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생각의 창조적 단계는 그 생각이 경계를 고집스레 내세우며 여타의 것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시기다. 그런데 생각이 여타의 생각과 헐값에 타협을 추구한다면 거짓이 되고 힘을 잃는다.
현대의 진지함은 다양한 전통으로 존재한다. 이 경계를 지우고 이것도 종교적이라고 부른다면 지적으로 어떤 합당한 목적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1961) - P364

예술의 초현실주의 전통은 기존의 의미를 파괴하고 극단적 병치(또는 ‘콜라주 원칙)로 새로운 의미 또는 반反의미를 창조하려는 개념으로 한데 묶을 수 있다. 로트레아몽의 말을 빌리면 아름다움이란 "해부대 위에서 재봉틀과 우산이 우연히 만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개념의 예술은 뚜렷한 공격성을 띤다. 관객의 상투적 기대에 대한 공격성이며무엇보다 매체 자체에 대한 공격성으로 움직인다. 초현실주의 감•성은 극단적 병치 기법을 통해 충격을 주려 한다. - P383

사람들은 대체로 감수성이나 취향을 순전히 주관적인 선호의 영역으로 간주한다. 주로 감각의 불가해한 끌림일 뿐 이성의 지배 아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본다. 취향이 사람이나예술 작품에 대한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고 인정할 뿐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지나치게 순진하다. 아니 그보다 더 나쁘다. 취향의 기능을 봐주듯 경시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경시하는 일이다. 취향은 모든 자유로운 (주입된 것이 아닌) 인간의 반응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취향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없다. 사람에 대한 취향, 시각적취향, 감정적 취향이 있을 뿐 아니라 행동에 대한 취향, 도덕성에대한 취향도 있다. 지성도 사실은 일종의 취향이다. 생각에 대한 취향. - P392

오늘날 예술은 의식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감수성을 조직하는 도구가 되었다. 예술을 실천하는 수단은 급진적으로 확장되었다. 이런 (뚜렷이 표현되었다기보다는 강하게 느껴지는) 새로운 기능에따라 예술가들은 자의식적인 미학자가 되어 자신이 사용하는 수단, 재료, 방식에 끝없이 도전해야 했다. 그래서 ‘예술‘의 세계에서(예를 들면 산업 기술, 상업적 프로세스와 이미지, 순전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환상과 꿈에서) 가져온 새로운 재료와 방식을 정복하고활용하는 것이 예술가들의 주된 과제가 된 듯하다. - P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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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손명희 옮김 / 교양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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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은 '공동체의 쇠퇴와 굴육, 희생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 에너지, 순수성의 숭배를 두드러진 특징으로 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이자, 그 안에서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결연한 민족주의 과격파 정당이 전통적 엘리트층과 불편하지만 효과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민주주의적 자유를 포기하며 윤리적 법적인 제약 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내부 정화와 외부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 P487


어떤 책을 구입하자마자 정독으로 2회독 이상을 해본 것은 오랜만이다. 독서 모임 책으로 이 책을 11월에 샀다가 1회독을 했지만 뭔가 미진한 것 같았다. 모임이 12월로 미뤄졌길래 그참에 정독을 한 번 더 했다. 한 번 더 봤다고 해서 책을 잘 이해했느냐 물어보면 자신감 있게 대답할 수 없겠지만 역시 1회독보다는 2회독이 훨씬 낫다는 것은 확실하다.


파시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나치즘(파시즘)과 대중을 선동하는 히틀러(나 무솔리니)이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이 책에서도 언급되는 내용이지만 그들이 연출하는 의식적 행동은 당시 대중에게 감정적 수사로 작용하여 먹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의 행위는 과장된 연출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중이 원하는 떡고물을 주었(기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파시즘은 어떤 사상, 이념과도 결합하여 유연성을 가졌기에 운동성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파시즘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위한 설명보다 파시즘이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쳤고 각 지역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추적하는데 집중한다. 


파시즘은 1차 세계대전의 경험과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공산주의 사이에 제3의 질서가 만들어질 공간이 생긴 것이 직접적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간접적으로는 자유 개인주의가 공동체를 무너뜨릴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 속에 성립된 반자유주의, 이민 인구의 증가로 인한 내부 보수 세력의 결집, 그것을 이용하고 조장함으로써 성립된 민족주의, 인종주의가 배경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파시즘 이데올로기와 파시즘 정권에 반드시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파시즘 정권은 다양한 이해 관계를 바탕으로 여러 과정을 통해 사회 속에서 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파시즘이 나오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전제 조건(이자 상황)이 필요했다. 일단 대중이 정치에 전면으로 등장한 것, 볼셰비키 혁명으로 인해 기득권층이 위협을 받은 것, 좌파 내부에서 분열과 갈등이 벌어진 것이다. 파시즘은 무엇보다 근대성에서 발현된 갈등과 문제점을 현실에서 맞닥뜨린 군중이 대안적인 근대성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시점에서 나왔다고 본다. 어쨌든 저자의 말에 의하면 이 전제 조건이 없는 상황에서 파시즘과 비슷한 형태의 상황은 나올 수 있어도 파시즘이라고 정의내리기 어렵다고.


파시즘은 1919년 3월 23일 밀라노에 모여든 군중이 민족주의에 반하는 사회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파시즘의 기원이 되는 구체적인 사건이 있었구나... 그러니 나는 파시즘을 이데올로기와 구체적인 실현 형태와 섞어 놓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형태가 두루뭉술하여 그 시작이 언제지 떠올릴 수 없었던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내가 생각한 파시즘의 이미지는 초기가 아닌 후기의 급진화된 파시즘에 가까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이념적인 접근으로 가볍게 시작했으나 사회적 상황과 구체적 현실에 따라 점점 더 과격해져 자리한 형태로 보이기 때문이다.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자신이 꿈꾸는 이상을 담아 정당을 만들었으나 초기에는 그 세력이 미약했다. 그래서 그들은 부르주아 정당과 결탁하는 선택을 감행했고 대중에게 가능한 이상적 현실을 보여주며 선택과 지지를 호소했다. 

파시즘 정당이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는 뿌리내리는데 성공했으나 다른 곳에서는 실패했던 이유는 지도자의 자질도 있겠지만 사회적 위기가 얼마나 더 큰가, 또 동맹 세력의 선택지가 거의 없는 상황인가에 따라 달라졌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기득권 보수층은 왜 군대를 동원하여 폭력적인 독재 정권을 수립하는데 나아가지 않았는가? 폭력을 선택했다면 대중과 노동자들, 지식인들의 반감에 의해 그들이 좌파의 손에 넘어갈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파시즘이 뿌리를 내리고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급진파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변화의 범위는 줄어들었다. 파시스트들은 혁명이란 단어를 언급하며 대중을 선동했지만 정작 사회경제적 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민족 강화라는 명목으로 개인을 공동체에 귀속시켰다. 특히 젊은 세대를 육성하여 자신들에게 충성하도록 하는데 무척 애를 썼다. 모든 파시즘 정권은 국가주의를 강조하여 외국으로부터 자국 문화를 보호하고 통제하는데 주력하면서 문화를 통해 국민 단결 메시지를 내세우는데 주력했다. 파시즘 정권은 경제적으로 저축, 투자를 강조하고 개인의 소비를 줄이도록 설득했으나 대공황, 전후 유럽 경제의 성장률은 1차 대전 이전의 유럽 성장률에도 도달하지 못했으며 일부 국가는 전쟁을 수행하는데 동원할 물자 부족에 시달렸다. 사실상 경제 개발보다는 전쟁 수행에 더 우위를 둔 것이 아닌가 한다. 파시즘 정권은 개인이 공동체의 삶에 참여하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었으나 인권, 국제평화 등 전통적 헌법 수호 가치에 비추어 본다면 반혁명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이야기했듯 파시즘이 마지막 급진화 단계에 이르면 자기 파괴(파멸)에 이르게 된다. 정권은 전 국민을 전쟁 수행을 위한 기계로 내던지게 하고 종국에는 민족과 국가마저 거부하는 단계에 이른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끝까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고 조국을 포함한 모든 것을 파멸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궁금하다. 오늘날에도 파시즘이 있는가? 대부분의 학자들은 1945년 후에는 파시즘이 막을 내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970년대 세계적인 석유 파동, 나아가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경제적, 사회적 위기는 특히 서유럽에 극우 정당이 들어설 수 계기가 마련되었다. 동유럽과 발칸 지역도 선회한 자유주의의 부작용과 영토 분쟁, 소수 민족과의 충돌로 인해 극우적 환경이 마련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저자는 유럽이 시장 자유와 경제 개인주의에 대한 공격이나 시장 규제로 문제를 뿌리 뽑아야 한다거나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등의 행위가 없기 때문에 극우정당들이 들어설 자리가 크지 않다고 보았다.

라틴 아메리카에도 파시즘과 비슷한 형태가 있으나 저자는 그들이 대중의 열광적 지지에 기반하지 않았고 팽창주의 노선을 추구할 만큼 자유롭지 않았으므로 독재 정권 또는 폭압 정치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일본은 천황제 파시즘 또는 위로부터의 파시즘으로 취사선택한 파시즘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전제 조건인 대중의 자발적인 행동이 없었는가. 그렇다면 1920년대 벌인 관동 대학살 등에 참여한 일본인들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처럼 <파시즘>은 파시즘의 기원부터 바뀌어가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서술하면서 나라별로 다른 양상을 보였던 이유를 맥락적으로 설득력 있게 잘 그려냈다. 

그렇지만 한계도 보였다. 나는 저자가 과거 파시즘의 배경을 독일과 이탈리아 등 너무 유럽 중심으로 본 것이 아닌가, 파시즘을 전제 정치, 독재 정치나 폭압 정치와 구분하면서 그 범위를 너무 한정적으로 좁게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또 젠더적으로는 남성이 지도적 역할을 하고 여성은 보조적으로 그려지는 등의 아쉬움도 있었다.

이 책은 초판이 2004년에 씌여지고 2005년에 번역본이 나왔다. 그러다 보니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부동산 파산, 실업률의 급증 등의 경제적 위기(로 인한 계급적 갈등), 이민자 증가로 인한 사회적 문제(민족, 인종적 차별로 인한 대내외적 갈등) 등의 현 상황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의 생각과는 달리 현재 세계는 유럽도 극우 정당의 지지율이 급격하게 올라 1,2당이 되기에 이르렀고 연일 MAGA를 부르짖으며 지지자들을 선동하고 전 세계를 미국 질서에 맞게 다듬으려는 미국의 트럼프가 있다. 일본과 중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국은 아니라 말할 수 있나. 


여러 모로 지금 이 혼란한 정국에 이 책을 읽다니 참 시기적으로 잘 맞아떨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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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장례식에서 있었던 일이 가끔 생각나곤 한다.
삶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피부로 와닿게 된 사건이었다.

그때 20대 후반의 나이였으니 절절함이라는 단어를 결코 알 수 없을 때였다.

어머니는 할머니를 유독 버겁고 힘들어했다.
시어머니는 아무래도 불편할 수밖에 없을테지만 잘못을 저지른 아버지를 늘 외동아들이라며 두둔하는 모습이 못마땅하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장례식 때 가장 큰 눈물을 보인 건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그때는 어머니가 힘들어해서 감히 물어볼 수가 없었기에 시간이 훌쩍 지난 뒤 여쭈어봤었다. 그때 왜 그렇게 우셨냐고.
그 감정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단다. 그래… 그런 걸까.

어머니의 진짜 엄마인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그 소식을 가까이서 접할 수 없는 상태였다.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운 상태였었고 밤낮으로 일하느라 어머니의 심신이 많이 지쳐있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를 괴롭혔고 집안 꼴이 아무튼 말이 아니었었다.
그런 상태에서 할머니는 투병하다가 급격하게 안좋아지셔서 돌아가신 것이다.

장례식 때 제대로 가보지도 못하고 외할머니를 보낸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해보곤 한다.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라고 어느 장소에서 홀로 목놓아 우시지 않았을까…
그 감정을 떠올리니 마음이 저릿하다.

I couldn‘t comprehend then the depth of her sorrow the way I donow. I was not yet on the other side, hád not crossed over as shehad into the realm of profound loss.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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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s was tougher than tough love. It was brutal, industrial-strength. A sinewy love that never gave way to an inch of weakness.
Itwas a love that saw what was best for you ten steps ahead, and - P17

didn‘t care if it hurt like hell in the meantime. When I got hurt,
she felt it so deeply, it was as though it were her own affliction.
She was guilty only of caring too much. I realize this now, only inretrospect. No one in this world would ever love me as much as mymother, and she would never let me forget it.
… "Mommy is the only one who will tell you the truth, becauseMommy is the only one who ever truly love you." Some of the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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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12-14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시작하셨군요. 화이팅!!
 

위대한 사색적 예술은 냉담하지 않다. 관객을 고양시키기도 하고, 충격적인 이미지를 각인하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하기도 한다. 다만 감정적인 힘은 조절된다. 감정적으로 몰입하게끌어당기는 힘이 연루되거나 편을 들지 않도록 거리를 두게 하는요소들로 상쇄된다. 감정이입은 늘 언제나 지연된다.
이런 차이는 기법이나 수단, 심지어 사상의 측면에서도 설명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예술가의 감성이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 P258

모든 예술은 증명의 한 방식으로, 최고 강도로 정확성을주장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모든 예술 작품은 그것이 재현하는 행위를 논쟁의 여지 없이 증명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증명과 분석은 다르다. 증명은 어떤 일이 일어났음을 입증한다. 분석은 왜 일어났는지를 보인다. 증명은 정의상 완결성을 지닌 논증 방식이지만, 완결에 이르기 위해 형식성에서 벗어나지못한다. 증명은 시작부터 이미 포함되어 있던 것을 결론에서 확 - P286

인하는 것에 그친다. 반면 분석은 늘 또 다른 이해의 관점, 새로운인과관계를 연다. 분석은 실질적이다. 분석은 정의상 완결에 이르지 못하는 논증 방식이다. 사실상 끝이 나지 않는다. - P287

증명하려는 예술은 두 가지 의미에서 형식적이다. 첫째로예술의 주제가 사건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고 의식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다. 둘째로 수단이 형식적이다. 다시 말해 대칭, 반복, 도치, 중복 등 눈에 보이는 디자인의 요소를 포함한다. - P287

SF 소설과 비교했을 때 영화에는 독특한 강점이 있는데특히 예사롭지 않은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신체적 기형이나 돌연변이, 미사일과 로켓 전투, 초고층 건물의 붕괴 등. 당연히 영화는 (일부의) SF 소설이 지닌 강점, 즉 과학적인 면에서 약하다. 그렇지만 영화는 지적 탐구 대신 소설이 결코 제공할 수 없는 것, 곧 감각적 상세함을 제공할 수 있다. 영화는 상상으로 번역해야 하는 언어 대신 이미지와 소리를 매개로 관객이 자신의 죽음, 도시의 죽음, 인류의 멸망을 겪는 환상에 참여하게 한다. - P307

생각할 수 없는 것이 공모의 대상이 된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을생각하는 것"(미래학자 허먼 칸처럼 예측을 하는 게 아니라 환상을 품는 것)은 의도했든 아니든 도덕적 관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런 영화들은 정체성, 의지, 권력, 지식, 행복, 사회적 합의, 죄책감, 책임감 등에 관한 클리셰를 반복하는데 줄잡아 말하더라도 오늘날 극단적인 사회에 대처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집단적악몽이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입증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기에는 SF 영화에 다양한 방식으로투영되는 이런 악몽이 우리 현실에 너무 가까이 있다. - P326

영화는 일종의 범예술이다. 사실상 어떤 예술이든 통합하고 흡수할수 있다. 소설, 시, 연극, 회화, 조각, 무용, 음악, 건축 등. (사실상) 동결된 예술 형태인 오페라와 달리, 영화는 사고와 감정의 스 - P352

타일이 매우 보수적이면서도 창의적인 매체였고 지금도 그렇다. -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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