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와 작가 연구를 한 사람이 아니면 대뜸 작품 하나만 가지고는 뜻이 오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그렇다면 예술은폐쇄 사회를 만든 게 아닌가? 내 말은 유행가를 쓰라는 게 아니야.
역사적인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는 동시대인들에게만은 적어도 알수 있는 형태와 감동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이야. - P14

하늘을 나는 모포와 사이렌의 피리는 살아 있다. 그러나 손오공의 여의봉은 어디있는가? 그들의 경우 과거와 현재는 이어져 있으나 우리는 끊어져있다. 전위前衛, 보수(保守란 말은 우리들의 경우 이중의 뜻을 가지고 있어. 우리들에게도 전위란 여전히 서양적인 것일 수밖에 없지만, 정작 그 상대는 보수적 서양과 동양이라는 두 겹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저들은 단단한 벽돌 위에 얹힌 풍차와 싸우고있으나 우리는 허공중에 거꾸로 매달린 허깨비와 싸우고 있어. 우리는 돈키호테도 될 수 없어. 저들은 낡은 신화를 부수고 새 신화를 세우기 위해 시를 쓰지만, 우리에게는 부술 신화가 없고, 서양의 그것은 서양 시인들이 부술 것이며 동양의 그것은 이미 폐허가돼버렸으니 부술래야 부술 수 없어.우리들은 패배한 종족이야. - P18

여러분의 조국은 여러분을 버리지 않을것입니다. 여러분의 부모 형제자매는 마의 38선을 넘어서 그리운 당신들을 우리들의 품에 안을 날을 고대합니다. 자유로운 조국.
민주주의의 나라. 유토피아……… 그것은 아버지의 목소리였으며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이 집안에서 그 목소리가 전하는 말을 의심할 사람이 있을 턱이 없었다. 준에게는 그것이 진리보다 더한 것이었다. - P26

죄의 기쁨 속에서도 이야기의 세계는여전히 매력이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거꾸로 선 세계, 물구나무선 마음의 나라였다. 이야기가 더 현실적이고 현실이 더 거짓말같은 질서였다. 이 같은 죄의 기쁨을 위해서 그는 나중에 값을 치러야만 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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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아르테미시아 - 최초의 여성주의 화가
메리 D. 개러드 지음, 박찬원 옮김 / 아트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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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아르테미시아> 라는 제목을 보고 아르테미시아라는 화가를 이 시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등의 의미로 정한걸까 짐작했었다. 하지만 이는 그녀의 묘비명이라고 한다. 알고 나니 내가 생각했던 이유보다 제목이 잘 선정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르테미시아 하면 으레 떠올리는 대표작이 있다. <유디트> 시리즈. 나는 그 중에서도《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라는 작품을 보고 어딘가 낯선 느낌이 있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우피치 미술관>에 있다. 벌써 10여년 전 일이지만 이탈리아에 여행을 갔을 때 우피치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봤던 것이다. 수면 위에 잠자고 있다가 기억이 떠오른 것. 우피치 미술관에서 유명한 작품은 사실 보티첼리의 <봄>이나 카라바조의 그림들, 라파엘로의 <성모 승천> 등이지만 나는 아르테미시아의《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를 보고 당시에도 강렬한 느낌을 받아서 기억 속에 박혔었던 것 같다. 심지어 내가 그 때 한국어판 도록을 샀었는데 확인해보니 그곳에도 이 작품이 들어가 있어 반가웠다. 이건 마치 운명이랄까. 소름의 연속이었다.



이 책에는 아르테미시아 개인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그녀의 이야기만 담겨져 있지 않고 당시의 환경에서 활동한 다양한 작가들과 화가들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시기별로 정리되어 있어서 흐름을 쫓아가다 보면 마치 당시를 여행하듯 탐사하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다양한 여성 지식인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당시의 환경 속에서 남성 지식인들에 대항하여 어떤 목소리를 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아르테미시아는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활동하였다. 따라서 당시의 역사와 예술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라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다만 외국인 이름들이 줄기차게 나오는지라 너무 그 이름에 의식하다보면 힘들 수 있으니 적당히 넘어가는 센스를 발휘하기를 권고한다.


이쯤에서 그녀의 개인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지. 그녀는 아버지의 동료로부터 그림을 도와주다가 성폭행을 당하고 재판정에서 자신이 당했던 수치를 밝혀야 했다. 아버지의 동료라는 작자도 열받지만 나는 아버지란 사람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딸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1620년 이후에 아버지와 말도 섞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둘은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달랐던 게 분명한 듯하다. 


그러나 얼마 전 <완전한 이름>을 읽으면서 생각한 바가 있었다. 사람들이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의 서사에 함몰되어 그녀의 작품에 정작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맞는 이야기다. 그녀는 예술가이자 화가이다. 개인사가 극적이라고 해서 그것에 주목하다보면 작품은 상대적으로 뒷전이 될 수도 있다. 이제는 정말 그녀의 개인사보다는 작품으로  평가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책에는 다양한 그녀의 그림들을 만날 수가 있다. 직접 보고 오롯이 느껴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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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6-27 22: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그녀의 그림 너무 훌륭한데 그녀의 삶의 서사에만 집중하고, 또 <유디트>만 떠올리는 것 같아요.
저도 갖고 있는 책이예요!

거리의화가 2022-06-27 21:49   좋아요 3 | URL
네 맞습니다. 이야기보다는 예술가니까 그의 작품으로 평가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다양한 작품이 많으니 좀 더 그것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 책 역시 좋았습니다~ 그녀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도 보여주고 또 당시의 사회상도 알려주어서 좋았습니다^^

희선 2022-06-28 03: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르테미시아 몰랐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밑에 그림 다른 데서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고도 잊어버렸겠지요 아르테미시아를 말하는 책이 이게 처음은 아닐 텐데... 한번 보고 잊어버리면 다른 걸로 만나도 괜찮겠지요 거리의화가 님은 저 그림을 실제 보셨군요 보고 기억에 남았다니... 그 사람 삶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남긴 그림이나 글도 중요하겠지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06-28 07:45   좋아요 4 | URL
아마 희선님도 한 번쯤은 본 그림일 수도 있을 겁니다. 실제로 본 그림을 책에서 만나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개인의 삶이 승화된 예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파랑 2022-06-28 06: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글에서 자주 보던 그림이군요~!! 역시 예술의 영감은 개인적 경험에서 오는건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화가님의 닉네임에 딱 어울리는 책이군요 ^^

거리의화가 2022-06-28 07:47   좋아요 4 | URL
ㅎㅎ 10년 전 그림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것이 신기합니다. 그만큼 강렬한 느낌이었던 거겠죠. 아르테미시아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고 이야기도 만날 수 있어 좋은 책이었습니다^^*

mini74 2022-06-28 13: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름 전문화가로서 운영도 잘 하신거 같아요. 저도 리뷰 남겨야 하는데 ㅎㅎ작품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만 하죠 ~

거리의화가 2022-06-28 16:08   좋아요 2 | URL
지난 번에 올리신 게 리뷰 겸 올리신 거 아니에요?ㅎㅎ 미니님 글 읽으면서 이 책 찜했던 기억이 나네요~^^ 유익했던 책이었습니다. 늦었지만 감사해요~
 

지난 주말에도 새벽 5시에 일어나 밥을 챙겨먹고 6시쯤 나와서 동네 산책을 했다.

토요일에는 햇볕이 나서 그나마 뽀송했는데 일요일은 후텁지근해서 끈적끈적하니 별로였다.

물론 막상 걷고 나니 기분은 좋았다~

점점 더워지니 아침저녁 시간에 운동을 하러 나오는건지 사람들이 많아짐을 느꼈다.

오늘 아침 출근길도 습기 가득한 바람이 불고 끈적대는 공기에 불쾌지수가 저절로 높아진다.


주말까지 연이어 3권의 책을 읽었다.

한 권은 연구서라 하루 종일 읽어야 했지만 나머지 두 권의 책은 짧아서 긴 시간 들이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어쩌다보니 세 권의 책들이 모두 성격이 다르다.

한 권은 워낙 유명한 소설인 <프랑켄슈타인>

다른 한 권은 <여기, 아르테미시아>

마지막은 <구술로 본 한국현대사와 군>




<구술로 본 한국현대사와 군>은 6월에 읽을 책으로는 더 없이 적절한 책이었다. 지난주에 읽은 <와다 하루끼의 북한현대사>에 연이어 읽으려고 했던 의도였다.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 <여기, 아르테미시아>의 주인공인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 모두 선구안을 지닌 인물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둘은 작가와 화가로 직업도 다르고 살았던 시기도 다르지만 머무르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든다.

주어진 조건이 부당하다는 것을 느끼고 도전 의식을 가지는 것에는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니까.

역사의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 사건도 수없이 일어나는 마당에 한낱 개인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묻히기는 얼마나 쉬운가.

하지만 틈새를 조금씩 깨나아가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얼마 전부터 아버지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온다.

어른들이 보내는 메시지란 그 인터넷에 떠도는 시나 좋은 문장이 적혀 있는 이미지 그런 것이다.

어쨌든 무응답은 아닌 것 같아서 답장을 보낸다.

헌데 답장을 보내야 한다는 의무감에 기계적으로 응답하는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스쳐서 민망함이 일 때가 많다.

부모님께 잘해야지 하는 생각은 드는데 나는 살가운 표현이 너무 간질거려서 무뚝뚝함으로 흐르기만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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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6-27 1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저희 엄만 자꾸 아파트 놀이터 근처에 있는 비둘기를 그렇게 찍어 보내세요 ㅠㅠ 저 비둘기 무서워하는데 ㅎㅎ 저도 애교란 사전에만 있다고 한평생 살아와서 ㅠㅠ 살갑기는커녕 밥은? 안 아프남? 병원은? 알았다. 밥 무라엄마 끝 ㅠㅠ 화가님 맘 알거 같아요 ㅠ

거리의화가 2022-06-27 10:33   좋아요 2 | URL
자식들에게 뭐라도 보내고 싶은 부모님 마음일텐데 저는 뭐라고 답변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어렸을 때도 무뚝뚝하긴 했는데 점점 가면 갈수록 더 무뚝뚝해지는 느낌이. 여동생이 있는데 저와는 반대로 아주 살가운 편이거든요~ 맨날 비교당합니다^^; 표현도 갑자기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네요ㅠㅠ

바람돌이 2022-06-27 10: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책 3권이라뇨. 심지어 저 두꺼운 연구서까지 끼워서 말입니까? 와 진짜 대단.
저는 책 보려고 앉아도 주의 산만으로 내내 이거하다 책보다 저거하다 책보다 결국 얼마 못보고마는데 말이죠. ㅎㅎ
방금 댓글 달다가도 청소기 돌리고 왔음요. ㅎㅎ

제가 아프니까 시어머님이 내내 전화하셔요. 걱정이 되시고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그런건 알지만 온갖 민간처방들을 자꾸 알려주시면서 해봐라 해봐라 하시니까 대답은 네네 하면서도 스트레스 약간 올라오는 중.... 부모님들의 마음은 우리가 따라가기 어렵고, 삶의 방식도 서로 다르니 그 간극은 어쩔수가 없는거 같네요. 그저 마음상하지 않으시게 대답만 잘..... ㅎㅎ

거리의화가 2022-06-27 11:12   좋아요 3 | URL
ㅋㅋ 연구서이긴 하지만 페이지 수가 그리 많진 않습니다. 3권인데 따지고 보면 목요일부터 읽었구요. 암튼 저는 오히려 연구서 읽는게 마음이 더 편합니다. 재미는 없는데 그 재미없음 속에서 찾아오는 묘한 평화랄까.ㅋㅋ 문학 읽기가 저는 더 어려운 것 같아요~ㅋㅋㅋ

안 그래도 병원 다니신다는 거 봤는데 넘어지셨다는 글 보고 마음이 안 좋더군요ㅠㅠ 저도 안경을 쓰는지라 안타까움이 더 컸어요. 그래도 타박상 정도라고 하셔서 다행입니다.
어른들 마음은 다 그런가봐요~ 걱정되시겠죠. 잔소리로 듣지 않도록 노력은 하는데 그 마음을 따라가기는 역시 어려운 것 같습니다^^;
몸조리 잘하셔요!ㅎㅎㅎ

그레이스 2022-06-27 12: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ㅠㅠ
방금 엄마랑 전화통화했는데,,,
찔리네요.

거리의화가 2022-06-27 13:04   좋아요 3 | URL
아이고 그레이스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자식들이 살갑기보다는 그 반대의 경우가 많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부모님 돌아가시면 후회할 걸 알면서도 왜 이리 살가운 표현이 어려울까요ㅠㅠ 그래도 요즘은 감사하다는 말은 꼭 전하고 있어요. 의무적이든 기계적이든 어쨌든 부모님은 그런 메시지 하나에 고맙다고 느끼시더군요~^^;

레삭매냐 2022-06-27 19: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날이 꿉꿉하네요.
장마철이 드디어 몰려온
모양입니다.

어른들이 보내 주시는 톡
을 보고 성심성의껏 덧글
을 달아야지 하면서도 잘
되지 않더라구요 ㅠ

거리의화가 2022-06-27 21:51   좋아요 2 | URL
3~4일 정도 됐나요~? 공기가 아주 물기가 가득하네요~^^;

표현이라는 게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더 진심어린 표현이 될텐데 별다른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책하게 되더군요~^^ 좀 더 마음을 써야겠습니다.

희선 2022-06-28 03: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났지만 주말에 책 많이 보셨군요 저는 유월엔 더 못 보는데... 마음이 잡히지 않는 건지, 얼마전에는 책 잘 좀 보자고 했는데... 실천이 안 됩니다

기계처럼 응답한다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아무 말도 안 하는 것보다 나을 듯합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2-06-28 07:43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희선님 어쨌든 부모님은 어떤 말이든, 표현이든 해주면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막판에 읽은 책들은 아주 두꺼운 책들은 없어서 그리 읽을 수 있었던 듯합니다. 주말에 책 읽을 시간이 나다보니ㅎㅎ 감사합니다.
 
구술로 본 한국현대사와 군 현대한국구술사연구 총서 3
정용욱 외 지음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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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현대한국구술사연구사업단이 "한국현대사와 군"이라는 주제로 2009년부터 10년에 걸쳐 구술 채록을 한 것을 바탕으로 연구한 결과물이다. 100명이 넘는 군 관련 인물의 증언을 수집했고 933시간 분량의 동영상과 음성 파일, 녹취록 등의 결과물이 나왔다. 이 구술 자료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현대한국구술자료관의 아카이브를 통해 누구나 확인 가능하다.(mkoha.aks.ac.kr)

군은 한국현대사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에도 그동안 군의 활동에 대한 연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당 연구는 한국현대사의 또 하나의 자료로서의 기능과 군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위해 군 관련 인사들의 증언을 수집했다는 것에 의의를 지닌다. 다만 한계성도 있다. 구술한 군의 인사들이 군을 대표한다고 하기에는 인원의 수가 너무나 적고, 또 인사들 대부분이 고령의 나이(1920년대 생이 많음)인데다 사건이 발생하고 이미 많은 시간이 흐른 뒤이기 때문에 그 기억을 온전히 믿기에는 어렵다고 본다. 그럼에도 이 연구의 장점은 국방부에서 공식으로 내놓은 자료들과 비교할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같은 인물이라도 군 공식자료에서 이야기한 내용과 이 내용이 다른 경우가 있었다.

해방 후 살아남아 귀국한 학병들 중 일부는 군대를 만들려는 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미군정이 한국에 들어와 한국군 창설에 직접 참여할 때 학병들이 중심 역할을 했다. 한국군 창설 초기에 좌익 성향의 군인을 솎아내는 숙군 작업이 전개됐다. 과거 전력이 있는 인물이나 특정 인물에 대한 개별적인 감시가 이루어졌고 1947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것이 여순사건 이후 육군 정보국 주도 하에 전군 차원으로 확대되었다. 월남인들은 대부분 정치 사회적 동기보다는 연고 없는 낯선 땅에서의 삶과 생활고, 교육의 연장 등 개인적 동기이거나 본인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한국군에 가담했다. 월남인들은 대체로 분단 상황을 단기적인 것으로 보고 홀로 내려온 경우가 많았다. 곧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시간이 길어지자 먹고 살기 위해 군 입대를 하게 된 경우가 많았다. 미군은 한국군에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군대를 만들려고 시도했으며, 이 때 한국군 장교들이 선발을 거쳐 미국으로 유학을 가 교육을 받았다. 1965년 이후에는 서독으로 군사 유학을 가는 경우가 생겼다. 이후 군사유학을 미국으로 가느냐 서독으로 가느냐에 따라 군인의 진급 및 정체성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의 '독자적 작전권'에 대한 미군과 한국군의 갈등이 첨예했으나 지휘권은 한국군이, 작전권은 미군이 갖는 방식으로 결론이 났다. 이는 한국군의 군수물자의 보급과 수당 등을 사실상 미군에 의존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애초부터 한미동맹 관계의 틀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한진, 현대 등의 한국기업은 베트남특수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끌어 모았다. 한진과 미군은 서로 용역을 제공하고 대가를 지불받는 관계였는데 한진이 수행하는 용역제공에는 미군과 한국군의 맹호부대에게 미군으로부터 받은 물자를 수송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맹호부대는 한진이 물자를 수송하는 과정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969년 말부터 베트남에 주둔하던 미군이 부분 철수하고 군비절감정책이 추진되었는데 이 때부터 한국 기업들도 나누어 철수하였다. 베트남전에서 비정규전이라는 특성상 우호적 대민관계 유지가 중요했고 한국군은 특수교육대를 통해 전투 기술과 더불어 대민 관계 관련 교육을 실시했다. 그러나 실제 교육 내용은 빈약하여 대다수 한국군은 베트남 현지 문화와 습속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로 베트남에 도착했다. 베트남에서 한국군은 구호사업, 건설사업, 의료사업, 농경지원, 자조사업 등에 주력하여 필요한 물자와 자금을 미군에게 지급받아 사업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한국군의 민사작전은 긍정적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도난사건, 교통사고, 살인, 성범죄 등의 사건에 연루되며 베트남의 민간사회와 충돌했다.

하나회는 비밀 사조직으로 관련 인물들이 육군본부 인사과의 주요 보직을 차지하면서 군내 인사권을 장악했고, 주로 선후배나 동기들과의 관계에 따라 형성된 인맥이었다. 이들은 고위층이나 재벌로부터 활동비를 받기도 했고 하나회 선발은 은밀하게 이루어져서 동기들 간에도 알 수 없는 구조였다. 하나회가 세간에 알려진 것은 1973년 '윤필용 사건'이다. 수도경비사령관 윤필용이 술자리에서 이후락에게 "각하의 후계자는 형님이십니다"라고 말한 것이 발단이 되어 체포되었고 윤필용이 하나회의 후원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하나회 이름이 거론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윤필용과 그 부하들이 쿠데타 혐의로 군법회의에 넘겨졌으나 전두환과 노태우 등은 살아남아 12.12 사건을 넘어 신군부의 주체가 되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박정희 정권의 자주국방을 실현시키기 위한 핵심기관이었다. 70년대 초에는 모방에 가까웠고 70년대 중반 이후가 되어서야 자체기술개발과 무기개발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 이후가 되면 미국이 한국의 자주국방정책을 경계하여 자주국방정책은 적극적으로 추진될 수 없었다.

이 책을 통해서 한국군이 창설되는 과정과 한국전쟁 시기의 군의 역할, 베트남 전쟁에서의 한국군의 모습, 한국군이 정권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군에 대한 시각이다. 해방 이후 극렬한 좌우 대립에서 소련군과 미군이 인민군과 국군에 미친 영향을 느낄 수 있다. 장우주 같은 인물의 발언은 뼛속같이 친미파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해못할 바는 아니라고 본다. 배고픈 와중에 미군이 건넨 초콜릿 하나에 넘어가듯이. 어쨌든 미군은 여전히 한국군에 미친 영향이 너무나 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미군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이후 베트남전에서 국군이 행한 일들은 불편하고 눈살이 찌뿌려질 수 밖에 없다. 군은 여전히 작전 수행으로 행한 일이라고 명명하지만 그것이 감춘다고 감추어질 일인가. 여러 증언을 통해서 이미 상당 부분이 수면 위로 올라와 있는 상태인데 말이다. 진정한 사과와 보상이 필요하지 않을지.
또한 하나회와 윤필용 사건에 대해서는 이름만 들어보고 제대로 사건에 대한 전개, 이면을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또 자세한 이야기를 확인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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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6-27 09: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나회가 이렇게 시작된거군요. 정말 잘 읽었어요 화가님 ~~

거리의화가 2022-06-27 09:30   좋아요 2 | URL
네 미니님 저도 하나회 전두환 노태우 법정에 서면서 이름만 듣고~ 이면에 복잡한 사정이 많더군요. 하긴 비밀 사조직이었으니 누가 불지 않는 한 수면에 드러나지 못했겠죠^^

바람돌이 2022-06-27 12: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은 1차 자료가 되겠네요.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 정말 존경스러움요. 그걸 읽어내는 화가님도 존경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2-06-27 13:03   좋아요 3 | URL
네 맞습니다. 10년 동안의 작업이라니요. 녹취를 하고 그걸 정리하면서 발췌하고 자료 조사도 병행해야하니 얼마나 어려웠을지. 연구자들의 녹과 공으로 저는 자리에 앉아 편하게 읽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읽어주는 독자가 있어야 이런 작업이 지속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존경은 그분들께!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2-06-27 19: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서독으로 간 이들의 후예가
훗날 독사파가 되지 않았나
추정해 봅니다.

일본군 내의 고질적 병폐인
파벌다툼이라는 악습을 유
산으로 건네 받은 게 큰 문
제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6-27 21:46   좋아요 0 | URL
독사파라고 하셔서 잠시 웃음이...^^;
저는 일본군의 악습과 잔재 중에서 받은 가장 큰 문제가 군기와 상명하복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파벌 다툼도 있지요~ 이 때문에 현재 정치가 이리도 난투극을 벌이는 걸까요-_-;

그레이스 2022-06-27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정희, 하나회, 소설 무기의 그늘 ... 여러 비화들이 막 생각나네요
저도 잘 읽었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6-27 21:47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뿌리 깊은 군의 개입은 우리 한국 현대정치와 뗄레야 뗄수가 없더군요. 하필 전쟁이 연이어 일어났고 세계는 냉전이었으니 더욱 개입하기 좋은 조건이긴 했던 것 같습니다.
 
[eBook] 프랑켄슈타인 - 세계문학전집 094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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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아, 내게 입힌 이 상처를 끝내 후회하고야 말 것이다.'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사람의 시체로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킨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피조물의 모습을 본 빅토르는 경악하고 도망친다. 괴물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지만 인간들은 그의 모습을 흉측하게 바라보고 혐오감을 표출할 뿐이다. 그렇게 그는 방황하면서 떠밀려 간 어느 집 축사에 몸을 숨긴다. 여기서 한 가족을 만나고 그들의 생활을 통해 무지에서 언어를 익히고 나아가 책을 읽는 능력까지 키운다. 또 따뜻한 마음을 품은 이들이기에 자신을 받아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된다. 하지만 그들도 이전에 사람들이 자신을 봤던 것과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일 뿐이었고 괴물은 충격을 받고 분노한다. 이 분노는 자신을 만든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복수로 변하고 빅토르의 가족들을 망가뜨릴 계획을 세운다. 빅토르를 만나 자신과 같은 이성의 형체를 만들어달라고 하지만 그는 그 요구를 거절한다. 마침내 빅토르가 낳은 괴물은 자신의 계획을 결행한다.

괴물은 자신이 원해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을 창조한 주인에게도 거부 당하고 인간 세계에 비친 그의 모습은 이질적이다는 이유로 매도당한다.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받아줄 친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단 한명이라도 그의 마음을 받아주는 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가 건 기대와 희망은 절망으로 변했다. 이는 지금까지 수많은 역사가 증명했듯 인종이 다르다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그것이 폭력의 빌미가 되는 인간 세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괴물이 우연히 얻게 된 책들을 읽으면서 지력을 키워나가는 모습은 교육의 순기능을 떠오르게 한다. 아무 것도 모르던 사람도 말을 듣고 또 말이 쓰여진 언어를 익히고 나아가 그 언어가 쓰여진 문장을 읽어 나가는 행위는 결국 사고력을 키우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한국의 교육열은 아주 높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때 남한의 지역도, 북한의 지역도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학교를 열어 교육을 했다는 기록을 본 적이 있다. 교육에 대한 열망은 개인을 발전시키고 나아가 사회에 이득이 되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연구의 대상과 목적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만드는 지점도 있었다. 현대의 과학 기술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극단적인 예로 편리하다는 이유로만 어떤 물체가 만들어진다면 과연 그 연구는 옳은 것일까. 윤리와 도덕적 측면이 바탕에 있지 않으면 그것은 위험한 연구가 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는 지구라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도 필요한 생각으로 여겨진다. 인간만 홀로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지 않나. 공생을 생각하지 않고 지구를 마구잡이로 비틀어, 현재 자연과 동물은 비명을 지르는 사태가 발생되었다.

메리 셸리의 글발의 탁월성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했는데 곳곳에 등장하는 책의 인용문은 그녀가 얼마나 많은 글을 읽었고 독학했는지 여실히 증명해준다. 젊은 베르테르를 통해서 박탈과 우울을 이야기하고, 플루타르코스를 통해 고결한 사고를 이야기하는 등 말이다.

액자 구성이 눈에 띄었다. 이 글은 로버트 월턴이 세빌 부인에게 전하는 서한에서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그 내부에는 프랑켄슈타인과 가족들 간의 서한도 존재한다. 사실 이런 액자 구성의 글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프랑켄슈타인의 서사와 그것을 외부자가 바라보는 서사가 이 책에는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 교육, 자연, 인간. 이 책에는 다양한 키워드를 뽑아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어떤 시선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하나의 사건도 다른 경험으로 느낄 수 있는 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야말로 이상적인 목표였다. 내가 최초로 돌파해 어두운 세상에 폭포수처럼 빛이 흘러들게 만들었기에. 새로운 종(種)이 생겨나 조물주이자 존재의 근원인 나를 축복하리라. 헤아릴 수도 없는 행복하고 탁월한 본성들이 내 덕에 탄생하리라. 나만큼 자식의 감사를 받아 마땅한 아버지는 이 세상에 다시없으리라. 이런 생각들을 따라가던 나는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지금은 불가능해도) 시간이 지나면 겉보기에는 죽음으로 부패된 육신에도 새 생명을 줄 수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 어째서 인간은 짐승보다 훨씬 우월한 감수성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것일까? 그로 인해 훨씬 더 유약하고 의존적인 존재가 될 뿐인데. 우리의 욕망이 굶주림, 갈증, 그리고 성욕에 국한되었다면, 거의 완전한 자유를 만끽하는 존재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바람 한 줄기, 우연한 한 마디, 아니면 그 말로 전달되는 풍경 하나하나에 흔들리지 않는가.

나는 무엇이었던가? 내 탄생과 창조주에 대해 나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돈도, 친구도, 사유재산도 전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흉악하게 일그러진 추한 외모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사람과 같은 본성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보다 훨씬 더 민첩했고, 더 형편없는 식사를 먹고도 견딜 수 있었다. 지독한 열기와 추위를 견디고도 몸이 덜 상했다. 키는 사람보다 훨씬 더 컸다. 주위를 둘러봐도 나 같은 존재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나는 지상의 한 점 얼룩 같은 괴물일까? 모든 사람들이 도망치고, 모든 사람들이 내치는?

지구는 인간에게 위험하고 공포로 가득한 곳이 될지도 모른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영원히 이어질 후세에 이런 저주를 퍼부을 자격이 있는 것일까? 전에는 내가 창조한 존재의 궤변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 악마의 협박에 무너져 분별을 잃었다. 그러나 이제 처음으로 그 약속의 사악함이 내게 밀어닥치는 것이었다. 후대가 나를 종족의 역병과 같은 존재로 저주할 거라는 생각에 온몸이 떨렸다. 일신의 평안을 구하는 대가로 전 인류의 생존을 주저 없이 팔아버린 이기적인 인간으로.

우리 감정이란 얼마나 변덕스러우며, 이 참담한 불행의 극한에서도 끝내 놓지 못하는 목숨에 대한 애착이란 얼마나 기이한 것인가!

그들을 향한 내 사랑은 얼마나 괴롭고 괴로웠던가! 심지어 눈을 뜨고 있을 때도 내 온 마음을 사로잡던 그네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얼마나 필사적으로 매달렸으며,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으려 얼마나 애썼던가. 그런 순간 내 안에서 불타던 복수심은 심장 속에서 죽어버리고, 그 악마를 파괴하기 위한 행보는 내 영혼의 열렬한 갈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늘이 내린 사명, 나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힘의 기계적 충동 같았다.

내가 저지른 악행들은 억지로 견뎌야 했던 지긋지긋한 고독이 낳은 자식들이다. 그러니 동등한 존재와 함께 살게 된다면 미덕들도 당연히 표면으로 떠오를 것이다. 그때는 내가 지각 있는 존재의 애정을 느낄 것이고, 지금은 이렇게 소외되어 있지만 존재와 사건의 사슬과도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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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6-25 11: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한테 좋은 책은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것과, 어느 시대에든 인간에게 통용될 수 있는 보편성이 나타나 있는 책인데 프랑켄슈타인이 이 두가지를 주었어요.
특히 지금 시대를 이 책으로 고민할 수 있어 좋았어요 sf소설에서 요즘 많이 등장하는 인공반려인의 문제도 그렇고요.
김영하작가의 신작에서도 이 프랑켄슈타인이 연상되더라고요^^

거리의화가 2022-06-25 21:16   좋아요 3 | URL
네 페넬로페님 저도 배울 거리가 있는 것, 그것이 특수하지 않고 어느 시대나 장소에 통용될 수 있는 것이어야한다고 생각해요 프랑켄슈타인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한국 SF문학도 보편성을 다루면서 다양한 형태의 방식으로 이야깃거리를 던져주면 좋겠습니다.

청아 2022-06-25 11: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저는 비슷한 우려를 가지고 있는데요 그 영향력은 전인류적임에도 불구하고 윤리적문제에 대한 고민은 극소수의 과학자들에게만 맡겨진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최근 구글에서 내부고발이 나왔었는데 결국
‘어떻게‘는 없고 ‘혁신‘만
있는것 같아요. 게다가 발생되는 문제는 비공개로 처리하니
두려움만 키우는 꼴이죠ㅠ

거리의화가 2022-06-25 21:19   좋아요 2 | URL
미미님 말씀대로 기술이라는 것에 윤리나 도덕의 고려가 없다면 아마 이 세계는 파괴의 길로 나아가고 말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각하면 섬뜩하네요. 근대 이후 집약적 과학 기술의 발달이 이루어졌지만 얻은 것이 있기도 한 반면 많은 손실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인류가 고민해봐야 할 지점인 듯 합니다.

페크pek0501 2022-06-25 12: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잘 쓰셔서 이 책을 제가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 생각하게 만드시네요.
책을 읽으며 성장해 나가는 것 - 제가 좋아하는 지점입니다.
곳곳에 등장하는 인용문 - 그 인용문이 뭔지도 궁금해지는 책이네요.^^

거리의화가 2022-06-25 21:22   좋아요 4 | URL
앗 페크님 과한 칭찬이십니다^^; 저는 문학 읽는 것도 어렵지만 리뷰 쓰는 것은 더 어렵네요ㅠㅠ
성장이야말로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지요. 인용문은 너무 많아서. 워즈워스를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의 문장이 등장합니다. 직접 읽어보시면 더 감흥이 오실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2-06-27 19: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엔가 소설 <프랑켄
슈타인>을 느즈막이 만나게
되었는데, 그간 알고 있던 이미
지와 너무 달랐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영화
는 별루였지 싶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6-27 21:48   좋아요 2 | URL
영화도 있군요~ 뭐든 원작이 있는 영화는 원작이 더 나은 듯 싶습니다^^;

제목이 주는 강렬함보다는 내용이 주는 메시지가 다양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희선 2022-06-28 03: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생각하지 않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면 안 될 텐데, 만들었다면 책임을 져야 할 텐데 책임도 지지 않고 바로 버렸네요 그러니 괴물은 이름도 없고 그저 괴물이라 하는군요 사람이 편하게 살려고 만든 것 때문에 지구가 안 좋아졌네요 만들 때는 그걸 몰랐겠지요 사람은 그런 게 없으면 살기 어려우니...


희선

거리의화가 2022-06-28 07:40   좋아요 3 | URL
인간들의 욕심으로 지구에 재앙이 오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ㅠㅠ 괴물을 피하는 이들의 속내는 결국 자신과 같지 않은 존재를 내치고 싶은 욕망이겠죠. 편리함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더욱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