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푸른 눈의 증인 - 폴 코트라이트 회고록
폴 코트라이트 지음, 최용주 옮김, 로빈 모이어 사진 / 한림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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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배제, 편견은 사건을 감추고 왜곡하며 원하는 그림으로 조장한다.

1980년 광주는 20대 이전까지만 해도 내게 희미한 존재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TV와 언론에 비춰진 당시의 광주는 폭도들의 봉기가 일어난 위험한 도시였다.

이 책은 5.18 40주년이 되던 2020년 5월 1일 발간되었다.
작가인 폴 코트라이트는 당시 평화봉사단으로 파견되어 있는 상태에서 광주 상황을 목격하였다.
(그는 당시 광주에서 30여분 정도 떨어진 나주의 한센병 환자 정착촌인 호혜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 이전에는 나주 보건소에서 1년 반을 일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 독일 외신기자인 위르겐 힌츠페터는 현장 사진과 보도로 우리에게 알려졌지만 외국인이 쓴  회고록은 이 책이 최초라고 볼 수 있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일종의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는 행위이며 사건에 대한 솔직한 나의 목소리가 더해질 것이다. 문제는 당시 내가 목격했던 사건의 시작과 끝을 정확히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건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는 그 역사를 내가 어떻게 전부 증언할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꼈던 것만을 말하는 것이다. - P14

그는 5월 14일 비무장지대와 가까운 강원도에서 평화봉사단 건강 교육을 마치고 서울로 온다.
평상시와 달리 평화봉사단 건물 근처 도로를 학생들이 점거한 채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한국에 온 후 나는 단 한번도 위험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한국은 사실상 강력범죄가 없는 나라였다. 지금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장면도 안전을 위협하지는 않았다.  - P17

제3자의 눈에서 본 한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외부인이지만 그는 당시 한국에 들어온 지 2년 정도가 지났기에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였다.
다만 외부인이기에 한국의 내부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10.26 사태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신군부가 들어섰기에 국민에 대한 감시와 압제는 여전했으나 외국인이었기에 서울 시위를 보고도 위협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광주 현장에서 만난 한 할머니의 당부 때문이었다.
알려진 바대로 당시의 광주는 철저히 외부에서 고립되었고 방송과 언론에서는 전두환 정권에 구미에 맞는 보도만 내보내고 있었다.
광주는 외부와의 연락선도 끊겼기에 지인이 있다고 해도 연락하기 어려웠고 내부의 사정을 알기에 어려웠다.

"미국인인가요?"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봤지요?"
"지금 당신은 우리를 대변해주어야 해요."
"한국 사람들은 지금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없어요. 미국인인 당신이 증인이 되어 우리를 대신해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의 사정을 알려 주세요."
내가 목격한 이 사태가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내 의사와 관계없이 나는 이미 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 답은 더듬거렸고 나는 이 소극적인 대답을 속으로 자책했다. - P70

할머니는 광주의 상황을 외부에 알려달라며 애원하였다.

광주를 떠나라는 상부의 지시가 내려왔지만 평화봉사단원들은 위험을 감수한 채 그곳에 남기로 한다.
폴 코트라이트, 팀 원버그, 주디 챔벌린, 데이브 돌린저는 위르겐 한츠페터를 비롯한 외신 기자들에게 광주의 상황을 통역했다.
구타당하는 민간인을 목격하면 보호하고 병원으로 이송시키는 작업을 하는 등 평화봉사단원들은 비폭력적 개입을 통해 미국인들의 위상을 높이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현장에는 1980년 타임지 사진 기자로 한국에 왔다가 광주민주항쟁 소식을 듣고 광주로 향한 로빈 모이어도 있었다.
그가 촬영한 광주항쟁 사진은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데 처음 공개되는 사진들이라고 한다.

그를 비롯한 평화봉사단원들은 군인이 민간인을 구타하고 살상하는 모습을 똑똑이 지켜보았다.
평화봉사단원은 한국인과 정치적 문제로 토론을 하거나 정치 상황과 관련된 행동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그들은 시민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주체였으나 점차 다양한 계층의 범위로 항쟁은 확대되었다.

여기 작은 도로에서 그 요구와 분노는 학생들을 넘어서 놀랍게도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하고 근면한 집단이었던 '할머니'와 '아주머니'로 확대되고 있었다.
이들은 현재의 암담한 상황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으면서도 마주치는 군인들을 향해서 '부끄러운 줄 알라'고 당당히 외치고 있었다. 나는 이 사람들을 꼭 안아주고 싶었다. - P68

5월의 봄은 잔혹한 피로 물들었다.
그는 안치된 시신들을 보면서 분노하고 군과 정부가 민간인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모습에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충격과 혼돈에 빠진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괴리감이 느껴졌다. 거짓말처럼 사람의 그림자는 없었다. 마치 영혼들이 이 지역을 접수한 것 같았다. 5월의 태양은 여전히 따뜻하게 나를 비추고 있었고, 새는 지저귀고, 은행나무이 여린 잎은 바람에 팔랑이고 있었다. 과연 누가 여기에 있었던 이 일을 목격했을까? 육신 없는 영혼들은 이 장면을 증언하지 못할 것이다. - P97

그는 다시 호혜원으로 돌아와 마을 지도자를 만났는데 자신에게 온 편지를 발견하고 놀란다.
'보호'대상이 된 그는 군인 한 명이 배치되어 그동안 감시를 당해왔다는 것이다. 마을 지도자는 그의 행적을 군사당국에 보고하라는 지시까지 내려졌다.
한달쯤 후 정확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국의 군사정부가 광주에 머물며 외신 기자들의 통역을 맡았던 그들을 추방할 계획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평화봉사단 책임자가 사실 증명을 요구하며 완강히 버틴 끝에 그는 다행히 한국에 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외국인이었지만 결코 광주 항쟁에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미국의 국민이었다.
때문에 이 상황은 그를 내내 괴롭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할머니와 했던 약속을 뒤늦게 이렇게라도 지키는 것은 부름에 대한 응답이었다고.

1980년의 미국은 한국과 한국인을 실망시켰다. 나는 이 책을 쓴 미국인으로서 미국인과 한국인이 우리 공동의 역사, 공동의 열망, 나아가 공동의 고통을 서로 더 잘 이해하기를 바란다. - P182

평화봉사단원, 외신기자들을 비롯해 광주를 위해 나서준 외국인들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어제 5.18 기념식이 열렸다.

보수 진영 정당 포함 1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하는데 통합을 강조한 정부가 말 뿐이 아니라 광주 정신을 계승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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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5-19 10: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어제가 5.18. 이었군요. 정신이 없어서 몰랐었네요. 외국인이 썼기 때문에 내용이 더 신빙성 있고 객관적인거 같아요~!! 제발 통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05-19 10:42   좋아요 5 | URL
네^^ 매년 기억할 날이 늘어난다는 것이 기쁜 일로 기억이 되면 좋을텐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지만. 사건을 왜곡하려는 세력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우리는 매년 끊임없이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건 당시 광주가 고립된 상황에서 광주의 현장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외부로 나가야 했을 때는 도로가 다 봉쇄되어 있었기 때문에 산길을 타고 자전거로 이동해요. 길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이고 감시당하거나 위협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탈출이 쉽지 않았을텐데 그 상황이 리얼하게 묘사되요. 서울로 다시 올라가야 했을 때는 나주의 택시 기사가 도움을 주어 봉쇄된 바리케이트를 몇 차례나 거치면서 무사히 탈출하구요.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 상황이 혼란스럽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청아 2022-05-19 10: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21세기에는 이런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자국민에게,이웃 나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네요. 언론통제라는것의 무서움도 실감하게 해주는 사건이었죠. 저도 어릴때 아버지가 몰래 구해오신 사진들보고야 알았어요.

거리의화가 2022-05-19 11:03   좋아요 5 | URL
네 맞습니다 미미님. 현재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라는 게 믿고 싶어지지 않죠ㅠ
종교, 이념 등의 갈등이 점점 더 커지고 필리핀처럼 이전 독재자였의 아들이었던 사람이 다시 재집권하기도 하는 등 세계가 왜 이렇게 극단으로 치달을까 걱정스럽습니다.
광주는 통제로 인해서 고립되었다고 생각해요. 언론과 정부가 광주를 통제하지 않았다면 전국으로 시위가 확산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모님이 경상도 분들이라 광주에 대한 왜곡과 편견이 강했어요. 이런 의식들을 보고 자란 우리 세대들이 왜곡된 시선을 갖지 않도록 더욱 지금의 현 세대들에게 제대로 된 의식을 계승시켜주어야 할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2-05-19 16: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직접 현장에서 목격하고 참여했던 일이라 더 생생하게 글이 씌어 있겠어요.
어제가 5,18이었는데 임을 향한 행진곡을 불렀더라고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05-19 16:10   좋아요 3 | URL
네. 첫날은 지인을 통해서 들었지만 나머지는 다 목격한 일이라 생생했어요. 군인들이 총부리를 겨눌 때 여러 번 분노가 끓어오르고 질러버리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구요. 다만 봉사단 규정상 그렇게 되면 자신 뿐 아니라 봉사단 인원 모두에 피해가 가니까 참을 수 밖에 없었겠죠.
저도 임을 향한 행진곡 제창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과연 남은 임기동안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어제처럼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희망이 절망이 된 경우가 많았던지라-_-;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mini74 2022-05-19 16: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잘 먹고 잘 살다 죽고, 그 일가들 부를 누리며 살고....제가 사는 동네에선 그래도 그 인간이 잘했다 의리있다 이런 헛소리나 하고....그 지역 예산을 확 깎는다는 기사가 떴더라고요. 발췌글만 읽어도 마음이 참 ㅠㅠ대학시절 몰래 영상 보고 정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저 빨갱이들과 간첩을 때려잡았다는 걸로 배웠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거리의화가 2022-05-19 17:01   좋아요 2 | URL
네 미니님 대구, 부산을 비롯해서 경상도 지역이 학생운동도 많고 새로운 기치를 들고 많이 일어서던 곳이었는데이제는 전라도와 경상도 색깔정치가 너무 짙어져서 통합과 협치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해도 광주항쟁은 결코 색깔론으로 붙일 수 없는 사건인데 그걸 색안경을 끼고 보니 참 할말이... 저도 그런 교육을 받고 자라서 정말 한참 후에 진상을 알고 얼마나 놀랬던지-_- 제대로 된 교육이 참으로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2-05-20 09: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보여주는 아이러니!
우리의 현실인듯요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ㅠ

거리의화가 2022-05-20 08:48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서로 다른 의견으로 갈등할 수는 있지만 이를 하나로 합하기 위해 조장하려는 세력이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 다양성을 용인하는 태도가 많이 부족하다 싶은데 이는 이전의 역사에서 받은 영향이 큰 듯합니다. 점차 나아져야 할텐데 말이죠.
 

이달 구매한 책들을 공유해본다.
당일 배송이 아니고 출고일이 며칠 걸리는 것들이 있어서 아무래도 다 도착하려면 주말이나 되어야 할 것 같기에 책탑은 후에 공유할 것 같다.
가격들이 나가는 책들이 있어서 음... 무리한 것 같지만 뭐 읽으면 되지 생각하며^^;
책 욕심은 끝이 없다.





<파친코>를 읽으면서 재일조선인에 대한 위치와 그들의 삶과 내면, 생활 공간에 대해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작년 말 발간한 사전으로 기존에 발간된 <친일인명사전> 처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드는 총서 4번째에 해당한다.
사전이라 역사 연구자나 전문가들이 참고할 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독자의 상상력에 따라 공부의 범위를 확장시켜줄 수 있는 책일 거라고 예상해본다.
1895년부터 1945년까지 시기를 대상으로 하였고 재일조선인 단체 뿐 아니라 친일 단체 등 일본에 있었던 조선인과 관련된 단체들이 총망라되어 있다고 보면 되겠다.


미니님 서재에서 보고 이거다 해서 찜해놓은 책이었다.
애시당초 품절된 책이라 중고를 알아보았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나쁘지 않아서 겟했다!
꽤 오래된 책이라 시간이 지나서 상태는 썩 좋지 않고 책 내부가 칼라로 되어 있어서 뜯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봐야할 것 같다.
잠깐 봤는데도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아 기대가 된다.


최근의 국제 정세를 보며 예전에도 그랬지만 중립지대란 점점 더 기댈 곳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소냉전으로 나뉘어진 극한의 대립 시기가 있었는데 한참이 흐른 현재도 세계는 이기주의와 인종,자국 강화주의로 점점 무장하는 형국이다.
최근 <역사비평>과 <역사문제연구>에서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있는 분단 이후 제3세계의 중립 모색을 보면서 미뤄두었던 최인훈의 대표작을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으로 인한 인명/영토 피해, 물가 폭등, 기아, 난민, 바이러스 등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현재를 진단하기 위해서라도.



동아시아라는 개념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이 책은 동아시아가 서구 유럽 중싱의 시각으로 본 개념으로 보고 이 시각을 거부, 새로운 시각으로 한중일의 역사를 바라보자는 의도로 쓰여졌다.
기존에 동아시아사는 자체적 시선보다는 외부에서 바라본 시선으로 쓰여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책은 동아시아 현대를 연 사건으로 임진왜란과 만주의 흥기를 들고 있다.
임진왜란은 많이들 알려졌지만 국제전으로 비화되었고 변방이라 생각했던 만주족은 점차 세력을 키워 중원의 핵심으로 성장해 청나라를 건국하게 된다.


출판사 알림신청 메일로 발간된 것을 알게 된 책이다.
너머북스 출판사는 역사 분야에서 좋은 책들을 꾸준히 내주고 있는지라 신간이 나면 항상 눈여겨본다^^;
요사이 경계라는 단어에 꽂혀 있는데 이 책은 중국 연변 조선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고찰했다고 보면 되겠다.
두만강 국경에서 한중일 세 나라의 근대가 태동했다고 보고 있는데 그 근거가 되는 자료들을 담고 있다.


잊혀진 재미예술가로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차학경 기사를 서재에 올린 적이 있다.
이 글을 보고 서재친구분께서 <마이너필링스>란 책에서 차학경이 거론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었고 이후에도 간간히 서재에서 언급되는 책이라 찜해놓았다.
캐시박홍의 자전 에세이로 차별이 내면화되면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섬세하게 다루었다고 한다.
차별도 경계 짓고 구분 짓는 것의 다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찬가지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해서 이번에 주문했다.



<냉전과 새마을>을 보면서 주석에 포함되어 있던 책들이다.
군은 한국현대사에 여러 모로 너무 깊숙이 관계되어 있다. (북한도 마찬가지)
아무래도 전쟁을 치루고 난 이후의 앙금들이 남아 있고 이념 갈등을 분열로 조장하는 정치 세력의 선동까지 이어지면서 안보는 한반도에서 뗄 수 없는 단어가 되었고 군은 자연히 이어지는 존재가 되었다. 북한 현대사는 2~3권 정도의 책을 읽었던 것 같은데 와다 하루끼의 책은 읽어본 적이 없어 포함시켰다.



스콧님, 미니님 서재에서 보고 찜한 책.
최초의 여성주의 화가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제야 아르테미시아를 알게 되다니 나는 이다지도 무지하단말인가.
아르테미시아는 17세기 여성 화가라는 이름 자체가 생소할 때 그림을 그리고 붓질을 했다.
보통 여성 화가는 남성 작가의 조수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는데 아르테미시아도 그런 절차를 밟았고 이 때문에 강간 피해를 입게 된다.
재능을 가졌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편견과 차별, 무시 속에 수많은 좌절을 겪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아르테미시아는 그렸고 그려냈다. 그녀의 그림은 단숨에 나를 사로잡았다.



미니님 서재에서 보고 찜한 책이다.
여성 예술가들의 활동은 있어왔지만 무지, 편견과 차별, 폭력 속에 잊힌 이름들이 되었다.
예술을 보는 눈을 키우고 싶어서 예전 집에 살 때는 전시회가 있으면 찾아가곤 했다.
음악이란 장르도 그렇지만 보는 눈을 키우려면 자주 들여다보고 찾아볼수록 좋다는 생각을 한다.
여성 예술가들의 이름을 찾고 싶어서 이 책을 샀다. 여성 예술가들의 더 많은 이름들이 찾아지길 바라며...



쿠폰과 적립금을 쓰기 위해서 이것도 주문했다. 
어차피 이달의 커피도 주문해야 하니...ㅎㅎ 근데 지난달 것도 아직 다 못 먹었다. 
코스트코에서 산 커피가 아직 남아서ㅠㅠ 

신맛이 덜하다고 해서 샀는데 어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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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5-17 2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책들을 구비하셨네요^^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계속 역사책 읽어 나가시는 모습이 멋져요**

거리의화가 2022-05-18 09:09   좋아요 2 | URL
네 페넬로페님^^ 아무래도 관심분야 책은 그득한 리스트들이 있어서ㅠㅠ 보관함의 책들이 아직도 몇백권이에요ㅜ 장바구니 비우기도 쉽지 않고ㅎㅎ 벼리면서 구매하는 중입니다^^*
역사 분야는 열심히 읽어나가고 있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새로운 것들이 많아서 늘 신선합니다!ㅎㅎ 응원 감사드립니다^^

mini74 2022-05-17 21: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이야기동양신화 ㅎㅎ 북한현대사 궁금합니다 예전 동독출신분이 어릴 적 북한제 신발 신었었다고 하더라고요. 화가님 다양한 책들 즐겁게 읽으시길 *^^*

거리의화가 2022-05-18 09:16   좋아요 1 | URL
ㅎㅎ 미니님 덕분에 이번 달 책 많이 겟했어요!^^ 북한현대사 읽고 후기 공유하겠습니다. 북한현대사 개괄서 정도만 읽은지라 좀 더 다양하게 읽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서 읽어보려구요^^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2-05-17 22: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니님이 문제인걸로~!! 화가님 많은 책을 업어 오셨군요 ^^ 책 욕심은 왜이리 끝이 없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역시 역사 하면 화가님 입니다 ^^ 책탑 사진도 기대가 됩니다 😁

거리의화가 2022-05-18 09:20   좋아요 2 | URL
막판에 역사 분야 이외의 책들이 많이 들어갔네요^^ 품절이나 절판될까봐 미리 사두는 경우가 많아져서 책 구입이 늘어만 가네요ㅋㅋ 책탑 사진 후에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소설 많이 읽으시는 새파랑님 덕분에 저도 대리만족하고 있어요 화이팅!
 
파친코 2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태어난 곳이 고향이자 조국인 것이 무슨 의미일지 생각했다.

내 출신을 말하는 것이 불이익이 된다는 것을 안다는 것.
조롱과 멸시, 차별이 일상인 공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일본 뿐 아니라 원치 않게 타국에서 살아남아야 한 조선인들을 떠올려본다.
원하는 곳에 취업조차 할 수 없고 몇 가지 제한된 일에 얽매여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때론 분노가 때론 답답함을 일으키게 했다.
내가 살기 위한 땅을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창호가 선택한 북한, 피비가 있는 미국, 선자 가족들이 뿌리내린 일본.
그들이 뿌리내린 그곳에서 그들은 어찌되었든 살아남으려 했다.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을 꼽아본다.

노아가 친부의 정체를 알기 전 와세다 대학에서 교수와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내가 대학을 선택할 때가 떠올랐다.
집안 형편이 어렵지 않았다면, 내가 반항기가 조금 더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버지는 내가 대학조차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었다. 여자가 공부를 해서 뭐하느냐면서 돈이나 벌라고 했었는데 그 말이 너무 상처가 되었다. 그렇지만 대학은 들어가고 싶었다.
성적에 맞춰 장학금을 받는 것이 가능하고 빠른 취업이 가능한 곳을 선택해야만 했다.
결국 부모님이 원하는 길을 선택했으나 내내 후회가 되었다.

선자가 유미를 끌어안아주는 장면이 있다.
유미는 자신을 내팽개친 엄마를 용서하지 못했는데 그런 그녀를 선자가 고생했다며 끌어안는다.
그리고 모자수는 유미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녀가 모자수 곁에 더 오래 머물렀다면, 아이인 솔로몬과 함께 더 단란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비록 가정이라서 마음이 아프지만 그럼에도 선자가 유미를 끌어안아줌으로써 이후의 비극이 그리 슬프지는 않았다.

솔로몬이 14살이 되어 거주증을 받으러 간 장면이 있다. 모자수는 이 거주증을 개목걸이로 표현한다.
관청 직원은 외국인 이민 규정 기록으로 중요한 것인데 모욕적으로 생각하면 안된다는 말을 시니컬하게 내뱉는다.
1952년 이후 일본에서 태어난 조선인들은 14살 생일이 되면 지방 관청에 가서 거주 허가증을 받고 3년마다 거주증을 갱신해야했다.
솔로몬 뿐만 아니라 조선인들은 모두 이런 취급을 받았을 걸 생각하니 분노가 끓어올랐다.

솔로몬이 에쓰코 아줌마를 엄마라고 불러주는 장면이다.
에쓰코는 이전 결혼에서 낳은 자식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솔로몬은 그런 에쓰코를 진정으로 위로한다.
그리고 그런 솔로몬을 에쓰코도 꼭 안아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피비와 솔로몬의 갈등이다. 피비의 말은 구구절절 맞는 말 뿐이다.
피비는 자신의 미국 친구들에게 일본은 인종 편견이 가득한 곳이라고 했고 솔로몬은 피비가 일본에 갖는 인식이 부정적이고 일본에 사는 조선인의 역사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한반도 분단 이후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은 북한 또는 남한을 선택해야 했다. 그들이 일본인이 된다는 것은 어려웠다.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식민지인들이 피식민자 국민이 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갈등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결국 자신이 뿌리를 내리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닌지.


삶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이삭은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의도한 바다라고 이야기했고 모자수는 파친코 게임처럼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 했다.
삶은 예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어쩌면 고통일 수도 있다.
하긴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면 내가 하는 노력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 줄 수 있겠는가.
분명한 것은 자신의 삶은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그 불쌍한 아이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거야."
"잘 들어,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이 나라는 변하지 않아. 나 같은 조선인들은 이 나라를 떠날 수도 없어. 우리가 어디로 가겠어? 고국으로 돌아간 조선인들도 달라진 게 없어. 서울에서는 나 같은 사람들을 일본인 새끼라고 불러. 일본에서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무리 근사하게 차려입어도 더러운 조선인 소리를 듣고, 대체 우리 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굶어 죽거나 공포에 떨고 있어." - P220

"미국에서는 강꼬꾸징韓國人이니 조센징朝鮮人이라는 게 없었어. 왜 내가 남한 사람 아니면 북한 사람이 돼야 하는 거야? 이건 말도 안돼! 난 시애틀에서 태어났어. 우리 부모님은 조선이 분단되지 않았을 때 미국으로 갔고. 왜 일본은 아직도 조선인 거주자들의 국적을 구분하려고 드는 거야? 자기 나라에서 4대째 살고 있는 조선인들을 말이야. 넌 여기서 태어났어. 외국인이 아니라고! 이건 완전 미친 짓이야. 네 아버지도 여기서 태어났는데 왜 너희 두 사람은 아직도 남한 여권을 가지고 다니는 거야? 정말 이상해." - P314

선자가 그리워하는 사람은 한수도, 심지어는 이삭도 아니었다. 선자가 꿈속에서 다시 마주한 것은 젊음과 시작, 소망이었다. 그랬다. 선자는 그렇게 한 여자가 되었다. 한수와 이삭, 노아가 없었다면 이 땅으로 오는 순례의 길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가 된 지금 이 순간에도 일상 너머로 아름다움과 영광이 반짝거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아무리 모른다 해도 그것이 진실이었다. -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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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5-16 17: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목걸이라니 ㅠㅠ 출신 국적이 차별과 멸시의 대상이 된다니 참 분노할 일이에요 ㅠㅠ 뒤늦게 파친코가 읽고싶네요 ㅎ헤

거리의화가 2022-05-16 18:13   좋아요 1 | URL
새로 나오는 판권으로 구입하실 수 밖에 없겠네요 중고가가 비싸다고 하더라구요^^;
전 이 책이 개인의 삶도 삶인데 역사적 맥락과 얽혀져서 너무 안타깝고 슬펐어요. 미니님 감사합니다^^

2022-05-16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5-16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2-06-02 16: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은근히 인상적인 장면이 많은 소설이더라구요. 한국과 일본의 이야기지만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이유도 알 것 같아요. 잊어버리기 전에 저도 빨리 리뷰를 써봐야 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6-02 17:20   좋아요 2 | URL
네. 특히 2권에서 더 그걸 느꼈던 것 같아요. 외국인들도 주목한 부분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게 민족의 아픔 이런 것도 있겠지만 인간의 정서와 감정 측면에서 와닿는 것들이 있어서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상처를 보듬는 장면들 같은 거요. 괭님의 리뷰 기대됩니다^^*
 
파친코 1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선자가 아버지 같은 사람 정도만 만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이삭도 선자를 끌어안았던 인물이긴 하지만 성에 차진 않는다. 

고한수는 느끼하고 음흉하며 겉과 속이 다른 유형이라 내가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이고.

목사라는 작자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믿음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전형적으로 가부장적 희생을 강요하고 있으니.


선자와 이삭의 주례를 맡은 류목사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여자가 결혼하지 않은 남자에게 시집을 가는 것에 대해서 죗값을 치러야 한다며 선자에게 용서를 강요한다. 

요셉은 일본 입국을 위해 빌린 돈을 회중시계로 갚았을 때 고마워하거나 미안해하지는 못할 망정 자신의 체면이 깎일 것을 생각한다. 

게다가 아내인 경희가 돈을 벌려 할 때마다 여자는 집안에 있어야 한다며 허락해주지 않는다. 

이 에피소드는 특히나 나를 화나게 했는데 개인적인 경험이 있어서였다. 


여동생은 나보다 훨씬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 

조카가 두 명 생겼고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돈이 항상 부족했다. 

이 때문에 일을 한다고 말했는데 번번이 안된다고 거절당했다.

그녀는 조카들이 이미 다 컸지만 여전히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체 왜 남자들은 여자들이 밖에 나가서 돈을 벌면 문제라도 생기듯이 반응하는 것인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선자의 삶도 그렇지만 경희의 삶도 순탄치 않다 느껴졌다.


역사적 배경이 있는 소설이라 술술 읽힌다. 

책 초반에는 선자의 고향인 부산 영도가 눈 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이후에는 오사카의 코리아타운이라고 할 수 있는 이카이노에서의 조선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1부는 일본이 조선을 강제 병합한 1910년부터 해방 후 1949년까지를 배경으로 하였다. 


번역은 전체적으로 나쁘지는 않았으나 오타가 눈에 많이 띄여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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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5-14 23: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가님 이번에 부산 영도에서 독자들과 만나 함께 파친코 작품 읽는 기회를 가져 보신다고 ㅎㅎ
1부 속 이야기는 고구마가 한 가득일 정도로 답답 ㅜ.ㅜ

영상에서는 작품 속 악역들이 더욱 악랄하게 나옵니다 ㅎㅎ

거리의화가 2022-05-15 07:38   좋아요 2 | URL
2권까지 다 읽고 영상 보려구요^^ 영도 가서 독자들과 만남의 시간이라니 더 감회가 새로우실듯하네요 진짜 1부는 고구마 한가득이었습니다ㅜㅠ 2부는 좀 나았으면

새파랑 2022-05-15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구매하려고 했는데 품절이더라구요 ㅜㅜ 중고는 엄청 비싸고 ㅜㅜ 역시 책은 살 수 있을때 사야하나봐요 😅

거리의화가 2022-05-15 16:54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새로운 판권계약이 되었다더군요^^; 언제 나올진 모르겠지만 조만간 나오지 않을까요? 가격이 부풀려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얄타의 딸들 - 사라 처칠, 애나 루스벨트, 캐슬린 해리먼의 이야기
캐서린 그레이스 카츠 지음, 허승철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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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타회담은 막바지에 이른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사후 관리, 폴란드 정부 구성 협의 소련의 전쟁 참전 여부에 대한 의견 교환을 위해 1945년 2월 4일부터 11일까지 열렸다.

회담의 주인공은 연합국의 지도자들로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었다.
하지만 이야기 주인공인 얄타의 딸들은 애나 루즈벨트, 사라 처칠, 캐슬린 해리먼이다.
이오시프 스탈린의 딸이 아니라 소련 주재 미국 대사였던 애버럴 해리먼의 딸 캐슬린이 포함되었다.

여기서  애버럴 해리먼은 누구일까?
루스벨트는 1941년 2월 애버럴 해리먼을 무기대여 프로그램 책임자로 지명하였다. 무기대여 프로그램은 미국이 영국과 동맹국에게 전쟁 물자를 제공하고 영국은 종전 후 비용을 치르기로 정한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미국이 직접 참전하면서 무기대여 프로그램이 소련에도 제공되었다. 1943년 가을이 되자 해리먼은 루스벨트의 제안에 따라 모스크바 주재 대사 자리로 임명되어 모스크바로 향했고 회담 전까지 이곳에서 근무했다.

회담 장소가 얄타로 선정된 것은 스탈린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소비에트 지도자들이 휴양으로 과거 황실이 소유했던 궁전을 자주 이용했던데다 흑해 연안에 위치한 섬들 중 그나마 덜 파괴된 곳이었고 많은 인원들이 묵을 정도의 수용이 가능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1943년 11월 이른바 '3거두Big Three'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제2전선을 펼치는 문제를 놓고 테헤란에서 회담을 가졌다. 당시 스탈린의 마음을 사기 위해 루스벨트와 처칠은 런던이나 워싱턴보다 모스크바에 훨씬 가까운 테헤란까지의 고생스러운 여행을 기꺼이 했다. 이번에는 스탈린이 두 사람이 편한 곳으로 오는 것이 공평해 보였다. 두 지도자는 지중해 지역에서 회담을 열자고 제안했지만, 스탈린은 소련을 벗어나 여행하기에는 자신의 건강이 너무 안 좋다고 주장했다. 스탈린은 주치의들의 권고를 내세우며 소련 국경 너머에서 회담 갖기를 거절했다. 소련이 동유럽을 거의 장악한 상태에서 서방의 두 지도자는 전후 민주 세계에 대한 비전에서 스탈린보다 잃을 것이 많았다. 스탈린이 서쪽으로 가장 멀리 여행할 수 있는 경계는 흑해였다. 오데사부터 바투미에 이르는 흑해 연안의 여러 장소를 후보지로 검토한 다음 소련 당국과 미국은 얄타와 리바디아 궁전을 최선의 장소로 결론 내렸다. - P19~20

캐슬린은 어떻게 회담에 합류하게 된 걸까?
캐슬린은 해리먼의 막내 딸로 위로는 언니 메리가 있었다.
캐슬린의 부모는 그녀가 10살 때 이혼했고, 어머니였던 키티 러니어는 캐슬린이 열일곱 살 때 암으로 사망했다. 이후 에버럴은 마리 노턴과 재혼했는데 캐슬린은 다행히 새어머니하고도 잘 지냈다.
캐슬린은 모스크바에 있는 동안 러시아어를 배워 할 줄 알았다. 또 사업과 정부 일을 맡은 아빠를 따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사업 대리 운영을 맡기도 했기에 여러 명사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적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해리먼 가문은 사업으로 성공하여 엄청난 부를 지녔는데, 부를 과시하지 않고 절제된 생활을 했다. (다만 그 절제 기준이라는 것은 당연히 일반인들 기준에는 한참 높은 것이라 생각되기에 논외로 하겠다^^;)
애버럴은 가족과 함께 세계여행도 다니는 등 시간을 보낸 적이 많았다. 모스크바에서 해리먼과 15개월을 함께 보냈고 이전에 런던에서 종군기자 생활을 2년 간 하면서 그녀는 얄타 회담에 참석하는 연합국 지도자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존재였다.

런던과 모스크바에서 캐슬린의 생활에는 승마, 사격, 스키가 빠지지 않았다. 그녀의 새어머니는 당시 캐슬린이 '독신'인 점을 염려했지만, 그녀에게는 늘 열렬히 구애하는 남자들이 있었고, 그녀는 2주 전부터 스케줄이 꽉 찰 정도로 많은 남자를 만났다. 캐슬린 정도 나이에 여건을 갖춘 여자들은 대부분 결혼해서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았다. 그러나 캐슬린은 가정을 꾸리는 것은 나중 일이고,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 P41

해리먼과 캐슬린은 크림반도에 도착한 지 3일 후 해리먼은 처칠과 루스벨트를 만나 회담 사전 협의 참여를 위해 몰타로 갔다.
해리먼은 대표단 전 리바디아 궁전의 회담 준비를 캐슬린에게 맡겼다.

캐슬린이 리바디아 궁전에 도착해보니 상황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모스크바 호텔에서 자재들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궁전은 벌레와 해충이 들끓고 벼룩과 빈대가 넘쳐났다. 이 때문에 등유에 DDT를 섞은 용액을 가구에 살포하고 침대포에도 DDT 가루를 뿌렸다.

사라 처칠은 전쟁 전에 연극 배우의 이력을 갖고 있었는데 연극 극단과 함께 순회공연을 하면서 아빠와 떨어진 시간이 길었다.
사라가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연극배우인 빅토르 올리버와 결혼하기 위해 뉴욕으로 도망가자 부녀 사이는 냉랭해졌다. 하지만 전쟁으로 부녀는 관계 회복의 기회를 얻었다.
그녀는 영국 황실 공군의 여성항공대 소속 정찰 장교였기에 2년 간 몰타와 지중해의 항공 사진을 판독하며 근무하고 있었다.윈스턴은 1943년 테헤란 회담에 이어 이번에도 그녀에게 동행을 요청했다.
그녀는 똑똑했고 군사와 정치 현안에 이해도가 높았다.
그녀는 근무지인 런던 서쪽의 영국 공군 메드멘햄 기지로부터 특별휴가를 받아 아빠와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사라는 예민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서 또래 소녀들과 활발히 어울리며 우정을 쌓지 못했다. 중요한 메시지는 메모에 적어서 전했다. 다른 가족들이 그녀의 과묵함을 놀리려고 하면 아버지는 바로 나서서 이들의 말을 가로막고, "사라는 조개처럼 자기 비밀을 내면에 간직하려는 거야"라고 했다. - P56

루스벨트는 신체적 제약이 있었기에 주변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했다. 테헤란 회담 때는 아들인 엘리엇과 사위인 존 보티거가 그를 수행했으나 이번에는 애나가 선택된 것이다.
애나 루스벨트는 다섯 자녀 중 장녀이자 외동딸로 이전까지 그녀는 아빠를 따라 나선 적이 없었다.
38세의 애나는 세 자녀가 있었다. 증권거래사인 커티스 달과 첫 결혼으로 얻은 10대 딸과 아들, 존과의 두 번째 결혼 후 낳은 아들이었다.
1944년 남편이 북아프리카와 지중해로 군입대하자 애나는 백악관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그녀는 출장을 자주 다니는 영부인 엘리너 루스벨트를 대신하는 역할을 하면서 눈에 띄는 명사가 되었다.

외모를 떠나서 애나는 편하고 유쾌하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 P61

몰타에는 미국의 애버럴 해리먼, 해리 홉킨스 대통령 특별 보좌관, 에드워드 스테티니어스 국무장관과 영국 외상 앤서니 이든이 이미 와 있었다.
루스벨트는 2월 2일 미 해군 순양함 퀸시호를 타고 도착했다.

루스벨트는 회담 참석 당시 건강이 무척 좋지 않았다. 애나는 그런 루스벨트가 걱정스러웠으나 아빠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자 생각했고, 아빠에게 마음으로 다가서는 마지막 기회를 만들자 생각해서 따라나섰다.
애나는 아빠와 거리감이 있었지만 반대로 루스벨트는 딸 옆에서야 마음이 편했던 모양이다.

루스벨트는 애나와 같이 있을 때 편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애나는 여자로서 "다른 속셈을 품을 줄 모른다"고 루스벨트는 생각했다. 그녀는 가족을 위한 봉사를 삶의 우선순위에 두었고, 특히 가족의 남자들이 차분하고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데 성심을 다했다.

캐슬린은 얄타회담에서 루스벨트를 처음 만났다.
스탈린은 1944년 10월 모스크바의 발레극장에서 만났었고, 처칠 가족은 이미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였다.
자국 대통령을 가장 마지막에 그것도 자국이 아닌 얄타에서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캐슬린은 회담 동안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파멜라 처칠에게 편지를 보냈다.
파멜라 처칠은 윈스터 처칠의 며느리로 러시아의 정치 사안과 인물들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언니인 메리에게도 자주 편지를 보냈으나 주로 개인적인 이야기나 심경을 토로한 것이였고 회담 관련 이야기는 파멜라 처칠에게 전했다.  파멜라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회담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뒷이야기가 무엇인지 들여다볼 수 있다.

2월 4일 스탈린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그는 코레이즈궁 방공호에서 대표단의 도착 상황을 상세히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스탈린은 첫 일정으로 처칠이 머무는 보론초프 궁전을 방문했다.
처칠은 스탈린에게 독일 전선의 전반적 상황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으나 민감한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헤어졌다.
이후 스탈린은 리바디아 궁전에서 루스벨트와 회동을 가졌다. 이는 해리먼이 몰로토프와 합의하여 마련된 자리였다.
처칠은 전후 소련 세력이 부상할 것을 경계한 반면 루스벨트는 서방과 소련이 공동의 적과 싸우기 위해서 연합해야 한다고 보았다.
여기서도 루스벨트는 이를 강조하였고 스탈린은 전후 프랑스 하의 독일 점령 구역 문제에 대해서 고려가 필요하다고 한 뒤 둘은 대화를 마쳤다.

오후5시 3국 대표들이 전체회의를 위해 리바디아 궁전에 모였다.
비로소 연합국 지도자들과 참모들이 진행하는 첫 회의였다
3국의 지도자들 모두 각자의 군대가 독일군을 만나기 전 혼란을 극복할 합동 전략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회의록은 볼런이 기록했다. (볼런은 루스벨트의 통역관으로 자리했지만 미 국무부 내에서 소련 전문가 중 한 사람이었다. )
루스벨트는 낙관적 미래를 그리고 있었으나 볼런은 스탈린이 자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 생각하면 언제든 자기 길을 가는 데 주저함이 없을 거라고 적었다.

2월 5일 전체회의는 오후에 리바디아 궁전에서 열렸지만, 매일 열리는 군사회담, 외무장관회담은 세 궁전을 돌아가며 열렸다.
분위기는 유쾌했으나 해리먼은 이런 분위기가 오래 갈거라고 믿지는 않았다. 소련의 회담 패턴을 알고 있어서였다.

처음에 소련 측은 과도할 정도로 다정하고, 친절하고 협조적이며, 특히 중요성이 크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두 번째 단계에서 분위기는 급격히 바꾼다.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한다. 이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얼마나 상대의 입장을 배려했는가를 강조하면서 특정한 입장을 굽히기를 거절하고 무뚝뚝하고 거칠게 나오며 심지어 적대적 태도도 보인다. 그러나 협상이 끝날 때쯤이면 다시 유쾌한 친근감을 보이고 동맹의 힘과 협력 정신에 대한 건배를 거듭하며 축제 같은 분위기로 손님을 보낸다. 소련 대표들은 이런 협상 전술의 대가이고 필요할 때마다 이를 동원했다. - P193

오후 전체회의가 진행되었다. 루스벨트는 전날 무척 좋지 않은 컨디션이었지만 오늘은 훨씬 나아보였다.
스탈린은 독일이 재무장하지 못하도록 독일을 완전히 분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처칠은 독일의 역사, 문화, 경계를 연구하지 않은 채 무 자르듯 독일을 분할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루스벨트는 이 문제는 지금 논의할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에 스탈린은 독일 분할에 대한 조항을 독일의 최종 항복 조건에 추가해 넣는 정도로 만족한다고 의견을 피력했고 루스벨트와 처칠도 이에 동의했다.
다음으로 프랑스 점령 지역 문제였다. 루스벨트는 프랑스 자체에 관심이 없었지만 프랑스에게 점령 지역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에 스탈린은 주변 지역도 점령 지역을 요구할 수 있으므로 강력히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처칠은 프랑스가 독일을 관리하여 서방의 세력 균형을 맞추어야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소련 외무차관인 이반 마이스키가 이 때 나서며 소련이 독일군에 입은 피해가 막심하므로 이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처칠과 루스벨트도 이는 인정했으나 이 문제는 외무장관회의에서 배상 문제를 따로 다루는 것으로 하고 회의를 마쳤다.

스탈린은 자식 중에서는 아무도 회담에 데려오지 않았으나 최측근이었던 라브렌티 베리야는 데려왔다. 그는 크림타타르를 독일군에게 협력했다는 혐의를 씌워 강제로 이주시킨 장본인이었다. 회담장에는 그의 아들 세르고 베리야도 함께 왔다. 아들인 세르고 베리야가 맡은 역할은 소련 측이 설치한 도청장치를 운영하는 팀의 핵심 인물이었다.
회담장에서 이 도청장치가 늘 따라다닌다. 미국 측과 영국 측도 소련 도청 가능성을 짐작하고 찾으려 노력했으나 도청장치가 금속제가 아니어서 찾는 데 실패했다.

2월 6일 3정상이 평화 진작을 위한 국제기구 구성 문제와 폴란드 주권 문제를 논의하는 동안 세 딸은 흑해 연안의 역사 도시인 세바스토폴을 방문한다.
세 사람은 세바스토폴의 참상을 보며 충격을 받는다.
사라는 런던 대공습을 경험했고, 영국 공군에서 항공정찰사진을 분석하며 황폐화된 도시를 많이 봐왔는데도 세바스토폴의 처참한 광경과 인명 피해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기자였던 캐슬린과 신문 편집자였던 애나는 그동안의 경험 덕분에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능력이 있었다.

캐슬린과 애나의 편지에는 전쟁 파괴의 범위가 신문처럼 상세히 서술된 반면 사라의 서정시적 관찰에는 감정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사라가 세바스토폴에 대해 엄마에게 쓴 서술은, 아버지 처칠의 설득력 있기로 유명한 산문과 인간 감정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을 떠올리게 한다. - P237

세 번째 전체회의에서 폴란드 문제가 제기되었다. 스탈린은 폴란드 문제는 소련에게 있어 안보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처칠은 소련군이 서쪽으로 진격하면서 술을 마시고, 약탈하고, 강간을 저질러왔다는 사실을 폭로했고 또, 현재 폴란드 루블린 정부는 폴란드 국민의 1/3도 대표하지 못하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루스벨트는 지난 5백년 간 폴란드가 갈등의 진원지 였다고 말했고 처칠은 이에 이 갈등을 처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루스벨트는 이날 회담에 불만이 생겨 스탈린에게 편지를 적어서 전달해 스탈린에게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는 교회와 학계 인사를 포함해 국가 내 존경받는 폴란드 지도자 두세 명과 루블린 정부 대표 몇 명을 얄타에 오게 하여 루블린 정부와 런던 정부 간 중재자 역할을 맡기자고 한 것이다.

캐슬린은 2월 7일자 편지에서 회담의 진정한 전환점이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대단한 환희가 있었어"라고 캐슬린은 친구에게 썼다. 그날 오후 회담에 돌파구가 열렸다. 지난해 여름 워싱턴 덤버턴 오크스에서의 회담, 여러 달에 걸친 서신 교환, 그리고 얄타에서 이틀에 걸친 토론 끝에 드디어 "엉클 조(스탈린)에게 덤버턴 오크스를 팔았어"라고 캐슬린은 썼다. - P286

루스벨트가 구상한 평화기구에 대한 합의를 방해하는 요인은 스탈린과 몰로토프가 소련을 구성하는 16 공화국 각각이 총회에서 한 표씩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해서이다. 그날 오후 협상에서 몰로토프는 그 숫자를 2 또는 3으로 축소했고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가 전쟁에서 큰 희생을 치렀으니 두 나라가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연방 국가인 캐나다도, 인도 투표권도 주자고 했다. 영국과 미국 측이 몰로토프의 제안을 수용할 뜻을 보이자 스탈린은 평화기구의 안전보장이사회 표결 원칙을 수용하였다.

그녀의 요원들은 해리먼 대사의 업적을 그의 매력적이고 예쁜 딸에게 열심히 전달했다. "너도 상상이 가겠지만 애버럴이 투수 역할을 맡았고 지금까지 들어온 보고는 아주 고무적이야"라고 그녀는 파멜라에게 자랑했다. - P288

2월 8일 오후 전체회의에서 폴란드의 자유선거와 전후 독일 문제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스탈린과 처칠의 전투로 루스벨트는 힘이 소진되었고 미국 진영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자 더욱 상황이 악화되었다.
주치의는 상황을 캐치했으나 루스벨트는 그날 밤 스탈린이 주최하는 만찬이 예정되어 있었고 불참하면 자신의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추측한 소련에 그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라 생각하여 아픈 척 연기를 계속 이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

2월 9일 처칠이 폴란드 문제를 두고 스탈린과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세 사람은 마지막 오후를 함께 보낸다.
그날 오후 세 대표단을 최종 선언문에 동의했다.

사실 얄타회담은 결론적으로 논의한 것들이 뒤집히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스탈린은 얄타협정의 대부분의 합의를 파기하기 시작했다. 힘들게 만들어진 국제연합기구인 UN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소련은 차례로 동유럽 국가를 집어삼켰고 이들의 자치권을 제대로 보장해주지도 않았다. 소련의 야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중국, 베트남, 한국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세 여성을 보며 지도자의 딸로서의 모습, 한편으로는 개인으로서의 삶을 생각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버랩된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서 제법 많은 것을 얻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일단 지도자의 딸로서의 모습이다.
아무리 그녀들이 한 나라의 지도자인 수장의 딸이었다고 해도 정상들이 모이는 수뇌부 회담에 참석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회담에 참석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재미있다.
결과적으로 세 명의 여성이 회담장에 자리하게 된 것은 굉장한 기회였고 그것은 그녀들의 삶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두번째로 개인으로서의 삶이다.
세 여성 모두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개인사들이 있었다.
얽히고설킨 관계는 '아니 뭐야~ 이렇게 연결된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만큼 막장스러운데 또 그녀들은 그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수용한다.
특히 부녀관계를 이야기안할 수가 없는데 루즈벨트는 회담 참석 전까지 애나와의 관계가 껄끄러웠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루즈벨트의 내연녀였던 루시가 큰 몫을 했다.
그래도 루즈벨트가 죽기 전에 애나는 아빠로 그를 받아들이게 된다.
세 부녀 관계 중 사라와 처칠의 관계는 돋보였다. 회담 이전부터 둘의 관계는 좋았고 처칠이 죽을 때까지 사라는 아빠를 이해하고 존경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책은 회담에 참석했던 세 여성이 회담에 참여하게 된 경위와 그녀들의 삶에 주목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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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5-13 23: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얄타에 지도자들의 딸들이 참여했다니 이런 뒷이야기들 넘 재미있어요. 스탈린 딸은 오지 않았군요. 궁전 치우는 것도 넘 힘들었을거 같아요~ 재미있게 읽었어요 거리의 화가님 *^^*

거리의화가 2022-05-14 09:07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이런 뒷배경이 있는지 몰랐어요. 스탈린은 딸(스베틀라나)에게 무관심한 편이었고 스탈린의 엄마는 6살 때 자살했는데 이 사실을 16살 때 알았다고 하네요-_-; 그리고 그녀의 연인을 스탈린은 강제노동수용소에 보내버렸다는... 이를 비롯해 뒷이야기가 정말 많지만 여기 다 적기엔 너무 많더라구요^^; 궁전 치우는 거 장난 아니었을 것 같고 전쟁의 참상을 이야기하는 장면도 많이 나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scott 2022-05-14 16: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루스벨트 딸의 인생이 굉장히 드라마틱 했죠.
미국에서 퍼스트 도어터 중에 가장 진취적인 삶을 살아서 자주 화자 되었고 관련된 다큐도 많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부분이 넘, 적어서
섭섭 ㅎㅎㅎ


푸틴은 자기 자신, 혈육은 끔찍하게 아낀다는뎅

거리의화가 2022-05-14 18:40   좋아요 3 | URL
네 말씀하신대로 회담 이후 세 여성의 삶을 소개합니다만 사실 그러기엔 한 장의 내용이 다라 적긴 합니다 얄타회담에서 그녀들이 한 역할에 주목을 해서 그런 것 같고요. 스탈린과는 다르게 푸틴은ㅎㅎ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인류도 사랑해야할터인데-_-

mini74 2022-06-10 08: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 이런 역사의 뒷이야기 넘 좋아요 ㅎㅎ 축하드립니다 ~~

거리의화가 2022-06-10 08:5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미니님*^^*

새파랑 2022-06-10 09: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요즘 폭풍독서 모드 이신거 같아요. 당선 축하 드립니다 ^^

거리의화가 2022-06-10 11:13   좋아요 3 | URL
ㅇㅎㅎㅎ 새파랑님이야말로 열혈독서중 아니신가요?ㅎㅎ 축하 감사합니다^^*

청아 2022-06-10 12: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강약 조절로 협상을 하는 당시 러시아를 보니 국제적 관계에서
힘겨루기가 주요하다는 걸 짐작케 하네요.
소재도 독특한데 얄타의 딸들과의 연결고리가
중요한 인물들, 사건들과 얽혀서
더 재미있으셨을 것 같아요!! ㅎㅎ
거리의화가님 당선 축하드려요😊

거리의화가 2022-06-10 12:59   좋아요 2 | URL
물리적인 폭력만이 아니라 외교적인 싸움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 같아요. 당시에 강대국이라고 소위 불리는 국가들은 이 중요성을 철저히 이용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대한민국도 생각해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은 하수 전략이고 치고 빠지는 전략이라던가 더 나은 전략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 책 참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사건의 이면을 뒤흔든 인물들의 이야기라서 좀 더 다각도로 사건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네요.
감사합니다^^

scott 2022-06-14 00: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얄타의 딸들이 화가님에게 선물을!

화가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2-06-14 06:37   좋아요 1 | URL
스콧님 캄사합니다^^* 어제 자기 전에 스콧님 안보이시네 했는데 떡하니 나타나셨네요ㅎㅎ 스콧님도 추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