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고전 - 스스로 배우는 방법을 익히기 위하여 상냥한 지성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외 지음, 정지인 옮김 / 유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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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서문을 읽다 공감했다. 독자가 이 책을 접어들었다면 공부에 관심이 있거나 적어도 고전 읽기 등에 욕심이 있을 것이라고. 이 책은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설파한 지식인을 소개하며 그의 대표작을 이야기한다. 소개하는 내용이 책인 경우도 있지만 논설문인 경우도 있다. 길(안내)인 만큼 핵심 부분을 간추려 소개한다. 고전을 안내하는 책이 많은 것 같지만 사실 독자의 마음에 들기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얇은 페이지 수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는다면 꽤나 도움이 될 책이라 생각한다. 다만 서양 지식인만 다뤄지는데다 이들이 신 중심의 기독교 세계관에 빚을 지어 사고하는 시대에 살았다는 점을 감안하며 읽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새뮤얼 존슨이었는데 그가 말하는 바는 구구절절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먼저, 도서관은 쓸모 없는 곳이며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도움 없이도 자신이 스스로 다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책만 들여다보는 일은 쓸데 없이 기억력만 소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에 대해 일침을 놓는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지혜롭다 여기며 자만하는 사람이라고. ‘책은 대체 왜 읽어요? 도서관엔 왜 가나요? 책에 왜 그렇게 돈을 쓰세요?’ 하는 이야기를 종종 들을 때가 있는데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모든 것을 능히 다 해치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동영상에서 얼마든지 그런 정보를 소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두 번째로, 그는 베이컨의 공부와 독서를 인용하며 독서와 글쓰기, 토론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물론 독서를 통해서 앎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독서의 목적이 지식이나 지혜가 아닌 다른 목적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만약 앎을 목적으로 한 독서를 하고 있다면 책에서 얻은 앎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누군가와 그 책에 대해서 토론해야 하고 자신의 생각을 꼭 기록해야 한다. 책 읽는 시간이 아까워서 요즘 ‘주로’ 읽기만 하는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반성했다. 읽고 쓰고 나누기, 기본이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다.


마침 비코의 <새로운 학문>을 읽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다뤄져서 살짝 소름이 돋았다^^; 그 시대도 청소년의 공부법에 문제가 많았나보다. 누가(부모가) 강요하거나 떠먹여주는 공부를 왜 하는가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향이 어떤지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목적 의식이 없는 공부를 하다 보니 떠밀리듯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인데 놀랍도록 통찰력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어릴 적 나도 스스로 좋아하는 공부가 무엇인지 주인 의식을 갖고 했다면 지금 좀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코는 타락한 인간 본성을 위해서는 학문과 지혜에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혜는 세 가지 방법으로 얻을 수 있다. 이는 격조 있게 말하는 것(바른 말을 쓰고), 확실히 아는 것,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다(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 같지만 이를 모두 지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그리고 과거의 일을 올바르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의무를 잘 수행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결국 그의 말에 의하면 이는 도덕과 신학의 가르침이다. 


공교롭게도 앞에서는 세네카가, 뒷부분에서는 세이어즈가 자유학문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중세의 공부 법인 리버럴 아츠(3학 4과)는 공부를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 통찰력을 던져주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특히 세이어즈는 2차 대전 직후 영국의 교육 개혁에 대하여 비판하며 과거의 자유학문(리버럴 아츠)에서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교육이 지나친 전문화로 매몰되어 있다는 지적이었다. 4과가 과목들이라면 3학(문법, 변증술, 수사학)은 4과를 배우기 전 예비 과목이라고 할 수 있다. 3학은 배움의 도구를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학문이기 때문에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과목이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다양한 교양 수업을 듣지 못한 것을 후회하곤 한다. 지금의 대학은 과목을 가르치는데만 집중하고 사고하고 논쟁하고 결론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사고하고 논쟁하고 결론을 표현하는 방법이 바로 3학의 핵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배우지 않고 오로지 기술(과목)만 배운다는 말이다. 비단 당시의 교육만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중 관심이 가는 저자 또는 관련 저작을 찾고 더 나아간다면 이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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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5-27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부에 관심이 있거나 적어도 고전 읽기 등에 욕심이 있을 것에거 앗 나는 아니구나 합니다. ㅠ.ㅠ

거리의화가 2025-05-28 08:49   좋아요 2 | URL
이 책 어렵지가 않아서 바람돌이 님은 순삭으로 읽으실 책이에요. 교훈적인 내용의 글입니다^^
 

[821] "시적 지혜"는 장엄한 시인이 동시에 장엄한 형이상학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규정한다. 왜냐하면 형이상학은 감각으로부터 정신을 추상해내는 반면 시적 능력은 정신 전체를 감각속에 잠기게 만들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은 보편 위로 날아가는 반
‘면 시적 능력은 개별 속으로 파고 들어가야 한다. - P675

[873] 트로이 전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호메로스가 그의 서사시라는 - P695

위대한 흔적을 남겨놓지 않았더라면 그러한 난관은 우리로 하여금 그가 자연 속에 존재하는 특정의 인물이 아니라 관념 속의 시인이었다고 말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쪽으로는 그리도많은 큰 난관들이 있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그 서사시들이 남아서전해진다는 사실을 함께 고려하면 중간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어보인다. 즉 호메로스가 그리스의 역사를 노래로 말한 한 그는 그리스인들의 영웅에 대한 관념 또는 그 시적 인격체였다는 것이다. - P696

[1088] 로마는 세 가지 형태의 국가 체제를 이 새로운 학문」에서 수많은 증거를 들어 논증했던 자연적 순서에 따라 거쳐가면서 각 단계마다 그것이 자연적으로 다음 단계로 이어질 때까지 존속했던 것이다. 그들은 푸블릴리아 법과 페텔리아 법에 이르기까지 귀족제를 지켰고 [104~115], 아우구스투스의 시대까지는 민중의 자유를 지켰으며, 군주제 국가의 형태를 파괴하는 내적, 외적인 원인들에 대해 인간으로서 저항하는 것이 가능할 때까지는 군주제를 지켰다. - P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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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금·은·동·철의 네 시대로 구분한 것은 타락한 시대의 시인들이 만든 일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최초의 그리스인들에게 황금시대라는 말을 부여했던 것은 이 시적인 황금인 곡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그 시대의 순수함이라고 말하는것은 폴리페모스의 극도에 달한 야만성에 불과했다. 이미 여러 차례 말했던 것처럼 [296, 338, 503] 플라톤은 그들을 최초의 가부장이라고 인식했다. 그들은 따로 떨어진 각자의 동굴에서 아내와 자식들과만 살았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폴리페모스가 오디세우스에게 말했던 것처럼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일에 간섭하지 않았던 것이다. - P430

씨족들의 자연법은 신의 섭리에 의해 민중들이 개별적으로 준수했던 것인데, 서로 접촉하면서 그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146]. 즉 로마의 약초로 만든 관(冠)을 써서 신성하게 된 로마의 전령이 라티움의 다른 민족들로부터 해를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이 서로 몰랐다 할지라도 동일한 관습을 시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것이다.
[551] 이렇게 가부장들은 종교를 통해 그들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즉 가족은 종교를 통해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 P436

그 당시에 귀족들은 "법적 소유권자"였는데 이제 그러한 사실은 토지를 구입한 소유자가 그 토지에 대한 반환 청구를타인으로부터 받았을 경우 그들을 돕고 지켜줄 수 있는 "권위를인용할 수 있는"(laudatio auctoritatis) 형태로 남아 있게 되었다. 이제 그러한 공민적 소유권은 재산 반환의 소송에 의해 도움을 받을수 있는 사적인 사회적 소유권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그것은 단지 소유하는 것만으로 유지되는 소작권과는 구분된다.
[622] 이와 같은 방식으로 중세 돌아온 야만의 시대에 봉토의원한 본성도 돌아왔다. 프랑스 왕국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시 프랑스 왕국을 구성하는 여러 지역은 왕에게 복종하는 영주들의 자치권역이었으며, 그 영주들은 아무런 공적 채무도 갖지 않는 자신들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그 뒤 계승이나 반역이나 후계자 단절로 인하여 그 모든 재산은 왕국의 소유로・병합되었으며, 영주들의 모든 재산은 "최고의 법에 따라"(ex iure - P514

optimo) 공적인 과세의 대상이 되었다. 왜냐하면 결혼이나 양도를 통해 봉신들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된 왕의 집이나 땅도 과세나공납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렇듯 세습 왕국에서
"최고의 법에 따른" 소유권은 점차 공적인 채무의 대상이 된 사적소유권과 혼동이 되기에 이르렀고, 그것은 로마 황제의 가산이었던 왕실 재정이 점차 국고와 혼동되기에 이른 것과 마찬가지이다[1076]. - P515

부족이라는 단어인 "트리부"(tribu)로부터 "공납"을 뜻하는 말인 "트리부툼"(tributum)이 나왔다. 왜냐하면 도시 국가에서 평민은 부족을 뜻했는데, 그들은 지배하는 원로원으로부터 명령을 받기 위해 모였고, 가장 중요하고 가장 빈번한명령이 국고에 세금을 납부하라는 요구였기 때문이다. - P517

[764] 따라서 헤라클레스, 에반데르, 아이네이아스와 같은 이름들은 그리스로부터 라티움으로 들어왔으며 그것은 고대 민족들의다음과 같은 관습들을 설명해준다.
[765] 먼저, 야만의 시대에는 민족들마다 그들 고유의 관습에애착을 갖지만 문명화가 시작되면서 그들은 외국의 상품이나 복장 - P631

은 물론 외국어도 좋아하게 된다. 따라서 로마인들은 그들의 신 피디우스를 그리스의 헤라클레스로 바꾸었고, "피디우스에 걸고"라는 원래의 맹세 대신에 "헤라클레스에 걸고!", "폴룩스에 걸고!",
"카스토르에 걸고!" 같은 표현이 도입되었던 것이다.
[766] 다음으로, 민족들마다 특히 자신의 기원이 야만적이었다고 믿을 이유가 있을 때 명성 높은 외국에 기원을 두고 싶어 한다는 민족의 자부심 때문에[125] 로마인들은 그들의 참된 창시자인피디우스를 그리스의 창시자인 헤라클레스로, 그들의 전원 시인들의 시적 인격체를 아르카디아의 에반데르로 자발적으로 바꿨다. 그와 비슷하게 중세의 돌아온 야만 시대에 조반니 빌라니는피에솔레를328) 아틀라스가 건설했고, 트로이의 왕 프리암이 게르마니아를 다스렸다고 말했던 것이다.
529)[767] 1번째로, 민족들마다 외국의 물건을 봤을 때 자국어로확실하게 표현할 수 없다면 필연적으로 외국어를 사용한다.
[768] 마지막으로 네 번째, "시적 논리학"에서 논했던 것처럼[410] 최초의 인간은 대상으로부터 특성을 추상해내지 못했다. 추상적으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특성을 말할 때 그 대상 자체를 말했다. 라틴어에는 이에 관한 명백한 사례가 많다. - P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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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브릭 북마크 - 고흐 꽃 피는 아몬드 나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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빳빳하지 않고 유연해서 좋다. 내가 산 건 고양이가 발을 물 속에 집어넣는 그림인데 예뻐서 보는 맛도 있고 무엇보다 손잡이가 있어서 편리하다. 강렬한 붉은 색이 뜨거운 한여름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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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5-05-24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쁘네요 🥰

거리의화가 2025-05-26 21:15   좋아요 0 | URL
네 실용성은 평가하기 어렵지만 확실히 예쁘긴 합니다^^
 

"문법"은 "말하기의 기술"이 - P310

라고 정의된다. 그렇지만 그리스어 "그라마타"(Ypáwata)는 "문자‘
를 가리키기 때문에 "문법"은 "글쓰기의 기술"이라고 정의할 수도있을 것이다. 실로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렇게 정의했다. 실상은 사실이 그러했다. 왜냐하면 모든 민족이 본디 벙어리여서 글을 씀으로써 말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225, 400, 435].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문법"과 관련된] "문자"는 "관념", "형상", "유형"을뜻하며, 시적 문자가 명확하게 분절된 음성보다 먼저 출현했다. - P311

첫 번째로 초기의 모든 민족은 벙어리였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관념과 자연적으로 연관되는 몸짓이나 물건을 통해 표현하려 했던 것이 확실하다[224, 401]. 두번째로 그들은 자신 땅의 울타리를 고정시키거나 그들의 권리에대한 영속적인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기호를 사용했던 것이 확실하다[486]. 세 번째로 그들은 모두 화폐를 사용했다[487]. 이러한모든 진리는 언어와 문자의 기원, 그에 따른 상형문자, 법, 이름, 가족의 문장(章), 메달, 화폐의 기원을 제시해줄 것이다. 그리고그 결과로서 여러 민족 초기의 자연법을 말하고 글로 썼던 초기언어의 기원을 우리에게 제시해줄 것이다. - P318

언어는 농축된 영웅어법 표현이 풍부할수록 더욱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런 언어가 더 아름다운 것은 더 생생하기 때문이며, 더 생생하기 때문에 더 진실에 가깝고 더 믿음이 간다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언어가 어원을 알 수 없는 단어들로 번잡할 때 그것은 즐겁지 못하고, 따라서 모호하고 혼란스러우며 따라서 기만적이고 오도될 공산이 크다. 이 후자의 언어는 많은 야만적인 언어의 혼합으로 이루어진 것이 확실하며, 따라서 그 어원과 비유적의미가 전해져 내려오지 않는다. - P334

모든 고대의 언어에서 명사가 먼저 만들어지고 그 뒤에 동사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동사의 빈약함을 명사와 결합시켜 보완하기 위해 복합어가 만들어지는 것은 모든 최초의 언어에 공통적인 특징이었음이 확실하다. 이것이 모르호펜이 독일어와 독일시 개설에서 논했던 원리였음은 확실하다. - P358

[487]민족들마다 글 쓰는 법을 몰랐던 시대에 문장의 필요성이란 대체적으로 소유권의 확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훗날 평화 시에 그것이 공적인 휘장이 되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메달도 출현했는데, 전쟁이 일어나면 이러한 것들이 군기(軍)가 되었다. 그것은 초보적인 상형문자로서의 용도가 있었는데, 서로 다른 언어를사용하는 민족들 사이의 전쟁이란 결과적으로 그들 사이의 묵음의 전쟁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 P366

가장 오래된 법은 한 사람만을 겨냥하여 명령하거나 금지하도록 입안된 것이었고, 그 이후에야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다. 최초의 민중은 보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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