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가 종기를 막 앓고 난 후라 제후들이 반역하지 않도록 지금 뿌리를 뽑지 않으면 고질병이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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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행복한 미래

길을 잃으면 다른 길이 보일 수 있다.

조셉 맥카니가 지적하듯 "허위의식"에 대한 최초의 문서화된 언급은 엥겔스가 쓴편지에 등장한다. "이데올로기는 이른바 사상가가 의식적으로 수행하는과정이긴 하지만, 그 의식은 허위의식입니다. 그를 움직이게 하는 진정한추동력을 그 자신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결코 이데올로기적 과정이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허위의 혹은 외견상의 추동력을 상상합니다" (McCarney 2005: n.p.에서 재인용[553]). 여기서 허위의식은부르주아가 자신의 동기를 모른다는 것, 자신의 믿음과 자신의 이해관계가 우연히 일치함을 알지 못하는 상황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의식적인 믿음들은 이데올로기다. 사람들은 의식으로부터 그런 믿음의이해관계적 성격을 탈각함으로써 이해관계를 유지한다. - P299

노동자는 자신의 에너지를 노동 대상에 부여하지만 그 대상은 그들의 손을 떠나 상품이 된다는 점에서 자신이 만드는 것으로부터 소외돼 있다. "노동자는 자신의 생명을 대상 속으로 불어넣는다. 그러나 그 생명은이제 더 이상 그가 아닌 대상에 귀속된다" (106[86]).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자신으로부터 소외되는 이 과정이 "대상의 상실"이면서 동시에 "대상에 대한 속박"(106) 이라고 말한다. 다른 말로, 노동자들은 상실한 대상에매여 있다. 즉, 자본주의 자체가 우울증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는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불행하다" (110[89]). 마르크스는 노동자를 일종의 "살아 있는 자본"[105] 이며 그래서 "욕구를 가진 자본" (120)이라고 말한다. 살아 있는 자본이 되는 것은 일종의 "불운"(120)이다. 노동의 전유는노동자를 고통스럽게 한다. 노동자는 일을 하면 할수록, 생산을 하면 할수록, 더 고통받는다. 소외란 자기 노동의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 일종의 자기소외인 동시에 노동자가 세상에 몸담는 방식을 형성하는 감정-구조, 즉 고통의 형식이다. - P303

소외를 의식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인식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고통의 원인을 인식해야 한다. 소외를 의식하게 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어떻게 강탈되었는지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세상에서 소외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소외가 어떻게 이미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지를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소외로부터 소외될 수도 있다. - P304

샤를로테 블로크가 이야기하듯, "스트레스 경험에 대한 사람들의 설명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특징은, 시간 속에 있음이 문제시되고, 현실이 저항으로 느껴지고, 타인들이 장벽으로경험되며, 당연하게 생각했던 체화된 존재로서 내가 겪는 경험이 문제시된다는 것이다"(Bloch 2002: 107). 그래서 블로그는 "몰입이 애쓰지 않음,
흐르는 듯한 우아함 같은 특성들을 함축한다면, 스트레스는 긴장과 저항같은 특성들을 함축한다"(101) 라고 말한다. 혁명과 정서를 [이와 견주]생각해 보면, 몰입과 스트레스가 분배돼 있고 또 재분배될 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몰입했던 세계, 유연하고 손쉬운 것으로 경험했던세계도 그것이 하나의 세계였음을 의식할 경우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다. 실제로 혁명 의식은 기꺼이 스트레스도 감수하겠다는 의욕, 기꺼이현재를 내 피부 아래내게 거슬리는 것으로 두겠다는 의욕으로서만 가능하다. 반란이란 [거슬리는 현재를] "피부에서 도려내는‘ 경험이다. - P307

분노한 혁명가나 활동가의 형상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대안적 미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무의미한 폭력 행위를 저지르는 것처럼 비춰짐으로써 혁명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눈감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혹은 무엇을 폭력의 기원으로 보이게 하는지 바로그 정치학을 고려해야 한다. 혁명가들은 폭력을 폭로한다. 하지만 그들이 폭로하는 폭력은 폭력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구조적 폭력은 베일로 감춰진 폭력이다. - P308

비관주의와 낙관주의는 단순히 같은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이 아니다. 사물에 대한 우리의 정향, 우리가 그 사물을행복의 원인으로 보는지 아니면 불행의 원인으로 보는지가 그것이 미래에 우리에게 무엇을 줄지 혹은 주지 않을지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결정한다.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는 결국 현재 우리가 마주치는 것들에 대한 평가(어떤 것이 좋다 혹은 나쁘다, 행복 혹은 불행을 야기한다)인 동시에 미래 지향적이다. 한편으로,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는 점유의 기호들을 가지고 대상이차있는지 비어 있는지를 파악하는 방식이다(어떤 것이 그 대상을 이미 점유하고 있다고 봐야 그 절반이 가치로서 측정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는 대상이 가리키는 어딘가, 즉 미래의 잠재력 혹은 가능성을 파악하는 방식이다(내가마실 것이 얼마나 많이 혹은 적게 남아 있는가). - P314

희망을 가질 때 우리는 불안해진다. 왜냐하면희망은 어쩌면 일어날 수도 있고 어쩌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을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희망은 "어쩌면"을 욕망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어쩌면 아닐 수도"의 가능성을 계속 열어 두고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어쩌면"일 뿐이다. - P330

불행할 자유는 행복을 인간 행동의 합의된 종착점으로 간주하지 않으면서 행동의 목적에 대해 질문할 수 있게 해줄 새로운 정치적 존재론의 기반을 제공해줄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우리는 행동의 목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 근거로 정치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불행의 원인에 대한 인식은 정치적 대의명분을 제공해 줄 수있다. 모든 정의의 정치학이 (불행을 일으키는 게 애초 행동의 목적은 아니지만)불행을 수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만큼 행복은 고통의 은폐와 자신의 행복을 타협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눈길을 돌릴 자유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또 그것에 의해 약속된다. 반란이 상처가 될 수 있는 건, 당신이 상처에 근접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불행의 원인을 드러냄으로써 불행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당신 자신이 당신이 드러내는 불행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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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4-21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밑줄긋기 좋네요. 공부가 많이 될 것 같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4-21 12:43   좋아요 0 | URL
페크님 도움이 되신다니 저도 기쁩니다^^*
 

나는 어떤 특별한 사랑도 하지 않은 채 텅 빈 상태로 사방에서 - 마치랑에 빠진 연인이 자신이 반한 대상을 찾아 나서듯이 ㅡ ‘아름다움‘을 욕망하고 찾고 만나는 그런 젊음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단 하나의 실제 모습만으로도 ㅡ 멀리서 혹은 등뒤에서 여인의 모습을 얼핏 보기만 해도 - 우리 눈앞에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투사하고 어디서 본 듯한 여인이라는 생각을 불러일으켜 우리는 그 생각에 설레고 걸음을 재촉하다 여인이 사라지고 나면 분명 그녀였는데 하고 언제까지나 생각하다가 여인을 붙잡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 잘못을 깨닫는다. - P250

고독한 사람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하는 절대적인 칩거 생활은 원칙적으로는흔히 군중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연유한다. 이러한 사랑은다른 어떤 감정들보다 강력해서, 자신이 외출할 때 문지기나행인들 혹은 불러 세운 마차꾼의 존경을 받지 못하기라도면, 앞으로는 그들 눈에 영원히 띄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여 외출을 필요로 하는 모든 활동을 단념하게 한다. - P252

자전거를 밀던 그 뺨이 통통한 갈색 피부 소녀 옆을 지나다가 나는 한순간 그녀의 웃음기 머금은 곁눈질과 마주쳤는데, 그것은 이 작은 부족의 삶을 가둔 비인간적인 세계, 내가 어떤사람인지에 대한 관념 따위는 들어갈 자리가 없는 접근 불가능한 미지의 세계에서 온 시선이었다. - P259

원하는 대상에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불확실성에 의해 깨어난 상상력은 우리에게 다른 목표가 숨겨진 하나의 목표를 만들고, 또 관능적인 쾌락을 다른 삶 속으로 뚫고 들어간다는 관념으로 대체하면서, 쾌락을 알아보거나 쾌락의 참된 맛을 음미하는 걸 방해하여 쾌락을 관능적인 영역으로 축소하지 못하게 한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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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의가 또 상소하였다. 흉노가 변경을 넘보고 제후왕이 황제의 권력을 넘보고 역모를 꾀하다 죽임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자 황제에게 깨우침을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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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우울증적 이주자


겉도는 것, 그러니까 '소외'라는 것에 좀 익숙하다. '따돌림'이라는 단어와 맞닿을 수도 있겠다. 나는 어느 집단에 들어가 있든 깊이 천착되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리고 그들이 나와 섞이는 것을 거부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 감정을 느낄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는 동시에 행복함을 가장하는 마스크를 한 채 억지로 섞인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 내가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싫어서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우울증의 진단에 대해서는 흥미로움을 느꼈다. 사망 선고와 비슷하다는 맥락 말이다. 사랑하는 이가 죽었을 때 곁에 있는 그 친밀도에 따라 곁에 있는 사람은 단 번에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러니까 죽음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 일정 기간의 수용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우울증이야? 그럴 리가 없어...' 라고 부정->자기 수용의 과정까지도 마찬가지라는 것. 


이주자들, 식민 지배의 억압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주한 이들의 체험, 심리 등에 대해서 제법 다루고 있다. 예를 들면 인도를 떠나 영국으로 온 인도인들을 다루었다든지. 한편으론 영국의 문화에 흡수되었다고 생각하는 인도인들을 영국인들이 정말 차별 없이 바라보는가라든지. 그렇다고 이곳에서 인도의 문화를 고수해서 지켜나간다면? 대부분은 이 사이에서 애매모호하게 걸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리주의자에게 개종은 개인의 해방이었다. 그들은 "개인을 관습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54)시키고자 했다. 관습custom이라는 말과 습관habit이라는 말은 같은 어원을 공유한다. 그러나 관습이라는 말에는 나쁜습관이라는 뜻도 있다. 예의가 바르지 못할 경우 관습에 의해 억제되어야하는데, 이때 관습은 관례적인 것customary을 떠오르게 한다. 좋은 습관은 "한낱" 습관적인 것과는 다른 것이다. 식민주의는 인류의 행복을 증진하는 데 필요할 뿐만 아니라 원주민에게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려 주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정당화된다. 그들은 관습 혹은 관례적인 것에서 벗어나 "좋은 습관을 익혀야 한다. 행복이라는 일반적인 목적이 개인이 추구해야 할 특수한 목적으로 전환되는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창조가 식민지 교육과 훈련의 목적이 된다. 이에 따르면, 행복해지려면 개인들이 관습에서 해방되어야 하고 그자체로-목적이 되어야 한다. 2장에서 지적했듯이, 행복하려면 "방향 전환", 돌려세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타자를 개인으로 전환시킨다는 것은 그들이 식민 지배자의 규범, 가치와 실천을 향하도록 함으로써 돌려세우는 것이다. - P234

행복의 공리주의적 증진은 흉내의 기술을 수반한다. 식민지 엘리트들을 취향, 견해, 도덕과 지성의 측면에서 우리 "처럼" 만들라는 명령인것이다. 식민 지배자를 흉내 내면서 타자는 행복해지는데, 여기서 행복은행복감을 느낀다는 의미가 아니라 좋은 습관을 획득한다는 의미로, 여기에는 정서적 성향도 포함된다. 즉, 올바른 사물에 의해 올바른 방식으로영향 받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식민지배자"처럼 된다는 것은 여전히식민지 주민의 신체와는 뚜렷이 다른 신체에 몸담는다는 의미다. 바바가보여 주듯 흉내 내기는 혼종 주체를 생산한다. 즉, 거의 같지만 아주 같지는 않은 거의 같지만 백인은 아닌 주체다(Bhabha 1994: 122[180], 128[186]). 식민지 주민을 위한 행복 공식도 그 "거의"라는 망설임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을 품게 된다. 거의 행복하지만 아주 행복하지는 않은, 즉 거의 행복하지만 백인은 아닌 주체 말이다. - P236

행복할 자유는 어떤 방향을 지시한다. 어떤 이미지를 취한다는 것 안에는 자크 라캉이 "주체 내에서 일어나는 변신" (Lacan 2006:76[113-14])이라는 말로 표현한 동일시 행위가 담겨 있다. 행복할 자유는가족과 전통으로부터의 자유뿐만 아니라 행복의 약속을 담지한 국가와의 동일시로의 자유를 전제로 한다. 국가와 동일시하려면 개인이 돼야 한다. 개인의 신체, 즉 밖으로 나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신체를 획득해야하는 것이다. 행복이 전진하는 방식도 이런 식이다. 마치 프로펠러처럼행복은 주체가 미래를 포용하고 과거를 뒤로 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그려진다. 여기서 과거는 관습과 관례적인 것에 연결된다. 다른 말로, 개인이 되면서 당신은 자유라는 감각을 얻는다. 역량, 에너지, 기획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런 역량, 에너지, 기획은 당신의 자유가 가진 좋은 것의 기호가 된다. 개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이미지를 상정하고 있다. 즉, 행복할 자유를 갖게 된다는 것은 신체를 특정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 P249

우울증 진단은 그들이 사랑하는 대상이 죽었다고 선언하는 방식의 하나이다. 그들을 대신해서 우리가 죽었다고 선언한 대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그들은 우울증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우울증 진단은 윤리적 명령 혹은 도덕적 의무를 포함한다. 타자는 우리가 죽었다고선언한 대상을 우리가 선언한 방식으로 죽었다고 선언함으로써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푸우리는 여기서 슬픔을 공유하는 정서적 형식에 대해 알 수 있다. 정서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면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특정 대상, 즉 행복 대상을 향한 정향을 공유해야 할 뿐만 아니라, 상실한 것으로 인정하는 대상 역시 같아야 한다. 정서 공동체가 상실의 대상들을 공유함으로써, 다시 말해 대상을 올바른 방식으로 놓아줌으로써 만들어진다면, 우울증자는 그들이 사랑하는 방식에 있어 정서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상실을 극복하지 못한 실패가 되고, 이로 인해 계속 잘못된 쪽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울증자란, 방향 전환이 필요한 사람, 돌려세워야 하는 사람이다. - P255

평행선은 통합을 거부하는이주자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중립적이고 열려 있다고 상상된 공간에서 특정 신체들만을 규범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평행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세계의 선들, 선들로 가시화되지도 않은 그 선들을 따라갈 수 없음을 의미한다. 보이지 않는 선들은 삶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정서적으로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그런 형식들에 몸담을 수 없다는 뜻이다. - P284

행복에서 소외된다는 것은 당신이 겉도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제 힘으로는 그 자리에 섞일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를 "어디든" 섞이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인정은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 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 개인의 추상적 잠재력으로부터의 소외를 수반한다. 그런 자기신념이 없다면 행복은 그가 있는 곳에서 물러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마치 "무엇이든의 상실 안에는 "어디든"의 상실도 포함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행복할 자유란, 비록 판타지라 할지라도, 소수만이 있을 수 있는 "어딘가"를 환기하는 것임을 상기하게 된다. - P285

이주자들에게 행복 의무란 당신의 도착到을 좋은 것으로 이야기하는 것, 즉 당신의 도착에 대해 좋은 점만이야기한다는 뜻이다. 행복 의무란 좋은 것을 말할 긍정적 의무인 동시에좋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의무, 불행의 경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부정적 의무이기도 하다. 그것은 마치 인종차별의 고통을 이해하는 한 방편으로 인종차별의 기억들을 잊어버림으로써 인종차별의 고통을 잊어야 한다는 것과 같다. 당신을 향한 폭력에 상처 받지 않을 의무, 심지어는 그 폭력을 눈치채서도 안 될 의무, 폭력이 당신을 스쳐 지나간것처럼 그것을 지나가게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인종차별의 역사를 의식하고 그것에 대해 입을 열 경우, 인종차별을 의식한 경우와 마찬가지로정서 이방인이 된다. 정서 이방인은 이방의 정서를 가지고 뭔가를 할 수있는 사람, 우리가 해야 하는 그런 일들을 하는 사람이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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