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사랑>

인조 반려견에 대해 생각해본다. 인간이 필요에 의해 만든 피조물이다.
인간은 기술의 발달로 더 오래 살게 되었으나 주변의 이들과 언제까지나 함께할 수는 없다.
언젠가 그들은 자신의 곁을 떠나기 때문에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는 인구가 급증하는 거라고 본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살아 있는 반려동물도 결국 언젠가는 주인 곁을 떠난다는 것.
나는 반려동물을 키워보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죽고 난 이후 주변의 사람들이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의 감정을 느낀다고 들었다.
최소 10년 이상을 내 곁을 지키는 것이니 가족처럼 끈끈한 관계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그런 인조 반려동물이 실망감과 서운함을 드러낼 때가 언젠가는 올 것이다.
정교한 3D 프린터 등의 기술로 얼마든지 피부와 비슷한 조직을 만들어내고 학습으로 인간의 사고 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계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인조 반려견은 먼 미래가 아니라 가까운 시기에 구현될 수 있다.
대부분의 인간에게 첫사랑이 각별하듯 주인공의 ‘1호‘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
인간이 나이들듯 기계도 노후가 되고 금방 교체된다.
사랑의 감정이 시간에 따라 변하듯 기계도 한 인간에게 머무는 시간이 3~5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묘하게 연결된다.

<덫>
돈이 궁하면 사람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걸까. 이 정도면 사람의 길을 포기한 게 아닐까.
너무 끔찍하고 잔혹해서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도 아니고…
자식이 무슨 봉인가? 남보다도 못한 비정함.

그는 내 피조물이고 내가 만든 반려자였다.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나를 위한 존재, 달리 표현할 방법도 필요도 없이 한마디로 완전한 ‘내 것‘이었다. - P127

1호는 달랐다. 내 첫사랑. 그는 내게 ‘인공‘이 아닌 진짜반려자였다. 평균적인 사용 연한이 지난 뒤에도 나는 1호를버릴 수 없었다. 기종이 오래되어 네트워크에 접속할 때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도 중단했고 나중에는 오류가 계속 나서 네트워크 접속 자체도 포기하고 차단해버렸다. 결국 1호는 ‘반려자‘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스마트 책상이나 냉장고보다도 기능이 떨어지게 되어버렸다. 그래도 내게 1호는 언제나 1호였다. - P128

「나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 존재했습니다. 당신에게만은 대체할 수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이고 싶었습니다.」셋이 동시에 나를 향해 한 걸음 다가왔다. 나는 세스의 손이 1호의 목덜미를 잡고 데릭이 1호의 허리를 잡은 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셋이 전원과 중앙처리장치를 연결해 쓰고 있다.
그래서 맛이 가 버렸던 1호가 눈을 뜨고 있는 것이다.
저런 게 가능할 줄은 몰랐다. 아니 물론 가능한 건 알고 있었지만, 수리나 실험을 위해 공학자가 실험실에서 일부러 연결해놓은 모습이 아니라 기계가 스스로 자기들끼리 연결한모습은 처음 보았다. - P141

그것은 아름다웠다. 은은한 황금빛으로 빛나며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지나간 곳에 역시 은은한 금빛으로 빛나는 안개 같은 흔적을 뿌렸다. 그 금빛 안개는 서늘하고 창백했으며, 바라보고 있으면 가까이 가고 싶어졌고, 가까이 가면 손을 담그고 싶어졌다.
그 아름다운 금빛 안개에 홀려 가까이 다가간 사람들은 모두 미쳤다.
몸을 숙여 땅에 남은 그 금빛 흔적을 만진 순간 황금빛으로빛나는 그것이 몸을 돌려 쳐다보았다. 그것은 눈과 입과 갈라진 배에서 피를 흘리며 새하얗고 투명한 팔을 길게 뻗어 달빛처럼 하얗고 겨울 산의 눈처럼 차가운 손가락을 상대방의 몸속에 넣고 이리저리 휘저으며 중얼거렸다.
- 내 아기... 어디 있어….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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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지가 여성의 선택 문제로 환원되면 순전히 개인적인 결정처럼 보일 수 있다. 여성이 임신해 엄마가 되든 임신중지를 하든, 그런 일은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성이 임신과 양육에 대해 내리는 결정과 그에 따른 결과는, 젠더ㆍ계급ㆍ인종 같은 요인 때문에 그 여성이 어떤 선택에 다가갈 수 있으며 어떤 선택에서 멀어지는지, 더 넓게는 선택이 사회ㆍ문화적으로 어떻게 의미화되는지와 떼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 문제를 선택의 자유로 축소해 버리면 임신중지를 우리 시대의 도덕적ㆍ사회적ㆍ정치적 이슈로 만드는 사회ㆍ정치의 요인이 흐릿해진다.

오로지 여성의 선택권과 임파워링nempoweringn의 측면에서 피임과 임신중지를 외치면, 인종ㆍ계급ㆍ장애를 이유로 바람직하지 않은 양육자로 여겨진 여성들의 생식력을 통제하는 데 임신중지가 어떻게 이용돼 왔는지를 알기 어렵게 된다. 임신중지에 대한 규제는 재생산과 관련해 여성의 자유를 가로막는 여러 장애물 중 하나이며, "아이를 갖지 않을" 권리는 "아이를 가질 권리 그리고 출산을 조절할 권리, 낳은 아이를 기를 권리"와 함께 고려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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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8-11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책을 거들떠 보지도 않아서 이거 맨 앞 <들어가며>에 멈춰있는데요, 곧 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8-11 08:45   좋아요 0 | URL
<들어가며>가 생각보다 많이 길더라구요. 저도 여전히 앞부분이라...ㅠㅠ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읽어야겠습니다. 다락방님도 화이팅입니다!
 

<차가운 손가락>
읽고 나서도 얼떨떨했다. 뭘 말하고 싶은거지? 차에 갇힌 여자가 빠져나오려하고, 어떤 여자가 돕는데… 그 여자의 정체는?
내가 보고 듣는 걸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걸 말하는 듯 싶긴 했다.
세상은 불공평하지. 비극적인 감정에 매몰되면 주변의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몸하다>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가뜩이나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산부인과 의사의 말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지. 난 그런 경험이 없지만 이건 그냥 느낌으로 다 알 수 있었다. 임신이라는 상황에 부딪치고, 그것도 처음 임신이라면 누구라도 허둥대는 건 당연할 것 같은데. 주인공의 심정이 되어 너무 억울했다.
기껏 아이의 아빠를 구한다는 방법이 신문에 내는 거라니… 요즘 세상에 정보는 순식간인데…
마지막 장면은 처참했다. 많은 여성들이 비슷한 경험을 할 것 같아서…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얼마 전 읽었던 여성괴물에 나온 여성의 자궁에 대해 이야기한 -브루드-를 떠올렸다.

산다는 거, 정말 불공평하지 않아요? 똑같이 태어났는데,
누구는 남의 남자 채 가서 결혼도 하고, 누구는 단물만 빨다 껌 뱉듯이 버려지고….‘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느다란 목소리가 다시 말을이었다.
"재미있지 않아요? 똑같이 차 사고를 당해도, 누구는 끈질기게 살고, 누구는 그 자리에서 그냥 죽고……"
"당신, 누구예요?"
그녀가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이제 억누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가느다란 목소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억울할 것 같지 않아요? 살아 있을 때도 혼자였는데, 죽어버리고 나서도 계속 혼자면.…."
"여기, 어디예요? 난 어떻게 된 거예요?"
그녀는 계속 소리쳤다. 가느다란 목소리가 왼쪽에서 가느다랗게 킥킥 웃었다.
"사람이라는 거, 진짜 재미있어요. 안 그래요? 자기가 불안하다고, 제대로 보지도 못했으면서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그대로 믿고…."
"당신, 뭐예요?" - P78

"엄마가 되겠다는 분이 자기 아이에 대해서 그렇게 책임감이 없어서 어쩌겠다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지금 배 속에서 생명이 자라고 있어요. 한 인간이 만들어지고 있단 말이에요.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고요. 그런데 태아가 발육하는 단계에서 벌써 이렇게 나 몰라라 하시면 나중에 낳아서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 P95

자칭 ‘로미오‘는 그녀가 호출에 응하지 않자 직접 전화하기시작했다. 매일같이 전화하여 갖가지 문학 작품에서 남자가여자에게 구애하는 장면만 골라 읽으며 꼭 한 번 만나줄 것을간청했다. 꼬마들의 장난 전화도 자주 걸려왔고 자신의 오빠나 남동생, 아버지, 아들, 심지어 남편을 소개해 주겠다는 여자들도 있었다. 협박성 전화도 있었다. - P100

‘아기‘는 계속 꿈틀거리다 갑자기 부르르 떨었다. 검붉은덩어리는 아주 잠깐, 핏빛 보석처럼 더없이 투명하고 영롱하게 빛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아기‘는 혈액으로 와해되어버렸다.
그녀는 팔과 가슴이 피에 흠뻑 젖은채, 여전히 아기를 안은 모양대로 한쪽 팔을 둥글게 구부려 치켜들고, 피투성이가된 가운 앞섶과 분만대 가장자리에 고인 피 웅덩이를 멍하니내려다보았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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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제는 피할 수 없는 기후 위기가 된 것 같다.
이틀 연속 폭우로 퇴근길은 최악이었다.
월요일 퇴근 때는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일부러 검은색 바지를 입기는 했으나 소용 없었다. 온 몸이 다 젖은 채로 버스에 탔다.
올 여름 들어 벌써 두 번째 이런 사태였다.
어제는 비가 많이 올 것 같아서 불편하지만 샌들을 신었고 평소 입지도 않는 치마를 꺼내 입었다.
하지만 퇴근에 때맞춰 미친 듯이 쏟아붓는 비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게다가 차가 막혀서 퇴근 버스가 원래 오기로 한 시간보다 50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비를 맞고 에어컨 냉기를 쐬니 춥기도 했는데 어찌저찌 집에 도착했다.
온 몸이 두드려맞듯 욱신거렸다. 백팩 안에 책이 혹시라도 젖을까봐 사수하느라 팔에 힘을 잔뜩 주고 1시간 가까이 서 있었던 탓이었던 것 같다.
보도 뉴스에는 온통 흙탕물과 물바다가 된 도심의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기후 위기가 재난 수준이 된 것 같다.
1년에 내려야 할 비 양의 1/3 정도가 내렸다고 하니 말 다했다.
부디 이번주 더는 큰 비가 내리지 않으면 좋겠다.


#2

힘이 빠져 저녁은 대충 먹고 <저주토끼>를 읽기 시작했다.
괜히 읽었나 생각했다. 머릿속에 장면들을 떠올리면 불쾌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였다. -머리- 같은 경우^^;
좀 작위적인 설정들도 보이기는 했지만 저주토끼 단편은 두둔할 만한 메시지도 있었다. 계급과 자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정직이라는 단어는 사회에 통하지 않고 사기가 더 잘 통하는 세상이었다.


오늘 출근해서는 두 개의 단편을 더 읽었다.



- 추가


#3


고민하다가 <하얼빈>을 주문했다. 안중근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책이라 사야겠다고 결심을 굳힌 것이다.


정희진 글쓰기 시리즈는 1~3번째 1권 초반만 읽고 방치한 상태인데  5번째 책을 샀다. 좀 더 잘 읽힌다는 이야기를 듣고^^;

1권을 읽다 만 것은 방치라기보다는 한 편의 글을 읽고 나면 관련 작품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내려둔 것이다. 



8월의 커피를 포함시켰고~ 난 고소한 맛을 좋아하는지라 고소한 맛으로 샀다.




<헤어질 결심> 각본이 열풍인 와중에 나는 <동주> 각본집을 보자마자 설레서 결국 주문에 포함시켰다.

당시 좋아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봤던 영화였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관에서는 한 번만 봤지만 이후 개인적으로 몇 번 더 보았던 기억이 난다.

두 배우의 연기도 참 좋았고... 보고 있으면 윤동주와 송몽규의 삶이 아스라히 내 마음에 와 닿았었다. 

이 영화야말로 큰 화면으로 봐야 더 좋은 영화이다.

밤하늘의 별. 암흑 속에서 빛을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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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8-10 09: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폭우때문에 다들 비피해 입으신건 없는지 걱정이네요. 퇴근길이 정말 힘들었겠습니다. 저러고 집에 오면 정말 기진맥진이잖아요. 에휴....
여기 남쪽은 또 비 구경 하기 힘드네요. 아직 가뭄 해소도 제대로 안된지라 그는 또 그대로 걱정입니다.
저주토끼 처음에 좀 찜찜했는데, 특히 말씀하신 머리요. 근데 뒤로 갈수록 저는 좋아졌습니다. 부디 화가님도 좋아지시기를요. 뭐 아니어도 좋구요. 세상에 취향에ㅠ맞고도 좋은 책들은 널려있으니 말입니다. ㅎㅎ

거리의화가 2022-08-10 10:04   좋아요 3 | URL
저주토끼는 어차피 대출한 책이라 저도 가볍게 생각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여러 단편이 실려 있어서 그 중 마음에 드는 단편 하나 건지면 되겠다 생각하고 읽고 있어요^^;

비 구름떼가 충청 이남으로 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뭄은 해갈되어야겠지만 비가 단시간 내에 마구 쏟아지는지라 그럴까봐 또 걱정이네요~ㅠㅠ 한쪽은 폭염과 가뭄, 다른 한쪽은 폭우 이래 저래 기후위기가 맞나봅니다.

프레이야 2022-08-10 13: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뉴스에 알게 된, 폭우로 숨진 반지하방 가족 생각했습니다.
남쪽은 폭염이라 실감이 나지 않고 뉴스만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고 있어요. 동주 각본집 사셨군요. 그 영화 저도 무척 좋아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8-10 13:13   좋아요 2 | URL
재난과 위기는 어려운 이들에게 더 가혹한 상황이 되니 마음이 아픕니다. 자본과 계급이라는 단어가 여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씁쓸하고요.
동주 영화 좋죠. <하얼빈> 출고일이 좀 늦어져서 주말에나 받게 되겠지만 영화의 대사들이 제 가슴을 치고 들어올 것을 생각하니 설레입니다^^

mini74 2022-08-10 16: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화가님 몸은 좀 괜찮으세요.ㅠㅠ 동주. 저도 정말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저 어리고 고운 청년들이 왜. 라며 훌쩍이게 되는 영화네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08-10 16:53   좋아요 1 | URL
어제 퇴근 무렵 많이 추웠는데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잤더니 그나마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코로나가 사무실에도 들이닥쳐서 다시 조심해야 하는;;;
동주 보면 매번 뭉클해요~ 각본을 소장할 수 있어 좋습니다^^*

레삭매냐 2022-08-10 2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얼빈 읽고는 싶으나 왠지
제 돈 주고 사서 읽기에는 -

그리하야 아마도 가을이나 겨울
쯤 도서관에서 대여해서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거리의화가 2022-08-10 21:12   좋아요 2 | URL
저도 고민고민하다가 주문했어요~ 별로일수도 있을텐데 일단 이야기의 구성이나 문장력에 중점을 두고 읽어보려고 합니다.
날씨 서늘할 때 읽으면 더 좋을 듯도 싶네요. 레삭매냐님의 후일 감상도 기대해보겠습니다^^

페넬로페 2022-08-10 22: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애정하는 김훈작가의 하얼빈 기대됩니다^^
이문열의 불멸과 어떤 차별을 두고 썼을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저주토끼는 별 기대없이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빨려들어 단숨에 읽어 버렸어요.
기시감이 느껴지면서도 색다른 분위기가 좋더라고요~~
아직 동주, 영화 보지 못했는데 봐야 하는데도 맘이 아플까봐 보지 못하고 있어요^^

거리의화가 2022-08-11 08:57   좋아요 2 | URL
김훈 작가님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데 저는 사실 아직 깊게 빠져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필생 사업이라고 작가가 이야기한 안중근에 대한 것인 만큼 더 좋을 거라고 기대중입니다.
저주토끼 읽으면 읽을수록 다양한 주제와 묘한 분위기에 끌려 흡입력 있게 읽고 있습니다. 단편이라 주중에 읽기에도 좋네요ㅎㅎ
동주 영화로는 보지 못하셨군요. 한 번쯤은 꼭 보셔요. 큰 스크린으로 보면 더 좋은데~^^ 맘은 아프지만 참 잘 그려낸 수작입니다.

희선 2022-08-11 0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가 많이 와서 힘드셨겠네요 물바다가 된 곳 보니 무섭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 한번 겪기는 했는데... 그 뒤부터 여름 오고 비 온다고 하면 걱정합니다 기후변화가 심하네요 위기가 맞네요 지금부터라도 좀 나아지게 해야 할 텐데... 다음주에도 온다고 하던데 그때는 그렇게 많이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언제나 영화보다 책으로 만나는군요 《동주》도 책으로 봤습니다 몇해 전에...


희선

거리의화가 2022-08-11 08:59   좋아요 1 | URL
안 그래도 물을 무서워하는데 이번 비는 진짜 너무 무섭게 내려서 공포 수준이었습니다. 이제는 한반도도 기후 위기를 벗어날 수 없는 곳이 된 것 같습니다.

영화와 책은 느낌이 다르긴 하지만 이건 각본집이니까 영화를 보는 것처럼 볼 수 있는 맛이 있을 것 같아요. 희선님 고맙습니다.

새파랑 2022-08-11 12: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기도 폭우때문에 난리였군요 ㅜㅜ 그래도 출근해서 단편 읽고 좋은시간을 보내셨군요~!!
저도 하얼빈 읽고 싶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08-11 13:06   좋아요 2 | URL
수도권 전체적으로 난리였죠ㅠㅠ 이곳 다시 비가 옵니다. 이젠 비가 무섭고 지겹네요ㅜㅜ 주중에는 단편을 읽을까봐요. <저주토끼>는 기괴한 이야기와 묘사가 있어서 오싹해하며 읽었습니다ㅎㅎㅎ
<하얼빈> 새파랑님도 재미나게 읽으실 것 같아요.

2022-08-11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12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주토끼]

토끼 모양을 한 전등이 저주토끼다. 저주의 방법을 보면서 예전에 드라마 장희빈에서 장희빈이 중전을 저주하며 사람 모양을 한 인형에 저주를 걸어 비는 장면이 떠올랐다. 사람에게 그렇게 앙심을 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할아버지의 방법은 잘못되었으나 할아버지 친구는 억울할 만했다. 이 사회는 약삭빠르고 남의 등을 쳐먹는 사기꾼들은 잘만 살아남는데 반대로 어리숙하거나 순진하거나 열심히 사는 이들은 바보되기 십상 아닌가. 생각해보면 너무 분하고 억울하다.


[머리]
내가 버린 머리카락, 배설물, 생리대, 오물 등이 머리가 되어 변기에서 나와 나를 “어머니”라고 부른다면?
그 모습을 상상하니 오싹하긴 했는데 내가 사용하는 것들에 과한 것이 없나 생각해보게 됐다. 낭비에 대한 것들. 배설물도 먹는 대로 나오는 것이다. 먹는 양이 적으면 배설물도 적어지지 않을까. 환경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나에게서 나온 피조물이 나를 공격해서 나를 밀어낸다는 마지막 결말은 충격적이기는 했다. 이는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만들어낸 산물이 결국 나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결코 내 몸에서 나오는 어떤 것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

할아버지의 친구는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해서 더 맛있고 몸에 좋은 술을 만드는 데만 신경을 썼다. 정부 인사와의 친분, 인맥, 접대, 필요에 따라서는 뇌물이나 뒷거래가 제품과 기술보다 중요한 시대라는 사실을 할아버지의 친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변해버린 술 시장을 넘보는 더 큰 회사가 있었다. 인맥과 연줄에 강하고 접대에 능한 회사였다. 이 회사에서는 자신들이 만들어 파는, 알코올에 물과 감미료를 섞은 액체가 ‘서민들이 선호하는‘, ‘정통의 그 맛‘이라 광고했다. 앞에서는 정당하게 언론매체에 광고했지만, - P13

등 뒤로는 할아버지의 친구 회사에서 만든 술에 ‘공업용 알코올을 섞는다‘고, 그 술을 마시면 눈이 멀고 불구가 되며 많이 마시면 죽는다고 비방했다.
매출이 뚝뚝 떨어졌다. 공장이 가동을 멈추었다. 아니라고아무리 해명해도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았다. 자기 공장에서만든 술을 직접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려 해도 그 어느 방송에서도 상대해 주려 하지 않았다. - P14

토끼들은 계속 보이는 대로 갉아댔고 그러면서 계속 번식했다.
서랍 속과 철제캐비닛 속에서 주문서와 계약서와 영업실적 보고서와 회계장부와 재무제표 등등 모든 서류가 밤마다조각조각 씹히고 밝히고 찢겼다. 서류를 추려서 금고로 옮기자 금고 안에 있던 현금과 수표,
어음까지 밝히고 씹히기 시작했다. - P23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할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업은 그 어 - P33

느 때보다 호황이다.
지금과 같은 삶을 계속 산다면 나도 언젠가 할아버지처럼죽어도 죽지 못한 채 달 없는 밤 어느 거실의 어둠 속에서 나를 이승에 붙들어두는 닻과 같은 물건 옆에 영원히 앉아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저 창가의 안락의자에 앉게 될 때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자식도, 손자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방문을 닫고 완전한 어둠 속에 홀로 선다.
이 뒤틀린 세상에서, 그것만이 내게 유일한 위안이다. - P34

"당신이 변기 속에 버리곤 했던 빠진 머리카락과 당신의 배설물과 뒤를 닦은 휴지 등, 당신이 변기 속에 버린 것들로 인하여 제가 생겨났기에 당신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 P39

그녀는 젊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젊은 자신의 몸을바라보았다. 자궁과 탯줄이 아닌 대장과 배설물로 자신에게서 비롯되어 어엿한 성체를 이룬 존재를 바라보았다. 순백의도기 속에 가려진 그 검은 구멍에 숨어 그렇게도 오랫동안 그렇게도 지겹게 자신을 괴롭혔지만 이제 떠나겠다는 그 존재를 바라보았다. 작별하는 마당이라면, 정말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면, 옷 한 벌쯤 주어도 무방할 터였다.
젊은 그녀가 수건으로 몸을 닦는 동안 늙은 그녀는 옷을 벗었다. 별로 화사한 입성은 아니었다. 카디건 하나와 원피스,
브래지어와 팬티, 양말, 그것으로 전부였다. 그녀는 알몸이되어 젊은 그녀가 늙은 그녀의 옷을 하나하나 천천히 주워 입는 것을 바라보았다. 팬티, 브래지어, 원피스, 카디건, 젊은그녀는 공들여 하나하나 음미하듯이 옷을 입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말을 신고 카디건의 앞섶을 여몄다. 늙은 그녀는벗은 몸에 문득 으스스 한기를 느꼈다. - P55

"은혜라니, 무슨 은혜란 말이냐? 내가 언제 태어나고 싶어네게 부탁한 적이라도 있더란 말이냐? 네게서 비롯된 피조물이라 하여 네가 한 번이라도 따뜻이 돌보아준 적이라도 있었더냐? 너는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태어나게 했고 이후에도 나를 혐오하고 역겨워하여 줄곧 없애고자 하지 않았느냐? 내게 베풀어준 것이라고는 있어 봤자 네게는 백해무익할 따름인 배설물과 오물뿐이 아니었느냐? 그나마 받아먹으며 사람다운 외양을 이루기 위해 나는 네게서 갖은 수모와 박해를 받아야 했단 말이다. 하지만 드디어 나는 몸을 이루었다. 어두운 구멍 속에서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이제 나는 네가 되었으니 너의 자리를 차지하여 살아가리라."
말을 마치고 젊은 그녀는 늙은 그녀에게 다가섰다. 젊고 억센 손이 늙은 어깨와 목을 붙잡았다. 젊은 그녀는 늙은 머리를 변기 속으로 쑤셔 넣었다. 그리고 재빨리 늙은 발목을 잡아 들어 올렸다. 늙은 몸을 가볍게 변기 속에 거꾸로 처넣고나서 젊은 그녀는 변기의 뚜껑을 닫고 물을 내렸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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