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임신중지에 다가가 이를 경험하고 기억할 때 가질 수 있는 의미는 철저히 제한돼 있다. 여성의 선택을 분명히 제한하자고 호소해서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수사가 제한을 작동시키기 때문이다. 이때 선택이라는 개념은 임신중지의 맥락에서 규범화된다.

임신중지의 탈정치화는 선택이라는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임신중지에 들러붙은 감정은 임신중지의 사회적 의미를 자연적인 것처럼 만들고, 임신중지에 대한 가정을 진실로 유통하는 주요 수단이다.

임신중지를 선택한다는 의미에 들러붙어 그 의미를 바꿔 놓는 감정들은 이미 ‘줄 세워진’ 행동 규범에 여성을 복귀시켜 ‘일직선으로 정렬하는 장치’다. ‘어려운 선택’이라는 서사는 여성이 임신중지를 함으로써, 자연히 또 자동적으로 ‘행복의 대상’인 태아에게 이끌리던 발걸음을 반대로 돌린다고 전제한다. 이때 여성이 임신중지를 하는 여러 이유(대학을 마치지 못해서,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없어서, 독신이어서 등등)가 강조된다. 이런 식으로 임신중지를 정당화하는 일은 흔하다.

감정경제는 충돌하는 두 여성성을 화해시키려 한다. 하나는 여성의 자유를 ‘선택’을 통해 설명하는 포스트페미니즘 담론이다. 다른 하나는 ‘모성’을 여성의 정박지로 고정하는, 엄격히 제한된 젠더규범이다. ‘어려운 선택’과 ‘태아중심적 애통함’을 인용하는 일은 임신중지 여성에게 ‘모성적 주체’라는 문화적 생명력을 복구해 준다.

임신중지를 숨기는 여성 비율이 높다는 것은, 임신중지를 겪어 본 적 없는, 더군다나 임신중지는 고사하고 임신도 하지 않을 남성들이 임신중지를 재현하는 장본인이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어떻게 여성이 임신중지에 접근하고, 이를 경험해야 하는가’라는 기대가 재현의 영토를 지배해, ‘좋은 여성’에 관한 젠더 전형ㆍ이미지ㆍ이상에 길을 터 준다.

임신중지 반대론자들은 임신중지를 겪은 여성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길 거부한 ‘이기적인 어머니’. 임신중지에 어떤 일이 따르는지, 그 심리적ㆍ감정적 후유증이 어떠한지도 모른 채 아이를 죽인 ‘불운하고 취약한 희생자’. 이와 반대로 여성이 임신중지에 접근하는 것을 지지하는 이들은, 여성에게 임신중지를 ‘강요하는’ 경제적ㆍ사회적 상황을 강조한다.

나는 임신중지가 축하받을 일이라고 본다. 임신중지는 의도치 않게 임신을 한 여성이 원하는 것을 얻고, 재생산 가능한 연령대의 여성이 재생산과 분리된 이성애 섹스를 보장받을 수 있는 일이다. ‘의도치 않게 임신한 여성’이라는 위치는 담론적인 동시에 물질적이다.

‘좋은 어머니’는 젠더ㆍ인종ㆍ계급ㆍ섹슈얼리티 등 정체성이 교차하며 형성된 주체로서, 그 정체성들의 역학관계를 떠받치고 강화했다. 다른 말로 하면, 임신중지 재현은 고정된 사회질서를 만드는 수단, 즉 고정된 질서와 그 안에 자연화된 역학관계가 도전받을 때 거기에 대응하는 수단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무언가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주체가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처럼 비쳐야 한다. 그래야 규제가 유지된다. 이 책에서 보았듯, 반임신중지 운동 역시 ‘정보를 갖춘’ 선택이라든지 ‘진정한 선택’을 옹호하는 정책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런 정책의 목표는 (물론 이게 바로 그 효과이기도 한데) 여성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즉 오히려 여성이 나중에 후회할 선택을 하지 않게끔 방지하는 정책으로 위장하는 것이다.

오늘날 선택의 주체는, 이를테면 여성이 무한한 선택지를 가졌고, 행복의 대상인 아이에게로 향하기 마련이며, 따라서 그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모성을 선택한다고 하는 식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여기서 그 주체는 여성의 재생산적 신체라는 차원에서, 선택에 깃든 긴장을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균형은 깨지기 쉽다. ‘자율성’과 ‘선택’이 있는 곳에 ‘제약조건’과 ‘의존’이 있다. 개인의 선택은 정치적이다.

임신중지 법이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근원은 아니다. 법은 젠더ㆍ임신ㆍ모성 규범을 반영하고 강화하는 장치일 뿐이다.

‘자유’를 ‘선택’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평등의 구조적 양식을 은폐하는 일이다. 재생산 정의를 보장하는 수단으로서 법을 내세울 때 비슷한 효과가 난다.

괴로움ㆍ애통함ㆍ수치라는 지배적인 각본과 그 대안이 되는 문화적 서사는 늘 같이 존재해 왔다. 이 책의 경우 전자에 주목했고, 그런 각본에 따라 임신중지를 재현하는 영토는 획일성을 띤다. 그러나 문화 지형을 살펴보면 이질성이 뚜렷하다. 이를테면 몇몇 프로초이스 활동가는 임신중지로 여성에게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심리적ㆍ감정적 효과란 없다고 꾸준히 말해 왔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룬 임신중지 서사 헤게모니는 기본적으로 ‘반임신중지’ 입장이다. 이는 소거되어야 한다. 그러나 당사자 서사에 근거한 임신중지 정치는 개별 경험의 정치로 환원될 위험이 있다.

임신중지 정치가 임신중지를 하려는 혹은 하고 난 여성의 느낌으로 환원되면, 그 느낌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광범위한 사회ㆍ구조ㆍ정치적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이를테면 양육에 대한 결정, 또 그런 결정에 대한 다른 이들의 평가와 판단을 손쉽게 하거나 감추는 ‘젠더화된 노동분업’과 ‘계급ㆍ인종에 기반한 불평등’, 임신중지와 피임의 구별이나 원치 않은 임신을 막기 위해 여성에게 부여되는 책임 등 역사사회학적 질문, 임신의 조건에 관한 존재론적 질문 등이 있다.

임신중지의 감정 경험을 획일적으로 재현하면 자연화된 여성 주체가 만들어진다. 그 감정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간에 말이다. 여성의 삶과 열망의 이질성은 임신중지의 단일한 서사에 포착될 수 없다.

‘무엇이 행복한 임신중지의 가능성을, 가장 좋게 봐서 규범을 위반한 것, 가장 나쁘게 봐서는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가?’ 임신을 원치 않은 여성의 관점에서 임신중지를 바라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게 해 줄 유일한 수단이 있고 그 수단이 비교적 직접적이며 고통을 주지 않는데도 자꾸만 불행으로 재현된다는 것은 아무래도 터무니없다.

임신한 주체의 다양성을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인정하고자 하는 캠페인은 프로초이스 운동과 학계에 반드시 필요하다.

임신의 불확정성을 인정한다면 유산 혹은 임신중지에 뒤따르는 다양한 경험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유산한 여성, 한때 원했던 임신을 중지한 여성, 원치 않은 임신을 중지한 여성은 다양한 현실에 놓여 있다. 이런 경험들은 임신중지 반대론자들이 아무리 임신을 ‘아이와 어머니’라는 단일한 재현에 묶어 내려 하더라도, 서로 같은 것이 될 수 없다.

임신중지 여성을 평가하려는 고정된 규범이 없을 때, 수치나 죄책감은 임신중지의 정동적 지형에서 사라질 것이다. 모성을 해체해 여성에게 행복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은, 임신중지를 분명 여성의 선택으로 새롭게 프레이밍하되 자율적 행위자가 내린 선택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기획에는 오늘날 임신중지의 감정으로 인식되는 것들에 균열을 내는 과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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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선사, 그 형성과 지속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3
정상우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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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근대 역사학'의 성립과정은 '동양'의 창출 과정이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일본사를 중심으로, 일본사의 타자로서 한국을 비롯한 주변의 역사를 배치한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식민주의 역사학은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의 타자화가 식민지 조선을 향해 나타난 것으로, 일본사의 타자로서 한국사가 재구성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P21


이 책은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한국학총서' 지원사업으로 진행된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3권째이다. 


일본은 제국주의 후발 주자로 근대적 학문 연구 방법을 적용하면서 자신들의 침략과 지배를 옹호하기 위한 논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위치에 서 있었다. 식민사학은 그렇게 등장한 논리다. 

식민지기 일본인 연구자들은 '반도론', '타율성론', '사대주의론', '정체성론', '일선동조론' 등으로 다양한 논점을 제시하며 정당성을 확보하려 애썼다.


그렇다면 제목의 만선사는 무엇인가? '만선', '만선사'라는 용어도 마찬가지로 일제 시기를 거치면서 등장했으나 이는 당시에도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며 어느 범위까지를 지칭하는지 정해지지 않은채 모호한 것이었다. 


일본의 근대화와 주변국 침략으로 인한 제국 판도의 팽창 및 이와 동시에 일본에서 진행된 근대 역사학의 성립 전개에 따른 새로운 역사공간으로서 '동양'의 형성, 그리고 그 속에서 한국사의 위상과 의미를 고찰하는 것은 한국사의 범위를 벗어나는 거대한 문제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대륙 침략과 더불어 만들어진 용어인 '만선(滿鮮)'과 그 역사에 대한 연구였던 '만선사(滿鮮史)'는 좋은 실마리가 될 수 있다. - P23


만선사를 유일하게 체계적으로 정리한 학자는 이나바 이와키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만주사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시대에 따라 조선사, 일본사, 한중관계사, 한일관계사로 범위를 확장하면서 삶의 마지막까지 연구를 이어갔다. 


1910년대  그는 『만주발달사』 저술을 통해 몽골-중국-만주 셋 간의 역학관계를 비롯, 대륙의 민족들이 만주에 미친 영향을 넘어 대륙과 일본의 관계까지를 만주사의 범위로 정의하였다. 그는 먼저 식민사학의 정체성론에 대한 원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그것은 중국의 송대 이후 북방 민족의 힘이 강해지자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한반도 왕조를 회유하면서 중국 문화가 한반도를 장악했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성리학과 가례로 수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만주사에 대한 관심을 조선으로 확장하는 한편, 조선사를 연구해온 다른 일본 학자들의 주장을 잇기도 했으나 비판하거나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기존 연구자들은 조선의 남부 지역과 일본의 인종적 근친성을 강조하며 고구려, 발해를 비롯한 한반도 북부에 존재한 국가를 한국사의 범위에서 제외시키려고 한 반면 그는 조선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요소로 한반도를 꼽으며 거리를 두었다. 


1920년대 『조선사』 편찬 임무를 위해 조선에 들어온 그는 조선의 자료를 이용하며 조선사를 고증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조선의 정체와 원인을 송 이후 이이제이의 외교수단이 강화되고 성리학의 가례가 반도에 이식되었다는 것에 대한 고증이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고구려의 멸망으로 만선이 분리된 이후 반도의 왕조는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반도에 침략 or 교류한 중국 세력과 만주 장악 세력의 눈치를 살피면서 사대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또 조선시대의 정치가 귀족정치을 벗어나지 못했고 명의 법과 제도를 모방하면서 귀족과 관료가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 때문에 당쟁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1930년대 그는 만주국 건국 후 만주건국대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만주사에 대한 통사를 『만주국사통론』으로 정리하게 된다. 이를 통해 이나바는 만주사의 기원을 숙신으로 보고 중국의 한족과 구별되는 만주만의 특징을 바탕으로 비한족이 만주라는 땅에 거주하며 거쳐간 역사를 기술하였다. 만주의 지리적 역사가 아닌 만주 민족의 흥망성쇠를 다룬 역사로 기술한 것이 특징이다. 구체적으로는 만주와 몽골을 함께 장악한 거란의 태조와 청 태조, 강희제의 정복 활동을 만주족의 발전을 위한 전제로 제시하였다. 이로써 만주 민족의 독자성을 강조하면서 만주의 발전을 위해 만주만이 아닌 몽골까지 장악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만주국은 당시 국제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건국의 정당성이 필요했다. 이는 '오족협화'라는 건국 이념에 대한 선전으로 활용되는 동시에 만주국과 몽골의 국경에서 벌어진 소련군과 몽골군의 전쟁에 대한 합리화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는 대륙의 역사적 전개를 체계화면서도 대륙과 일본의 관계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았다. 


한사군의 설치가 일본에서도 국가 성립의 계기를 만들었다면서 일본의 국가의 성립 시점을 3세기로 끌어올렸고, 임나 일본부의 출현 시기도 앞당겼다. 고대 중국과 일본의 교통으로는 특별히 중국의 위(魏)에서 히미코 여왕에게 금인자수를 보낸 일, 남송 정벌을 위해 쿠빌라이가 흑산도 일대를 조사하고, 탐라를 장악하며 일본으로 국서를 보낸 일 등을 제시하였다. 또 임진왜란의 결과 만주에 대한 명의 견제력이 현저히 약화되었고 막대한 제정 지출로 청이 흥기할 수 있었음을 제시하였다. 

일본은 대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를 대상으로까지 만선사의 범위에 포함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일본은 만선사를 구성하는 핵심 축으로 작용하였다. 


일제 시기 일본 연구자들의 이름을 공부하며 알게 되는데도 이렇게 매번 양파처럼 새롭게 알게 되는 점이 놀랍다. 

일본 이름이 익숙하지 않아서 잘 들어오지 않아서 그런 것일수도 있겠다. 계속 반복해서 정리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책에서 일단 세 명의 학자들을 정리해둔다. 


일단 이나바 이와키치는 만선사 연구학자로 유일하다고 할 수 있으니 기억해야 한다. 그는 대륙과 만주와 조선의 불가분성을 주장하였고 북방의 역사를 위해 단군 신앙을 활용하기도 하였다. 식민 사학자들이 모두 그렇겠지만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문화가 흘러갔음을 극도로 비판하였다. 


그리고 이마니시 류를 기억하자. 그는 일본에서 조선사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학자다. 조선사 연구 논문을 최다 발표하기도 한 인물이다. 그는 한반도 남부의 인종과 일본인을 동종으로 보는 등 식민사학자의 논점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도리야마 기이치를 더한다. 그는 발해사를 연구하였으며 이나바 이와키치의 만선사 연구학 중 발해 관련하여 기초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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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8-21 2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본이 식민사학에 기울인 노력을 보면 정말 눈물겹습니다. 아 진짜 주어진 목적을 위해 자료를 재배치하면서 저들은 한치도 그 사실성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겠지요. 신념이 사실을 가릴 수 있다는 것 잊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 시리즈가 나온건 몰랐는데 화가님 진짜 부지런하게 찾아서 읽으시고 리뷰 올려주셔서 저도 공부가 되네요.

거리의화가 2022-08-22 09:31   좋아요 2 | URL
논리를 찾아내려고 혈안이 된 일본 식민사학자들의 모습이 징그럽다고나 할까요. 만주국을 인정하지 않으니 그 주변의 역사를 연구하고 일본까지 귀결시킨 것을 보니 우습더군요. 이 책 읽으면서도 갖다붙이기는 참 잘하는구나 하는 생각 여러 번 했습니다^^;
네. 2월부터 나왔는데 시리즈 책은 이미 다 나왔고요. 부지런히 읽으면 올해 안에는 다 읽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부가 되신다고 하니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8-22 08: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본인이 우리의 역사를 저렇게 파고 들어 연구하다니....아주 주관적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구요. 학자라고 표현해도 되나? 싶기도 하네요???ㅋㅋㅋ
그래도 만선사가 뭐지? 싶었는데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의 범위가 이렇게 광범위하다는 걸, 화가님 덕분에 많이 알게 되네요^^

거리의화가 2022-08-22 09:33   좋아요 2 | URL
찾아내는 논리겠지요. 꿰맞추기도 힘들텐데 애써 찾아내려고 했고 이걸 또 평생에 걸쳐 연구한 학자들이니 놀랍습니다ㅋㅋㅋ
사실 저도 만선사 두루뭉술하게 알았던 것 같은데 이 책을 통해서 더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나무님께도 도움이 되어서 좋네요^^
 

남북조의 불학과 불학에 대한 당시의 쟁론

불교가 처음 중국에 전래되었을 때 당시의 중국인들은 불교철학을 접하고는 우선 그것을 중국철학 고유의 술어로 번역한 뒤에야 비로소 이해할수 있다고 느꼈다. 불교철학을 선양한 사람들도 반드시 불교철학의 사상을 중국고유의 철학 술어로써 설명해야 중국인에게 이해시킬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방법을 당시에 "연류(連類)" 혹은 "격의"라고 불렀다. - P235

유무 또는 공유는 바로 노장과 불학에 공통된 문제였고 또한 남북조 이후 불학가들이 가장 많이 토론한 문제였다. 이는 6가 7종으로 분류된다. - P238

한 생각이 미혹되면 본디 무아인데 망령되게 하나의 자아를 세우게 된다. 자아가 생김에 따라 드디어 비아(非我)가 생기고 주관과 객관이 나뉘어 대립하면 그로부터 현상세계가 일어난다. - P255

현상세계의 모든 사물은 인연(因緣)이 모여야 생기고 인연이 모이지 않으면 멸하기 때문에 모두 환화인과 같다. 이런 면에서 보면 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라고 한 것은 "환화인은 참된 사람이 아님"을 지칭했을 뿐이고, "환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환화인이있다는 면에서 보면 물론 유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만물은 유가아닌 까닭도 있고 무가 아닌 까닭도 있다." 이것이 "참되지 않으므로 공이다는 이론(不眞空義)"이다. - P257

「물불천론」은 말한다. "불변성에 대한 탐구에서 우리는 변동을 떠나 정지를구하지 말며 반드시 뭇 변동 속에서 정지를 구해야 한다. 반드시 뭇 변동 속에서정지를 구하므로 변동해도 영원히 정지하며, 변동을 떠나 정지를 구하지 않으므로정지해도 변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尋夫不動之作, 豈釋動以求靜, 必求靜於諸動,
必求靜於諸動, 故錐動而常靜, 不釋動以求靜, 故維靜而不離動)." 그러므로 이른바동·정은 대립적인 것이 아니다. 제법의 실상은 그것이 변동도 정지도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변동하기도 하고 정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불교의 중도의 논리로 표현하면, "변동이나 정지가 있다고 말하면 우리는 양극단의 하나에 떨어지나, 변동도 정지도 없다고 말하면 중도에 맞게 된다." - P261

가령 황금보물을 저장한 창고 안에서, 항상 황금의 본체만 관조하고 각종형상은 보지 않으며, 각종 형상을 보더라도 역시 하나의 황금임을 안다고 하면, 이미 형상에 의해서 미혹되지 않으니 곧 분별을 벗어나고, 항상 황금의본체만 관조하니 허망한 그릇됨이 없어지는데 바로 진인(眞人)의 경우가 그와 같다. 항상 "진일(眞一)"만 관조하고 각종 형상은 보지 않으며, 각종 형상을 보더라도 역시 "진일 "임을 알아서 망상(妄想)을 벗어나 전도된 편견을가지지 않고 진실의 경지에만 머물면 그가 바로 성인(聖人)이다. - P263

반야는 비어 있어도 통찰하고, 진제는 없는듯해도 지혜를 발하고, 온갖 변화 속에서 고요할 수 있고, 성인은 도모하지않고 응해도 일을 성취한다. 이것이 곧 알지 않아도 저절로 알고, 도모하지않아도 저절로 성취하는 것이니, 다시 무엇을 인식하며 다시 무엇을 도모하랴? - P268

무심(無心)하게 사물에 감응한다면 행위를 하더라도 감정에 의해 초래될 내용이 없으므로 윤회를 벗어나고 업보를 받지 않게 된다. - P273

배움은 번뇌를 잠복시킬 뿐이지만 깨달음은 번뇌를 소멸시킨다.
"잠복된 번뇌가 오래되면 소멸된 번뇌에 이른다. 번뇌의 소멸은 번뇌가 잠복된 이후에 일어나니", 이른바 "깨달음의 경지는 유의 영역 바깥에 존재하나 배움에 의탁하여 도달한다"는 말이다. - P280

정신과 육체가 하나라면(一)"미세한 것과 조잡한 것은 동일한기이니", 육체가 있으면 정신이 있고 육체가 없으면 정신도 없다. 또 정신과 육체가 본래 별개라고(異) 해도 "정신이 육체에 거함"은마치 "불이 나무에 있는 경우"와 같아서, 나무가 없으면 불은 의탁할 곳이 없고 육체가 없으면 정신은 깃들 곳이 없다. 정신과 육체가하나인지 별개인지 쉽게 단정할 수 없더라도 "유·무의 논리는 반드시 취산에 근거하니" 기가 모이면 "유"이고 기가 흩어지면 "무"이다. 따라서 인간의 존재는 단지 한 생에 한정되니 생이 다하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즉 "이치는 한 생에 한정되고 생이 다하면 더 이상변화가 없다"는 말이다. - P287

육체는 정신의 바탕(質 : 형질)이고, 정신은 육체의 작용(用)이다.…………정신과 형질의 관계는 마치 예리함(利 : 잘 베는 능력)과 칼날(刀)의 관계와 같다.
육체와 정신의) 작용의 관계는 마치 칼날과 예리함의 관계와 같다. 예리함이 곧 칼날은 아니고 칼날이 곧 예리함은 아니지만 예리함을 떠나 칼날은 존재하지 않고 칼날을 떠나 예리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칼날이 없는데 예리함이 존재한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거늘, 어찌 육체가 소멸했는데 정신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용납하겠는가?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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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5장

수치 ->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 사회 존재로서 성공을 가늠하는 지표
임신 중지는 수치 유발 요인도 변화시켜, 임신중지가 그 자체로 수치의 근원이 되는 것은 아님
임신중지 수치가 임신중지 자유 법제화 이후에도 계속된 것은 여전히 임신중지가 여성 규범의 정반대에 놓여있기 때문
개별화, 탈정치화를 통한 수치
침묵은 수치 최소화의 전략

모성의 젠더화된 역할은 인종주의적이고 인종화된 국가주의 열망과 연결됨.
여성의 정체성은 가족으로, 백인 여성의 신체는 국가로 돌아감

수치는 누군가가 사회적 존재로서 처참히 실패했음을 나타내며, 따라서 지극히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감정이다. 수치스러워하는 주체는, 스스로 인지하는 자기와 이상적 타자, 즉 되고 싶은 자아상 사이의 단절을 겪는다. 그는 그 자아상을 향해 가려는 한편, 자기를 거기에 반한다고 평가한다.

수치를 느끼는 주체는 스스로 실패한 이상이나 규범에 다시 통합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모방하는 데 실패한 사회적 이상에 대한 애착이 곧 수치이기 때문이다. 모든 비규범적(백인ㆍ이성애자ㆍ중산층ㆍ남성이라는 비가시적 기준에 반하는) 신체는 수치를 통과한다. 여자아이는 수치를 거쳐 성인이 되며, 규범적 여성다움에 실패(임신했으나 임신중지를 원하는 등)하면 이후 수치를 겪게 된다. 여성은 수치에 ‘영속적으로 조율’된다. 여성 신체가 비규범적이어서만이 아니라, 여성 신체가 육체성ㆍ섹슈얼리티ㆍ섹스라는, 수치를 주기 특히 쉬운 것들을 통해 규범적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죄책감의 원인은 여성의 임신중지다. 이는 자아의 일탈을 알리는 신호다. 반면 수치 안에서 여성은 스스로 책임감을 붙든다. 이때 임신중지라는 일탈은 결점 많고, 부적절하고, 비도덕적이거나 병리적인 자아를 반영한다. 그러므로 수치는 여성적인 감정이다. 비규범적 신체, 특히 섹스와 여성 신체에 들러붙어 사회적 존재로서 개인의 실패감을 드러낸다.

수치는 죄책감보다 더 ‘강렬하고 혐오스러운 경험’이어서, 주체가 원인을 더 감추려 들고 고립감과 열등감을 더 크게 느낀다. 또 수치를 설명하는 것은 죄책감을 설명하는 것보다 덜 자유롭다. 수치는 주체의 자아를 반영하는 반면, 죄책감은 주체의 행동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1975년, 멜버른 최초의 합법적 임신중지 진료소에서 임신중지를 한 여성을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됐다. 이에 따르면 독신 여성은 임신한 사실에, 기혼 여성은 임신중지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죄책감의 근원은 독신 여성의 경우 임신, 더 정확히는 임신으로 이어진 섹스였고, 기혼 여성의 경우 아이를 원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러나 임신중지에는 죄책감이 불가피하다는 통념과 반대로, 겨우 3분의 1에서 3분의 2에 해당하는 응답자만이 죄책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 결과는, 여성이 임신중지에 죄책감과 수치를 느끼리라는 강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이 이 감정을 내면화하지 않음을 보여 줬다.

결혼한 여성이 그저 아이를 원치 않아 임신중지를 한다는 생각은 사실상 임신중지에 대한 공적 논의에 오를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공적 논의상 임신중지 여성은 독신으로 정형화되었다.

피임에 대한 책임이라는 체제 아래, 여성은 아이를 원하지 않으면 임신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여성은 아이에게 재정적ㆍ감정적 안녕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임신은 방지할 수 있는 것으로 프레이밍되며, 그런 방지는 책임감 있고 성공적인 여성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진다.n43n 따라서 피임 영역에서 여성에게 ‘선택’이란, 피임할지 말지가 아니라 피임법을 선택하는 개념으로 설정된다.

임신중지에 대한 법이 1970년대 전환기를 맞아 자유화되면서 프로초이스 활동은 임신중지 비범죄화 요구를 기조로 삼았다. 이때 임신중지 절차는, 원치 않은 아이의 출생을 막는 방법으로 더 권장되던 피임에 필수적인 ‘최후의 보루’로 재현되었다. ALRA의 주요 슬로건은 "임신중지는 권리, 피임은 책임"이었다. 피임기구 사용이 늘면 임신중지에 대한 요구가 줄어들리라는 가정과 더불어, 임신중지는 프로초이스 활동의 흐름 안에서 흔히 문화적 후진성의 기호로 프레이밍됐다. 여성해방론자들은 "책임감 있는 피임에 대한 프로파간다"가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경고했다.

여성은 단지 원치 않은 임신을 막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피임을 한다. 그럼에도 타인 혹은 자기 스스로가 피임을 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피임하는 경우가 많다. 피임 효과가 높아지고 이용도가 늘어나 여성이 임신 여부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증진되면서, 여성은 효과적ㆍ효율적으로 피임할 규범적 의무를 갖게 됐다. 따라서 섹슈얼리티의 재생산 규범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진 동시에 제약조건(피임기구를 쓰라는 문화적 의무의 형태)도 따랐다. 그러나 피임기구 확산에 동반되는 훈육 제도는 질문되지 않은 채로 있거나, 숨겨진 측면도 있다. 왜냐하면 피임기구 사용 및 확산은 20세기 서방 여성의 자유와 가장 긴밀히 연결된 발전이었기 때문이다.

피임할 책임이라는 규범은 피임과 그 이용을 사회관계와 권력의 영역 바깥에 놓는다. 남녀의 친밀한 성적 관계는 젠더화된 권력관계의 그물에서 일어난다. 예컨대 여성이 남성 파트너와 안전한 섹스를 협상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피임기구의 엄격한 사용이란, 제약 없는 즉흥적 섹스 등 보다 광범위한 섹스 이데올로기와 불일치하기도 한다.n62n 이때 피임기구 사용에 대한 젠더화된 책임이 덧씌워져, 이성애 관계에서 여성에게 재생산 능력을 통제하라고 하는 것이 남성에게는 같은 정도로 적용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여성이 원치 않은 임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여전히 재생산과 모성에 결합돼 있다는 뜻이다. 이는 남성의 성적 신체에서 재생산을 지우는 한편 쾌락을 특권화함으로써 가능해졌다.

국가 보건 정책은 번번이 임신중지를 "피임에 관한 건강관리를 제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 보았다. 임신중지를 겪은 여성은 임신중지 절차에 정례화된 피임 상담을 통해 실패자로 묘사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약 40퍼센트의 임신이 ‘계획하지 않은 채’ 이루어진다. 계획하지 않은 임신이 출산으로 이어질 때는 여성이 죄책감이나 수치를 느끼지 않는다. 임신중지에 관한 의학 연구에서 "임신중지의 불가피한 결과인 ‘죄책감’"을 우려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과학 연구에는 임신중지의 ‘심리적 후유증’ 내용이 주를 이룬다. 반면에 계획하지 않은 임신을 지속하는 여성의 경험은 비슷한 정도의 연구를 요하는 ‘문제’로 구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효과적 피임에 실패했다는 감각에서 생겨난 수치는 여성이 임신중지를 선택할 때만 활성화된다. 임신중지란 그 이상의 실패, ‘모성적이지 않고 이기적인 존재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임신중지는 무아성(여성이 타인중심적 규범에 실패했음을 보여 주는 기호)에 붙어서 수치를 일으킨다. 수치는 임신중지 여성의 자기평가를 (적어도 남들이 인지하는 한에서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하고, 신경질적인 것으로 나타낸다. 잠재적 아이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어렵사리 임신중지를 한다는 서사가 여기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임신중지를 겪은 여성은 수치를 통해 실패를 드러내고 인지한 다음, 자신을 무아적 모성이라는 이상과 동일시함으로써 복구를 시도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실패했던 가치와 규범에 스스로를 재배치한다.

임신중지 수치를 가장 잘 가늠하게 하는 것은 남들에게 임신중지를 숨기는 여성의 비율이 높다는 사실이다. 여성 대부분은 임신중지 사실이 알려지면 타인에게 부정적 평가를 받으리라 예상한다. 그래서 수치당할 두려움과 내면화된 수치감을 거쳐 임신중지를 선택적으로만 알리며, 보통은 친구나 가족에게도 숨긴다. 임신중지를 비밀에 부치면서 여성에게 그 일은 더욱더 고립되고 외롭고 비정상적인 사건으로 자리매김한다. 임신중지를 겪은 여성의 목소리는 임신중지에 대한 공적 토론에서도 흔히 부재하다.

임신중지를 가득 채우는 수치는 이를 비밀에 부치도록 부추기며, 사실상 자주 위반되는 규범(‘의도된 임신’과 ‘태아적 모성’)을 유지하는 데 일조한다. 이로써 임신중지는 일상적이기보다 예외적인 일이 된다. 수치 침묵 예외성 수치의 순환은 규범적 여성성과 임신중지 담론(감정의 기록 등)이 서로를 영속시키는 또 다른 순환을 만들어 낸다. 모성적 여성성은 애통함과 수치가 뒤따르는 어려운 임신중지라는 서사를 유도하고, 애통함과 수치는 모성적 여성성을 자연화하는 근거가 된다. 이 자기영속적 순환고리는 왜 똑같은 감정이 다양한 담론장을 가로질러 임신중지에 자꾸만 들러붙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임신중지의 비규범성이 만든 은폐와 비밀에 부치기는 애통함과 수치가 유연하게 이동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한다.

1970년대부터 ‘십 대 엄마’라는 인물형은 유독 ‘과도한 재생산적 신체’로 비난받았다. 십 대 엄마는 성적 미성숙이나 무책임과 연결되며, 특히 신자유주의적 통치가 확산됨에 따라 복지에 의존하는 계층화된 몸이 되었다. 임신중지 법의 자유화가 진행된 이래 십 대 임신중지ㆍ모성이라는 국가적 ‘수치’를 해결할 방책으로는 성적 억제라든지 피임기구 사용을 다루는 도덕교육이 제안됐다.

‘이십 대 이상 백인 중산층 여성’은 아이를 너무 적게 낳고 임신중지를 너무 많이 한다며 수치를 당하고, 이 기준 바깥의 여성은 반대로 아이를 너무 많이 낳는다며 수치를 당한다.

‘의도된 임신’이라는 이상은 무척 세속적이며 근대성ㆍ교육ㆍ여성의 자유와 결합된 서방 담론으로 나타난다. 서방 사회에서 출생률 감소와 더불어, ‘의도된 임신’이 규범화됨에 따라 ‘잘못된 여성’, 즉 종교적이고, 인간 본성을 그대로 갖고 있고, 교육받지 못하고, 억압되었으며, 사적 영역과 영속적 재생산에 틀어박힌 여성이 아이를 너무 많이 낳는다는 공포가 생겼다.

임신중지 수치와 수치 주기는 법 같은 외부 규제력 없이도 품행을 단속한다. 그 방법은 개별화와 탈정치화를 통해 규범적 가치ㆍ실천ㆍ신념을 강력하게 자연화하는 것이다. 수치가 법 바깥에서 일어나긴 하지만, 수치와 수치 주기는 임신중지를 범죄화하고 임신중지를 겪은 여성을 범죄자로 나타내는 사법 관할구역 안에서 강화된다. 법이 규범적 도덕성을 성문화하고, 따라서 범죄화는 수치 주기의 강화된 양식으로서 작동한다. 그러나 임신중지 비범죄화 이후에도 임신중지를 한 여성은 계속 국외자로 지목됐다. 그 이유는 재생산과 계속 결부된 여성의 섹슈얼리티, 임신한 여성에 대한 모성적 정체성, 인종ㆍ연령ㆍ계급 같은 축을 따라 여성의 재생산 선택의 가치를 다르게 매기는 다양한 벡터 때문이다. 수치를 통해 임신중지의 비규범성이 개인적 실패감으로 변환되면서, 임신중지 여성은 실패한 개인으로 체현된다.

임신중지를 하는 백인 여성은 ‘백인의 취약성’이라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공포를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한다. 이 취약성은, 국가적 이상으로서 백인 이성애 가족을 증진하는 일, 그리고 그 이상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젠더화ㆍ인종화된 일련의 특권을 보호하겠다는 의지와 불가분 관계를 맺는다.

‘국민’은 정치체에 누가 속하며 누가 배제되는지를 끊임없이 경계 짓는 과정에서 주조되는 사회ㆍ역사적 구성물이다. 그런 포섭과 배제의 기술은 여러 가지다. 공식적으로는 어떤 이들이 법적 권리를 갖고 시민으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지를 정하는 데서부터, 비공식적으로는 공유되는 가치ㆍ전통ㆍ역사ㆍ미래를 설정해 국민성을 규범적으로 구성하는 데까지 아우른다. 이때 공식적인 기술과 비공식적인 기술은 함께 작동한다.

인종은 원래 생물학적 용어였다. 20세기 후반부터 백인성은 ‘앵글로색슨다움Anglo-ness’을 통해 이야기되는 일종의 문화자본으로서 작동했다. 지금은 생물학적 특성이 아니라(흰 피부는 분명 백인성의 중요한 표식이기는 하지만), ‘민주주의, 관용, 언론 자유’가 본질이 됐다. 문화적 인종주의는 어떤 공동체를 병리적이라든지 역기능적이라고 지목하며 작동한다.

인종은 재생산과 결부된다. 흔히 인종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본질’이라 보기 때문이다. 이때 본질은 생물학적인 것으로서, 피부색 같은 표식을 통해 전해진다. 또한 문화적 가치(종교 등)와 행동 패턴 등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고 하는 것들을 형성하기도 한다.

여성은 아이를 길러 문화적 가치와 사회 풍습을 세대 간에 전수하는 데 주된 책임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국민이란 ‘재생산 가능한 인종 구성’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여성의 재생산노동은 국가 자원이며, 인종화된 국가 공동체를 만들어 가족 기획의 동력이 된다.

2015년에 시작된 ‘이민 위기’와 이로써 가시화된 ‘구멍 뚫린 국경’은 지구화의 징후이자, 그 증상의 악화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이 주권국가의 통합성에 도전하자, 국경안보를 다시 강화하고,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국가적 동질성이라는 이상을 구체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브렉시트Brexit,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유럽ㆍ오스트레일리아에서 부흥한 국가주의적 정당은, ‘재국가화re-nationalisation’를 더 폭넓게 시도하려는 (부분적인) 징후다.

배제(국민으로부터 특정 신체를 배제), 재생산(백인 중산층 여성의 재생산), 부인(식민화 내지는 선주민 주권의 부인)은 국가적 불안을 관리하는 교차적 기술이다. 국민은 바로 그 구성 자체 때문에 불안을 준다. 국민은 한 번도 ‘만들어진’ 바 없기에, 이를 ‘다시 만드는’ 과정이 계속된다. ‘국민 만들기’의 과정은 결코 끝이 없다. 그리고 여기서 국가 주권의 취약함이 드러난다.

불안은 고정된 대상이 없다. 따라서 ‘관리’에는 국민이라는 것의 일반화되고 근본적인 불안을, 특정한 공포의 대상으로 변환하는 일이 포함된다. 이 변환은 모종의 봉쇄를 유지한다는 환상을 가능케 한다.

1979년 ‘러셔 발의안’은 1970년대를 통틀어 일어난 임신중지에 관한 공적 토론을 더 격하게 부채질한 것이다. 2000년대 중반의 도덕적 공황은 2004년 연방정부 토론에서 최고조에 달하긴 했지만, 2008년 빅토리아 주의 임신중지 비범죄화 토론에서 ‘너무 많은 임신중지’ 담론이 다시 떠올랐다. 사실상 임신중지 통계 수치는 부정확하기로 악명이 높다. 게다가 임신중지가 법적으로 자유화된 이후, 임신중지율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왔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럼에도 두 차례 공황이 일어난 것이다.

통계는 도덕적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임신중지를 수치로 전환함으로써, 해마다 임신중지를 하는 여성 수만 명, 또 그들이 임신중지를 원하고 필요로 하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맥락이 규격화ㆍ수량화됐으며, 관리와 통제에 딱 알맞게 되었다. 임신중지의 수량화는 임신중지를 정부가 해결할 ‘문제’로 만드는 한편, 정치적 문제와 열망을 객관적ㆍ기술적 측정으로 변환해 이 과정을 탈정치화했다. 이 과정은, 수가 ‘너무 많다’고 재현될 때 심해졌다.

국가안보에 대한 공황은, 외부 세력 침투에 취약해 보이는 땅(여성성)을 보호(남성성)한다는 식으로 젠더화되었다. 따라서 9ㆍ11로 촉발된 전 지구적 안보 위기가 고조된 상황은, 남성적ㆍ군사주의적 국가주의가 강화된 상황에 조응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이와 관련한 대중적이고 정치적인 서사도 함께 등장했다. 바로 ‘남성성의 위기’에 관한 서사로, 1990년대 초 이래 발달해 왔다.

(백인) 여성에게 재생산을 함으로써 국가를 선택하라는 요청은 매우 명백했다. 그리하여 임신중지 여성은 백인 인구 재생산이라는 사회적 선을 위협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임신중지는 아주 중대한 국가적 사망 사건들과 연결됐다. 임신중지 반대론자들은 임신중지로 사라진 생명과 가장 칭송받는 오스트레일리아 순교자, 즉 전쟁에서 사망한 오스트레일리아 군인을 비교했다.

몇 가지 서로 연관된 현상이 위기의식에 불을 지폈다. 이를테면 한부모 혹은 퀴어 가정이 대중적으로 점점 가시화된 것(남자아이들이 더 이상 영속적인 이성애자 ‘아버지 상’을 보며 자라나지 않으리라는 우려와 함께), 여자아이들의 교육성취 수준이 남자아이들을 모든 면에서 능가한다는 것, 남성이 가정법원에 서는 경험을 하며 ‘남성운동’이 성장한 것, 오스트레일리아 사회ㆍ정치 영역에 비백인 남성의 참여가 늘어난 것 등을 들 수 있다.

두 차례 도덕적 공황을 겪는 동안 언론인과 정치인 등 공인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임신중지율을 ‘우리’에게 속하는 문제, 그리고 ‘손을 떠나기는’ 했지만 통제할 수 있는 문제로 봤다. 2000년대 중반 토론을 예로 들면, 입법자들은 "우리 사회는 더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이 주의 임신중지 건수를 줄이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시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치인들과 광범위한 공동체는 임신중지를 ‘우리’가 판단해야 하는, 관리할 수 있는 사회문제로 프레이밍하면서, 임신중지를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들었다. 임신중지에 대해 토론하는 행위는, 임신중지를 고려하는 임신한 여성을, 그들을 걱정하고 평가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의 통제 대상으로 바꿔 놓는다.

공포는 임신중지 여성이라는 상을 만들어 내는 한편 그 주위를 감돈다. 공포는 백인 여성을 위한 모성적 시민권의 역사가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백인 국가라는 환상과 그 핵심 제도인 ‘가족’의 안정을 위협하는 다른 인물형이 임신중지 여성과 환유적으로 연결될 때, 공포는 더 강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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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철학사 - 남북조 시대 현학

왕충 이후 남북조시대에 이르러 도가의 학은 더욱 흥성했다. 도가의 학은 당시에 현학(玄學)으로 일컬어졌다. - P145

주목할 점은 이런 사람들이 비록 도가를 신봉하기는 했지만, 그중의 일부는 여전히 공자를 최대의 성인으로 받들었고 그의 학설을사상의 정통으로 여겼다는 점이다. - P146

『노자』20장의 "학문을 단절하면 근심이 없다"라는 구절의 왕필주는 말한다.
제비와 참새도 짝이 있고 비둘기와 할미새도 짝이 있으며, 추운 지방 사람들은 틀림없이 솜옷과 가죽옷을 지어 입을 줄 안다. 스스로 그러하게 맡겨두면 이미 족하니 그 상태에 다시 무엇을 보태면 근심만 생긴다.
『노자』 29장의 "억지로 작위하는 자는 그르치고, 한사고 집착하는자는 상실한다"라는 구절의 왕필 주는 말한다.
만물의 본성은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함, 자발성)이다. 따라서 따를 수는있어도 억지로 작위할 수는 없고, 소통시킬 수는 있어도 집착할 수는 없다. 사물에는 일정한 본성이 있는데 억지로 작위하기 때문에 반드시 그르치고, 사물은 오고가는데 한사코 집착하기 때문에 반드시 상실한다. - P159

무릇 군자란 향락을 추구할 수는 없으므로 수신(修己 :修身)이란 자기의덕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신이란 다만 안으로 자기 몸을 공경스럽게 하고 밖으로 자기와 동일한 위치의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일 뿐이니,
어떻게 모든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있겠는가? 갖가지 사람들의 갖가지 품성과 만국의 상이한 풍속은 불치(不治 : 억지로 다스리지 않고 자연에 맡김)의 원리로써 다스리면 정치의 정도는 획득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수신하여그 모든 사람과 풍속을 다스리려고 할 경우 요순 임금도 어려워했는데 하물며 군자의 경우에랴? 이제 요순 임금도 그것은 다스리려고 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겠거니와, 만물이 도모하지 않고 다스려짐(無爲而治)은 마치 하늘은스스로 높고 땅은 스스로 두터우며 해와 달은 빛나고 구름이 일고 비가 내리는 것과 같기 때문에, 성대하게 창성하고 사방으로 펼쳐져서 두루 빠짐없이성취하면서도 어려워하는 것이 없다. - P163

세상 사람은 대체로 개체에 집착하여 "나"라고 여기지만 이는 마치 사람의 손이스스로 자기를 몸이라고 여기며, 사람의 발이 스스로 자기를 몸이라고 여기는 것과 같다. 즉 "세상의 구별주의자들은 이런 본질을살피지 않고 각자 ‘나는 나이니 내가 저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라고 말하며, 생명을 손상하고 본성을 해쳐 서로 원수처럼 대적하여 지체를 잘라내면서도 고통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완적의 이런 주장은 장자학과는 다르다. - P166

욕망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교만이 마음에 있지 않기 때문에 명교를 초월하여 자연에 따를(越名敎而任自然) 수 있고, 정감이 욕망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귀천의 본질을 헤아려 물정에 통달할(貴賤而通物情) 수 있다. 물정에 완전히 통달하기(物情順通) 때문에 대도에 어긋나지 않고, 이름(명분)을넘어서 마음에 맡기기 때문에 시비의 선입견을 가지지 않는다(無措). - P169

대인 선생이 있었는데 천지를 하루아침으로, 백년을 순간으로, 해와 달을 창문으로, 광활한 대지를 뜰로 여겼다. 지나다녀도 흔적이 없었고, 거처는 집도 오두막도 없었다. 하늘을 천막으로, 땅을 자리로 삼아 마음 내키는대로 행했다. 머무를 때는 술병을 잡고 술잔을 들었으며, 거동할 때는 술통을휴대하고 술병을 쥐었으니, 오직 술에만 힘썼고 그밖의 일은 개의치 않았다. - P171

"우선 현재의 삶을 즐기면 되지 무슨 겨를에 죽은 뒤를 생각하랴?"
이것이 바로 「양주편」의 인생철학의 전부이다. 인생 가운데 쾌락의향수만이 가치가 있으며 인생의 목적 또는 의미도 바로 거기에 있다. - P176

자유분방한(放情肄志) 인생관은 도가(道家)의 분파로 볼 수도 있지만 도가의 노자학과 장자학에는 그런 주장이 없다. 또 노자학과장자학에 자연주의가 있지만 『열자(列子)』일부의 주장처럼 극단적으로 기계론적이고 결정론적인 면은 없다. 『장자(莊子)』에는 또 신비주의 성분이 있다. 자연주의와 신비주의가 일관된 철학으로 결합한 것이 서양철학사 중의 스피노자이고 바로 장자학의 특색이다.
위진시대(魏晋時)에는 도가 학설이 성행했다. 이 시기의 곽상(郭象, 252-312)의 『장자(莊子)』는 아주 가치 있는 저작이다. 이주는 『장자』사상의 부연 발전일 뿐만 아니라 곽상의 새로운 견해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독립된 저작이고 도가 철학의 중요한 전적이다. - P189

무(無)는 이미 무이므로 유(有)를 낳을 수 없다. 유는 생기지 않으니 무엇을 낳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만물은 누가 낳은 것인가? 홀로 스스로 생길 뿐이다." 스스로 생길 뿐 내가 낳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물을 낳을 수 없고 사물도 나를 - P193

낳을 수 없으니 자기 스스로 그러하다. 자기 스스로 그러한 것은 곧 천연(天然)이다. 천연이니 인위가 아니다.……… 따라서 사물은 저마다 스스로 생길 뿐어떤 것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이것이 천도(天道)이다. - P194

사람이 이러이러한 까닭은 우주가 이러이러하기 때문이다. 엄격히말하면 우주간의 어떤 사물도 그 안의 여타의 모든 사물과 관계가있다. 따라서 "미미한 몸도 온 천지가 받들기 때문에 천지만물의모든 존재는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즉 인간사 가운데 "치", "란"이 교체하는 것 역시 스스로 그러한것(自然的)이고 반드시 그러한 것(必然的)이다. - P197

세속의 우상도 때에 따라 천해지기도 하고, 사물의 위대함도 세상에 따라무시되기도 한다. 따라서 사물에 순응한 자취는 부득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제(五帝)와 삼왕三王)의 통치방식은 서로 달랐던 것이다. - P202

무위(無爲 : 억지로 꾀하지 않음)란 조용히 침묵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저각자 스스로 꾀하게(自爲) 맡겨두면 성명(性命)은 평안해진다는 말이다. 부득이(不得已)함이란 위협적인 형벌로 핍박한다는 것이 아니고 오직 도의 순수함을 견지하고 필연의 법칙에 맡기면 천하는 저절로 복종한다는 말이다. - P203

무릇 소리와 색깔에서 이주와 사광은 만인의 우상이다. 태어날 때 각자의분수가 있는데도 세상의 우상에 따라 휩쓸리면 성명(性命)이 상실된다. 만약안으로 세상의 우상을 파괴하고 남의 기준을 폐기하여 주체에 맡기면 저마다눈과 귀의 총명은 바르게 되고 사람들은 진심을 보유하게 된다. - P208

본성에 따른 행위란 본분을 벗어나지 않은 행위이니 세상에서 가장 쉽고, 자신이 드는 것을 들고 자신이 싣는 것을 싣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가볍다.……………본성의 한계 내의 물건을 들 경우 만 근을 짊어져도 그 무게를 느끼지 않지만, 본성의 한계를 넘어설 경우 100그램이 못 되는 무게도 감당하기힘들다. 자기의 본분 내에서 도모하는 것이 복이므로 복은 지극히 가볍고, 본분 밖의 것을 도모하는 것이 재앙이므로 재앙은 지극히 무겁다. 재앙은 지극히 무겁건만 아무도 피할 줄 모르니 이것이 세상의 크나큰 미혹이다. - P211

취향이 다르지만 각각 그 차이를 의식하고 일부러 다르게된 것은 결코 아니다. 모두 그 까닭을 인식하지 못하면서 스스로 그럴 뿐이다.
스스로 그럴 뿐 억지로 도모하지 않는 것, 이것이 소요(逍遙)의 핵심이다. - P214

지인은 움직일 때는 하늘과 같고, 고요할 때는 땅과 같고, 그 행동은 물의 흐름과 같고, 정지할 때는 연못처럼 조용하다. 연못처럼 조용하든, 물의 흐름과 같든, 하늘처럼 움직이든, 땅처럼 정지하든 각 경우마다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저절로 그렇게 한다는 점은 똑같다.…………참으로 선입견(마음)을 통해서 반응하지 않고 이치가 저절로 현부(玄符 : 천명, 타고난 품성)에서우러나와 변화와 더불어 승강하여 세상을 기준으로 헤아리면 비로소 사물의주인이 될 수 있고 무한히 시대에 순응할 수 있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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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8-20 2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인적으로 중국사에 관심이
많아서 어려서 이런저런 책들을
많이 섭렵했는데, 정작 중국 사람
들의 정신 세계를 관통하는 철학
분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8-21 16:3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시작한 케이스인데요~ 중국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역사를 공부하니 철학이 자연스레 이어지더라고요. 중국 역사에 사상이 존재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