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다시 길을 나서게 될까?

2019년 6월. 후쿠오카 여행이 마지막이 되었다.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라더니...

짧은 감기처럼 금방 지나갈 줄 알았건만 3년째 계속되는 전염병과의 사투는 진을 빠지게 한다.

그리고 오늘 아침 보게 된 대선 결과.

설마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아니길 바랐었다.

그래서 쉬이 잠에 들지 못했던걸까?

누웠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밤사이 엎치락뒤치락 했을 득표율에 일희일비했을 사람들의 간절함이 잠시나마 떠올랐다.

난 그걸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옆지기와 짧게 대화를 나누었다.

둘다  잠시 허탈했지만 결과를 뜯어보면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몇십만 표 차이이기에 누구는 이기고 누구는 졌을 뿐 결코 당사자는 오만함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을 뽑은 이들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뽑지 않은 이들이 누구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특히 여성 득표율의 2/3은 이재명을 지지했기에 윤석열은 그 결과를 뼈아프게 새겨야 할 것이다. 

혐오가 아닌 존중의 정치를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윗 글은 아침에 쓴 글이다.

참으로 길고 멍한(?) 고단한 하루를 보냈다.

잠을 설쳤는지 집에 오니 코피를 쏟았다. 

이거 몇 년만인지... 몸이 쉬라고 하는 신호인가보다 싶다.


5년의 시간이 답보 또는 후퇴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소리를 내질러야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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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10 22: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ㅠㅠㅠ 코피까지 나셨다니 ㅠ 건강 잘 챙기시고 힘내요 우리 !!!! 아프지 마세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03-11 09:09   좋아요 2 | URL
어제는 꽤 잘 자고 일어나서 괜찮습니다. 이젠 몸 뿐 아니라 정신도 챙겨야 할 것 같죠? 같이 힘냅시다!

페넬로페 2022-03-10 22: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몇 십만표에 일말의 희망을 갖고 있는데 저 사람들은 그까이꺼 깡그리 잊어버리고 무시할 것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2-03-11 09:10   좋아요 3 | URL
총선 때 저력을 다시 보여줘야죠. 그래서 무시가 답이 아니라 더욱 잘못된 지점을 이야기하고 소리높여야할 것 같아요. 소리 없는 아우성은 없습니다!

청아 2022-03-10 23: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 멋져요! 이렇게 근소한 차이가 나왔으니 자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비서실장 인선에 참 어이가 없었지만 더 두고봐야겠죠. 함께 기운내요~^^♡

거리의화가 2022-03-11 09:12   좋아요 3 | URL
네. 만약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고 자만한다면 바로 실패하게 될 겁니다. 주변의 인물들을 고루 뽑아주었으면 좋겠는데... 이제 정말 단임 대통령제가 아닌 새로운 정치 구도로 바뀌는 등 개혁 바람이 불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eBook] 여성혐오, 그 후
이현재 지음 / 들녘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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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적 외부로 취급된 비체들이 벗어나고자 하는 그 공간은 공감과 연대의 장소이기도 하다. 자신을 알기 위해 타인을 보는 것처럼 비체들간의 감응과 참여로 구조적 공간에서 감정의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혐오와 배제에서 벗어나고 차이와 인정의 사회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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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계년사 8
소명출판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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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부터 1907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대표 사건들을 정리해보자.

1906년 2월 17일 밤11시 군부 대신 이근택 집에 자객 세 사람이 뛰어들어와 한 사람이 이근택을 칼로 찌르자 이근택이 촛불을 껐다. 이에 자객들은 이근택을 칼로 머리와 왼쪽 어깨 등 및 팔에 여러 곳에 상처를 입혔다. 이때 안방 근처에 있던 우리나라 병사와 순검과 일본 헌병 및 순사들이 초인종 울리는 소리에 달려왔으나 자객들은 이미 도주한 뒤였다. 이근택은 중상을 입고 한성병원 특별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한달 기간 치료하여 죽지 않게 되었다. 이로부터 박제순 이지용 등 다섯 대신의 집에는 우리나라 병사들이 총을 메고 경계하며 지키고 엄중한 경호를 하게 되었다.

1906년 6월 4일 최익현이 제자 수십 명과 선비 임병찬과 몇몇, 병사 수백 명을 거느리고 의병을 일으켰다. 6월 13일 궁중에서는 궁내부 특진관 정2품 최익현을 해임하고 법부에 명령하여 그를 붙잡아 가두라고 했다. 결국 최익현 임병찬 등 13명이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어 올려지고 많은 사람들에게는 흩어져 돌아가게 되었다. 최익현은 처벌로 쓰시마 섬으로 유배가 보내졌다. 쓰시마 섬에 갇히자 우리나라의 양식과 반찬거리를 마련해 가지고 갔다. 먹을거리가 다 떨어졌는데 일본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 마침내 단식했다. 최익현의 아들과 조카가 부산으로 돌아와 곡식과 반찬거리를 사가지고 미처 되돌아가기 전 12월 30일 최익현은 숨을 거두었다.

"나 최익현은 비록 세상 돌아가는 것은 잘 모르지만, 나라에 충성하고 남을 사랑하며 믿음을 지키고 의리를 밝히는 도리는 익숙히 익혀 왔습니다. 나라와 인민에 닥친 재앙이 그지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눈으로 보고서, 오직 죽을 자리를 얻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긴 지 오래되었습니다. 수십 명의 동지들과 함께 죽을 것을 결의하고, 장차 병든 몸을 이끌고 서울로 올라가 이토 히로부미, 하세가와 요시미치 등과 한번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을 남김없이 다 하고 죽으려고 합니다. 이에 백성 가운데 함께 죽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또 약간 있습니다." - P42

이 때 재정이 고갈되어, 정부는 일본 흥업은행에서 1천만 원을 빌렸다. 3월 16일 그에 관한 계약을 맺었다.(이자는 매회 1백 원, 연 이자는 6푼 5리. 국내 해관을 담보로 하여 10년을 상환기간으로 하고 5년 내에는 상황을 하지 않으며, 발행가격은 1백 원당 90원만 받기로 했다.) 단지 관리 및 초빙 고용한 일본인들의 봉급 비용에 쓰기 위해서였다. 1907년 1월 국채가 1백30만원이었는데 정부에서 갚을 대책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1월 29일 대구에 사는 전 주사 최상돈은 국민들이 국채 보상을 담당한자는 말을 앞장서서 부르짖었고 서울과 지방의 벼슬아치, 백성들이 그 주장에 호응했다.

전 주서 나인영, 전 주사 이기, 전 의관 윤주찬, 전 주사 오기호 등이 박제순 등을 죽이려 했으나, 실패했다.

나인영은 글을 작성하여 여러 사람들을 격려했다. "여러분! 오늘의 일은 실로 대한의 독립을 유지하는 데 첫째 가는 요체입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 2천만 민중들의 생사가 달린 문제입니다. 있는 힘을 다하고 죽음을 각오하는 뜻으로, 이 다섯 역적들을 처단하여 나라 안의 화근을 제거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된다면 우리들 및 우리 자손들은 독립된 세상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줄줄 흐르는 눈물에 잠기고 뚝뚝 떨어지는 피를 걸러내어 마음을 바쳐 복수를 맹세하고, 엉금엉금 기어와 몸을 숙여 엎드리어, 이처럼 의로운 임무를 혈기와 의협심 그리고 슬기와 용기를 지니고 있는 우리 여러분의 가슴 앞에 내어놓습니다. 여러분! 각자 순결한 애국심을 힘껏 발휘해, 나라를 팔아먹은 흉악하고 완고한한 역적들을 서둘러 처단함으로써, 우리나라로 하여금 세계 위에 독립된 나라로 우뚝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 P69

광무 2년 네덜란드 수도 헤이그 1차 회의가 열려 세계의 전쟁을 없애버리자는 큰 뜻으로 국제분쟁의 평화 처리조약(80조항)을 맺었다. 1907년은 제2차 회의를 여는 때였다. 황제는 5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것을 분하게 여겨 전 의정부 참찬 이상설, 전 평리원 검사 이준을 밀사로 파견했다. 이상설에게 비밀 지령을 주어 헤이그에 가서 일본인이 강제로 맺은 조약을 맺은 것과 일본에 달라붙은 박제순 등이 정부 대신이 되어 우리나라를 억누르고 인민에게 잔인하고 포악하게 군 사실에 대해 만국평화회의에 호소하도록 시켰다. 이상설은 4월 20일 시베리아 철도로 러시아 수도에 이르러, 전 러시아 주재공사관 서기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로 갔다. 러시아 수도에 있던 네덜란드 신문사 통신원이 그 사실을 알고 6월 28일 이 내용을 본사에 전보로 알렸다. 그 신문사에서는 곧바로 한국의 밀사가 헤이그에 온다고 신문에 실었다. 7월 1일 헤이그로부터 미국의 신문사에 전보를 보냈다. 헤이그에 주재하던 일본 공사가 이 소식을 듣고 갖은 방법으로 힘써서 이상설 일행이 평화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준은 이위종에게 평화회의 간부를 방문하여 회의 참석에 대해 말하도록 했으나 간부는 그들의 회의 참석을 허락하지 않았다. 비록 발언권은 허락이 안되었으나 방청은 허락되어 회의장소로 갔다. 그곳에서 이준은 자결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궁중에서 밀사 파견을 이유로 이완용을 크게 꾸짖었다. 이완용은 7월 16일 회의에서 황제를 만나 이번 헤이그 평화회의에 위원을 보내 곤란을 당한 것을 벗기 위한 방책에 대해 말했다. 하나는 광무 9년 11월 17일의 새 조약에 옥새를 찍는 일, 둘은 황제 폐하의 섭정(대리인)을 추천하는 일, 셋은 황제 폐하께서 일본 황제에 직접 사과하러 가는 일이었다.

이완용 등은 황제에게 황태자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일에 대해 아뢰었다. 압박하는 분위기 속에서 황제는 오전 3시에 황태자 대리 명령 조서를 내렸다. 이완용 등은 그제서야 물러갔다. 황제는 수라를 들지 못한지 며칠이 되었고 이날 밤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 대궐 안의 신하들과 대궐 사람들도 모두 잠을 자지 못했다. 이날 밤 11시 온 도성의 인민이 종로에 모여 결사회를 만들고 일곱 대신이 한 날치기 짓에 대한 상소를 적었다. 오전 4시 점포 상인들이 모여 황제가 대리 조서를 비로소 내렸다.

이완용이 이토 히로부미의 지시로 각 대신들과 함께 송병준 사저에 모여 남몰래 의논했다. 1907년 7월 24일 이완용이 이병무와 함께 황제를 만난 후 대궐에서 물러 나와 내각 회의를 열었다. 이완용과 송병준이 황제를 만나고, 대궐에서 물러 나와 통감 관저로 갔다. 임선준 고영희 조중응 이병무가 통감 관저로 가 이완용과 송병준을 기다렸다. 이토 히로부미 및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 외무성 대신 하야시 다다시와 함께 7조항의 협약에 조인했다.

"하나, 한국 정부는 시정의 개선에 관해서 통감의 지도를 받도록 할 일.
둘, 한국 정부의 법령 제정 및 중요한 행정상의 처분은 미리 통감의 승인을 거칠 일.
셋, 한국의 사법 사무는 보통의 행정사무와 구별할 일.
넷, 한국 관리를 임명하고 해임하는 일은 통감의 동의로써 이를 행할 일.
다섯, 한국 정부는 통감이 추천한 일본인을 한국 관리에 임명할 일.
여섯, 한국 정부는 통감의 동의 없이 외국인을 초빙하여 고용하지 않을 일.
일곱, 메이지 37년 8월 23일에 조인한 한일협약 제1항은 폐지할 일."
한일협약 제1항의 내용은 "대한 정부는 대일본 정부가 추천한 일본인 1명을 재정고문으로 대한 정부에 초빙해 고용하되, 재정에 관한 사항은 일체 그의 의견을 묻고 시행할 일." 이었다. 조약의 끝에 기록했다.
광무 11년 7월 24일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 인
통감 후작 이토 히로부미 인

1907년 7월 31일 오전 군부 대신 이병무와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이토 히로부미 통감 관저에 모여 우리나라 군대를 해산하기로 논의해 결정했다. 오후 9시 40분 총리대신 이완용, 법부 대신 조중응이 황제에게 아뢴 뒤에 조서를 내렸는데, 아직은 반포하지 말도록 했다. 8월 1일 7시,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우리나라 각 대대의 영관 위관 장교 및 전직 대장들을 불러모았다. 각 부대 장관은 자기 부대로 돌아가 군사들에게 맨 손으로 훈련원으로 가서 훈련을 하도록 꾀어 서로 통솔하여 갔는데, 일본군이 좌우로 호의하며 갔으니 훈련원에서 해산식 거행을 위한 것이었다. 8시에 일본 장교는 각 부대가 텅빈 틈을 타 전동의 시위 3대대 부대와 정동의 숙위소로 가서 점거하고 9시에 흥화문 앞 징상대 부대를 빼앗고 무기를 모두 거두어들였다.


을사오적에 대한 분노로 인한 줄곧은 상소와 암살 시도. 헤이그 만국회의에 밀사 파견과 그 후폭풍. 한일신협약과 군대 해산. 고종의 강제 퇴위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등장한다.

어느 것 하나 분노하지 않을 것이 없지만 을사오적과 한일신협약을 강제로 맺은 정미칠적의 안하무인은 기가 찰 노릇이었다.
국민을 가벼이 여기고 이토 히로부미라는 권력에 빌붙어 오만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일삼는 무리들에 가슴 속으로는 여러 번 단칼을 날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당시 백성들과 일부 관리도 수없이 그들의 집과 가옥을 불태우고 암살을 시도하기도 하는 등 수많은 행동이 있었다.
결코 가만히 그들 손에 놀아나려하지 않았다. 그들도 백성들의 눈치를 살폈고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왜 아니 그럴까. 가다가 돌 맞아 죽을까봐 두려워한 적도 많았을 것 같다.
실제로 그들은 강제 협약을 맺고 나서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군의 비호 아래 자택과 가족을 단단히 보호했다.

수많은 의병들이 강제 조약과 군대 해산, 고종의 강제 퇴위로 들불처럼 들고 일어났다.
고종은 그들을 보호하지 못했고 순종도 마찬가지였다.
을사늑약 이후에는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와 일부 대신들이 비밀리에 국정을 협의한 내용들을 고종에 통보하여 재가를 받는 식으로 이루어지다보니 그들의 입맛대로 정리될 수 밖에 없었다.

통탄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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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니 ‘비체abject’, 즉 어떤 규정된 대상이 아니라는 말은 참 유용한 언어였다. 어떤 존재를 무엇이다(A)라고 규정하지 않고, 무엇이 아니다(~A)라고 말하는 방식은 그 존재를 어떤 경계에 가두기보다 그 여분의 공간, 경계의 열림에 위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페미니즘의 역사는 남성이 정해놓은 위치를 벗어나 경계를 넘나들었던 여성들, 항상 흐르고 있기에 개념적으로 잡힐 수 없는 ‘비-체’가 되었던 여성들에 의해 쓰인 것이었다. 그녀들이 비판받거나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기존의 언어나 질서로는 파악되지 않는 ‘알 수 없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포감을 주는 대상이자, 곧 더러운 존재로 여겨진 ‘비체’였다. - P15

페미니즘이 결국 갇혀 있던 타자를 해방시키는 것에 목적이 있다면, 페미니스트들은 지금 부상하는 비체의 해방적 잠재성에 주목해야 한다. 그녀들의 급진적 타자성을 마주하면서 그동안의 언어들을 점검하고 수정할 필요가 있다. - P16

"결혼을 구성하는 총체적 교환관계는 한 남성과 한 여성 사이에서가 아니라 두 집단의 남성들 사이에서 성립되며, 여성은 한 사람의 파트너가 아니라 교환 대상의 하나로 성립된다."(주석:1 게일 루빈, 신혜수/임옥희/조혜영/허윤 옮김, 『일탈』, 현실문화, 2015, 114쪽.)

따라서 루빈은 여성교환이라는 개념이 여성억압의 사회적 구조를 설명하는 핵심이라고 본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여성은 교환되기 시작한 순간 대상화되었으며, 여기에 여성억압의 기원이 있다. - P19

이리가레는 여성교환을 통해 남성들의 연대가 지속되는 경제를 "남성경제"라고 불렀다. 남성경제는 "남성이 자기와 유사한 존재인 남성을 번식"시키려는 욕망, 또는 여자들을 통해 "남자들 사이의 관계", "남성 위주의 동성애"를 가능하게 만들고자 하는 욕망을 따른다. 남성경제에서 거래의 주체가 되는 것은 욕망을 가진 남성이다. 여성은 남성의 욕망에 부합하는 대상이자 남성의 욕망에 따라 교환되는 자리에 놓이게 된다.
남성경제의 정치경제학에서 분명한 것은 어머니든, 처녀든, 창녀든 모든 여성들은 남성경제 안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 세 가지 상품들에는 남성의 욕망에 따라 서로 다른 사회적 가치가 매겨진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소유물이 된 "번식의 도구"(주석:2 뤼스 이리가레, 이은민 옮김, 『하나이지 않은 성』, 동문선, 2000, 240쪽.)로서 이미 유통이 끝난 상품인 반면, 창녀는 재생산의 가치를 갖지는 않지만 쾌락의 가치에 따라 현실적으로 교환되고 있는 상품이다. 가장 높은 교환가치를 지니는 상품은 "순수한 교환가치"(주석:3 같은 책, 241쪽.)를 지니는 처녀이다. - P19

남성은 소유자로서의 남성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여성을 대상으로 만들어 멸시할 수밖에 없다. 여성도 이 구조에서 예외가 아니다. 여성에게 여성혐오는 ‘자기혐오’로 나타난다. 딸은 어머니의 무력함도 증오하지만, 어머니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성의 힘을 빌려야만 한다는 사실, 즉 자신이 결국 남성의 대상이 ‘되고 싶은 욕망’을 경유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도 절망한다. 따라서 여성은 자신을 혐오하게 된다. - P21

남성들은 재생산용 여성과 쾌락용 여성을 이분화하여 소유함으로써 여성혐오의 지배 구조를 더욱 확고하게 만든다. 성녀와 창녀, 결혼 상대와 놀이 상대 등의 이분법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여성들은 모두 대상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자기혐오라는 공통점을 갖지만, 성녀와 창녀의 이분화는 여성들의 연대를 매우 힘들게 만든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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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3-09 13: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 열심히 독서 중이시네요. 화이팅! 저도 이 책 다시 읽어보려고 어제 주문했어요.

거리의화가 2022-03-09 17:52   좋아요 0 | URL
네. 이 책 읽으니 좀 개념이 잡히는 것 같아요. 얇아서 더 좋네요!ㅎㅎ 감사합니다!
 

SF 공포 영화(<에일리언>, <괴물>, <신체 강탈자의 침입>, <상태개조)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다른 형태의 성교나 생식에 대한 상상력 속에서 출산장면과 같은 원초적 장면을 재가공하는 것이다. - P47

어머니의 형태로 존재하는 어머니라는 존재 역시 중요하다. 원초적 어머니는 단위생식을 하며, 근원적인 혼돈으로서의 어머니이자 시작과 끝의 장소다. - P48

프로이트에 따르면 모든 아이들은 부모님의 성교장면을 목격하거나 그 행위에 대한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 이 판타지는 기원에 대한것이다. 원초적 장면은 아이에게 부모의 성교 안에 존재하는 자신의기원을 의미하며, 이 유혹의 판타지는 성적 욕망의 기원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거세판타지는 성적 차이의 기원을 보여준다. - P48

<에일리언>은 원초적 장면의 다양한 재현을 보여준다. 이 각각의장면 뒤에 원초적 어머니, 즉 모든 삶의 유일한 기원으로서의 어머니에대한 이미지가 숨어 있다. - P49

비록 <에일리언>에서 원초적 어머니가 가시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녀의 존재는 모든 사건의 발생에 광범위한 배경을 제공한다.
원초적 어머니는 출산의 이미지들과 원초적 장면의 재현들, 자궁과 같은 형상과 내부의 방들로 연결되는 길고 구불구불한 터널들, 부화되고있는 알들, 모선의 선체, 생명유지시스템의 목소리, 그리고 에일리언의탄생에 존재한다. 그녀는 생식하는 어머니이자 전 남근적 어머니이며,
남근에 대한 지식에 앞서 존재한다. 이 원초적 어머니는 크리스테바가설정했던 기호계의, 코라의 어머니와는 다소 다르다. 기호계적 코라의어머니는 가족과 상징계적 질서와의 관계 안에 존재하는 전 오이디푸스적 어머니이다. 단위 생식하는 원초적 어머니의 개념은 어머니의 모습에 또 다른 차원을 추가하며, 우리에게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어떻게여성의 영화적 재현 안에서 여성의 차이‘를 부인해 왔는지를 이해할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한다. - P52

드라큘라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원초적 어머니의 징후는 다음과 같다. 매우 작고 폐쇄적인 마을, 마치 탯줄처럼 성으로 연결되는 좁은 숲속의 길. 그리고 그 성은 구불구불한 계단과 거미줄, 어두운 회랑, 벌레 먹은 계단, 먼지투성이에 축축한바닥으로 이루어진 폐쇄된 중심공간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악독한 원초적 어머니의 이마고와 연결되어 있는 요소들이다. 이 한 가운데서드라큘라 자신이 현실화된다. 검은 망토와 뾰족한 이, (발기한 성기 같은 단단한 몸, 날카로운 눈과 꿰뚫을 것 같은 시선 등으로 치장된 그는페티시이다. 즉 ‘어머니의 페니스 대용‘인 것이다(bid, 52-5). - P53

『꿈의 해석』에서 프로이트는 계속해서 페니스 상징을 복제하는 것이 어떻게 거세불안을 없애려는 시도와 연결될 수 있는지 설명한다.
줄리엣 미첼은 이런 페니스 상징의 복제가 여성 거세콤플렉스의 징후라고 말한다. 계속해서 아이 - "작은 것들" - 를 낳는 꿈은 같은 의미를내포하기 때문에, 이것이 여성에게 지니는 중요성을 알 수 있다(미첼,
1985, 84). 이런 맥락에서, 여성 페티시즘의 한 국면은 상징계 안에서결정적인 위치를 점함으로써 남근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으려는 여성주체의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 P56

에일리언의 변화하는 모습은페티시 기획의 작용을 지시하는 남근의 복제 혹은 증식의 형태를 의미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에일리언의 카멜레온 같은 성질은 또한 외부인(에일리언)‘ 혹은 외래적 형태로 드러나는 어머니의 페티시 대상을지시한다. 이것이 여성 주인공의 육체가 영화의 끝에서 그렇게 중요해지는 이유이다. - P58

크리스테바는 주체를 어머니의 환영과 같은 힘, 주체를 제거하겠다고 위협하는 그 힘으로부터 분리하기 위해서 비옥한 여성육체를 비체로 구성하는 방법에 대해서 논의한다. 불결하고 비옥한 (여성) 육체와 상징계적(남성) 육체와 연결된 순수한 발화사이에 대립항이 형성된다. - P62

신화는 <에일리언>에서도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문제가 분명하게 풀리지 않는다고 해도 오이디푸스 신화는 ‘하나로부터 태어났느냐아니면 둘에서 태어났느냐‘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다른 것으로부터 태어났느냐 같은 것으로부터 태어났느냐라는 파생적인 질문에 연결하는일종의 논리적 방법을 제공한다(레비스트로스, 1963, 216). 가부장제의상징 관습, 특히 공포영화 안에서 모든 생명의 원천인 여성의 신화적존재를 살펴보면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자신이출산한 생명을 다시 빨아들이겠다고 위협하는, 모든 것을 결합해버리는검은 구멍이자 심연으로만 독해되는 생식하는 어머니에 대한 공포와연결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부정적인 존재로 재구성되거나재현된다.
원초적 어머니의 중요한 특징은 출산과 생식의 원칙에만 몰두한다.
는 것이다. 그녀는 모든 것을 혼자 수태하는 어머니이며, 독자적인 부모이고, 모든 번식의 신성이자, 생식의 기원이다. 그녀는 도덕과 법 외부에존재한다. - P64

원초적 어머니는 모든 공포영화에서 소멸의 암흑, 즉 죽음으로 등장한다. 자신이 출산한 것들과 재결합하겠다고 위협하는 힘인 원초적 어머니에 의해 깨어난 욕망과 공포는 죽음이 변함없이 그곳에 존재하기때문에 호러 텍스트에서 언제나 설득력이 있으며 포괄적으로 등장한다.
사물의 원초적인 단일성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 어머니/자궁으로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은 기본적으로 미분화에 대한 욕망이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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