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4 - 1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4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기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나서야 하는 일이 있는 법. 달걀로 바위치기였기에 뒤집을 수 없었던 결과. 어쩔 수 없이 고향 평사리를 떠나 뿔뿔이 흩어지게 된 사람들. 선한 자는 죽거나 다치고 비열함도 악(惡)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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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2-09-28 0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모두 토지 읽으시는군요! 저도 어제 도서관에서 한참 갈등하다 일단 돌아왔어요;;

거리의화가 2022-09-28 09:31   좋아요 1 | URL
어쩌다보니 4명이서 읽고 있는 것 같은데요^^(괭님, 다락방님, 미미님, 저까지) 비타님도 함께 하시죠! 정말 아름다운 한국문학입니다~

독서괭 2022-09-28 10: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달걀로 바위치기 ㅠㅠ 정말 안타깝죠. 삼수만 아니었어요..!

거리의화가 2022-09-28 10:22   좋아요 2 | URL
삼수 때문에 꼭지 돌뻔 했는데 그 뒤에 더한 X이...ㅎㅎㅎ 정말 빡침의 연속이었어요ㅠㅠ

다락방 2022-09-28 1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2권 시작했는데 강포수가 귀녀를 짝사랑해요. 아, 이 빌어먹을 사랑이란 것...

거리의화가 2022-09-28 11:34   좋아요 2 | URL
강포수 진짜 미련할 정도로 귀녀를 끝까지 사랑하죠. 귀녀가 계속 강포수를 밀어내다가 죽기 전에야 받아들일 때 넘 안타까웠어요ㅜㅠ

독서괭 2022-09-28 11:35   좋아요 1 | URL
저 7권 듣는데 강포수 재등장해서 반가웠어요 ㅋㅋㅋ

거리의화가 2022-09-28 11:41   좋아요 1 | URL
7권에 다시 등장하는군요. 안 그래도 강포수 소식 궁금해지더라구요ㅎㅎㅎ

scott 2022-09-28 11: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토지 9권에서 멈춰 버린 이유가
화가님의 리뷰와 비슷 ^^

거리의화가 2022-09-28 13:00   좋아요 2 | URL
3, 4권 특히 힘들었어요. 뒤로 갈수록 더할 것 같긴 하군요. 작가의 내공 때문이겠지만 그로 인해 읽기가 힘들기도 합니다ㅠㅠ 스콧님의 심정 이해가 가네요.

mini74 2022-09-29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1권은 사서 읽고 나머지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있어요. 재미있는게 뒷권으로 갈수록 책이 깨끗합니다 ㅎㅎ 1권은 너무 지저분해서 구입한 거였거든요 ~~~

거리의화가 2022-09-29 13:32   좋아요 1 | URL
정작 전권 세트 구입해놓고 인용문 참고할 때만 책을 뒤적뒤적해서 께끗합니다! 뭐 이것도 자주 하다보면 지저분해질까요?ㅎㅎ
 
[eBook] 노생거 사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3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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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독자의 무지를 고백하고 간다. 나는 이 책을 순전히 출간순으로 생각해서 <맨스필드 파크>와 <엠마> 다음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 책은 작가 28 세때 써낸 최초의 장편소설이었다. 읽고 나니 이 책이 왜 초기작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원작의 이름은 「수전」이었다고 하는데 20대 때 썼지만 책은 작가 4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뒤 출간되었다. 


먼저 제목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해야겠다. 사원이라는 말이 언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전에 수도원이었던 건물이니 수도원이라고 하던지 저택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원이라는 명칭 자체가 책의 장소가 주는 느낌을 전달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내용이 성글고 거칠다. 그런데 그래서 놀라웠다. 왜냐! 초기 장편소설의 수준이 이렇다고? 하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두 가지 면에서 놀라웠다. 

첫 번째, 소설과 소설가를 논한 부분과 역사(책)에 대한 논쟁과 토론.

두 번째, 고딕 소설을 체화한 스토리. 심지어 그 스토리가 꽤나 내게 먹혔다. 괴기스러움과 삐걱거림. 좀 오싹하기도 하고 공포스럽기도 한 감정을 이야기를 통해서 잘 풀어냈다.


새로 나오는 소설마다 쓰레기 같으니 어쩌니 하면서 신문에다 대고 케케묵은 곡조로 왈왈거리게 내버려두자. 우리끼리는 서로를 저버리지 말자. 우리는 상처 입은 몸이다. 우리의 작품들은 세상의 어떤 다른 문학기관이 내놓은 작품보다 광범위하고 가식 없는 즐거움을 주어 왔음에도, 어떤 종류의 글보다 폄하되었다. 자존심 탓이든 무지 탓이든 유행 탓이든, 우리의 적들은 우리의 독자만큼이나 많다. 

그들은 『영국의 역사』를 900번째로 요약한 사람의 능력이나 밀턴, 포프, 프라이어의 열두어 행을 《스펙테이터》의 논문 한 편과 스턴의 한 장(章)과 묶어서 출판하는 사람의 능력에는 벌 떼같이 달려들어 미화하면서, 소설가의 역량은 폄하하고 그 노고를 절하하려고 든다. 오직 천재, 위트, 감식력으로만 승부하는 그런 작업을 무시하고자 하는 것이 대세를 이룬 듯 하다. 
“전 소설은 읽지 않아요……. 소설은 들여다본 적도 거의 없는걸요……. 제가 종종 소설을 읽으리라는 상상은 하지 마세요.……. 소설치고는 꽤 좋네요.” 이런 것이 판에 박힌 듯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아가씨, 뭘 읽고 있어요?”
“아이! 그냥 소설이에요!” 젊은 숙녀는 대답한다.
일부러 무관심을, 혹은 일시적인 수치심을 엿보이며 책을 내려놓으면서. “별거 아니고 『세실리아』나 『커밀라』나 『벨린다』인걸요.”
한마디로 그냥 소설 작품이라는 것인데, 실은 여기서야말로 정신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 발휘되고,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철저한 지식, 그 다양한 면모에 대한 가장 기막힌 묘사, 생생하게 넘쳐흐르는 위트와 유머가 선택된 최상의 언어로 세상에 전달되는 것이다.

"전 역사를 좋아해요."
“저도 좋아하고 싶어요. 역사책은 의무적으로 조금 읽었지만, 짜증 나고 죄다 지루한 이야기뿐이더군요. 페이지마다 나오느니 교황들과 왕들의 싸움이고 여기에 전쟁이나 역병이 곁들여지고요. 남자들은 죄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고, 여자는 보이지도 않고요. 정말 따분하지요. 그렇지만 그렇게 따분하다는 게 이상하단 생각도 종종 들어요. 그 대부분이 지어낸 것이 분명한데 말이에요.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연설이라든가, 그들의 생각이나 속셈이나…… 그 대부분이 지어낸 게 틀림없죠. 다른 책에서는 지어낸 게 재미있는데 말이에요.”
만약 당신이 불쌍한 아이들이 처음에 문자를 배우고 그다음에 철자를 배우는 소리를 저만큼 자주 들어 보신다면, 그 아이들이 아침나절 내내 얼마나 집단으로 멍청해질 수 있고 저의 가엾은 어머니가 마지막에는 얼마나 진이 빠지시는지 본 적이 있다면, 당신도 ‘고문하다’와 ‘가르치다’가 가끔은 동의어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실 거예요. 전 거의 매일 집에만 있다 보니 그런 모습을 늘 보거든요.”“그렇다고 해 두죠. 그러나 읽기를 배우는 어려움을 역사가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지요. 그리고 당신 자신부터가 평생 동안 책을 읽는 능력을 얻기 위해서 이삼 년 정도는 고문을 당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할지도 모르잖아요. 보아하니 아주 심하게 빡빡한 공부에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것 같지만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또 하나 추가한다면 이것은 제인 오스틴 소설에 매번 등장하는 것 같은 그녀의 지적 수준이다. 작가가 드러내는 글은 작가의 지적 능력을 고스란히 보이게 된다. 이 소설도 역시나 그런 면모를 내보여주고 있다. 주로 고딕 소설을 쓴 작가와 책 제목이 여러 번 나열된다. 당시 고딕 소설이 꽤 많이 유행했구나 하는 생각을 이 소설을 통해서 알게 된다. 휴머니스트에서 세계문학 시리즈로 올해 초 고딕 소설류들을 펴냈던 것이 기억났다.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했는데 작가의 묘사력을 보니 충분히 읽어볼만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오래된 건축물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헨리 틸니에 대한 열정에 버금갈 정도였다. 그리고 대체로 성과 사원들은 그의 모습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그런 몽상의 매력을 선사했다. 고성의 누벽과 성채, 혹은 사원의 회랑을 둘러보는 일은 여러 주 동안 소중히 품어 온 소망이었다. 한 시간 정도 관광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도 족할 판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저택의 이름이야 하우스, 홀, 플레이스, 파크, 코트, 코티지 등등 어떤 것으로 불려도 어쩔 수 없었겠지만, 노생거는 다른 무엇이 아닌 사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 머물게 될 터였다. 길고 음습한 통로들, 좁은 방들과 폐허가 된 예배당을 날마다 접할 수 있을 터였다. 무언가 전통적인 전설들, 상처 입고 불행해진 수녀의 참혹한 사연 같은 것들을 접할 수 있으리란 희망을 완전히 접을 수는 없었다.

무언가 더 깊은 이유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집안사람들이 잠들었을 때에만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을 터. 그리고 틸니 부인이 아직 살아 있고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갇혀 지내면서 남편의 무자비한 손으로 밤마다 조악한 음식을 공급받으며 지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결론이 필연적으로 따라 나왔다. 너무나 충격적인 발상이긴 했지만, 적어도 부당하게 급사한 것보다는 나았다. 사태가 순리대로 진행되면 머지않아 풀려날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소문이 자자했던 그녀의 갑작스러운 병, 그런데도 바로 그 시기에 딸이 없었고 다른 자식들도 없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니…….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그녀가 유폐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 기원은.... 아마도 질투였겠지. 아니면 까닭 없는 잔인함이든가……. 아직은 풀리지 않는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마지막의 결말이 약간 용두사미 같달까. 급하게 끝내려고 마무리한 느낌이었다. 제인 오스틴의 특성 답게 해피엔딩으로 정리하려는데 좀 더 매끄럽게 시간을 들였다면 독자도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론 설득력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포장하는데 기술이 조금 부족했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첫 번째 장편 소설을 이렇게 그려낸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지 제인 오스틴 천재 맞네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소설을 읽어내는 것도 버거운 사람이라 한 편의 서사를 써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상상력과 현실을 적절히 버무리면서 그것을 글발 있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데 말이다.

소설에 대한 내용의 구성은 전체적으로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 부분은 주인공인 캐서린이 무도회에 진출하여 사람들을 사귀게 되는 과정. 그리고 뒷 부분은 노생거 사원에 가서 겪게 되는 일이다. 앞 부분과 뒷 부분의 내용이 명확히 구분되어 사실상 두 부분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첫 번째 파트는 제인 오스틴 하면 떠오르는 무도회에서 남녀가 만나 춤을 추고 눈이 맞거나 친구를 사귀는 내용이 나오는 반면 두 번째 파트는 사원에서 그려지는 이야기인데 환상과 현실의 버무림이랄까. 꿈 속을 헤매다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느덧 이 소설을 읽음으로써 제인 오스틴의 장편 소설을 4번째로 읽게 되는 것이 되었다. 읽다 보니 처음에 느꼈던 밋밋함이 서서히 호기심으로 바뀌는 것을 느끼게 된다. 비슷한 듯 보이는 19세기 영국 여성의 이야기임에도 스토리, 공간, 인물에 대한 묘사를 통해 다름이 느껴지는 것은 역시 작가의 능력이다.
예를 들면 바로 이전에 읽은 <맨스필드 파크>와 이 책은 정말 다른 느낌을 주었다. <노생거 사원>은 인물 관계도가 복잡하지 않고 스토리도 간결하다. 그에 비해 <맨스필드파크>는 이야기의 호흡도 긴 편이고 인물 관계도 복잡하다. 내 생각에는 <맨스필드 파크>가 이야기 자체로만 보면 더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는 생각이지만 캐릭터 싸움에서는 사실 누가 승리할지 모르겠다. <노생거 사원>의 주인공 캐서린이 내게는 좀 더 시원시원한 느낌이었다. 과도하게 몰입한다는 단점 빼고는 자기 주장도 강하고 여리여리한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어서 마음에 들었다. 그에 반해 <맨스필드 파크>의 주인공 패니 프라이스는 내겐 많이 답답했다. 수동적이고 상처를 잘 받고 감정이 풍부하고 섬세해서 툭 하면 터질 것 같은 예민함이 내겐 부담스러웠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평가다. 역시 소설은 직접 읽어봐야 경험할 수 있는 것.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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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2022-09-27 13: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든 생각인데요. 이 글은 ‘단숨에‘ 쓰셨구나 했습니다. 저도 한 호흡으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신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 발휘되고,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철저한 지식, 그 다양한 면모에 대한 가장 기막힌 묘사, 생생하게 넘쳐흐르는 위트와 유머가 선택된 최상의 언어로 세상에 전달˝

혹시 이 부분을 좀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거리의화가 2022-09-27 14:16   좋아요 2 | URL
불친절한 리뷰어라 죄송합니다^^; 앞 부분에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명확한 인용문이 있었는데 그걸로 대체하는 게 좋을 것 같긴 하네요. 어쨌든!

앞 부분의 인용한 소설 부분은 주석을 살펴보니 ‘세실리아‘와 ‘커밀라‘는 프랜시스 버니(Frances Burney, 1752~1840), ‘벨린다‘는 마리아 에지워스(Maria Edgeworth, 1768~1849)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부분은 소설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라고 보여집니다.

그 문장 앞 부분에 요 문장을 보면 더 이해가 되실 것 같아요.
->
˝그들은 『영국의 역사』를 900번째로 요약한 사람의 능력이나 밀턴, 포프, 프라이어의 열두어 행을 《스펙테이터》의 논문 한 편과 스턴의 한 장(章)과 묶어서 출판하는 사람의 능력에는 벌 떼같이 달려들어 미화하면서, 소설가의 역량은 폄하하고 그 노고를 절하하려고 든다. 오직 천재, 위트, 감식력으로만 승부하는 그런 작업을 무시하고자 하는 것이 대세를 이룬 듯하다.˝

초원 2022-09-28 10:05   좋아요 2 | URL
전혀 불친절하지 않습니다. 거리의화가 님의 답을 듣고보니 이렇게 명확한데 제가 미처 파악하지 못했군요. 에구~.
상냥한 화가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2-09-27 14: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팽귄클래식판 <노생거 수도원>으로 읽었습니다 ㅋ 초기작이어서 그런지 약간 미숙한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더라구요. 갑자기 고딕소설화 된것도 재미있고 ㅋ

거리의화가 2022-09-27 14:56   좋아요 2 | URL
명칭으로 보면 수도원이 나은 것 같아요. 사원 진짜 좀 이상...ㅋㅋ 저도 초기작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가 재밌어서 술술 잘 읽혔어요~ㅎㅎ 말씀하신대로 뒷부분 급반전!ㅎㅎㅎ

바람돌이 2022-09-27 15: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지를 고백. 지금 이성과 감성 먼저 읽으려고 했는데 노생거사원이 초기작이군요. 순서 바로 바꿉니다. 일단 저도 노생거사원 먼저 읽는 걸로.... 사원이라고 하면 저는 절이 먼저 생각나는데 역시 수도원을 사원이라고 하는건 틀린 표현은 아닌데 잘 안 떠오르는.... 곧 따라가겟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09-27 16:04   좋아요 2 | URL
타이밍을 제가 맞춰드렸군요! 이 책 읽고 이성과 감성 읽으시면 더 잘 읽히실 것 같습니다^^ 사원 저도 좀 언뜻 떠오르지는 않아서 애매하다는 생각이었어요. 바람돌이님의 흥미진진한 리뷰 기대할게요*^^*

레삭매냐 2022-09-27 16: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 노생거...

그전에 을유문화사 판을
중고서점에서 본 적이 있
는데 그 때 샀어야 했나
봅니다.

저는 장정본을 좋아하거든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모두
6권인가요? 전 <설득> 하나
읽었네요.

거리의화가 2022-09-27 16:25   좋아요 2 | URL
네. 장편소설은 총 6권이더라구요^^ 저는 엠마하고 설득 빼곤 다 읽었는데 두 권은 나중으로 미루려구요. 지금 읽을게 너무 많아서ㅎㅎㅎ

팬이라면 장정본 쭈욱 모아두면 좋은 듯 싶어요. 저는 펭귄판도 표지가 이뻐서 좋던데 그렇게 모으기에는 지금 서재에 공간이 다 차 있어서 불가능할 듯하네요~^^
 

도서관 나들이를 했다.
8월에 신청한 희망 도서들이 도착했다길래 기쁜 마음으로 나섰다.
지난 번에는 도서관에서 집으로 올 때 걸었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제대로 체크를 못했다.
이번에는 반대로 집에서 도서관까지 걸어보았다.
낮에 나와서인지 따뜻한 볕 기운에 살짝 살짝 부는 바람이 기분을 좋게 했다.
하늘도 어찌나 파란지 높고 푸른 하늘에 구름의 행렬까지 볼 수 있었다.
도착하니 36분 정도 걸렸다. 걸음수로는 내 넓은 보폭으로 4천보 남짓 나오더라.

빌린 책들은 이렇다.
전쟁과 목욕탕,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2주 안에 읽어야 하니 1주에 1권씩을 목표로 해야겠다^^

그리고 얼마 전 지구본을 주문했다.
뜬금포 같긴 한데 중국어 라디오 청취하다 지구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잊고 있었던 호기심이 생겼다.
어렸을 적 누구나 세계와 세상에 대한 관심이 생길 때 지구본을 떠올리곤 했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님께서 지구본을 사서 아이들과 같이 학습도 하던데 나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생각보다 큼직하고 많은 정보들이 담겨 있어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보게 된다.
옆지기는 구글 지도 있는데 왜 샀냐고 타박을 했지만 지구본은 다른 용도라며 열심히 우겼다^^

주말에 책 한 권 진득하게 읽고 리뷰까지 써서 홀가분한 마음이 든다.
남은 저녁은 노생거 사원 좀 읽고 통감절요 강의 하나 보는 것으로 마무리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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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9-25 19: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젠 지구본까지 ~!! 역시 역사 세계사는 화가님이 최고네요 ㅋ

거리의화가 2022-09-25 21:36   좋아요 3 | URL
ㅎㅎㅎ 지구본 보면서 세계사 책 읽을 때 바로 참고하면 정말 좋겠더라구요. 진작 살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ㅎㅎㅎ

청아 2022-09-25 20: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희망도서는 선물받은 기분이죠?!ㅎㅎ
지구본 저도 갖고싶네요~^^♡

거리의화가 2022-09-25 21:37   좋아요 3 | URL
네. 도서관에 새로 들어온 책들 저 빼곤 안 읽을까봐 걱정되지만(기우겠죠?). 지구본 완전 좋습니다^^ 미미님도 한번 장만해보시죠ㅋㅋ

책읽는나무 2022-09-25 21: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구본도 왠지 가을 하늘색과 비슷하네요?
지구본은 다른 용도로!!!!ㅋㅋㅋ
곧 세계 무대를 화가님 한 손안에~ㅋㅋㅋ

거리의화가 2022-09-25 21:39   좋아요 4 | URL
네. 블루 타입으로 골랐어요 엔틱 버전도 있던데 저는 무난하게 블루로 골랐답니다ㅎㅎ 시원해보이고 좋은 것 같아요^^ 세계가 책상 위에 떡하니 있어서 좋습니다!

바람돌이 2022-09-25 21: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가을하늘! 저는 오늘은 집콕하다가 다 어두워져서야 운동하고 왔네요.
저희 집에는 아이들 어릴 때 샀던 지구본 있어요.
아이들과 어릴 때 많이 가지고 놀았는데.... ^^
저희 동네는 희망도서 1주일에 2권 신청할 수 있는데 제가 도서관 2군데 신청해서 매주 도서관 나들이 해요.
저는 헌 책보다는 새 책을 좋아해서 희망도서 받을 때마다 내가 책 산 기분이라 뿌듯해요. ^^

얄라알라 2022-09-26 00:36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님, 도서관 별로 1주일에 2권 신청인 걸, 저는 오늘 처음 바람돌이님 덕분에 알았네요. 와....그걸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전 뭔가요 ㅎ

거리의화가 2022-09-26 09:27   좋아요 1 | URL
저는 토요일에 저녁 무렵 운동을 했어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흠칫했네요~ 다음에는 좀 이른 시간에 해야할 것 같아요ㅋㅋ
역시 지구본 있으시군요. 이제는 아이들이 더 들춰보지 않겠죠~? 아이들과 그렇게 놀아주는 것이 그래도 추억이 될 것 같아요^&^
희망도서 2권을 동시에 신청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이렇게 보니 좋더군요.
하늘이 무척 이뻤습니다. 요새 하늘 최고에요! 맑은 하늘에 바람까지 적당히 부는 날씨라 이 맘 때가 딱 다니기 좋은 듯 싶어요. 조금 더 추워지면 저는 목도리 칭칭 동여매고 스웨터를 입어야할테니~ 지금을 마음껏 즐겨야겠어요!

얄라알라 2022-09-26 0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희망도서 받아왔는데 추석 기간 한 주 밀려서 그랬나?? 뭔가 책이 많아서 뿌듯해요. 올려주신 사진 속 구름 이름은 깃털이라고 지어야겠어요^^

거리의화가 2022-09-26 09:28   좋아요 1 | URL
아. 추석 기간 때문에 그랬나봐요. 저 9월 초에 신청한 책도 있는데 조만간 또 받게 되겠군요~ㅎㅎㅎ 책이 많으니 더 부자된 느낌입니다~ㅋㅋ
깃털 구름 오!!! 그러네요*^^*

레삭매냐 2022-09-26 0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늘이 정말 맑고 푸르네요.
가을날인가요 이제.

<전쟁과 목욕탕> 땡기네요.
저희 동네 도서관에는 없는
책이네요. 희망도서로 날리
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9-26 09:56   좋아요 2 | URL
희망도서로 신청하는 책들 기준이 점점 정리되는 중이에요^^ 소장하기에는 애매한데 읽어보고는 싶은 책이거나 읽어보지 않고 구매하기 부담스러운 책들을 먼저 읽어보기 위한 용도랄까! 둘다 그런 책들이었습니다^^
이제 정말 가을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낮에는 좀 덥게도 느껴도지지만요~ 그래도 이런 날씨가 오래는 안가는 것 같아서 충분히 즐겨야겠어요.

다락방 2022-09-26 1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학창시절 한국지리,세계지리 진짜 못했거든요. 국사 세계사도 못했지만요.
나중에, 한참 지나서, 여행을 즐기게 되었을 때는 저절로 지도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지구본을 갖고 있습니다. 지구본 보면서 내가 가고 싶은 나라는 얼마나 먼가 한 번씩 살펴요. 걸어서 세계속으로 본다든가 할 때 또 지구본 가지고나와 살피고요. 지구본 너무 좋아요. 저의 사랑하는 아이템입니다. 꺅 >.<

거리의화가 2022-09-26 10:47   좋아요 1 | URL
그러네요.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은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그리면서 지도에 관심을 갖게 되니까요^^ 역시 다락방님은 이미 지구본을 갖고 계시는군요 저에게도 잇템이 될 것 같아요!ㅎㅎㅎㅎㅎ

다락방 2022-09-26 10:48   좋아요 2 | URL
저는 사랑하던 사람이 다른 나라에 살았거든요. 그래서 가끔 지도를 보면서 이 사람과 내가 있는 곳의 중간지점은 어디쯤일까 짚어보곤 했어요. 후훗:)

독서괭 2022-09-26 12:10   좋아요 2 | URL
다락방님 저랑 못 하는 게 비슷하셨군요…

다락방 2022-09-26 12:18   좋아요 2 | URL
아니, 독서괭 님도 이 과목들을 못하셨단 말입니까? 엄청 잘하셨을 것 같은데요!!!!!

독서괭 2022-09-26 12:21   좋아요 2 | URL
암기과목 너무 싫어했고.. 지리는 특히나 길치인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요.. ㅋㅋ

다락방 2022-09-26 12:29   좋아요 2 | URL
저도요, 저도요, 저도요! 저는 암기과목 진짜 다 못했어요. 저는 외우는 거 진짜 못해요 ㅋㅋㅋㅋㅋㅋㅋ 길치라서 그런지 지도 보는 것도 영 똥멍충이 같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국사 세계사는 아마 전교 꼴찌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09-26 12:37   좋아요 2 | URL
전 심각한 방향치라.. 골목 하나만 돌아도 이게 어느 방향인지 헷갈립니다 ㅠㅠ 제 감으로 정한 길은 꼭 틀리고요 ㅋㅋ 스마트폰과 내비게이션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역사 그나마 학창시절 외웠던 거 다 잊어버려서 부끄럽습니다 ㅠㅠ

다락방 2022-09-26 12:39   좋아요 3 | URL
저는 빌딩에서 화장실을 들어갔다 나오면 빌딩 출구를 찾지 못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2-09-26 12:46   좋아요 2 | URL
ㅋㅋㅋ 두분 여기서 뭐하세요~?ㅎㅎㅎ
저는 암기과목은 좋아했는데 길치는 공감합니다! 저도 길 정말 잘 헤매서 외국 나갈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걱정합니다ㅎㅎㅎㅎㅎ

독서괭 2022-09-26 13:11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셋이 같이 다니면 헤매기는 1등이겠군요!!

호우 2022-09-26 1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하늘 참 예쁘죠? 날마다 하늘을 보면 계절을 느끼게 되요. 지구본이 놓인 서재라니 너무 멋지네요. 뭔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시간이 될 거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2-09-26 10:48   좋아요 1 | URL
높아만 가는 가을 하늘을 보며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요즘입니다. 한동안 골골대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왠지 신체도 그에 맞춰 좋아지는 착각도 느껴지구요~ㅎㅎㅎ
지구본 생각보다 크기가 제법 되어서 책상에 어찌 배치할지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도를 직접 보면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이 늘어날 것 같아요!

scott 2022-09-26 12: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구본 멋집니다
전 밤에 불이 들어오는 크리스탈 재형의 지구본(화가님것 보다 크기가 작은)
갖고 있습니다. ㅎㅎㅎ

지구 사랑 💖환경 보호!

화가님 올려 주신 쾌청한 하늘 처럼
오늘 하루종일 맑게 ^^

거리의화가 2022-09-26 12:44   좋아요 3 | URL
옆지기가 LED 되는걸로 사지 그랬냐며 물어보더라구요^^; 저는 그냥 심플한게 좋아서 기본으로 샀습니다ㅎㅎㅎ 저는 32cm였는데 그럼 scott님은 26cm일것 같네요~ㅎㅎㅎ

스콧님도 맑은 푸른하늘처럼 쾌청한 하루 되시길요!*^^*

독서괭 2022-09-26 12: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애들 보여주는 용으로 지구본이 있는데 가끔 같이 들여다보고 있으면 참 신기합니다^^ 구글지도랑은 완전 다르죠, 암요!
하늘 넘나 예쁘네요😍

거리의화가 2022-09-26 12:45   좋아요 3 | URL
ㅎㅎㅎ 역시 괭님은 알아주시는군요~ 저도 효율을 따지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구글지도랑 지구본은 용도가 다르다고 생각해요!ㅎㅎㅎ
오늘도 어김없이 멋진 하늘을 보여주는 하루입니다. 남은 하루 즐겁게 보내시길요^^

mini74 2022-09-26 18: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어릴적 지구본 무지 가지고 싶었어요. 뭔가 근사하고 있어보이고 ㅎㅎ 아이 태어나고 불 들어오는 지구본을 샀던 기억납니다. 아이랑 동화책 읽고 작가님 사는 나라 찾아보기도 했지요. 지구본 보니 넘 반갑고 추억도 떠오릅니다. 전쟁과 목욕탕 저도 관심가는 책입니다 ~

거리의화가 2022-09-27 09:55   좋아요 2 | URL
좁은 땅덩어리에 사는 우리가 세계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지도인 것 같아요. 지구본은 돌려가며 볼 수 있어서 편리하기도 하구요^^
동화책 읽고 작가의 나라를 지구본에서 찾는다니 좋은 교육인 것 같습니다. 미니님은 현명한 부모님이셨음에 틀림없는 것 같아요^^
전쟁과 목욕탕 아직 읽기 전이지만 저도 왠지 미니님이 이 책 좋아하실 것 같았어요. 읽고 나서 소감 공유하겠습니다!ㅎㅎ
 
오랑캐의 역사 - 만리장성 밖에서 보는 중국사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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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과 지엽은 서로얽혀 있다. 잎, 꽃, 열매가 피었다가 지고 열렸다가 떨어지는 무상無常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무의 생명이 그 신진대사에 걸려 있다. 사상에있어서도 현실적 측면을 지엽으로만 여기며 무시하는 경향을 ‘근본의‘fundamentalism로 경계한다.
역사학은 근본에 치우치는 경향을 조심할 필요가 있는 분야다. 취급하는 자료가 남긴 사람들의 가치관에 따라 선별되고 재단된 것이기 때문이다. - P9

공부는 이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읽었던 책들로 인하여 차곡차곡 쌓인 공부가 빛을 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동아시아를 발견하다>, <만주족의 역사>, <도해 타이완사>, <중국철학사>, 일본의 근세 이후 메이지 유신 이후의 역사 관련 책 등을 통해 중국 주변을 둘러싼 역사를 바라보는 작업을 진행했고 최근의 <인류본사>, <합스부르크 제국사>를 통해서 이슬람 세계와 유럽, 이베리아반도의 제국사를 들여다보았으며 <하버드 베크 C.H.베크 세계사: 1350~1750>을 통해 14세기에서 18세기의 세계사를 통합하는 작업을 거친 것이 이 책을 읽어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은 칼럼으로 연재된 것을 모은 것인데 저자의 블로그를 통해서 미리 글을 봤었지만 그 때만해도 좀 어렵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읽어보니 마치 하나를 관통하는 줄기처럼 맥이 잡히는 것이 느껴졌다. 놀라운 일이다.

이 책은 그동안 저자가 내부의 역사를 외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작업을 꾸준히 하면서 진행되어온 결과물과 최근 역사계에서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에 대한 저변 확대의 결과물들을 바탕으로  결합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랜동안 이어져온 저자의 작업에 대한 노력이 느껴지는 결과물이어서 좋았다.

역사에 대한 자료가 희박할 때는 고증에 대한 어려움으로 결국 추측을 할 수 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추측을 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을 책에서 발견할 때는 독자로서 아쉬움을 갖게 되면서도 저자의 아쉬움도 느껴지기에 이해되는 면이 있었다.

제목에 ‘오랑캐‘란 말을 썼는데, 여기서는 이 말을 제한된 의미로쓴다는 사실부터 밝힌다. "이민족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보통 쓰이지만, 여기서는 夷, 蠻, 戎, 狄 네 글자의 공통된 훈으로서 ‘오랑캐‘, 중화와 구분되는 주변의 이민족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우리 민족도 당연히 오랑캐의 하나다. - P26

제목의 오랑캐는 중화 주변의 이민족을 가리키는 것이다. 책은 역사라는 타이틀에 맞게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기의 중국 주변의 이민족에 대한 역사를 담아내고 있다. 고대부터 다룰 줄 몰랐다가 춘추 시대부터 다뤄줘서 역사의 시기가 더 확장되어 하나로 연결되게 만드는데 더 도움이 되었다.

최근에 <통감절요>를 읽고 있는데 마침 춘추전국 시기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다 <중국철학사>를 읽으며 중국의 사상을 정리해둔 것이 책의 초반 챕터를 이해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북쪽이 변화의 여지가 큰 방면이었다. 강우량이 꽤 되고 지형도평탄한 지역이 많다. 유목이 가능한 초원지대가 있고, 농업기술의 발달에 따라 농경사회가 자라날 수 있는 지역도 많았다. 흉노로부터 선비, 돌궐, 거란, 여진, 몽골, 만주족에 이르기까지, 중원에 심각한 위협을 제기한 오랑캐의 대부분이 이 방면에서 나타났다. - P33

중국의 북쪽은 적당한 강우량과 평야로 정착하기에 좋은 곳이었으나 그만큼 변화의 여지가 큰 방면이었다. 남쪽은 강우량이 많은 습지로 수준높은 관개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농경을 하기에 적합하지 못했다. 때문에 만리장성은 이민족을 방어하기 위해 북쪽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1986년 이후 사천 지역의 고대문화를 바라보는 고고학계의 시각이 달라졌다. 황하문명의 한 지류가 아니라 그와 대등한 하나의 큰흐름이 이 지역에 있었다고 보게 된 것이다. 그 흐름을 확인하기 위한조사 작업이 넓게 펼쳐졌고, 1990년대에 몇 개 중요한 유적지가 발견된 끝에 2001년, 삼성퇴와 맞먹는 품질과 규모의 금사 유적이도시 서쪽 교외에서 발굴되었다. 다량의 뛰어난 청동기와 옥기 외에가면假面, 관대冠帶 등 특이한 금제품이 여럿 나왔다. 고촉국古蜀國의도읍이 어느 시점에서 삼성퇴에서 금사로 옮겨간 것으로 추측된다. - P50

중국의 문명은 오래 전까지 초기부터 일어난 황하문명에 치우쳐 있었으나 삼성퇴 유적 이후 장강 유역의 문명이 거의 대등하게 따로 존재했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중국사에서 농경사회와 유목사회의 관계를 나란히 움직이는 두 개 수레바퀴보다는 자전거의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의 관계에 가까운 것으로 나는 본다. 자전거가 나아가는 동력은 하나의 바퀴에서 일어나고 다른 바퀴는 그에 끌려가거나 밀려가는 것이다. 중국문명 발전의동력은 농경사회의 잉여생산에서 나온 것이었다.
자전거의 앞바퀴에는 동력을 일으키는 기능이 없지만 균형을 유지하고 진로를 결정하는 데 불가결한 역할이 있다. 중국사의 진행에서 유목사회의 역할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농경문명 발전과 확장의 ‘변경‘frontier 역할이다. - P88

기원전 3세기 말에 건설된 ‘흉노제국‘은 하나의 그림자 제국‘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남쪽 농경사회가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되는 데 따라 그로부터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거대한 군사·정치조직을 만들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발전시킨 조직 기술과 원리를 활용함으로써 유목민들이 오랫동안 유리한 조건을 누릴때도 있었다. 조직의 필요와 방법이 모두 농경사회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그림자 제국‘이라 하는 것이다. - P55

흉노 제국이 그림자 제국이었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주장이 흥미로웠는데 이 개념은 토머스 바필드의 「The Shadow Empires: imperial state formation along the Chinese-Nomad frontier」란 제목의 논문이 있다는 사실을 후에 알게 되었다고 한다. 바필드는 '그림자 제국'의 범주에 '반사형 제국'mirror empires, '해상-교역 제국'maritime trade empires, '포식형 제국'vulture empires, '추억의 제국'empires of nostalgia의 4개 유형을 포괄하려 했는데 저자는 이 유형들 사이의 차이가 너무 커 보인다고 말한다. 흉노가 바필드가 주장한 '반사형 제국'으로 '그림자 제국' 개념의 표준이라고 할 만하다. 농경 사회가 통일됨에 따라 유목 사회가 이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을 농경사회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생긴 개념인 것이다.

호. 한 이중체제에서 군사 방면은 ‘호‘의 원리로, 행정 방면은 ‘한‘의 원리로 운영된다. 군사와 행정의 분리에 따라 농민이 군대의 폭력에서 보호받고 조정의 조세 수입이 안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군대에게서 농민을 괴롭히는 특권을 빼앗으면 무슨 재미가 남는가? 군대를 거느리는 오랑캐 귀족들은 행정을 맡은 한족 관료들에게 피해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 P98

220년 한나라가 멸망하고 589년 수나라가 통일할 때까지 3세기 반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5호 16국 이래 오랑캐 왕조들이 북중국에 있는 동안 오랑캐의 중국화와 중국인의 오랑캐화가 나란히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수당제국은 호. 한 이중체제로 정리되었다.

680년대 돌궐제국의 부활은 내경전략에서 외경전략으로의 복귀였으며, 당나라에서 내경전략의 수익성이 떨어진 결과였다.
돌궐 제2제국은 제1제국만큼 큰 세력을 떨치지 못했다. 당나라 안에서 돌궐외에도 많은 오랑캐 세력이 내경전략을 펼치고 있어서 돌궐의 외경전략이 큰 효과를 거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 P111

외경전략은 중화제국의 외부에 세력을 이루고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이득을 취하는 것이고, 내경전략은 중화제국 내부에 들어가 통제를 받으며 역할을 맡는 것이다. 오랑캐 왕조는 제국이 쇠퇴할 때 내경 상태의 오랑캐가 체제를 넘겨받으면서 세워지는 것이 통상적인 경로였다. 돌궐은 630년 제1제국이 붕괴되고 난 후 당나라 군사력의 주축군이 되었다. 그러다 660년대 고구려 정벌을 끝으로 당의 정복사업이 마무리되면서 그 군사적 역할이 감소하였다. 따라서 돌궐 제2제국은 제1제국만큼 큰 세력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돈으로 평화를 사는 정책은 송나라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당나라 공신세력이 측천무후에게 거세되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안녹산의난까지 처음 약 100년간은 오랑캐 중심의 절도사 세력에게 급료를주며 용병으로 썼다. 안녹산의 난 후에는 북중국 여러 지역의 통치권을 절도사들에게 떼어주고 외부의 위구르에게 의지하며 약 100년을더 버텼다. - P129

안녹산의 난 후에도 당이 150년간 명맥을 유지한 것은 남중국의 생산력 덕분이었다. 당은 북중국 대부분의 지역을 절도사들이 점거하면서 지배력이 약화되면서 남중국에 대한 착취 강도를 높이게 된다.

여러 문명권을 포괄하는 전지구적 의미의 ‘세계제국‘은 문명의 세계화가 이뤄진 근대세계의 특이한 현상이다. 그런데 몽골제국은 그런 세계제국에 접근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바로 그 특성이 중화제국의 틀로는 포착이 되지 않는 것이다. 몽골제국의 성립을 ‘문명의 세계화‘ 과정 속에서 이해한다면 우리가 살아온 ‘근대‘라는 시기의 역사적 의미에 접근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 P189

몽골 제국과 명 왕조가 들어설 때까지는 우습지만 김용의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의 인물들이 떠올랐다. <사조영웅전>에서는 테무친이 칭기즈칸이 되는 과정이 나오고, <신조협려>에서는 야율초제와 그의 아들 야율제가 등장한다. 몽골은 문명의 세계화를 이룬 제국이었다. 흉노, 돌궐, 거란과 여진의 경험과 다르게 유례가 없다는 것이 몽골제국의 특성이다.
유목민은 유라시아 여러 문명권의 외곽지대에 널리 존재하면서 인접한 문명권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뻗어나갔으나, 유목민이 상황에 따라 긴밀한 접촉이 이루어질 때가 있었다. 저자는 몽골제국의 흥기가 유목사회 간의 경제, 군사적 접촉이 모두 확장되는 시점이 아니었을까 하는 가설을 내놓는다. 나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1234년의 금 멸망과 1276년의 남송멸망 사이에 몽골의 정복 정책이 크게 바뀌었다. 유목민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랑캐로서타자화하던 주류 한족사회와 마찬가지로 농경사회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유목민은 중국을 약탈 대상으로만 봤다. 그러나 접촉면이넓어지고 이해가 깊어지면서 농경민을 백성으로 다스리는 입장의 중화제국을 몽골 지도부가 지향하게 되었다. 그래서 1271년 원 왕조의선포에 이른 것이고, 그 후의 남송 정복은 적국의 침략이 아니라 ‘천하통일‘의 사업이 되었다.
몽골 지도부의 정책 전환을 주도한 대표적 인물로 야율초재가 꼽힌다. - P218

프란체스카 브레이는 Rice Economies』(벼농사 경제체제, 1986)에서 송나라 때 벼농사 기술 발전이 중요한 국가정책이었던 사실을 설명했다(203~206쪽). 1012년부터 참파 지역의 품종을 들여와 이모작을 시작하게 한 것이 가장 중요한 사례다.
농업생산력의 발전이 송나라 경제의 하드웨어를 제공하는 한편에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준 것은 운하 중심의 수운 네트워크였다.
수운 네트워크는 황하 유역보다 장강 유역 남중국에서 크게 발달해서 중국의 경제적 중심이 남쪽으로 옮겨가는 조건이 되었다. 1126년수도가 금나라 군대에 함락되고 황제 이하 온 조정이 통째로 포로가되는 파국을 겪고도 남쪽으로 옮겨 제국체제를 이어간 것은 남중국의 경제기반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 P228

송 왕조는 벼농사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대운하를 건설하면서 경제적 이득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끊임없는 이민족에게 시달렸음에도 그들이 경제문화적으로 안정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기틀이 있었던 배경이 있다.

쿠빌라이 즉위를 계기로 몽골제국이 4칸국으로 분열되었다고 하지만 평면적 분열이 아니었다. 초원제국의 성격을 지킨 두 칸국(킵차크칸국과 차가타이칸국)과 달리 일칸국은 대칸(원나라 황제)의 책봉을 받는 입장을 오랫동안 내세웠다. 원나라와 일칸국은 나란히 농경제국의 성격으로 바꾸면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 관계는 군사적 동맹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방면의 교류를 통해 두 문명권을 결합하는 방향의 노력이었다. 4칸국의 분열은 실제에 있어서 초원제국과 정복왕조의 분화였다. - P233

중국문명과 페르시아문명 사이에는 장건張 시대 이래 꾸준히 문물의 교류가 있어왔다. 그러나 상인과 사절을 통한 교류가 물 몇 바가지씩 떠서 옮기는 수준이었다면, 원나라와 일칸국이 교류를 위한 관서까지 만들고(의약, 농업, 천문역법 등) 기술자들을 집단으로 이주시키는 등 지속적 정책으로 추진한 것은 수도관을 설치한 것과 같은 수준이었다. - P253

‘대칸‘의 타이틀과 함께 가장 큰 경제력을 확보한 원나라는 제국의 재통합을 위한 제1후보였다. 쿠빌라이는 말년까지 그를 향한 의지를 지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280년대 해양 방면의 연이은 군사적실패, 그리고 그로 인한 재정적 난관 앞에서 좌절되고 말았다. 열린시스템을 지향하는 ‘몽골제국 회복‘의 꿈 때문에 닫힌 시스템을 지켜내는 ‘중화제국 경영‘의 과제에 집중하지 못한 것을 원나라가 단명했던 큰 이유로 생각한다.
명나라는 원나라 천하를 넘겨받으면서 열린 시스템의 꿈과 닫힌시스템의 과제도 함께 이어받았다. 영락제永樂帝(재위 1402~1424) 치하의 ‘대항해시대‘가 거창하게 펼쳐졌다가 갑자기 닫혀버리는 상황, 그뒤에 왕조를 관통하게 될 해금정책의 의미도 원나라에서 넘겨받은 이 유산과의 관련 속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 P333

몽골제국이 4칸국으로 분열되면서 초원제국과 원 왕조로 분화되면서 몽골은 세계제국으로서의 확장을 멈추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8세기 초반까지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일대를 포괄한 이슬람세계는 또 한 차례 문명의 범람원이 되었다. 8~10세기 이슬람 황금시대는 이 범람원에 넘쳐나는 다양하고 풍성한 문명자원을 통합한 시기였고, 번역이 그 중요한 방법이었다. 문명 초창기부터 이 지역에 쌓여온 문명자원은 여러 언어로 전해져 있었고, 페르시아어와 그리스어가 그중 중요한 언어였다. 이것을 아랍어로 옮기는 작업이 이 시대 학술활동의 주축이 되었다. - P311

12~13세기 번역의 시대를 거치면서 유럽인은 이슬람세계의 학술과 문화를 폭넓게 받아들였다. 십자군운동과 나란히 일어난 일이다. 둘 모두 유럽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배경으로 이루어졌고 이 기간동안 많은 군인과 학자들이 조직적 활동을 벌이면서 이슬람세계로부터 획득한 문화자원을 활용하여 유럽은 르네상스가 펼쳐졌고, 본격적인 유럽 문명의 기반을 갖게 된다.

정화 함대의 활동이 명나라에 어떤 이득을 가져왔을까? 서방세계와의 교통로 확보가 장기적으로는 큰 가능성을 가진 사업이었을지 몰라도, 함대가 당장 가져온 것은 기린. 사자 등 신기한 동물과 진주·보석 등 진귀한 사치품이었다. 후세에 중국의 대외개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중국의 ‘지대물박地大物博을 내세워 교역의 필요성을 부정했거니와, 실제와 부합하는 주장이다. 근대 이전의 중국은 외부로부터 필수품의 수입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자족성이 강한 하나의세계였다. - P346

영락제의 정화 함대는 해로 확보라는 100여 년 전 쿠빌라이의 꿈을 이어받은 것이다. 정화함대의 사령관은 색목인의 후예들로 서방 종교와 언어에 능통한 환관들이 많았다. 명나라 함대는 일곱 차례 남양(남중국해)을 거쳐 서양(인도양)으로 출동했다. 정화 함대는 무력 사용을 절제하면서 현지 관행에 적응하는 방침을 대체로 취했다. 송원시대에 민간의 해외무역에 대한 통제가 엄격하지 않았던 데 비해, 명나라가 들어설 때는 해외무역이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정화 함대의 원정은 국가의 무역 통제 범위를 넓히려는 시도였다.

이 시대 해적의 대명사가 된 ‘왜구‘의 성격변화가 해적업의 발전상을 보여준다. 14세기에 나타난 초기 왜구는 약탈만 하는 단순 해적이었다. 당시 일본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일부 지방세력이 해적으로 나서면서 왜구가 번성하게 되었다.
초기 왜구의 주된 침공 지역은 일차적으로 한반도, 다음으로 산동성 등 북중국 해안지대였다. 그런데 15세기 들어 잦아들었던 왜구가 16세기에 급증하는데, 그 주 무대는 중국의 동남해안이었다. 이후기 왜구의 구성에는 중국인이 다수를 점했다.
후기 왜구의 활동이 남쪽으로 옮겨가고 중국인의 역할이 커진 것은 그 활동 내용이 무역관계였기 때문이다. - P356

15세기 후반에 잠잠하던 왜구가 16세기 초·중엽 가정제 시기에 폭증한 이유가 무엇일까? 정치가 부실해서 암묵적으로 진행되어온 해외무역의 틀이 흔들린 데 문제가 있었으리라고 우선 생각할 수 있지만, 배경조건의 큰 변화 또한 생각할 수 있다. 은銀이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19세기 초에 아편이 부각되기 전까지 중국은 대외교역에서 "은 먹는 하마"였다. 해외의 중국 상품 수요에 비해 중국의 해외상품 수요가 훨씬 작았기 때문에 막대한 양의 은이 수백 년간 계속해서 중국으로 흘러들었다. 은의 중국 대량 유입이 시작된 것이 16세기였다.
1526년에 개발된 이와미 은광이 일본의 구매력을 크게 늘려줌에따라 동남아시아 방면에서 주로 펼쳐지고 있던 중국인의 해외 활동이 일본 방면으로 옮겨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 P361

16세기 명의 가정제 시기 왜구가 폭증했고 중국 민간경제의 체제물이었던 은이 마구 수입되기 시작했다. 일본의 이와미 은광이 개발되면서 동남아시아에서 이루어지던 중국인의 해외활동이 일본 방면으로 확장된다. 이로 인해 왜구가 증가하게 된 것이다.

상업세력의 해상제국은 유목민의 초원제국과 마찬가지로 제국 조직의 유지에 필요한 기초자원을 생산력을 가진 주변의 정착사회로부터 취득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상제국은 몇 가지 초원제국과 다른 조건을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자원 취득의 기본 수단이 초원제국에게는 무력인데 해상제국에게는 교역이다. 해상세력에게는 항구의 범위를 넘어 육지를 공략하고 점거하는 데 적합한 무력이 없으므로 교역의 이득을 제공해야필요한 자원을 취득할 수 있다. 해상세력의 무력은 해상의 경쟁세력을 상대로만 사용되는 것이다.
둘째, 초원제국이 한두 개 본격 제국에만 의지해 성립 · 유지되는반면 교통로가 여러 방향으로 열려 있는 해상제국은 여러 개 육상세력과의 거래관계를 나란히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육상세력에게 교역의 이득을 제공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지만, 경쟁의 문턱이 낮아서 해상제국이 오래 지속되기 어려운 조건도 된다.
16세기 인도양의 포르투갈 해상제국이 상당 기간 유지된 것은 본국의 국력이 압도적이어서가 아니라 현지의 교역 조건에 잘 적응한성과였다. - P377

포르투갈은 16세기 인도양 해로를 확보하면서 해상제국의 우위를 점하게 된다. 해상제국도 초원제국과 마찬가지로 정착사회에서 생산력을 확보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이를 주로 무력을 통해서 확보한 초원제국과 다르게 해상제국은 교역이 주요 목적이었다.

명·청 교체는 1644년 청군의 북경 점령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1681년 삼번의 난이 진압되고 1683년 타이완의 정씨鄭氏 세력이 평정됨으로써 청 왕조의 중국 통치가 궤도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1644년 직후 청군에 앞장서서 중국 남부를 평정하고 그곳을 분봉分封받았던 오삼계 등 삼번이 청제국의 통합성에 걸림돌로 남아 있던것은 눈에 보이는 사실이다. 이에 비해 정씨 세력의 중요성은 간과되기 쉬운데, 경제 측면에 대단히 의미가 큰 존재였다. 바다를 통한 대외관계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P406

삼번이란 운남雲南의 오삼계, 광동의 상가희와 건의 경중명耿仲明이었다. 그들은 평서왕平西王, 평남왕平南王, 정남왕靖南王의 왕호를 받고 각자의 지역을 독립국처럼 통치했다. 해상교역의 이권을 끼고 있거나(광동, 복건) 광물자원이 풍부하다는(운남) 특성 때문에 중화제국의 경제구조에 큰 영향력을 가진 지역들이었다.
오보이가 이끌던 청나라 귀족세력은 중앙집권화를 꺼리는 입장에서 삼번의 분권화를 방조했다. 강희제는 오보이 제거 후 삼번에 대한 통제를 서서히 강화해 나갔다. 1673년 70세의 상가희가 은퇴와 함께 번국을 아들 상지신에게 물려줄 것을 청하자 은퇴는 허락하되 세습은 불허했다. 그 2년전 경중명의 손자 경정충의 세습을 허락한 것과 다른 조치였다. 이 변화에 경계심을 품은 번왕들이 조정을 떠보기 위해 짐짓 번의 철폐를 주청했다가 이를 받아들이려하자 반란에 나섰다.
한나라가 창업 근 50년만에오·초7국의 난을 제압하고 제국의본궤도에 오른 것처럼 청나라는 입관한지 근 40년 만에 제국의 본궤도에 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 P423

청은 제국의 통합을 위해 남쪽에 있던 삼번 세력과 타이완의 정씨 세력을 평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남쪽 내륙을 장악했던 삼번은 각자의 지역을 바탕으로 돈을 끌어모으고 있었고, 바다를 장악하고 있던 정성공 세력은 동남아시아와 일본을 비롯한 해상무역을 독점하며 오랜동안 경제적 이득을 누려왔다. 청은 이를 단호히 끊어냄으로써 국가를 통합하였다.

아이누 지역과 유구의 합병은 일본열도의 국토 정비 차원에서해할 수 있다. 타이완과 조선의 탈취까지도 제국주의 경쟁 속에서 자위 성격으로 (강점당한 입장이 아니라 당시 일본 입장에서 볼 때) 인정할 수 있다. 그에 비해 만주의 식민지 경영은 제국주의 경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이었고, 이에 따라 일본의 국가 성격까지 크게 바뀌게 된다. 정치의 변화만이 아니라 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대일본제국‘의 꿈이 부풀어올랐다.
이 꿈을 대표한 표현이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었다. 군국주의자들만의 꿈도 아니었고 일본인만의 꿈도 아니었다. 일본의 많은 자유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도 이 꿈에 동참했고, 서양인의 침략과지배에 시달리던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민족주의자들 사이에도 큰 공명을 일으켰다. 만주국은 이 꿈을 키워내는 온상이 되었다. - P452

중국에는 독자적 문화를 가진 많은 종족이 있었고 중국인들은 그들에게 개별적인 관심을 크게 갖지 않았다. 중국의 전통적 원주민관을 바클리는 일본의 타이완 연구 개척자 이노 가노리能嘉矩(1867~1925)의 말로 설명한다.
(중국인들이 타이완 원주민의 존재를 처음 알았을 때ㅡ인용자) 자기네와 다른 언어와 풍속을 가진 다른 사람들로 인식했을 뿐, 따로 이름을붙이지 않았다. (…) 명나라 때 ‘동번東蕃이라는 이름이 쓰였고 (..…)청나라가 타이완을 점령한 후 정치적 복속 여부에 따라 ‘생번’生蕃과 ‘숙번’熟蕃으로 크게 구분했다. (…) (그러나인용자) 종족을 따져살피지는 않았다. (191쪽)
‘번‘이 중국인에게는 여러 변경에 널려 있는 익숙한 존재였던 반면 일본인에게는 새로운 존재였다. 종래 경험한 이질적 존재는 아이누와 유구인 정도였는데, 아이누는 ‘숙번‘의 범주에 들고, 유구인은더 높은 수준의 문명을 누려온 사람들이었다. 일본이 열도를 넘어 ‘제국‘으로 나아가는 초입에서 타이완 원주민은 이질적 존재를 상대하기 위한 첫 숙제가 되었다(일본에서 ‘족‘이란 말이 나쁜 뜻으로 흔히 쓰이는 것도 이질적 존재와의 공존 경험이 적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인이 타이완 원주민에게 큰 관심을 가진 또 하나 이유는 개발의 필요에 있었다. 중국에게는 타이완의 자연환경이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었던 반면, 일본에게는 유일한 아열대 지역 영토로서 사탕수수·고무 등 전략적 가치를 가진 자원의 개발이 절실했다. - P462

일본은 아이누와 유구 지역을 영토로 편입하고 타이완과 조선을 탈취한 뒤 만주국을 세움으로써 군국주의의 일로 나아간다. 1853년 일본에 흑선이 출현하면서 강제 개항한 뒤 단기간 내 메이지유신으로 일본은 전반적인 내부 개혁을 이끌어낸다. 반면 중국은 2차례의 아편전쟁 후에 양무운동이 일어났으나 서양의 기술을 도입하자는 피상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1890년대 제도 변화까지 모색하는 변법운동으로 나아갔다가, 1898년 무술변법 좌절 후 체제의 근본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이 그제서야 일어나는 등 변화에 오랜 세월이 걸렸다.

스탈린은 영역, 언어, 생산양식, 문화의 네 가지 공유자산을 가진 집단이 민족이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는 자본주의체제를 전제로 성립하는 것으로, 중국의 많은 소수민족에게는 적용되기 어려운 것이다. 운남성 조사단장 린야오화林耀华(1910~2000)는 이 울타리를 넘어서기 위해 ‘종족 잠재성‘ethnicpotential(멀레이니의 표현)이란 개념으로 ‘민족‘의 정의를 확장했다. 스탈린의 4대 공유자산을 지금 갖추고 있지 않더라도 장차 갖추기 위한잠재성을 확인할 수 있으면 ‘민족‘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 P465

중국은 1953년부터 1954년까지 진행된 호구조사를 통해 피조사자가 자기 소속 민족을 스스로 밝히게 했는데 여기서 400여 개의 민족 명단이 나왔다. 1954년 인류학자와 언어학자를 중심으로 조사대를 꾸려서 '민족 식별' 사업에 이르게 되었는데 여기서 나름의 기준을 세우면서 수십 개의 민족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거치게 된다. 이상에서 현실로의 타협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한동안 많은 동아시아 연구자들이 ‘자본주의 맹아‘를 찾는 데 몰두한 것은 발전과 확장을 숭상하는 근대세계에서 자존감을 세우기위해서였다. 그러나 발전과 확장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믿음이 무너지고 있는 21세기에 와서, 문명의 역사 속에는 그와 반대되는 경향도 있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 경향이 당시 사람들의 행복을 늘리고 고통을 줄이는 데 공헌한 측면을 찾는다면 지금 세상에도 참고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 P411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동남아시아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서 추가로 관련 책을 읽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좋은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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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25 16: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흉노를 농경사회의 압박에 대한 대응으로 형성된 그림자 제국이란 주장은 흥미롭네요. 당대의 역관계가 정말 그럴까라는 의구심도 들고요. ^^ 어쨌든 동아시아의 역사를 중국 중심에서 벗어나 이렇게 주변 다른 민족들의 시선으로 보는 연구들은 앞으로도 더욱 많이 나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부의 흐름을 잡으신 화가님. 그동안의 공부의 성과가 나타난다는 것에 제가 왜 더 뿌듯할까요? 공부도 안하는주제에 말이죠. ㅎㅎ

거리의화가 2022-09-25 18:19   좋아요 3 | URL
저도 그림자제국 흥미로웠는데 그런 주장을 한 학자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더라구요^^ 내부에서 바라보면 좁게만 인식하게 되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니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어 연결되는 지점들이 생기고 그 속에서 확장성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흐흐 바람돌이님 칭찬에 덩실덩실 기분이 좋네요. 앞으로도 공부를 계속 이어가보렵니다*^^*
 

‘대칸‘의 타이틀과 함께 가장 큰 경제력을 확보한 원나라는 제국의 재통합을 위한 제1후보였다. 쿠빌라이는 말년까지 그를 향한 의지를 지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280년대 해양 방면의 연이은 군사적실패, 그리고 그로 인한 재정적 난관 앞에서 좌절되고 말았다. 열린시스템을 지향하는 ‘몽골제국 회복‘의 꿈 때문에 닫힌 시스템을 지켜내는 ‘중화제국 경영‘의 과제에 집중하지 못한 것을 원나라가 단명했던 큰 이유로 생각한다.
명나라는 원나라 천하를 넘겨받으면서 열린 시스템의 꿈과 닫힌시스템의 과제도 함께 이어받았다. 영락제永樂帝(재위 1402~1424) 치하의 ‘대항해시대‘가 거창하게 펼쳐졌다가 갑자기 닫혀버리는 상황, 그뒤에 왕조를 관통하게 될 해금정책의 의미도 원나라에서 넘겨받은 이 유산과의 관련 속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 P333

정화 함대는 무력 사용을 절제하면서 현지 관행에 적응하는 방침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정화 함대의 활동이 명나라에 어떤 이득을 가져왔을까? 서방세계와의 교통로 확보가 장기적으로는 큰 가능성을 가진 사업이었을지 몰라도, 함대가 당장 가져온 것은 기린. 사자 등 신기한 동물과 진주·보석 등 진귀한 사치품이었다. 후세에 중국의 대외개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중국의 ‘지대물박地大物博을 내세워 교역의 필요성을 부정했거니와, 실제와 부합하는 주장이다. 근대 이전의 중국은 외부로부터 필수품의 수입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자족성이 강한 하나의세계였다. - P346

이 시대 해적의 대명사가 된 ‘왜구‘의 성격변화가 해적업의 발전상을 보여준다. 14세기에 나타난 초기 왜구는 약탈만 하는 단순 해적이었다. 당시 일본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일부 지방세력이 해적으로 나서면서 왜구가 번성하게 되었다.
초기 왜구의 주된 침공 지역은 일차적으로 한반도, 다음으로 산동성 등 북중국 해안지대였다. 그런데 15세기 들어 잦아들었던 왜구가 16세기에 급증하는데, 그 주 무대는 중국의 동남해안이었다. 이후기 왜구의 구성에는 중국인이 다수를 점했다.
후기 왜구의 활동이 남쪽으로 옮겨가고 중국인의 역할이 커진 것은 그 활동 내용이 무역관계였기 때문이다. - P356

15세기 후반에 잠잠하던 왜구가 16세기 초·중엽 가정제 시기에폭증한 이유가 무엇일까? 정치가 부실해서 암묵적으로 진행되어온해외무역의 틀이 흔들린 데 문제가 있었으리라고 우선 생각할 수 있지만, 배경조건의 큰 변화 또한 생각할 수 있다. 은銀이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19세기 초에 아편이 부각되기 전까지 중국은 대외교역에서 "은 먹는 하마"였다. 해외의 중국 상품 수요에 비해 중국의 해외상품 수요가 훨씬 작았기 때문에 막대한 양의 은이 수백 년간 계속해서 중국으로 흘러들었다. 은의 중국 대량 유입이 시작된 것이 16세기였다.
1526년에 개발된 이와미 은광이 일본의 구매력을 크게 늘려줌에따라 동남아시아 방면에서 주로 펼쳐지고 있던 중국인의 해외 활동이 일본 방면으로 옮겨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 P361

상업세력의 해상제국은 유목민의 초원제국과 마찬가지로 제국 조직의 유지에 필요한 기초자원을 생산력을 가진 주변의 정착사회로부터 취득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상제국은 몇 가지 초원제국과 다른 조건을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자원 취득의 기본 수단이 초원제국에게는 무력인데 해상제국에게는 교역이다. 해상세력에게는 항구의 범위를 넘어 육지를 공략하고 점거하는 데 적합한 무력이 없으므로 교역의 이득을 제공해야필요한 자원을 취득할 수 있다. 해상세력의 무력은 해상의 경쟁세력을 상대로만 사용되는 것이다.
둘째, 초원제국이 한두 개 본격 제국에만 의지해 성립 · 유지되는반면 교통로가 여러 방향으로 열려 있는 해상제국은 여러 개 육상세력과의 거래관계를 나란히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육상세력에게 교역의 이득을 제공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지만, 경쟁의 문턱이 낮아서해상제국이 오래 지속되기 어려운 조건도 된다.
16세기 인도양의 포르투갈 해상제국이 상당 기간 유지된 것은 본국의 국력이 압도적이어서가 아니라 현지의 교역 조건에 잘 적응한성과였다. - P377

명나라에게 북로는 ‘심복지환‘이 아니었다. 잘못 다루면 찰과상을 입을 수 있고 심해야 골절 정도에 그치는 외과적 문제였다. 정말
‘심복지환‘에 가까운 것은 경제체제의 혈액이라 할 수 있는 화폐 문제였고, 북로보다 남왜南倭가 이 문제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었다. - P401

명나라 후기의 동전은 모두 시중에서 액면가의 절반 이하로 통용되었다. 어쩌다 마음먹고 품질 좋은 동전을 만들어도 동전을 천시하는 풍조에 휩쓸려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다가 구리의 재활용을 위해가마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가치 보존의 기능으로서는 은이 절대적이었고, 교환 수단의 기능도 점차 은이 중심이 되었다. 중국의 은 수요가 거의 무제한으로 확장될수있었던 것은 ‘부의 축적‘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었고, 축적된 은은 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통해 국가권력의통제를 벗어난 민간권력이 되었다. - P405

명·청 교체는 1644년 청군의 북경 점령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1681년 삼번의 난이 진압되고 1683년 타이완의 정씨鄭氏 세력이 평정됨으로써 청 왕조의 중국 통치가 궤도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1644년 직후 청군에 앞장서서 중국 남부를 평정하고 그곳을 분봉分封받았던 오삼계 등 삼번이 청제국의 통합성에 걸림돌로 남아 있던것은 눈에 보이는 사실이다. 이에 비해 정씨 세력의 중요성은 간과되기 쉬운데, 경제 측면에 대단히 의미가 큰 존재였다. 바다를 통한 대외관계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P406

한동안 많은 동아시아 연구자들이 ‘자본주의 맹아‘를 찾는 데 몰두한 것은 발전과 확장을 숭상하는 근대세계에서 자존감을 세우기위해서였다. 그러나 발전과 확장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믿음이 무너지고 있는 21세기에 와서, 문명의 역사 속에는 그와 반대되는 경향도 있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 경향이 당시 사람들의 행복을 늘리고 고통을 줄이는 데 공헌한 측면을 찾는다면 지금 세상에도 참고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 P411

삼번이란 운남雲南의 오삼계, 광동의 상가희와 건의 경중명耿仲明이었다. 그들은 평서왕平西王, 평남왕平南王, 정남왕靖南王의 왕호를 받고 각자의 지역을 독립국처럼 통치했다. 해상교역의 이권을 끼고 있거나(광동, 복건) 광물자원이 풍부하다는(운남) 특성 때문에 중화제국의 경제구조에 큰 영향력을 가진 지역들이었다.
오보이가 이끌던 청나라 귀족세력은 중앙집권화를 꺼리는 입장에서 삼번의 분권화를 방조했다. 강희제는 오보이 제거 후 삼번에 대한 통제를 서서히 강화해 나갔다. 1673년 70세의 상가희가 은퇴와 함께 번국을 아들 상지신에게 물려줄 것을 청하자 은퇴는 허락하되 세습은 불허했다. 그 2년전경중명의 손자경정세
의습을 허락한 것과 다른 조치였다. 이 변화에 경계심을 품은 번왕들이조정을 떠보기 위해 짐짓 번의 철폐를 주청했다가 이를 받아들이려하자 반란에 나섰다.
한나라가 창업 근 50년만에오·초7국의 난을 제압하고 제국의본궤도에 오른 것처럼 청나라는 입관지 근 40년 만에 제국의 본궤도에 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 P423

"중국의 과학기술이 15세기까지 유럽보다 높은 수준에 있었다면 왜 그 후의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이 중국에서 일어나지 않고 유럽에서 일어나게 된 것인가?"
니덤의 수수께끼가 1960년대에 제기될 때는 학술적 연구주제라기보다("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역사학에서 따질 필요가 있는가?") 뜻밖의구 성과가 일으킨 충격의 한 표현일 뿐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떠오른 ‘유럽의 기적‘European Miracle의 주제가 1990년대에 ‘대기‘GreatDivergence로 이어진 것은 제3세계의 경제적 발전에 따라 유럽의 우위를 하나의 역사적 현상으로 상대화해서 보게 된 결과였다. 지금은1970년대 이후의 세계적 변화(경제적 격차 축소)를 ‘대기‘와 대비되는
‘대수렴‘Great Convergence으로 보는 연구자들이 있다. ‘수렴‘의 단계에접어들었기 때문에 앞 단계의 ‘분기‘를 당연한 사실이 아니라 설명을필요로 하는 역사적 현상으로 보게 된 것이다. - P434

아이누 지역과 유구의 합병은 일본열도의 국토 정비 차원에서해할 수 있다. 타이완과 조선의 탈취까지도 제국주의 경쟁 속에서 자위 성격으로 (강점당한 입장이 아니라 당시 일본 입장에서 볼 때) 인정의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만주의 식민지 경영은 제국주의 경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이었고, 이에 따라 일본의 국가 성격까지 크게 바뀌게 - P451

된다. 정치의 변화만이 아니라 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대일본제국‘의 꿈이 부풀어올랐다.
이 꿈을 대표한 표현이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었다. 군국주의자들만의 꿈도 아니었고 일본인만의 꿈도 아니었다. 일본의 많은자유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도 이 꿈에 동참했고, 서양인의 침략과지배에 시달리던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민족주의자들 사이에도 큰 공명을 일으켰다. 만주국은 이 꿈을 키워내는 온상이 되었다. - P452

중국에는 독자적 문화를 가진 많은 종족이 있었고 중국인들은 그들에게 개별적인 관심을 크게 갖지 않았다. 중국의 전통적 원주민관을 바클리는 일본의 타이완 연구 개척자 이노 가노리能嘉矩(1867~1925)의 말로 설명한다.
(중국인들이 타이완 원주민의 존재를 처음 알았을 때ㅡ인용자) 자기네와 다른 언어와 풍속을 가진 다른 사람들로 인식했을 뿐, 따로 이름을붙이지 않았다. (…) 명나라 때 ‘동번東蕃이라는 이름이 쓰였고 (..…)청나라가 타이완을 점령한 후 정치적 복속 여부에 따라 ‘생번’生蕃과 ‘숙번’熟蕃으로 크게 구분했다. (…) (그러나인용자) 종족을 따져살피지는 않았다. (191쪽)
‘번‘이 중국인에게는 여러 변경에 널려 있는 익숙한 존재였던 반면 일본인에게는 새로운 존재였다. 종래 경험한 이질적 존재는 아이누와 유구인 정도였는데, 아이누는 ‘숙번‘의 범주에 들고, 유구인은더 높은 수준의 문명을 누려온 사람들이었다. 일본이 열도를 넘어
‘제국‘으로 나아가는 초입에서 타이완 원주민은 이질적 존재를 상대하기 위한 첫 숙제가 되었다(일본에서 ‘족‘이란 말이 나쁜 뜻으로 흔히 쓰이는 것도 이질적 존재와의 공존 경험이 적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인이 타이완 원주민에게 큰 관심을 가진 또 하나 이유는 개발의 필요에 있었다. 중국에게는 타이완의 자연환경이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었던 반면, 일본에게는 유일한 아열대 지역 영토로서 사탕수수·고무 등 전략적 가치를 가진 자원의 개발이 절실했다. - P462

스탈린은 영역, 언어, 생산양식, 문화의 네 가지 공유자산을 가진 집단이 민족이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는 자본주의체제를 전제로 성립하는 것으로, 중국의 많은 소수민족에게는 적용되기 어려운 것이다. 운남성 조사단장 린야오화林耀华(1910~2000)는 이 울타리를 넘어서기 위해 ‘종족 잠재성‘ethnicpotential(멀레이니의 표현)이란 개념으로 ‘민족‘의 정의를 확장했다. 스탈린의 4대 공유자산을 지금 갖추고 있지 않더라도 장차 갖추기 위한잠재성을 확인할 수 있으면 ‘민족‘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 P465

배경의 국가권력이 조사단의 설득력을 뒷받침해주었기 때문에 피조사자의 인식을강압적으로 바꾼 측면이 분명히 있었다. 멀레이니가 인정하는 ‘타당성‘은 1954년 당시에 곧바로 확립된 것이 아니라 그 후 국가의 꾸준한 교육과 언어를 포함하는) 문화정책을 통해 56개 민족의 다민족국가를 ‘현실‘로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구축된 것이다. - P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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