 사기를 꺾기에 충분하였다. 마치 흔들리는 등불에 지속적으로 바람을 불었다고나 할까. 8천명의 군사 중 남은 군사가 8백명도 되지 않았다니 대세는 한나라로 크게 기운 셈이다.
마지막임을 직감한 패왕 항우는 우희에게 피하여 한나라에 투항할 것을 종용하지만 우희는 자결로 삶을 마감한다. 우희의 마지막을 보면서 솔직히 유방의 정부인 여후와 비교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굳이 왜? 죽을 이유는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역사적 평가는 후대의 몫이겠지만. 오강에서 오추마가 앞발을 들고 포효하며 장강 속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도 유명하다. 오추마가 사라질 때 그의 마음이 또 한번 무너졌을 것이다. 패왕 항우도 이곳에서 유방과의 싸움을 끝내고 스스로 삶을 끝맺는다.

한왕이 조회를 마치고 신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기밀 급보가 날아든다. "한신이 초왕에 책봉된 뒤 평민의 밭을 빼앗아 부모의 묘를 썼고, 병마를 늘여 세워 고을을 소란하게 합니다. 또 초나라 패장 종리매를 숨겨 주고도 자수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다른 뜻을 품고 있으니 이는 진실로 반란을 도모하려는 것입니다. 서둘러 그자를 처리하셔야 합니다."(P.274) 한왕은 한신의 속뜻을 알아내기 위해 진평의 계책에 따라 운몽으로 순행을 가면서 지방의 민심을 살피기 위해 제후들을 회동시키고 만약 이에 오지 않는 자가 있으면 정벌하겠다는 엄포를 놓는다. 종리매는 한신에게 간언하였으나 듣지 않자 자결하고 한신은 그의 수급으로 한왕과 교섭을 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의심에 가득찬 이의 눈과 귀에는 무엇도 들어오지 않는 법, 한왕은 한신을 포박해 사로잡는다. 그렇지만 한왕은 한신이 개국 공신임을 생각하여 회음후에 봉하고 돌려 보낸다. 한신은 이후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는다.

한신이 팽당한 것을 알게 된 진희는 처음에는 분노였고 이후 반란을 결심한다. 한왕은 이에 영포와 팽월에게 진희를 토벌하게 하였고 소식을 들은 한신은 구원병을 보내지 말것을 간언하는 서찰은 보낸다. "만약 두 분이 진희를 격파하고 나면 한나라 군주는 틀림없이 꼬투리를 잡아 두 분을 해칠 것이오."(P.323) 한왕은 조나라와 대나라에 진희를 토벌하러 가기 위해 원정을 나선다. 이 때 한신의 심복 사공저가 승상인 소하에게 가 몰래 고변을 한다. "진희의 장수와 군사에게 지름길로 와서 장안을 탈취하게 하고 한신 자신은 관중에서 거병하여 호응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털끝만큼의 거짓도 없습니다. 소인이 술에 취해 나막을 폭로하자 한신이 소인을 죽이려 했습니다. 이에 고변한 것입니다."(P.339) 소하 옆에는 여후도 있었다. 여후는 상의할 일이 있다며 한신을 입조하게 하고 포박당한 한신은 "괴철의 계책을 쓰지 않은 것이 참으로 후회된다."(P.343) 그렇게 한신은 미양궁 장락전에서 참수당하고 삼족이 멸해졌다.
한신은 한나라의 모사꾼으로 초나라와의 전쟁의 수많은 전투에서 비상한 계책으로 승리를 이끌었던 재상이었으나 말로는 이렇게 되고 말았다. 그의 욕심이 컸던 것일까 아니면 한왕 유방의 눈과 귀가 가리워진 탓일까.

앞서 이야기했지만 괴철은 참수당한 한신의 목을 거두어 묘소를 만들어 장사를 지냈다. 팽월과 영포도 목이 잘리며 참수 당한다.

한왕 유방의 말로는 어떠했을까. 나이가 들고 병이 든 그는 "내 병은 오래 전쟁터를 전전하며 종일토록 우울한 마음을 품고 살다가 생긴 것이오."(P.414) 황후는 용하다는 의원을 불러 한왕을 진찰하게 하고 10일이면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으나 한왕은 목숨이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이라며 진료를 거부한다. 이후 유방은 더 병이 위중해졌고 태자를 불러 앞으로의 한나라를 부탁한다. 향년 63세에 한 고조는 그렇게 세상을 떠난다.

진나라 말 혼란한 시기 세상을 바로잡겠다며 일어난 많은 장수들 중 하나였던 유방과 항우. 둘은 한나라와 초나라를 이끌며 한 시대를 이끌었고 대결 끝에 한나라의 시대로 접어든다. 유방이 항우에게 승리한 것은 결코 개인의 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힘만으로 따지면 유방은 항우를 결코 이길 수 없었다. 그러나 지혜나 계략으로는 유방이 좀 더 나았으나 비등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결국 주변의 사람들을 얼마나 잘 사용했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한고조가 죽고 나서 들어선 황제 혜제는 여후의 힘에 밀려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초한지를 보면서 진나라 말의 혼란한 상황과 한나라로 통일되기까지의 과정을 스릴감 있는 전개로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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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목 2023-02-16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물지만 장량에 대해 신랄하게 평한 학자가 있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량과 진평은 모두 한고조의 참모였다. 그러나 장량의 재주는 진평보다 훨씬 뛰어났다. 진평의 집안은 증손에 이르러 죄를 받아 작위를 박탈당했다.그러나 진평보다 뛰어난 장량의 집안은 그가 죽은 지 겨우 10년 만에 작위를 박탈당했고,이후의 후손은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했다. 장량은 어째서 진평보다 먼저 화를 당했을까? 나는 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패공(한고조 유방)이 요관을 공격할 때 진나라는 패공과 연합작전을 펴려했다. 이때 장량이 패공을 설득했다. ‘‘저들이 해이해진 틈을 타 공격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패공이 장량의 말에 따라 병력을 이끌고 싸워 진나라 군대를 격파했다.( 주 - 패공이 요관을 지키는 진나라 군대를 공격할 때 장량은 진나라 장수를 매수할 것을 권했다. 과연 진나라 장수가 진나라를 배반하고 패공과 연합하려 하자, 장량은 다시 진나라 군대가 태만해진 틈을 타서 공격하도록 권했고, 패공은 진나라 군대를 공격하여 대파하였다.) 항우는 한왕(한고조 유방)과 천하를 나누기로 약속하고 병력을 철수해 팽성으로 돌아갔다. 장량은 한왕을 설득하며 군대를 돌려 항우를 추격할 것을 권유했다.결국 한왕은 항우의 군대를 섬멸하였다. 이 두가지 일은 항복한 적군을 죽인 것보다 지나친 것이니 장량이 후손이 없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위의 글은 용재수필에 기록된 내용이다. 항우를 이긴 후에 장량이 조언한 내용들도 살펴보면 다수의 개국공신들이 장량을 좋게 생각했을리는 없었을거라는 생각이든다. 개국공신을 숙청한 주역은 여후였고, 한고조 유방 사후에 여후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제시한 사람은 장량의 아들이었다.

그로인해 공신들은 여후사후에 여씨일족을 멸족시킨 후에야 안도할 수있었다. 여후가 권세를 쥐고 있을 때 장량이 여후에게 적절한 조언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2023-02-17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3-02-17 0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러 사람 이야기가 나오고 누가 이기고 누가 지든 시간이 가면 다 죽지요 그런 거 보면 어쩐지 아쉽기도 해요 삼국지 마지막도 그런 느낌이었는데... 다음 왕은 어쩐지 힘이 없어 보이고,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2-17 13:48   좋아요 2 | URL
그렇죠. 삼국지도 배경만 다르지 결국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온갖 사건이 발생하며 벌어지는 암투와 싸움이 나오는 것은 비슷한 듯 합니다^^; 왜 강력하게 들어선 왕 뒤에는 유약한 왕이 들어서는 걸까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