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 친정에 다녀오니 3일의 연휴가 훌쩍 흘렀다.

역시 도로 위에서 뭔가를 보기에는 쉽지 않다는 걸 다시 느꼈다. 오디오북을 들으려 했으나 옆에 사람이 있으니 졸음운전하지 않나 체크도 해야 하고 차들이 옆에 휙휙 지나가니 집중도 안되어서 포기했다. 심지어 차는 왜 이리 막히는지…ㅠㅠ
시댁이 원래 3시간이면 가는 거린데 거의 곱절이 걸렸다는.

오늘 오후에야 짬이 나서 다시 두 권의 책을 이어서 읽었다.
이슬람 세계, 남아시아와 인도양에 대한 주제였는데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관점이 얼마나 제국주의적인지 절감하며 읽었다.

집 근처에 얼마 전 카페가 생겨서 궁금해 가보았다. 내부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가격도 4천원에 커피맛도 괜찮아서 종종 이용할 것 같다.

금요일 오전에는 집 근처 운동장에서 걷고 달리며 운동을 했다.
하늘이 어찌나 이쁘던지 보는 내내 감탄했다. 운동할 맛 나는 요즘이다.

그리고 목요일에 도착한 책들이었는데 <역사비평>과 <역사문제연구>는 구독중인 책이라 산 책들은 아니다.
다음달 초에 살 책을 미리 당겨서 산 것이다(그놈의 적립금 때문에). 이 중에는 몇몇 친구분들의 서재에서 보고 산 책들도 있고 다음달에 읽어야 할 책이기에 산 책도 있다.

남은 연휴는 세계사 완독을 끝내는 것이라도 해야겠다.
다행히 화요일까지 휴가를 썼으니 그나마 좀 더 시간 확보가 되어 다행이군.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2-09-11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2-09-12 0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은 휴일
화가님 속속 도착한 책들 완독을 향해!
(๑>؂<๑)۶

희선 2022-09-12 0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 갔다 오면 시간이 더 빨리 가죠 연휴나 쉬는 날은 별거 안 해도 시간이 잘 갑니다 한 것도 없는데 사흘이 다 갔어요 거리의화가 님 남은 연휴 책과 함께 즐겁게 보내세요


희선

새파랑 2022-09-12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은 연휴 마지막날 책과함께 알차게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어제 <다락방의 미친 여자> 리뷰 보다가 책 두께 이야기가 계속 오르내리기에 웃음이 나왔다.
지금 읽고 있는 책하고 두께가 비슷해서 둘이 붙여놓고 찍으니 진짜 흉기 수준이네.
두께만큼이나 양질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책들인 것 같다.
두꺼운 책들이 집에 많아서 가끔 서재가 무너지는 것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들 때가 있다.





헤비타트 후원 선물이 도착했다.
김구, 윤봉길 시계와 가죽 케이스인데 기념의 의미로 가질 만한 것들이다.
왼쪽이 김구 시계, 오른쪽이 윤봉길 시계였던 것 같다.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의 시계 교환 이야기는 다들 아실 것이다. 시계 교환은 생과 사가 갈리기 전 어쩌면 의식의 교환 같은 것이 아니었을지.


그제 새벽 출근길에 안개가 많이 끼었던 날이었다. 
산신령 나올 법한 음산함이 느껴지기도 하네.





내일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시댁에 내려가야해서 마음이 조급해지진다. 짧디짧은 연휴지만 알차게 잘 보내야지.
아마도 차에 있는 시간은 토지3 오디오북을 들을 것 같고 집에 있는 시간 동안에는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을 마저 열심히 읽을 계획이다.
모두 추석 명절 잘 보내시길^^*



댓글(21)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2-09-08 08: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과연 호신용으로 쓰기에
적합해 보입니다. 분주한 출근 길에.

거리의화가 2022-09-08 08:46   좋아요 3 | URL
ㅎㅎㅎㅎ 날리면 정말 다칠 듯한 위압감이 느껴집니다^^;
추석 명절 잘 보내세요!ㅎㅎㅎ

다락방 2022-09-08 08:4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같이 찍어주신 세계사 책도 사이즈가 어마어마하네요!!

거리의화가 2022-09-08 08:47   좋아요 2 | URL
네. 워낙 두꺼운 책입니다. 책 페이지수도 거의 둘이 흡사한 듯 싶더군요. 둘이 붙여놓으니 정말 흉기...들이!ㅋㅋ

수이 2022-09-08 09: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책에는 흉기가 많아서 걱정 없겠어요! 시계 아름다워요, 시댁 잘 다녀오시고 일은 조금만 하세요!

거리의화가 2022-09-08 10:49   좋아요 2 | URL
ㅋㅋㅋ 네 걱정없지요^^
시계 생각보다 이쁘네요. 어차피 감상용이자 소장용이지만^^ㅎㅎㅎ
비타님도 추석 연휴 잘 보내시길!

책읽는나무 2022-09-08 10: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계!!!!! 부럽네요.
갖고 싶은 굿즈들 화가님이 하나씩 다 소장하고 계신 듯 합니다ㅋㅋㅋ
휴가같은 추석연휴 되시길 바랍니다^^

거리의화가 2022-09-08 10:50   좋아요 3 | URL
ㅋㅋㅋ 지난달에 알라딘 시계도 주문했었는데 어쩌다보니 시계가 3개가 되었네요ㅎㅎㅎ 실물로 보니 괜찮아서 마음에 듭니다.
휴가 같은 연휴가 되면 좋겠습니다. 나무님도 연휴 즐겁게 보내시길^^

청아 2022-09-08 10: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화가님 회중시계가 참 고급져 보입니다. 세계사 책은 지난번에 찜해두었는데 역시 만만치 않군요! 그래도 <다락방의 미친..>과 함께 두면 둘이 외롭지 않겠습니다. 즐거운 한가위보내세요*^^*

거리의화가 2022-09-08 11:13   좋아요 2 | URL
네. 생각 이상으로 고급져서 놀랐습니다.
ㅎㅎ 만만치 않은 책이지만 미미님이 만약 읽으신다면 어떠실지 궁금합니다. 둘이 붙여놓으니 안정감 들고 좋지 않나요?ㅎㅎㅎ 미미님도 명절 때 어디 이동하시나요? 맛있는 음식 드시고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2-09-08 14: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두꺼운 책을 뚝딱 읽어내시는 거리의화가님, 존경합니다.
시계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야하는데 시계의 예쁜 모양이 눈에 들어 오네요 ㅠㅠ
추석 명절 잘 보내세요^^

거리의화가 2022-09-11 10:47   좋아요 1 | URL
부끄럽습니다^^ 시계 이쁘죠ㅎㅎ 이뻐서 하나는 책상 위에 꺼내놓았어요^^
남은 명절 편안하게 보내세요^^

새파랑 2022-09-08 17: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시계 엄청 멋지네요 ^^ 흉기도 두개나 보유하신 화가님. 시계도 두개~!!

거리의화가 2022-09-11 10:48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흉기 두개만이 아니지만ㅋㅋ 역시 열심히 읽는데 진도는 더딘 책입니다^^ 시계 멋지죠ㅎㅎ

희선 2022-09-09 02: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시계 멋집니다 저도 다른 것보다 그걸 먼저 생각하네요 명절에 시집에 가시는군요 아주 편하지 않다 해도 편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거리의화가 님 안전하게 잘 다녀오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09-11 10:49   좋아요 2 | URL
네 시댁갔다가 어제 저녁쯤 집에 왔습니다^^ 지금은 친정가는 중이에요. 희선님 남은 명절 편안하게 보내세요!

scott 2022-09-09 1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앤틱 시계!
바테리 엄청 큰거 넣어야 작동 할 것 같습니돠!

화가님 추석 연휴 풍요롭게!

보름달 여기 놓구 가여
⁎ ˚ 𓄼 ﹒
﹒ 𓆇 . ˚
. ⁎
˚ . ♡🌕

거리의화가 2022-09-11 10:50   좋아요 1 | URL
엔틱하죠^^ 배터리가 넣어져 와서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네요^^
스콧님 보름달 잘 받았습니다. 남은 연휴 편안하게 보내시길^^*

mini74 2022-09-09 13: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계사책 !!! 헉 !! 진정한 흉기네요 화가님~ 조심히 다녀오세요. 즐거운 추석 보내시고 ~ 전 굽기전에 북플 잠깐 봐야지 하면서 계속 보고있음 ㅠㅠㅠ ㅎㅎ 화가님 시계들 의미도 있고 예쁘기까지 합니다 ㅎㅎ *^^*

거리의화가 2022-09-11 10:53   좋아요 1 | URL
미니님 명절 잘 보내고 계신가요. 시댁갔다가 어제는 넘 피곤해서 책 읽다가 졸다가 결국 일찍 잠들었습니다ㅋㅋㅋ 시계가 의미있어 저도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후원한 돈이 독립운동가분들의 집 수리와 보완에 잘 쓰이길 바랄뿐입니다. 남은 명절 편안하게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2-09-11 17: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 권이면 10만원은 바로 넘어갈 것 같네요^^;
독립운동가분들께 후원하는 방법, 알아본 적도 실은 없었는데, 거리의화가님 참 대단하세요!! 멋지십니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세기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금과 그때의 장소와 환경은 서로 다르지만 여성들의 이야기가 여전히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다. 과연 이 책을 내가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독자로서 할 일은 열심히 읽고 정리하는 것으로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09-08 08: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마음이 딱 제 마음!! ^^

거리의화가 2022-09-08 08:49   좋아요 1 | URL
근데 읽을 일이 걱정이긴 합니다ㅋㅋㅋ 목차만 봐도 위압감이ㅠㅠ 열심히 읽을 일만 남았네요. 그 전에 일단 소설들부터!^^

책읽는나무 2022-09-08 1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성과 감성>을 읽으면서 점점 깨닫게 되는 무언가가 있긴 한 것 같아요.
처음엔 진부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다락방의 미친 여자들>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많이 읽고 저도 보답하고 싶네요~^^

거리의화가 2022-09-08 10:52   좋아요 2 | URL
저 지금 <맨스필드파크> 읽고 있는데 <이성과 감성>보다는 더 재밌다고 느껴지더라구요. <이성과 감성>이 가장 초기작이고 <오만과 편견>, 그 다음이 <맨스필드파크>인데 순서대로 읽으니 흐름이 느껴져서 좋습니다.
좋은 책이니만큼 잘 읽고 나누어야겠어요.
 

1부 ~ 2장 러시아

소빙기에 떨어진 전 세계의 기온은 1640년 무렵에 최저점에 이른다. 신대륙과 일본에서 유입되는 은의 흐름이 방해받자 중국의 물품 가격과 시장 활동이 줄어들었고, 그러자 통치자들은 세수 부족에 정치적인 파당 싸움과 함께 군사적인 소요와 전염병의 어려움을 겪었다. 비록 우리는 이러한 각 요소의 상대적인 중요성을 확언할 수는 없지만, 명의 몰락과 청의 부상은 같은 원인을 공유하는 전 세계적인 위기의 일부로서 지역적인 조건에 따라 조절된 것으로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위기에 이어 유라시아 전역에 강화(통합)와 회복의시기가 왔으니, 새 정권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농업 생산이 개선되었으며, 군사적인 팽창이 재개되고, 상업이 다시 번성했다. - P121

1760년까지 청의 가장 역동적인 세 황제는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다. 그들은 제국의 영토를 거의 세 배로 확장해서 120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게 했고,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한족에 중심을 둔 왕조들의 경쟁자, 즉 중앙유라시아의 목축 유목민들을 완전히 복속시켰으며, 새 언어와 종교와 생활 방식을 가진 새로운 민족들을 자신의 통치 영역에 포함했다. 명보다 청의 통치 엘 - P125

리트들은 그 구성이나 문화적 관점 면에서 훨씬 다양했다. 청은 번역, 지도 제작, 그리고 왕조에 새로 들어온 새 민족들에 대한 민족지 조사 등의 방대한사업들을 후원했는데, 이 사업은 18세기 말의 거대한 백과사전식 학술 사업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18세기 중엽이 되자 그들이 촉진한 수많은 제도적 개혁과 함께 제국 팽창의 근본 동력은 멈추었다. 이런 의미에서 18세기중반은 청의 역동성의 정점이었다. - P126

러시아인들은 북경에 모피를 팔고 싶었고, 청은 다가오는 준가르 몽골과의 싸움에서 러시아의 중립을 원했다. 이것이 중국이 유럽 세력과 동등한 조건에서 맺은 최초의 조약인 1689년의 네르친스크 조약이다. 그 후 1727년의 샤흐타 조약이 뒤따라, 두 제국 사이의 국경을 대부분 확정하고 통제하의 국경 교역을 확립했다. - P130

18세기 중반에 청은 환경 위기의 증대에 직면했을까? 일부 외국인 및 현지 관찰자들은 긴장의 증가와 가난 및 재난 증가의 징조를 언급했지만, 비교연구적 관점에서 당시 청은 서유럽의 인구 과밀 지역들보다 인구가 과잉이거나 자원의 부족을 겪지는 않았다." 하지만 국가가 농업 기반을 얼마나 잘 유지하느냐에 많은 것이 달려 있었다. 상평창이 제대로 작동하고, 수로가 유지되고, 충분히 납득할 만큼 정직하고 통찰력 있는 관리들이 상관들의 밀접한감독하에 공공의 복지에 헌신하는 한 백성들은 번영을 누렸다. 18세기 중반이후에 시작된 것처럼, 일단 관료제의 효율성이 감소하자 중국은 더 빈번하고혹독한 자연적·정치적 위기에 빠져들었다. - P132

18세기 중반이 되면 황제와 그의 관료 및 수많은 보통 중국인(한족)들은통치 체제를 상당한 자부심과 만족감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었다. 만주인들은 질서를 회복했고, 농업 및 상업의 성장을 고취했으며, 제국의 영토를 대대적으로 넓혔다. 그들은 내외의 가장 큰 군사적인 위협을 제거했으며, 새로이등장한 서방의 힘을 격퇴했다. 국고는 여유분이 있었고, 기근 구제 기구들은가난을 구제했으며, 그 사이에 농부들은 자신들을 위한 새 땅을 개간하러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사회적 변화에 대한 저변에 깔린 두려움 또한 존재해 이는 공식적인 담론이나 법률 변동에 반영되었다. - P135

몽골 제국이 붕괴한 후 중앙 및 북부 유라시아는 여러 칸국으로 나뉘었다. 티무르제국)의 짧은 흥기와 몰락은 더 큰 격변을 불러왔고, 15세기 중반까지 다시 주도적인 통치자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그 사이에 몽골 칸의 후계자들은 서서히 영향력을 잃어 갔다. 그러나 1450년 무렵부터 모스크바의 대공이 느리지만 안정적으로 영토와 군사력을 늘려 북유라시아 전체를 망라하고 서쪽으로 유럽 열강과 경합하는 거대한 국가를 만들었다. 1750년에 러시아 국가의 면적은 정점의 약 4분의 3에 도달했다. 1820년에 정점에 이른 러시아 국가는 1800만 제곱킬로미터 면적에 인구 4200만 명을 보유했다. 러시아는 서쪽의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에서 동쪽으로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만주와국경을 접하는 광대한 면적과 다양성을 갖춘 제국이 되었다. - P138

장기간에 걸친 몽골 제국의 해체와 뒤이은 티무르의 대파괴는 중앙유라시아에 힘의 공백을 만들어 냈다. 14세기 후반에 흑사병이 킵차크 칸국의 주요 도시들을 강타했고, 한편 티무르의 공격은 칸국의 교역에 최후의 일격을가했다. 격동과 분열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 P142

모스크바 대공국의 창조는 기독교도와 불신자들의 선명히 양분되는 투쟁과 관계있는 것이 아니라 몽골 제국의 잔여 세력이 가진 부를 두고 경합한 수많은 세력과 관계있었다. - P145

이반 뇌제 시기에 일어난 러시아의 지나친 확장은 나라를 ‘동란의 시대‘로 알려진 17세기의 새로운 위기에 취약한 상태로 남겨 놓았으니, 이 시기에러시아인들은 사회적인 격동과 외국의 침략으로 고통받았다. 명·청 교체기와마찬가지로 하나의 왕조가 무너졌지만, 결국 새로운 토착 왕조인 로마노프 왕조가 전제정치를 재건했다. - P152

표트르 1세의 통치는 러시아 및 수많은 여타 개발 국가들이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현대화주의자들은 그를 우상화하지만 슬 - P164

라브주의자(슬라브 숭배자)들은 그가 러시아를 본연의 조화 상태에서 강제로이탈하도록 만들었다고 공격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전제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모순에 초점을 맞춘다. 즉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들고자 그들을 때려도되는 것인가? 표트르 1세는 잉글랜드의 체제가 농민들은 교육받지 못했고 성직자들은 문맹이며 귀족들은 정체된 러시아에는 부적절하다고 응수했다. 살인적인 비용을 치르고 군사적인 힘을 추구한들 어쩌라는 말인가? 국가의 부와 힘이 먼저 오면, 백성들이 나중에 혜택을 받는다. 표트르 1세 치하에서 아주 짧은 시간 만에 러시아는 대륙적·정교회적·내향적·동부 지향적인 전제체제에서 세속적이고 근대화하는 관료제 제국으로 변모했다. 러시아는 통합과 (통합의) 강화로 향하는 유라시아의 추세를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따랐다. - P165

표트르 1세의 것만큼이나 모순적이었다. 예카테리나 2세는 볼테르voltaire 및드니 디드로Denis Diderot와 서신을 주고받았지만, 농노제를 확대하고 야만적으로 반란을 진압했다. 예카테리나 2세는 서유럽의 문화를 수입한다는 표트르1세의 기획을 이어 가는 한편, 근대화된 전제주의를 보존하고 국가를 강화했다. 18세기 중기에 러시아는 세계 정치와 국제 교역의 중요한 참여자였지만, 농노제에 기반을 둔 사회제도와 군사적 전제주의 및 원시적인 재정 구조와경제구조는 이 거대한 제국(러시아)과 서유럽의 이웃들 및 중국 간의 차이를확연하게 드러냈다. - P1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부 유라시아 대륙의 제국과 미개척자들 ~118p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역사학자들은 이 지역을 하나의 전체로 논의하지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19세기 및 20세기 민족국가의 국경에 의해 규정된 단위들에 집중해 왔다. 우리는 이 기간의 중국, 러시아, 일본의 수많은 개별 역사(역사 서술)와 한국과 베트남의 몇몇 개별 역사를 알지만, 중앙유라시아의역사는 거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개별 역사(역사 서술)들 중 이 지역을 서로 연결하는 역사를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별로 없다.‘ 그러나 최근의 몇몇 연구는 이 더 큰 규모(이 지역 전체의 변화를 묘사하는 중요한 개념적인 도구들을 실제로 제시했다. - P78

티무르 이후 유라시아는 독립적인 제국 및국가들로 분리된 채 남았지만, 이들은 몽골인들이 조성한 상호 연결망을 유지했다. 심지어 우리는 우리의 세계화된 근대 세계에 나타나는 여러 특성의 - P81

기원을 15세기 이후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제국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많은 부침을 겪었지만 점차 세계시장, 지정학적 상호작용, 이주, 역내의 문화 전파는 강화되었으며, 이로 인해 이후 세기들 동안의 더 광범위한 규모의 훨씬 더 집중적인 상호작용을 위한 토대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티무르의 실패가 낳은 즉각적인 여파는 폐쇄(쇄국)로 복귀하는 현상이었는데, 특히 중국에서 이 현상이 두드러졌다. - P82

명나라의 강역은 거의 40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데, 오늘날 우리가중국 본토‘라 부르는, 종족적으로 거의 완전히 한족이 차지하는 땅과 대략맞아떨어진다. 원이나 청과 달리 명은 유목 지역과 목축 지역을 통치한 적이없지만, 1500년 당시에 여전히 지구에서 가장 큰 정치 단위였다. 15세기 초에6000만 명 이상이던 인구는 전성기를 구가하던 16세기에는 최소 1억 5000명으로 늘어났다.
산맥과 주요 하천의 분수계에 의해 구분되는 여덟 개의 거대 지역이 제국의 경제 지리를 형성했다." 이 중 두 핵심 지역, 즉 강남(장강 하류 하곡)과 화북은 각각 제국의 수도를 하나씩 거느리고 있었다. 이 두 수도 지역은 대부분의 부와 정치적인 힘을 축적했다. 초대 황제는 새 수도를 자기 고향과 가까운강남의 남경(즉 남쪽 수도)에 두었지만, 영락제는 북경(즉 북쪽 수도)에 두 번째수도를 건설했다. 비록 왕조는 두 개의 수도를 유지했지만, 북경이 우선적인정치 중심으로 부상했다. - P88

명이 거의300년이나 지속된 것은 황제의 독재적 지배권이 있어서가 아니라 수천 명의헌신적인 민정 관료가 일상적인 공무를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 P94

명 국가와 그 사회는 자급자족적 농업경제를 보호하는 것에 집중하던 내부 지향적인 사회에서 고도로 상업화되고 유동적이고 외부 지향적이며, 소비와 교환에 크게 집중하는 사회로 변모했다. 이러한 변화는 제국의 모든 주요 제도에 커다란 긴장을 부과했다. 은이 대규모로 유입된세기 내내 명의 정치가와 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내재적인 방식을 변화시켜 국가의 힘과 인민의 복지를 보존할 것인지에 관해 끊임없이 논쟁을 벌였다. - P98

오늘날의 만주는 세 개의 생태 지대에 걸쳐 있다. 서부는 초원인데 일반적으로 몽골인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목축 유목민들은 주로 양과 말로 생계를 유지한다. 북쪽은 삼림으로서 시베리아의 연장이다. 이 지역에는 사냥꾼들과 임산물(산삼, 버섯, 약간의 금) 채집자들이 살았는데 대단히 다양한 부족집단이 있었다. 남만주, 즉 요녕(랴오닝)은 농민들을 부양하는 기름진 경작지를 품고 있는데, 농부들은 주로 남쪽에서 이주해 온 한족이었고 만주족은 일부였다.
이들 민족과 명의 관계는 이른바 ‘기미‘라 불리는 전통적인 정책에 의해 형성되었는데, 이 정책하에서 명의 관리들은 그들을 내버려 두는 대신에교역 허가증을 주고 국가를 다스리는 현지 우두머리의 작위를 주었다. 만주부족들 입장에서는 장성을 넘어 물품을 교환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또한 명입장에서는 이것이 그들을 정복하는 것보다 편리했으므로, 16세기 말까지 상대적으로 안정된 관계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만주의 역동적인 지도자들은 새로운 부의 원천을 중앙집권적 국가 건설에 썼다. - P114

만주족의중국 정복은 결코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경합하는 세력 간의 수많은 불확실한 상호작용 및 더 광범위한 지정학적·기후적 환경, 개별 결정들에의해 좌우되었다. - P1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