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공포의 쌍둥이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
그녀의 가계도와도 관련이 있고 당시 여성들이 겪어야 했을 고난과도 관련이 있다.
거의 매해 임신한 와중에도 독서에 매진했다고 나오는 부분은 어찌 보면 짠하고 놀랍기도 하다.
3장 시빌의 동굴이 언급되기는 하나 선명한 이해는 되지 않는다.

우리의 삶에 하찮은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날마다 우리와 관련된 모든 것은 가장 위대한 일일 것이다. [・・・] 나는 위대한 남자들이 진리를 보았던 것과 똑같은 관점으로 진리를 보는 법을배워야 한다.[…] 나는 이곳 영국에서 지금 원대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보아야 한다."
이 이브는 아직 사과를 먹지 않았지만, ‘선하고 현명해지고자‘ 하는 그녀의 욕망은 ‘이곳에서 지금 원대한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과 함께, 그녀가 곧 그런 ‘지적 양식‘에 대한 열정에 굴복하리라는 점을 암시한다. 또한 이 양식이 그녀의 마음 속에서 자유와 연관된다는 사실은 다른 무엇보다 이 이야기의 요점을 가장 강력하게 설명해준다. - P407

죄많은 육체에 대한 거부, 도러시아의 여성성에 대한 노골적인 경멸, 포악함, 독단주의로인해 캐저반은 밀턴적인 여성 혐오주의자를 풍자하는 그림자처럼 보이며, (동시에) 버지니아울프가 말한 ‘기념비적인 책 『여성의 정신적, 도덕적, 육체적 열등성』을 쓴 붉은 얼굴의 격노한X 교수‘의 초판본이 되고 만다. 그런 남자와 쉽지 않은 결혼을한 야심적인 도러시아는 불가피하게 비참한 여성의 원형으로10(블레이크는 이를 가리켜 밀턴의 세 아내와 세 딸들이 합해져슬퍼하는 모습이 되어버린, 밀턴의 울부짖는 ‘여섯 겹의 에머네 - P409

이션‘이라 불렀다) 변해간다. 그녀 자신이 밀턴 딸들의 전형을좀 더 희망적으로 규정했다는 사실은 의심할 바 없이 엘리엇이완벽하게 의도했던 아이러니다. - P410

밀턴과 사탄을 동시에 성인으로 받들며 낭만주의를 따랐던여성 작가들은 부인할 수 없는 밀턴의 딸들이었다. 더 중요한것은 그들이 (엘리엇의) 도러시아가 캐저반에게 설명한 바로그 선택을 자신들의 것으로 훨씬 더 분명하게 요구했다는 점이다. 하나의 선택은 남성의 신화에 표면적으로 온순하게 순종하며, ‘아버지에게 봉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또 다른선택은 동등성을 획득하기 위해 몰래 공부하는 것이다. - P411

같은 시기에 메리 셸리는 당시의 수많은 고딕소설을 읽었을 뿐 아니라 오늘날 대학원생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영문학, 불문학, 독문학 연구 과정도 기록했다. 특히 메리 셸리는 1815년, 1816년, 1817년에 밀턴의 작품들인『실낙원』(두 번), 『복락원』, 『코무스』, 『아레오파지티카』, 『리시다스』를 읽었다. 메리 셸리가 열일곱 살에서 스물한 살에 이르는 이 시기에 거의 지속적으로 임신하여 ‘갇혀 지냈거나‘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런 독서는 눈에 띄게인상적이다. 동시에 이 모든 서로 상반되는 활동들(자신의 가족사 연구, 성인 섹슈얼리티의 입문, 문학 독학)이 함께 일어났기에 『실낙원』에 대한 그녀의 관점은 더욱 중요해진다. 자신을문학적 창조물, 그리고/또는 창조자로서 인식해간 과정은 메리셸리가 자신을 딸, 연인, 아내, 어머니로서 규정해간 과정과 분리할 수 없다. 그리하여 메리 셸리는 자신의 출생 신화(기원에대한 그녀의 신화)를 정확하게 자신의 부모, 남편, 문학의 전체문화가 끊임없이 언급했던 우주 발생론적 측면에서 주조했다. - P418

소설의 핵심인물들(월턴, 프랑켄슈타인, 괴물)은 메리 셸리처럼 타락한 세계에서 자신의 현존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동시에 타락 이전에 틀림없이 존재했을 잃어버린 낙원의 본질을 규명하려고애쓴다. 그러나 아담과 달리 이 세 인물들은 에덴뿐만이 아니라지상에서도 쫓겨나 ‘죄‘, 사탄, (암시적으로) 이브처럼 지옥으로곧장 추락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질문은 어떤 의미에서 여성의것이다. 그 질문은 젠더 속으로 추락한 여성 문인이 던지는 질문과 같은 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처음부터 타락에 대항하기보다 그의미를 해명하기 위해 다시 타락의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밀턴에 대한 명시적이거나 암시적인 비유를 통해 신밀턴적 질문들에 답하고 있다. - P421

메리 셸리는 그의 가족사를 설명하는 데 지면을 충분히 할애한다. 사실가족사, 특히 고아의 가족사는 셸리를 매혹시켰던 것 같다. 서사에 포함시킬 수만 있다면 어디에서나 고아의 가족사를 강박적으로 포함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메리 셸리는 ‘고아이자 거지‘가 된 아이의 비참한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또다시 타락의이야기, 낙원에서 추방당한 이야기, 지옥과 대면하는 이야기를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 P424

사탄과 이브의 근친상간 관계는 『프랑켄슈타인의 근친상간 환상에 반영되어 있다. 그중 하나는 위장되어 나타나지만 강력하게 성적인 백일몽이다. 그 꿈에서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의 도구들‘을 괴물의 몸에 적용하고 반응의 진동을 유도함으로써 자신의 괴물과 사실상 결합한다. [5장] - P427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괴물의 (오로지 그에게만 ‘그처럼 놀라운 비밀이 간직되어있는‘) ‘작가‘이자, 그리하여 ‘진정한 살인자‘이며 세상에 ‘죄’와
‘죽음‘을 풀어놓은 자이고, ‘여자 형제‘와 ‘어머니‘를 둘 다 근친상간으로 죽이는 최초의 키스를 꿈꾼 자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불결하고 운명적인 그는 아담이 아니라 이브가 아닌가? 사실상 타락의 이야기는 자신들이 무구한 아담이 아니라 타락한이브라는 사실을 여자들이 발견하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이처럼 자신이 여자이고, 따라서 타락했고 부적절하다는 여자아이의 무서운 발견은 프로이트의 개념, 즉 잔인하지만 은유적으로는 정확한 남근 선망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이리라. 분명 빅토르프랑켄슈타인이 (그리고 메리 셸리가) 이브, 아담, ‘죄‘, 사탄과맺는 다양한 관계에 거의 기이할 만큼 불안한 자아 분석이 함축되어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남근 선망을 암시할 것이다. - P435

자신의 역사가 필요한 셸리의 괴물은제인 오스틴이 보여준 현실적으로 무지한 여성뿐만 아니라 존밀턴이 정의하는 원형적 여성과도 매우 유사하다. - P441

괴물이 가부장적 사회의 여자처럼 이름이 없다는 결혼하지않은 채 위법적인 임신을 했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도『프랑켄슈타인』을 썼던 시기에 자신에게 이름이 없다고 느꼈을것이다)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 P446

셸리는 불결한 창조의 불길에서 괴물과 프랑켄슈타인, 자신의 고통을 극지의 얼음과 침묵 속으로 운반함으로써 이 셋의 고통을 어떻게든 잠재우고 있지만, 그녀는 결코 괴물-자아가 보여주었던 승화된 분노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고, 『프랑켄슈타인』이 구체화하고 있는 형이상학적 야망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 P454

최후의 인간이 보인 적대적이며 아이러니한 문학적 제스처는그 자신의 생애뿐만 아니라 그 작가의 생애도 해명해준다. 왜냐하면 역사 안에서 진정한 자리가 주어지지 않은 괴물의 마지막복수가 역사의 말살인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메리 셸리가 낳은 최초의 무시무시한 아이는 밀턴의 이브처럼 이 교훈을 처음부터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 P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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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2-08 2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완독 중이신 역사책 페이지 수에 비하면
다락방 미친은 한 손으로 휘리릭 넘길 정도의 분량 ^^

거리의화가 2022-12-09 08:49   좋아요 0 | URL
분량 자체는 그렇지만 저는 다락방이 읽기 훨씬 어렵네요^^ 얼른 으쌰으쌰해서 완독해야겠어요. 뒷부분에 조지 엘리엇이 많이 나와서 고민입니다ㅜㅜ
 

杂: 다양하다, 잡다하다
无聊: 무료하다, 재미없다
有趣: 재미있다
一阵子: 한참, 한동안
停: 멈추다, 정지하다
一般: 보통이다, 일반적이다
或者: 혹은, 아니면
剩下: 남다, 남기다

挺杂的。잡식성이야. 매우 다채로워.
听一阵子,停一阵子。한참 듣고 나면 한동안은 안 들어.
我去或者你去,反正必须有一个人去。내가 가든 네가 가든, 어쨌든 한 사람은 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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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페더에게 쿠엔토를 들려주는 페트라

A time when her language and thecolor of her skin could mean trouble. So, under a blanket ofstarry skies and piñon smoke, out of habit, she whispered herstories to me in Spanglish. Her own version, passed from hergrandmother, and her grandmother‘s grandmother-each ofthem a slightly different version depending on what was hap-pening in their world at the time.
I remember what Lita said about my stories. "Never beashamed of where you come from, or the stories your ancestors bring toyou. Make them your own."
I will never be a real storyteller now like Lita. But for Zeta-4, I decide to tell one more. And for Lita, I‘ll make it my own. - P122

Instead, I imagine I sit under a blanket of stars with Lita; somany scattered in its darkness, if you squinted the entire sky would fill with glitter.
Or I‘m curled around Javier, his soft GG Gang sweatshirtagainst my cheek, while I rub my finger over his constellationbirthmark.
Then I‘m with Dad, his arm around me, the smell of freshrain on the desert floor and rocks enveloping us.
Mom brushes my hair from my eyes and points toward adesert sage; in my imagination, a purple-winged fairy flits to-ward us.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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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C.H.베크 세계사 : 1870~1945 - 하나로 연결되는 세계 하버드-C.H.베크 세계사
에밀리 S. 로젠버그 책임편집, 조행복.이순호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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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세계는 좀 더 익숙한 장소가 되는 동시에 더 낯선 장소가 되었다. 사람과 물자의 교류 속도가 빨라졌고, 타지를 여행하고 묘사하는 매력은 인류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뚜렷했으나 새로운 정점에 도달했다(P13). 세계는 이 시기 더 가까워지면서 하나로 연결되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지역적으로 차이를 보였으며 한편으로는 이해와 소통이, 다른 한편으로는 의심과 거부 반응이 나타났다.

베크 세계사의 근대 국가는 두 버전으로 나뉜다. 먼저 리바이어던이 내놓은 국가의 개념을 초기 국가로 보고 1.0 버전으로 부른다. 그리고 1850년부터 1970년대까지의 시기를 2.0 버전으로 부르겠다라고 논한다. 명시적으로는 1945년까지로 나와 있으나 1970년대까지를 범위로 설정했다. 이는 1945년 2차 대전의 종식으로 탈제국, 탈식민이 종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해방은 한참을 이어서까지 진행되었다. 미소의 대결로 냉전이 격화되면서 체제와의 대결도 시작되었다. 체제의 경쟁은 이미 20세기 초부터 자유주의, 사회주의의 흐름이 진행된 바 있다.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 사이에 국가는 여러 방식으로 재탄생했다. 국가는 영토의 통합성을 위해 싸우고 중간계급들을 징집했으며, 영토를 공고히 하고 '유목민'이나 부족민을 복속시켰고, 전대미문의 전쟁으로 서로 대결했다. 국가는 폭력을 통한 변혁의 전망에 도취된 당원들이 가장 잔인한 지도자들을 실질적으로 숭배한 혁명 정당들을 실험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가는 정상 상태를 추구했고 지속적으로 강력해지는 경제의 힘들과 불안정한 균형을 이루려 했다. 물론 국가는 사상과 이해관계, 심지어 본능까지도 주입된 개인들과 공동체들, 정당들의 창조물로서 앞선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국가는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었던 정책들과 하위 기관을 통해 작동했다(P322).

1870년에서 1945년을 관통하는 특성들이 있다. 시간과 공간의 극적인 축소, 다양한 종류의 세계 네트워크로 빨라진 사람과 상품, 사상의 이동, 근대 국가와 제국주의 체제에서 서구가 장악한 헤게모니, 세계적인 것과 지역적인 것의 교차와 상호적 구성, 세계적 도시의 등장,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기술의 확산,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종족 차별주의 이데올로기의 힘(이에 대한 도전), 새로운 권위주의 형태들과 더 효율적인 살인 수단의 등장으로 거의 모든 대륙에 가져다준 폭력들이다.

퍼시 비시 셸리는 '세계는 과거에 싫증을 낸다'고 했다. 이 시기를 살펴 보기 전에 이전의 1760년부터 1850년의 시기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 시기를 주도한 유럽에는 정치가 새로운 원리가 되고 권리 개념이 등장하였으며 과학의 등장에 따른 종교적 권위 영역이 재규정되었다. 또 행정의 합리화, 지리적인 재구성, 국제법이 정리되었다. 1850년 이후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서 유럽의 정치적 폭력에 따른 혼란이 발생하고 이후 전쟁과 혁명, 대량 실업의 발생, 힘을 갖춘 제국들이 등장하였다.

1850년에서 1880년의 발전은 세계 전역의 국가 조직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켰다. 국가는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고 고용을 촉진하며 이민의 흐름이 가속화되었다. 1870년대 유럽 전역의 도시에 인간 동물원이 세워졌다. 동물원은 문명의 위계 질서를 전제로 하였고 관람객은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하고 증명했다. 전시 대상인 원주민 등은 마치 배우처럼 서비스직에 종사했다.

20세기 세계 각국은 국내의 분쟁과 혁명, 경기 침체, 전쟁에 대처하는데 주력했다. 이런 예외적 상황과 비상 사태가 발생할 때 법 질서가 시민권을 보호하는 조항을 갖고 있음에도 각국은 적절히 대처할 수 없었고 일시적으로 정지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런 예외적 상황에서 국가는 탄생했다. 교육과 기간 시설에 투자하고 경제를 규제하는 오늘날의 복지 국가 방식의 국가, 전쟁과 혁명 등의 사회적 소요에 대응하고 식민지를 통치하면서 이득을 얻거나 개발과 주권을 동시에 진행하는 전쟁 국가의 모습으로 분화되어 나타났다.

제국 체제가 등장하면서 식민주의에 대항하는 투쟁도 벌어졌다. 토지, 자원을 둘러싼 쟁탈과 식민지 전쟁, 제국주의적 평정을 위한 종군이 이어졌다. 제국은 상이한 물질 조건과 사회적 기회, 문화 역량을 결정할 때 핵심 역할을 수행한 강력한 동인이 되었다. 제국의 정치인들, 식민지 행정관들이 재규정한 제국의 범위는 국경이 되었다. 유럽의 아프리카 지배와 터키 공화국, 청 제국, 러시아 제국, 서유럽 국가의 국경이 정해졌다. 에스파냐, 포르투갈, 네덜란드의 세력이 약화되고 미국과 일본의 세력이 발흥하였다. 제국 체제는 영토와 주권, 전략적 이점, 채굴 가능한 자원, 문화적 영향력 획득을 위한 경쟁으로 이루어졌다. 지역적인 것은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우리는 식민지의 모습을 반영하지 못하는 제국의 역사들을 경계한다. 식민지가 어떻게 그리고 왜 제국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질서의 공동 저자인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충분하다고 믿기 때문이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한 과정이 토착민 사회에서 전 세계적 저항과 식민지 해방에 함의를 갖는 실천과 고유의 주권 관념을 발전시킨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 이 시기 제국적 세계에 대한 자존적인 설명 가운데 식민지 '현지'나 제국 본국의 제국 비판자들이 수행한 작업을 무시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 작업이 1945년 이전 제국들이 세워 유지하려 한 이전의 세계적 질서를 만들고 종국에는 해체하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P346).

속박된 남녀들의 저항, 인권을 둘러싼 계몽주의적 논의, 자유민 노동과 노예노동 간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논의는 이렇듯 권력관계의 틀 속에서 인간의 이동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반면에 유럽의 정주형 대토지 소유자와 그들이 이주한 사촌인 (나중에는 미국 출신 소유주들까지 가세한) 식민지의 플랜테이션 농장 소유주들은 될 수 있으면 값싸고 유순한 노동자를 공급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문제는 아프리카인의 노예화가 불가능해지면 유럽의 하층민 혹은 필요할 경우 아시아의 식민지화된 지역 사람들을 억압해 아열대 지방이나 열대 지방으로 끌어올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국가 주도로 계약 노동자들을 동원하거나 유럽의 경우 정부가 이주민의 뱃삯을 지원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민간 분야에서 납세자에게 비용이 전가되게 하는 내용의 로비가 시작되었다. 계급적 이해관계와 계급투쟁, 인종화와 저항, '인간의 조건'에 대한 사고방식의 재정립은 이렇듯 이주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P500).

국가는 19세기 말 이후 여권이 도입되고 이주민의 출입국 장치가 마련되어 이주 제도 수립에 따른 국가의 역할이 늘어나면서 중요한 분석적 도구가 되었다. 이주는 이주민의 결정에 따른 자유 이동과 강제 이동, 지방 이동과 대륙 이동, 계절 이동(주기적 또는 일시적)과 영구 이동, 이주 목적지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 성별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모든 것을 국가적으로 설명하려 한 시도는 다민족 제국 내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식민지 지역은 식민주의자, 피식민지인 또는 백인과 유색인의 이분법으로 분류해야 했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큰 전쟁으로 난민과 전쟁 포로, 강제 노동자, 전쟁 전 제국의 식민주의자 본국 송환이 필요한 병사 등이 생겨났다. 그러나 고국이 소멸했거나 전후 신정부가 들어서서 귀국이 어려운 경우, 생명이 위험하여 재정주가 필요한 병사들에 따른 이주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망가진 경제의 재건에 필요한 노동자들의 이주도 자연스레 생겨났다. 탈식민지화로 야기된 다양한 형태의 이주도 있었다.

인간의 역사와 사람들이 살았던 환경이 이 첫 번째 근대 세계화 시대의 결과를 결정했다. 역사적으로 교류를 제한했던 지역과 사람들이 상품 사슬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해방된 세계적 힘들은 지금도 여전히 메아리친다. 윌리엄 포크너는 이렇게 경고한다. "과거는 절대 죽지 않으며, 심지어 지나가지도 않았다.(P919)"

세계 무역은 1914년까지 팽창했고 1920년대는 정체했고 1930년대 대공황 여파로 급감하였다. 이로 인하여 각국은 자유주의와 보호무역주의, 산업주의와 농업주의, 공익과 사익 사이의 논쟁을 벌이게 된다. 상품의 흐름과 가격 통제 능력을 갖춘 시장의 힘은 시간과 장소에 따른 상품 사슬에 영향을 미쳤다. 상품은 상품화 과정의 결과, 생산자와 가공업자, 운송업자, 수출업자, 도매업자, 소매업자가 포함되었다. 그러나 세계 시장이 통합되었다고 해서 상품의 이용 방식이 한결 같지는 않았다. 나라별 문화적인 차이가 존재했고 농촌과 도시 간의 격차도 컸기 때문이다. 경제 제도와 기간 시설이 출현함으로써 대규모 무역 투자와 국제적 합의가 가능해지면서 급격한 팽창이 일어날 수 있었다.

19세기 말 교통, 통신, 금융, 통상에 혁명이 일어나 충성심과 감수성에 변화가 일어나고, 공간적 거리에도 한계가 생기다 못해 심지어 거리 자체가 소멸된 현상은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중엽에 이르는 동안 전 세계, 갈수록 몸집이 불어난 국제적이고 초국적인 네트워크들의 탄생을 불러왔다. 지금은 주로 세계화로 불리는 현상으로 향해 가던 그 국면에 크리스토퍼 앨런 베일리는 적절하게도 ‘대가속‘이라는 호칭을 부여했다. 베일리는 자신보다 앞서간 다수의 역사가가 이 시대와 당대의 ‘근대‘를 연 것이 유럽인이고, 싫든 좋든 근대의 특징을 제국, 교역, 문화적 패권의 새로운 구조들을 통해 다른 지역들로 전해 준 것 역시 유럽인이었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지금의 세계를 "지구전역에 도달하는 중첩된 네트워크들의 복합체인 동시에 네트워크들 속에 게재된 거대한 힘의 차별성도 인지한 복합체로도 인식했다. 그러면서 그는 유럽인들이 "기존의 범세계적 네트워크"를 종종 "자신들의 뜻에 굴복시킬 수는 있었지만, "그들에게 그럴 수 있는 힘, 결속력, 활용성, 광범위에 걸친 실효성 있는 네트워크와 열망을 갖게 해 준 것"은 "서구의 지배와 힘에 내포된 기생적, ‘네트워크화된‘ 특성이었다."고 썼다(P923~924).

초국적 연대는 거의 예외 없이 보편주의와 특수주의 사이에 긴장을 조성한다는 것, 그리고 초국가적·국가적·제국적·지방적 영역이 별개의 장소가 아니라 대다수 사람이 동시에 모여 사는 장소들이라는 관점이다. 범세계적 흐름과 개인도 그안에서 지방화된 변이를 생성해 내고, 지방화된 변이는 역으로 범세계적 흐름과 개인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전송선들이 다양한 방향으로 흐르다가 서로 간에 마찰을 일으키면서 상호 구성적 존재임을 드러내듯이 말이다(P1003).
서구 근대는 근대성과 진보, 자유의 확대가 이성과 과학의 목적론적 승리라 보았다. 하지만 이성과 인종학의 결합은 자유주의 대신 비합리적인 극단의 시대이자 전체주의를 가져왔다. 선형적 목적론을 중심으로 편제된 그 시대의 오래된 역사는 진보라 불리는 진화적 미래를 지향하는 과학과 이성의 합리적 문화를 가진 서구 제국의 범세계적 확산을 강조하는 특징을 지녔다. 그런데 그 관점을 가진 서사 구조도 근래의 인류학자와 역사학자들의 도전에 직면했다(P1091).

초국적 공간 내에서 소비자 주도의 문화 특성들이 혼합된 방식은 여러 가지로 묘사될 수 있다. 하나의 문화를 잃는 동시에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동화assimilation로도 표현될 수 있고, 타 문화 요소를 선택적으로 수용해 새로운 배합 문화를 만들어 내는 혼성화hybridity로도 표현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보다는 언어학에서 쓰는 부호 전환code-switching이라는 용어를 쓰려고 한다. 그것이 초국적 대량 소비자 이미지들로 구성된 문화에서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일들을 가장 적절하게 대변해 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국어 능통자들이 특정 시기에 생소한 언어의 낱말들을 들먹이며 상대방을 혼란시키는 전략을 쓰듯, 소비자들 또한 어느 주어진 시기에 상이한 문화적·정치적의미들을 뭉뚱그려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이는 부호 전환의 전략을 쓸 수도있는 것이다(P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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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2-08 12: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 담달 2023년 이달상에 뽑힌다에 제 🖐 을 ^^

2022-12-08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2-12-08 16: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익숙함과 낯섬의 공존 !

진정한 글로벌리즘이 개시된
시기가 1870년대라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과연 기술의 발전이 인류에게
긍정적인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거리의화가 2022-12-08 17:45   좋아요 1 | URL
그렇죠. 근대를 규정하는 시기가 세계사마다 약간씩은 차이를 보이는데 시작점과 종료점이 달라지는 것을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긍정적, 부정적 측면 둘 다 존재했다고 봐야할 것 같아요.
 

5부 ~ 이어서

4,5장

전문성의 회로를 구축한 사람들은 전 세계의 견해를 취합할 수 있고, 현지화된 ‘사실들‘을 비교, 시험, 확인하며 상호작용도 이루어지는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이용해 자신들의 전문성을 널리 전파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전문성의 회로는 얼핏 식민주의를 행한 서구인들의 전유물처럼 보였지만, 알고보면 과학과 전문 지식을 통해 진보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지도자와 지식인들은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국적 과학에 대한끌림도 기술적 발전이 앞선 적에 맞서 자기방어를 하려는 의식과, 보편적 과학 프로젝트의 개념에 매료되는 것, 그 두 가지 모두에서 나올 수 있었다. - P1044

초국적 전문인 공동체들에 의존하고 그들의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는범세계적 현상으로, 동서양 담론의 경계를 넘어서고 자본주의, 기업주의, 사회주의, 국가주의 (혹은 ‘국력 강화‘가 조금 변형된 것)라 불러도 좋을 정강들 사이의 경계마저 흐리게 한 일종의 ‘공유 개발 프로젝트shared developmentalist project‘였다. - P1045

육지측량과 과학적 작업은 19세기 말 국민국가들의 야망이 전 세계를 알기 쉽게 표현할 방법을 찾던 전문성 담론과 뒤엉키면서 급속도로 늘어났다.
광범위한 삼각측량에 수반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정부뿐이었고, 체계화되고 단일한 통계적 지식 개발에 강한 흥미를 보이는 것도 국민국가뿐이었다. - P1050

세속적 과학자들은 그런 식으로 인간사와 자연사를 조명했다. 그러다 때로는 그들의 활동이 유적지 약탈, 유물의 전용, 지정학적 위치 설정은물론, 심지어 학문의 이름으로 약장수 노릇을 하는 행위로까지 이어졌다. - P1052

세계 어느 곳에서 출현하든 산업화와 통상이 도시적 삶의 가속화를 촉진하고, 도시들을 결합시켜 주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새로운 ‘글로벌 도시들‘이 이동 중에 유입되었거나 재류 노동자, 상인, 기업인으로 주변 지역의 인구를 늘려 준, 다양한이주민의 물결로 강조된 세계주의cosmopolitanism를 만들어 냈다. - P1074

도시의 ‘세계성’과 ‘지방성‘은 다른 초국적 운동과 마찬가지로 대립적이기보다는 상호 구성적 관계에 있었다. 마이클 스미스Michael Smith가 "초국적 도시화transnational urbanism"라 부른 것에도 이주민, 난민, 운동가, 기업가, 단체들을가진 도시들, 다시 말해 초국적 영역을 만들고 시행한 지방화된 곳으로서의도시들을 가장 두드러지게 묘사했다. 201 빌려 온 형태, 지방적 관습, 다양한 초국적 네트워크의 결합은 이렇듯 비록 지역에 따라 실행된 방식은 달랐지만 모든 곳의 도시 생활에 영향을 주었다. 도시적 초국주의가 이 단락을 관통하는 주제의 좋은 사례가 되어 차별화된 공통성 속에서 표현방식을 찾아낸 것이었다. - P1078

그 시대의 다른 전문성 네트워크와 마찬가지로 비록 보건 전문성의 흐름은인종과 문화의 서열을 주장할 때도 있었지만 보건 전문가들도 결국은 제국주의, 민족주의, 지역적 열망, 초국적 이상에 다방면으로, 그리고 또 종종 동일하게 기여한 것이 된다. 반면에 기금의 수혜자들 또한 그 방법을 무시하거나, 저희 목적에 맞게 전문성의 흐름을 바꾸거나 적합시켰고, 그에 따라 지역이받은 영향에도 큰 차이가 났다. - P1087

같은 맥락에서 19세기 말의 한one 세계주의, 초국적 결합, 그리고 과학과공학의 비정치적 네트워크에 가졌던 도취감이 설령 제1차 세계대전 뒤에 잦아들었다 해도, 상호 연결된 초국적 네트워크들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던 것은 물론 심지어 번영을 이루기까지 했다. 과학, 공학, 치료 공동체들 내에 구축된 이 ‘연성‘ 네트워크들은 케이블, 전화, 철도, 원양 정기선의 ‘경성‘ 네트워크들 못지않게 세계 전역에 확고히 걸쳐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비록 그 흐름들이 전달한 의미는 복잡하고 때로 모순적이기도 했지만, 초국적 지식 공동체가 범세계적으로 미친 범위와 중요성은 폭넓은 공통성과 지방화된 변이둘 다를 만들어 내면서 발전을 지속해 갔다. - P1089

선형적 목적론을 중심으로 편제된 그 시대의 오래된 역사는 진보라 불리는 진화적 미래를 지향하는 과학과 이성의 합리적 문화를 가진 서구 제국의범세계적 확산을 강조하는 특징을 지녔다. 그런데 그 관점을 가진 서사 구조도 근래의 인류학자와 역사학자들의 도전에 직면했다. - P1091

대개는 정부에 고용된 채 과학적 발견에 대한홍보도 열심히 하고, 식민주의적 영토권 주장도 서슴지 않았던 19세기의 탐험가들과 달리 20세기 초의 새로운 탐험가들은 팔릴 수 있는 이야깃거리들을찾아다녔다. - P1093

오락의 흐름은 오히려 초국적이면서 때로는 - P1103

동시적으로 퍼져 나갔다. 신문, 이주, 여행, 그다음에는 영화가 예능인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것이 전 세계로 확대되어 서로 간에 모방하고 전보다 더 호화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 이득을 취했다. - P1104

소설, 선정적 언론, 영화 속의 모험가들은 전 세계 일반 대중에게 좁아지는 세계의 환상을 심어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다수의 사람에게 여행의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익숙한 환경에서 탈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낯설어 보이는 요소를 인지하는 방법도 알려 주었다. 값싸고 빨라진 교통체계 또한 여행의 기대감을 높여 적어도 유럽과 미국에서는 대중 여행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 P1117

초국적 공간 내에서 소비자 주도의 문화 특성들이 혼합된 방식은 여러 가지로 묘사될 수 있다. 하나의 문화를 잃는 동시에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동화assimilation로도 표현될 수 있고, 타 문화 요소를 선택적으로 수용해 새로운 배합 문화를 만들어 내는 혼성화hybridity로도 표현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보다는 언어학에서 쓰는 부호 전환code-switching이라는 용어를 쓰려고 한다. 그것이 초국적 대량 소비자 이미지들로 구성된 문화에서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일들을 가장 적절하게 대변해 주는 말이기 때문이다.252 다국어능통자들이 특정 시기에 생소한 언어의 낱말들을 들먹이며 상대방을 혼란시키는 전략을 쓰듯, 소비자들 또한 어느 주어진 시기에 상이한 문화적·정치적의미들을 뭉뚱그려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이는 부호 전환의 전략을 쓸 수도있는 것이다. - P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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