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2. 자본이 대상과 맺고 있는 관계, 그 대상의 종별성에 관한 질문. 대상을 다루기 위해 가동된 담론의 유형의 본성에 관한 질문과 과학적 담론(의 종차)에 관한 질문 제기.
자본의 담론이 고전파 경제학파 담론과 어떻게 구별되고 청년 마르크스 철학적(이데올로기적) 담론과의 차별성에 대한 질문 제기.

3. 마르크스 이후 읽기와 쓰기가 말하는 바에 있어 이론적 측면에서 의구심을 갖기 시작.
독서에 대한 종교적 신화와 단절하는 것은 마르크스에게 있어서는 정신적 관점을 표현적 총체로 간주하는 헤겔주의적 관점과의 단절을 의미.

4~9. 마르크스는 읽기에 관한 새 이론, 실천을 제시(이중의 독서). 
- 첫번째 독서: 자신의 담론에 입각하여 선구자들의 담론을 읽는 것 
- 두번째 독서: 두개의 텍스트가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두번째 텍스트가 첫번째 텍스트의 기준이 되는 것. 이때 두번째 텍스트는 첫번째 텍스트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 
- 마르크스가 고전 정치경제학에 대한 독서에서 우리에게 알려준 규칙에 따라 마르크스의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의 문제
-> 해결 방안: ex) 자본에 대한 다른 독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다른 저작의 독서

10. 경험론적 인식관을 경험론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인식 과정의 본성과 인식의 현실 대상에 따라 인식 자체를 정의하는 관계의 본성
현실 대상은 자신 안에 현실적으로 구별되는 본질과 비본질적인 것을 포함
비본질적인 현실적인 것을 제거하고 남은 현실의 본질적인 것을 대면하는 것이 인식
현실 대상은 비본질적인 부분과 본질적인 부분이 현실적인 것 속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위치에 따름
문제 삼을 것은 현실이 아닌 대상


『자본』에 대한 철학적 독서는 순결한 독서와는 정반대의 것이다. 그것은 죄를 지은 독서이지만, 고해를 통해 자신의 죄를씻으려 하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이 독서는 자신의 죄를 "좋은 죄"
라고 주장하며, 죄의 필연성을 증명함으로써 변호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의 예외적 독서이며, 모든 죄지은 독서에 대하여 그 순결성의 가면을 벗겨내는 질문, 그 순결성에 관한 단순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독서로서의 자기 자신을 정당화한다. 읽기lire란 무엇인가? - P66

첫 번째 독서, [즉] 현존과 부재, 통찰과 간과에 대한 이중적이고 상호 결합된 확인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이 독서는 독특한 간과를 범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죄다. 이 간과는 이 첫 번째 독서가 한 저자에게서 통찰과 간과가 결합되어 존재한다는 것이 한 가지 문제, 곧 통찰과 간과의 결합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첫 번째 독서가 이 문제를보지 못하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이 문제가 비가시적인 한에서만 가시적이기 때문이며, 이 문제가 명료한 눈을 갖고 있다면 충분히 볼 수있는 주어진 대상들과는 전혀 다른 것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가시적인 것의 장과 비가시적인 것의 장 사이의 필연적인 비가시적 관계인데, 이 관계는 비가시적인 것의 불투명한obscur 장의 필 - P75

연성을 가시적인 장의 구조의 필연적 효과로 정의한다. - P76

주체가 이전의 비가시적인 것에 대하여, 이 비가시적인 것을 볼 수 있게해줄깨우친 시선으로 그것을 보려면 새로운 지반에서 자신의 새로운 자리를 차지했어야 한다는 것, 달리 말하면 주체는 이미, 부분적으로는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새로운 지반 위에 놓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마르크스가 스미스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이는 그가 이미 이 새로운 지반(이전의 문제설정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답변을 생산하면서 생산한 것)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두 번째 독서는 첫 번째 독서와 마찬가지로 두 개의 텍스트가 존재한다는 것을 가정하며, 두 번째 텍스트가 첫 - P93

번째의 척도라는 점을 가정한다. 하지만 새로운 독서를 이전의 독서와 구별 짓는 것은, 새로운 독서에서 두 번째 텍스트는 첫 번째 텍스트의 실수lapsus와 절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도 역시, 적어도(우리가 여기에서 그 독서에 관해 분석하려고 하는 유일한 텍스트인)이론적 텍스트에 고유한 장르에서는, 두 방향으로sur deux portées 동시에 이루어지는 독서의 필요성과 가능성이 출현한다. - P94

『자본』에 대한 철학적 독서는 우리의 탐구 대상 자체인 것, 곧 마르크스의 철학의 적용으로서만 가능하다. 이 순환은 마르크스주의 저작들 안에 있는 마르크스의 철학의존재에 의해서만 인식론적으로 가능하다. 따라서 단어의 엄밀한 의미에서의 생산이 문제인데, 이는 잠재적인 것을 명시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실존하는 것을 미리 실존하는 최초의 소재에 대해 어떤 목적에 적합한 대상의형태를 부여하기 위해) 전환하는transformer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생산은, 생산의 작업에 순환이라는 필수적 형태를 부여하는 이중적 의미에서, 인식의 생산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의 철학의 종별성을 인 - P106

식하는 것concevoir은 그것의 인식을 생산하는 운동 자체의 본질을인식하는 것 또는 인식을 생산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 P107

인식, 곧 인식되어야 할 현실대상에 관하여 실행되는 아주 특수한 이러한 작업,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라 정반대로 실존하는 현실대상에 새로운 실존, 바로 그 대상인식의 실존을 덧붙이는 이러한 작업을 형상화하는 것(예컨대 메시지라는 형태로 이러한 인식을 언표하는 말이나 글로 쓰인 개념적 담론이 적어도 존재하는데, 이는 이러한 인식을 형상화하지만 그것이 능동적 주체의 행위이기에 대상 바깥에서 실행된다)은, 비본질적인 것과 본질 사이의 표면과 심층 사이의 외부와 내부 사이의 차이라는 형태 아래 현실대상의 구조 속에 모두 기입되어 있다! … 단지 인식대상(본질 - P113

이라 불리는 현실적 부분인)만이 아니라, 또한 [대상의 두 부분을] 구별하고, 현실대상의 두 부분(그중 하나 비본질적인 것가 다른것 본질 내지 내적 부분을 감추고 감싸고 있는 외적 부분인) 사이에 현실적으로 실존하는 것으로 상관적으로 정립되는 것으로서의 대상에 대한 인식 작업도 현실적으로 현존하는 것이다.
현실대상의 현실적 부분으로서 인식된congue 인식을 현실대상의현실적 구조 속으로 투여하는 것, 바로 이것이 경험론적 인식관의 종별적 문제설정을 구성하는 것이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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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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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참 운이 좋지. 힘들게 사는 사람이 참 많잖아. 우리라고 부자는 아니지만." 살다 보니 어떤 개인에게도 어려운 한 때가 찾아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 삶이 어떤 일로 인해 쉽게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이를 애써 외면하며 우리는 쳇바퀴 도는 일상을 살아간다.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내가 제대로 살고 있나?’ 하는 생각조차 잊고 멈추는 순간조차도 사치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평범한 일상은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세 달째 계속 되고 있는 사회적 불안이 내게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을, 분노를 넘어선 피로감이 내 일상에 타격을 주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번 지나간 것(일)은 돌아오지 않으며 매일이 다름을 인식하며 살려고 노력중이다. 


펄롱은 아내와 다섯 명의 딸을 둔 아버지다. 석탄, 포탄, 무연탄, 분탄, 장작 등을 팔며 열심히 삶을 살아가고 있다. 미시즈 윌슨의 도움으로 엄마는 자신을 낳았고, 자식이 없었던 윌슨은 펄롱의 양육을 도왔다. 펄롱은 이처럼 좋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성장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잘 하고 성실하여 잍터에서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어느 날 펄롱은 수녀원에 일을 하러 갔다가 석탄광 창고 안에 여자 아이가 하룻밤 이상 갇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당시 수녀원은 세인트 마가렛 학교와 붙어 있었다. 교육을 위해서는 아이들이 다니는 세인트 마가렛 학교와 척을 지어서는 안 되었다. 수녀원 원장은 너무나 침착한 태도로 아이에게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강요했다. 펄롱은 이상함을 느끼고 눈치챘지만 그럼에도 아이의 이름을 묻고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와 불편한 기색을 내비추자 펄롱의 아내인 아일린은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야? 우리한테 무슨 책임이 있어?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모른척해야할 것도 있는 거야."


아일린의 말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한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은 나도 힘든데 다른 사람을 어떻게 도우냐 생각하고 말할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사는 것도 어려운 일일 수 있으니까. 그러나 갇힌 아이는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었다. 어쩌다 보니 수녀원으로 갔고 원치 않은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불운은 누가 결정한 것일까. 펄롱은 아이의 불운을 생각하며 부당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펄롱은 아이를 데려오지 못했고 수녀 원장의 돈을 받았으며 미사를 보러 간 자신이 위선자처럼 느껴졌다. 한동안 이 일은 펄롱을 괴롭힌다. 주중은 기계적으로 일에 매달리려 했지만 집중하지 못했다. 일요일이 되면 공허했다. 


주변 사람들은 펄롱에게 충고했다. 그곳과 척을 지면 안 된다고. 생각보다 그들의 힘은 강력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애들한테 가봐야겠어.“


결국 자신도 모르게 펄롱은 석탄광 쪽을 향하고 있었다. 자기보호본능과 용기 사이에서 그는 용기를 택했던 것이다. 

그의 선택이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는 전에 없었던 당당함이 내면에서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주변 사람의 따뜻함으로 자신은 잘 커나갈 수 있었다. 펄롱은 하지 않은(못한) 일로 인해 어쩌면 평생 안고 살아갈 짐 대신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을 선택했다. 


펄롱의 선택 덕분이겠지만 말미에는 가슴이 정말 벅찼다. 펄롱 같은 사람이 이 사회에 많다면 정말 좋겠다, 내가 최소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내가 애써 외면하고 살아가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이 소설은 얇지만 진한 감동을 안겨 준다. 아마 당분간은 이 책의 감동을 뛰어 넘을 이야기를 만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림 같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일상의 풍경들을 만나는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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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3-04 0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용기를 내는 건 쉽지 않을 듯합니다 많은 사람이 보고도 모르는 척하겠지요 그때는 용기를 냈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때 왜 그랬나 할지도 모를 일이고... 그런 일은 없으면 좋겠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5-03-04 08:42   좋아요 1 | URL
분명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이고 나조차도 어머니가, 주변에 나를 거둬준 사람이 없었다면 그런 처지가 되었을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한 가정의 아비로서 아내와 자식들을 생각하면 그런 감행을 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용기 같아요. 물론 집에 가서는 아내한테 잔소리 폭격을 당할 테고 그러다 여러 갈등을 겪게될 일이 눈에 보이지만... 그럼에도 마지막에는 벅찬 감정에 눈물샘이 터지더라구요.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희선 님도 읽으시면 위로가 되고 따뜻함을 받으실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자본”을 읽자]를 읽자: by 에티엔 발리바르

"목적론적-분석적 방법‘의 핵심은 그 진화의 주어진 시기의 어느 한철학자의 문제설정을 서로가 서로에 대해 독립적인 분리된 요소들로분해décomposer하고, 그다음 이 분리된 요소들에 이 요소들을 기다리는 미래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가치를 할당해 이 분리된 요소들의 내재적인 종말목적으로 또는 자기 자신에 대해 무의식적인것으로 이 철학자의 문제설정을 회고적으로 표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장애물로부터 우리를 방어해주는 안전장치는 하나의 이론적 계기[순간]의 일관성cohérence을 존중함과 동시에, 이 이론적 계기의 의도intention를 복원할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혹은 복수의 역사적 맥락들 내에 이 일관성을 기입하는 것입니다. - P35

첫 번재 중핵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다음 명제들의 결합인데, 이 명제들에따르면, (1)‘모든 과학은 이데올로기의 과학‘(이 테제는 마슈레가 최초로 정식화한 것인데, 그러나 알튀세르주의자들에게는 가장 뜻밖의, 그리고 가장 불편한 장소에서, 그러니까 ‘상품물신숭배‘에 관한 분석들 내에서 규약들protocoles을 찾아내고자 했던 랑시에르 또한 자신만의 방식대로 발전시켰던 테제이지요)이며, (2)자신의 대상에 대한 하나의판으로도 동시에 존재하는 모든 과학은 선재在하는 이론들이선재하는 이론들 내에서 이 대상은 인식connu되지는 않으면서 인지reconnu (혹은 ‘식별‘identifié)되었을 뿐이었죠에 관한 ‘증상적 독서‘를 수단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P46

오늘날 제가 존재론적이라고 부르고 싶은 두 번째 중핵은 … 인류사의 각계기들 내에서 절대정신 도래의 실현을 ‘독해할 수 있게 해주는 ‘본질적 절단면‘coupe d‘essence이라는 헤겔적(혹은 사람들이 헤겔의 것이라 간주하는) 관념과 처음부터 끝까지 대립되는 ‘현재가 자기 자신에 대해 취하는 비-동시대성‘non-contemporanéité à soi du présent이라는 테제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세부지점에서 이 관념을 [시간성에 내재적 다수성과 이질성을 부여하는] 다른 ‘포스트-마르크스주의적’ 시도들과 맞새울 수 있는데, 그 결과는 항상 진화주의와 역사주의에 대한 반박이지요. - P47

마지막 중핵을 구성하는 것은 정치경제학의 ‘대상‘마르크스적 비판으로 인해 (자본축적의 균형 조건들에 대한 하나의 이론으로부터 이 자본축적의 모순과 갈등에 대한 하나의 이론으로 나아감으로써) 형태변화métamorphosé가 되어 나오는 바로서의정치경제학의 ‘대상‘에 대한 정의가 취하는 가능조건과 구성요소에 관한 성찰입니다. - P49

이론의 실천은 어떠한 ‘실천의 우위‘의관점으로부터 우리가 이를 가지고 만들어내는 표상 내에서만 (하지만아마도 이 표상이 존재 가능한 유일한 것은 아닐 터인데) 이론주의적입니다. ‘이론주의‘는, 아마도 그 끝이 존재하지 않을 왕복운동 내에서,
‘실천주의‘의 전도된 이미지입니다. 그렇지만 이론의 가치는, 이론이이론에 속한다는 사실로부터, 혹은 이론이 이론 그 자체로서 자율화된다는 사실로부터 선제적으로d‘avance 판단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이 이론의 내용을 그 적용에 대해, 그리고 이 이론의 고유한 일관성이 - P54

라는 관점에서 또한 분석해야만 합니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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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젠더는 성차에 관한 지식으로 사회적 구성물이다. 이때 성차는 가변적인 대상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과거에 대한 역사(적 재현 방식)가 현재의 젠더 구성에 일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사가 역사학에서 차지하는 낮은 위상과 한계에 부딪쳤을 때 저자는 딜레마에 빠졌다고.
이때 포스트구조주의 담론인 의미의 유동성과 역동성을 만났고 이것을 하나의 분석 도구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푸코는 권력이 양도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고 관계적이고 구성적인 형태라고 말했다. 권력이 어떤 형태를 지니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프로이트는 성차는 영원한 수수께끼라며 불가해하여 정확한 기술이나 경계지을 수 없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젠더는 역사적, 문화적, 시간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정치와 젠더는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문화적 개념에 투명한 의미,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문화의 어휘 목록에서 의미란 고정돼 있지 않으며 역동적이고 항상 유동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들의 연구는의미를 확립하는 갈등적 과정, 젠더와 같은 개념들이 고정된 외연을 획득하게 된 방식, 규범적인 사회적 정의定들에 대해 제기된 도전들, 그리고이 도전들에 대한 대처 방식 - 다시 말해서, 어떤 사회에서 의미가 구축되고 실현될 때 관련된 힘의 작용, 즉 정치-을 주목하게 만든다.
정치를 말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인과성에 대한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누구의 이해관계에 따라 의미가 통제되거나 경합하는가? 그 이해관계의 본질은 무엇이며, 기원은 무엇인가? 이들 질문에 답할 수 있는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객관적으로 결정되고 절대적이며 보편적인 이해관계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담론적으로 생산되고상대적이며 맥락적인 이해관계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 P29

텍스트와 문맥, 허구와 사실, 예술과삶 등을 대립시키는 것은 문학과 역사라는 분과 학문의 자기 재현들을 구조화한다. 문학과 역사학은 서로의 연구 대상과 해석 방법의 대비를 통해각자의 전문 지식을 정의한다. 또한 서로를 반사판으로 활용함으로써 스스로의 모호함을 해결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을 별개의 지식 분야로 정체화해 주는 규칙과 관례들이 명료해지며, 이때 필연적으로 특정한 연구 방법과 소재를 강조하게 된다. - P34

젠더의 불확정성-결코 성차의 의미들을 최종적으로 고정시킬 수없는 젠더의 무능에 대한 나의 사유는, 처음에는 미셸 푸코의 영향을받은 것이었다. 근대성 속의 편재하는 권력, "권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보통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권력에 대한 그의 주장은사회사 그리고 나중에는 문화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푸코는 권력을 어떤대상으로 정의하는 것을 거부했는데, 이는 그것을 규칙, 법, 부, 폭력의 독점 같은 것들과 관련된 어떤 양도 가능한 자산으로 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 대신 그는 권력을 관계적이며 생성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그것을그 효과의 측면에서 이해하려 했다. 권력은 억압적인 것이 아니라 생산적인 것이고, 주체를 구성하는 것이며, "담론을 따라 흐르고, 사람들 사이를지나는" 것이었다. 문제는 누가 권력을 잡는가가 아니라 권력이 어떤 형태를 띠며 어떤 작용을 하는가였다. - P11

알렌카 주판치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프로이트의 발견에서핵심은 정확히 인간의 섹슈얼리티에 ‘자연적이거나 미리 정해진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성적인 것은 정확하게 기술되거나 경계 지어질 수 있는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경계가 정해지거나 한계 지어질 수 없다는 불가능성 그 자체다. 성적인 것은 인간 활동이나 삶에서 따로 분리된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그것은 인간 삶의 전 영역에 걸쳐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성과 성차라는 것이 인간 활동의 어떤 다른 분야에대한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인간 삶의 모든] 영역들과 관련한 개념화 속에 항상 이미 얽혀 들어 있다.
성차를 영원한 수수께끼로 보는 포스트 프로이트 프로이트의 이론화는 내가 젠더를 역사화하는 데 핵심적이다. 남/여 범주는 정치적 시기마다 서로 다른 형태를 띠며 그 시기를 이해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 P13

자기를 따른다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안전을 최대한 제공하겠다고 트럼프는 약속했다. 그의 특출한 남성성은 경제적 불황과 사회 분열, 그리고 테러리즘의 위협에 대한해결책이었다. 원부의 복원에 대한 판타지와 많은 백인들이 상실해 가고있다고 혹은 상실했다고 생각한 특권의 복원이 연관돼 있음은 대선 이후점점 더 명확해졌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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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는 삶
마리 루티 지음, 이현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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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닌 근본적인 취약함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지만 동시에 우리가 세상을 움직이는 영향력을 수용하게 하며, 우리의 근본적인 결핍은 삶이 지루해질 틈이 없도록 창의성을 맘껏 펼칠 기회를 열어 준다.


나는 원래도 일상이 불안해지는 것을 위태롭게 생각하는 성향이었는데 일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여러 번 하다 보니 주어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안정을 더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고 여기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로 인해 욕망을 내치고 하고 싶은 것을 억누르고 불안해지는 것을 거부했던 것은 아닐까. 


불안은 우리가 가진 이상이 기성 문화가 제시하는 이상과 맞지 않더라도, 우리의 욕망과 이상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신호다. 

따라서 우리 기질이 진정성을 갖길 바란다면 우리는 욕망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만 한다.


욕망이 따르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볼 때 평소 대단하다 생각했던 적이 많다. 통제하고 견디는 일에 익숙하여 오히려 그 반대의 상황에서는 겁이 나고 소심해졌던 경우가 많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는 사회적 시선과 타인의 반응에 지나친 의식을 가지는 문제였다. 


사회적 활동에 몰두하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져 존재에 일관성이 생기므로 유혹적이다. 

그러나 사회적 활동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중요한 실존적인 선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고, 그 외의 것들의 중요성을 과장하게 돼 가능성의 장이 축소된다.


종종 내가 껍데기 같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길 때가 있었다. 나의 본성과 기질이 무엇인지 알 수 없던 상태에서 자아 찾기는 외면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냈었다. 공허할수록 다른 것에 집착했고 그럴수록 더 공허해졌다. 함께 사는 사람이 처음 진지하게 해주었던 이야기를 종종 떠올린다. “너 그때 삐에로 같았어.” 웃고 있지만 슬퍼 보였다는 의미였다. 사실은 일도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였고 자아는 불안했고 엉망인 상태였다. 


니체는 숭고한 기질을 지닌 사람이라면 자신을 더욱 강인한 모습으로 가꾸기 위해서는 상처가 되는 기억을 그저 떨쳐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그렇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무엇보다 불가해하며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우리의 무의식적인 삶을 매우 존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체가 현재에 과거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실존적 통찰력으로 보았다는 점에서는 그에게 동의한다.

고통 없는 삶이란 비현실적인 것으로, 과거의 고통을 다루는 최선의 방법은 그 고통을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자원으로 바꾸는 것이라는 니체의 견해에 공감한다.


저자는 과거의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니체의 의견을 이야기한다. 니체는 자신의 삶은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여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과거에 여러 부정적인 경험을 겪은 사람들은 그것을 쉽사리 잊고 나아가기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래에 비슷하거나 더한 상황이 올 때 과거의 아픔과 고통의 경험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고 더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지침은 될 것이다.


사회는 관리를 위해서라도 특정 가치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한다. 그러나 사회적 가치와 기성 문화가 모두 옳은 가치는 아니다. 그 가치에 맞지 않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타자화되고 배제된다. 과연 우리가 현대에 살면서 옳다고 여겨지는 가치들로 외면되는 것들이 없는지 돌아볼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는 그저 말로만 개성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공리주의적 효율성의 측면에서는 사실 우리는 서로 비슷하면 비슷할수록 좋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면, 여론에서 미용 상품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다양한 것을 쉽게 팔 수 있다. 

그들에게는 우리의 생각을 예상할 수 없을 때가 위태로운 순간이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자신만의 독특한 열정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정치 경제 기관들은 더욱 더 자기 잇속을 차리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 책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는 개념은 ‘큰 사물’과 (이에 대응하는) ‘반복 강박’이다. ‘큰 사물’은 라캉에 의해서, ‘반복 강박’은 프로이트에 의해서 나왔다. 

애초에 우리가 이 낙원을 소유한 적이 없다는 사실, 우리는 결코 완전한 존재였던 적이 없으며 단순하고 마음이 태평하기만 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은 낙원을 되찾으려는 우리의 결심을 조금도 굽히지 못한다. 이 실낙원을 "큰사물the Thing(환상의 대상)"로 명명하는데, 이 대문자 T는 그것이 그저 평범한 환상의 대상이 아니라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매우 특별한 것임을 나타낸다.

반복 강박이란 우리가 전혀 이롭지 않은 행동의 청사진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우리는 진지하게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똑같은 대인 관계 문제, 똑같은 직업적 딜레마, 똑같은 성가신 "문제"에 다시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큰사물의 울림이 우리를 반사회적인 것으로, 즉 문화적 규범에 대한 저항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이끈다면, 반복 강박은 우리를 사회화하는 트라우마를 되풀이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과론적으로는 큰사물의 울림은 우리를 기질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한 하나의 저항이라면, 반복 강박은 그 반대라고 볼 수 있다.

서구 세계의 물질주의는 사실 매우 부끄러운 행태를 보인다. 평범한 백화점이나 교외의 쇼핑몰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상품은 매혹적인 모습으로 우리 마을을 어지럽힌다. 밤마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빛을 발하는 온갖 사물 또한 마찬가지다. 또한 서구 사회가 누리고 있는 풍족함이 종종 상대적으로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회를 희생시켜 가며 얻은 것이라는 사실은 큰사물의 윤리 규범을 속히 소생시킬 필요가 있음을 잘 보여준다.


우리가 옳다고 여기며 살고 있는 가치를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내 삶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결코 알 수 없다. 지금의 일을 몇 년 더 할 수 있을지 50세 넘어서도 먹고 살 수 있는 것인지 갑자기 아프지는 않을지 가까운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경험을 하게 될까 늘 두렵다. 그렇지만 이 끝도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지금의 삶을 당장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결국 지금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지 않나 생각한다. 


삶이 다소 불분명해 보이고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모호함투성이거나 삶에 자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단지 삶의 명확함이나 자유가 무조건적으로 주어지지 않으며, 때로는 이를 얻기 위해 아주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자기계발서 같기도 하고 인문교양서 같기도 한… 이 책은 묘하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자기계발서에 가장 가깝다고 여겨진다. 기질, 욕망, 사회와의 타협 등… 다만 우리가 살다 보면 부딪치는 갈등과 문제를 여러 개념과 이를 다룬 철학(자)으로 설득력 있게 다루었다. 

자기계발서를 읽은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2010년 이후로는 읽지 않았음은 확실하다. 비슷비슷한 패턴과 어찌 보면 광고성 같은 내용들에 피로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계발서가 이래야지 생각했다. 부를 쌓고 성공에 다가가고 그런 책들은 이제 더는 메시지를 던져주지 못한다고 여긴다. 어떻게 내 삶을 가꾸면서 타인과 살아나갈지, 사회와 균형을 맞추며 나아갈지 그런 가치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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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5-03-01 1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자기계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