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2장

두 개 씨족 사이에서만 이루어진 거란족의 결혼과 상당히 제한된 선택 범위를 가진 여진 씨족의 결혼은 정치적 권력의 보전에 기여하였다. 반면 송사회에서 결혼은 조상 숭배를 이어가는 것을최고의 의무로 삼는 합법적인 후손을 생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송대의 혼례 의식에는 기원전 주 왕조시대의 유교와 가족 연대를구축하여 특권과 영향력 또 경제적 번영을 확보하려는 사대부 계층의이익이 융합되어 있었다.
거란은 자신들의 독특한 전통을 계속 지켜나가며 매장 방식을 존중함과 동시에 당대 스타일의 귀족적인 묘분 건축을 최고의 수준으로 표현하여 지하 건축물을 조성했다. 송에서는 지속적이고도 의식적으로올바른 행동의 모범을 탐구하던 송대 사대부들의 정신이 상고시대 주 - P301

나라의 경전에 서술된 소박한 매장 관습을 부활시켰다. 고대의 문화를 존중하는 송대인들의 관념이 신유학 사상운동의 지지를 받아 타당하며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한족 중국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은더욱 강화되었다. - P302

중국은 역사 초기부터 시 짓기가 사회의 모든 계층에게 교육과 소통의 일부가 되었다. 당과 송 왕조시대에는 시험을 위한 암기 교재로서도 시는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송대에 시는 어떤 상황과 변화에 내재한 모습을 드 - P307

러내기 위하여 쓰였고, 위태로운 정치 영역을 포함한 인식과 존재의모든 방면을 다루었다. 다양한 유형으로 훌륭한 시를 지을 만큼 재능이 있다는 것은 뛰어난 정신세계를 가진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송대 작가들에게는, 내면세계의 본질이 시에 응축되었으며 그와동시에 그 본질은 외부세계와 자연의 현상들에 대한 인식과 이해와도복잡다단하게 연관되었다. - P308

니담의 의견에 따르면 중국 고유의 과학을 최고로 꽃피웠던 시대가 송이었다. 서양인이 중국과 관련짓는 3대 기술, 즉 활자 인쇄, 화기 제조, 나침반 발명도 송대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 P309

고대에 그리고 20세기까지도 줄곧 중국의 모든 도시는 성벽으로 그골격을 갖추었다. "성벽이 없는 도성은 없다. 성벽은 방어선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성은 여러 용도의 부지와 주거군으로 구획되었다. - P351

당 왕조의 장안은 도시 귀족문화를 위한 모델이 되었으며 우주론적으로 이상적인 장을 구현한 도성 설계로 동아시아 전체에 영향을 주었으나, 904년 파괴 이후 수백 년간 하찮은 존재로 추락했다. 도시 설계에 관한 당대의 표준이 중국에서 살아남은 것은 단지요 왕조의 남경(오늘날 북경)에서 그것도 여진 군대가 점령한 1122년까지뿐이었다.
개봉이 대규모의 교외, 24시간 활동,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사는 동네들, 도시 의식을 지닌 주민들을 특징으로 한 개방된 도시로 변모하였던 반면, 요의 남경은 여전히 담장과 문을 갖춘 방들로 구획되었다. - P390

항주는 상업 중심지로서 중국 역사상 독보적이었다. 오자목의 평가에 따르면, 항주는 "세계의 중추이며, 그와 맞먹을만한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 P390

1276년에 몽골이 항주에 진입하면서 이 활기에 찼던 남부 도시가차지했던 ‘세계의 중추‘라는 지위도 끝나버렸다. 그래도 항주는 유혈사태 없이 함락되었으며, 계속 생기 있는 상업 중심 도시를 유지했다. - P391

종합적으로 볼 때, 송대의 뛰어난 경제적 성취는 몇 가지 요소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는 조세 등기상의 농업 경작지가 959년에 국토의2.5퍼센트였던 것에서 1021년 13퍼센트로 크게 증가한 것이며, 이것이 송대의 번영을 보장해준 요인이었다. 토지 등록은 과세 호구에 대한 개혁과 함께 추진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1078년 총 농가의 66퍼센트였 - P426

던) 자영농이 송대 농업의 중추가될 수 있었다. 농업 경제의 번창에는모든 종류의 기술적 개선, 특히 새로운 도구의 사용이 필요했고, 이것은 다시 더욱 효율적인 채광 방법과 철구리의 높은 생산을 요구했다.
이러한 금속의 이용이 쉬워지면서 막대한 규모로 화폐를 주조할 수 있었다. - P427

양송 시대에는 상업, 금전대출, 조세제도 그리고 대외 정책에도 현금 통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P431

10세기말에서 11세기 말까지 화폐 공급이 상당히 증가했다는 사실은 송대화폐경제의 중요성이 커졌음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 P432

근대적인 표현을 쓴다면, 송대 사람들은 중세의 다른 사회에 비하여 보기 드물 정도로 사적 영역에서 행동의 자유를 누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를 천자에게 순종적인 신민으로 생각했다.
그들의 일상생활은, 이론적으로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지켜야 할의무가 있을 만큼 잘 알려져 있는 규칙과 제재를 따랐으며 이러한 규율은 유교적인 행동 규범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그렇지만 경제적인면에서는 주택 건축과 의상에서의 기호부터 위생, 오락, 자선의 범주까지 사적인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관찰되는 방임적 태도가 있었다.
그러나 13세기 말 몽골 지배하에 들어갔을 때 중국인이 누리던 자기결정적인 생활방식의 편안함은 끝나버렸다. - P5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6장

송대에는 불교와 도교의 영향 아래, 유학 사상가들이 고대의 중국사상을 재편하고 ‘도학道學‘으로 알려진 철학 체계의 기초를 창조해내기 시작했다. 결코 한가지의 철학학파였다고 할수 없는 이 사상적·동은 서구 사회에서 대개 ‘신유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일차적으로 사회적·정치적 질서를 수립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신유학은 합리주의적 인식론이나 근본주의 도덕론 같은 중국적인 가치 체계를 규정하고 재평가하였으며, 이것이 공공 영역은 물론 사적 영역에까지도송문화의 중심축으로 작용했다. - P193

10세기와 11세기의 정치와 사회 변화는 유교와 불교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었다. 새로운 조류의 사상가들은 좋은 유학자가 된다는 것을이렇게 해석했다. 우선 고대의 진정한 학문을 전파하는 것이며, 동시에 개인에게 구원을 약속함으로써 도교와 불교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 P227

윤리학의 한계가 학자들의 융통성이나 상상력을 제약할 수 있었다해도, 송대 유학자들의 분명하고 직설적인 해석을 통해 유교는 책임감 있게 일상사와 개인 생활로 돌아왔다. 상위의 지식인 계층에게 유용한 지침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중국사상 처음으로 국가의 이념이 되었다. 유교 철학은 사회 모든 구성원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할 만큼 강 - P228

력한 윤리학적 틀을 형성했으면서도, 다른 모든 중국 왕조로부터 구별되는 송대의 유례없는 변혁 과정에 대응할 만한 여지 또한 충분히있었다. - P229

송 왕조는 교육과 시험을 통해서 자기 영속이 가능한 관료 혈통을 이루는 문신 가문의 시대가 되었다. - P233

이 지배층의 공통분모가 될 수 있는 요소는 그들이부, 권력, 명성, 특권을 누렸다는 점이다." ‘사‘라는 용어의 뜻은 시간에 따라 여러 번 변화를 겪었고 지금까지도 논쟁거리이다. 그러나 이문 중심의 문화에서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언제나 사회적 지위의 표상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기원전 5세기 공자의 시대에 이미 전통적인 직업별 4계급 제도에서 ‘사‘가 최고의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고 그다음 농민, 공인, 상인의 순서였다. 공자 자신은 낮은 ‘사‘ 귀족 출신이었고 조언가, 학자, 여러 가지 직무의 관리를 역임했다. 9세기 초에 이 4계급 제도가 확장되어 도교와 불교 성직자 두 개 계급을 추가로 포함하고, 11세기에는 더욱 늘어 사대부, 농민, 공인, 상인, 도관, 불승, 군인, 부랑자의 부류도 추가되었다. - P234

11세기에 고문이 수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비운율적이고비변려체적인 문체가 갖는 실용성 때문이 아니라고문 자체가 갖고 있는 유교 정신의 부활이라는 이념적인 의미 때문이었다. - P251

관리들은 복무에 대한 대가로 매우 후한 보상을 받았는데, 현금으로 받는 월봉뿐만 아니라 양곡, 견직물, 땔감, 술, 소금, 서적과 기타물품 등 여러 가지 종류의 수당까지 받았다.
송 왕조는 관리들에게 역대 왕조 중에서 최고 수준의 봉록을 지급했지만, 부패는 관료 사회 모든 계층에서 계속되었고 이에 대한 개혁의 요구가정기적으로 제기되었다.
북송대의 보상체계는 기록관에 맞추어져 있었지만, 남송대에는 이런명예직의 봉록이 기능적 임무의 보수에 비해 그 중요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차견 직무에 따른 봉록 편성이 향상됨에 따라 차견 - P258

직의 매력이 커지고 기록관의 중요성은 자연감소하게 되었다. - P259

관리들과 그 가정은 여전히 중국의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부유했고, 이전 시대 관직에 있던 사람들보다 생활수준이 높았다. 급료와 현물 지급 외에 관리들은 모욕적이고 육체적인 요역 의무에서 면제되며, 자신들이 가진 토지에 부과되는 세금도 관품에 따라 부분적으로 감면받았다. 사법 처리의 경우, 7품 이상의 관리들에게는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을 가할 수 없었으며, 5품 이상 관리는 그 조부모, 부모, 형제자매, 처, 자손까지도 그러한 특혜 범위에 들어갔다. - P2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 4장

‘개혁‘은 11세기 송의 정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핵심어이다. - P103

개혁파 사이의 투쟁은 북송 말까지 계속되었으나, 왕안석의 뒤를 따른다고 선언한 자들도 왕안석만큼 넓은 식견과 수양을 갖지 못했다.
1127 년 개봉과 북송이 붕괴된 이후, 희생양을 찾던 남송의 학자들은왕안석을 실패한 개혁을 주도한 단독 인물로 지목했고, 더 중요한 사실은 그 후의 사이비 개혁가들이 보인 떳떳치 못한 행동들까지 왕안석과 연관시키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 P123

휘종은 선친 신종과 형 철종의 뒤를 이어 철저한 개혁 정책을 밀어붙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휘종은 채경蔡京(1046~1126)이나 동관(1054~1126)과 같은 용렬하고 부패한 관리와 환관에게 의사결정을 위임했으며, 이들이 이끄는 사이비 개혁당이 원한 것은 고작해야 황제를 즐겁게 해주어 자기들의 잇속을 챙기는 것이었다. - P129

화북 지역을 금에게 빼앗긴 후송 조정과 행정 부서들이 서둘러남쪽으로 떠나면서 송 왕조 역사의 두 번째 단계, 즉 1279년까지 152년간 지속되는 남송 시대가 시작되었다. 북송과 남송이라는 용어는물론 송대에는 사용되지 않은 역사학적 명칭이다. 사건을 목격한 동시대 사람들 중에는, 1127년 송 왕조의 와해로 송의 연속성이 훼손되었고 왕조의 개념으로 보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는 견해를 일부 보이기도 했으며,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한 왕조가 서한(전한)과 동한(한)으 - P138

로 나누어지는 것처럼, 송의 역사도 1127년을 기준으로 하여 양분된다고 감히 주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 P139

1005년 거란과 맺은 전연의 맹약을 그대로 따른 금과의 평화 조약은수십 년 동안 평화를 보장해줄 것이었다. 이것들을 종합해보면, 주화파의 편을 드는 것이 황제의 권력과 지위를 강화시킬 수 있는 선택이었다.
공존을 옹호하는 자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진회秦檜(1090~1155)였고 그가 악비 독살을 명령한 관리였다. 악비가 죽은 뒤 곧 진회와 금측 협상 대표인 완안종필이 평화 합의에 도달하여 1141년 12월 25일에 초안을 작성했다. 협정 조건이 송에게 가혹하고 모욕적이었지만 20년 동안은 양국 사이의 평화가 확보되었다. - P155

인구 90퍼센트를 차지하는 다수의 한족이, 요의 영토가 되기도 했지만 전통적으로는 한족 자신들의 고향인 중원에서 살고 있는, 이 다루기 힘든 나라를 어떻게 통치할지의 문제를 놓고 지배 씨족완안부는의견이 갈렸다. 중국의 관료제가 모든 등급의 행정 기능 면에서 장점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것을 선호했다. 그러나 처음부터자신들의 정권과 독립성이 축소될 것을 두려워했던 여진의 무사장군들은 그에 반대했다. 여진 지배자들은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중국화와 중앙집권화로 가는 문을 열었다. - P158

칭기즈칸의 군사 원정은 중앙아시아 스텝을 가로지르는 오랜 무역길, 즉 이른바 실크로드 상의 부유한 도시들에 집중되었다. 이 국가들은 이전에 있던 전쟁들에 지쳐서 크게 항거하지못했으며, 초원 지대는 몽골 기병대들이 침입하기에는 중국 중남부의진흙 들판보다 수월했다. - P1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왕조의 국가기반은유교에 있습니다. (이렇게) 유교를 강화함은 어느 왕조에서도 유례가없습니다. "
‘유교국가‘라는 용어는 추상적이거나 이론적인 것 또는 유토피아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상고시대에서 차용해온 유교적 통치의상적인 구조와 혼동하면 안 된다. 오히려 이것은 "지성의 전통을 이끌어온 사상과 지배적인 행정 체제인 관료정치가 역사의 무대에서 긴밀히 결합하게 되었음을 가리킨다. 고대 경서에 뿌리를 둔 유교는 도덕, 즉인, 의, 예, 효, 충그리고 무武보다 우선하는 문의 원리와 의례등에 기초한 윤리를 제공하였다. 그것은 교양 있는 상류 계층, 즉 계층적인 구조의 사회에서 다른 모든 계층이 제공하는 봉사를 필요로 하는지식인 지도층의 행동지침으로 간주되었다. - P68

중국은 자신의 우위와 권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형제애‘라는 허구에 합의하는 것을 생각해냈다. 오래된 중국의 가족관계를 모방하여, 요 지배자가 ‘동생‘이 되어 송 지배자를 ‘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이 같은 조약이 가져올 형제 국가의 실제 결과에 대해 송 시대의 사람들은 아주 잘 알았을 것이다. - P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7월에 총 14권의 책을 읽었다. 책을 읽기에는 덥거나 추운 것도 도움이 되는지 여름과 겨울에 좀 더 읽게 되는 것 같다^^

초반에는 역사서 위주로 읽었고 막판에는 무더위가 시작된 만큼 가벼운 책들도 곁들여 가며 읽었다. 


읽은 책들은 모두 리뷰를 길게든 짧게든 올렸지만 그냥 올리기에는 민망하니 간단하게만 써 본다.




< 1984 >

원서로 읽는데다가 중간부터 드문 드문 읽고 진도가 안 나가서 4개월 정도만에 겨우 읽었다.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린 대표적인 소설 중 한 권이라고 한다(그러고 보니 집에 멋진 신세계가 있었는데 읽지를 않았네). 누군가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 문명에 의한 감시와 통제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현 시점에서도 놀라운 통찰을 안겨준다. 문제는 그 감시와 통제로 인해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된다는 데 있지 않을까.


< 돌궐 유목제국사 >

구입한 지는 한참 지났는데 이제 읽을 시점이 되어서 읽게 되었다. 작가가 그동안 이 중앙아시아 연구를 해온 연구자라 그런지 믿음이 갔다. 사료가 없는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추측에 기반할 수 없지만 돌궐 제국의 전사를 다룬 책이 거의 유일하고 더군다나 중국 등 한문 자료만이 아니라 투르크어에 기반한 유물과 유적 자료를 찾아 사료를 보충한 점은 인정해줄 만하다. 연구자의 남은 책들을 마저 읽어야겠다는 의지가 샘솟았다.


< 진순신 이야기 중국사 4 >

진순신 이야기 중국사 4권은 수, 당, 오대십국, 북송 시기까지를 다룬다. 6년 전 김용 무협지인 <사조영웅전>에 기반한 역사를 본다고 보았던 것 같은데 북송 부분만 보았는지 그 부분만 흔적이 있고 앞부분은 흔적이 없다. 이것을 읽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 역시 이번에 읽으니 앞부분은 처음 접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 당은 정치 체제가 자연스레 이어지는 느낌이지만 송나라는 앞선 오대십국 때문이 아니라 체제 자체가 변혁에 가깝게 바뀌었기 때문에 다른 체제였다. 


< 중국의 역사 : 송대 >

송나라 역사를 훑어 읽을 만한 책이 없을까 해서 찾아보았으나 딱히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은 살 만한 게 없었기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이 책은 작가가 1900년대 초 살았기 때문에 글이 좀 딱딱하고 옛스러운 표현이 많아 고루한 편이다. 그렇지만 내용면에서는 충실한 편이라 느꼈다. 정치, 외교, 군사, 제도,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다룬다. 나는 특히 왕안석의 개혁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다룰 줄이야 하고 놀랐다. 또한 경제, 상업 측면이 무척 자세하다 느꼈다. 송은 북송과 남송이 마치 전혀 다른 국가처럼 느껴지는 측면이 있기에 개혁의 변화의 측면에 다룬 것도 도움이 되었다. 


< 나도 루쉰의 유물이다 >

루쉰의 아내인 주안에 대한 평전이다. 나오자마자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해놓길 잘했다 싶다. 어떤 책을 읽든 작가의 작품은 시대적 배경과 개인사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루쉰의 작품을 읽기도 전에 루쉰의 자서전이나 평전이 아닌 전처의 평전을 읽는 것이 우려가 되었다. 하지만 읽고 난 뒤의 소감은 오히려 앞으로 루쉰의 작품을 읽을 때 참고할 만한 하나의 길잡이를 만났다는 생각이다. 주안은 구시대의 여성상에 맞춰 사느라 힘겨운 삶을 살아야만 했다. 루쉰의 사랑과 인정이 있었다면 견뎌낼 수 있었을테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지 않았다. 


< 조용한 미국인 >

조용한 미국인은 본격적인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기 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기간 동안을 배경으로 한다. 때문에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자연스레 향후 베트남의 암울한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물론 당시 사람들은 이후의 결과를 원치도 않았을 것이고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인물을 통해서 당시 베트남에 들어온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사실 이 책은 전쟁을 배경으로 한 것일 뿐 사람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느꼈다. 순진함은 무모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과 모든 것에 피해 있고 싶다고 해서 방관자로 살 수도 없다는 것 등 말이다.


< 베트남 전쟁 >

조용한 미국인을 읽고 나서 바로 이어서 읽었다. 이 책은 한국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전후의 역사를 다루는데 그 때문에 베트남전사라기보다는 베트남 참전의 한국현대사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저자는 한국현대사 전공자고 베트남전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온 바가 있어 신뢰가 갔다. 연구자의 글이 딱딱하기 쉬운데 무척 쉽게 대중적으로 잘 씌어 있어서 술술 잘 읽히는 것이 장점이었다. 베트남전에 한국이 왜 참여헸고 그 이후 전개 과정은 어떠했으며 결과 이후는 어떠했는지 역사를 기술하며 한국을 둘러싼 다른 나라들과의 이해 관계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야말로 친절한 입문서다.


< 성의 변증법 >

파이어스톤이 나아간 곳은 성적 해방의 길이다. 기존의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했던 권리 동등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성적 계급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세계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생식조절에 대한 점유, 인공생식에 대한 주장은 현재로서도 놀라워 보이는데 당시로서는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아동기를 없애자'는 주장은 제목만 봤을 때는 와 닿지 않았었다. 페미니즘과 아동기를 없애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동기라는 명칭이 근대의 산물이라고 한다. 중세까지만 해도 그런 구분 자체가 없었다고. 이렇게 근대에 들어서 생긴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등의 구분은 억압을 만들어내는 기제가 되었다. 여성의 급진 해방을 주장했던 파이어스톤은 정작 개인은 불행했던 것 같다. 


< 하버드 중국사 당 >

당의 전기와 후기의 변화에 집중해서 기술하여 변화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었다. 세계적인 제국으로 발돋움한 당이 외부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중앙아시아의 문화가 내부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 금융 거래, 차 문화, 불교 문화, 당시 등 경제, 문화적으로 지금도 사용하는 것들이 이 무렵 등장했다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당나라 여성의 권위가 강하다고 인식되는 것은 북방의 이민족과 잦은 교류 때문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한족보다 남녀의 평등이 중요시된 북방의 문화가 이입이 되면서 무측천, 태평공주, 위황후까지 반세기 이상의 시기를 여성이 지배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1 >

1권은 장강과 황하 길을 따른 풍광을 마주하며 역사를 이야기하고 장소에 걸맞는 한시를 소개해준다. 장강 여행에 앞서 중국의 시인 '이백', '두보', '소동파'의 연고지를 찾아간 것은 독자로서도 반가웠다. 장강 여행 중 인상적이었던 두 곳만 꼽아본다면 도원과 황강의 동파적벽이었다. 황하 여행에서는 호구폭포壺口瀑布, 화산 동봉 하기정下棋亭이 인상적이었다. 화산의 화기정은 동봉에 있어 에스컬레이터나 케이블카 등이 없어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거의 수직의 절벽이라 감히 올라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탁 트인 풍경이 멋스러웠다. 무협지에 단골로 나오는 곳이라 그런지 왠지 모를 내적 친밀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2 >

중국한시기행 2권 후속편은 '강남' 지역과 '유배길' 편으로 묶여 있다. '강남' 지역 중 인상적인 곳은 항주였는데 이 곳은 소동파와 인연이 깊다. 소동파는 항주를 최고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설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의 항주의 모습은 소동파가 있어 가능했던 것 같다. 두 번째로 꼽을 곳은 황산이다. "오악에서 돌아오면 산이 보이지 않고, 황산에서 돌아오면 오악이 보이지 않는다"의 문장을 통해서도 오악보다 황산을 꼽은 이유를 알 만하다. 유배지 중 첫 번째로 꼽은 곳은 영주다. 영주는 유종원의 유배지였고 두 번째는 혜주, 이 곳은 소동파의 많은 사연이 담겨 있는 곳이었다. 


< 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 >

조선의 근대 시기 백화점은 모든 유행의 집결지이자 집합소 기능을 하는 곳이었다. 1920~1930년대 경성의 백화점에서 팔았던 각종 물건들의 유래를 통해 당시의 풍경을 엿본다. 백화점에서 팔았을 법한 물건들과 광고에 등장하는 단골 아이템들을 통해 그 당시 어떤 것이 유행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백화점의 각 층별로 목차를 설정하는 것은 좋았으나 안내를 백화점을 둘러보는 느낌으로 했다면 더 실감났을 것 같다. 막상 내용은 근대 물품 탄생의 기원과 역사를 설명해주는 것으로만 되어 있어 아쉬웠다(이런 책들은 그동안 많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토지 19 >

일본 스파이(밀정)이가 길가에서 죽음을 당했다. 문제는 이것이 정치적인 보복이 아니라 치정에 의한 살인이라는 것이 문제다. 차라리 조선 독립군에 의해서 살해를 당한 것이라면 속이 더 편했을까. 아무튼 여러 명 등을 친 배설자였으니 그의 말로는 이것이 당연한 귀결이었다. 오가타는 아들인 쇼지와 만주를 여행하면서 인실을 떠올렸다. 영광은 양현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갈등한다. 악극단의 연주자인 자신의 처지가 양현에게 가당치 않다 느꼈을까. 윤국이는 양현을 포기하고 떠났고 환국이와의 관계도 껄끄러워진 영광은 양현을 놓아야 하는 선택에 내몰렸다. 전쟁의 막바지 먹을 것은 부족하고 징용과 정신대로의 강제 연행이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 토지 20 >

막판으로 올수록 과거의 회상 장면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 집중력이 좀 흩어지는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작가의 필력이 대단한 것인지 좋은 문장, 생생한 캐릭터들을 만나는 즐거움에 20권까지 잘 달릴 수 있었다. 1년여의 여정 동안 토지를 읽을 수 있어 행복했다. 고전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재독, 삼독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작가님께서 더 오래 사셔서 더 좋은 작품을 남기실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토지라는 대작을 남겨주신 것만으로 독자로서는 두고 두고 읽을 작품이 생긴 것이니 감사할 따름이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오 2023-08-02 17: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여기 가벼운 책 어딨죠? 다 메인반찬 같은데요..?! ㅋㅋㅋㅋ 화가님께만 곁들임이었던 것이다..

거리의화가 2023-08-02 17:48   좋아요 3 | URL
앗! 가벼운 책 분명 있습니다 있고요ㅋㅋ 그나저나 메인반찬, 곁들임 표현에 빵 터지네요! 8월에는 조금 더 가벼운 책들을 찾아 읽어보도록 해볼까요???

얄라알라 2023-08-03 01:41   좋아요 2 | URL
저도 화가님의 책곳간 소개하시는 다른 포스팅에서 은오님과 비슷한 댓글을 남겼었는데 그 때도 화가님께서 매우 겸손하시게 답변하셨어요. ^^ 겸손하신 화가님!

아무리 봐도, 제겐 소프트아이스크림 같은 책이 하나도 안 보이는데요^^

그나마 제목과 친하고 읽어본 책이 [1984]인데, 마지막 장 덮으면서 많이 무겁게 느꼈습니다. 조지 오웰이 아프지 않았을 때 썼다면 조금 더 가벼웠을까요?^^

거리의화가 2023-08-03 09:22   좋아요 1 | URL
@얄라알라
<1984>는 내용이 가볍지 않죠. 지금도 직시할 만한 주제를 던져주는 책이니까요^^
저는 여행기나 테마가 있는 책들을 읽을 때 가볍다고 느끼네요. 제가 구입하는 책들은 주로 묵직한 책들이 많아서인지 가벼운 책을 가뭄에 콩나듯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달에는 여름 휴가도 껴 있으니 가벼운 책들 곁들여 읽어보도록 해야겠어요.

독서괭 2023-08-02 18: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역시 화가님 읽은책 목록은 중량감이 엄청나네요. 엄지척!!

거리의화가 2023-08-03 09:23   좋아요 1 | URL
초반에는 좀 그랬네요!^^

stella.K 2023-08-02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 ebs에 김성곤 교수 나와서 강의했는데 느긋하고 한량같은 느낌이 정말 세상 좋은 사람같았습니다. 모름지기 공부란 그렇게 해야하는 것 같은데 너무 쫓기며 하죠? ㅎㅎ

거리의화가 2023-08-03 09:26   좋아요 1 | URL
ebs 출연하셨나보군요. 그쪽에서 방송하시면서 유명해지셨으니 또 초대하신 모양입니다! 복장도 개량한복 입고 나오시는데다가 푸근한 미소 덕분인지 느긋한 여유가 돋보이시죠. 저도 그렇게 공부하며 살고 싶은데 성격상 쉽지 않네요!ㅋㅋ

stella.K 2023-08-03 11:32   좋아요 1 | URL
아, 한마디로 신선같으신 분이죠. 어젠 더워서인지 생각이 안 나더라구요. ㅋ

페넬로페 2023-08-02 18: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7월에 14권도 대단한데
읽으신 첵 모두 다~~~
그 다음 말은 생략!
덥고 추울 때 책 더 안 읽는 사람,
여기 저올시다🤣🙃

거리의화가 2023-08-03 09:28   좋아요 1 | URL
요사이 더위가 좀 심하긴 하네요!
저는 더위 쫓는데 오히려 역사책들이 더 좋습니다. 문학 읽다 보면 감정이 올라와서 더 더울 때가 많아서요ㅋㅋ 페넬로페님 무더위에 건강 유의하세요^^

책읽는나무 2023-08-02 19: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벼운 책은 눈을 비비고 살펴봐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14권 진짜 많이 읽으셨어요.
역시 모범생!!!!^^
8월에도 또 열심히 읽으시는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8-03 09:30   좋아요 1 | URL
이제 한 일주일여만 지나면 무더위가 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달에도 즐겁게 책을 만나봐야겠어요^^

잠자냥 2023-08-02 22: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헐… 이 여름에 돌궐 유목제국사 이런 게 읽히는 화가 님 리스펙트.

거리의화가 2023-08-03 09:31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런 역사책이 여름에 더 잘 읽힐걸요? 문학 읽다가 감정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아서 저는 오히려 더 덥더라구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초록비 2023-08-03 0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실례지만 토지 완독하신 분 처음 봤어요! 저도 도전해보고 싶네요.

거리의화가 2023-08-03 09:32   좋아요 1 | URL
토지 완독은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한 번에 몰아서 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1년에 나눠서 읽느라 좀 더 힘들긴 했습니다. 초록비님도 한번 도전해보세요^^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3-08-04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서까지 있는데도 14권이라니 대단합니다~!! 대부분이 역시 역사책이군요 ㅋ (토지도 역사책임~!!)
7월 기록이 엄청나십니다!!

거리의화가 2023-08-05 21:01   좋아요 1 | URL
원서는 몇 달에 걸쳐 읽은 거라^^; 아무래도 더위를 쫓는 데는 역사책만한 것이 없습니다.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네요. 새파랑님 건강 잘 챙기시고 8월에 재미난 독서하시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