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철학사(하)

장횡거: 기에도 성이 있다

정명도와 정이천
- 정이천: 리학 일파의 선구자 -> 주자로 이어짐
- 정명도: 심학 일파의 선구자

"도"의 의미는 과정이니, 도학가의 말을 쓰면 "유행(流行)"이다.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는 과정으로서 그치거나 쉬지 않는 유행이다. 이 과정은 모순 대립적인 본성이 있으니 예컨대 뜨고 가라앉음(浮沈), 오르고 내림(升降), 움직이고 고요함(動靜) 등은 다 대립적인 것이다. 각 대립 중인 두 방면은 모순적인데 그 모순을 "상호 감응(相感)", "상호 동요(相蕩)"라고 불렀다. 대립면이 "상호감응", "상호 동요한 결과 필연적으로 한 대립면이 우세하면 다른 대립면은 열세를 띠게 되는데 그것이 곧 "승부(勝負)"요 "굴신(屈伸)"이다. 각종 대립면의 "상호감웅", "상호 동요"와 "승부", "굴신"이 바로 우주라는 저 과정의 전체 내용이다. 이 과정은 결코 상상의 것이 아니고 일종의 객관 존재이다. 장재의 말에 따르면 그것이 바로 "기(氣)"이다. - P479

만물은 곧 기가 모인 현상이다. - P481

사물의 생성은 일정한 순서가 있고 사물의 완성은 일정한 구조와 조직이 있다. 이것이 이른바 "천서(天序)", "천질(天秩)"이며 바로 "리"이다. 기의 모든 취산공취는 이 리에 따르고 "망령됨이 없다." - P482

조화(造化)에 의해서 생성된 산물은 서로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이로부터만물이 비록 많지만 실제로 어느 한 사물도 음양이 없는 것이 없음을 알 수 있고, 또 천지의 변화는 이단(二端:兩體)일 뿐임을 알 수 있다. - P484

○태허(虛)에서 천(天)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기화(氣化)에서 도(道)라는이름이 생겼다. 허와 기를 합하여 성(性)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성과 지각(知覺)을 합하여 심(心)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 형체가 생긴 이후 기질지성(質之性)이 생겼으니, 기질지성을 잘 되돌이키면 천지지(天地之性)이 보존된다. 그러므로 기질지성은 군자가 성으로인정하지 않는 바가 있다. - P487

하늘과 인간이 상이하게 작용하면 성(誠)을 논할 수 없고, 하늘과 인간이상이하게 인식하면 명(明)을 다 발휘한 것이 못 된다. 이른바 성명(誠明)이란 성(性)과 천도(天道)에 대소의 차별을 발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 성(誠)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이고, 명(明)은 사람이그 경지에서 가지는 지식인데, 그 지식은 "감각적인 사소한 지식"
이 아닌 진지(眞知)이다. - P492

성인은 만물을 순리에 따라 다스리는것이지 사물의 법칙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니, 오직 모든 것이 제자리에 머물게 할 따름이다. - P501

○『시(詩)』에 "하늘이 뭇 사람을 낳으실 때 사물은 저마다 법칙이 있게(有物有則) 하셨다"고 했거니와……… 만물은 모두 각자의 리가 있다.……………리에 따르면 순조롭지만 리를 어기면 혼란하다. 저마다 자기의 리를 따르게 하면 굳이자기 힘을 소진할 필요가 있겠는가? - P503

이천이 말한 리는 대략 그리스철학 중의 이데아나 형상과 같다.
기가 질료이고 리가 형상임은 앞에서 이미 말했다. 질료는 시공 내에 존재하는 구체적 사물의 원질(原質)로서 변화와 성훼(成毁)가 있으나 형상은 시공 내에 존재하지 않아 변화 없이 영원히 존재한다. - P505

명도가 말한 천리나 리는 구체적 사물의 자연적 추세이니사물을 떠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후 도학 내의 심학 일파는 모두 리는 사물을 떠나 존재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 P506

명도는 리가 사물을 떠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고 여긴 만큼 형이상과 형이하의 구분도 그다지중시하지 않았다. - P507

이천은 형이상과 형이하의 구분을 극히 중시했다. - P509

명도는 기를 그다지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천은 많이 언급했다.
이천은 사물의 존재의 시원은 모두 기화(氣化)에서 비롯한다고 여겼다. - P510

"타고난 것이 성이다(生之謂性)"고 했는데, "성은 기(氣)이고 기는 성이다"고 함이 "타고남(生)"의 함의이다. - P512

"인(仁)"이라는 이름의 특징을 가장 잘 표현했다. 인자(仁者)는 천지만물을일체(一體)로 여기니 자기 몸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천지만물을 자기몸으로 인식할 수 있으면 어디엔들 이르지 못하겠는가? 만일 (천지만물을)자신 안에 두지 않으면 자연히 천지만물은 자신과 상관없는 것이 되어, 마치 수족이 마비되어(不仁) 기(氣)가 통하지 못하여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것123-91(不屬己)처럼 된 경우와 같다. 따라서 박시제중(博施濟衆: 널리 백성을 구제함)이 바로 성인의 역할인 것이다." - P518

○배우는 사람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가까이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단지 인간의 도리를 밝혀 경(敬)에 힘쓰면 될 뿐이니 이것이 요점이다.………따라서 도가 있고 리가 있는 곳에 자연과 인간(天人)은 하나이니 분별되지 않는다. 호연지기(浩然之氣)가 바로 나의 기이다. - P520

도학자들도 우리의 "마음가짐"은 이와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가는 마음이 응하는사물 속에 정감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정감을 다루는 그들의 방법은 이성을 통한 정감의 순화(以理化情)였고, 이성으로 정감을 순화할 수 있는 사람은 자연히 정감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학자들은 정감은 생길 수 있으나 다만 우리는 정감이 생길 때 정감을내 소유가 아닌 것으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뻐하거나 증오할 만한 일을 발견하면 성인도 희로의 정감이 생길 수 있다. 다만성인이 기뻐하거나 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기뻐하거나 분노할만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일이 이미 지나가면 성인의 희로의 정감도 없어진다. - P525

수양하여 만물과 일체가 되는 최고 경지에 이를 수 있으면 우리의 본성은 지대하게 발전할 수 있다. 이것이 진성(盡性)이다. 명도는 말했다.
"이치를 궁구하고(窮理) 성을 완전히 실현하여(盡性) 명에 이른다(至命)"는 이 세 가지는 동시에 병행하는 것이니 원래 순서가 없다. 따라서 궁리는지식을 얻는 일로 간주할 수 없다. 진실로 이치를 궁구하면 성과 명도 이해된다. - P526

"정심(正心)과 성의(誠意)를 가장 먼저 해야 한다. 성의는 치지(致知)에 달려 있고, 치지는 격물(格物)에 달려 있다. ‘격(格)‘은 이른다(至)는 뜻이다. 예컨대 ‘조고래격(祖考來格 : 조상신이 와서 이른다)‘의 격과 같다. 사물은 저마다 그 리가 있으니 그 리를 궁구하여 밝혀야(窮) 한다. 물론 궁리(窮理)의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혹은 책을 읽어서 도리(義理)를 밝히거나, 혹은 고금의 인물을 의론하여 잘잘못을 변별하거나, 혹은 일상사를 맞이하여 합당하게 대처하는 일 등이 모두 궁리이다." - P528

지극함을 알면 지극해지고 끝을 알면 끝을 내니, 모름지기 앎을 근본으로삼아야 한다. 앎이 깊으면 행동은 반드시 지극해진다. 앎이 있는데도 행하지못하는 사람은 없다. 알지만 행할 수 없는 경우는 다만 그 앎이 천박한 때문이다. 굶주려도 부자(烏喙:附子)는 먹지 않으며 누구나 물과 불은 밟지 않는 것이 바로 앎이니, 사람이 악을 행하는 것은 오직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P529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08-28 0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벌써 이 책 하권 마지막을 향해 가시는 군요.
중국 통치자들이 이런 철학을 알았다면 ㅎㅎㅎ
[앎이 깊으면 행동은 반드시 지극해진다. 앎이 있는데도 행하지못하는 사람은 없다. 알지만 행할 수 없는 경우는 다만 그 앎이 천박한 때문이다. 굶주려도 부자(烏喙:附子)는 먹지 않으며 누구나 물과 불은 밟지 않는 것이 바로 앎이니, 사람이 악을 행하는 것은 오직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 문단은 인생 명구로 밑줄을 쫘!악 !^^

거리의화가 2022-08-28 05:30   좋아요 2 | URL
정이천의 말이네요^^ 말은 좋으나 말씀하신대로 실천했는지는^^ 진짜 얼마 안 남았습니다ㅎㅎ 생각보다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네요^^
 

중국철학사(하) - 11장 주렴계와 소강절


도학자로서 도교사상을 도학에 도입한 이들이 주렴계(이름은 돈이)와 소강절이다.

역설은 도교 내에 붙어서 전수되다가 북송 때 이르러 도학 안으로 도입되니 그것이 상수학이었다.

소강절의 세계연표는 역의 수를 바탕으로 천지의 시작과 끝을 규명한 것이다. 그 이전 도교나 불교에는 찾을 수 없었던 놀라운 사상이었고 이후의 도학자들의 우주발생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양의, 4상, 8괘, 64가 되는 이치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소강절의 태극도의 원리를 보고 이제는 눈이 좀 뜨이는 느낌이 든다.

태극도설은 중드의 도교에서도 단골 배경이 되는 개념이다.

『역』 「계사」에 "역에는 태극이 있고, 그것이 양의를 낳고, 양의는 4상을 낳고, 4상은 8괘를 낳으며, 8괘가 길흉을 결정하고, 길흉이 대업을 낳는다"고 했다. - P444

당시의 이른바 상수학(象數學)은 모두 진단에게서 비롯되었다는 말이다. 진단은 송나라 초기의 유명한산 신선(神仙)이었다.
황종염, 주이존 모두 염계 「태극도」의본래 이름은 「무극도(無極圖)」였다고 말했다. - P445

주렴계의 「태극도」가 도교와 관계가있음은 사실인 것 같다.
주렴계는 도사(道士)들이 수련을 논할 때 사용한 「태극도」를 취하여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그 그림을 해석한「태극도설」은 송명 도학파 내의 체계적인 저작의 하나이다. 송명도학파가 논한 우주발생론은 주로 그 설에 대한 부연이었다. - P446

사물은 통하지 못하나 정신은 만물에 신묘하게 작용한다(物則不通, 神妙萬物). - P447

「태극도설」은 오행을 "5기"라고 했고, 「통서」는 음양을 "2기"라고했다. 즉 염계는 음양오행을 모두 기로 여겼다는 말이다. 「통서」의이 구절 이름이「리성명(理性命)」장이므로 소위 "하나"란 리이고또한 태극이다. 태극은 리이고 음양오행은 기이다. 리·기 두 관념은송명 도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데, 그 의미는 주희에 이르러비로소 상세히 설명되었지만 염계가 그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하겠다. - P448

"건도(乾道)의 변화에의해서 [만물은] 각기 본연의 성(性)과 명(命)이 바르게 될 때" 성(誠)은 수립되며 순수 지선(純粹至善)하다. 따라서 "한번 음이 되고 한번 양이 되는 것이 바로 도이다. 도를 계승한 것이 선이고 도를 성취한 것이 성이다"고 했다. 원형(元亨 : 즉 사물의 발전단계)은 성(誠)의 통철함이고 이정(利貞: 즉 사물의 성숙단계)은 성의 복귀이다. 위대하다, 역이여! 성명(性命)의 근원이다. - P449

오직 중도(中)일 때만이 조화롭고 절도에 맞아 천하의 보편적인 도(達道)이며 성인의 일이다. 따라서 성인의 교육 방침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악한 점을 바꾸어 저절로 중도에 이르러 그 상태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 P450

우리는 중정(中正)으로써 자기를 규제하고 인·의로써 남을 다스려야 하며, 성인이 되는 수양방법은 주정(主靜: 고요를 근본으로 삼음)에 있다. - P451

이는 송명 도학자들이 늘 인용하는 예문이다. 누구나 막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면 생각할 겨를 없이 그 즉시 측은한 정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직각적인 일어남(直起)‘이고 이것을 바탕으로 발생하는 행위가 ‘직각적인 행동(直動)’이다. 이처럼 직각적으로 일어나는 생각과 이것을 바탕으로 발생하는 행동은 그것에 대한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고려해보지 않기 때문에 공명정대한 것이다. 따라서 "행동이 직각적이면 공명정대하다"고 했다.
전념과 그로부터 일어난 행동은개인적 이해(利害)가 그 안에 끼어들기 때문에 사사로운 것, 이른바 "사욕(私欲)"이다. - P452

‘생각이 없는 것‘은 ‘적연부동‘이고, ‘생각하여 통하는 것’은 ‘감이수통’이다. 그러나 이 "생각하지 않아도 무소부통하는" 경지에 도달하려면 우선 생각의 공부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생각이 어떤 공부인지 염계는 명백하게 말하지 않았다. 아마 그와 같은 공부는 우리마음 속의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 예컨대 맹자가 말한 "(덕행에) 반드시 정진하는 일"일 것이다. - P454

그 근본을 찾아보면 형체는 상에서 생기고 상은 수(數)로부터 베풀어진다. - P455

『역』「계사」에 "역에는 태극이 있고, 그것이 양의를 낳고, 양의는 4상을 낳고, 4상은 8괘를 낳으며, 8괘가 길흉을 결정하고, 길흉이 대업을 낳는다"고 했다. 강절의 우주론은 대체로 이것을부연하고 또 도상(圖象)으로 설명한 것이었다. - P456

태극이 분화되면 양의(兩儀)가 수립된다. ‘양‘이 아래로 ‘음‘과 교합하고 ‘음’은 위로 ‘양’과 교합하여 4상(四象)이 생긴다. ‘양‘은 ‘음‘과 교합하고 ‘음‘은 ‘양‘과 교합하여 하늘의 4상을 낳고, ‘강’은 ‘유’와 교합하고 ‘유’는 ‘강’과교합하여 땅의 4상을 낳는데, 여기서 8괘가 이루어진다. 8괘가 서로 섞이게되면 만물이 생긴다. 그러므로 1은 2로 나뉘고, 2는 4로 나뉘고, 4는 8로 나뉘고, 8은 16으로 나뉘고, 16은 32로 나뉘고, 32는 64로 나뉜다. 즉 음으로 나뉘고 양으로 나뉘면서 교대로 ‘유’·‘강‘이 작용하여 역(易)의 여섯 위치가 완전히 드러난다. - P458

"기"는 구체적 사물 즉 이른바 사물(物)이다. "기"와 신(神)의 차이점의 하나는 "기"는 결정된 것으로서 예컨대 이 사물이 이미 이 사물이면 저 사물이 될 수 없는, 이른바 "한 방향에 막힌" "고정된형체"이다. 따라서 역에서는 단지 상(象)만언급하여 "상을 빌려 형체를 고찰했다." - P460

생물은 동물과 식물 두 종으로 나뉜다. 동물은 또 짐승과 새 두 부류로 나뉘고, 식물은 또 풀과 나무 두 부류로 나뉜다. 그리고 각 하나하나의 사물마다 각각 그 성·정·형·체가 있다. 그것이 그와 같은까닭은 아마 천지의 "변"과 "화"와 상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와같은 천지가 있으므로 그와 같은 만물이 있는 것이다. - P465

성인은 주관을 내세우지 않고 사물에 맡기기(無我而任物) 때문에작위하지 않아도 이룩하지 않는 일이 없다(無爲而無不爲). 이는 도가의 설인데 강절 역시 주장했다.
주관을 내세우지 않고 사물에 맡기는 일은 또한 각 개인의 수양방법이기도 하다. 강절은 말했다. - P467

각 개인의 생명은 모두 시작이 있고 종말이 있다. 출생이 그의 시작이고 죽음이 그의 종말이다. 이른바 생사(生死)가 곧 시종(始終)이다. 『주역』「계사」에 "원시반종, 고지사생지설(原始反終, 故之死生之說)"이라고 했는데, 즉 어떠한 사물이라도 모두 시작이 있고 종말이 있는 것임을 이해하면 사생의 도리를 알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은 본래 매우 명백한 도리이지만 도학자들은 모두 이것을 놀랄 만한 발견으로 여겼다. 왜냐하면 불교와 도교는 바로 그 도리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도교는 수련(修練)을통해서 장생을 구하려고 했고 불교는 무생(無生)을 구했지만 무생 역시 일종의 장생이고 장생보다 더욱 오래 사는 장생이었다. 장생은 일종의 미신이었고 무생은 장생보다 더한 미신 중의 미신이었다. 만약 모든 사물은 다 시작이 있고 종말이 있는 것임을 안다면 사람의 사생 역시 자연에서 나왔으며 자연이란 위반할 수 없은즉 장생과 무생은 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 P473

무위(無爲)로써 정치하면 "황"이고, 은혜와 진실로써 정치하면 "제"이고, 공평과 정의로써 정치하면 "왕"이고, 지모와 무력으로써 정치하면 "패"이다. "패" 이하는 오랑케의 정치이고 오랑케 이하는 금수의 정치이다." - P4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 융합과 횡단의 글쓰기 정희진의 글쓰기 5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매 순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산다. 그때마다 생각해야 한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 P217


융합은 객관성을 새롭게 구성하기 위한 사유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기존의 인식을 넘어서는 것을 '트랜스버설(trans/versal)'이라고 하며, 횡단(橫斷)으로 번역한다. 단어 그대로 가로지르는 것이다. 가로지름(crossing)은 수직적인 수용이 아니라 기존의 법칙을 파괴하고 재생산하고 다른 의미의 생명체를 만드는 일이다. 

- P21


정희진은 글쓰기를 위한 방법론으로 융합 글쓰기를 이야기한다. 여기서 말하는 융합이라는 단어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융합은 더하기도 아니고 하나로 합치는 것도 아니고 전문성의 반대말도 아니다. 이는 crossing, 경계넘기다. 그녀는 횡단의 정치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핵심 메시지는 결국 융합(횡단의 정치)과 공부라는 키워드다. 이것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융합을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특히 2장의 테마는 공부가 주제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문해력은 자신의 가치관과 무지에 대한 자기 인식의 문제다. 그러므로 문해력 향상의 첫걸음은 에포케(epoche, 판단 정지)이다. '나는 모른다'는 자세가 공부의 시작이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해력부터 의심해야 한다. 물론 우리 몸에는 이미 많은 의미들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무지하다고 가정하는 데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공부가 중노동인 이유다. 

- P98


저자는 공부가 중노동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문맹률은 1% 이하일 정도로 높지만 문해력은 다르다. 문해력은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그럼 지식을 쌓으면 문해력이 증가하느냐? 그건 아니다. 문해력은 가치관과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지식인들이라고 자처하는 이들 중에서 "나는 고학력자고 많은 것을 아는데 (여성들이) 하는 이야기는 못 알아먹겠으니 너희들이 잘못인 것 아니냐!."라고 이야기하는 자가 있다면 문해력이 갖춰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공부를 해오면서 내가 부족한 점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판단중지'였다. 멈추지 않으면 자기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나가니 얻는 것이 있다고 해도 적을 수밖에 없다. 나는 어떤 질문이나 문제를 오래 가지고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해서 빨리 결론내려고 한다. 그런데 공부는 질문을 찾고, 품은 질문을 가지고 고민하고 공부하고 오래도록 모색한 끝에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다. 알고는 있는데 막상 항상 놓치는 부분이다. 나의 공부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지침이고 이는 평생 안고 가야할 숙제인 것 같다. 


쓰기가 최고의 공부이자 지식 생산 방법인 이유는 쓰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쓰기와 실험 외에 모르는 것을 아는 방법은 많지 않다. 생각과 읽기가 공부의 주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수학 공부의 이치와 비슷하다. 남이 풀어놓은 것을 이해하는 능력(읽기)과 자기가 직접 푸는 능력(쓰기)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수학 점수가 안 오르는 지름길이다. 

- P138


저자는 공부 방법으로 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쓰기 도중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점검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공부가 된다는 것이다. 하다 못해 책을 읽고 리뷰를 쓰지 않으면 기억의 휘발성이 더 강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책은 읽고 나서 기억 속에서 잊힌다. 하지만 리뷰를 쓰고 쓰지 않고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쓰는 과정에서 내가 읽은 부분에 대해서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배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글쓰기로 화두를 던졌다면 그것을 전개해나가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왜 세계관이 학과로 축소되어 게토(ghetto)화되었을까.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학과'로 불리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마르크스주의학과는 없다. 마르크스주의는 관점이자 사상으로 간주된다. 마르크스주의는 많은 분과 학문에서 이미 융합되었고 학문뿐 아니라 인류 역사를 바꾸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정신분석, 여성주의, 미학, 문학, 미술, 역사학, 사회학 등 수많은 분야에 응용되었지만, 여성주의나 생태주의, 평화주의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 P117~118


오늘날 학과의 구분만큼 무의미한 것이 있을까 싶다. 굳이 학과를 나누었으나 공부하는 내용은 겹치거나 해서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 현실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하나의 학문만 공부한다고 이해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상이나 가치관을 위해서는 여러 학문이 융합되어야 하고 상호 간 교차되어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낼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기초 한자 병기를 제안하면 비난하는 교사들이 많다. 한자는 한국어를 구성하는 결정적인 요소인데도, 한자 병기는 학생들의 학습량만 늘리고 사교육을 부추긴다며 염려한다. 그러나 외국어 조기 교육의 효율성과 중요성은 당연시된다(잘못 알려진 교육학 이론이다). 

- P126


한국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한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시스템에서 중요하게 바라보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배울 때만 해도 필수 과목은 아니었지만 배울 수 있는 기회라도 있었다. 저자도 이야기하지만 단순히 한글만 된 단어는 음만 같고 뜻이 다른 것이 태반이다. 한자를 병기하지 않으면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단순하게 "말"이라는 단어도 달리는 말인지 언어의 말인지 한글만 표현해서는 저 단어만으로는 알 수 없다. 책을 읽을 때 간혹 답답한 경우가 발생할 때가 한자어를 표기하지 않는 경우이다. 적어도 책에서는 한글과 한자를 함께 표기해야 오독을 범할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선택하는 능력과 안목은 융합적 사고뿐 아니라 개인의 인생에서도 핵심적인 부분이다. 안목은 그 사회의 수준과 개인의 노력, 환경의 총체다. 무엇이 중요하고 바람직하고 아름다운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판단력이 없는 사람을 만나서 잘못 엮이면 내 인생도 재앙을 맞는다. 파트너 선택이 가장 흔한 예다. 자기 프레임을 모르는 사람이 오피니언의 리더, 고위 관료, 통치자가 되면 역사는 수포로 돌아가고 민생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다.  

- P233


한국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계급'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빈자와 부자의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다는 것. 이것을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타개하려는 노력 없이 한국 사회에 미래가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어서인지 회의적인 생각만 든다.


저자의 말처럼 지금의 문제를 확인하고 나아가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기존의 프레임을 넘어서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존의 지식과 사고 체계와 보편적 관념으로 현재를 바라보는 것은 갈등만을 양산할 뿐이다.


융합은 원래 존재했고(혼종성, hybridity), 대화가 필요하며(learning), 기존의 지식을 넘어야 한다(trans~). 물론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하다. 

- P191


융합은 프레임 이동의 정치다. 

- P233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2-08-26 18: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 언제나 비슷한건 같지만 결코 같지 않은 매일 매일이군요~!!
마지막 융합에 관한 문장 좋네요 ^^

거리의화가 2022-08-26 21:13   좋아요 4 | URL
저는 솔직히 가장 소름돋은 문장이라면 그 문장을 꼽을 것 같아요. 그래서 리뷰 맨 처음에 적은 것입니다^^* 마지막 융합 문장도 좋죠? 이 책으로 인해서 횡단의 정치, 융합, 크로씽에 대한 개념을 잘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청아 2022-08-26 18: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가 다행히 문맹률은 낮은데 문해력은 꽤 떨어진다는 사실이 슬프게 느껴졌어요. 융합하려면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할 듯 한데 저도 회의적인편이라 갈길이 더 멀게 느껴집니다. ^^*

거리의화가 2022-08-26 21:15   좋아요 3 | URL
그러니까요. 문해력과 문맹률의 차이가 이리 클줄이야… 생각해보면 성인 중 대부분이 책도 잘 안 읽고 사유라는 것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까 싶어요^^; 알라딘 서재에 들어오시는 많은 분들은 그런 면에서 대단한 분들이라는! 특히 정치인들은 더한 듯합니다. 전형적인 기존의 개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분들이잖아요.

mini74 2022-08-26 19: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심심한 사과를 표한 업체에 분노한 사건이 인터넷에 떠돌더라고요. 사과를 심심해서 하냐고 ㅠㅠ 어떤 작가님이 문해력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라고, 설마 사과하며 심심하다의 뜻을 그렇게 썼겠냐며, 불신의 시대 뭐 그런 내용이었어요. 화가님 글의 융합이 그런 문해력의 문제해결에 열쇠같다는 생각듭니다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08-26 21:16   좋아요 3 | URL
ㅎㅎㅎㅎㅎ 미니님 빵터졌어요^^; 문해력의 문제 해결에 융합은 필수인 것 같습니다. 미니님 지적대로 이전 사고에 갇혀 있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울한 듯합니다…ㅜㅜ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희선 2022-08-28 0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기기도 하죠 자신과 다른 생각도 있다는 걸 알고 그게 어떤지 생각해 보면 좋을 텐데...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는 건 안 좋겠지만, 다른 것도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2-08-28 05:26   좋아요 1 | URL
기득권층은 너무 자신들을 안 바꾸려고 하는 것 같아요. 자신들이 가진 게 많으니까 지금의 이 질서가 바뀌는 걸 원치 않겠죠. 대기업 규제 완화,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나 변경 이야기도 나와서 가진자들만 배부른 세상이 되어가는 듯 싶습니다. 그들이 서민의 생각을 듣기나 하는지.
 


<교토의 밤 산책자>라는 책을 집어들고 읽으면서 예전 교토 여행이 떠올랐다.

'여행을 가는 것은 장소가 주는 힘이 큰 것이어서'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때 함께 했던 이들, 주변의 공기, 풍경들이 남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때의 느낌이 긍정적이었든 부정적이었든  느낌이란 건 참 오래가는 것 같다.

교토를 총 2번 다녀왔다. 일본을 총 4번 다녀왔는데 교토를 2번 갔으니 내겐 더 특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느덧 오래 전 일이 되어버려 어떤 장소를 다녀왔는지도 가물거린다.(불과 어제, 그제, 일주일 전 기억도 나지 않는데 기억이 온전할 리는 없다) 사진을 뒤적였다. 여행을 다녀와서 포토북을 만들어두었던 첫 번째 교토 여행은 어딜 다녀왔었는지, 어떤 감정이었는지 덕분에 명확히 보인다. 두 번째 다녀온 여행은 너무나 새로웠다. 그 때 포토북도 만들지 않았고, 인화한 사진들도 없고, 기록도 하지 않아서 사진을 보기 전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사진에는 위치 정보도 없으니 어느 곳엔가를 갔었나보다 중얼거린다. 하지만 사진을 보지 않았어도 어느 곳에 앉아서 술을 마셨던, 그 때가 너무 좋았는지 그 느낌만은 또렷하다.

교토를 처음 갔을 때 겨울이었다. 내 생일 무렵 즈음이었는데 언제나 그렇듯 급작스럽게 준비하고 떠났던 여행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기요미즈데라가 있는 것을 알았다. 금각사는 워낙 유명한 곳이라 알고 있었고. 사실 이 두 곳만 봐도 목표는 달성하는 것이었으나 기온과 니조성까지 4군데를 오전부터 시작해서 반나절 안에 다 돌아보았다는 것이 놀랍다. 이 날 내 다리에 족저근막염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과욕을 부렸지.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교토에 최소 1박을 했더라면 그렇게 처절하게 돌아다니지는 않았을 것인데 시간의 압박에 쫓겨 충분히 즐기지 못했던 것 같아 아쉽다. 덕분에 옆지기와 싸울 뻔도 했었다.

기요미즈데라는 듣던 대로 장관이었다. 연애점으로 유명한 곳이었다는 것은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네. 나는 기요미즈데라를 올라 광장 같은 무대 안에서 밖을 바라보며 '아. 이래서 여길 오는구나.' 마치 높은 산에서 산 아래를 바라보며 도심을 바라보는 것 같달까. 만약 내가 고소공포증이 없었다면 자유낙하의 상상을 해보지 않았을까.

기온은 가게들을 구경하는 맛이 있는 곳이었다. 다만 내가 돌아다녔던 시간은 일요일 한낮이 되기 전 무렵이어서 가게 주인과 관광객들의 모습만 보게 되어 아쉬웠을 뿐이다. 거리는 께끗했고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지도 않아서 구경하기에도 좋았다.


금각사는 말 그대로 황홀경이었다. 건물이 수면에 비친 모습이 장관이었고 저 금붙이들을 보고 있자니 보면 볼수록 놀라웠다. 다만 건축의 재료 뿐만이 아니라 1, 2, 3층의 건축 양식이 모두 달라서 가치가 있다 느껴졌다. 시간이 넉넉했다면 아주 오래 그곳에 머물며 금각사를 바라보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많았고 시간은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간 것을 후회하지 않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니조성은 마지막에 급하게 결정된 곳이었다. 헌데 무엇 때문에 리스트에 넣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니조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으로 지어진 성으로 궁전과 여러 개의 정원들, 해자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의 대결에서 최종 승리하며 이 성에 들었지만 짧은 역사를 뒤로 하고 이 성은 막부 말기까지 중앙 무대에서 내려온다. 나는 화려한 니노마루 궁전의 정문과 넓은 해자, 잘 꾸며진 정원, 본당의 건물들이 인상적이었다. 건축 지식이 얕아서 설명을 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오반자이라고 하면 '교토 가정식'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가정식이라는 말에 걸맞게 가게 내부가 좁다. 짧은 카운터와 테이블은 두어 개에 그칠 때도 많다. 예약 손님만으로 가게가 다 차기도 한다. 구글맵에서 주변의 식당이나 술집을 찾을 때 오반자이 전문 식당이고 밤에 영업을 한다고 나와 있으면, 대개 이런 분위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단골 장사를 하는 집들도 많아, 앉아서 술을 곁들여 이것저것 먹고 있으면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서, 마스터와 친숙하게 대화를 나누는 광경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두 번째 여행은 3월이었다. 매번 춥거나 더운 계절에만 여행을 했던지라 꽃이 피는 봄을 선택한 것이다. 3월 마지막 날 무렵이어서 벚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대부분 그때쯤 만개를 한다 들었고. 하지만 역시 체험은 다른 것이었다. 막상 도착하니 이제 꽃망울이 올라오고 있었다. 만약 내가 일주일쯤 교토에 있었다면 만개한 벚꽃을 볼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러기엔 이번에도 교토 스케줄은 반나절 뿐이라 울며 겨자먹기로 돌아보아야 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이 때의 여행은 사진 말고 남은 게 없어서 어딜 갔다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만개한 벚꽃을 보지 못하고 시기를 놓친 아쉬움이 기억을 통째로 날린 건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비교적 많이 핀 벚꽃나무 아래에서 썩소를 날리며 사진을 찍고 평상에 앉아서 술을 마셨던 것만은 분명히 기억한다. 흩날리는 벚꽃이 아니었어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쌀쌀한 날씨이긴 했으나 볕이 따뜻해서 날씨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 때의 사진이 마음에 들었는지 윈도우 계정의 프로필 사진은 그것 중 하나로 여전히 사용중이다. 그래도 어딜 다녀왔는지는 알아두어야겠지. 사진을 기반으로 열심히 검색을 했다. 내가 다녀온 것은 바로 은각사와 마루야마 공원이었다. 그러니까 술을 마셨던 곳은 마루야마 공원의 어느 평상이었던 셈이다. 은각사가 떠오르지 않았는데 내가 일본식 정원에 다녀왔다는 것을 사진을 보고서야 알았다. 아! 이곳이 은각사의 정원이었어.

은각사의 정원은 특별했다. 일본식 정원의 진수를 보여준다. 하얀 모래로 그려놓은 그림, 주변의 돌들, 나무들, 꽃들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어 감탄을 자아낸다. 사다리꼴 모양을 한 거대한 모래탑(후지산을 본떴다고 한다), 잘 꾸며진 연못, 관음전을 돌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금각사는 사실 건물만으로 이목을 끈다고 한다면 은각사는 건물을 비롯한 정원과 자연이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일본식 정원의 백미를 느낄 수 있는 훌륭한 곳이었다.


마루야마 공원은 순전히 벚꽃을 보기 위한 장소였다. 벚꽃은 비록 덜 피었어도 충분히 좋았다. 벚꽃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이 곳이 벚꽃 명소임을 깨닫게 했다. 볕이 따뜻해서 호젓하니 산책하기에도 좋고 사람들 구경하는 맛도 있고 무엇보다 평상에 앉아서 볕과 바람을 느끼며 마시는 맥주의 맛은 일품이었다. 그 때가 오후 4시 넘은 무렵이었는데 어느새 해가 좀 기울고 있을 때였다. 얼마나 마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때 찍은 사진들은 하나 같이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좋은 감정은 사진으로도 나타난다. 이 때의 느낌이 참 좋았어서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가볼 수 있을까.





인생은 너무나 자주 애매한 곳에서 갈등하도록 생겨먹었다. 돌아가지도, 앞으로 가기도 애매하다. 나의 인생은 왜 매번 이러한지. 이런 갈등이 없는 때가 바로 벚꽃 철학의 길이다.

작정하는 방식의 특성상 정원을 완성하는 것은 자연 그 자체, 특히 계절이다. 일본 정원의 작정 철학은 자연을 인공적으로 조성하는 데 있다. 나무를 둥글게 깎아 모양을 다듬거나 뒷배경을 차단해 정원을 좀 더 통제 안에 둔다. 키 큰 나무들을 병풍처럼 둘러 세우는 경우도 많다. 한편 중국은 자연에 근본을 두되 자연보다 나은 형태를 만들고자 하고, 한국은 담양 소쇄원처럼 지형을 살려 정원을 조성하고 건물을 올린다. 이것을 인지제의因地制宜라고 한다.

책은 교토의 봄을 즐기는 법, 정원, 가게와 볼거리, 맛집 같이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관련 장소에 어울리는 책이나 영화 등을 소개하여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돋운다.
여행 주제로 쓴 책은 많지만 가이드는 1, 2년만 지나도 예전 것이 되어 새로 사보아야 하는 아쉬움이 있는 반면 에세이는 설사 책에 등장한 건물이 실상 없어졌다고 해도 글과 사진의 조각을 통해 독자를 그 길로 인도하는 행복을 준다. 이 책은 후자의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08-25 11:1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인생은 너무나 자주 애매한 곳에서 갈등하도록 생겨먹었다. 돌아가지도, 앞으로 가기도 애매하다. 나의 인생은 왜 매번 이러한지. 이런 갈등이 없는 때가 바로 벚꽃 철학의 길이다.]
오늘의 명언, 명문장으로 밑 줄 쫘악!✍

교토의 진짜 아름다움은 가을입니다
교토에서 태어난 친구가 벚꽃이 흔날리는 계절 보다
단풍으로 붉게 물들어 도시 전체가 불타오르는 순간이 진짜 교토의 아름다움이라고 !ㅎㅎ

일본 이제 엄격한 입국 심사 없앴고 코로나 검사나 백신 접종 여부 안따집니다
화가님 올해 꼬옥 교토에 ^^

거리의화가 2022-08-25 11:18   좋아요 5 | URL
근데 옆지기가 이젠 여행에 흥미가 떨어졌는지 움직일 생각을 안하네요ㅎㅎㅎ 저도 단풍 좋아해서 가을에 가보고 싶습니다. 불타오르는 황홀경을 즐기고 싶네요~~~

프레이야 2022-08-25 11: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 교토를 소환해 주셔서 추억이 새록새록 넘 좋아요. 이 책 보고 싶어지네요. 전 남표니랑 늦가을 초겨울 단풍 이쁠 때 갔었어요. 맥주 맛나고 우나기도 맛나고. 오코노미야끼도 교토식은 조금 다르더군요. 니조성도 그렇고 도시샤대학까지 갔었는데 학생들이 마침 축제기간이었어요. 몇 년 후 다리 나아지면 다시 걸어보고 싶은 교토, 동주가 걸었던 천변 밤벚꽃 핀 길을 가봐야겠어요. ^^ 여행에세이의 장점이 드러나는 책 같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8-25 12:58   좋아요 3 | URL
교토를 소환해주셨다고 감사합니다. 공간이 주는 마법이랄까요. 장소가 담긴 사진을 보니 과거의 추억으로 훅 빠져드는 것이지뭡니까.
단풍 이쁠 때 두분이서 함께한 여행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사진들 보니 둘이서 먹은 술이 왜 이리 많아를 생각했어요ㅋㅋㅋ 여행하려면 다리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죠. 저도 첫 여행 때 너무 걸어서 족저근막염이 와 한동안 조심했었더랍니다. 그 후에도 무리하다 싶으면 도져서 적당히 걷고 있습니다. 교토 저도 다시 한번 다른 계절에 가보고 싶어요~*^^*

mini74 2022-08-25 12: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화가님과 잠시 교토를 걷는 기분이 ㅎㅎ 전 조카가 교토대 교환학생으로 가서 한 번 가봤어요. 맛집 투어만 한 ㅎㅎ 교토대 낡은 기숙사 건물 등도 볼 만했어요.~~ 스콧님 댓글 보니 가을에 한 번 가보고 싶네요 *^^*

거리의화가 2022-08-25 13:00   좋아요 4 | URL
교토는 자고로 걷는 맛이 있는 곳이더군요! 제 다리가 좀 더 튼튼하고 일정이 더 길었다면 참 좋았겠다 싶은 곳이었어요. 오~ 교토대 가셨었군요. 저는 그때는 가볼 생각을 못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옆지기에게 말했다면 대학 건물을 왜가? 라고 핀잔먹었겠지만ㅋㅋㅋ 저도 교토의 가을은 한번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바람돌이 2022-08-25 14: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니조성 꾀꼬리복도로 유명하잖아요. 암살자를 막기 위해 복도를 삐걱거리게 만들어 놨는데 그 소리를 새소리가 나게 만든.... 걷는데 진짜 신기하더라구요. 전 저기 니조성 입구에서 배가 고파서 편의점 도시락 까먹었던 기억이.... ㅎㅎ
벚꽃 필 때 가을 단풍때 다시 가보고싶지만 현실은 늘 땡볕한여름 아니면 한겨울입니다. ㅠㅠ

거리의화가 2022-08-25 14:44   좋아요 5 | URL
앗 바람돌이님 덕분에 기억이 소환이...ㅋㅋ 맞아요 그 끽끽대던 소리^^ㅎㅎㅎ 어둑어둑하던 건물 내부가 그 소리 때문에 더 소름끼쳤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직장인이라 늘 여름휴가, 겨울휴가 때만 이용해서 가서 봄은 딱 한 번 여행으로 끝이 났던-_-;ㅋㅋㅋ

모나리자 2022-08-25 14:5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교토 여행 추억이 떠오르네요. 키요미즈데라, 금각사 은각사는 물론 좋았구요.
아라시야마도 참 좋았어요. 11월 초에 갔는데도 단풍이 안 들어서 아쉬웠고 살짝 더웠었지요.
벌서 6년이 지났다니요. 좋은하루 보내세요. 거리의화가님.^^

거리의화가 2022-08-25 15:36   좋아요 5 | URL
저는 기요미즈데라 12월에 갔었는데 단풍이 좀 남아 있던 걸 보면 단풍이 꽤 시기가 늦는 것 같아요. 아라시야마도 좋으셨겠습니다. 대나무숲도 있으니 여름에 가보는 것도 좋을텐데 하는 생각도 했어요.
저도 2번째 교토에 다녀온지 어느덧 10년이 다되어갑니다. 시간이 너무 빠르네요ㅠㅠ 모나리자님도 남은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희선 2022-08-26 0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은 교토에 두번 갔다 오셨군요 오래전이어서 잊어버렸다 해도 사진이 있어서 사진을 보면 생각나기도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적어두기도 하셨군요 교토는 걷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윤동주나 정지용이 생각나기도 하는...


희선

거리의화가 2022-08-26 09:11   좋아요 2 | URL
네. 사진이 있어 추적(!)에 도움을...ㅎㅎㅎ 저는 여행에 가면 계획을 세우는 편이었고 그래서 일정표도 만들었어요. 여행중에도 노트에 기록을 남기고 돌아와서는 포토북으로 인상적이었던 사진과 글을 실어 만들어두는 편이었어요. 하필 두 번째 교토 여행은 사진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기억이 더 희미하더군요^^;;; 역시 그래서 결론은 포토북은 항상 만들어두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사진 인화를 해두는 것도 좋고요^^
이 책에 윤동주는 나오지 않지만 정지용에 관련된 내용은 나왔어요.

새파랑 2022-08-26 17: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금각사가 그 금각사군요 ㅋ 저도 교토 가보고 싶네요. 전 도쿄만 한번 가봤는데 서울이랑 너무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좀 그랬었습니다 ㅋ

거리의화가 2022-08-27 07:45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교토 참 좋았어요. 언젠간 기회가 되면 가보세요.
도쿄는 음... 고즈넉한 풍경을 생각하기엔 어렵죠. 오히려 골목 여행을 하시는 것이 더 좋았을수도 있는데~ㅎㅎ 저도 도쿄는 짧게 2일 정도만 보냈지만 나름 재밌었어요. 오락실도 가고 대관람차도 타고 가게들도 구경하구요.
 

중국철학사 - 도학의 흥기와 도학 중 도불의 요소

1. 한유
한유는 맹자를 몹시 추존했는데 그로 인하여 맹자가 송명 도학파의 중요 근거 전적이 되었다. 하지만 한유는 불교를 배척했어도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한유가 대학을 인용하면서 대학도 송명 도학파의 중요 근거 전적이 되었다.
한유가 “도”를 제시하여 도통설의 근원을 만들었다.

2. 이오
한유는 이오와 사우지간이었다고 한다.
정과 성, 성인이 되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중용을 인용하면서 중용이 송명 도학파의 중요 근거 전적이 되었다.
유가의 학문에서 예악은 윤리적인 것이었으나 이오는 “성”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보았다.

한유는 「원도(原道)」에서 말했다.
널리 사랑하는 것이 인(仁)이고, 이치에 맞는 행위가 의(義)이며, 이 인의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도(道)이고, 자신에게 충족되어 있어 바깥에 기댐이없는 것이 덕(德)이다. 인·의는 고정된 이름이고, 도·덕은 공허한 자리이다.
그러므로 도에는 군자·소인이 있고, 덕에는 길 ·흉이 있다.…………성현의 글에
"옛날 천하에 명덕을 밝히려는(明明德) 자는 우선 자기 나라를 다스렸고, 나라를 다스리려는 자는 우선 자기 가정을 다스렸고, 가정을 다스리려는 자는 우선 수신(修身)했고, 수신하려는 자는 우선 마음을 바르게(正心) 했고, 마음을바르게 하려는 자는 우선 뜻을 참되게 했다"고 했는바, 옛날에 이른바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참되게 한 것은 장차 일을 도모하려는 것이었건만 지금은마음을 다스린다며 천하 국가를 도외시하고 하늘의 영원한 이치를 했으니, 아들이면서 아버지를 아버지로 여기지 않고 신하이면서 임금을 임금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지금) 오랑캐의 법을 선왕의 가르침 위에 두었으니 모두가 오랑캐가 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 P419

정은 스스로 정이 되지 못하고, 성에 의지하여 정이 된다. 또 성도 스스로 성이지 못하고 정으로 말미암아 밝아진다.

무릇 밝음이란 어둠에 대립한 것이므로 어둠이 멸하면 밝음도 성립되지 않는다. - P424

성(誠)이란 성인이 본성으로 삼는 경지로서(성인에게나 자연스러운 경지로서), (이 경지의 성인은) 고요히 움직이지 않으나(寂然不動) 넓고크고 맑고 밝아 천지를 비추며, 감응하면 천하의 모든 현상에 두루 관통하며(感而遂通天下之), 행하고 머물고 말하고 침묵할 때마다 항상 법도에 맞게 처신한다. - P425

작은 일에도 성(誠)은 깃들 수 있고, 성(誠)하면 나타나고 나타나면 뚜렷해지고 뚜렷하면 밝아지고 밝으면 감동되고 감동하면 변화되고 변화하면 감화되는즉, 오직 천하의 지성(誠)의 인물이라야(천하 만민을) 감화시킬 수 있다.

도란 지극한 성(誠)을 뜻한다. 성에 이른 다음 계속 정진하면 마음이 비워지고, 마음이 비워진 다음 계속 정진하면 밝아지고, 밝아진 다음 계속 정진하면 온 우주의 현상을 하나도 빠짐없이 이해하게 되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성명(性命)을 온전히 발휘시키는 도였던 것이다. - P426

송명 도학자들은 모두 당시에 흥미있게 생각된 문제들은 유가의 전적 내에서도 상당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송명 도학자들은 모두 유가의 전적 내에서 당시에 흥미있게 생각된 문제들의 해답을찾았다. 이오와 송명 도학파가 말한 성인은 윤리적이 아닌 종교적또는 신비적 성인이다. 그들이 말한 성인은 그저 예컨대 맹자가 말한 "인륜의 극치인 인물이 아니라 인륜을 극진히 발휘하고 예악을 행하여 수양이 지극한 경지, 즉 우주와 합일하는 경지에 도달한사람이었다. - P428

모든 것을 인식하고 모든 것을 도모하면서도 마음이 고요하여 천지를 환하게 비추는 것이 바로 성(誠)의 밝음이다. 『대학』에 ‘치지는 격물에 있다(致知在格物)‘고 했고, 『역』에 ‘역(易)에는 생각도 없고 작위도 없다. 고요히 움직이지 않고 감응하여 천하의 모든 현상에 두루 관통하는 일(感而通天下之故)은 천하에서 지극히 신령한 인물이아니고서 그 누가 이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감히 묻건대 ‘치지는 격물에 있다‘고 함은 무슨 말입니까?"
"물(物)이란 만물을 뜻하고, 격(格)이란 도래하고 이른다는 뜻이다. 사물이도래할 때 그 마음은 명명백백히 그것을 변별하지만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바로 ‘치지‘이고 삶의 지극함이 지극하기에 뜻이 참되어지)이다.
고(意誠) 뜻이 참되기에 마음이 바르게 되고(心正) 마음이 바르기에 몸이 수양되고(身修) 몸이 수양되었기에 집안이 화목하고(齊) 집안이 화목하기에나라가 다스려지고(國理) 나라가 다스려졌기에 천하가 화평해진다. 이것이 바로 천지와 더불어 나란히 셋이 될 수 있는 까닭이다. - P430

송명 도학의 기초와 윤곽은 당대(唐代)에 이미 한유와 이오에 의해서 확정되었다. 이오의 공헌은 한유보다 더욱 컸는데 그의 학설에 미친 불교의 영향은 더욱 현저했다. - P432

이오와 송명 도학자들 모두 사람들로 하여금 유가의 부처가되게 하려고 했는데, 유가의 부처는 반드시 일상의 인륜생활 속에서 성취되어져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이오와 송명 도학자들이 불학을 유학 내로 끌어들이면서도 여전히 배척한 이유였다. - P433

도교에서 차용한 유가의 경전은 그 대표이다. 『역』은『주역』이본래 점치는 데에 쓰였고 복서(卜)란 원래 술수의 일종이었으므로 『역』은 음양가의 경전이기도 했다. 도교의 경전은 『역』에 근거한 것이라고 자처한 것이 많았다. - P435

과학에는 두 측면이 있다고 하는데, 하나는 확실성을 중시하는측면이고 또 하나는 권력을 중시하는 측면이다. 오직 사물에 대한확실한 지식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지배할 권력을 가질 수 있다. - P440

왕충은 우리의 지식은 반드시 우리가 경험 속에서 실험할수 있는 것이어야 비로소 참되다고 여겼는데, 우리가 왕충에게 과학정신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왕충의 학설은 음양가와 반대의 위치에 있지만, 양자 모두에 과학정신이 있었다고해도 무방하다. 하나는 확실성을 중시했다면 하나는 권력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 P440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08-24 2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저자 펑유란, 천재 철학자
문혁 때 마오가 가만 두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ㅜ.ㅜ

거리의화가 2022-08-25 09:07   좋아요 1 | URL
문화대혁명 때 희생당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죠. 우리나라도 비슷한 사건들이 너무 많았어서... 싸잡아 몰아 정치사상범으로 몰아서 수많은 사람들의 세월을 낚아버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