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머리앤 전집 세트 - 전8권 (완역본) 빨간 머리 앤 전집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유보라 그림, 오수원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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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만화 속 여성들은 하나 같이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버림받고 처참한 모습이어서 불만이었다. 그러다 앤을 만났을 때 환희의 빛이 떠올랐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긍정적이며 누구에게도 당당한 주체적인 여성이어서 좋았다. 위로받고 싶을 때 늘 앤을 떠올린다. 디자인&구성 마음에 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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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재 친구분께서 책 고르는 기준에 대해서 재미난 페이퍼를 올리시고 이후 다른 분께서 릴레이로 올리셨다. 나는 딱히 답변을 정리하기도 애매하고 또 궁금해하시지도 않을 것 같아 그냥 서재의 책장 사진 몇 개를 간단히 올리는 것으로 대체하려고 한다. 


이사하고 이후 정리를 거의 하지 않아서 중구난방이다. 


대부분이 역사, 인문, 문화 쪽에 집중되어 있다. 가끔 정치? 사회? 철학? 등이 섞여 있다^^


내가 자주 보는 칸은 역시 한국 근대사 칸이다. 


여기는 그리스/로마 관련 신화, 역사론 관련 책들


한국사 관련 책들이다. 중간에 세계사, 일본사, 동아시아사 등도 끼여 있다(음. 기준이 없군)


전쟁사, 군 관련 책들이다. 한국 전쟁과 1, 2차 대전 관련 책들이다.


한국사 통사, 고대사 관련 책들이다. 


정말 좋아하는 책. 김기협 선생님 관련 책과 독립운동 관련 저서가 최근 두 개 들어갔다. 해방일기는 읽을 때마다 좋고 오랑캐의 역사도 명저다. 


현재 읽고 있는 진순신 이야기 중국사, 얼마전 산 신중국사, 하버드 중국사, 량치차오 평전. 중국 철학사, 사기가 있다. 그러니 중국사 칸이 되겠다. 


이이화 선생님의 한국사 이야기. 종종 꺼내서 읽곤 한다.


동양 신화와 한국 신화가 끼여 있지만! 사실 목적은 무협 하면 떠오르는 김용의 책들이 쭉 꽃혀 있다. 무협은 왜 이리 재밌을까.


한국 근대 시기를 다루는 잡지를 따로 모은다^^



지금부터는 정말 중구난방이...


오래 전부터 좋다고 생각하여 모은 책들이 많다. 여기에 안 읽은 책들이 많은 것은 함정!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은 언제 읽어야 할지...



1. 병렬독서 하시나요? 아니면 한 권씩 읽고 한 권 다 끝내면 다른 책으로 넘어가시나요? 엄청 두껍고 머리 아픈 책이면요?

거의 대부분 병렬독서를 하는 듯. 

일단 여성주의 책을 매달 읽고 잃시찾 시리즈를 읽고 있으며 토지 시리즈를 읽고 있다. 그리고 중국사 책 읽기도 진행하고 있다. 동시에 4~5권 정도는 읽고 있는데 워낙 다른 내용들이라 별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저 집중력의 문제일 뿐 최대한 몰입해서 읽으려고 노력한다. 


2. 도서관에 신청도 하시고 전자책도 구입하시는 것 같은데 도서관 신청or전자책 구입or종이책 구입은 어떤 기준인지?

집에 갖고 있는 책들이 많아서 일단 먼저 읽을 요량으로 왠만큼 혹하는 신간이 아니면 구입을 잘 안하려고 하는 편(북펀딩 예외). 신간 중 궁금은 한데 돈 주고 사기에는 애매한 책들은 도서관 희망 도서로 신청해서 본다. 

전자책은 요즘 거의 구입을 안하고 있음. 전자 기기를 갖고 있지만 출퇴근 때는 버스라 움직여서 보기 힘들고 그렇다고 회사나 집에서는 종이책이 편하지 전자책을 읽을 일은 없기 때문. 가끔 카페에 가거나 할 때 전자책 들고 나갈 때는 있지만 그마저도 잘 안 읽게 됨. 

종이책은 일단 관심 분야인 역사, 검증된 저자의 신간이 나올 경우가 대부분의 구입 이유. 요즘은 북펀딩에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있음. 


3. 읽은 책은 다 100자평 남기시는 건가요?

100자평을 못 써서 거의 안 씀. 100자평을 쓰는 경우는 정말 리뷰 쓸 시간이 부족한 경우 또는 정말 별로였거나 너무 많은 내용들이 들어 있어 리뷰로 정리하기 곤란할 때?


4. 막상 읽어보니 별로라 페이지가 잘 안 넘어가는 책은 미련 없이 덮으시는지 아니면 그래도 붙잡고 완독하시는지?

일단 붙잡았으면 완독하는 편. 그러나 책 5~10페이지 읽었는데 감이 전혀 안 온다 하는 책은 나중에 읽자 생각하고 덮는 것이 상책.


5. 중고로 팔아버리는 책과 남기는 책은 어떤 기준인지?

음. 중고로 파는 책이 거의 없어서 서재가 거의 창고 수준이 되어 가고 있다. 안 읽을 책은 좀 팔아야 하는데ㅠㅠㅠㅠ

어쨌든 최근 4~5년 정도 전부터는 팔려는 책은 아예 구입 생각을 안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소장 가치 있는 책만 사는 듯하다.


6. 책 구입하실 때 중점적으로 보시는 게 뭔지? 평소 믿고 보는 작가라면 그냥 구입해도 되겠지만 아니라면 저자 이력이나 뭐 소재나 상 받은 목록이라든가 뭘 주로 보시는지. 더해서 이런 책은 아묻따 거른다 하는 것도 있으실 텐데 궁금합니다.

딱히 관심 작가가 있지는 않음. 물론 한국 현대사 하면 박태균, 정병준 선생님 등처럼 믿을 만한 저자들이 있지만 그것은 내 개인적인 이유라기 보다는 돈 주고 사는 입장에서 읽고 남는 게 있어야 하니까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듯? 

거르는 것은 대부분 마찬가지겠지만 자기계발서는 패스! 요새는 에세이도 거의 안 사는 듯하다.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늬앙스를 풍기는 책?은 거르는 것 같다. 지식과 사유의 확장이 일어날 만한 책을 구입하지 그게 아니면 굳이 살 이유는 없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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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6-06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화가 님 역사 덕후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진짜 책장 보니 덕후덕후덕후 ㅋ 김기협 저자 글을 좋아하는 이유가 특별히 있나요?
책꽂이 보니까 책 안 파시는 게 한눈에도 보입니다! ㅎㅎ

거리의화가 2023-06-07 09:45   좋아요 1 | URL
책장 전부를 찍은 건 아닙니다. 더 많은데 힘들어서 중간에 관뒀어요ㅋㅋㅋ
김기협 선생님 글을 좋아하게 된 것은 우선은 <해방일기> 읽고 나서 저의 관심사가 해방 이후의 역사에 관심이 본격적으로 생겼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관점 때문인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 좌편향, 우편향의 역사는 지양하게 되고 균형을 지향하는 역사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생겼거든요.
ㅋㅋ 중간에 오래된 책들은 중고 서적도 몇 개 끼여 있고 실제 오래된 책도 있고 그렇습니다^^;

은하수 2023-06-06 21: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저와는 정말 취향 차이가 너무 확실하십니다! 화가님 책장 보고나니 갑자기 드는 생각입니다.
역사가 그렇게 재밌나? 그럼 나도? ㅎㅎ
전 정말 역사는 담 쌓고 있어서..
사실 뭐부터 시작해야하나 너무 막연해서 시작을 못하니까 계속이란 것도 못하거든요. 화가님 책장 참고해서 좀 읽어야 할거 같네요^^
저도 리뷰는 쓸말이 많을 땐 오히려 100자평~~~ 귀찮아서요^^
서재 구경 재밌네요~~~

거리의화가 2023-06-07 09:48   좋아요 0 | URL
사람마다 취향이 분명 다르겠죠. 저는 처음부터 다른 분야에는 관심이 크게 가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학교 때도 역사는 재밌었고 어른이 되고 나서는 그 관심이 계속됐죠. 그러다 30대 가까이 되었을 무렵 진지하게 내가 역사를 좋아하는구나 생각하게 되었고 이후부터는 중점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관심사를 파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죠ㅎㅎㅎ
그리고 시작은 처음부터 고전으로 하시면 안되고 쉬운 책부터 해야 합니다. ‘처음 읽는 한국사‘ 이런 류의 책부터 보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ㅋㅋ 맞아요. 할말이 많으면 리뷰에 한꺼번에 담기 무척 힘들더군요. 저도 그럴 때 100자평 잘 이용합니다.

댄스는 맨홀 2023-06-06 2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즐겨보고 좋아했던 중드 시리즈를 책으로 보니 반갑습니다. 서재 멋지네요. ^ㅁ^

거리의화가 2023-06-07 09:51   좋아요 0 | URL
오. 중드에 관심을 가지신 분이 여기에 계셨군요. 반갑습니다^^ 저도 드라마는 이제 거의 중드만 보는 것 같아요. 요새는 중국 무협 드라마가 정통 무협으론 잘 안 나와서 아쉽더군요. 거기도 수요가 주는지^^;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3-06-06 2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 활동만으로는 거리의화가님의 책장의 책들이 부족하다고 아우성 칠 것 같아요.
더 넓은데로 진출하십시요~~

책들 조금씩 참조해 보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6-07 10:05   좋아요 0 | URL
진출할 때가 있을까요? 책장은 그냥 보기용이라고 할까ㅎㅎ 저 중 안 읽은 책들이 태반입니다. 사는 것은 그만하고 있는 책부터 읽어야 할텐데 잘 안 지켜지네요^^; 페넬로페님 감사합니다.

은오 2023-06-07 0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딱히 답변을 정리하기도 애매하고 또 궁금해하시지도 않을 것 같아 그냥 서재의 책장 사진 몇 개를 간단히 올리는 것으로 대체하려고 한다.˝에서 ˝네? 무슨 소리세요? 궁금한데요? ㅡㅡ˝했다가 많은 사진과 답변이 있음에 기뻐했습니다.
화가님 책장이라면 당연히 역사책이 많겠거니 하긴 했는데 진짜 역사책 짱 많네요! 이게 역사 덕후님의 책장이로구나!! 그리고 역사책이 진짜 꽂아놓으면 두툼하니 멋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ㅋㅋㅋㅋㅋ
저는 이북리더기 썼을 때 확실히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밖에서든 집에서든. 일단 너무 가볍고 어떤 자세로도 읽기 편하고. 근데 편한 게 다가 아니라 책은 한장한장 넘기면서 읽는 맛이지! 그리고 실물을 소장했을 때의 만족감을 버리지 못해서 결국 종이책만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ㅋㅋㅋㅋ
페이퍼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화가님~! 남의 책 얘기 보고 듣는 거 너무 꿀잼!!

거리의화가 2023-06-07 10:01   좋아요 0 | URL
글이 아닌 사진으로 승부한 페이퍼라고나 할까^^;
아무래도 관심사의 책들을 모으게 되고 책장의 대부분은 역사책이나 역사 관련 책이 되는 듯합니다. 저도 민음사 소설 전집 일부를 갖고 있기는 한데 모아만 놓고 정작 읽은 것은 몇 개 되지 않아서 올릴 생각을 못하겠더라구요ㅋㅋ
이북리더기 편하기는 하죠. 하지만 전자책이 종이책의 넘기는 맛, 감칠맛이라고나 할까 그런 게 없으니 지식이 안 남는 느낌이어서 멀리하게 되는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은오님이 읽어주시고 꿀잼이라고 해주셔서 더 감사하네요.

다락방 2023-06-07 09: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책장이라면 당연히 역사책이 많겠거니 하긴 했는데 진짜 역사책 짱 많네요! 2

너무 재미있어요, 화가 님! 저는 일단 화가님의 책장 사진을 보는 것도 너무 좋아요. 어쩜 이렇게 저랑 겹치는 책이 없는지. 없을 줄 알았지만 어쩌면 이렇게 없는지. 없는 걸 넘어서 제가 보르는 책들이 수두룩 하네요. 이런거 너무 재미있지 않아요? 후훗.

저 여러분들 따라서 토지 오디오북 도전했다가 포기하고 윌라도 정기구독 해지했거든요. 아마 토지를 완독했었다는 것 때문에 더 게을러진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오디오북 자체가 저랑 잘 안맞는 것 같기도 한데, 최근에 토지 북펀드 하는 거 보고 어.. 이걸로 사서 집에 있는 낡은 책과(사실 별로 안낡음) 교체할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새 책 들이면 재독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지요. 거리의화가 님, 토지 북펀드 하셨나요?

역시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러거나 저러거나 종이책에 정착하는가 봅니다. 아하하하하.

거리의화가 2023-06-07 10:08   좋아요 0 | URL
책장 다는 아니지만 제가 좋아하는 책들 위주로 사진을 찍어 올려봤어요ㅋㅋ 역시 서재 구경은 언제 해도 재밌는 것인가봐요. 저도 다른 분들이 사는 책들, 그리고 책장의 책들이 그렇게나 호기심 가더라구요ㅎㅎ

작년에 토지 오디오북 듣기 시작하면서 마로니에북스 토지 세트를 구입한지라 이번에 펀딩하는 것은 건너뛰었습니다. 다락방님 마로니에북스 이전 버전으로 갖고 계시다고 하셨던 걸로 기억되는데 그렇다면 교체해서 다시 재독하는 것도 방법일 듯하네요^^

맞아요. 종이책은 역시 버릴 수가 없는 듯합니다. 읽는 맛이 달라요!ㅎㅎㅎ

자목련 2023-06-07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를 좋아하는 화가 님의 책장엔 단연 역사 책이 많네요. 저는 역사가 어려워요. 등장 인물도 많고, 단단한 역사 책이 화가 님의 애정을 받아 책장에서 떠나지 않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작가의 산문집을 저는 그냥 지나칠 수 없더라고요. 읽고 살짝 실망할 때도 많지만요. 오늘도 역사 책을 읽고 계시겠네요. 즐겁게 읽으세요^^

거리의화가 2023-06-07 10:07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처럼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저는 참 어렵더라구요. 역시 각자가 좋아하는 분야가 다르듯 거기에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인 듯 합니다^^
네. 오늘 오전에도 역사책을 읽었어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독서괭 2023-06-07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상은 했지만 화가님... 역시 어마어마하시군요!! 심지어 역사가 전공분야도 아니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단순 취미는 뛰어넘으신 거 아닌지! 멋지십니닷.
‘궁금해하지 않을 것 같다‘는 말씀은 서운하네요. 책장사진 보니까 넘 좋습니다 ㅎㅎ
저도 몇 년 전부터 서친님들 추천책을 주로 사다보니 읽고 팔 책이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더 신중하게 사고 있습니다만.
<유대인 이야기>가 눈에 딱 띄네요. 오래전에 선물받고는 읽지도 못하고 처분도 못하고 갖고만 있는 ㅋㅋㅋ 이 책 어떤지 궁금합니다.

거리의화가 2023-06-07 13:46   좋아요 1 | URL
괭님 말씀 듣고 보니 취미 생활을 넘어선 건가요? 음... 헌데 구입만 좀 했을 뿐 그만큼 읽지는 못했어요^^; 책장에 안 읽은 책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ㅋㅋ 제 이야기가 재미가 없기도 하고 다른 분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진 않았거든요. 어쨌든 좋아해주셔서 저야 감사하죠^^ 언젠가 제 책장 사진을 한번 올려야겠다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이번에 은오님 궁금증에 대한 답도 올리면서 여차 저차 해서 올리게 됐습니다. 책장 구경은 역시 다들 흥미로워하시는 거였군요!ㅋㅋㅋ
<유대인 이야기>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솔직히 내용은 기억이 안나구요. 어쨌든 읽을 만한 책이었습니다. 제가 경제를 정말 모르는데 유대인들 중 거부들이 많잖아요. 그 기원을 알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처분하지 마시고 한 번 시도해보셔요!ㅎㅎㅎ

독서괭 2023-06-08 07:20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3-06-07 15: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입틀막 그 자체입니다^^
모두들 화가 님의 독서취향을 아시는 분들의 똑같은 댓글! 역사 책을 좋아하셔서 많이 가지고 계신 거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에 빵 터졌습니다.
저도 그렇게 쓰려고 했었거든요ㅋㅋㅋ
대단하십니다. 이 정도라면 역사 관련 대학원을 가셔서 논문을 발표하셔야 하지 않으신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가끔 화가 님의 리뷰를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지식이 자꾸 축적되니 우리만 읽기 아깝다! 그런 생각도 들구요^^
제 아들 녀석 절친이 사학과를 갔는데 이 친구에게 화가 님의 책장을 보여주고 싶네요. 이 녀석아! 역사 공부를 하려면 이 분처럼 이렇게 하는 거야!!! 하면서요^^
저는 역사에 관심이 좀 있어서 책을 읽어보고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20년 넘게 하고만 있어요.ㅋㅋㅋ 그래서 생각만 하고, 화가 님처럼 즐기진 않다는 걸 깨닫고 있었는데 화가 님 책장에서 울 집에 있는 책 몇 권이 보여 괜히 뿌듯합니다.ㅋㅋㅋ
참고하기 딱 좋은 역사 래퍼런스 책장이에요.
근데 읽다가 (음. 기준이 없군.)의 독백은 왜 제겐 좀 웃기죠? 그냥 내뱉는 독백이신 듯한데 전 조금 풉 웃었네요.^^;;;

거리의화가 2023-06-07 15:42   좋아요 1 | URL
ㅋㅋ 그러게요. 친구분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정말 편향된 독서를 하고 있구나 느끼게도 됩니다^^;;; 대학원에 논문까지?!ㅎㅎ 그럴 실력이나 되나요. 물론 옆지기에게 예전에 나 대학원 가서 공부할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몇 년전이라... 흠. 이제는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지경이어서 힘들 것 같습니다.
아드님 절친이 사학과를 만약 좋아해서 간 거라면 갖고 있는 책은 아니더라도 대부분 들어는 본 책일걸요?
ㅋㅋㅋ 독백을 캐치하시다니!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글로 옮겨서 그랬나봅니다^^ 역시 나무님은 숨은 의도까지 파악하셨네요. 웃어주셔서 저도 좋네요!ㅎㅎㅎ

그레이스 2023-06-07 15: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겹치는 책이 있어서 뿌듯!
막 욕심나는 책이 있어서 애써 외면!
읽고 좋았던 책이 보여서 두근!
하고 있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6-07 15:36   좋아요 1 | URL
완벽한 라임의 댓글인데요^^
그레이스님의 설레임이 저에게도 전해져서 저까지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3-06-07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혹시

역사학자 이신가요? ^^

대단하십니다. 한국사/세계사 시험 보시면 100점 받으실듯 합니다~!!

거리의화가 2023-06-07 16:55   좋아요 1 | URL
ㅋㅋ 새파랑님. 역시 제 웃음벨!ㅎㅎ 한국사도 100점 맞은 적이 없는데 세계사는 더욱 어려울 듯합니다. 저 띄워주시기 위한 칭찬으로 받아들일게요^^;

모나리자 2023-06-07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책의 대가이십니다! 멋진 서재입니다.^^

거리의화가 2023-06-08 09:2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모나리자님^^

살리에르 2023-06-10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사진들이 갖고 있는 책들의 빙산의 일각일꺼라는 생각이...저도 비슷해서요..^^ 저렇게 책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도 일인데 잘하시네요. 저는 어느 순간 걍 막 쌓아놓고 있어서...ㅠ

거리의화가 2023-06-10 19:11   좋아요 0 | URL
네^^; 책은 이보다 훨씬 많은데 사진을 찍다가 도중에 그만두었습니다.
깔끔한 정리 결코 아니구요. 서재 바닥에도 책이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ㅠ 버리질 않고 계속 사기만 하니 당연한 결과죠.
살리에르님도 비슷한 류의 책이 많으시군요. 책쟁이들은 어느 순간 쌓이는 것으로 가는 것인가 봅니다.
 
하버드 중국사 남북조 - 분열기의 중국 하버드 중국사
마크 에드워드 루이스 지음, 조성우 옮김 / 너머북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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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중국의 이 시기의 역사와 관련한 책을 읽으면서 정리가 안되고 어째 더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약 4~5세기 동안 너무나 많은 왕조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 때문인데 그런 만큼 수많은 사건과 인물들이 등장한다. 어릴 적 삼국지를 읽으며 ';왜 이리 복잡해!' 했는데 '이건 약과였구나' 싶다. 동시에 중국인들은 과연 이 때의 역사를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슬며시 일었다.

후한 말 중국은 혼란기에 접어든다. 황건적의 반란을 시작으로 위, 촉, 오 삼국이 분열했다가 서진으로 통합되었으나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북쪽은 오호십육국 시기가 (북위가 북중국을 통일할 때까지) 1세기 가까이 이어진다. 남쪽은 두 세기 동안 유송, 제, 양, 진의 남조가 이어졌다.

하버드 중국사 2권은 흔히 우리가 '위진남북조'라고 부르는 시기를 '남북조'로 통칭한다. 중국인 역사학자들은 왕조별로 시대를 구분하는 전통에 따라 이 시대를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라고 부르는 반면 서구 학자들은 ‘분열의 시대(the Age of Disunion)‘ 혹은 ‘초기 중세(the Early Medieval period)‘라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분열의 시대'는 어디 갖다 써도 분열의 시기에 통칭하는 일반적인 명칭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렇다고 '위진남북조'라고 하기에는 중국이 어느 한 왕조로 통일되었다는 관점을 강요하는 것이라 불편하다. 그래서 저자는 중국 정치세계가 황하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과 양자강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으로 양분되어 있었음을 반영하여 '남북조'라고 통칭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남북조'라고만 하기에도 충분한 설명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전한대에는 황하 상류 황토 고원과 황하 하류 범람원 사이의 지리적 구분이 아주 중요하였다. 한대 역사 전체가 이 두 지역 사이 균형의 변화라는 시각에서 서술될 수도 있다. 그러나 수 세기에 걸쳐 자발적으로 혹은 불가피하게 점차 많은 중국인이 남쪽으로 이동하였고, 이에 따라 황하 유역 내 구분보다 다른 구분, 즉 황하 유역과 양자강 유역 사이의 구분이 중요해졌다. - P29

이전까지만 해도 양자강 이남 지역은 중국에서 주변 지역이었다. 그러나 이민족의 침략과 잦은 홍수로 후한 시대를 시작으로 4세기 초까지 북중국에 있던 많은 인구가 남방으로 이주한다. 이들(한족)은 강남 지방을 농업에 적합한 자연 환경으로 만들고 토착민들은 살던 곳에서 쫓겨 나거나 한족에 흡수되었다.

한반도의 역사에도 시기 별로 지배층의 명칭이 다른데 중국의 이 시기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귀족의 시대'라는 명칭으로 정리되는데 저자는 '귀족'을 쓰지 않고 '유력 가문'이라는 용어를 썼다는 것이 특이하다. 내 생각에 너무 일반적인 용어를 쓴 것 같기는 하지만(유력 가문은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는 단어인 것 같아서) 일부 가문의 영향력을 강조하기 위해 쓴 듯하다.

귀족의 시대라는 표현이 전적으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시기 동안 황제 권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덕분에 일부 가문이 조정과 지방에서 과도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사실이다. 이들 중 어떤 가문도 몇 세대 이상 조정을 지배할 수는 없었지만, 일부 가문은 수세기 동안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하였고 사회 지배층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들 자신의 운명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가문이 중국에서의 높은 지위에 대한 개념을 바꾸었고, 그리하여 사회 지배층과 조정 간의 관계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는 점이다. - P69

이 시기 유력 가문은 여러 문화 및 문학 활동을 추구(시 짓기, 서예, 글쓰기, 사상)하며 이전의 지배층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런 활동이 새로운 관료 선발 방법에 녹아들며 국가의 중앙 집단을 재구성했다. 또 가족 묘지를 만들고 한식(청명절)에 가계의 구성원들이 정기적으로 모이게 되었으며 족보를 작성하면서 가문을 친족 집단으로 규정 짓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의식하는 친족 집단이 점차로 확대된 현상은 가훈과 족보라는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에 의해 더욱 심화되었다. 구두로 남기거나 혹은 짧게 글로 적어 남긴 유훈은 이전 시기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고, 한대의 문헌 일부는 가계를 언급하고 있다. 위진남북조 시대에 이르면 자신의 가문을 차별화하며 가문의 번영에 요체가 되는 행동 방식을 명기하고 후손에게 주지시키는 장편의 글 중 현존하는 최초의 사례가 등장한다. - P342

한나라는 징병제를 폐지한 이후 비한족 기병과 죄수, 지원자로 군대를 꾸려 나갔다. 후한 말에는 소작인, 유목 군대, 투항한 반란 세력들로 군사를 충원했다. 이후에는 소작인과 비한족 기병으로 그 대상을 충당하였기 때문에 지주와 친족 집단의 군사 역량은 위축되었다(소작인들이 차출되니). 5세기 이후에는 군사력의 중심이 지배층 중심에서 다시 조정 기반으로 되면서 황제의 권력도 강화된다.

중국에 중앙아시아 및 인도와 정기적으로 교류하면서 불교가 전래되었다(불교는 한반도와 일본에까지 전파된다). 도교는 기존의 전통 신앙과 맞물리면서 이미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터였다. 불교가 흥기하고 도교가 상호작용하면서 중국의 종교세계는 여러모로 변화하였다.

첫째로 한대인들의 모호한 사후 세계는 천국과 지옥의 각 층위가 겹겹이 쌓여 생생한 모습의 지리적 관념을 갖춘 사후세계로 대체되었다. 또한 아귀를 비롯해 새로운 귀신의 존재를 도입하면서 불교는 중국의 사후 세계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둘째로 불교는 영혼의 세계를 윤리적인 성격의 세계로 바꾸어 놓았다. 한대인들이 저승에서의 보상과 처벌을 믿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가장 보편적 원리는 올바르게 매장되면 죽은 사람은 저승에서도 이승의 지위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생전의 행위가 아니라 매장 의례가 사후 운명을 결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위진남북조와 그 이후 중국의 사후세계 관념을 지배하게 된 것은 생전의 행위에 따라 보다 좋거나 나쁜 존재로의 환생, 혹은 천당이나 지옥으로의 전생이 결정된다는 식의 단순화된 업의 교리였다. 세 번째 변화도 이와 관련되어 있었다. 중국의 상장 의례와 망자를 구원하기 위한 명절에서 불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불교 의례는 조상을 지옥에서 구원하여 불교의 낙원인 정토에 다시 태어나게 하기 위해 부처와 승려의 영적인 힘을 행사하였던 것이다. - P412~413

위진남북조 시대의 글쓰기와 문학은 같은 시대의 중국 문화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자율적 영역의 개창을 그 특징으로 한다. 사람들이 모여 함께 시를 짓고 대화를 나누기 위한 장소가 생겨나고, 아울러 교단 종교, 도시 내 사원과 원림, 산지에 자리한 별장과 은자의 동굴 등이 등장한 것과 더불어 문인들은 고전, 철학, 역사가 제시하는 윤리적 틀에 더 이상 구속되지 않는, 보다 자율적인 미적 영역을 만들어내었다." 글쓰기와 문학적 관념의 이러한 새로운 영역은 ‘현학玄學’의 등장으로 지적인 토대를 얻게 되었다. - P427

이 시기 북방 유목민들이 중국에 세운 왕조는 이후 수, 당 시기에 많은 유산을 남긴다. 그리고 이 지역은 한반도의 고대 국가와도 깊은 관련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특히 고구려는 중국의 북방 지역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어서 더욱 그렇다. 중국의 북방이 분열되었던 이 시기는 그래서 고구려에게 기회의 시기이기도 했다.

4세기에 걸친 분열기를 지나 수가 589년에 중국을 재통일하고 뒤이어 당(618~906)이 들어서면서, 한의 멸망 이래 변모해왔던 중국 사회에 다시 단일한 황제 지배가 행해졌다. 한 제국의 계승 혹은 부활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사실 수당 왕조는 5~6세기에 북중국을 지배했던 이전의 ‘오랑캐‘ 왕조 북위, 북주, 북제에서 발전한 많은 제도와 관행을 흡수하였다. - P481

하버드 중국사의 특징은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리, 제도, 가족(및 친족) 구조, 종교, 문화와 예술 등 주제 별로 사안을 다룬다. 시간 순의 역사를 먼저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전체적으로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읽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이 책으로 이 시기를 특징 지은 후에 세부적인 흐름의 역사를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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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6-06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국사에 관심이 많아 이 시리즈
를 한동안 사서 모으긴 했는데...

결국 완독한 책은 없네요.

기록을 찾아 보니 모두 3권을 샀
네요. 남북조는 무려 6년 전에 샀
다는 :>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책은 <원명>
이구요. 한 번 살펴 보려고 합니다.

거리의화가 2023-06-07 10:11   좋아요 1 | URL
중국사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이 시리즈 관심가지실 만합니다^^ 물론 서구 학자들의 관점이 중심이라 한반도나 주변 국가에 대한 서술은 아쉽지만 주제별로 다루어 시기를 정리하기 좋더군요^^
 

후한 말과 당 사이 시기에 조상과 관련한 가족의 관계에 있어서 두가지 중요한 변화가 발생하였다. 가족묘지를 만들게 된 일 그리고 한가계에 속하였으나 흩어져 사는 구성원들이 한식이라고도 알려진청명절淸明에 정기적으로 모이게 된 일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변화는 보다 많은 사람을 혈연으로 묶어주었기에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 P332

스스로를 의식하는 친족 집단이 점차로 확대된 현상은 가훈과 족보15)라는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에 의해 더욱 심화되었다. 구두로 남기거나 혹은 짧게 글로 적어 남긴 유훈은 이전 시기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고, 한대의 문헌 일부는 가계를 언급하고 있다. 위진남북조 시대에 이르면 자신의 가문을 차별화하며 가문의 번영에 요체가 되는 행동방식을 명기하고 후손에게 주지시키는 장편의 글 중 현존하는 최초의사례가 등장한다. - P342

위진남북조에서 대규모 친족 집단이 발전하면서 유력 가문들은 점차 국가라는 구조에 얽매이게 되었는데, 이들 가문은 자신의 존재를규정하는 의례도 새롭게 등장하는 종교 교단에 맡긴다. 특히 새로운사후관념과 더불어 사람이 죽은 후에 보다 나은 존재로 환생할 수 있도록 돕는 데 필요한 의례를 갖춘불교는 점차로 한 가문과 그 선조 간의 연결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하며 나아가 가문 그 자체의 구조에도 없어서는 안 되는 종교가 되었다. 시기와 장소에 따라 도교, 특히통합적 성격의 영보파전통도 비슷한 역할을 했다. - P355

도교와 불교는 사상과 행위의 새로운 형태로서, 그 이전 중국을 특징짓던 지적·사회적·정치적 구조를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바꾸어놓았다. 도시의 준공공 공간으로서 불교사찰이 등장하고, 낙원을 표현한 - P379

공간으로 원림이 발달하며, 공통의 불교신앙으로 연결된 범아시아 세계가 형성되고, 도교와 불교가 가족에게 영향을 미친 일 등은 그변화상의 아주 일부에 불과했다.
불교는 후한대에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상인들이 중국에 전해준 외래신앙이었다. 이 새로운 종교는 지배층 일부에서 관심을 얻었고, 중국인의 삶 모든 부분에 스며들 때까지 점점 사회 전체로 퍼져 나갔다. 불교와 비교해볼 때 도교의 역사는 훨씬 멀리, 적어도 전국 시대 이래로 존재해왔던 신앙과 종교적 관념들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도교가 조직화된 운동을 형성하게 된 때는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시기와 대체로 비슷한 시기였다. 그러나 나중에 불교가 모델을 제시할 때까지 사원, 성직자의 위계조직, 경전 등을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 P380

불교가 흥기하고 도교와 상호작용하면서 중국의 종교세계는 여러모로 변화하였다. 첫째로 한대인들의 모호한 사후세계는 천국과지옥 - P412

의 각 층위가 겹겹이 쌓여 생생한 모습의 지리적 관념을 갖춘 사후세계로 대체되었다. 또한 아귀를 비롯해 새로운 귀신의 존재를 도입하면서 불교는 중국의 사후세계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둘째로 불교는영혼의 세계를 윤리적인 성격의 세계로 바꾸어놓았다. 한대인들이 저승에서의 보상과 처벌을 믿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가장 보편적 원리는 올바르게 매장되면 죽은사람은 저승에서도 이승의 지위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생전의 행위가 아니라 매장 의례가사후 운명을 결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위진남북조와 그 이후 중국의사후세계 관념을 지배하게 된 것은 생전의 행위에 따라 보다 좋거나나쁜 존재로의 환생, 혹은 천당이나 지옥으로의 전생이 결정된다는식의 단순화된 업의 교리였다. 세 번째 변화도 이와 관련되어 있었다. 중국의 상장 의례와 망자를 구원하기 위한 명절에서 불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불교 의례는 조상을 지옥에서 구원하여 불교의 낙원인 정토에 다시 태어나게 하기 위해 부처와 승려의 영적인 힘을 행사하였던 것이다. - P413

위진남북조 시대의 글쓰기와 문학은 같은 시대의 중국 문화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자율적 영역의 개창을 그 특징으로 한다. 사람들이 모여 함께 시를 짓고 대화를 나누기 위한 장소가 생겨나고, 아울러 교단 종교, 도시 내 사원과 원림, 산지에 자리한 별장과 은자의 동굴 등이 등장한 것과 더불어 문인들은 고전, 철학, 역사가 제시하는 윤리적 틀에 더 이상 구속되지 않는, 보다 자율적인 미적 영역을 만들어내었다." 글쓰기와 문학적 관념의 이러한 새로운 영역은 ‘현학玄學’의등장으로 지적인 토대를 얻게 되었다. - P427

4세기에 걸친 분열기를 지나 수가 589년에 중국을 재통일하고 뒤이어당(618~906)이 들어서면서, 한의 멸망 이래 변모해왔던 중국 사회에 다시 단일한 황제 지배가 행해졌다. 한 제국의 계승 혹은 부활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사실 수당왕조는 5~6세기에 북중국을 지배했던 이전의 ‘오랑캐‘ 왕조 북위, 북주, 북제에서 발전한 많은 제도와 관행을 흡수하였다. - P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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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장

식민지를 겪으면서 한국의 수많은 농민은 고향을 떠났다. 그들은 대부분 젊고 가난하고 불만으로 가득했다. 그들은 세계대전이 끝나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도 여전히 젊고 가난하고 불만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 P118

완전히 소작농도 노동자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존재였다. 그들은 노동자 · 광부·군인으로 일했지만 좀더 중요한 사실은 고향이 아닌 곳에서 세계에 노출됐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회가 자신이 알던 것과는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이주하기 전까지는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1945년이 됐을 때 그들의 시야는 그렇게 좁지 않았다. 전쟁의 종식은 농민-노동자에게 새로운 출발이었다. 급진적 조직 운동가에게 그것은 새로운 원료를 풍부하게 가져다주었다. - P119

식민지 시대와 관련해 기억해야 할 기초적 사실은 일본이 가져온커다란 변화의 정도가 아니다. 핵심적 측면은 변화가 자연스러운 경로를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농민은 토지에서 유리되고 계급으로서 붕괴되었다고 해서 산업에 종사하게 되지는 않았다(이를테면 영국에서 인클로저 운동과함께 공업 생산이 등장한 것과는 달리). 그 대신 그들은 공장에서 잠시 일한다음 고향으로 되돌아왔다. 지주는 상업·산업적 기업가로 변모하지 않고 기업가 정신과 전통 사이의 어떤 지점에서 여러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한국인관료는 근대적 또는 합리적 관료 제도에서 근무하지 않았고, 이민족이 지배한 체제 안에서 일본인 상관은 물론 같은 민족인 한국인에게도 적대시되면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항일세력 중에서도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사이에 균열이 생겼으며, 이는 식민 지배가 끝난 뒤까지도 좁혀지지 않았다. - P119

시대가 시작됐다. 해방은 그저 하루가 아니라 한국사에서 이전에도 없었고그 후로도 없을 대중 참여의 거대한 변화가 진행된 시대를 불러왔다. 일본의패망으로 한국인은 자신의 유산-역사·문화·언어·인권을 재발견했다.
이런 권리를 자각하는 데서 한국인은 프랑스인 그리스인.베트남인과 전혀다를 바 없었다. 1945년 한국인의 축제와 자기 권리 주장은 수십 년간의 억눌림 끝에 들이마신 신선한 공기였다.
그러나 해방을 열광적으로 기뻐한 한국인의 모습에서 순간적이고 목표없는 추구만을 본다면 오산이다. 떠들썩하게 잔치를 즐긴 사람들은 이튿날 맑은 정신으로 깨어났다. 새 제도와 나라를 세우는 데 적극적 관심을 보인 사람들도 있었지만, 새로운 질서에 두려움을 느낀 사람들도 있었다. 갈등이 내재한 위기의 정치는 이런 환경에서 나타났다. 변혁을 요구하면서 남한과 북한의 "인민공화국" 아래 결집한 강력한 세력은 자신들보다 약하고 위태로운 처지에 있으며 변화를 반대하는 세력과 충돌했다. - P124

전체적으로 말해서 인공 지도자들은 오래 유지되는 조직을 건설하는 데미숙했고 지방에 깊이 뿌리내린 정치운동을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 그들은도시 지역,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다른 정파나 정당과 제휴하려고 시도했다.
기이한 역설은 그들이 서울의 피로한 정치에 빠진 결과, 지방에서 발생한 운동을 스스로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근대적 정치가 지방 대중을 동원해 전국적 정치 세력으로 발전시키고 중앙과 지방을 강력히 연결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그들은 근대적 정치를 희생시켜 전통적 정치를 되살렸다고 말할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지적하더라도 남한의 어떤 세력보다 인공 지도자들이 조직과 동원을 주도하고 민족적 목표를 설계해 주권을 확립하는 기초 작업을 뛰어나게 수행한 것은 사실이다. 치안대는 극도로 불안한 상황에서 3주 동안평화를 유지했다. 건준은 주요 식량 창고를 유지·보호하고 풍작을 도왔다.
노동운동 지도자와 노동자는 수많은 공장과 시설을 유지했다. 지방의 조직가들은 인민위원회와 농민조합을 발전시켜 깊이와 의미 면에서 한국사에 유례없는 지방 대중의 정치 참여가 전개된 한 해를 이끌었다. 모든 것은 일본과 그 뒤 미국 그리고 중앙 권력의 억압을 이겨내고 진행됐다. 외국의 개입이 없었다면 인공과 그것이 후원한 조직은 몇 달 안에 한반도 전체에서 승리했을 것이다. - P148

1945년 시점에서 한민당은 지지 기반을 만들고 유권자를 포섭하는 과정에 무지한 사회적 저명인사들의 모임이었다. 그들은 지방 조직을 도외시한채 서울에 노력을 집중했다. 그들이 지방으로 관심을 돌린 것은 지방 관리·군수·지방 경찰을 입당시키려는 의도였지 지방에 대중적 기반을 만들려는의도가 아니었다. 그들은 대중을 두려워했다. 그들 개개인이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정치는 조선 후기와 연결됐다. 1940년대의 연로한 정치 세력은 1890년대 기법을 모방했다.139 에릭 J. 홉스봄은 영국 지배층이새병에옛 상표를 붙이는 것을 선호한다면서 "내용은 완전히 바뀌었는데도옛 제도의 형태를 계속 유지한다"고 썼다.140 한국의 연로한 정치 세력의 특징은 정반대였다. 그들은 내용을 그대로 두고 구조만 변화시켜 국가 관료 조직을 이용한 옛 조선의 제도를 따라 계급적 특권을 보호하면서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1940년대의 차이는 일본이 옛 조선보다 훨씬 강력한 국가를 물려주었다는 것이다. - P158

루스벨트의 국제협력주의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의 문제였다. 그의 목표는전후 세계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잡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단은 차이를 만들었고 루스벨트가 사망하면서 힘의 균형은 무력의 사용과 점령, 소련과의 정면대결 그리고 국경선의 명확한 확정과 같은 고전적 일국독점주의 방식을선호한 인물들에게 기울었다. 신탁통치를 비롯한 그 밖의 국제협력주의적방법은 점차 고립된 일군의 대외 정책 입안자들이 선호한 방법으로 남았다.
한국의 경우 다국적 방법으로 소련과 반식민적 민족주의를 억제하려던 이런 정책은 포츠담회담 이후 분주한 시간 동안 폐기되었고 사실상 소련에게양보했던 한반도로 군대를 급파하는 일방적 정책으로 전환됐다. 그 결과는한 나라의 분단과 전후 최초의 봉쇄 정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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