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획> 현대 중국의 공간과 이동 - 싼먼샤댐 건설과 중국 사회주의
싼먼샤댐은 중국 허난성 싼먼샤시와 산서성, 섬서성에 걸쳐 있는 곳으로 1949년 국가 설립 이후 황하에 건설된 최초의 댐이다.
기존에도 이 지역은 범람 등으로 문제가 많았던 곳이었다. 1957년 4월~1961년 4월까지 기본 공사를 완료하였으나 상하류에 대량의 토사가 침적되고 대규모 경지가 수몰 위기에 처하여 이민을 초래하는 문제를 일으킨다.
따라서 1차(1957년~1961년), 2차(1965년~1979년)에 걸쳐 보수공사가 이어진다.
사회주의 체제에 시대적 배경까지 더해져 국가 주도로 댐 건설과 향후 과정이 전개되었다고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요지다. 황하의 범람 문제, 필요한 곳에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용수 시스템이 이 곳에는 반드시 필요했다. 다만 중앙정부는 댐 건설로 단 번에 끝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기본 건설만으로 황하 범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또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갈등은 지속되었으며 이민은 한 차례로 끝나지 않고 재이민과 외부 이민이 아닌 같은 성 내부 이민으로까지 이어지며 갈등이 2000년대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댐이 건설되는 시기와 보완공사가 진행되는 시기는, 반우파운동(1957~1959), 대약진운동(1958~1960), 문화대혁명(1966~1976) 등 정치운동과 시기적으로 상당 부분 겹친다. (…) 문제는 이러한 사실에 기초한 ‘전체주의론’적 인식은 사회주의 시기 중국의 전체상을 왜곡시킨다는 점이다. - P202
‘호구제도’는 중공업 위주 산업발전 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자본’을 농촌 부문에서 추출하기 위해서 1958년 1월부터 시행된 제도이다. 문제는 호구제도가 모든 중국인을 농촌호구와 도시호구로 구분하여 호구변경을 원칙적으로 불허하며, 농촌호구 소지자의 도시로의 자유로운 이주도 엄격히 금지하는 것을 핵심내용으로 하므로, 사회주의 시기 중국에 대한 ‘고립성’과 ‘폐쇄성‘이라는 인식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싼먼샤댐 건설 과정에서는 대규모 이민이 발생했고, 이는 ’국가 주도 프로젝트 이민‘이라고 규정되었다. - P206
‘국가의 사회에 대한 전일적 지배, 중앙의 지방에 대한 전일적 지배’의 상징인 정치운동이 일상이었던 시대에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 그리고 지방정부 사이에도 이견과 갈등이 존재했다는 사실로써, 사회주의 시기 중국의 전체상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 P210
정치학자 제임스 스콧(James C. Sctt)은 ‘하이 모더니즘’을 ‘국가가 과학기술적 진보, 생산 증대, 인간 필요에 따른 만족의 증가, 자연에 대한 정복, 자연법칙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 상응하는 사회질서에 대한 합리적 설계 등과 관련해서 가지는 매우 강력한 자기 확신"으로 규정한다. 그는 이러한 하이모더니즘을 추진하는 주체는 권위주의 국가의 관료와 지도자인데, 이들은 거대한 댐, 중앙 집중화된 통신 및 교통 허브, 대단위 농장, 격자형 도시‘와 같은 기획 및 사회적 조직을 선호한다고 주장한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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