Ⅶ. 과잉역사화

[집합적 무죄와 예드바브네]
예드바브네에서 유대인 이웃들을 살해한 죄로 전후 공산주의 법정에서 각각 15년과 1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라우단스키 형제는 2000년 12월 폴란드 자유주의 일간지에 자신들은 무죄라고 변명. -> 자신들은 유대인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 ‘유대인 빨갱이‘라는 고정관념은 폴란드인이 유대인 공산주의자의 희생자였다는 기억을 정당화하는 것
이념과 체제에 따른 기회주의(유연한 실용주의?)(자)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한나 아렌트의 ‘집합적 유죄‘와 ‘집합적 무죄‘ -> 집합적 유죄: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닌데도 자기네 집단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일에 죄가 있다고 가정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범주적 사고방식, 집합적 무죄: 집합적 유죄의 반대에 있으나 무죄를 가정한다는 점에서 같은 논리 - 양자는 서로를 떠받치고 정당화한다
가해자들에게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자신의 죄의식을 숨기고 분노를 정당화하는 중요한 기억의 자산이다.
키엘체 포그롬에 대한 폴란드 민족주의 우파의 부정론(1946.7.4): 유대인에게 납치되어 종교의식의 희생양이 될 뻔했다는 8살 소년의 거짓말로 촉발되어 40명의 유대인과 2명의 폴란드인의 사상자 발생(나치 지배로부터 해방된 폴란드에서 일어난 반유대주의적 공격의 절정 -> 유대인 망명 가속화). 키엘체 학살 이후에도 폴란드에서 유대인이 학살은 이어짐. 문제는 학살의 주체가 평범한 폴란드 민중이었다는 사실.
폴란드의 극우 민족주의는 나치 점령군과 홀로코스트의 협력을 거부함으로써 역사적 정통성을 고수하여 반유대주의가 나치의 협력자가 아니라 폴란드 애국을 위한 것이라는 상징성으로 남아
여성 레지스탕스의 상징성 ‘조피아 코사트-슈추츠카‘: 유대인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가톨릭 폴란드인의 의무임을 제시하면서도 유대인이 폴란드의 적이라는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반유대주의)이라 단언
유대인을 숨겨주다 목숨을 잃은 울마 가족(1944.3.24) -> 울마 가족 기념관 만들어져(2016.3): 폴란드의 집합적 무죄 상징하는 기억의 터
‘민족기억연구소‘ 수정 법령(2018.1.26): 폴란드 민족이 나치에 협력했다거나 홀로코스트의 공범이라는 주장은 처벌 대상.-> 얀 그로스 처벌 대상되(폴란드 이웃이 유대인 이웃을 학살한 역사를 기록)
비시 프랑스의 반유대주의적 조처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을 구한 모로코 국왕 모하메드 5세 전후 모로코 민족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져. 역설적으로 비시 프랑스 정부가 세운 강제노동수용소에는 모하메드 5세의 이야기 없어.

[B·C급 전범과 조선 화교 포그롬]
포그롬: 대 박해, 러시아 말. 러시아 제국 내 유대인에 대한 비유대인의 폭력을 가리키는 용어
《세계일주기: 붕정십만리》(1949): 작자 안동원. 런던에서 한 영국인이 ˝유, 코리안?˝ 물어보니 ˝빠가야로˝ 하며 때릴 듯 달려들었다. 한국인이라 항변하니 한국인이 더 나쁘다며 응수. 알고 보니 그 영국인은 일본군의 싱가포르 함락 당시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3년을 보냄. 그의 분노는 일본군에 배속된 식민지 조선인 간수들에게 향해 있던 것.
《인도기행:》: 작자 고황경. 아시아의 이웃들에게 악랄한 조선인의 인상이 박힌 데 대한 경험
뉴델리의 범아시아대회(1947): 대동아공영권의 이데올로기적 허구를 확인하고 전후 아시아의 새로운 단결을 도모하고자 개최되었으나 일제의 피해자였던 조선인이 아시아 이웃에게는 가해자임이 드러나는 계기도 되었음
타이-미얀마 철도 부설사업에 동원된 전쟁포로 관련 학대 전범 재판에서 조선인 군무원 수가 전체 120명 중 35명. 그 중 33명이 유죄 판결 받아. 대한민국 탈식민주의 공적 기억에서는 희생자로 남아.
KBS 다큐멘터리 <전범이 된 조선 청년들>: 조선인 포로감시원+연합군 포로 희생자 대립구도 확인돼. -> 보자
‘매개 행위‘: 가해자가 자신의 무고함을 변호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논리 - ex) 아돌프 아이히만: 가해자의 행위 주체성은 어디로 갔는가?
정부가 발간한 <조선인 BC급 전범에 대한 진상조사> 보고서는 ˝연합군 포로들을 학대하게 된 것은 일제 침략전에 강제 동원되었기 때문˝으로 주장. 1차 가해자는 일제. 2차 가해자는 연합군 군사재판. 전범 당사자는 사죄의 제스처를 취했으나 정작 정부는 이들을 이중의 피해자로 규정.
양칠성은 식민지 조선인, 일본군 군무원, 친일협력자, 일본군 전범, 인도네시아 민족해방군, 네덜란드군에게 사로잡힌 사형수 포로 생활을 하며 여러 공간을 넘나드는 기억의 경계인. 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완바오산 사건(1931.4)‘: 학계 공식 용어 -> 조선 화교 포그롬(저자가 주장하는 용어 - 한반도에서 벌어진 화교에 대한 학살과 약탈 사건 은폐할 우려): 만주 창춘 완바오산(만보산) 부근 황무지 개간과정에서 수로 공사를 둘러싸고 불거진 조선 농민과 중국 농민의 갈등에서 비롯된 사건. 조선일보 만주 지국의 오보로 한반도에서 조선인이 화교를 학살.
2003년 고등학교 국사 검인정 교과서 ‘완바오산 사건‘ 최초 기술하여 공식 기억의 영역으로 들어가.
한국인의 집합적 무죄에 대한 확신은 일본인의 집합적 유죄에 대한 폭력적 단죄론을 낳아

[세습적 희생자의식과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기억 문화는 ‘홀로코스트‘ 전후 세대에게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라는 지위 세습
이스라엘 건국 후 공식 기억은 시온주의적 영웅 vs 허약하고 수동적인 유대인 디아스포라 희생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음 -> 시온주의적 헤게모니에 입각한 역사 담론 강조
미국 유대인 사회도 자신들이 승리한 영웅에 속해야 한다는 것을 문화적으로 공유. 희생된 유대인에 대한 기억을 강제로 없애거나 줄여야 하는 것 공유.(냉전 체제도 영향을 주었음)
체코슬로바키아의 루돌프 슬란스키 재판 이후 미국 유대인은 스탈린과 공산주의 진영의 반유대주의를 강조하기 시작
유대 민족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전쟁 영웅이 지배하는 기억 문화에서 홀로코스트 희생자는 주변화
이스라엘 독립선언서: 유럽 유대인의 학살은 디아스포라의 과거를 청산하고 이스라엘 국가 수립이 시급한 과제임을 일깨워주었다 적시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 홀로코스트의 참상이 공개도고 언론에 보도되면서 세계 여론 들끓어.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의견 높아져. -> 이스라엘 국가의 도덕적 정당성 승인받아

역사의 가해자가 기억의 희생자로 변신할 때는 공통된 현상이 하나있다. 연루된 개개인이 행위의 주체성을 반납하고 역사의 구조 뒤로숨는 것이다. 역사적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선 개인은 상황의 압도적인힘 앞에서 초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억의 영역에서 행위 주체성을 반납한다는 것이 반드시 무기력의 표현만은 아니다. 폭력의 구조와역사적 상황의 압도적인 힘에 대한 일방적 강조는 개개인의 주체적행위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도망가는 편리한 변명의 기제이기도하다.

아렌트의 비판에 따르면, 조상이나 아버지 세대의 죄를 민족의 이름으로 뒤집어쓰는 ‘집합적 유죄‘나 개개인이 저지른 죄를 민족의 이름으로 덮어버리는 ‘집합적 무죄‘는 집합 내의 모든 사람을 유죄나 무죄로 단정함으로써 결국 아무한테도 죄를 물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린다. 유대인 이웃을 학살한 자신의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해 실존적 책임을 지는 대신, 나치즘과 스탈린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인 폴란드 민족의 일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희생자로 간주하는 라우단스키 형제는 ‘집합적 무죄‘의 사유 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나치와 스탈린주의의 가장 큰 희생자이면서도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걸고 유대인 이웃을 구한 폴란드인은결코 가해자가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따라갈 때만 단 하나뿐인 출구를 찾아갈 수 있는 것이다.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과 가족을 희생한 ‘의인‘ 울마 가족의 기억이 예드바브네의 유대인 학살자 라우단스키 형제의 기억과 만나는 곳도 바로 이 지점이다. 선량한 희생자 폴란드 민족의 집합적 무죄가 폴란드 사회의 집단적 기억을 구성하는 프레임으로 자리 잡으면, 나치 점령기의 예드바브네 학살뿐만 아니라 전후의 키엘체 학살 부정론도 고개를 내민다. 이들에 따르면, 학살은 폴란드 민족주의의 명예를 실추시키려는 스탈린의 비밀경찰 또는 폴란드 공산당 공안기관의 음모로 환원되고, 폴란드인 가해자는 음모의 무고한 희생자가 된다.

폴란드의 경험은 민족의 집합적 무죄에 기초한 사회적 기억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기억 정치의 도덕주의는 도덕적이지 못하다. 과잉 역사화된 집합적 무죄의 도덕적 정당성에 안주하기보다 개개인의실존적 책임을 묻는 양심의 목소리가 훨씬 더 소중하다는 모순어법이야말로 바람직한 기억의 정치를 추동하는 문법이다.

조선인 전범의 변론과 그에 대한 한국 사회의 옹호론적 기억은 ‘집합적 무죄‘와 ‘매개 행위(mediation of action)’의 논리로 구성되어 있다. 식민지 조선 출신의 포로감시원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던 한민족 전체와 더불어 무죄라는 식이다. "조선인 포로감시원의 행위가 엄연한 전쟁범죄라고 할지라도 행위 자체의 폭력성 이면에 식민지 민중에게 ‘강요‘ 가해의 ‘완장‘을 단순한 범법행위로 처벌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것은 집합적 무죄론의 전형을 보여준다.

한편 ‘매개 행위‘는 가해자가 자신의 무고함을 읍소할 때 자주 사용하는 논리다. 유대인의 뺨 한번 때린 적 없는 자신은 결코 반유대주의자가 아니며, 단지나치독일의 관료로서 상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고 무죄를 강변한 아돌프 아이히만이 대표적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책상 위의 가해자‘인 명령권자는 자신은 실제로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는 이유로, 명령 체계 말단의 가해자는 자신은 강요된 명령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유로 모두 무죄가 된다. 가해자의 행위 주체성은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포로 학대가 상관의 명령에 따른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이학래 씨의 말은 자신이 ‘불가피한‘ 가해자였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개별 행위의 잘잘못에 상관없이 유대인이므로 유죄라는 발상의 극단이 홀로코스트였다는 점에서, 국적이나 민족이 무엇이냐에 따라 가해자와 희생자를 나누는 기억의 코드는 위험천만하다. 조선인 포로감시원은 식민지 조선인이기 때문에 피해자였다는 식의 논리가 아니라,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된 같은 가해자인데도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들에 대한 원호를 거부해온 일본 정부의 국제적 책임을 어떻게 묻고 기억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아닐까 한다. *********

한국과 중국을 이간질하여 만주 침략을 옹호하고 유리하게 만들려는 일본 제국주의의 이간책이라는 음모론이 ‘조선 화교 포그롬‘에 대한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기억을 지배했다. 음모론에 따르면, 조선 총독부 형사들이 ‘조선인 지게꾼‘들을 매수하여 중국인 상점과 중국인을 습격하게 했고, 이들은 일본경찰의 방조 아래 중국인에 대한 방화와 약탈, 파괴를 자행했다. 심지어는 식민지 시대가 주요 배경인 대하소설 《토지》에서 작가는 "한복으로 변장한 일본인이 군중 속에 섞여 있었다"는 가설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폴란드 공안 장교가 군중을 진두지휘한 키엘체 학살은 폴란드 공산당의 음모였다거나, 이 학살에서 군중을 이끌던 인물이 1960년대 텔아비브의 소련 대사관에서 근무한 스탈린의 비밀경찰 간부였다는 폴란드 우익의 스탈린주의 음모론을 연상시킨다.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를 거부하고 동화를 주장하면서 유럽에 남은 유대인에게 닥친 대재앙은 이스라엘 땅에 독립된 국가를 재건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시온주의적 전망이 옳음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였다.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는 대부분 유럽에 남아 있던 동화주의자였던 것이다. 민족은 시민적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동화주의의 패배는 이스라엘에서 시온주의자의 혈통적 민족주의를 강화했다. 또한 팔레스타인 이주를 강조한 시온주의적 민족주의 노선이 옳다는 증거라고 받아들여졌다. 시온주의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옛 땅에 독립된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는 것은유대 민족에게 부과된 태생적 운명이자 유일한 대안이었다. 이런 역사 담론에 홀로코스트가 들어설 여지는 별반 없었을 것이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전제하는 가해자와 희생자의 이분법적 세계관에서는 식민주의, 제노사이드, 홀로코스트 등을 근원적으로 비판할 수 없다. 그것은 식민주의와 홀로코스트를 낳은 세계사의 규칙을비판하고 바꾸기보다, 규칙은 그대로 둔 채 패자의 자리에서 승자의자리로, 희생자의 자리에서 가해자의 자리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욕망을 낳기 쉽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희생자가 된 역사에대한 회한과 비판에서 출발하지만, 자리를 바꾸어 승자나 가해자가 될수 있다면 식민주의와 홀로코스트의 규칙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식이다. ‘세습적 희생자‘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자신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역사적 성찰이 21세기 문화적 기억의 서사적 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희생자 민족‘의 집단적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된 세습적 희생자라는 지위는 잠재적인 또는 이미 가시화되고

있는 식민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비판을 근원적으로 가로막는다. 홀로코스트가 주는 섬찟한 교훈은 또다시 그런 일이 우리에게 닥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우리도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다는 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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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11-17 04: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생각하면 일제강점기 때 일본쪽에서 일한 친일파도 있고, 강제 동원으로 전쟁에 나간 사람도 있군요 그런 사람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한국군은 베트남 전쟁에서 안 좋았다는 말도 있네요 한국이 늘 피해자는 아니기도 하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11-17 09:43   좋아요 0 | URL
네. 한국도 피해자이기도 하고 가해자이기도 하고 참 복잡한 문제입니다. 들여다볼수록 단순하게 단정지을 수 없는 문제겠구나 싶습니다.
 

5장 제인 오스틴의 겉 이야기(와 비밀 요원들)

* 상상력과 창의성의 관점에서
<레이디 수전>: 여성의 창의성이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작품. 상상력이 악과 관련
<이성과 감성>: 상상력이 자기 파괴와 밀접
<오만과 편견>: 상상력의 위험함을 자기주장과 이기심, 섹슈얼리티의 함정과 관련지음
<에마>: 상상력에 대한 양가성. 자신 이외엔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주인공 내놓아
<맨스필드 파크>: 이중성과 심리적 분열의 극대화. 자아와 타자의 갈등 폭발 - 자기 창조의 정신을 ‘매혹적인’ ‘감염병’이라 정의


<에마>: 여성의 본보기 그려
<설득>: 권위에 대한 복종과 삶의 이야기에 대한 포기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 탐색. 숙녀가 되기를 거부하는 여주인공 그려

설득은 읽어볼 필요가 있을 듯.

글자 그대로 아버지의 책을 쓰는 일은 생애 내내 그녀가 했던일, 즉 아버지의 이론을 설명하고 권위적인 남성 인물의 현명한자비심을 묘사하는 이야기를 썼던 일이었다. 적어도 한 비평가는 마리아가 아버지의 기준과 자신의 개인적 도리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마리아가 (자신의 소설에서도덕적인 표면과 상징적인 저항의 대화를 유지함으로써)" 아버지의 가치와 다른 자신의 의견을 암암리에 표현했다 하더라도, 이 정신분열적인 해결은 가정이라는 전선에서 그녀에게 책상을 내준 일에 대한 아버지의 선심 쓰는 듯한 글을 남겼을 뿐이다. - P305

만일 여성이 글을 썼다면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응접실에서써야 했을 것입니다. […] 여성은 항상 방해받았습니다. […] 제인 오스틴은 마지막까지 그런 환경에서 글을 썼습니다. 오스틴의 조카는 회고록에 이렇게 썼습니다. ‘생각해보면 고모가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었는지 놀랍다. 고모는 독립된 서재가 없어서 작품을 대체로 공동응접실에서 썼는데, 보통 응접실은 모든 종류의 일상사로 방해받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고모는 하인들이나 방문객, 자신의 가족을 제외한 어떤 사람도 자신이 글을 쓴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했다.‘ 제인 오스틴은 자신의 원고를 숨기거나 압지로 덮어두었습니다. […][오스틴은] 문의 경첩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누군가 들어오기 전에 원고를 감출 수 있었기때문이었습니다. - P306

오스틴은 (여성은 항상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거부할 필요가 있다는) 자기 이야기가 품고 있는 억압 덕분에 역설적으로 자신이 여자 주인공의 운명으로 규정하고 옹호한 감금을 피할 수 있었다. - P307

오스틴의 예의 바름은 그녀가 가르치기 시작한 모든 후기 소설 속 공공연한 교훈에서 가장 또렷하게 나타난다. 왜 그리고어떻게 여성의 생존이 남성의 승인과 보호에 의존하고 있는지극화시킬 때, 오스틴은 남성이 우월하다는 인식이 허구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항상 남성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힘을 존중한다. 부적절한 아버지를 거부하는 모든 여자 주인공은 더 훌륭하고 더 섬세한 남자들을 찾아나서지만, 그 남자들도 여전히 권위를 대표한다. - P308

오스틴의 책상 위 원고를 덮고있는 압지와 마찬가지로, 침묵과 순종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오스틴의 겉으로 드러나 있는 이야기는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여성의 종속적인 위치를 강화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관습법이 이시기에 ‘엄호물‘이라고 불렀던 것은 실제로 결혼한 여자의 지위를 유예되고 ‘덮인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성의 존재 자체나여성의 법적 지위는 결혼 동안 유예되거나 적어도 남편의 존재안으로 통합되어 합체된다. 그의 날개와 보호와 덮개 아래서 여성은 모든 것을 수행한다‘고 윌리엄 블랙스톤 경은 쓴다. 오스틴이 꿈꾸었던 가장 행복한 결말은 (적어도 그녀의 마지막 소설까지) 무엇인가를 해내려는 여자 주인공들에게 보호와 덮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 P309

‘기절하기‘와 ‘미쳐버리기‘라는 양극단은 여성을 유혹하지만 또한 파괴하는 극단이기 때문에, 오스틴이 묘사하는 것은 일종의 변증법적인 자아의식이 나타나는 방식이다. 여성 의식의 양극단은 수많은 여성들을 정신분열로 내몰았지만, 오스틴의 여자 주인공들은 살아남아 번영을 누린다. 바로 서로 대립되는 투사 때문이다. - P322

오스틴이 쓴 총 여섯 권의 소설에서 자기규정의 수단을 박탈당한 여자들은 분장과 위장이라는 위험한 즐거움에 치명적으로이끌리는 모습을 보인다. 오스틴의 직업은 바로 이런 가장에 의존하고 있다. 분장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인물들의 성격을 묘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위장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플롯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가? 모든 소설에서 화자의 목소리는 재치 있고확신에 차 있으며 활기 넘치고 독립적이다. - P330

오스틴에게 작가가 된다는 것은 곧 자신이여성 인물들에게 부여한 구속에서 탈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오스틴은 전형적인 듯하다. 소설이란 작가의 주체성을 유지하고 숨기면서도 효과적으로 대상화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여성들이 소설에 지대하게 공헌해왔다고 볼 수 있기때문이다. 달리 말해 오스틴은 자신의 소설들에서 본인의 미학적 풍자적 감수성에 의문을 던지고 비판하는 동시에, 예술의 엄격성에 의해 규율이 잡히지 않은 상상력의 한계를 언급하며 그위험을 주장하고 있다. - P331

오스틴은 전형적 여자 주인공과의 동일시뿐만 아니라, (자신의 문화를 반항적으로 이탈한 오스틴을 재연하는) 덜 두드러지지만 더 심술궂고 더 발랄하고 활동적인 여성 인물들과의 동일시를 통해 ‘가능성‘ 속에 머무른다. - P332

이미 많은 비평가는 오스틴 소설의 ‘행복한 결말’이내포하는 이중성을 주목해왔다. 이 결말에서 오스틴은 매우 서둘러서, 또는 있음직하지 않은 우연의 일치로, 또는 모든 메시지를 약화시켜버릴 정도의 빈정거림으로 연인들을 축복의 가장자리로 데려온다. 34 호의적인 화자의 도움이 없다면 소녀는 결코 치욕감이나 부모의 집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암시가 여전히남아 있는 것이다.
오스틴의 이중성이 좀 더 모호하게 나타나는 것은 극도로 강력한 여자들을 재현할 경우다. 이런 여자들은 여자 주인공이나작가가 억누르고 있는 반항적인 분노를 매우 성공적으로 재연한다. 분노한 여자들은 매우 드물게 나타나고 자신의 목소리로말하는 경우도 드물기 때문에 플롯에서 비밀스러운 존재로 남아 있다. 그들은 소설 속에서 플롯이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미미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소설 마지막에 가서는 스토리의끝에 묻혀버리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추방당한다), 자신들이 매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징벌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 P333

오스틴 소설의 모든분노에 찬 귀족 과부들은 남성 신의 계몽적 이성을 위협하며, 남성 신은 결국 여성의 섹슈얼리티, 변덕, 수다의 힘을 추방함으로써만 여자 주인공을 얻는다. 밤의 여왕이 여전히 격렬한 저항의 노래를 열광적으로 부르면서 무대 뒤로 사라지는 <마술피리>처럼, 노리스 이모 같은 여자들은 결코 완전히 억압될 수 없다. 『이성과 감성』에서 멸시당하는 페라스 부인이 좋은 예다. - P337

이 마지막 소설의 여자 주인공은 남자들도 가정생활을 중시하고 참여하는 한편, 여자들은 공적인 행사에 공헌하는 평등한 사회를 발견한다.
이것은 평등한 성적 이데올로기의 출현을 예견하는 상호 보완적인 이상이다. 38 앤은 오스틴의 소설과 편지에서 위험하고 따분한 행위로 묘사하는 출산과 양육의 여성 공동체에 더 이상 갇히지 않고, 39 전통적인 남성 영역과 여성 영역의 통합을 상징하는 결혼에 성공한다.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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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15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 <설득>을 읽어야 한다고.... 그래서 읽으려구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2-11-16 09:17   좋아요 1 | URL
그런데 설득 읽을 시간이... 다른 책 대신 읽는 것으로 해야할까요ㅠㅠ 고민 좀 해봐야겠습니다.

- 2022-11-16 10:31   좋아요 1 | URL
저도 설득만 갖춰놓았지요!! ㅋㅋㅋㅋ

다락방 2022-11-16 0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설득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거리의 화가 님!! ㅎㅎ

거리의화가 2022-11-16 09:17   좋아요 1 | URL
오~ 다락방님 읽어보셨군요. 재미있다니 기대되네요. 에마는 한참으로 미루고 설득이라도 올해 안에 읽는 걸 목표로 해봐야겠습니다!ㅎㅎ

다락방 2022-11-16 09:19   좋아요 2 | URL
저는 에마는 너무 싫었어요, 거리의화가 님. 제가 에마를 읽으면서 엄청 욕해놓은 페이퍼도 있을 거예요. 에마 성격이 진짜 너무 제 타입 아니라서요. 완전 슈퍼 오지라퍼에 저여자랑 저남자랑 잘 어울려~ 해놓고 그 남자가 자기 좋아한다니까 ‘감히 나를?‘ 막 이러는데 ㅋㅋ 와 너무 싫었어요 ㅋㅋㅋㅋ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서는 에마에 대해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네요.

scott 2022-11-16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설득>
영드도 재밌습니다
남주가 좀 멋지게 나와여 ㅎㅎㅎ
에마는 영화는 비추!ㅎㅎㅎ

거리의화가 2022-11-16 10:59   좋아요 1 | URL
스콧님 영드 추천 감사드립니다~ 에마는 책본다고 해도 한참 뒤로 미루려구요~ㅎㅎㅎ
 

Ⅵ. 탈역사화

[패전의 우울과 희생자의식]
전후 한참이 지나도 독일인의 대다수가 나치즘은 좋은 생각이었지만 잘못 적용됐을 뿐이라는 생각을 가져: 히틀러의 희생자 - 연합군의 희생자, 독일인에 의한 희생자 의식 없어 -> 탈나치화
유대인의 희생, 이스라엘에 대한 사과와 배상에도 소극적
동독 정권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이 진정한 위협이라 생각해(반제국주의 투쟁이 시급) - 나치즘의 과거는 자연히 극복된다
‘전 국민 희생자론‘이 전후 일본의 문화적 기억을 떠받치는 기둥. 제국의 기억이 포스트식민주의 문법으로 구성되면서 전후 일본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정당화하는 기억 문화로 자리잡아.
일본 우파, 자민당에 표를 던지는 유권자, 평화헌법 지지자, 평화운동가 모두 희생자 신화에 목을 매고 있음

[공습의 기억과 원리적 평화주의]
드레스덴 폭격의 기억은 동독에서는 연합국을 가해자로 몰고 서독에서는 스탈린과 소련을 가해자로 만들었다. 폭격의 기억은 동서독 모두 독일 민간인을 희생자로 만드는데 일등 공신의 역할을 했다.
일본이 인류 유일의 피폭국이었다는 사실은 아시아 이웃에 저지른 전쟁 범죄와 가해 행위를 가리는 가림막 기억으로 작동했다.
전후 평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제기할수록 전쟁과 원폭 투하에 대한 역사적 맥락과 정치적 책임이 가려진다. (모든 전쟁을 ‘절대 악‘으로 규정하는 전투적 평화주의는 전쟁의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다) -> 탈역사화된 평화주의는 위험
‘도덕적 비가시성(moral invisibility)‘이 근대 문명의 기계화된 폭력을 가능하게 했다(by 바우만)
히로시마 위성도시 구레가 일본 태평양 함대의 모항이었다는 것이나 나가사키의 미쓰비시 중공업이 군함 건조 기지였다는 것, 오쿠노섬에 독가스 공장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가려지고 지워진다.

[실향민 · 전쟁포로와 가해의 망각]
나치의 폭력 vs 소련군의 폭력 - 비대칭성
전후 독일과 폴란드 등에서 국경선의 조정이 일어나면서 대량의 피난민이 발생 -> 독일 피란민은 폴란드어로 독일인을 뜻하는 ‘Niemiec‘의 첫 글자 ‘ N‘ 표식을 가슴에 달고 다녔음. 폴란드 수용소에서 독일인 피란민에 대한 고문이나 학대, 가해, 살해 행위가 빈번하였음.
체코도 독일 피란민에 대한 가해 행위 자유롭지 않아
독일의 강제 추방 희생자들(70% 정도가 서독에 정착. 가톨릭 교회와 돈독한 관계. ‘기독교민주당‘과 ‘기독교사회당‘에 주요 지지 세력이 됨)은 자신들에게 가해 행위를 한 동유럽 국가들에 사과를 요구
아데나워 행정부는 독일 피란민의 고통을 홀로코스트의 유대인 희생과 동일시하면서 탈역사화 시도
일본 피란민 히키아게샤도 독일의 1/4 정도 규모(320만)지만 대부분 전 재산을 빼앗기고 유리걸식, 기아, 추위, 현지인의 복수에 시달렸고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도 본토 일본인의 편견과 차별에 시달려. 소련과 중국의 포로수용소 출신은 공산주의자로 의심당해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전 직장으로 복귀할 수도 없었음.
《요코이야기》, 《게걸음으로》 모두 패전을 앞두고 서둘러 피란길에 올라야 했던 일본, 독일 피란민의 수난을 그렸으나 역사적 감수성의 차이로 다른 취급을 받아.
《게걸음으로》에서는 가해와 피해가 복합적으로 교차하는 기억을 배치. 하지만 《요코이야기》는 개인의 고통만 강조되고 일본인이 저지른 범죄나 잔학행위에 대한 비판이 없음
소련의 포로수용소에 억류된 전쟁포로의 기억도 탈역사화되어 슬라브 공산주의자들의 억압과 박해라는 집단 기억을 강화
서독이나 일본이나 모두 귀국한 전쟁포로에게 패전의 책임에 더해 폭력 이미지가 덧붙여져 악당 취급받아.


패전 직후 지구적 기억구성체에서 집단적 희생자라는 역사적 위치는 유럽과 아시아 전선에서 먼저 전쟁을 도발하고 이웃 국가들을 침략한 독일과 일본 같은 추축국의 가해자들이 선점했다. 인류 역사상최악의 비극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와 전쟁 책임 문제가 기억에서 지워지고 탈역사화하자, 전쟁은 어느 날 문득 할퀴고 간 자연재해처럼 기억되었다. 자연재해에는 가해자가 없고 피해자만 있다. 가해자를 꼭 찾아야 한다면, 신이거나 운명이거나 비인간의 영역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전쟁을 탈역사화하고 희생의 역사적 맥락을 지워버리는 순간, 역사의 가해자는 희생자로 위치를 바꾸고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정당화한다.

원자폭탄의 섬광이 번쩍인그날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젊은이가 1964년 도쿄올림픽의 최종 성화주자로 평화의 불을 밝힌 것까지야 에피소드로 넘길 수 있지만, 히로시마평화기념자료관의 건립 역사는 불편하다. 자료관의 건립 전시실은 1949년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 및 자료관 설계 공모에서 당시 도쿄대학 조교수였던 단게 겐조(三)의 설계안이 1등으로 당선되었으며, 그의 설계안에 따라 1955년 8월에 자료관이 개관되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전시실의 설명에는 단계의 설계안이 ‘대동아건립기념영조계획(大東亞建立記念營造計劃)‘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생략되어 있다.

원폭에 대한 탈역사화된 평화주의는 점령군의 엄격한 검열에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 점령군의 검열체제는 원폭 희생자에 대한 기억을억누름으로써 풀뿌리 기억의 영역에서 일본의 희생자의식을 강화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희생자를 서열화하는 것도 기억의 폭력이지만, 모든희생의 기억을 역사적 맥락에서 떼어놓고 추상적 고통으로 획일화하는 것도 폭력이다. 피해자의 고통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고통의 서열화와 획일화를 경계해야 하는 기억의 장은 불편하고 모순된 긴장으로가득 차 있다.

희생의 비대칭성은 종종 더 큰 희생자가 작은 희생자의 희생을 부정하고 희생자의 지위를 독점하는 논리적 근거로 작동하면서 화해의 발목을 잡는다. 자신의 가해 사실과 상대방의 희생을부정하면, 가해자가 회개할 이유도 희생자의 용서를 구할 이유도 없다. 용서가 없으면 화해도 없다. 자신들의 희생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독일이 저지른 죄를 대속했다는 독일 피란민의 입장은 역사적 화해를더 어렵게 만들었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아도 회개하지 않는 가해자를 용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독일과 일본은 전근대의 잔재와 일탈한 자본주의적 발전 때문에 봉건 지배계급과 군부, 대자본가가 결탁한 위로부터의 파시스트적 혁명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근대의 ‘특수한 길‘ 테제는 독일과 일본의 자유주의 부르주아지, 사무직 노동자, 중하층 관료, 노동자계급, 농민 등 대다수 민중이야말로 위에서 강요된 파시즘과 폭력적인근대화의 희생자였다는 전제를 안고 있다. 소수의 나치와 군국주의자가 선량한 민중을 총동원체제로 밀어 넣었다는 ‘특수한 길‘ 테제는 추상의 사회 체제와 구조에 책임을 떠넘겼다. 그러나 희생자를 처형장에 몰아넣고 총을 쏘고 스위치를 당겨 사람을 죽인 가해자는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작은 행위자들이었다. 전쟁 상황에서 사람을 죽이는것은 구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다. ‘특수한 길‘ 테제는 전쟁과 식민지

의 현장에서 잔학행위의 가해자였던 작은 행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역사적 담론이었다.
환전후의 자기 변명적 집단 기억 속에서 평범한 독일인과 일본인은사악한 나치와 전근대적 군부의 최초의 희생양이었으며, 전쟁이 끝날무렵에는 최후의 희생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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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11-15 1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쟁이라는게 참 그런거 같아요. 승전국이든 패전국이든 그나라 국민은 다 피해자가 맞아 보이지만 그렇게 쉽게 단정지을수도 없고~

거리의화가 2022-11-15 13:54   좋아요 3 | URL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이 결국 피해자와 가해자(가 희생자화된 경우)에 대한 문제입니다. 지역적인 범위에서 탈영토화되어 지구화(세계화)된 의미로 쓰이는 것이 왜인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문제죠. 우리만 해도 피해자이기도 하면서 가해자이기도 한데 희생자를 강조하며 성역화시키는 부분도 분명히 있잖아요. 책이 지나치게 두껍다는 생각인데(사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1~2에서 2~3장 정도면 충분할 듯한데 구체적인 사례가 많이 들어가서) 메시지는 결국 하나인 듯 싶습니다^^*

mini74 2022-11-15 17: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의 묘 도 그런 의미로 비판 많았지요. 게걸음으로 읽어보고싶네요

거리의화가 2022-11-15 17:45   좋아요 2 | URL
네. 개인적인 수기라도 역사적 감수성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게걸음으로>가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일단 체크는 해두었는데 왠지 미니님이 더 먼저 읽으실듯합니다ㅋㅋㅋ
 

Ⅴ. 국민화

[히로시마와 아우슈비츠]
히로시마-아우슈비츠 평화행진(1963.1.27): 1960년 반공주의 미·일 동맹에 반대하는 ‘안보투쟁‘에서 패배한 일본의 평화운동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중 기획
나가사키 평화공원에 설치된 각국에서 보내온 기념물: 서방 자유주의 진영에서 보낸 것들은 나가사키의 자매 도시에서 시장과 시민의 이름으로 보냈으나 공산주의 진영에서 보낸 것들은 국가 권력이 기증의 주체
싱가포르 해안의 건설 현장에서 일본군에게 대량 학살된 중국계 주민의 유해 수백 구 발굴(1962.5)되면서 흐름 바뀌어
-> 희생자의 기억 뒤에 숨은 가해의 역사를 비판적 시선으로 응시하지 않는 한 기억의 재영토화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
쌍둥이 절대악으로서 히로시마-아우슈비츠 연계는 오늘날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에까지 이어지며 일본 민족주의 우파의 문화적 기억을 구성하는 중요 축으로 남아

[아우슈비츠의 기억 전쟁]
국가 단위로 배치된 아우슈비츠 기념관의 구조 - 유대인 희생자를 출신국에 따라 그리스인, 네덜란드인, 이탈리아인 등으로 분류하면서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이란 존재를 제거 -> 폴란드당 주류 민족 공산주의는 나치가 전멸시키려던 것은 폴란드인이고 유대인은 단지 이주의 대상이었을 뿐
1968년 아우슈비츠 유대관이 문을 열기는 했으나 1980년대 까지 공산주의 정권하에서 폴란드 시민의 죽음만을 강조하고 유대인의 정체성은 지워짐.
아우슈비츠의 십자가를 둘러싼 유대인과 폴란드인 사이의 논쟁: 1979년 교황(요한 바오르 2세: 폴란드 출신)의 미사 집전, 1984년 지클론 저장 창고 건물에 카르멜 수녀원 들어섬 - 수용소가 홀로코스트보다는 폴란드인 가톨릭교도의 순교와 희생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짐
-> 결국 세계 각국의 반발로 1989년 2월까지 카르멜 수녀원 이전 합의했으나 잡음이 끊이지 않음 -> 1993년 교황 바오로 2세의 결단으로 이전 계획 철수, 하지만 교황의 십자가는 남음
십자가를 세우자고 요구하는 폴란드인과 십자가 철거를 요구하는 유대인 사이에서 충돌 벌어져 -> 1999년 5월 폴란드군 출동으로 십자가 계곡 청소되었으나 교황의 십자가는 치워지지 않음
2020년 1월 27일 아우슈비츠 해방 75주년 기념식에 참가한 4명의 뉴욕 랍비가 비르케나우 카톨릭 교회의 철거를 요구
압도적 규모의 비극에서 오는 보편적 상징성으로 아우슈비츠는 다양한 희생자의 기억이 각축하는 정치적 경쟁의 장이자 재영토화의 대상이 되었음

[동아시아의 기억과 홀로코스트의 국민화]
안네 프랑크의 일기가 가장 많이 팔린 나라 - 일본
1955년 동아시아 유일의 홀로코스트 교육센터(오쓰카 마코토가 세움, 후쿠야마)
2015년 오쓰마 마코토가 독일 방송 인터뷰에서 유대인과 일본인의 조상이 같고 유대주의와 일본의 국가신도에 공통점이 많으며 일본어와 히브리어의 발음이 유사하다 주장 -> 일본인과 유대인 사이의 과잉화된 동질성
1956년 《밤과 안개(by 빅토어 프란클)》라는 책이 독일에서는 절판된 반면 일본에서는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는데 중요한 역할. ‘1,000만 명을 학살한 대학살공장의 실태‘라는 출판사의 광고, 1956년 일본판은 자기반성의 관점에서 아우슈비츠와 홀로코스트의 실상을 일본에 알림으로써 비극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출간 의도 밝혀. 1937년 일본군이 저지른 난징 학살과 나치 강제수용소의 집단학살을 병치해놓은 자기 비판적 기억
1960~1970년대 냉전 체제의 영향으로 일본이 동아시아 반공 진영의 중심국으로 편입이 되면서 재군비로 무장하고 교과서 검정체제도 변화.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부정적 측면은 제한되고 어쩔 수 없이 제시될 때는 미화시키도록 촉구, 서구 식민주의로부터 아이사 민족들을 해방시켜 독립의 기회를 준 것이라는 식의 서술 필요 의견(침략->진출, 난징 학살 삭제, 종전을 위한 천황의 용단 강조)
1936년 만주국을 방문한 듀보이스(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마르크스주의에 인종문제 제기)는 만주국을 인종적 평등이 구현된 이상적 식민지이자 자본주의의 모순과 폐해로부터 자유로운 체제를 가진 다인종 공동체로 인식.
세네갈 등의 아프리카 민족주의 지도자들도 ‘더 검은 민족의 국제연맹(International League of Darker Peoples)‘ 결성하면서 일본과의 연대 추진
존 에드워드 브루스 등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들은 미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는 소설을 발표
1960년대 일본의 집단 기억이 홀로코스트를 자주 참조했다면 한국은 이스라엘을 건국 모델로 자주 소환했음. - 일본인이 유대인의 희생에 관심을 두었다면 한국인은 이스라엘의 영웅적 민족주의에 관심을 둔 것(식민지 조선인은 고향을 잃고 유랑하는 유대인의 곤경과 고통에 관심을 보였음)
1962년 7월 키부츠를 모델로 한 ‘농촌 개척대대‘가 출범하며 이스라엘 정부는 1963년 12월 화답하듯 한글 책자 간행 보조비로 ‘재건국민운동‘에 1,100달러 기증
-> 1970년대 초 가나안 농군학교는 농촌 지도자를 키우는 산실 역할을 했고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한국에서 세계적 경쟁의 성공 모델로 인식돼
한국의 언론에서 ‘홀로코스트‘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1990년 이후. -> 1990년대 한국 사회에서 이스라엘은 영웅적 투자에서 억울한 희생자로 변모
한국의 이스라엘 담론의 변화에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발현과도 관련할 것
한국의 1987년 정치 민주화는 냉전 시기 국가 권력에 의한 정치적 제노사이드의 진상조사와 기억의 복권 분위기가 이루어지며 홀로코스트가 부상
북한 민주화운동 주체들도 홀로코스트를 전거로 삼기는 마찬가지: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북한의 인권탄압, 아우슈비츠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를 병렬하면서 북한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를 촉구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슬로건에서 보듯이 일본의 오리엔탈리즘은 중국과 조선을 열등한 동양으로 주변화하고 일본은 우월한 서양으로 정론화하는 헤게모니적 담론이었다." 아시아 이웃에 대한 일본의 오리엔탈리즘은 일본제국과 아시아·태평양 전쟁에 대한 일본의 문화적 기억을 구성하는서사적 틀이자 얼개였다. 아시아 이웃에 대한 우월감의 밑에는 일본은서양의 제국주의에 의해 밀려나고 주변화된 ‘서벌턴 제국주의‘에 불과하다는 연민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히로시마-아우슈비츠 평화행진의 주도자들 또한 서벌턴 제국주의가 구성하는 일본 사회의 기억 문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 P221

원폭의 기억은 일본 사회의 희생자의식을 더 강화하고 기억의 국민화를 재촉했다. 원폭 희생자가 일본 국민으로 획일화되는 순간, 재일조선인, 타이완인, 오키나와인, 중국인, 연합군 전쟁포로, 거류 외국인등의 비국민 희생자들은 일본 사회의 기억에서 지워지고 희생자의 국민화가 완성되었다. - P221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폴란드의 공산당 정권은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의 기억을 숙청했지만, 탈냉전 시대 아우슈비츠의 기억은
"아우슈비츠를 유대화함으로써 오시비엥침을 탈폴란드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폴란드화=탈유대화‘ 대 ‘유대화=탈폴란드화‘의 진자운동 속에서 아우슈비츠는 끊임없이 재영토화하려는 민족주의적기억의 각축장이 되어버렸다. - P230

일본의 저항 민족주의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그리고 조선 침략을 거치면서 순식간에 식민주의로 변화해갔지만, ‘서양식민주의의 희생자‘라는 의식은 일본의 기억 문화를 구성하는 주요한축이었다. 메이지 유신을 인도의 세포이 반란이나 중국의 태평천국운동과 같은 반열에 놓고 서양의 제국주의에 맞선 아시아 민족의 반제민족투쟁으로 재구성하는 해석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1905년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는 서양 제국에 맞선 주변부의 저항 민족주의자들에게 희망의방아쇠를 당겼다. 모한다스 간디 (Mohandas Gandhi)가남아프리카 한구석에서 일본의 승리를 자축할 때, 라빈드라나트 타고 - P242

르(Rabindranath Tagore)는 학생들을 이끌고 승리 행진을 벌였다. 오스만제국의 병사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 영국의 사립학교 해로에 다니던 소년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 중국의 국부 쑨원(孫文), 이집트의 무스타파 카밀(Mustafa Kamil) 등에게 일본의 승리는 도미노 효과를 일으켜 서양 제국의 붕괴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졌다. 듀보이스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 이후 세계 각지에서 분출하는 ‘유색인의 자긍심‘에 대해 말했다. - P243

1947년 이스라엘 건국과 1948년남한 건국 이후, 한국 언론의 관심은 유랑하는 유대민족에 대한 공감에서 신생국 이스라엘의 국가 건설과 국민적 통합 과정에 대한 찬탄으로 바뀐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부터 20세기의 끝인 1999년12월 31일까지로 한정해도, 이스라엘과 유대인 관련 기사는 거의 6만건에 이른다. 중동 침입자에 맞서 싸우는 이스라엘, 수에즈 운하 사태,
이스라엘과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 중동 국가들과 벌인 크고 작은전투, 6일 전쟁 등에 대한 기사가 끊이질 않는다. 유대인의 표상이 나라 없는 민족의 설움과 유랑으로 고통받는 희생자에서 불굴의 의지와애국심으로 주변 중동 국가들의 방해를 무릅쓰고 부강한 나라 이스라엘을 건설한 영웅적 민족주의로 바뀐 것이다. - P246

홀로코스트가 유럽과 이스라엘, 미국의 밖에서는 진정한 반향을갖지 못한다는 식의 재단은 홀로코스트를 겪은 당사자의 기억만이 진정성을 가질 수 있다는 당사자주의적 입장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당사자주의는 외부의 비판적 개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점에 - P253

서 기억을 특권화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지구적 기억구성체에서 홀로코스트가 다양한 희생자의 연대를 타진하는 지구적 기억의 준거로 작동한 지는 이미 오래다. 그 과정에서 배태된 탈영토화하는 기억과 재영토화하는 기억 사이의 긴장과 균열은 비단 동아시아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이 아니다. 그 균열은 비교할 수 없는 유일무이성을 강조하는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지구화한다는 작업 속에 이미 배태된 것이다. 홀로코스트의 기억에 지구적 차원의 인권을 지키는 코즈모폴리턴적 윤리성을 부여하면서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특권화하는 이율배반이나 ‘지구화된 홀로코스트‘와 ‘진짜 홀로코스트‘ 사이의 긴장과 균열은 불가피한 면도 있다." 홀로코스트의 지구화가 곧 홀로코스트의 국민화가 되는 모순적 과정이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긴장을 지구적 기억구성체의 상수로 만드는 경향도 있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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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나는 이제 다르게 읽는다 - 도스토옙스키부터 하루키까지, 우리가 몰랐던 소설 속 인문학 이야기
박균호 지음 / 갈매나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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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목과 책의 내용이 매치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그래서 아쉬웠다. 다른 제목을 썼으면 어떠했을까 생각했다). 책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읽고 흥미를 느낄 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
게다가 주제마다 등장하는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가족에 대한 에피소드는 미소를 짓게 만든다. 아내분과 따님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서일 것이다.

여러 번 이야기한 것 같지만 나는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다. 아주 유명한 작품도 못 읽은 경우가 많은데 이는 내가 잘 못 읽어서 읽고 나면 자괴감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서 소설을 읽다가 지루해서 졸았던 적도 많다. 최근에는 조금씩 소설을 읽어가고 있는데 여전히 어려움을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인물과 상황을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이 책에는 20권의 소설이 등장하는데 이 중에서 제대로 읽은 것이라고는 <분노의 포도>, <맨스필드 파크> 단 2권이다. 그래서 읽어보지 못한 소설이 이리도 많은데 어쩌나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저자의 글 솜씨도 좋아서이겠지만 소설에 얽힌 인물과 배경을 설명해주어서 읽지 않은 소설이었어도 읽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소설의 이야기보다 사실 뒷 이야기들이 더 재밌었다. 뒷 이야기들이라함은 소설에 대한 주변적 이야기지만 소설을 이해하게 만드는데 중요한 장치적 역할을 한다. 소설을 조금씩 읽으며 생각하는 것이지만 배경을 알고 읽는 것과 모르고 읽는 것은 이해의 깊이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배경을 모르고 읽으면 이해도도 떨어지고 심지어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여러 주제들 중 나는 고서점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았다. 박인환 시인과 김수영 시인에 대한 에피소드를 보면서 박인환 시인과 김수영 시인의 책 사랑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는데 박인환 시인이 운영하던 마리서사가 지금도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너무 빨리 돌아가셔서 아쉬울 따름이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결혼 전 살던 동네 근처에 고서점이 있었다. 그 때도 책을 좋아했는지 남자친구와 함께 여러 번 들렀었다. 서점에 들어서면 나는 묵은 향기가 기억에 또렷하다. 무슨 책을 샀는지도 지금은 가물한데 어쨌든 갈 때마다 여러 권의 책을 집어들고 나왔었다. 결혼 무렵 더 이상 그 곳을 이전처럼 가지 못하게 되어 인사차 들렀을 때 주인 아저씨께서 운영난으로 서점을 그만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이제 더는 남아있지 않는 그곳에 대한 아쉬움과 슬픔이 지금도 여전하다. 나의 추억만이 남고 실물은 사라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읽을 거리를 얻었다.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는다면 읽는 즐거움은 당연히 배가 될 것이다. 책에 대한 사랑과 이야기적인 재미까지 가득해서 책쟁이라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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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1-13 21: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까마득할 나이 오십이 되면 이전과 독서 방향이 크게 달라질것 같진 않지만

책에 관해서라면 도서관 소장 도서 만큼 읽으셨던 제 교수님들
오십 이후 부터는 고전으로 돌아가서 읽으시더군요.

이북에서 느낄 수 없는 종이 향기, 손끝에서 느껴지는 질감 때문에
종이 책은 우리 곁에 영원 할 것 같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11-14 09:16   좋아요 2 | URL
저도 50이 된다고 해서 특별하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아요 조금 더 깊게 팔 것 같긴 합니다. 그때쯤이면 좋아하는 책이 몇 권쯤 생길테니 재독하는 것도 좋겠죠^^ 말씀하신대로 고전 읽기도 좋겠습니다.
저도 이북은 손맛이 느껴지지 않아서 아쉽더군요. 헌책방이나 고서점에 들어갔을 때의 그 묵은 향이 저는 참 좋더라구요. 책은 역시 넘겨보는 맛인 것 같습니다ㅎㅎㅎ

박균호 2022-11-14 08: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 화가님 요즘 우울한 시기였는데 멋진 서평 덕택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11-14 09:17   좋아요 1 | URL
박균호님 덕분에 좋은 책 읽어서 저야말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기분이 좋아지셨다고 하니 더 좋네요.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랄게요^^*

mini74 2022-11-14 16: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이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소설이 있는거 같아요. 예전과는 다른 맛, 그래서 20대에 만난 작가의 책이 50엔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괜히 앞에 적힌 나이때문에 이 책이 손해보는건 아닌가 ㅎㅎ 걱정되더라고요.

거리의화가 2022-11-14 17:28   좋아요 1 | URL
저는 아직 재독한 책이 손에 꼽아서요...ㅎㅎ 과연 50대가 되서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 얼마나 생길 것인가가 궁금하긴 합니다^^
저도 그 생각했어요. 저 숫자 때문에 책이 손해보는 것 같은 느낌? 내용도 사실 숫자에 상관없이 언제 읽어도 될 책들이라는 생각입니다ㅎㅎㅎ

희선 2022-11-16 02: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박인환 시인이 하는 책방은 아니지만, 마리서사 제가 사는 곳에 있어요 가 본 적은 없어요 박인환 시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마리서사라 지었다고 한 듯해요 한번 가 보려고 했는데 못 가 봤습니다 언젠가 쓴 적 있는데... 알 것 같기도 하면서 모르는 곳이네요 거기 산다고 해서 길을 다 아는 건 아니기도 하군요

https://blog.aladin.co.kr/798715133/11683260


희선

거리의화가 2022-11-16 09:16   좋아요 1 | URL
와 희선님. 마리서사가 있군요. 군산이라니... 예전에 여행 한번 했었는데 짧기도 했고 이곳을 알지 못해서 가보진 못했네요. 코로나인데도 운영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시는게 다행입니다. 나중에 기회되면 가봐야겠어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희선 2022-11-17 03:49   좋아요 1 | URL
말하고 이제 문 닫았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코로나로 문 닫은 동네책방 많을 거예요 저기 알 것 같은데, 예전에 찾아보니 안 보이더군요 집에서는 좀 멀어요 걸어서 삼십분쯤 걸리는 동네인데... 나중에 저쪽으로 가면 다시 찾아볼까 봐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