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로서 자신의 형태를 보존하면서도변화한다(하지만 이는 어떠한 감각조차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 이데올로기는 철학 자체에 대해 헤겔이 지적했듯, 자신의 시간으로부터 전혀 튀어오르지는 않으면서도(왜냐하면 이데올로기는 거울반영의 포획 내에 사로잡힌 그래서 바 - P584

로 인간들이 그 안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인데 이 시간 그 자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역사 내에서 일어나는 바를 반영하고 표현하는 부동의 운동이다. 바로 이러한 본질적 이유로 인해 1917년 러시아혁명의메아리로부터 만들어진 혁명적 인간주의가 오늘날 다양한 정치적 혹은 이데올로기적 관심사들이 관심사들 중 한편은 이 혁명적 인간주의의 기원들과 여전히 관계를 맺고 있으며, 다른 한편은 이 기원들로부터 다소간 멀어져 낯선 상태로 존재해 있다의 이데올로기적반영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 P585

인식론적이고 비판적인독해 내에서, 우리는 이 말해진 단어 아래에서 이 단어가 감추고 있는침묵을 듣지 않을 수 없으며, 텍스트의 검게 칠해진 부분noir [충만함혹은 종이 위의 ‘글자] 속에서 거의 섬광 같은 짧은 시간 동안 매달려있는 엄밀한 의미의 하얀 부분blanc[공백 혹은 (‘글자‘를 제외한) 종이의 여백]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와 상관적으로, 외양적으로는 연속적인, 하지만 사실은 하나의 억압적 담론의 위협적 침입에 의해 중단되고 복속된 이러한 담론하에서 우리는 참된 담론의 침묵하는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으며, 우리는 그 심원한 연속성을 복원하기 위해이 참된 담론의 텍스트를 복원하지 않을 수 없다. - P589

엥겔스의 정식 안에서 우리는 최초로, 그리고 아마도 고전적 텍스트들 전체에서 유일하게, 마르크스의 정식에 대한 설명을 명료하게 발견하게된다. "머리로 걷던 화학을 두 발로 서게 다시 돌려놓기"는 엥겔스의텍스트에서 그 어떤 잠재적 모호성 없이 다음을 의미한다. 이론적 토대를 변화시키기, 화학의 이론적 문제설정을 변화시키기, 이전의 [날은] 문제설정을 하나의 새로운 문제설정으로 대체하기. 이것이 바로그 유명한 ‘전도‘가 의미하는 것이다. - P612

명료히 확립된 하나의 과학이 급격한 변화à-coups 없 - P618

이 발전할 때, (인식)대상의 변형은 연속적이고 진보적인 하나의 형태를 띠게 된다. 대상의 변형은 대상 내에서 이전에는 조금도 가시적이지 않았던 ‘새로운 양상들‘을 가시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래서 이 대상은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탐험하게 되는 그러한 지역들에 대한 지리학 지도와 같은 것이다. 지도 안의 빈 부분들은 새로운 세부지점들 그리고 설명들로 채워지지만, 지역의 이미 인지되고인식된 경계contour 일반을 수정하지는 않는다. - P619

정치경제학의 고유한 이론적 구조는, 주어진 현상들의 동질적 공간과 이데올로기적 인간학-이 정치경제학의 공간의 현상들이 취하는 경제적 특징을 욕구의 주체로서의 인간(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소여) 내에 정초하는사이의 무매개적이고 직접적인 관계 맺음에 달려 있다. - P635

소비는 주어진 한 사회의 인간들의 개인적 소비는 물론, 욕구 개념의 보편적 활용에 할애하기 위해 우리가 생산의 욕구를 충족하는 소비로 정의해야 할 그러한 생산적 소비 또한 포함한다. - P641

마르크스는 고전 정치경제학에는 부재한, 절대적으로 본질적인 두 가지 구별을 이끌어냈다. 불변자본과 가변자본 사이의 구별, 그리고 두 가지 생산부문 즉단순재생산의 토대 혹은 확대재생산의 토대 위에서 생산조건의 재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1부문과 개인적 소비의 대상에 대한 생산을 목적 - P641

으로 하는 2부문 사이의 구별이 그것이다. - P642

이 "주어진 한 사회 내 생산행위자들 간 고정된 관계가 바로 생산관계이며, 이 생산관계에 대한 마르크스의 고찰 ‘본능적‘instinctif예감이라는 형태하에서가 아니라, 다시 말해 ‘모르는 상태‘insu라는태하에서가 아니라, 개념과 그 결론들이라는 형태하에서의 고찰은 고전파 경제학의 대상을, 그리고 이 대상과 함께 [대문자]정치경제학자체로서의 과학 자체를 전복한다.
마르크스의 고유성은 생산의 우위를 주장했으며 심지어 이를 보여주었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리카도 또한 자신의 방식으로 이미 - P650

이를 행했다), 생산이라는 개념에 예전의 개념이 지시했던 대상과는발본적으로 다른 하나의 대상을 지정함으로써 생산이라는 개념을 변형했다는 점이다. - P651

경제적 생산 내에서 이루어지는 변형에 종속된 외부적 자연 [자연이라는 외부]의 ‘공격 양식‘ [자연을 이용하는 양식]을 고정시킴으로써, 이 ‘노동수단‘은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경제학만이 아니라 역사학에서도의 기본 범주인 생산양식을 결정한다. 그리고 동시에 이 ‘노동수단‘은 생산적 노동의 생산성 정도를 확정한다. - P658

마르크스에게서 생산의 사회적 관계는 인간들만 무대 위에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며, 특수한 ‘결합들‘combinaisons내에서 생산과정의 행위자들과 생산과정의 물질적 조건 또한 무대 위에 오르게 만든다. - P660

자본주의적 생산의 세계 내 경제적 ‘소여‘의 육중한massives
‘명증성‘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바로 이 물신화된 ‘명증성들‘의 ‘육중함‘이라는 특징 때문에, 경제적인 것의 본질에 대한 접근은 이 경제적인 것이라는 개념의 구축을 통해서만, 다시 말해 경제적인 것의 지역이 전체 구조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장소의 명증화를 통해서만, 따라서 이러한 지역과 다른 지역들(법-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상부구조) 사이에 존재하는 절합의 명증화를 통해, 그리고 경제적 지역 자체에서 다른 지역들의 현존(혹은 효과성) 정도에 의해 가능할 수 있다. - P670

어떠한 개념을 수단으로 하여 우리는, 특정 지 - P685

역의 구조에 의해 주어진 이 지역의 현상들에 대한 결정으로 식별된, 그러한 새로운 결정형태를 사고할 수 있을 것인가? 더욱 일반적인 방식으로 말하자면, 어떠한 개념을 수단으로 하여 우리는, 혹은 어떠한 개념들의 집합을 수단으로 하여 우리는, 하나의 구조가 지니는 요소들에대한 결정을, 그리고 이 요소들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적 관계들을, 그리고 이 구조의 효과성 efficace에 의한 이 관계들의 효과들effets 전체를 사고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더욱이, 어떠한 개념을 수단으로 하여 우리는, 혹은 어떠한 개념들의 집합을 수단으로 하여 우리는, 하나의 지배적 구조에 의해 종속된 하나의 구조의 결정을 사고할 수 있는가? 달리말해, 어떻게 구조적 인과성이라는 개념을 정의할 수 있는가? - P686

단지 우리는 인식의 추상 내부에서, 구조라는 개념과 이 구조의 가장 일반적인 효과들의 개념으로부터 이 구조의 개별적particuliers 효과들의 개념들로이행하는 것일 뿐이다. 그 어떤 순간에도 우리는 개념의 ‘전개‘ 혹은특수화spécification를 사물의 전개와 개별성 particularité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절대적으로 넘어설 수 없는 경계를 뛰어넘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리고 이는 다음과 같은 정당한 이유에서 그렇다. 이러한 경계는 당연히 넘어설 수 없는 것인데, 왜냐하면 이 경계는 전혀 경계가니기 때문이며, 왜냐하면 이 경계는 하나의 경계일 수 없기 때문이며,
왜냐하면 이 경계는 하나의 사물에 대한 개념의 추상과 이 사물의 경험적 구체(경계라는 개념의 사용을 우리에게 허락해줄 수 있는) 사이의 (정신적인esprit 혹은 현실적인réel) 공통의 동질적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P695

마르크스는, 의지vertu가 아니라 강제force에 의해 본질과 현상이라는고전적 쌍의 모호성을 떠맡음으로써, 그리고 ‘현실적 운동과 외양적 운동‘의 현실적인 것이 취하는 ‘내부와 외부‘라는 형태하에서, 그리고 ‘내밀한 본질‘과 구체적이고 현상적인 주체들에 의해 지각되고 조작된 - P696

manipulées) 결정들이라는 형태하에서, 현실에 대한 인식과 이 현실 자체 사이의 인식론적 차이를 현실réalité 속으로 위치전환함으로써,
질과 현상이라는 고전적 쌍에 대한 (솔직하게 말하자면 거의 불가피했던) 활용으로 빠져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는 당연히도 마르크스의 전임자들이 발견했거나 발견하지 못했던 바에 대한 개념을, 혹은 마르크스를 자신의 전임자들로부터 구별해주는 차이의 개념을 제공하는것이 마르크스에게서 문제가 될 때 우리가 지각할 수 있었듯, 마르크스의 과학에 대한 개념화에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 결론들 [이론적 변형]을 초래했다. - P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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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일반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 일반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 최종적으로는 특수한 구조들 위에 정초해 있는 역사성의 특수한 구조들이 서로 다른 생산양식들이, 이 총체성들의 본질에 따라서만, 다시 말해 이 총체성들의 고유한 복잡성의 본질에 따라서만 의미를 가지는 역사성의 특수한 구조들(왜냐하면 이 역사성의 특수한 구조들은 전체들로서 결정되고결합된 사회구성체들의 실존, 특수한 생산양식들에 속해 있는 사회구성 - P502

체들의 실존에 불과하기 때문에)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해야한다. - P503

경제학자와 역사학자가 보지 못했던 것은 정치경제학의 ‘추상적‘
이론이 역사이론의 대상 자체에 지역으로서(수준 혹은 심급으로서)유기적으로 속해 있는 하나의 지역에 대한 이론[즉 ‘지역적 이론‘ 혹은
‘국지적 이론‘]이라는 점이다. 경제학자와 역사학자가 보지 못했던 것은 『자본』에서 역사가 현실대상이 아니라 이론대상으로, 현실적-구체적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개념적인) ‘추상적‘ 대상으로 등장한다는점, 그리고 일차적 수준의 역사(학)적 취급[분석]이 노동일 감축을 위한 투쟁에 대해서든 자본주의적인 본원적 축적에 대해서든 마르크스에 의해 적용되는 곳인 『자본의 몇몇 장[즉 자본의 ‘역사적 장들‘]이 역사이론에, 역사 개념의 구축에 그리고 이 역사 개념의 ‘전개된 형태들‘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경제이론은 이 ‘전개된 형태들‘의규정된 한 ‘지역‘을 구성한다의 구축에 그 원리로서 준거한다는점이다. - P523

현실적인 것[대상의 현실] 내에서 이론적 전체ensemble (정치경제학이론)와 현실적인 경험적 전체ensemble(구체적 역사)이론적 전체는 이 현실적인 경험적 전체에 대한 인식인데 사이에서 이 둘을 일대일로 조응하게 만드는 것이 『자본 내에서의 ‘[대문자]논리‘와 ‘[소문자]역사‘ 사이의 ‘관계‘에 관한 질문에 대해 저질러졌던 오해들의기원에 존재한다는 원리 말이다. 이 오해들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다음과 같은 맹목aveuglement의 효과이다. 즉, 「자본이 경제이론에 대한이해에 필요불가결한 하나의 역사이론을 온전히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종종 지각하지 못하게끔 방해하는 그러한 맹목 말이다. - P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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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ing

마르크스의 근본적 비난은 고전파 경제학이 자본주의의 경제적 범주들에 대한 무-역사적a-historique이고 초역사적éternitaire이며 고정주의적fixiste이고 추상적인 하나의 개념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P460

이 절대적이고 동질적인 현존이, 자신의원리 내에서, 저 유명한 헤겔적 정식 역사적으로 현존하는[현재의]présente 철학인 이 전체에 대한 지식savoir 내에서, 이 전체의 자기의 - P469

식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 자기의식마저 포함하여, 전체에 대한 모든 규정들에서 유효한,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시간을 넘어 튀어오를수는 없다는 저 유명한 정식을 설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헤겔에게서현재는 모든 지식의 절대적 지평을 구성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모든지식은 전체의 내부적 원리의 이 지식 내에서의 실존[전체의 내부적원리가 이 지식 내에서 실존함] 이외에 그 무엇도 아니기 때문이다. - P470

불가능한 본질적 절단면이 드러내는 것, 그것은 바로, 이본질적 절단면이 부정적인 방식으로en négatif 보여주는 부재들 자체에서, 규정된 하나의 생산양식에 속하는 하나의 사회구성체에 고유한 역사적 존재형태, 그러니까 마르크스가 규정된 생산양식의 발전과정이라 부르는 바의 고유한 유형이다. 이 과정 역시, 『자본』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해 언급하며 마르크스가 서로 다른 시간들의 얽힘의 유형이라 부르는 것, 다시 말해 구조의 서로 다른 수준들에 의해생산된 서로 다른 시간성들이 서로 다른 시간성들 간의 복잡한결합은 과정의 전개의 고유한 시간을 구성한다의 ‘어긋남‘décalage과 ‘꼬임‘ torsion의 유형이다. - P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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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3

마르크스의 대상 그 자체에 대한 오해는 이 [고전파] 경제학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마르크스에게로 투사한 자신들 고유의 대상을 읽어내도록 해준다. 또 다른 대상, 즉 자신들의 것이 아닌 완전히 다른 대상[즉 마르크스 자신의 대상]을 마르크스에게서 읽어내도록 해주는 대신 말이다. 그러나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마르크스의약점과 이론적 결함défaillance으로 선언하는 이러한 오해의 지점은오히려 마르크스의 가장 강력한 힘의 지점 [강점], 마르크스를 자신의 - P431

비판가들로부터 발본적으로 구분해주며 또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지지자들 중 몇몇으로부터도 자신을 구분해주는 그러한지점이다! - P432

추상에 대한 규제된réglé 활용 내에서의 몇몇 잘못된 시도들 혹은 ‘전도‘inversion를 제외한다면, 우리는 스미스의 대상과 리카도의 대상사이의, 그리고 마르크스의 대상 사이의 본질적 차이를 지각하지 못한다. 대상에서의 이러한 비차이는 다음과 같은 형태하에서 통속적마르크스주의 해석 내에 기입되었다. 차이가 존재하는 지점은 대상이 아니라 오직 방법이라는 해석, 즉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의대상에 적용했던 방법은 형이상학적일 뿐인 반면, 마르크스의 방법은변증법적이라는 방법에서의 차이 말이다. - P444

우리는 마르크스에게서이 질문이 항상 부재함을 확인하게 된다. 이 질문은 다음과 같다.
어떠한 점에서 이 ‘추상적 일반관계‘는 ‘규정적‘ [결정적]이라고 말해질 수 있는가? 그러한 모든 추상은 그 자체로 이 추상의 대상에 대한과학적 개념인 것인가? 이데올로기적 추상들과 과학적 추상들, ‘좋은‘
추상들과 ‘나쁜‘ 추상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마르크스는 이에대해 침묵한다." 다시 한번 우리는 이 동일한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제기할 수 있다.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예의 그 추상적 범주들, 인식을 생산하기 위해 출발해야만 하는 그러한 추상들, 따라서 이 추상들은 마르크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마르크스에게서 이 추상들은 사전적préalable 추상과정으로부터, 자신이 침묵하는 그 사전적추상과정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추상적 범주들은 현실적 - P452

인 추상적 범주들catégories abstraites réelles을 ‘반영‘réflechir할 수 있는데, 이 현실적인 추상적 범주들이란 경제세계의 경험적 현상들에 이현상들의 개별성에 대한 추상의 자격으로 거주하는 현실적인 추상적인 것abstrait réel이다. - P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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