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와 일상적이고 삶에 묶이는 일을 요구당하는 존재로 취급받던 여성들이었다.
남성됨의 정치는 삶이 평범하다고 보았고 이를 넘어선 차원에서 번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웬디 브라운은 이 카리스마적 영웅은 시대착오적이며 오늘날의 정치는 이익의 정치만이 남아있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진정한 정치도 진정한 남성됨도 죽어 있다는 소리다.

그동안 여성들은 인류와 정치에 속할 자격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여성들은 남성됨을 쫓기 위해 남성과 그들이 주장하는 정치를 대체로 수용하는 입장에 있었다.

이제 우리는 남성이 배제하고 거부하고 탄압하고 부정한 것을 가져와 통합해야 한다.
남성성은 문제가 없다. 제도화된 남성됨이 문제라는 것이다. 정치가 문제가 아니라 소외된 남성의 정치가 문제라는 것이다.
육체와 이성이 분리되어 있는 현재와 제도화된 정치는 반쪽 짜리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추구할 정치 형태는 남성적 가치를 여성적 가치로 교체하는 방식은 결코 아니다.
남성과 여성을 분리하는 방식의 이분법은 너무나 단순하고 조야하다.
현재 잘못 깔린 판 위에서 벌어지는 극심한 반목과 전쟁을 피하고 새롭게 판을 깔고 형성된 정치 조직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판을 바꾼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용기를 내야 한다.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권력이 생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여성이 권력 위에 있었던 적은 없지 않나.
우리의 목소리는 무시되기 일쑤였고 제도권 안에서 박탈되고 격리된 채 살아왔다.
여성은 이제부터라도 정치권력의 경험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웬디 브라운이 주장하는 것은 결국 제도권의 정치는 여성의 목소리가 철저히 무시되고 배제된 형태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베버를 통해서 그들의 정치 이상의 한계를 엿보았다.
여성과 남성을 이분법적으로 편가르지 말고 단순한 통합도 아닌 새로운 정치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는 대목이 인상깊었다.

현실의 정치는 썩어 있고 대립과 반목의 극한으로 피로하다.
여성들의 목소리는 정치판에서 그저 싸움의 도구로 취급되고 있다.
이러니 여성들의 목소리는 더 커져야 하고 정치적 용기를 내야 한다.


피에쓰) 관련 도서들이다. 

어렵지 않은 입문 또는 개론서들을 골랐고 막스 베버는 언젠가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근대 역사를 보다 보면 종종 그의 이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렌트도 마찬가지!!!




 





남성됨은 삶, 단순한 생존, 필멸성, 일상, 리듬, 자연과 필요의 개입 등을 초월함으로써 실현된다. 또한 끈질긴 불멸 추구를 통해, 특히 삶과 비교되거나 대조되는 이상과 제도의 건설을 통해 손에 넣을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육체 욕구 필멸성을 초월하기 위해 분투하고 이런 것들 너머의 행동 범위에서, 즉 이런 것들이 사라지는 영역에서 비로소 깨달음을 얻는다. 때로는 소란스럽고 때로는 미묘한 이 노력의 잔향은 자신을 위해 고안한 기획과 그 자신이 거부하고 억압하고 탄압한 ‘삶’, 이 모두에 들어 있다. 이 ‘삶’이 저열함만으로 환원되는 사이, 이 기획은 ‘삶의 저열함’에서 멀어진다.

서구의 정치적 인간은 육체에 덫, 무기, 도구, 기반, 정신에 대한 저주 등 다양한 이미지를 덧씌운 뒤 그것을 인식해 왔다. 그리고 육체에 대한 이 가치 평가를 자신이 건설하는 정치로 가져다가 제도화한다. 인간의 개별 육체, 육체의 관리 영역, 정체 등은 모두 잘 해 봐야 도구나 기반일 뿐이며, 보통 인간과 인간의 정치 기획에 짐이 되는 것, 자극물, 위협으로 여겨졌다.

인간은 형상 부여자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상정하고, 형상 부여를 통해 정치를 구축하고, 정치를 인간의 목적이라고 부르며, 살아 있는 모든 것에 형상을 부여할 권리를 타고났다고 상상한다. 형상을 부여하면서 점점 더 큰 삶의 공간을 통제하고 지휘하고 정복하는 힘이 인간의 존재 이유이며 남성됨 정치의 국가적 이유다.

정치는 (조직적 약탈, 노략질, 강간 등) ‘무의미한 폭력’, 즉 육체와 육체노동의 열매를 전유하고 철저히 파괴하려는 남성적 유대에서 나온다. 이런 의미 없는 폭력은 자신을 인간 존재의 목적으로 해석하길 멈추고, 내적 지배와 외적 공격의 제도로 발전해 나아간다.

마키아벨리와 그리스인에게 정치의 ‘특별한’ 본성은 비르투와 아레테로 상징되는 정치 영웅의 특성으로 구현된다. 베버도 진정한 정치가를 영웅이라고 부르지만, 베버식 정치의 특별한 차원은 그가 진정한 정치가와 카리스마적 지도자 사이에 구축한 정체성에서 좀 더 선명하게 나타난다. 카리스마는 ‘평범함을 넘어선’ 차원에서만 번성하고, 일상적이고 삶에 묶이는 일이 요구될 때는 빠르게 썩어 문드러지기 때문이다.

베버의 카리스마적 영웅은 시대착오적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거대 정치는 사라졌으며, 이익의 정치와 육체적 사회적 존재의 정치만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의 정치는 시시하고 하찮고 썩었다.

자유주의 국가의 형식상 정치권력은 ‘국익’, 즉 시민의 특정 이익 및 일반적 안녕과 병치는 ‘명분’을 주장할 때 표현된다.

역사는 인간 존재와 행위를 거의 모든 차원에서 남녀로 나눠 왔기에 여성을 더욱 ‘충실하게 인간적인’ 젠더라고 볼 순 없다. 남녀의 구축 과정 모두 편파적이며, 편파적인 내부에서 인간의 경험은 모두 젠더화된다. 오직 남녀의 경험만이 있을 뿐이다.

진정한 자유, 즉 개별적이고 집단적인 우리 존재를 위한 지속적이고 다양한 발명을 가능케 하는 자유는 우리라는 존재, 우리가 생존을 위해 해야만 하는 것, 필요의 길에서 우리가 대면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정복하기를 그칠 때 비로소 얻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집단적이고 탈중심화된 생산의 소유권과 통제라는 기본적 민주사회주의 계율과 재생산 노동의 집단 책임이라는 기본적 급진 페미니즘의 계율이 실현될 것이다. 이와 함께 훨씬 많은 것들이 뒤따를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쾌락적이고 시적인 움직임은 물론이고 고통, 폭력, 질병까지 한데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단순히 자연과 육체에 투항하자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부적절하다.

‘육체’라는 딱지가 붙은 여성은 서구 문명에서 필요와 섹슈얼리티 양쪽 항목을 주로 담당했다. 그 결과, 서구 문명 속 여성은 자기 일에서는 비하되고 고립되고 억압당했고, 성적으로는 대상화되고 침해받았다.

사실 필요와 욕망은 모두 창의적 가능성의 장일 수 있으며, 그 어느 쪽도 태생적으로 우리를 결정짓거나 노예화하지 않는다.

인간의 열정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미지의 영역이며, 주요 영역은 미개척 상태로 남아 있다. 게다가 인간의 열정은 소위 말하는 ‘생각’과 분리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은 존재를 통해 구체화되고 미뤄지면서도 튼튼해지고 사고의 반대편에 놓이게 된다.

어떤 삶의 형태를 만들어 내며 책임을 지기보다 통제된 조건하에서 살아가는 편이 쉽다. 그것은 마치 스스로 권력을 취하거나 강해지기보다 권력 밑에서 살아가기가 더 쉬운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안락함과 편안함은 자유가 약속하는 보상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저 살아가는 것 이상을 원한다. 단순히 오래 살기보다 세상과 창의적 적극적으로 마주하며 살기를, 심지어 세계가 움직이는 항로 가운데 어떤 것을 결정지으며 살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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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1-30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의 이 글을 읽으니 제가 읽은 책의 내용이 정리되는 것 같아요. 저는 책을 읽을 때 전체적 윤곽을 잡지 못하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누군가 이렇게 정리해둔 걸 보니 참 좋습니다.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1-30 20:07   좋아요 0 | URL
도움을 받으셨다니 기쁩니다^^ 다락방님도 철학자들 이론 읽어내느라 고생하셨어요. 다음 달 책은 아직 사지를 못했네요. 지금 주문해봤자 설 지나서 올 것 같아서 다음주에 주문하려구요. 다음달 책은 이것보단 쉬울거라 믿으며…ㅎㅎ
 



‘일상의 거친 투쟁‘에서 생겨난 주정주의, 즉각성이 정치를 감염할 것이라는 베버의 두려움은 인구의 다수에게서 정치적 시민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식화와 공명한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한편에 있는 욕구, 감정과 다른 한편에 있는 자유, 합리성의 대립 관계를 다시금 보여 준다. 정치에 적절하게 접근하려면 정치를 오염하는 생존 행위에서의 여유와 충분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한다.
그러나 경제적 이해관계를 오염할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강력한 권력 본능이라는 긍정적 자질을 갖춘 정치적 지배층을 불러내면서 베버는 권력, 명망, 나라의 영광, 영웅적 리더십 같은 정치적 미학을 찾아 분투한다. 이 미학은 윤리, 사회, 문화, 경제 등 그 어떤 것이든 ‘공공선‘을 지도 목적으로 삼을 법한 정치적 실천의 반대편에 존재한다.

베버는 정치란 오직 정치적 연합과 지배에 활용되는 수단으로만 제한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정치 연합이 특히 연합 행동이 모든 가치를 품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통제 수단의 과감성 때문"이다.

베버에게 적법성은 충성, 준수, 복종 따위를 얻는 것과 관련된다. 그것이 지배 구조를 ‘올바르게‘ 보이도록 만들지만, 실제로 지배 구조가 그런지 여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적법성은 힘 있는 이들에게 도구로 필요하고, 힘없는 이들에게만 가치의 차원에서 소중히 여겨진다.

국가를 독특하면서 자율적이게 만드는 것은 그 국가의 권력에 대한 전면적 개입 그리고 권력을 추구하는 이들의 점유다. 힘 있는 이들의 관점에서 볼 때 민족은 그 밖의 모든 것, 즉 기껏해야 권력에 간접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행동과 사람을 포괄한다. 그러나 민족과 국가는 상호의존적이다. 국가는 민족문화의 ‘명망‘을 보호하고 증진하며, 민족은 국가의 위업을 위한 근본적 토대가 된다.

도구적 합리성은 어떤 목표든 그리로 가는 가장 명확한 길을 보여 주고, 그 목표로 가는 길에 있는 모든 대상의 활용이나 지배를 수반하며, 자연 습관 종교 전통 등에서 풀려나게 하는 최고의 해방자다. 따라서 도구 합리적 행동의 자유는 특정 목표를 이루기 위한 권력의 외적 제약에서의 자유다.

그가 근대 세계 합리화의 원인이자 결과로 본 두 가지 근대 ‘체계‘는 자본주의와 관료제 국가다.

경제 사회 조직의 한 양상인 자본주의에는 상호 연관된 두 가지 차원의 합리화가 뒤따른다. 하나는 생산자를 생산수단에서 분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수단을 생산 목표에서 분리하는 것이다. 베버의 시각으로 볼 때 자본주의는 바로 이 분리 덕분에 가장 효율적인 생산양식이다.

노동자가 생산수단에서 분리되고 그들 자신이 생산수단이 되어 감에 따라 생산의 목표와 수단은 사회에서 구별되는 두 부류로 나뉜다. 기술적 차원에서 자본주의의 합리화는 생산양식의 합리화와 노동자를 그들의 생존 수단에서 분리하는 작업을 수반한다. 사회적 차원에서 자본주의의 합리화는 대중을 이윤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바꾸는 작업을 통해 이윤 추구가 합리화됨으로써 발생한다.대중은 그렇게 수단이 되면서, 순전히 도구 합리적인 행동을 하도록 강제된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수자==반된 다른 분리처럼 행정 수단(국가권력)에서 관료를 분리해 낸 것은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고 안정적이고 정확하게 믿을 수 있으며, 따라서 가장 강력한 조직 형태다.

"관료주의적 행정은 근본적으로 지식을 통한 지배를 뜻한다." 관료주의는 특화된 훈련과 특권적인 정보 접근 양쪽 모두에 내재하는 권력을 키워 낸다. 그리고 이 함양의 목적은 관료주의 자체의 권력을 개발하는 것이다.

(도구적 합리성을 활용하여 구현된) 특정 권력과 자유에 대한 추구는 삶 자체를 위한 투쟁에서 자율적이며, 자본주의와 관료제 국가야말로 오히려 생존경쟁을 강화해 왔다.

권력과 통제는 도구적 합리성을 통해 특히 경제와 국가의 영역에서 극대화된다. 그러나 도구적 합리성에는 목표와 수단이 잠재적으로 불일치하기 때문에, 이런 행동에서 목표 자체는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합리화 과정에 나타나는 지배 의지, 이것이 정점에 이르면 마침내 ‘여성적인 것‘이 무너져 내리는 무게가 된다. 이때 베버가 개념화한 여성적인 것을 위협하는 것이 바로 도구적 합리성의 출현이라는 기술이다. 남성성의 외적 세계를 구현하는 자유 통제 지배 권력에의 의지는 자본주의와 관료제 국가라는 총체적 지배 체제를 만들었지만 그것이 완전히 실현되려는 찰나에 남성됨 자체가 통째로 으스러져 버린다.

정치적 ‘시실주의‘와 ‘책임 윤리‘에 베버가 헌신했을지라도 그것이 국가권력에, 국제정치에서 패권을 얻기 위한 권력 행사에, 자본주의 생산성에, 자본주의를 추동하는 무자비한 기업가 정신에 그가 전념한 것을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다. 그는 이런 제도와 실천이 사회와 개인에게 무엇을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목적이 되어 버린 수단임을 통찰력 있게 인식하고도 그런 제도와 실천을 옹호하고 변호했다. 하지만 가장 깊은 역설은 베버의 방법론에 있다. 왜냐하면 베버는 이 방법론을 통해 인간 존재, 문화, 연합, 행동에 대한 연구를 합리화했기 때문이다.

베버가 고안해 낸 정치 영웅은 고전적 남성됨의 망토를 두른 채 근대 남성됨의 피조물, 즉 막강한 국민국가의 힘을 행사한다. 이 영웅은 남성의 통제와 지배 추구에서 비롯한 합리화된 정치적 경제적 삶이라는 기구를 해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정치적 목표에 따라 그것을 동원하려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 정치가는 제도화된 남성됨의 힘, 즉 관료제 국가를 휘두르는 남성 전사다. 그는 모든 남성적 정치 가치, 즉 사적 권력, 영웅주의, 폭력, 지배, 뛰어난 것에 대한 헌신, 일상적 존재를 비롯해 이 모든 것이 한데 녹아든 도구적 합리성에 대한 반감 등을 한데 구현한다. 베버는 진정한 정치가라면 반드시 책임 윤리에 복종해야 한다고 고집하는데, 도구적 합리성만으로도 그가 좇는 수준의 정치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그리고 도구적 합리성은 책임 윤리와 전혀 공존할 수 없다. 베버의 지도자 개념과 정치 자체에 대한 개념은 권력 수단에 대한 도구적 관계에 기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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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대추세가 지역에따라 표출되는 강도가 달라지고 정치형태에 투영되는 방식도 또한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서유럽 국가가 역사적 표준이 아니라고 한다면 문제는 명쾌해진다. - P1586

물리력의 독점은 ‘현대’ 국가를 정의하는 자연스러운 속성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시도하여 획득한 역사발전의 예외적 상황일 뿐이다. 혁명의 시대에 폭력의 독점은 빠르게 와해되었다. - P1587

독재자에게 자신의 통치하에서 우대받는 군대와 경찰을 장악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일생의 분투를 통해 올라온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독재자는 자신이 통치자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특수한 상황을 어떤 방법을 쓰든—쿠데타이건 박수와 환호 속의 표결이건— 확고한 제도로 변환시켜야만 한다.

-> 한국사에도 독재자의 모습은 여럿 있었다. 특히 현대사에서 이승만은 경찰을 수시로 동원했던 모습이 있다. 박정희는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다. - P1590

정치가가 권력을 위임받기 위해 유권자나 추종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의견을 듣는 일은 19세기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었다. 이런 정치형식은 미국의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임기 중에 처음 생겨났다. 그 후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이름을 딴 잭슨 혁명과 함께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건국의 아버지들의 엘리트주의를 배격하는 대중주의적 또는 ‘풀뿌리’ 정치 관념이 생겨나 ‘분파주의’라 비난받던 정당 간의 경쟁을 지지하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었다. 선출직 공직이 급격히 늘어났고 어떤 지역에서는 법관까지도 선거로 뽑았다. 유럽에서 민주주의의 실천은 오랜 시간이 걸렸을 뿐만 아니라 과두정치적 색채가 짙었다. 영국에서도 이런 상황이 1867년까지 지속되었다. 영국의 선거법은 미국에 비해 여러 가지 제한이 많았다. - P1595

겨우 수천 명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있었는가 하면 수억의 신민을다스리는 통치자도 있었다. 어떤 전제군주는 직접 통치했고 의례적인 통치자의 지위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군주도 있었다. 히말라야 산속과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의 왕이건, 아니면 런던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면류관을 쓴 국가원수이건 그들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있었다. 하나는 국왕 또는 황제의 계승권을 보장해주는 왕조의 합법성이고 다른 하나는 군주의 개인적인 품성과는 관계없이 기본적인 존경과 숭배를 요구할 수 있는 왕관의 권위였다. - P1597

군주제 자체는 어떤 비판도 초월한 것이었지만 왕위에 있는 자는 반드시 통치능력을 증명해야 했다. 군주제는 백성의 다양한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각양각색의 책임과 사명을 완수해야 했다. 그러므로 식민혁명에 의해 군주제가 폐지되었을 때 아시아사회를 긴밀하게 교직(交織)해온 사상의그물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과거와의 연결을 상징하는 군주제가완전히 사라진 곳에서, 식민통치가 끝난 뒤 그나마 남아 있는 국가통합의 도구가 군대와 공산당뿐인 곳에서 과도기는 특히 험난했다. - P1603

19세기에 –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 의회가 의원들 가운데서 정부의 수뇌를 선발했고 정부 수뇌는 의회 다수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자신 있게 군주를 대면할 수있었다. 동시에 내각 구성원 전체는 의회에 대해 책임을 졌다. 군주는 의회를 제치고 수상이나 내각 구성원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해임할 수 없었다. 내각은 의회에 대해 집단 책임을 져야 하고 의회의 다수결은 모두에게 구속력이 있었다. 각료는 동료의 의견에 동의하지않을 때 내각 회의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지만 공적인상황에서는 내각 기율의 제약을 받았다. 이렇게 내각은 가장 중요한권력과 직능을 장악한 국가기구가 되었다. 유럽대륙 국가들의 헌법발전과정에서 등장한 전형적인 의회-군주 ‘이원제‘ 문제는 내각제라고 하는 상상력이 풍부한 방안을 통해 해결되었다. 내각제 정부는19세기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혁신 가운데 하나였다. 20세기에 들어와 이 혁신은 영국 문화권 밖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 P1607

영국제국의 속국에서 군주제의 응집력은 본국만큼 강하지는 않았으나 영연방의 지속적인 존재는 지금까지도 영국 왕실에대한 호감을 바탕으로 하여 유지되고 있다 — 군주정체의 사상이 국경을 초월하는 안정성(과 적응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식민제국 프랑스의 제3공화국은 영연방처럼이전의 식민지가 자발적으로 ‘모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가도록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중략)
각자의 방식은 달랐지만 나폴레옹 3세는 메이지 천황처럼 혁명의 수51혜자였다. 메이지 천황이 유신의 엘리트들과 동맹을 맺었다고 한다면 나폴레옹 3세는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 정권을 탈취했다. 나폴레옹 3세는 먼저 1848년 12월에 선거를 통해 공화국의 대통령이 되고 3년 뒤에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다시 1년 뒤에 세습 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므로 나폴레옹 3세는 맨손으로 일어난 자수성가형 황제였던 반면에 16년 후의 무쓰히토 천황제라는 제도의 연속성에 의존하여 자신의 지위를 확보했다. - P1616

유럽의 궁정에서는 (동방의 궁정생활과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지만) 황실 또는 왕실의 공식적인행사에 군주 부부가 같이 출현했다. 일본이 이러한 서방을 상징하는의식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현대 세계로 진입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61) 중국의 최고 통치계층은 이처럼 시범적인 부르주아 생활방식을 수용하려는 의지가 없었고, 이것은 중국 군주제의 부패와 무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중국의 궁정에서는환관과 후궁제도가 왕조가 끝나는 날까지 유지되었다. - P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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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도 세상은 어지럽게 돌아간다.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다행인 건 개인적으로는 별 일 없는 일상이라는 것이다.)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에서 2명의 실종자 흔적을 찾았다는 것은 다행스럽지만

구조는 더딜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얼른 차갑고 무거운 그 통곡의 바닥에서 가족들 품으로 귀환해야 할텐데...


우크라이나 사태도 일촉즉발이다.

나와 먼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코로나로 알게 되었지 않나. 세계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진자가 연이어 치솟고 있어서 연휴 때 이동을 자제하려고 한다.

이 암담한 시기가 무사히 지나가길 빌 뿐이다.



더불어 이주에 읽고 싶은 책을 몇 권 골랐다.



1. 배틀그라운드


미국은 여전히 세계 패권국의 지위를 두고 물러나려 하지 않지만
여러 국가의 도전들 속에 위기감과 경계를 보이고 있다.
더군다나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와 NATO 연합국간의 기싸움에 발을 담그고 있고
언제라도 전쟁이 촉발될 수 있는 이 때에 위기감은 더욱 크다.
저자는 맥매스터로 트럼프 행정부 때 13개월간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고 아버지가 6.25 전쟁에도 참전한 군인이었으며
본인은 걸프전, 이라크전, 아프간전까지 참전한 군인으로 현장감을 키워낸 군사 전문 역사학자다.
책의 목차를 보아하니 결코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북한을 따로 챕터로 두고 있어서 이목을 끈다.
러시아, 중국, 남아시아, 중동, 이란, 북한까지 미국과 힘 겨루기를 하는 모든 나라들이 담겨있다고 보면 되겠다.

2. 우리가 서로를 잊지 않는다면


이 책은 제주4.3평화문학상 8회 논픽션 수상작으로
보광동의 한국전쟁 이후 기억을 담은 르포르타주를 담고 있다.
보광동의 많은 이들이 떠나갔지만 그곳에 남은 토박이 어르신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어르신들의 증언과 용산 미군 기지를 등진 곳에서 살아야 했던 많은 이들을 보듬은 기록들이 담겼다.
보광동은 용산 일대에 일제가 일본군 기지를 짓고 마을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면서 비극의 역사의 공간이 되버린다.
차별의 공간이 된 이곳과 그곳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을지 궁금해져서 읽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문장이 떠오르지 않을까하는 생각만 짐작할 뿐이다.

3. 아인슈타인의 냉장고


평소 과학은 관심이 없고 과학 관련 서적은 어려워서 잘 안 읽는다.
그럼에도 아인슈타인은 워낙 유명하기에 눈길이 갔고 아인슈타인과 냉장고가 무슨 관련이 있지 호기심이 일어 보게 되었다.
알고 보니 아인슈타인이 냉장고 사업을 했단다. 지금의 프레온 냉매가 아닌 메탄올로 냉매를 만들었다는데. 이게 상용화가 됐다면 지구 파괴 속도가 좀 더뎌졌을까.
저자는 열역학 과학자들의 삶을 돌아보며 열역학이 세상을 구성하는 핵심 개념들을 소개하였다.
아인슈타인의 냉장고의 이야기처럼 나처럼 과학에 관심이 없고 어려운 사람들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열 운동, 엔트로피 등 물리학의 핵심개념들이 담겨져 있어 책을 읽으면 물리학의 다른 책들도 읽을 용기가 나지 않을까.

4. 미국인 이야기


이 책은 옥스퍼드 미국사 시리즈로 나왔다.
옥스퍼드 미국사 시리즈는 미국의 정치, 사회, 문화, 역사를 알기 쉽게 이야기체로 소개하고있다.
미국 독립 전쟁부터 현대 미국 역사 전반을 다루는데
1권부터 3권까지는 미국 독립 혁명기의 역사로 미국이라는 국가가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을 이야기체로 그려내 흥미를 자아낸다.
여러 매체에서 이미 최고의 책이라는 찬사를 보내고 있는데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 등의 책과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이 시리즈는 총 12권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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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1-28 12: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요즘 들리는 소식들은 죄다 암울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북플에 들어오면 제가 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책을 만날 수 있어 좋아요^^
미국인 이야기, 찜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1-28 13:06   좋아요 3 | URL
네. 북플 들어오면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 같긴 합니다...^^; 덕분에 사고 싶은 책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ㅋㅋ 미국인 이야기 저도 조만간 구매하려고요. 설 연휴 무탈하게 즐겁게 보내세요!

stella.K 2022-01-28 13: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저 미국민인 이야기 벽돌책인데요?
12권까지 모으시려면 돈 많이 버셔야겠어요.ㅋㅋ

거리의화가 2022-01-28 14:14   좋아요 3 | URL
ㅎㅎ 벽돌책은 익숙한 편입니다^^; 책값은 늘 언제나 많이 들어가고요. 옆지기가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네요...ㅋㅋ
돈은 많이 벌지 못하지만 그래도 지출하는 것들 중 책값이 가장 덜 아까운 것 같아요.

바람돌이 2022-01-28 15: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국인 이야기 관심갖고 보다가 12권이라는 말에 살포시 접습니다. ㅎㅎ 이거 다 보려면 얼마나 많은 읽고싶은 다른 책을 포기해야할까싶어서요. 그러니까 제 미국에 대한 관심이 12권만큼은 안된다는
...ㅠㅠ

거리의화가 2022-01-28 15:46   좋아요 3 | URL
이제 3권 나왔으니 야금야금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도 읽는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니 충분히 드실 수 있는 생각이죠^^ㅋ

mini74 2022-01-28 1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저도 미국인 이야기애 관심이 ㅠㅠ 12권이라니 ㅎㅎ 그저 윳지요. 정말 이 암담한 시기가 지나가고 그 끝에 빛이 좀 있길 바라봅니다. ㅠ

거리의화가 2022-01-28 19:09   좋아요 1 | URL
미국이 우리나라와 관련이 깊으니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죠. 공부하면 할수록 공부거리가 늘어요ㅎㅎ 이래저래 우울한 시기이지만 빛을 기다려봐야죠 미니님 명절 즐겁게 잘보내세요!
 

베버에게 정치의 가치는 집단의 욕구를 고심하거나 집단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있지 않다. 국가에는 그런 경제 사회 문제보다 훨씬 더 크고 가치 있는 잠재력과 목적이 있었다. 그에게는 근대적 국가 이성이 국민국가의 명망이자 영광이었다.

그는 자신이 활동하던 시대의 논란과 마르크스주의 연구를 통해 19세기 사회주의자들의 성패가 달린 다른 가치와 정치적 주장이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생산을 사적 통제에서 국가 통제로 전환하는 것이 과학적 사회주의의 최종 목표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했을 것이다. 그러나 베버는 고집스럽게 ‘사회주의 기획’을 이런 볼품없는 옷가지로 묘사했다.

매우 일반적인 의미에서 지배는 사회적 행위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무정형의 사회적 행위에서 합리적 연합이 출현하는 것은 지배 때문이자 그 지배를 행사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지배의 구조와 전개는 사회적 행위의 방식과 목표를 향한 방향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베버에게 정치의 본질은 조직된 지배의 목적을 위해 쓰일 권력이다.

"‘민족’은 보통 그 집단의 특성을 배양해야만 보존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문화 가치의 우월성 또는 적어도 대체 불가능성 때문에 중요하다." 따라서 베버는 정치권력이 있는 이들이 ‘민족 관념’을 고취하는 한편 문화 지도자(지식인)들은 반드시 ‘민족 관념’을 환기하고 고취해야 한다고 이어 말한다.

정치적 삶의 자율성에 대한 베버의 관심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예는 그가 이상적 정치가의 특징으로 꼽은 내용에 있다. 정치에 ‘의지해’ 살아가기보다 정치를 ‘위해’ 살아갈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베버의 청원은 이중적 설명이 필요하다. 첫째, 진정 정치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내적 의미에서 자신의 삶’인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정치를 만들어갈 것이다. 둘째, 재정적 수단이 충분해서 정치적 지위에서 얻는 보수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은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다. 다음으로 베버는 다음 내용을 인정한다. 정치가가 ‘정치로 벌 수 있는 수입에 경제적으로 독립적’이고 ‘경제적으로 일할 필요가 없는’ 존재여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하는 것, 즉 ‘완전한 불로소득자’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정치에서의 금권 선거와 금리 생활자 부유한 변호사로 이루어진 정부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사유재산 없는 대중은 비록 자신의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 거친 투쟁을 벌이지만, 그런 걱정에서 자유로운 자산가의 ‘더 차가운 머리’에 비해 정치에서 일련의 감성적 동기, 감정적 특성에서 나오는 충동과 순간적인 인상에 휩쓸리기가 훨씬 쉽다. 베버에게 경제와 정치 조직은 별개고 그래야만 한다. 정치의 관심사는 삶과 생계의 관심사와 다르고, 이러한 사안들이 국가 권력과 관련되지 않은 국가적 관심을 얻게 되는 것은 위태로운 일이다. 경제적 삶은 오직 국가에 권한을 주는 역할을 할 때만 정치적이다. 국가의 관점에서 경제는 목적이 아닌 도구인 것이다. 단순한 생존은 선한 삶, 힘의 정치를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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