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이전과 당시의 종교 철학사상

화와 동의 차이가 인상적이다.

황제, 전욱, 제곡 - 요, 순, 우, 탕, 직 - 문왕, 무왕

당시 사람들은 미신은 있었으나 지식은 없었고, 종교는 있었으나 철학은 없었다. 당시 사람들이 믿은 내용은 바로 그리스 인이 믿었던 종교와 같고, 그들이 믿은 신들은 바로 그리스 인의 신들과 같았다. 하(夏), 상(商) 이후에는 "천(天: 하늘)"과 "제( : 하느님)"의 관념이 생겼고 일신론이 점차 세력을 얻는 듯했지만, 다신론이 결코 소멸하지는
않았다. - P49

신령과 인민을 병칭했은즉, 집정자의 최대 책무는 "백신을 편안하게 하고, 만민을 화평하게 하는" 데에 있었다. 그러지 못하면 "신령이 노하고 인민이 배반하여" 장구할 수 없었다. 주나라 양왕이 또 하느님(上帝)과 백신을 병칭했은즉, 하느님은 백신의하나가 아니었다. 내사 과는 신 지방에 강림했다는 어떤 신령을 단주의 신령으로 여겼은즉, 적어도 신령의 일부는 바로 인귀(人鬼)였다. - P52

고대인은 대체로 우주간 사물들을 인간사와 상호 영향관계에 있는 것으로 인식했다. 따라서 고대인은 이른바 술수(術數:OccultArts)의 법, 즉 각종 술법으로써 우주간에 사람의 주의를 끌 만한 현상들을 관찰하여, 인간의 화복을 예측했다. - P53

사조, 비조, 자신, 신수, 장홍, 사묵 등은 모두 자연현상 또는 그밖의 "하늘의 이치(天之道)"를 바탕으로 인간사(人事)를 예측했다. 그들이 사용한 술수는 명백히 "천문"인 것도 있고, "역보"와 "오행"이 뒤섞인 듯한 것도 있다. 요컨대 이른바 "천문", "역보", "오행" 등은 모두 "천인지제(天人之際 : 하늘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주목한 것으로서, "천도(天道)"와 인간사는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후의 소위 음양오행가는 이런 사상읗 부여한 것으로서, 중국철학사상 심대한 세력을 떨쳤다. - P60

대체로 하느님은 지고무상(至高無上)의 권위자로서, 여러 관직을 설치해두고 있다. 여러 신령들은 그 지위나 권위가 하느님에 미치지 못하므로 복종했다. 이것은 곧 중국의 일반 평민의 종교적신앙인데, 옛날부터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 P61

춘추시대에 이르러 점차 각종 제도에 인본주의적(Humanistic) 해석을 부여하려고 시도한 사람들이 나타나, 각종 제도는 모두 인간이 설치한 것이며 또 인간을 위해서 설치되었다고 생각했다. - P65

무릇 화합(和)은 실제로 사물을 산생하지만, 같은 것(同)끼리라면 아무것도산생할 수 없습니다. 다른 것에다 다른 것을 조합하는 것이 화합입니다. 그렇기때문에 풍성한 성장이 가능하며 만물이 산생합니다. 만일 같은 것에다 같은것을 보태는 경우라면 둘 다 못 쓰게 되고 맙니다. - P66

임금이 예악을 사용하는 이유는 "백관이 경계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기율을 위반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 P70

예악과 형벌의 효용은 백성이 ‘혼란’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있고, 기원은 바로 천지를 모방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서 비롯되었다. - P72

제사의 기능은 "인민을 굳건히 단속하는" 데에 있었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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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족의 역사 - 변방의 민족에서 청 제국의 건설자가 되다
패멀라 카일 크로슬리 지음, 양휘웅 옮김 / 돌베개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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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은 오랜동안 조선에게 복잡한 감정을 갖게 하는 국가였다.
유학자의 나라를 자처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이민족의 집합체였던 청은 인정하기 싫은 존재였던 것이다.
조선인들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발생하고 나서도 그들을 인정하지 못했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에 인질로 다녀온 후에 보인 다른 반응과 행보는 왕실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봉림대군이 효종이 되었을 때 그는 북벌을 주장하기도 하는 등 여전히 지배층은 청을 하대하고 멸시하는 느낌이 강했다. 18세기까지 되면 유럽에까지 인식될 정도로 세계적으로 청의 영향력은 커지게 된다. 하지만 19세기 이후가 되면 청은 내란과 외세의 개입으로 안팎으로 고전하게 된다. 이는 조선의 미래이기도 했다.

만주족은 청나라를 구성했던 민족으로 곧잘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청나라는 다양한 민족 구성원이 존재했고 심지어 만주족의 비율은 청 말에 가면 소수가 될 정도로 낮았다.
물론 만주국은 1930년대 일본이 만주에 세운 정권의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책은 만주족의 근원이 어디인지 찾고 그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세밀히 기록한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몇 년전 구독하던 블로그를 통해서였다. 그 때 찜해놓았으나 잊고 있다가 작년에 생각나서 구입했다. 출간된지 몇 년전이라 혹시나 품절이 됐을까봐 걱정했는데 남아 있는 것이 천행이었다.

책의 내용은 만주족에 대한 오해를 걷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만주족과 몽골족은 다른 민족이지만 그들의 역사는 서로 얽혀 있다. 1600년대 이전까지 만주족으로 알려진 민족의 조상은 당시에 만주족으로 불리지 않았고 여진이라는 이름 등으로 불렸다. 동만주 지역의 몽골족은 타타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청조는 1600년대 중반에 만주족이 중국을 침략하여 명 제국을 멸망시키고 들어선 정복왕조였다. 만주족은 모순된 정체성을 가진 민족으로 평가되었다. 사실 전통적 만주족 문화나 정체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만주족의 문화와 정체성 모두 청 제국이 들어서면서 만들어졌다. 그들도 자신들을 자각하기 시작한 계기는 청이라는 국가가 성장하면서부터였다.
만주족은 그들만의 독특한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기(旗)'라는 조직이었다. 이는 청이 성립되기 이전부터 일부 조직되어 있었고 1924년까지도 유지되었다. '기' 명부에는 누르하치가 초기 추종자들의 가족구성원과 조상에 관해 기록이 되어 있었다. 기 구성원들은 지휘계급에 따라 조직되고, 교육의 기회를 제공되었으며, 부대에 임금과 보급품 토지 지급 등이 이루어졌다. 청 제국 아래에서 모든 만주족, 몽골족과 한군은 '기인'이라고 불렸다. 17세기에 정치적인 신분이었던 기인은 19세기까지 민족적 정체성이 되었다(P32~33).

만주족의 기원은 어떨까. 그들은 최초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의 섬에서 온 이주자들로 바다를 건너 북상하여 후기 구석기 시대 즈음 만주 지역에 도착했다. 대략 2,500년 전부터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있던 많은 이들이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만주에 거주하는 민족들을 정주 경제와 유목 경제로 구분하는 일은 결코 명확하지 않았다(P48). 일부는 수렵과 채집 등 유목 생활을 하기도 하고 다른 일부는 농경 생활을 하기도 하는 등의 생활을 겸했다. 우리가 잘 아는 부여와 발해가 이 지역 문화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제국이 되기 전 여진족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여러 민족과 어울리며 사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외부에서 부르던 이름들도 '골드족', '오로촌족', '오로크족'이었는데 자신들은 '나나이족'이라고 지칭했다.(나나이는 송화강의 지류를 가리킨다.)
1234년 금이 몽골족에게 멸망당한 후 여진족 중 일부는 한족에 동화되고 다른 일부는 만주 지역에서 그들만의 관습을 지키며 몽골로부터 작은 간섭을 받으며 생활했다. 원이 멸망한 후에도 여진족은 명과 조선과 계속 교류하였다. 1500년대 후반 건주여진과 조선 사이의 관계는 매우 좋지 않았는데 건주여진과의 충돌로 인해 조선 조정에서는 신충일을 누르하치의 성으로 파견한다. 신충일은 누르하치의 기 조직을 확인하고 조선으로 돌아온다.

누르하치은 말년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자신의 지지자들에 의해 칸khan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사후에 개정된 기록에서는 그를 항상 황제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누르하치는 대부분의 일생 동안 버일러라고 인식되었다. 버일러는 여진족의 종족 또는 연맹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용어이다(P107). 건주연맹의 지휘권은 오도리 여진의 족장이 가진 지휘권에서 기원했다. 오도리 여진의 지도자는 몽케 테무르였는데 그는 명조와 조선왕조 모두에 인정을 받았다. 여진족 일족의 구성원들은 12세기에 한자로는 '가고'로 표현되었고 만주족 이름으로는 '기오로'였다. 누르하치는 마침내 명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1619년 사르후에서 명의 첫 원정군을 격퇴하면서 명조 요동 행정수도인 심양을 차지한다. 누르하치는 여진족, 요동에 근거지를 둔 몽골족, 요동에 있던 일반 농부들을 모두 소중히 여겼고 그들을 자신의 정치조직 안으로 통합시키면서 팔기 체제 안으로 끊임없이 편입시켰다. 누르하치의 국가는 독점적인 경제권의 집행과 부의 통제를 기반으로 설립된 지역 정권이었다(P140).

홍타이지는 누르하치가 사망하고 난 뒤 수년간 일족을 교묘히 조종하면서 버일러들 중 칸으로 선출되었다. 1635년에서 1636년 사이 홍타이지는 칸이 다스리는 지역을 제국으로 변형시켰다. 여진족이라는 이름을 폐지하고 아이신 기오로 일족의 공식적인 역사를, 본질적으로 만주족의 역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확고히 정립했다(P148). 만주족은 만주 동부에 정착하면서 국호를 청으로 개정했다. 이 때 한군기인은 팔기제도 내에서 만주족과 몽골족의 수를 이미 초과한 상태였다. 홍타이지는 정복한 한족 관리들을 믿지 못하여 행정을 맡을 기인 계층을 양성하려고 했다. 이로 인해 만주어와 중국어로 응시할 수 있는 과거 제도를 시행했고 합격 할당제로 5(만주족):5(한족):2(몽골족) 비율을 고수했다. 1669년부터 엘리트 사이 균열이 일어나며 만주족과 몽골족 사이에서, 만주족과 한군기인 사이에서 일어났다. 

강희제 현엽은 부친과 달리 어려서부터 정치에 능력을 보이면서, 임기 동안 눈부신 치세를 이루었다. 몽골족은 팔기군에 편입되면서 몽고팔기가 되는데 그들은 만주팔기와 비견할 만한 조직으로 성장했다. 당시에도 중국 내에는 비(非)한족이 많았다. 요족, 장족, 묘족, 동족, 이족, 태족 등은 토착적 색을 가진 민족들이었던 만큼 한족 정권에 맞서 끊임없이 이주와 동화의 압박을 받아야 했다. 강희제는 티베트와 중앙아시아 지역과 몽골족의 전략적 결합을 경계하여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로 인해 티베트는 정치 독립권을 박탈당한다. 몽골 지역이 재편되면서 스텝지대의 몽골족은 청 황실의 귀족으로 편입되었다. 이들은 행정관 직위의 세습을 보장받았고, 혼인동맹을 통해 황족으로 편입될 수 있었다. 북만주를 둘러싼 러시아와의 갈등의 결과는 네르친스크 조약(1689)과 캬흐타 조약(1727)이었다. 양국은 만주 지역에서 두 나라 사이의 국경선을 확정하고 관세제도를 확립했다.

18세기 유럽에서는 중국 열풍이 불었다. 중화제국은 유럽의 중산층과 상류층이 높게 평가하는 물건들이 생산되는 원산지로 높게 평가받았다. 건륭제 시대 많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청에 와서 고문관, 의사, 조정의 건축설계자 겸 화가로 활동했으나 예수회 선교사들의 종교활동은 어느 순간 청 조정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1773년 영국 의회는 보스턴 차 사건이 발생한 북미를 안정시키고 영국 동인도 회사의 국내 영향력을 낮추고 아시아산 차 접촉을 통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무역 구조가 재편될 필요성을 느꼈다. 영국 정부는 매카트니 사절단을 청에 파견였으나 삼궤구고두 문제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채 런던으로 돌아간다. 이후 토머스 스톤턴 사절단이 파견되기도 했으나 그들의 임무는 마찬가지로 실패했다. 청과 영국 사이에 아편전쟁이 발발하고 1842년 남경조약을 맺으며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전쟁은 끝이 난다. 청이 남경조약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자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북경을 재침략하며 청에 대한 배상금을 늘렸다. 여기에 홍수전이 이끄는 태평군의 난까지 벌어지며 청조의 국고는 바닥나고 지배층의 무능과 부패까지 더해지며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이다.

중국에 살든 대만에 살든 이제 자신을 만주족으로 규정하기로 한 최근의 젊은 세대에 의해 만주족의 민족적 '정체성'이 다시 회복되었다. 20세기에 만주족이 겪은 고통은 많은 근대 소수 민족집단이 겪은 공동의 경험이다(P322).

이 책은 누르하치를 비롯한 광서제, 건륭제, 도광제, 자희태후, 푸이 등의 인물을 다면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 어떤 입장을 세워놓고 그것에 맞추려하다보면 인물이 평면적으로 그려지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은 인물을 평가할 수 있는 다양한 기록을 제시함으로써 독자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늘린다.
또한 짧지 않은 만주족의 역사를 대중들이 읽기에도 어렵지 않게 풀어냈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당연히 번역자의 공이 커 보인다. 흐름이 끊기지 않고 부드럽게 읽히는 역사 번역서를 자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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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7-11 23: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타타르 오도리 팔기군애 누르하치에. 이 모든것이 이렇게 연결되는군요. 그저 만주에 살았던 사람은 만주족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넘 잘 읽었어요 화가님 *^^*

거리의화가 2022-07-12 09:03   좋아요 2 | URL
네.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막연하다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저도 좀 단편적이고 넘겨짚듯이 만주족을 생각해왔었는데 그들의 뿌리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역사까지 담아놓아 만주족에 대한 거의 대부분의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었어요. 미니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2-07-12 0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만주 하면 거리의 화가님이군요~!! 타타르가 몽골인지 첨 알았습니다 ㅡㅡ 전 역사에 대해 아는게 없는데 이렇게 또 배우고 갑니다~!!

거리의화가 2022-07-12 09:39   좋아요 2 | URL
ㅋㅋㅋ 만주하면 저라뇨~ㅎㅎ 넘 띄우셨습니다;;;(그래도 감사하게 받아들일게요.) 최근에 만주 지역 관련하여 책을 여러 권 읽기는 했네요ㅎㅎㅎ
새파랑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희선 2022-07-13 0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주족은 만주에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여진족이라는 건 들어본 듯한데... 중국에도 소수 민족이 많이 살지만, 소수 민족으로 인정해주지 않기도 하네요 중국을 더 크게 만들고 싶어서 그런 거겠습니다 중국은 중화합중국(중화연방)이라고도 한다는 게 생각났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2-07-13 09:36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희선님.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사는 중국은 정작 종족을 갈라치기하고 있고 인권 문제도 심각하죠.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한데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도서관에 다녀왔다.

집 근처 도서관이라고 하는데 버스를 타고 20여분 나가야 해서 도서관 카드 만들 때 가고 재방문은 처음이었다.

아무튼 방문하게 된 계기는 신청했던 희망도서를 찾으러 가는 거였다.

희망도서 연락이 없길래 '안됐나' 싶었는데 몇 주간의 텀이 있는 것이었다.

해가 반갑기도 했으나 가는 동안 이미 지치는 느낌이 들었다.

희망도서 받아보니 누구보다 가장 먼저 읽는 것이라 느낌이 좋았다.

역시 책은 새 것일 때가 좋구나. 물론 헌 책도 좋기는 하지만.


토요일에 갑작스레 집 앞에 나갔다가 큰 택배 상자가 도착한 걸 보고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옆지기가 시킨 음식물처리기였다.

부피도 크고 집이 점점 좁아지는 느낌이 들어 짜증이 일었는데 얼마 안 가 싫은 표정을 거두었다.

나는 음식을 만들지도 않고 옆지기가 해주는 음식을 먹기만 하는 입장인데 내가 화를 낼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여름이라 날이 더워지고 꿉꿉한 날씨에 음식물 처리가 곤란해질 시점이었다.

"잘했어요."

효과 여부를 떠나서 사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편리해지면 그걸로 만족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주말에는 이런 책들을 읽었다.


<서양사정>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베스트셀러작으로 일본 지식인이 주목한 서양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불과 작년에 번역본이 나왔다는 게 놀랍기는 했다. 




주말부터 읽기 시작한 책들이다.


<중국철학사>는 이 달 내내 조금씩 읽을 예정이다. 목차만 봐도 뇌가 꽉차오르는 듯한 책이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작가 이름이 낯설지 않다 생각했는데 그녀가 낸 다른 책인 <세컨드 핸드 타임>을 예전에 읽었던 것 같다.(근데 왜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는거지ㅠㅠ) 읽으면서도 생각하는 것이 전쟁이 벌어짐으로 인해서 일상이 무너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쟁은 파괴이자 약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  




오늘 아침에 이북 리더기를 열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이미 받아놓았던 대여 이북에 <젠더 모자이크>가 있었다. 아니 이건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에서 나왔던 '모자이크 뇌'에 대한 내용이겠네 반가웠다. 성별로 분업된 뇌를 설명하려는 것은 잘못되었고 사람의 뇌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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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7-11 10: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도서관에 갔었는데
하도 책을 사대서 볼만한 책이 없지
싶어서 아예 검색도 안해 봤네요.

아 그리고 보니 저도 희망도서 신청
을 했었네요 ㅠㅜ

음식물처리기 저도 부럽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7-11 10:59   좋아요 3 | URL
ㅋㅋ 신간을 많이 사면 아무래도 도서관에 새로운 내용의 책이 없을 것 같기는 합니다.
저는 문학 작품은 많이 안 읽기도 하고 사기가 좀 애매해서 그럴 때 도서관을 이용해야될 것 같아요. 앞으로 희망도서 열심히 신청해보려고요ㅎㅎㅎ

음식물처리기 부피는 좀 크지만 옆지기의 흐뭇한 표정을 보니 효과는 좋은가봐요. 편리하면 됐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다락방 2022-07-11 11: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께 땡투하고 임소연 작가의 책을 구입하였습니다. 후훗.

거리의화가 2022-07-11 11:06   좋아요 2 | URL
앗 다락방님 감사합니다ㅎㅎㅎ 알찬 책이었어요. 다락방님께도 좋은 책이길 바라봅니다^^

페넬로페 2022-07-11 11: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아침부터 날씨가 더워요.
옆지기가 해주는 음식을 먹기만~~
이 문장에 확 더 더워지네요.
음식물 처리기 100대라도 사 주십시오 ㅎㅎ
저는 어제 희망도서 신청하지도 않았는데 도서관에 신간이 도착해 있어서 아침도 먹기 전에 후딱 다녀왔어요.
집에 있는 책을 읽자 결심하고 요즘 책을 잘 안사는데 그러기는 커녕 도서관에 가서 읽지도 않는 책을 또 잔뜩 빌려옵니다.
왜그렇게 사는지 저도 저 자신을 잘 모르겠어요^^

거리의화가 2022-07-11 11:14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이 더운날 요리하는데 제 입장만 생각하는게 참 저도 못됐다 생각했습니다. 더군다나 제 돈으로 산 것도 아니고 본인 돈으로 사서 좀 미안했네요. 당분간 뭐라도 사주면서 당근을 주어야겠다라는 생각했습니다.
도서관이 터널을 지나야 해서 좀 애매해요. 버스 타고 20분을 가야하는데 주말이면 버스도 띄엄띄엄 다녀서는ㅋㅋ 그렇다해도 신간을 조금이라도 덜 사기 위해서 희망도서를 열심히 신청해봐야겠다 싶습니다^^

얄라알라 2022-07-11 13:15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도 거리의화가님 레삭매냐님 다들 도서관~~
저는 어제 도로 잘못 빠져서 도서관 가려다가 엉뚱한 데로 샌 바람에 반납을 못했더니 연체 문자 홍수를 아침부터 받네요^^

바람돌이 2022-07-11 1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옆지기가 해주는 밥에 팍 꽂혔어요. 음식물쓰레기 처리기 그까이거 당장 사줍니다. 뭔들 못사줄까요. ㅎㅎ
저는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을 아주 알뜰히 써먹는지라 새 책 받을때마다 좋아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2-07-11 11:24   좋아요 2 | URL
요리하시는 많은 분들께 죄송해지네요. 저의 만행을 용서해주시길^^;
암튼 도서관 희망도서 앞으로 팍팍 이용해보려고 합니다. 한 달에 3권까지 가능하더군요. 이번 달 아직 한 번도 신청 안했으니 노려보려구요ㅎㅎㅎ

바람돌이 2022-07-11 11:32   좋아요 2 | URL
엥? 한달에 3권 너무 작은데요. 분관인가요??? 보통 분관은 한달 3권. 본도서관은 1주일 2권이에요. 심지어 다른 도서관에 다 각각 신청도 가능합니다. ㅎㅎ 물론 도서관 순례를 해야하는 문제점이 있지만....

거리의화가 2022-07-11 11:34   좋아요 2 | URL
저희 지역은 너무 넓어서 다른 도서관 돌아다니기에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것 같아요ㅋㅋ 그래도 이용하는 도서관보다 약간 더 먼 도서관이 있길래 거기는 한번 이용해볼만할 것 같습니다.

하이드 2022-07-11 12:39   좋아요 2 | URL
저는 다섯권씩 열다섯권! 근데, 월마다 사주는 경우도 있고, 딜레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어짜피 모든 도서관이 다 멀어서... 도서관 순례 합니다. ㅎㅎ

거리의화가 2022-07-11 12:57   좋아요 1 | URL
하이드님 그런 속사정이 있으셨군요. 그런 많은 권수가 한 곳에서는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했습니다ㅎㅎㅎ 도서관 순회 여행도 괜찮겠네요.

mini74 2022-07-11 11: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잘하셨어요 화가님 ㅎㅎㅎ친구네집은 남편이 청소를 도맡아 한다고 해요 그래서 어떤 청소도구를 사든 별말 안한다고.. 치우는 사람이 어지르는건 괜찮다네요. ㅎㅎ 음식 해주는 옆지기라니!!! 저희집 옆지기는 빵 잘 사주는 오빵! ㅎㅎㅎ 그것도 포켓몬빵으로요. 전쟁은~ 다시 꺼냈습니다. 다들 읽으시는 모습 보니 재독하고 싶은 마음에요 ~

거리의화가 2022-07-11 11:40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 빵 잘사주는 오빵! 빵터졌어요^^ㅎㅎㅎ 파리바게뜨가 근처에 있는데 노동자 처우 문제 때문에 불매하고 있거든요. 다른 빵집을 찾는 중입니다ㅠㅠ
전쟁은~ 재독하면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을 것 같아요. 미니님 화이팅!

책읽는나무 2022-07-11 12: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보세요~화가님 남편 분을 지지하는 알라디너님들이 계속 늘고 있어요.
저도 당연히 한 표 던졌습니다ㅋㅋㅋ
저는 음식물 냄새도 그렇고, 양을 확 줄이려면 음식물 쓰레기를 건조시켜 분쇄하는 기계를 살까?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울집 남편이 그런 비슷한 기계가 있다고 알려주더라구요.
살까?말까? 고민만 하고, 아직 검색해보진 않았어요. 자리 차지할까봐 그것도 고민이더라구요ㅜㅜ
청소도 청소기 한 번 미는 것도 땀이 많이 나서, 물걸레질은 엄두도 못내서 늘 바닥이 찜찜하다고 하니 주변에 청소기 종류 매니아 언니가 로봇 시키라고 하더라구요!!ㅋㅋ
이렇게 하나씩 기계를 늘리다 보면 집 안은 온통 사이버 세상!!!!ㅋㅋㅋ
하지만 로봇 청소기는 심히 고심 중입니다.^^
도서관은 저희도 주말에 다녀 왔었어요.
희망도서 신청하려고 들어 갔더니 장기 연체자라고 안되어....그럼 또 사야 하나? 또 고심 중입니다. 왜 이렇게 살 게 많을까요?
갑자기 확~덥네요^^

거리의화가 2022-07-11 12:56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제 옆지기 팬이 많이 늘어가는 것 같아요. 제가 너무 못하긴 합니다. 책에만 몰두하고 신경안쓰는 것 같아서 반성해야겠어요.
음식물 양 자체를 줄이기는 쉽지 않더군요ㅠㅠ 주중에 점심은 회사 식당에서 먹어서 딱 먹을 만킄만 담아 먹으니 남기질 않는데 집에서는 아무래도 그렇질 못하네요. 2사람 먹을 양이지만 항상 마트는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먹으려면 대용량 포장을 사야하고 그러다 보면 음식물이 남게 되는 듯합니다. 악순환이네요. 분쇄기 가격이 좀 나가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도 분쇄하면 냄새가 좀 덜나겠죠.
청소라도 제가 해야 하는데 요새 제가 거의 하질 않아서 화가 많이 쌓였을 것 같아요. 로봇청소기 가지고 있는데 생각만큼 만족스럽진 않더군요. 그래서 그냥 청소기 사용하게 됩니다ㅠㅠ 여름은 음식도 청소도 참 어려운 계절입니다.
장기연체 해제가 빨리 되어야 도서관에서 빌리실텐데요^^; 나무님 즐거운 한주 보내세요^^ㅎㅎㅎ

얄라알라 2022-07-11 13:16   좋아요 2 | URL
헉. 장기연체자에게는 그런 페널티가 있나요?^^;; 저는 연체 자주하지만 희망도서 신청에 브레이크 당해본 적은 없는데^^:;

책읽는나무 2022-07-11 14:57   좋아요 2 | URL
단발머리님 서재에 올리신 울프 책 시리즈는 책이 넘 예쁜데 권 수가 많아서인지 넘 비싸서 엊그제 신청하려고 로그인 했다가 아웃 당했어요. 저도 첨 알았어요.
저쪽 도서관은 그런 시스템이었나 봅니다. 그렇다면 내일은 저쪽 도서관을 가보려구요. 하~ 저쪽도 한 달 넘게 연체해설라무네...ㅜㅜ
내가 이런 사람이 아녔었는데 여기 저기 장기 연체자로 찍혀서 요주의 인물이 되었네요ㅜㅜ

거리의화가 2022-07-11 15:27   좋아요 2 | URL
여기 도서관은 희망도서 신청 기준에서 3권 넘어가는 도서는 안 받는다고 되어 있네요-_- 저도 울프 책 시리즈 읽어보고 싶은데 말이죠. 사는 방법밖에 없는건가ㅠㅠ

scott 2022-07-11 23: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했어요.]
무더운 여름 화가님의 칭찬 한마디에
남편 분 쒼나게 요리 하실 것 같습니다 ^ㅅ^

거리의화가 2022-07-12 09:06   좋아요 1 | URL
네 잘했어요란 말을 자주 하려고 합니다^^ 듣는 사람도 기뻐하지만 하는 저도 그 반응을 보면 또 기분이 좋아지고 그러네요ㅎㅎㅎ 스콧님 신나는 한주 되세요!

페크pek0501 2022-07-12 17: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음식물처리기 사고 싶더라고요. 잘 하신 것 같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7-13 09:34   좋아요 0 | URL
네. 여름 되니 진짜 필요성이 느껴지더군요. 눅눅하고 꿉꿉한 날씨에 참 처치 곤란인 음식물입니다ㅠㅠ
가격대는 좀 있지만 현명한 소비인듯 싶습니다.
 

자학시대 통론

고대는 본디 귀족정치였으므로, 정권의 소유자가 곧 재산의 소유자이자 지식의 소유자였다. 즉 정치경제상의 통치계급이 곧 지식계급이었으니, 이른바 관료와 스승이분리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귀족들은 집정하여 일을 맡은 만큼 자연히 책을 저술할 여가가 적었고, 또 이미 정권을 잡고 있어서 어떤이상(理想)이 있으면 실제 행위로 나타내어 "정치와 교화의 전장"으로써 실현할 수 있었으므로, 반드시 책을 저술할 필요도 없었다. - P28

중국철학사상 철학 학파의 수에서나, 토론한 문제의 다양성과 그 <범위의 광범함에서나 그리고 연구 흥취의 농후함과 기상의 왕성함등에서나, 자학시대가 제일이었다. - P29

춘추시대(春秋時代)부터 한나라 초에 이르기까지는 중국역사상 일대 해방의 시대였다. 당시의 정치제도, 사회조직, 경제제도에 모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고ㅣ - P29

고대의 봉건제도하에서 천자, 제후, 경대부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인민의 주인이었다.
서인은 자신이 토지를소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직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주인인그들의 농노(農奴)일 뿐이었다. - P33

봉록의 세습제와 정전제가 파괴되고, 서민이 해방되어 사유재산을 경영하여 부호가 된 것인데, 이는 고대 경제제도의 일대 변동이었다.
"이런 여러 대변동은 춘추시대에 태동하여 한나라 중엽에 완성되었다. 이 수백 년간은 중국사회 진화의 일대 전환기였다. - P35

한 사회의 구제도가 날로 붕괴되는 과정 중에 자연히 보수적인경향의 사람들은 "세상풍조가 예전과 같지 않고, 인심이 날로 하락하는 것"을 목도하고, 마침내 구제도의 옹호자로 나서게 되는데, 공자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그런데 구제도가 아직 동요하지 않을 때에는 그것이 구제도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존경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으나, 구제도가 이미 동요했다면 구제도의 옹호자는 당대의 군주 및 일반인들이 믿고 따르게 하려면 반드시 옹호하는 이유를 밝혀 구제도에 대한 이론상의 근거를 부여해야 했다. 이런 종류의 작업은 공자가 실마리를 열었고, 그후에 유가학파가 계승했다. 유가의 공헌은 바로 여기에 있다. - P36

『한서』 「예문지(藝文志)」는 말한다.
제자 10가(諸子十家) 중에서 일정 수준에 이른 것은 9가 뿐이다. 그것들은모두 왕도(王道 : 주왕실 중심의 정치체제)가 이미 쇠미하고 힘의 정치를 구사할 즈음, 당시 군주들의 희로의 취향이 달랐던 데서 비롯되었다. 그리하여 9가의 학술이 벌떼처럼 일제히 일어나, 각기 한 측면을 바탕으로 스스로 진리로여긴 내용을 숭상하여, 그것을 가지고 변설을 구사하여 제후와의 영합을 도모했다. - P37

"한 무제(漢武帝: 재위 140-87B.C.) 초기에, 위기후(魏其侯)와 무안후(武安侯)가 재상에 임명되면서부터 유가는 융성했다. 드디어 동중서의 대책문에서는 공자를 공공연히 찬양하고 여타의 백가를억눌러 배척했는데, 학교의 관청을 세워 주(州), 군(郡)마다 수재(茂材 :秀才)와 효렴(孝廉)을 천거한 것은 모두 동중서로부터 비롯되었다." - P40

동중서의 주장이 시행되면서 자학시대(子學時代)는 끝이 나고,
동중서의 학설이 수립되면서 경학시대(經學時代)가 시작된다. 대체로 음양오행가(陰陽五行家)의 사상은 유가(儒家)와 결합되어, 동중서에 이르러 체계적으로 표현되었다. 이 이후부터 공자는 신(神)으로, 유가는 유교(儒敎)로 변했다. 소위 고문학(古文學)이 출현하고나서야 공자는 점차 인간으로, 유교는 점차 유가로 회복되었다. - P41

"설령 종이 되더라도 성내는 기색은 없었으니", 이미 사람들은 그런 신경제질서에 안정했음을 알 수 있다. 한나라는 비록 중농억상(重農抑商) 정책을 펴기는 했지만 이런 사회적, 경제적 질서를 결코 근본적으로 변경할 수는 없었다. 춘추시대부터 개시된 대과도기는 여기서 종결되고, 한때 왕성했던 사상도 여기서쇠했다. 이 이후부터 현대 이전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정치·경제 제도와 사회조직은 왕망(王: 재위 8-23A.D.)이 정치적 힘으로써한때나마 강제 개혁한 것 외에는 근본적인 변동이 없었기 때문에, 자학시대의 사상적 특수 상황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 P42

고대철학은 대부분 바로 과거의 이른바 제자의 학(學) 안에 존재한다. 따라서 중국철학사상 고대는 자학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제자를 사마담은 음양(陰陽), 유(儒), 묵(墨), 명(名), 법(法), 도덕(道德)의 6가(家)로 나누었다. 가(家)라고 이름한 이유는 제자가 모두 개인적으로 강학했기 때문이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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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정 - 완역
후쿠자와 유키치 지음, 송경호 외 옮김 / 여문책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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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 유키치는 서양 사상을 받아들이면서 일본이 '문명개화'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는 일본 메이지시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국 내에서 평가를 받았고 조선의 개화파에도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다. 임오군란 이후 박영효와 김옥균을 필두로 한 개화당은 후쿠자와와 긴밀히 교류하였고 귀국해서는 신문을 발행하고 개혁을 주장하며 갑신정변을 일으키기도 한다. 유길준은 1881년 '조사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가 후쿠자와가 세운 게이오기주쿠에서 수학했다. 그가 지은 '서유견문'에는 일본이 서양 정치를 본받아야 하는 모습을 담은 조항을 통치의 근본으로 소개하였다.

후쿠자와는 평가가 갈리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가 일본 개화에 중요 역할을 한 지식인이었음에는 분명하다. 『서양사정』 초편은 후쿠자와 첫 저작임에도 당시에도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책이라고 한다. 원래는 『서양사정』을 두 편의 책으로 발간할 계획이었으나, 「초편」 발간 이후 서양 사회의 기본 원리를 담은 「외편」을 기획하면서 「초편」, 「외편」, 「2편二編」의 총 3책으로 구성되었다.

후쿠자와는 1860년에 미국에 다녀왔고 1862년부터 1년 동안 유럽사절단의 통역관으로 유럽을 시찰하고 돌아왔다. 「초편」은 그 때 작성한 일지와 유럽에서 수집한 자료, 막부가 소장하고 있던 참고 서양 서적에 기초하여 정리한 것으로 서양의 풍속과 아메리카, 네덜란드, 잉글랜드 각 나라별 역사, 정치, 군, 경제의 항목을 담았다. 「외편」은 버튼John Hill Button의 Political Economy for Use in Schools and Private Instruction(PE)를 읽고 새롭게 알게 된 서양 지식을 소개한 것으로 사회 경제, 정치 경제에 대한 여러 개념을 담고 있다. 「2편」은 「외편」에서 부족했던 개념을 블랙스톤William Blakstone의 글을 통해 보충하고 러시아, 프랑스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외편」에서 그가 주목했던 버튼은 19세기 중반 사람으로 자유주의자로 자유권을 바탕으로 자립한 인간들이 구성하는 경쟁 사회가 문명의 근간을 이룬다는 생각을 가졌던 인물이다. 또한 웨일랜드Francis Wayland의 『정치경제학의 요소Elements of Political Economy』에서는 정부의 직분을 좀 더 상술하기 위해 끌고 오기도 했다. 웨일랜드는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을 주장하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2편」의 블랙스톤은 18세기 영국 법률가이자 정치인으로 'right'라는 개념을 그의 사상을 통해 더 구체화하려고 했다.

이렇게 보면 후쿠자와가 주목했던 인물들의 공통점은 자유주의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증명하는 현장으로 18세기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19세기의 미국, 러시아 등에 서양인들이 주목했고 후쿠자와, 나아가 일본이 주목한 것이 이해가 된다.

이 책은 일차적으로 당대 유행하던 서양 서적을 번역한 책이다. 때문에 독창성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으나 후쿠자와는 서양 서적을 번역하여 일본에 소개하면서 일본이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 일본 근대 사회의 기본 토대가 될 이념들을 제시하는 작업을 했다는 면에서 가볍게 볼 수 없는 책이다. 실제로 이 책은 일본의 근대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나 주변국인 조선,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근대가 어떤 모습으로 형성될 것인지 보여준다는 의미도 있다.

내가 감히 생각하건대, 오직 해외의 학문(文學)과 기예(技藝)만을 강구할 뿐 각국의 정치풍속이 어떠한지를 자세히 알지 못한다면, 설령 그 학문과 기예는 얻었을지언정 그 경국의 근본은 살피지 않은 것이기에, 실용實用에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를 초래함도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본디 각국의 정치풍속을 살피기 위해서는 그 역사를 읽는 것만 한 것이 없다. 그러나 세상사람은 앞서 언급한 지리 이하의 여러 학문을 빨리 배우기만 원하기 때문에 역사를 읽는 자가 매우 드물다. 실로 학자의 결점이라 하겠다. - P23

후쿠자와 뿐 아니라 유길준도 주목했던 문명의 정치 6조란 무엇인지 확인해보자(P29~30).
제1조. 자주임의自主任意 사농공상 간에 조금도 구별을 두지 않으니 본디 문벌을 논하는 일 없고 조정의 지위를 가지고 사람을 경멸하지 않는다. 상하 귀천이 각각 그 소임을 얻어 조금도 타인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천품의 재능을 펼치게 하는 것을 취지로 한다.
제2조. 신교信敎 사람들이 귀의한 종교를 받들어 정부에서 이를 방해하지 않음을 말한다.
제3조. 기술과 학문을 장려해 새로운 발명의 길을 여는 것.
제4조. 학교를 세워 인재를 교육하는 것.
제5조. 보임안온保任安穩 정치가 일정해 변혁하지 않고 호령號令은 반드시 믿음이 있고 속임이 없으며 사람들은 국법에 의지해 편안히 산업을 경영함을 말한다.
제6조. 인민이 굶주림과 추위를 걱정하지 않게 하는 것.
-> 이는 비단 오늘날의 정치에서도 고려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조목들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의 자유와 인민의 구제에 대한 법이 눈에 띈다.

징세법, 국채, 지폐, 상인회사, 외교, 군사제도, 학문과 기술, 학교, 신문, 도서관, 병원, 구빈원(고아원), 농아원, 맹원, 정신병원, 특수학교, 박물관, 박람회, 증기기관, 증기선, 증기차, 전신기, 가스등 근대 사회에 필요한 정치와 경제, 군사, 외교법을 비롯해 다양한 문물과 제도를 담고 있다. 근대를 대표하는 박물관, 박람회, 증기기관/선/차, 전신기, 가스등의 산물은 근대를 상징하기도 하면서도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갈등의 씨앗을 뿌리내리게 만든 곳이기도 했다.

머리가 어느 정도 크고 나서부터 틈만 나면 박물관을 다니곤 했다. 어릴적 동물원을 들락날락했던 기억도 난다. 대부분 무료이거나 싼 값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샌가 때론 불편한 마음이 들었는데 이는 문명의 이기라는 명목 하에 도굴하거나 약탈해온 물건, 또는 자신들이 개발한 것이 최고라는 것을 경쟁하듯 전시하는 행태가 못마땅해졌기 때문이다. 1904년 세계 박람회에서는 세계 여러 인종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전시하기도 했다. 이의 의도는 분명하다. 인종에 따라 우수함과 열등함이 차이가 난다라는 것이다. 우수한 인종이 되기 위해서라면 다른 인종은 짓밟아도 된다는 발상은 끔찍하고 잔혹하기만 하다. 이는 인간의 편리에 따라 동물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동물원도 마찬가지다. 야생성을 억지로 잠재우고 순함을 길들이면서 인간의 패턴에 맞추는 작업은 동물에게 과연 행복일까 질문하게 된다. 인간만 편하자고 이런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제도와 문물이 증기기관이나 전신기를 제외하고는 더 나은 문물로 대체되었을 뿐 현대로 그대로 이어졌다. 오늘날을 볼 수 있는 것들은 산업혁명 이후를 기점으로 발전된 근대의 산물들이다.

세상의 문명개화에 대해서 다룬 부분을 살펴보자(P179~181).

야만의 세상에서 행해지는 자유란 것은 마치 사람이 굶어죽도록 내버려두는 자유고 힘으로 포학하게 제멋대로 하는 자유며 죄를 범하고도 벌을 받지 않는 자유다. 어찌 이를 진정한 자유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문명개화에 따라 법을 세우고 세상이 한결같이 이를 시행하고서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라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은 야만은 천연天然이고 문명은 인위人爲라고 말하지만, 필시 글자의 의미를 오해한 주장이다. 문명의 세상에서 행해지는 것 중에 하나라도 천연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다. 세상의 개화를 진전시키는 법칙을 세우면 그 법이 관대하지만 이를 위반하는 사람이 없고 각 사람이 힘에 제어당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제어당하는 것이 문명의 모양이다. - P179

문명의 세계 안에 있으면서도 교화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은 세상의 폐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폐해는 문명이 성대해짐에 따라 저절로 제거될 것이다. 또한 문명이 진보함에 따라 가난한 사람이 마음을 선동 당해 악한 일에 빠지거나 과거의 상공업이 산업을 일시에 잃고 곤궁해진 사람이 많아지는 일이 있으니, 문명의 폐해다. 이러한 폐해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세상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의 전반적 형세를 이해하게 하고 그 심력을 써서 새롭게 생계를 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 P181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일정한 법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는 것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 또 문명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는 것이 눈에 띈다. 문명으로 인한 폐해를 논한 것은 의외였다. 당시에도 문명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증기기관이 들어오면서 산업의 형태에 많은 변화가 생겼고 이에 따라 사양 산업은 생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국으로 생각하면 석탄 산업도 그런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때 한국의 일부를 이끌었던 석탄 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이제는 거의 남지 않았다. 그들은 강제로 쉬게 되거나 다른 산업으로 뛰어들어가야 했을 것이다.

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외교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각국 정부의 부정함과 강포함을 제어해 완전히 이를 그칠 수 있는 방책은 없으니, 이것이 곧 천하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 까닭이다. 문명한 나라에서는 두 사람 사이에 쟁론이 일어나서 다툰다 해도 정부의 법으로 이를 중지시키고 그 쟁론을 제어할 수 있다. 문명의 교화를 입은 자는 모두 전쟁이 흉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힘써서 이를 피하지만 외교에서는 그러지 못한다. - P206
오늘날은 문명개화한 행복한 나라라고 칭하는 것도 내일은 뼈를 늘어놓고 피를 흘리는 전쟁터가 될 수 있으니, 단지 상전벽해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문명의 가르침은 전쟁의 근원을 그치기에는 충분치 않지만 점차 그 참혹함을 완화할 수 있다. - P207
잉글랜드에서 무역의 법을 새롭게 바꿔 이를 관대하게 한 이래로 각국의 외교가 한층 친근함을 더했다. 그 나라들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잉글랜드와의 무역을 방해하게 되고 이에 따라 인민의 손해가 생길 수 있음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자가 많다.
각국이 전쟁하는 원인을 근절하는 것은 무역의 법을 관대하게 하는 데 있다고 한다. - P208

사람 간에도 다툼이 발생하는데 국가 간 싸움은 더 할 것이다. 문명국이라고 해도 자국의 이익은 최우선이기 때문에 오히려 갈등이나 전쟁의 상황이 발생할 소지는 더 커지는 것이다. 여기서는 정치적 외교보다 경제적 해법에 주목을 하여 무역의 법을 관대하게 함으로써 전쟁의 원인을 근절할 수 있다라고 해놓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해결법이 된다고 하기에는 부족해보인다. 물론 국가 간에 정치적 싸움보다는 결국 경제적 싸움이 더 우위를 차지할 수도 있지만. 그렁메도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은 분명하고 이를 위해서 외교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이는 오늘날에도 더없이 중요한 일이다.

정부의 종류로 우리가 흔히 아는 세 가지를 다루고 있다. 군주제, 입헌정치, 공화정치. 이 책에 등장하는 국가들 중 영국은 입헌정치를 선택했고, 프랑스와 러시아는 군주제, 미국은 공화정치를 선택했다. 오늘날도 여전히 세 가지의 정부 형태는 존재한다.

이 책은 서양 근대를 대표하는 여러 나라의 요약한 역사와 정치, 경제, 군사를 다루고 있다. 당시 서양을 주도하던 국가에 대해서 살펴봄으로써 이들이 걸어간 역사를 바라보는 후쿠자와 유키치와 일본 근대 지식인들의 모습, 나아가 조선의 개화 지식인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서양인이 바라본 문명은 어느 정도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있다고 여겨진다. 이 책을 통해서 이들이 따르고 싶었던 문명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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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07-13 03: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후쿠자와 유키치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이름인데 했습니다 일본 돈 만엔에 있는 사람 맞군요 이름만 듣고 뭘 한 사람인지 몰랐습니다 이때 한 일로 지폐에 얼굴이 나오기도 했군요 일본 게이오대학을 세우고 일영 사전도 처음 만들었다니... 이건 지금 찾아보고 조금 알았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2-07-13 09:38   좋아요 4 | URL
오 맞습니다 희선님^^ 저도 만엔 주인공이라는 거 쓰려고 했었는데 넣었다가 뺐거든요ㅋㅋ 일본 지폐에 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국민들 입장에서 위인(!)으로 숭앙받는 사람이구나 싶었습니다. 게이오대학의 전신을 세웠고 거기에 유길준을 비롯한 조선인 유학생들이 많이 입학했답니다. 일영 사전을 만든 것은 처음 알았네요. 덕분에 알아갑니다^^ㅎㅎㅎ

scott 2022-08-10 16: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이달의 당선 추카!
비 피해 없으신지요.
서울 무섭게(태어나서 첨으로 이런 비가 하늘에서)
쏟아졌네요

8월에도 열독 응원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2-08-10 16:33   좋아요 1 | URL
이틀동안 미친듯이 비가 내려서 이제 좀 그만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점심시간에 파란 하늘이 나왔었는데 다시 또 우중충해졌네요. 오늘 퇴근길은 제발 무사하길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콧님 감사해요~*^^*

그레이스 2022-08-10 16: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당선 축하드려요

거리의화가 2022-08-10 16:33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mini74 2022-08-10 16: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하며 읽었던 글입니다. 축하드려요 *^^*

거리의화가 2022-08-10 16:33   좋아요 2 | URL
미니님 언제나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2-08-10 17: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화가님~!! 축하드립니다~!!
거리의 화가가 아니라 미술관의 화가로 ^^

거리의화가 2022-08-10 17:20   좋아요 3 | URL
ㅎㅎㅎ 언제나 유쾌한 새파랑님의 댓글이 기분을 업시킵니다! 감사해요^^

청아 2022-08-10 1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어려워보이는 책들도 워낙 많이 읽으시고 리뷰까지 잘써주셔서 항상 감탄하고 있습니다. 당선 축하드려요^^*

거리의화가 2022-08-10 21:10   좋아요 2 | URL
부끄럽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써보도록 해야겠어요. 미미님도 당선 곱절로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2-08-10 2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님 글을 읽으며 ‘탈아입구‘를 추구한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지식인들과 개화기 구한말 지식인들에게 근대화란 어떤 의미였을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살기 위해 마지못한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세계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싶었던 것인가에 따라 근대화의 우선순위도 달라졌던 것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거리의화가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거리의화가 2022-08-11 08:52   좋아요 2 | URL
조선 말 근대 개화 지식인들에게 일본의 지식인들이 끼친 영향은 아주 컸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청일전쟁을 기점으로 일본의 근대화라는 키워드가 조선에 충격을 줬을 테고~ 물론 그 이유가 말씀하신 대로 자구지책일 수도 있고 또는 내가 이 기회에 출세를 해보겠다라는 심산도 있을 것 같습니다. 중인 계급이었던 역관이 통역에 대한 구인이 많아질 만큼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 이전과는 분명 달라진 점을 일본의 많은 서양 번역서 등을 통해서 받아들이고 깨우친 면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선두주자가 후쿠자와 유키치였을테고요.
겨울호랑이님 감사합니다.

희선 2022-08-11 0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 축하합니다 날이 바뀌었습니다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08-11 08:52   좋아요 1 | URL
희선님. 축하 인사 감사드립니다^^ 희선님도 당선을 축하드려요!

페넬로페 2022-08-11 01: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역사에 대해 깊게 탐구하는 독서를 하시는 화가님께 항상 감탄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8-11 08:53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페넬로페님 이관왕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thkang1001 2022-08-11 13: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거리의화가 2022-08-11 13:09   좋아요 1 | URL
thkang1001님 축하 인사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8-11 1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8-12 0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사는 이제 화가님께로!!
더 깊은 세계로 나아가는 화가님께로!!!
축하드립니다^^

거리의화가 2022-08-12 09:04   좋아요 1 | URL
나무님의 댓글이 저를 힘나게 합니다~ 애정 어린 댓글 감사드려요^^*

러블리땡 2022-08-12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거리의화가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ㅎㅎ 좋은 밤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