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섹슈얼리티, 재생산은 개인과 사회의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구조화하는 하이테크 신화 체계의 중심에 있는 행위자들이다.

신기술은 로절린드 페체스키Rosalind Petchesky(1981)가 분석한 "사유화privatization" 형식에 깊이 연루된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사유화 형식에서는 군사화, 우익의 가족 이념과 정책, 기업 (및 국가) 자산을 더욱더 사적인 것으로 정의하는 현상이 시너지를 일으키며 상호작용한다.

신기술은 기아 및 세계의 자급 식량 생산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레이 레서 블럼버그Rae Lessor Blumberg(1981)는 여성이 전 세계적으로 자급 식량의 50퍼센트를 생산한다고 추정한다.

신기술의 사회관계가 지닌 또 다른 결정적 측면은 거대 과학기술 노동력을 위한 [삶의] 기대치· 문화 ·노동·재생산이 재형식화되는 현상이다. 심하게 양극화된 사회 구조의 등장은 사회·정치적으로 중요한 위협이 된다.

사회주의 페미니즘 정치가 적절한 형태가 되려면 특권화된 직업군, 그중에서도 과학기술의 담론·과정·대상을 생산하는 과학기술 업무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문제를 상정해야 한다. 이 문제는 페미니즘 과학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과정의 한 단면에 불과하지만, 중요하다.

지배의 정보과학이 갖는 특징을 서술하는 유일한 방법은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생존을 위한 네트워크를 이루는 데 종종 실패하여 불안정성과 문화적 빈곤이 크게 강화된다는 점을 지적하는 방법이다. 이 그림의 상당 부분은 과학기술의 사회관계와 엮여 있으며, 과학기술의 문제를 다루는 사회주의 페미니즘 정치가 긴급하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이테크 문화로 형성된, 통일성이 분열되는 현상에 대한 양가감정은 우리가 의식을 "탄탄한 정치적 인식론을 정초하는 명쾌한 비판" 대 "조작된 허위의식"이라는 범주로 분류하는 대신, 막강한 잠재력을 지닌 쾌감이나 경험 그리고 역량의 출현을 섬세하게 이해함으로써 게임의 규칙을 바꿀 수 있기를 요구한다.

나의 몸과 마음은 페미니즘 운동뿐 아니라 2차 대전 이후의 군비 경쟁과 냉전에 의해서 역시 구성되었다. 현재의 패배보다 정치가 발휘하는 모순적 효과에 주목하면 희망을 품을 이유가 더 많아진다. 체제를 옹호하는 미국 기술관료technocrats를 생산하기 위해 설계한 정책이 반체제자를 양산해내기도 한 것이다.

완벽하게 진실한 언어를 향한 꿈, 경험을 완벽히 충실하게 명명하는 가능성을 향한 모든 꿈과 마찬가지로 공통 언어를 향한 페미니스트의 꿈은 전체주의적이며 제국주의적인 꿈이다. 모순을 해결하려 하는 변증법 역시 그런 의미에서 꿈의 언어다.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동물 및 기계와의 융합을 통해 서구 로고스의 체현인 (남성)인간이 되지 않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학기술의 사회관계를 통해 불가피해진, 강력하고 금기시되는 융합에서 체험하는 쾌감에 주목하면 페미니즘 과학이 정말로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들은 유기체적인 것을 옹호하면서 기술적인 것과 대립시킨다. 하지만 그들의 상징체계 및 그와 연관된 생태여성주의 및 페미니스트 이교 신앙paganism 속에 넘쳐나는 유기체주의는, 20세기 후반에 적합한 ‘대립 이념’이라는 샌도벌의 용어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들은 기계나 후기 자본주의 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사이보그 세계의 일부다. 하지만 유기체와 기계의 구분을 비롯해 서구적 자아의 구조를 만드는 깔끔한 구분선이 무너지면서 출현하는 독특한 가능성을 단호히 포용할 때, 페미니즘은 엄청난 자원을 얻게 된다. 붕괴의 동시성은 지배의 기반에 균열을 내면서 기하급수적인 가능성을 연다.

"유색인 여성"은 과학 기반 산업에서 선호되는 노동력이며 전 세계의 성 시장, 노동 시장, 재생산 정치의 만화경을 일상으로 도입하는 현실의 여성들이다. 성 산업과 전자제품 조립 공장에 고용된 젊은 한국 여성들은 고등학교에서 모집되고 집적회로를 만드는 교육을 받는다.

사이보그 정체성이란, 오드리 로드의 "생물적 신화학biomythography"인 《제이미Zami》 (로드 1982; 킹 1987a, 1987b)가 서술하는 복합적인 정치?역사적 층 속에 퇴적된 "아웃사이더" 정체성들을 융합하여 합성되는 강력한 주체성이다.

글쓰기는 식민화된 집단 모두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글쓰기는 구술 문화와 문자 문화, 원시적 사고방식과 문명화된 사고방식을 구분하는 서구 신화에서 결정적인 위치를 차지해왔고, 더 최근에는 일신론적·남근적·권위주의적·단독적인 작업, 즉 유일하고 완벽한 이름을 경배하는 서구의 남근 로고스 중심주의phallogocentrism를 공격한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을 거쳐, 문제의 이분법들이 붕괴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글쓰기의 의미가 걸린 씨름은 현대 정치 투쟁의 주요 형식 중 하나다. 글쓰기 놀이의 해방은 더없이 진지한 문제다.

페미니스트 사이보그에게 가장 결정적인 남근 로고스 중심주의 기원 설화는 글쓰기 기술 세계를 쓰는 기술, 즉 생명공학 및 전자공학 안에 구축된 채, C3I의 격자 위에서 우리의 신체를 코드의 문제로 텍스트화했다. 페미니스트 사이보그 이야기의 과제는 소통과 통신을 재코드화해서 명령과 통제를 전복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무엇보다 사이보그의 기술로, 20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글자판이다. 사이보그 정치는 언어를 향한 투쟁으로, 완벽한 소통에 대항하며, 모든 의미를 완벽하게 번역해내는 하나의 코드, 즉 남근 로고스 중심주의라는 중심 원리에 대항하는 투쟁이다. 사이보그 정치학이 소음을 고집하며 오염을 긍정하고 동물과 기계의 불법적 융합을 기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결합은 남성Man과 여성Woman을 문제 삼고 언어와 젠더를 생산한다고 상상되는 힘인 욕망의 구조를 전복함으로써 자연과 문화, 거울과 눈, 노예와 주인, 육체와 정신이라는 "서구의" 정체성이 재생산되는 구조와 양태를 전복한다. "우리"는 본래부터 사이보그가 되기로 선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선택은 "텍스트"가 널리 복제되기 이전 시대의 개체 재생산을 상상하는 자유주의 정치와 인식론을 정초한다.

서구 전통에서는 특정 이원론들이 유지되어왔다. 이 이원론 모두는 여성, 유색인, 자연, 노동자, 동물 ?간단히 말해 자아를 비추는 거울 노릇을 하라고 동원된 타자 ?로 이루어진 모든 이들을 지배하는 논리 및 실천 체계를 제공해왔다. 이 골치 아픈 이원론에서는 자아/타자, 정신/육체, 문화/자연, 남성/여성, 문명/원시, 실재/외양, 전체/부분, 행위자/자원, 제작자/생산물, 능동/수동, 옳음/그름, 진실/환상, 총체/부분, 신/인간과 같은 것이 중요하다. 지배되지 않는 주체the One이며, 타자의 섬김에 의해 그 사실을 아는 것이 자아다. 미래를 쥐고 있으며 지배의 경험을 통해 자아의 자율성이 거짓임을 알려주는 이가 타자다. 주체가 된다는 것은 자율성을 확보하고 막강해지며 신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주체됨은 환상이며 그 때문에 타자와 함께 종말의 변증법에 들어가게 된다. 반면 타자됨은 다양해지는 것, 분명한 경계가 없는 것, 너덜너덜해지는 것, 실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하나는 너무 적지만 둘은 너무 많다.

하이테크 문화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이 이원론들에 도전한다.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서는 누가 생산자이고 누가 생산물인지 불확실하다. 코딩 작업으로 구성되는 기계에서는 무엇이 정신이고 무엇이 육체인지 분명치 않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생물학 같은) 공식 담론과 (집적회로 속 가사 경제와 같은) 일상적 관행 모두의 맥락에서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이보그, 하이브리드, 모자이크, 키메라임을 깨닫게 된다. 생물학적 유기체들은 생체 시스템, 다른 기계들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장치가 되었다. 기계와 유기체, 기술적인 것과 유기체적인 것에 관한 공식적 지식에서 근본적·존재론적 분리는 없다.

페미니즘 SF에 등장하는 사이보그 괴물들은 남성Man 및 여성Woman이 등장하는 세속적인 소설과는 사뭇 다른 정치적 가능성과 한계를 정의한다.
적이 아닌 모습의 사이보그 이미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여러 결과가 생겨난다. 우리의 몸들, 즉 우리 자신인 몸들은 권력과 정체성의 지도다. 사이보그도 예외는 아니다. 사이보그 신체는 순수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우리는 부활이 아닌 재생을 요구하며, 우리를 재구성하는 가능성에는 젠더 없는 괴물 같은 세계를 바라는 유토피아적 꿈이 포함된다.

사이보그 이미지는 우리 자신에게 우리의 몸과 도구를 설명해왔던 이원론의 미로에서 탈출하는 길을 보여줄 수 있다. 이것은 공통 언어를 향한 꿈이 아니라, 불신앙을 통한 강력한 이종언어heteroglossia 를 향한 꿈이다. 이것은 신우파의 초구세주 회로에 두려움을 심는, 페미니스트 방언의 상상력이다. 이것은 기계, 정체성, 범주, 관계, 우주 설화를 구축하는 동시에 파괴하는 언어이다. 나선의 춤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지만, 나는 여신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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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에 쉬었기 때문에 총 4일간의 연휴를 보냈다.
어린이날 부모님과 식사를 했고 (예약을 했어야 하는데 가는 곳마다 자리가 없어서 결국 칼국수집으로 갔다 다행히 맛은 나쁘지 않았으나 다음에는 꼭 예약을 먼저 해야겠다)
6일에는 남편과 집 근처 중국집에 가서 탕수육에 차돌짬뽕을 먹었다.
어제는 책도 읽고 한문공부도 하고 중드도 보았다.
오늘은 낮에 남편과 탄천 산책을 하고 돈까스 집에 가서 점심을 해결했다^^;
의도치 않게 외식을 많이 한 것 같다.

<해러웨이 선언문>을 읽기 시작했다.
다락방님께서 추천해주신 포켓 필로소피 팟캐스트를 듣고 시작했는데 역시 읽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소중한 타자성이라는 개념과 fact, fiction의 구분이 그리 무 자르듯 간단명료하지 않다는 사실, 연구자의 태도(정말 공감했다)가 특히 쏙쏙 이해되었다.
아! 그리고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라는 것도.
일단 해러웨이 선언문 부분부터 읽는 중이다.
사실 서문 읽고 흠칫 놀라서 며칠을 쉬었는데 읽고 보니 서문 때문에 지레 겁먹었다는 느낌이 든다. 뒷부분이 차라리 읽기에 더 수월한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이해가 되는 건 아니고~ 어렵지만 읽어나갈 수 있을 정도인 것 같다.
간간이 어려워서 지루해지는 고비가 오는데 ‘지배의 정보과학’ 챕터까지 일단 읽었다.

<올리브 키터리지>를 완독했다.
이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상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대부터 70대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세대별로 저마다 상실의 모습은 다르지만 그 시기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실의 경험들이 뭉클한데 그것이 결국 그들의 삶에서 중요한 자양분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관점을 상대방은 다르게 바라보는 관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죽을 때까지 알기 어렵지 않을까.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특히 나는 섭식장애를 겪는 소녀가 나오는 부분에서 너무 많이 울었다. 속상했고 마음이 아팠다.
올리브의 사랑 이야기는 짠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했다.
나의 마지막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때 내 곁에 어느 누구도 없다면 그리고 죽는 장소가 내가 아는 곳이 아니면 어떡하지 두려움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고통이 길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생각했다.

<얄타의 딸들> 1부를 읽었다.
생각만큼 재밌다. 얄타회담은 3정상 간의 회담으로만 인식되어 있는데 이들이 여기까지 오는 과정과 주변 인물들의 관계를 그려놓으니 빈 공간을 채워간다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다.
나머지 2, 3부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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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5-08 21: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탄천?
반갑네요~~

거리의화가 2022-05-09 08:35   좋아요 2 | URL
무의식 중에 탄천이라고 했는데 그냥 집 근처 천이 있고 공원이 있어요^^; 이름은 송방천인데 예전에 살던 곳에 탄천이 있어서 탄천이란 용어가 잘 안 벗어나네요ㅎㅎ

그레이스 2022-05-09 08:36   좋아요 3 | URL
^^

건수하 2022-05-08 21: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탄천이라는 말에 반가워요- :)

(포켓 필로소피 내친 김에 찾아봐야겠어요)

거리의화가 2022-05-09 08:36   좋아요 3 | URL
수하님 포켓 필로소피 찾아서 들어보심 도움되실 것 같아요^^
그리고 탄천은 보시다시피 입에 붙어버려서...^^;

건수하 2022-05-09 09:00   좋아요 4 | URL
앗 그랬군요 ㅎㅎ 그래도 반가운 마음에 평소보다 용기내어 댓글을 달았답니다 :)

일단 1화 들었는데 감이 좀 잡히면서 읽을 의욕이 나네요 ^^

거리의화가 2022-05-09 09:06   좋아요 3 | URL
ㅎㅎ 수하님 저도 반갑습니다^^; 자주 용기내주셔요!ㅎㅎ 저도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친한 척 이런거 잘 못하지만 그래도 이곳 알라딘 서재분들은 좋은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팟캐스트 들으니 역시 더 낫죠~? 철학에 문외한인 저도 재미나게 들었습니다. 즐거운 한주 되시길 바랍니다!

mini74 2022-05-08 22: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사이보그선언까지 읽고 잠시 쉬고 있어요 ㅎㅎㅎ저도 팟빵 찾아듣고 더시 읽어야 할 듯 합니다 ~돈까스 맛있어 보여요~~

거리의화가 2022-05-09 08:57   좋아요 4 | URL
오~ 미니님 많이 들으셨군요^^ 팟캐스트 듣고 읽으니 역시 더 낫더라구요^^; 뭐든 배경을 깔아주고 시작하면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이 책은 한 번에 이해는 안되니 한 번은 더 봐야 할 것 같은데 시간이 허락할지 모르겠습니다ㅎㅎ
돈까스 무지 맛있었어요. 치즈돈까스라 저것만으로 배가 많이 불렀답니다ㅋㅋ

다락방 2022-05-09 09: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컴북스 이론총서 의 <도나 해러웨이> 먼저 읽고 있거든요. 잔뜩 쫄아있었는데 이거 읽기 괜찮네요. 이거 읽고나면 아마도 <해러웨이 선언문>을 좀 수월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됩니다. 으아, 이해 못할까봐 너무 쫄려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2-05-09 09:57   좋아요 3 | URL
다락방님 안 그래도 컴북스 이론총서 이북으로 받아놨어요^^; 읽는 김에 읽어보려고 하는데 일단 저는 본문을 먼저 시작했네요!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 다행입니다^^ㅎ
너무 쫄리지 않으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다락방님의 경력 정도면 충분히 읽으실겁니다! 화이팅~!

scott 2022-05-09 16: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효녀!ㅎㅎ
어린이날 부모님 모시고 맛나는 거, 행복한 추억 가득!ㅎㅎ
오월 날씨가 넘 ㅎ
좋아서
책보다 밖이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ㅅ^

거리의화가 2022-05-09 16:16   좋아요 3 | URL
효녀와 전혀 거리가 멉니다. 살가운 성격이 못되어서 매번 부모님 만나뵙고 오면 후회하곤 합니다ㅜㅜ 어버이날 하려다가 어차피 사람 많은 주간일 것 같아서 어린이날 나갔는데 역시나 사람은 똑같이 많더군요ㅠㅠ 다음에는 맛있는 거 사드려야겠다는 생각들어요~
아마도 5월 지나면 장마 또는 폭염이 오지 않을까 싶어서 이달을 만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운동하기도 좋더라구요ㅎㅎ

페넬로페 2022-05-09 20: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4일간의 휴가를 보냈어요.
즐겁게 놀고 맛있는 것 먹고~~
책은 읽지 못했는데 거리의화가님은 무척 알뜰하게 보내셨네요~~
올려주신 음식들이 다 맛있어 보여요^^

거리의화가 2022-05-10 07:23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 휴가를 아주 제대로 보내셨군요^^ 저도 이것저것하며 보냈는데 많이 먹어서 몸이 무거워진 단점이ㅋㅋ 음식들은 다 맛있었어요ㅎㅎㅎ

페크pek0501 2022-05-13 15: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4일간의 연휴에다 예쁜 꽃에 맛있는 음식까지 행복한 시간들이었겠어요.
덕분에 구경 잘했어요.^^

거리의화가 2022-05-13 23:20   좋아요 1 | URL
페크님 보기에도 좋아보여서 제 마음도 흐뭇합니다^^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이런 시간들이 더 많아져야 일상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한국어로 번역된 개념이 더 난해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옆에 원문 단어를 같이 표시해주는 게 훨 나은 것 같다.
원문이 훨씬 더 개념을 명징하게 이해해주는 데 도움이 된다.

해방은 억압 및 억압의 가능성에 대한 의식, 즉 상상적 이해의 구축에 달려 있다. 사이보그는 허구이면서도 삶 속 경험의 문제로, 20세기 후반에 ‘여성 경험’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의 기준을 바꾼다. 이 문제는 삶과 죽음을 좌우하는 투쟁의 문제로, SFscience fiction와 사회 현실을 갈라놓는 경계는 착시일 뿐이다.

이 글은 경계가 뒤섞일 때의 기쁨, 그리고 경계를 구성할 때의 책임을 논한다. 이 글은 사회주의 페미니즘 이론과 문화에 기여하려는 노력의 한 갈래이면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비자연주의의 방식으로, 어쩌면 태초도 종말도 없을, 젠더 없는 세계를 상상하는 유토피아적 전통을 따른다.

사이보그는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의 소망과 달리, 아버지가 에덴을 복원해, 즉 이성애적 짝을 제작하고 도시와 조화로운 세계cosmos라는 총체를 제공해 자신을 완성해줌으로써 자신을 구원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사이보그는 이번에는 오이디푸스적 기획 없이, 유기체적 가족 모델을 따라 설계된 공동체를 꿈꾸지 않는다.

사이보그는 추상적 개체화로 지배력을 확장한다는 "서구의" 끔찍한 종말론적 목표telos, 마침내 모든 의존에서 벗어난 궁극적 자아, 다시 말해 우주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인본주의적 의미의 기원 설화는 본원적 일체original unity, 충만함, 은총과 공포의 신화에 의존하며, 이는 남근적 어머니로 표상된다. 인간이면 누구나 이 어머니로부터 분리되어야 하는데, 개인의 발달과 역사의 발전이라는 이 과제, 강력한 쌍둥이 신화는 특히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우리에게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사이보그는 포스트젠더postgender 세계의 피조물이다. 사이보그는 양성성bisexuality, 오이디푸스 이전의 공생symbiosis, 소외되지 않은 노동을 비롯하여 부분들을 상위에서 통합해 그 전체의 권력을 최종적으로 전유하여 얻어지는 유기적 총체성을 향한 유혹과 거래하지 않는다. 사이보그는 어떤 면에서 서구적 의미의 기원 설화가 없다. 이것이 사이보그 "최후"의 아이러니다.

사이보그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넘어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신화로 출현한다. 사이보그는 인간의 둘레에 장벽을 쳐서 다른 생명체와 인간을 서로 격리하는 것을 나타내기는커녕, 거북하고 짜릿할 만큼 단단한 결합을 암시한다. 수간bestiality은 현재의 혼인 교환 주기에서 새로운 지위를 지닌다.

20세기 후반의 기계들은 자연과 인공, 정신과 육체, 자생적 발달과 외부로부터의 설계를 비롯해 유기체와 기계 사이에 적용되던 수많은 차이를 철저히 섞어버리고 말았다. 우리가 만든 기계들은 불편할 만큼 생생한데, 정작 우리는 섬뜩할 만큼 생기가 없다.

문명의 기원에 관한 서구의 설화에서 글쓰기, 권력, 기술은 오랜 공범자다. 그 메커니즘의 경험을 바꾼 것은 소형화다. 소형화는 결국 권력의 문제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이보그는 에테르ether이며 정수精髓quintessence다.

단일한 시각은 이중적인 시각이나 머리가 여럿 달린 괴물의 시각보다 나쁜 환상을 만들어낸다. 사이보그 연합체는 기괴하고 위법적이다.

"여성female"됨에는 여성을 자연스레 묶는 것이 없다. 심지어 여성"됨being"과 같은 상태가 없으며, 그 자체가 성과 관련된 과학 담론 및 사회적 관습을 통해 구성된 매우 복합적인 범주다. 젠더·인종·계급 의식은 가부장제·식민주의·자본주의라는 모순적인 사회 현실을 경험해온 우리의 비참한 역사가 강제로 떠안겨준 성과다.

지배를 통한 통일 또는 통합을 통한 통일에 대항하는 이론적·실천적 투쟁은 가부장제·식민주의·인본주의·실증주의·본질주의·과학주의를 비롯해 사라져도 별로 아쉬울 것 없는 다른 여러 주의들의 근거만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유기체적 또는 자연적 관점을 옹호하는 모든 주장의 근거 또한 무너뜨린다.

사이보그 페미니스트라면 "우리"는 자연적 통일성의 기반을 더 이상 원치 않으며 총체적 구성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해야 한다. 순수성 및 그와 결부된 피해자됨victimhood을 유일한 통찰 근거로 삼는 바람에 생겨난 피해는 이미 겪을 만큼 겪었다. 하지만 새로 구성된 혁명 주체는 20세기 후반을 살아가는 인민에게 진지하게 생각해볼 여유를 주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 페미니즘이 본질화하는 것은 노동의 존재론적 구조, 혹은 그 유비물인 여성의 활동이다. 내가 볼 때 이 입장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마르크스적 인본주의를 계승하면 지나치게 서구적인 자아를 함께 물려받게 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경우, 단일한 여성이라는 실체와 같은 것이 있다는 식으로 자연화한 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위와 같은 공식화를 통해 여성들의 통일성을 만들고자 현실의 여성들이 일상에서 감당하는 의무를 강조했다는 점에 있다.

백인 래디컬 페미니스트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는 인종 문제에 관해 당혹스러울 정도로 침묵을 지킴으로써 무겁고 파국적인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계보를 세우려는 정치적 분류법 속으로, 역사와 다음성polyvocality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여성이라는 범주, 그리고 단일하거나 총체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전체로서의 여성이라는 사회 집단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폭로하겠다고 주장하는 이들 이론에, 인종(및 또 다른 많은 것들)을 위한 구조적 자리는 없었다

이제, 특정한 성과 성 역할 개념이 유기체나 가족 같은 자연적 대상의 유기체적 속성이라는 유성 생식 이데올로기는 설득력을 잃는다.

원시나 문명 같은 개념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우리는 통제 전략이 자연 대상의 온전성integrity이 아닌 경계 조건과 인터페이스, 경계를 넘나드는 흐름의 비율에 집중될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 서구 자아의 "온전성"이나 "진정성"은 의사결정 과정과 전문가 체계에 자리를 내주었다

대상, 공간, 신체는 그 자체로 신성하지 않다. 공통 언어common language를 매개로 신호를 처리할 수 있는 적절한 기준과 코드만 있다면, 모든 구성 요소가 인터페이스를 매개로 접합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세계의 교환은 마르크스가 그토록 잘 분석한 현상, 즉 자본주의 시장이 모든 것을 화폐로 교환할 수 있게 만들면서 도입한 보편적 번역의 한계마저 초월한다. 이 우주의 모든 구성 요소에 영향을 주는 특권적 병은 스트레스, 즉 소통의 실패다 (호그니스Hogness 1983).

사이보그는 해체되고 다시 조립되는, 포스트모던 집합체의 일종인 동시에 개인적 자아이다. 이것이 바로 페미니스트가 코드화해야 하는 자아이다.

정신과 육체, 동물과 인간, 유기체와 기계, 공과 사, 자연과 문화, 남성과 여성, 원시와 문명 등에서의 이분법은 하나같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의심스럽다. 여성들이 실제로 처한 상황은 지배의 정보과학이라는 생산/재생산과 커뮤니케이션의 세계 체제 속으로 통합/착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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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과 새마을 - 동아시아 냉전의 연쇄와 분단국가체제
허은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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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냉전 시기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곳은 어디일까.
전 세계가 그 영향을 받았겠지만 특히 동아시아 지역은 여러 정부를 거치며 오래 지속되었다고 본다.
특히 한반도는 동족 간의 전쟁 이후 냉전의 고리 속에 철저히 얽혀 분단체제를 이어갔고 이념 전쟁은 민족 간에 뿌리 깊은 증오와 불신을 남겼다.
정부는 냉전을 안보 전쟁으로 철저히 이용했는데 이는 현 정치와도 무관하지 않기에 탄식하며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식민지배와 분단, 이어진 전쟁에서 정부의 정치적 방향을 바탕에 따른 민중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구체적으로는 1930년대 만주국 터전에서부터 1970년대 한국의 농촌까지, 말라야 신촌에서 남베트남 신생활촌, 한국의 새마을까지 이어지는 연쇄적 역사를 담고 있다.

박정희 정부가 세운 1972년 분단국가체제는 동아시아 냉전의 근대화 원리를 구현한 체제였다.
그렇다면 '1972년 분단국가체제'의 특성은 어떠한 것인가.

첫째, 만주국 반만항일세력은 전후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을 진압하고 베트남 전쟁 평정에 참여한 세력이었다.
1930년대 일제는 만주국을 제국팽창의 최전선이자 방공의 최전선으로 만들기 위한 곳으로 집단부락을 대대적으로 건설했다. 집단부락은 '비민분리'를 통한 인구 통제, 중층 감시체계를 통한 자위대 운영, 집단 부락을 안정시키기 위한 농촌부흥 모색까지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의 원형을 담고 있는 공간이었다.
일제 시기 친일부역자들이 그랬듯이 만주국군은 전후 방공전사로 거듭나며 친일행위를 지우고 만주국에서의 집단부락 건설의 경험을 제주도에 그대로 이식시켰다. 만주군 출신 지휘관들이던 지리산 공산유격대 토벌군들은 만주에서의 대유격전 원리를 원용하여 군사 전략과 대민정책에 적극 활용하였다.
대표적 냉전 전사였던 박정희, 박창암, 박임항 등은 5·16 쿠데타 사건으로 집결하였고, 이들은 남베트남에 군사사절단을 파견하여 한국군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할 수 있는 가교를 만들었다.

둘째, 5·16 쿠데타로 동아시아 냉전의 연쇄에 능동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군정 세력이 집권하면서 한국사회는 진영대립 구도에 갇히게 되었고 남북문제와 근대화 노선을 모색할 가능성도 차단되었다. 거기에 군사력을 이용한 민주적 통제 기회 마저 사라졌다.
한국은 베트남전에 개입하면서 한국군 관할지역에 신생활촌을 건설하고 자매결연 관계를 수립하는 등 이전의 공작 경험을 그대로 이곳에 이식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남베트남 정부는 자위 자치 자체개발과 협동정신을 강조하고, 농촌 재편정책을 도시로 확대하는 방침을 추진했다. 박정희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새마을 운동을 통해 실체를 구현하였다.
여기에 미국의 역할을 빼놓을 수가 없다. 동아시아 냉전의 흐름에 대처하기 위해 케네디 정부는 한국에 적극적인 '대민활동' 지원을 통해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전투병을 파견하기 전 준비과정으로 삼았다.

셋째, 박정희와 친위세력이 국내외 변화를 인민전쟁 위협론으로 몰아부치며 영구집권을 추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1960년대 냉전질서는 다극화 경향을 보였고 미국이 중국에 대한 정책을 변화시키면서 한국 정부는 안보에 우려와 불신을 보였다. 정부는 1967년 9월 국가안전보장회의 이후 기존 안보 관련법을 검토한 뒤, 1968년 1·21 사태를 계기로 비상대권의 확보와 지도자 영도론을 부상시켰다.
그들은 1969년 개헌반대에 직면하여 이를 뒤로 미루었으나 1971년 특별조치법 제정과 1972년 유신헌법 선포를 거치며 이를 완결시켰다.
당시 여론은 안보를 문제로 민주주의 체제를 약화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공화당 내에서도 새 안보 프레임에 반대하는 견해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1971년 중국의 유엔 가입, 미국의 대중국 데탕트 정책 전환, 남북대화에 대한 한국사회의 반응을 박정희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로 바라보았다.

넷째, 비인간화 정책을 지속하는 체제, 전근대적 지배원리를 변용한 지배체제였다.
당대 지식인들은 공업화에 치중한 경제성장 제일주의 노선의 폐해를 지적하며 제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주장하였으나, 정부는 국민의 정신개조 측면을 강조하며 '국가안보제일주의', '경제성장제일주의' 양 노선을 추진하는 방안으로 내세웠다.
민주화 운동 세력은 전태일의 분신, 광주대단지 사건을 통해 비인간화를 초래하는 근대화 노선을 비판하며, 사회 경제적 민주주의의 확립을 통한 안보를 주장했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와 군은 북의 위협의 불변함을 강조하며 전 국민이 이에 대비하는 주체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냉전의 새마을'을 건설하기 위해 박정희 정부는 '대공새마을'로 불린 지배체제를 수립했다. 서로를 감시하는 체제로 마을 이장, 새마을지도자, 농협 이·동 총대를 배치하고, 이장과 반장에게는 민방위 책임을 맡겨 안보와 개발을 총괄하는 책임을 맡겼다.
이 지배체제는 중층적 감시체제 속에 '내부 적'으로 분류된 이들은 죽어서도 감시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고,이념 문제가 아닌 정신질환 등의 사람들을 순응하지 못하는 인물로 바라보며 잠재적인 내부의 적으로 분류하였다.
과거의 연좌제를 답습하여 그야말로 변용시켰다고 할 수 있다.

새마을운동 세대는 아니지만 어릴 적 새마을운동가를 나도 모르게 따라불렀던 기억이 난다.
국민학교 때 반공포스터를 그리면서 한반도가 나뉘어 있고 북한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는 교육을 받았다.
중 고등학교 때는 교련 수업을 받았다. 받으면서도 '대체 이걸 왜 하는거지?'라는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으나 그냥 잡혀 있는 수업이니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아이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교육이 아닐 수 없다.
마치 국민을 반공전사로 키워내듯 교육시키는 시대였다고 생각된다.

경제성장 제일주의를 내세웠던 박정희 정부는 역설적으로 국민을 불신하고 주체가 아닌 동원의 대상으로 바라보았으며 개인의 인권과 생명을 위험에 빠뜨린 체제였다.
이 체제는 박정희 사후에도 신군부 세력에 그대로 이관되었고, 광주항쟁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신군부는 민주항쟁을 '반란' '소요'로 규정하고 왜곡하며, 자신들의 국가반란 행위를 정당화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를 두고 보지 않았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일어났다.
6월 항쟁은 국민을 불신하고 적으로 두는 정부를 향해 칼을 겨눈 이들의 역사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는 현재의 역사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만주국 체제가 박정희 분단체제에 이식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언급된 추가 자료들 중 읽을 책들을 몇 권 꼽아놓았다. 시간이 된다면 읽어봐야겠다. 



올해로 1972년 유신체제 등장 50주년이 되었다. 이 뿌리 깊은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것은 언제쯤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과의 관계는 다시 틀어지게 되었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전 세계에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럴 때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와의 외교는 더욱 중요할 것이다.

다만 이제 곧 새 정부가 들어설텐데 안보의 위기를 불안감으로 조장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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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5-07 0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새마을세대
저 시골 살아서 국민학교때는 아침마다 저 노래소리 들리면 동네 공터에 가요. 그러면 거기 동네 애들이 다 모이고 그럼 6학년 오빠가 든 깃발 아래 모두 줄서서 학교 갔어요. 아 진짜.... ㅠㅠ 고등학교 교련수업에 이걸 왜하지라는 의문조차 못품었던... ㅠㅠ 근데 초반에 만주국 출신들을 반만항일세력이라고 얘기하는건 어떤 의미에거 항일이라고 하는건지 좀 궁금하네요. 제가 알기로 이지역 광복군은 이름만 광복군이지 일제 패망 이후 박정희같은 만주군출신 한국인들이 재빨리 광복군으로 갈아탄것으로 알고있거든요. 그래서 실제 항일과는 관련이없을뿐 아니라 오히려 광복군의 이름을 도둑질한거나 다름없다고 알고 있는데말이죠.
 

방공전사에서 냉전전사로, 이식과 학습


<Ref>
국공 내전 상황 속에서 만주지역 한인의 귀환과 정착 상황 -> 귀환과 전쟁, 그리고 근대 동아시아인의 삶
만주국: 식민지적 상상이 잉태한 복합민족국가(윤휘탁)

- 간도특설대 대표인물
홍순봉, 신현준, 백선엽, 박정희, 이주일
김백일, 김석법, 임충식
김동하, 이동화, 송석하, 이용, 박춘식

1945년 8월 소련의 개전과 만주국의 급격한 붕괴 그리고 뒤이은 국공내전 등 만주 지역에서 급변한 상황은 민족갈등을 억눌렀던 ‘오족협화‘라는외피와 물리적 강제력을 일시에 제거해버렸다. 여기에 친일파 청산과 이념적 대립이 맞물리며 만주 지역은 혼돈 상태로 빠져들었다. - P83

중국 공산화 이후 국내 언론은 공산화의 위협을 소련이 공산화를 담당한 한국 및 일본의 ‘동북루트’와 중국이 공산화를 담당한 동남아 일대의 ‘남부루트’로 크게 나누어 설명했다. - P93

당시 제주도에서 무장대의 전술은 중공군의 유격전법이라는 주장이 분명한 근거 없이 언론에 의해 유포되었는데 정일권과 예관수 역시 이러한 주장을 폈다. 제주도 무장대가 팔로군 출신자로부터 훈련을 받았다는 주장은 이후 육군이 정리한 ‘공비토벌사‘나 백선엽과 같은 개인에 의해 반복되었다. - P95

비민분리공작이 벌어지는 지역의 주민이 직면한 현실은 엄호하기 그지없었다. 여순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나며 유격전이 자리를 잡는 경향을보이자, 이승만 정부는 유격전이 벌어지는 곳에서 지역주민의 전면적인 소개와 집단부락 건설이라는 대책을 세웠다. 1949년 오대산, 태백산 지역으로 남파된 ‘인민유격대‘를 토벌하기 위해 발족한 ‘태백산지구 전투사령부는 산간마을을 소각하고 50호 단위의 집단부락을 도로변에 건설하여 지역주민과 유격대와의 접촉을 근절시키고자 했다. 전투사령부는 집단부락 건설이 진전되지 않자 단기간에 건설을 완료하도록 강요하며 위반자를 ‘공비로 간주하는 정책을 취했다. 마을을 초토화하고 강압적으로 집단부락을건설하는 정책은 지역 민심을 들끓게 만들었고 지역 국회의원들의 요구로 국회 조사단이 현지 조사를 벌여야만 할 정도였다. - P105

1948년 제주4·3사건 및 여순사건 이후 남한 각지에서 유격전 전개, 38도 도선 군사 충돌, 미군 철수 논의 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1948년 11월 린뱌오(林)가 이끄는 중국 공산당 인민해방군이 만주 지역을 장악하며 전세의주도권을 쥐는 양상으로 내전이 전개되자, 군과 민간에서 국방국가체제 수립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 P114

‘국제적 위기‘를 국방국가 건설과 직결시키고 국민 사생활의 지배를 국방국가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요시토미 시게오의 논의는 중국의 공산화를 위시한 공산진영의 확장을 위기의 주요인으로 강조하며 국민생활의 말단까지 침투하는 ‘국민조직‘을 국방국가체제의 근간으로 삼아야한다는 이소의 설명 구도와 차이가 없다.
일제의 국방국가론의 핵심적인 내용은 국방국가체제의 완비를 위한 강력한 정치의 실현이었다. - P120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서 진영대립 구도의 고착화는 사상적인 측면에서일제의 국방국가론이 부활하는 양상을 낳았고, 조직적인 측면에서는 만주국 전시 국민동원체제가 부활하는 양상을 낳았다. 만주국이 보갑제를 전시동원체제의 주요한 기제로 삼았던 것처럼 이승만 정부도 보갑제를 행정 말단 조직인 국민반, 경찰보조 조직인 민보단, 그리고 자위조직인 자위대의운영과 결합했다. 만주국에 걸쳐 있던 방공전선이 남한으로 이동하자 보갑제가 남한 사회를 망령처럼 배회하기 시작했다. - P121

1951년 4월 국회에서 국민방위군 해체 법안이 통과되자, 이승만은 국민방위군 해체를 지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이승만의 수족과도 같은 한청이 준군사적인 역할에서 배제됨을 의미했다. 전쟁을 거치며 우익 청년단이 지역사회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이승만 정부는 굳이 향토방위 조직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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