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건배 인사는 두 나라를 가까워지게 하기 위해, 테오도시우스 2세의 멋진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그 ‘친화력‘을 돈독히 하기 위해 이십 년 동안 해 온 협상 이상의 것을 해낸 겁니다. 물론 이건 말 한 마디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어떤 성공을 거두었는지,
유럽의 모든 신문들이 얼마나 떠들어댔는지, 얼마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또 어떤 새로운 소리를 냈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이 말은 왕의 스타일과도 잘 어울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는 왕께서 그처럼 완벽한 다이아몬드를 날마다 발견하신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미리 준비한 연설문이나 더 낫게는 즉흥적인 대화에서조차도 몇몇 강경한 단어를통해 왕께서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는 ㅡ 저는 ‘자신의 서명을‘ 하지 않는 일이라고 말하려고 했습니다만, 거의 없습니다. 이 점에 관한 한 저는 이런 종류의 모든 개혁에는 - P72

반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편파적이라는 의심은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혁이란 십중팔구 위험하니까요." - P73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현상의 순전히 주관적인 성격을이해하며, 또 세상에서 이름이 동일한 자와 구별되는 추가적인 인간을 만들어 내는 창조 유형과, 이 추가적인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 대부분이 바로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것임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마도 극소수인 듯하다. 그러므로 우리 눈에보이는 모습과 전혀 같지 않은 존재가 우리 삶에서 큰 비중을차지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 P81

우리와 다른 존재를 연결하는 관계는 상대방이 우리결점을 판단하기 위해 취하는 관점이 우리와 같을 때 더욱 성스럽게 축성된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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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 본기

과연 명문이 맞구나. 유방과 항우애 관련된 인물과 사건들이 실제로 사기에만 나오는 것들이 많아 다른 책에서도 이 항우본기를 참고한다고 한다.
통감절요에 항우 관련 부분도 읽다보니 굉장히 많은 부분을 실었구나 알게 된다.

"지금 갑자기 큰 명성을 얻은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 남의 밑에 있는 것이 더 낫다. 이는 일이성공하면 후侯에 봉해지지만 일이 실패해도 도망가기가 쉬우니, 이는 세상이 주목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말에 따라 진영은 왕이 되지 않기로 결심하고는 군관들에게 말했다.

"항씨는 대대로 장군의 가문이며 초나라에서도 명성이 있소. 지금 큰일을 일으키려 하니 그 사람이 아니라면 불가할 것이오. 우리가 명문 귀족에 기대면 반드시 진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소."
이에 무리들은 그 말에 좇아 군대를 항량에게 귀속시켰다. - P287

항량은 동아에서 군대를 일으켜 서쪽으로 정도에 이르러 기다렸다가 다시 진나라 군대를 쳐부수고, 항우의 무리가 이유를 베자 더욱 진나라를 경시하며 교만한 낯빛을 보였다. 송의宋義가 항량에게이렇게 간언하며 말했다.
"싸움에서 이겼다고 해서 장수가 교만하고 병졸이 게으르면 패하는 법입니다. 지금 병사들이 다소 게으른데 진나라 병사는 날로 늘어나고 있으니 신은 그대를 위해 이 점이 두렵습니다."
• 그러나 항량은 그 말을 듣지 않고는 송의를 제나라 사신으로 가게했다. - P290

항우가 말했다.
"제가 들으니 진나라 군대가 조왕을 거록에서 포위하고 있다 하니, 서둘러 군대를 이끌고 강을 건너 초나라가 바깥을 치고 조나라가 안에서 호응한다면 반드시 진나라 군대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송의가 말했다.
"그렇지 않소이다. 소를 물어뜯는 등에는 이를 이길 수 없소.
지금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는데, 싸움에서 이긴다면 병졸들이피폐해질 것이니 우리는 그 틈을 타야 하오. [진나라가 승리하지못할 경우 우리가 군대를 이끌고 북을 치며 행군해 서쪽을 친다면,
반드시 진나라를 뒤집어 버릴 수 있소. 그러므로 먼저 조나라가 싸우도록 하는 게 낫소. 견고한 갑옷을 입고 무기를 잡는 것은 내가 그대보다 못하지만 앉아서 계책을 운용하는 것은 그대가 나보다 못할것이오." - P292

항우는 이미 진나라 궁실이 모두 불에 타 부서졌음을 보았고, 또마음에 그리움이 있어 동쪽으로 돌아가려 하면서 말했다.
"부유하고 귀해졌는데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에 가는 것과 같으니 누가 그것을 알아주겠는가!"
그러자 세객이 말했다.
사람들이 초나라 사람은 원숭이가 사람 모자를 쓴 것일 뿐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렇구나."
항우가 그 말을 듣고는 세객을 삶아 죽였다. - P307

항우는 밤에 일어나 막사 안에서 술을 마셨다. 항우에게는 이름이우라고 하는 미인이 있었는데, 총애하여 늘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추雕오추마라는 이름의 준마가 있었는데 늘 타고 다녔다. 이에 항우는 비분강개하여 직접 시를 지어 노래로 읊었다.
"힘은 산을 뽑을 수 있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한데, 때가 불리하여 추가 나아가지 않는구나. 추가 나가지 않으니 어찌해야 하는가,
우여, 우여, 그대를 어찌해야 하는가!"
여러 번 노래 부르니 우 미인도 따라 불렀다. 항우가 울어 몇 줄기눈물이 흘러내리니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울며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도 못했다. - P324

항우 혼자서 죽인 한나라 군대가 수백명이었다. 항우의 몸 또한 십여 군데 부상을 입었다. 항우는 한나라의 기사마騎司馬기병대장에 해당하는 직책 여마동呂馬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는 내 옛 부하가 아니었더냐?"
여마동이 왕예에게 항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이 항왕입니다."
그러자 항우가 말했다.
"내가 듣건대 한나라가 내 머리를 천금과 일만 호의 읍으로 사려고 한다고 하니 내 그대를 위해 덕을 베풀겠다."
이에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왕예가 그 머리를 취하고, 나머지기병들이 서로 짓밟으며 항우의 몸뚱이를 차지하려 싸우다가 서로죽인 자가 수십 명이었다. 마지막에는 낭중기中 양희, 기사마 여마동, 낭중郞中 여승呂勝과 양무楊武가 각각 자기를 한 쪽씩 차지했다. 다섯 사람이 차지한 몸을 모두 맞춰 보니 때면 틀림없었다. - P327

항우는관중을 버리고 초나라를 그리워한 끝에 의제를 쫓아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는 왕후들이 자신을 배반한 것을 원망했지만 그렇게보기는 어렵다. 스스로 공로를 자랑하고 사사로운 지혜만을 앞세웠 - P328

으며 옛것을 본받지 않고 패왕의 공업이라 하면서 힘으로 천하를 정복하고 다스리려다 오 년 만에 결국 나라를 망하게 했다. 게다가 몸이 동성에서 죽으면서도 여전히 깨닫지 못해서 스스로를 꾸짖지 않았으니 잘못된 것이다. 그러고서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병사를 잘 쓰지 못한 죄가 아니다."라고 끌어댔으니 어찌 황당하지않은가? -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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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漢王還至定陶 馳入齊王信壁 奪其軍 春正月 更立齊王信 爲楚王 王淮北 都下邳 封魏相國彭越 爲梁王 王魏故地 都定陶〈出漢書本紀〉
한왕이 제나라 왕이였던 한신을 초나라 왕으로 변경하고 팽월을 양나라 왕으로 봉하였다.

○ 韓信至楚 召漂母 賜千金 召辱己少年 以爲中尉 告諸將相曰 此壯士也 方辱我時 寧不能殺之耶 殺之無名 故忍而就此 〈出漢書本傳〉
한신이 초나라에 이르러 예전에 자신에게 먹을 걸 해주었던 빨래터 아주머니께 천금으로 보답하였다. 자신을 욕보인 이를 만나 이 사람은 “장사”였다며 죽이거나 하지 않았다. 그가 없었다면 이를 갈 일도 없었겠지.

○ 諸侯王 皆上疏 請漢王爲皇帝 二月甲午 王卽皇帝位于氾水之陽 〈出漢書本紀〉
여기서의 제후왕은 제후와 왕을 모두 가리키는 말인데 제후 등급 중 최고가 왕으로 변화됨으로써 기존의 공후백자남 제후들은 왕 아래에 있게 되었다. 제후왕 위에 황제가 있게 되었고 게다가 제후들이 많아져서 변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한왕이 한나라의 황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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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대에 속한 것들은 모두가 닮는법이다. 어느 시기의 시집에 삽화를 그린 화가들은 당시 금융회사들을 위해 작업한 화가들과 동일한 인물이다. 그러므로콩브레의 식료품상 진열대에 걸렸던 『파리의 노트르담』이나제라르 드 네르발의 작품들을 가장 잘 상기시켜 준 것은 바로이런 강(江)의 신들이 떠받치는 직사각형 꽃 장식 테두리가 쳐진 상수도 회사의 기명증권이었다. - P56

아버지는 주저 없이 내가 예전에 콩브레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썼던 짧은 산문시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나는 그글을 어떤 열광 상태에서 썼으므로 그 열광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틀림없이 전달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르푸아씨의 마음은 사로잡지 못했는지 그는 내게 한 마디 말도 없이그 글을 돌려주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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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란 무엇이냐. 애국하는 겐가, 애족하는 겐가. 하긴 요즘엔 애국을 생략하는 축도 있고 민족을 인간으로 대치하는 축도 있긴 있더라만 결국 공평하자는 거다. 고루 나누어 먹자는 거다. 그게 바로 정의 아닌가.의・・・・…… 가사를 바꾸고 곡조를 바꾸어가면서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지겹도록 애국애족, 아니 정의, 정의를 되풀이 계속해서아직도 그것은 최고 최대의 도덕이요, 문자가 있건 없건, 개명인이든 미개인이든 각기 나름대로, 그것이 분명 뭣이기는 뭣인모양이라…………. 정의. 지금 왜놈의 어린것들이 다음 침략에 대비하여 입이 찢어지게 불러대는 정의의 노래. 가만있자, 뭣이기는 뭣인 모양인데 과연 그게 있었던가? " - P16

"나는 혁명가도 산적도 싫어이. 무념무상(無念無想), 그거야 득도를 꾀하는 해도사 소관이겠으나 민족, 국가, 가문 다 상관없네. 나하고는 무관일세. 죽지 못해 살아남았다. 그 팻말 하나 치켜들고 이곳까지 왔는데 이제는 그것도 버릴라네. 들판에 큰 대자로 드러눕는 거다. 아아피곤하다, 그 말밖에 될 것이 없을 게야. 바람이 실어가든 까마귀가 쪼아 먹든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해골이 된다는, 그것뿐이네. 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이유 구구한 변명으론 규명할 수 없는 것, 살아 있다는 현실 그 자체일 뿐. " - P17

윤필구는 동학의 창조이념으로 삼은 수기정심이 보국안민(輔國安民), 광제창생(廣濟蒼生)과 상반된 듯하나, 수기정심을 수도(修道)의 측면에서 도덕에 가깝다 생각했기에 상반이 아니라 생각하였고, 타 종교에서의 신비와 현실, 피안(彼岸)과 차안(此岸)같이 간격이 멀지 않아 쉬이 다리를 놓을수는 있다는 바로 그러한 점이 본질적인 인간의 고뇌를 해소하는 길잡이로썬 동학이 미흡한 종교적 약점이라는 것을 느끼고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윤필구는 윤도집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지적인 두뇌로 동학에다 신비성을 윤색할 가능성은 있다고 볼수도 있다. 독불장군인 손태산과는 달리, 또 송관수같이 조직되어 있지는 않으나, 윤필구는 언제든지 용병이 가능한 식자층의많은 동학교도들을 쥐고 있었다. 윤도집의 내림도 있었지만 새로운 젊은층도 상당수 윤필구와 관련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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