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辛卯】四十五年魏人范雎亡入秦說秦王曰以秦國之大士卒之勇以治諸侯譬如走韓盧而搏蹇兎也而閉關十五年不敢窺兵於山東者是穰侯爲秦謀不忠而大王之計 亦有所失也王跽曰願聞失計睢曰夫穰侯越韓魏而攻齊非計也今王不如遠交而近攻得寸則王之寸也得尺則王之尺也今夫韓魏中國之處而天下之樞也王若欲霸必親中國以爲天下樞以威楚趙楚趙皆附齊必懼矣齊附則韓魏因可虜也王曰善乃以范睢爲客卿與謀國事

위나라 사람 범저가 진나라에 가서 진앙에게 유세하기를 진국의 강대함과 사졸의 용맹함을 가지고 다른 제후들을 다스리는 것이 비유하자면 한로(사냥개의 이름)를 달리게 하여 절름발이 토끼를 잡는 것과 같거늘 관문을 닫은지 15년에 감히 산동에서 병사를 엿볼 수 없었던 것은 양후(진나라 재상)가 진나라를 위하여 계획하는 것이 충성스럽지 못하고 그런 재상을 둔 왕도 잘못된 계책을 부려서 그런 것이다.
양후가 말한 한, 위나라를 넘어서 제나라를 공격한다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니다. 왕께서는 원교근공(먼 곳에 있는 나라하고는 사귀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펼치는 것이 낫습니다. 지금 한, 위나라는 대륙에 한 가운데 있고 천하의 중심이니 그 나라들을 가까이 하여 초, 조나라를 위협한다면 그들이 따르게 될 것이니 제나라는 반드시 두려워할 것입니다. 제나라가 따르게 되면 한, 위나라도 사로잡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범저의 말을 듣고 그를 객경으로 삼아 나라 일을 함께 도모하게 하였다.

수가의 부하였던 범저. 제나라로 사신으로 갔던 범저. 사신의 임무를 못하고 있던 수가, 범저에게 눈독을 들였던 제나라. 돌아와서는 범저를 초주검이 될 정도로 때려서 방치. 지키던 수하를 꼬여서 탈출하여 진나라로 간 범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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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등과 같은 기마민족이 ‘철의 문화‘를 각지에 전파한 사실은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의 철에 기마민족의 그림자가 그렇게 짙게드리워지지는 않은 듯하다. 만약 기마민족이 철을 전파했다면 중국의 철의 고향은 북방이 될 터였지만, 실제로는 오, 월, 초등 남방이 철의 선진지역이었다.
세계에서 철의 고향이 오리엔트라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그 제조방법은 단철법(鍛鐵法)이었다. 두드려서 불리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중국의 철은 처음부터 주철법(鑄鐵法)으로 만들어졌다. 유럽에서 주철법이 시작된 것은 중세(14세기 무렵)부터였다고 한다. - P32

춘추 시대의 제후는 주나라로부터 토지를 받은 봉건영주들이었다. 농업기술의 진보로 새로이 토지를 개간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은 주나라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직접 만들어 내었다.
새로이 개간된 땅은 영지의 변경이었을 테니, 영주 스스로가 가는 경우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신하들의 일이었다. 명령을 받아 하는경우도 있었지만 자발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 이익을 가져다줄 새로운 토지가 생기는 일은 담당한 가신의 공적이니 그들이 권리를주장하는 것도 당연했다.
제후를 섬기는 유력한 신하들이 더욱 유력해져서 드디어는 군주를 능가하게까지 되었다. 이것이 전국 시대의 양상이었다. - P33

위나라의 문후 밑에 모인 사람들은 자하를 비롯하여 유 - P48

가 출신의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스승 격인 세 사람을 제외하면, 유가 출신이기는 하지만 유가 출신자답지 않은 사람들이많았던 듯하다. 예를 들어서 오기는 증자의 문하생이었지만, 그의 품행을 살펴보면 유가적인 면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유가에서 파문을 당했다. 누가 분류를 하더라도 오기는 병가(兵家)라고 할 수밖에 없다.
법률, 경제, 산업에 열성적인 것은 법가(法家)라 불리던 사람들이었다.
이극과 서문표는 유가인 자하의 문하생이었지만, 그 업적을 보면 법가라고 분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들은 전향한 사람들이었다.
위나라의 문후가 구한 것은 부국강병에 당장 도움을 줄 수 있는 실무가였다. 먼저 몸을 닦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가는 눈앞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가 없다. 문후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서 그들은 전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또 전향을 한 사람이 아니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나라 직하의 학사들은 위나라 문후 밑에 모였던 무리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실무가가 아니었다. - P49

직하의 백가쟁명 시대는 중국의 학문, 사상의 황금시대였다고 할 수있을 것이다. 논쟁으로 인해서 학문과 사상은 한층 더 깊어졌으며, 또 새로운 것도 태어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나라 위왕과 선왕의 공적은 침략 당했던 땅을 되찾고 제나라의 위광을 천하에 알린 것보다 직하에 학자를 모아 놓고 백가쟁명을 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높이 평가되어야 할것이다. - P58

이 두 사람은 서로 양극에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같은 내용을 주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맹자는 인간의 성(性)은 원래 선한 것이며, 악해지는것은 후천적인 환경이나 습관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배제하면 인의(仁義)가 나타나 사람은 모두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순자는 후천적인 것이야말로 선이며, 그것으로 인해서 원래 악인 인간을 개조하면사람은 모두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순자가 후천적인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의 머릿속에는 유가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예(禮)‘가 있었다. 성선설에 따르자면, 자연 그대로 두는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그런데도 성인은 어째서 ‘예‘를 정한 것일까? 예는 인위적인 것이다. 성인은 틀림없이 인간을 자연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예를 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성은 원래 악한 것이 되는 셈이다. 이것이 성악설의 기본 사상으로 순자가 얼마나 예를 중시했는지를 알 수 있다. - P74

맹자는양과 묵의 도가 끊기지 않으면, 공자의 도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한탄했다.
지금 우리들은 도가라고 하면 노자와 장자의 이름을 떠올리지만, 맹자 시절에는 양주가 대표자였다. 하지만 이 사람의 저서도 전기도 남아있지 않다. 『맹자』나 『한비자』, 또는 『열자(列子』 등에 흩어져 있는 글을통해서 그 윤곽을 희미하게나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노자의 제자였다고도 하며 실재하지 않았던 인물이라는 설도 있다. 양주에 대한 것으로는 『맹자』 「진심편」의 다음과 같은 구절이 유명하다.
양자양주는 자신을 위해서 행동을 취한다.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한다 할지라도 하지 않는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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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아이들." 하고 프랑수아즈가 철책에 이르자마자벌써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가엾게도 저 젊은이들은 초원의 풀잎처럼 베이겠죠. 생각만 해도 너무 충격적이에요."
하고 ‘충격을’ 받은 가슴에 손을 얹고 덧붙였다.
"참 근사하지 않아요? 프랑수아즈 아주머니, 목숨을 아끼 - P159

지 않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니?" 하고 정원사는 일부러 프랑수아즈를 ‘흥분시키려고‘ 말했다. 그의 말은 헛되지 않았다.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고요?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면 그럼 뭘 아껴야 하죠? 하느님께서 결코 두 번 주시지 않는 단 하나의 선물인데, 그런데 슬프게도! 오, 저런 저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는 건 정말이에요! 이 눈으로 1870년에도 봤지만, 저들은 저 한심한 전쟁에서도 죽는 걸 조금도 겁내지 않았어요. 미치광이나 다를 바 없죠. 교수형에 매달 밧줄만큼도가치가 없는 놈들이에요. 인간이 아니라 사자인걸요."(프랑수아즈가 인간을 사자에 비교하는 것은 그녀는 사아자라고 발음했다. 전혀 칭찬이 아니었다.) - P160

훗날 내가 책 한권을 쓰기 시작했을 때조차도, 몇몇 문장의 질이 계속해서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하게 할 만큼 충분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때면, 나는 베르고트의 작품에서 내가 쓰려고 하는 것과 유사한 문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문장을 즐기는 것은단지 그의 작품을 읽는 순간뿐이었다. 왜냐하면 나중에 나 자신이 직접 그 문장들을 써 나가면서부터는 내 생각이 지각한것을 정확히 반영하는 데에만, ‘닮게 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내가 쓰는 것이 과연 내 마음에 드는지 어떤지는 물을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정말로 좋아한 것은 그때 내가 쓴 것과 같은 문장이나 그런 관념 들뿐이었다. 나의 불안하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노력은 그 자체로 사랑의 표시였으며, 기쁨은 없지만 그래도 심오한 사랑의 표시였다. 그리하여 갑자기 다른 사람의 작품에서 그런 문장을 발견하면, 다시 말해 양심의 가책이나 엄격한 잣대를 가질 필요 없이, 또는 번민할 필요도 없이 그런 문장을 발견하면, 마치 요리사가 한 번은 요리를 하지 않아야 비로소 음식을 음미할 시간을 얻는 것처럼, 그런 문장들을 좋아하는 취향에 즐겁게 자신을 맡기는 것이었다. - P173

일반적인 우리 의견들의 박물관에서는, 새로운 작가의 특이한 모습에서 ‘위대한재능‘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델을 찾아내기까지는 아주 오랜시간이 걸린다. 그 모습이 너무도 새롭기 때문에, 우리가 재능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것에 독창성, 매력, 섬세함, 힘 따위의 이름을붙인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는 이 모든 것이 바로 재능이라는걸 알게 된다. - P178

한 존재가 어떤 미지의 삶에 참여하고 있어서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그 미지의 삶 속으로 뚫고 들어가게 해 줄 수 있다고 믿는 것, 바로 이것이 사랑이 생겨나기 위해 필요한 전부이며, 사랑이 가장 중요시 하는 것으로,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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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樂毅圍二邑三年未下或讒之於燕昭王曰樂毅智謀過人伐齊呼吸之間剋七十餘城今不下者兩城爾非其力不能拔欲久仗兵威以服齊人南面而王爾昭王於是置酒大會引言者斬之遣國相立樂毅爲齊王毅惶恐不受拜書以死自誓由是齊人服其義諸侯畏其信莫敢復有謀者
頃之昭王薨惠王立惠王自爲太子時嘗不快於樂毅田單聞之乃縱反間曰樂毅與燕新王有隙畏誅而不敢歸以伐齊爲名齊人唯恐他將來卽墨殘矣燕王已疑得齊反間乃使騎劫代將而召樂毅毅遂奔趙燕將士由是憤惋不和田單乃身操版鍤與士卒分功妻妾編於行伍之間盡散飮食饗士令甲卒皆伏使老弱女子乘城約降燕軍益懈
田單乃收城中得牛千餘爲絳繒衣畫以五采龍文束兵刃於其角而灌脂束葦於其尾燒其端鑿城數十穴夜縱牛壯士五千人隨其後牛尾熱怒而犇燕軍燕軍大驚視牛皆龍文所觸盡死傷而城中鼓譟從之老弱皆擊銅器爲聲聲動天地燕軍大敗走齊人殺騎劫追亡逐北所過城邑皆叛燕復爲齊齊七十餘城皆復焉乃迎襄王於莒入臨淄封田單爲安平君

○ 田單將攻狄往見魯仲連仲連曰將軍攻狄不能下也田單曰臣以卽墨破亡餘卒破萬乘之燕復齊之墟今攻狄而不下何也上車弗謝而去遂攻狄三月不克田單乃懼問魯仲連仲連曰將軍之在卽墨坐則織蕢立則杖鍤爲士卒倡當此之時將軍有死之心士卒無生之氣所以破燕也今將軍東有夜邑之奉西有淄上之娛黃金橫帶而騁乎淄澠之間有生之樂無死之心所以不勝也田單曰單之有心先生志之矣明日乃厲(勵)氣循城立於矢石之所援枹鼓之狄人乃下

악의를 음해하려는 세력에 대해 연 소왕은 그 자를 악의가 보는 앞에서 내쳐서 다시는 도전하는 이가 없게 했다.
연 소왕이 죽고 나서 아들인 혜왕이 올랐을 때 전단이 간교한 말을 부려 왕을 혹하게 하여 기겁으로 하여금 장수가 되게 하고 악의는 제나라로 달아나게 된다. 연나라 군사들은 해이해진 상태에서 천여 마리의 소에 붉은 비단옷을 걸치고 소 뿔에 병기와 칼날을 묶은 뒤 기름을 부은 갈대를 소꼬리에 묶어 그 끝에 불을 붙여 놓고 연나라 군대로 달려나게 한다. 이 때문에 연나라에 뺏긴 70여의 성이 모두 제나라에 돌아오게 된다.
전단이 북쪽 오랑캐를 공격하여 세 달이 되어도 함락시키지 못하자 노중연에게 조언을 얻은 뒤 마침내 북쪽 오랑캐를 항복시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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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리 주위 사물의 부동성은 그것이 다른 어떤 것이아니라 바로 그 사물이라는 확신에서, 그리고 그 사물과 마주한 우리 사유의 부동성에서 연유하는지도 모른다. - P20

습관! 능숙하면서도 느린 이 조정자는, 잠시 머무르는 숙소에서 몇 주 동안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다가, 우리가 찾아내면 행복해지는 그런 것이다. 습관의 도움 없이 정신이 가진 수단만으로는 우리의 거처를 살만한 곳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 P24

우리의 사회적 인격은 타인의 생각이 만들어 낸 창조물이다. "아는 사람을보러 간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아주 단순한 행위라 할지라도,
부분적으로는 이미 지적인 행위다. 눈앞에 보이는 존재의 외양에다 그 사람에 대한 우리 모든 관념들을 채워 넣어 하나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전체적인 모습은 대부분 그 사람에 대한 관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관념들이 그 사람의 두 뺨을 완벽하게 부풀리고, 거기에 완전히 부합되는 콧날을 정확하게 그려 내고, 목소리 울림에 마치 일종의 투명한 봉투처럼 다양한 음색을 부여하여, 우리가 그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발견하는 것은 바로 그 관념들인 것이다. - P43

내가 언제나 슬픈 마음으로 올라가는 이 가증스러운계단에서는 바니시 냄새가 났다. 이 냄새는 내가 매일 저녁마다 느끼는 그 특별한 슬픔을 흡수하고 고정해, 이런 후각적인것에 대해 별 볼일 없는 내 지성보다는 내 감성에 더 잔인하게느껴지는 것이었다. 마치 잠을 자면서 느끼는 치통을, 우리가이백 번이나 계속해서 구하려고 애쓰는 물에 빠진 소녀라고지각하거나,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몰리에르의 시구절로 지각하다가, 잠에서 깨어나면 우리 지성이 치통이라는 생각으 - P58

로부터 모든 영웅적인 행위나 시 운율에 대한 속임수를 제거함으로써 커다란 안도감을 주는 것과도 같다. 그런데 이런 안도감과는 반대로, 내 방에 올라가야 한다는 슬픔은 계단 특유의 바니시 냄새를 흡입함으로써 정신적인 침투보다 더 독성이 강한 - 아주 빨리, 거의 순식간에, 갑작스럽고도 엉큼하게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 P59

나는 켈트족의 신앙이 아주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신앙에 따르면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은 어떤열등한 존재나 동물,식물 혹은 무생물 속에 갇혀 있어, 우리가 우연히 나무 곁을 지나가거나, 그 영혼의 감옥인 물건을 손에 넣는 날까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잃어버린 존재가 된다. 그러다 그날이 오면영혼은 전율하고 우리를 부르며,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는 순간 마법이 풀린다고 한다. 우리 덕분에 해방된 영혼은 죽음을정복하고, 우리와 더불어 살기 위해 돌아온다.
우리 과거도 마찬가지다. 지나가 버린 과거를 되살리려는노력은 헛된 일이며, 모든 지성의 노력도 불필요하다. 과거는우리 지성의 영역 밖에, 그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우리가 전혀 생각도 해 보지 못한 어떤 물질적 대상 안에 또는 그 대상이 우리에게 주는 감각 안에 숨어 있다. 이러한 대상을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우연에 달렸다. - P85

정신이 진실을 발견해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매번 정신은 스스로를 넘어서는 어떤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심각한 불안감을 느낀다. 정신이라는 탐색자는 자기 지식이 아무 소용없는 어두운 고장에서 찾아야만 한다. 찾는다고? 그뿐만이 아니다. 창조해야 한다. 정신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어떤것, 오로지 정신만이 실현할 수 있고, 그리하여 자신의 빛 속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과 마주하고 있다. - P87

결국 우리가 되돌아가는 곳은 항상종탑이었고, 종탑이 언제나 모든 것을 지배했다. 종탑은 예기치 않은 뾰족한 봉우리로 마을 집들을 불러내면서, 마치 수많은 인간 속에 몸을 파묻어도 내가 결코 혼동하는 일이 없는 신의 손가락처럼 내 앞에 모습을 내밀었다. 오늘도 지방 대도시나 파리의 잘 모르는 거리에서 길을 묻는 나에게, 한 행인이가야 할 길을 알려 주면서, 성직자 모자처럼 뾰족한 끝을 추켜올리는 수도원 종탑이나 병원 탑을 마치 무슨 표지처럼 가리켜 보일 때, 거기서 내 기억이 소중하면서도 이제는 사라져 버 - P123

린 종탑 형상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특징을 찾아내기라도 하면, 나는 하던 산책이나 해야 할 심부름을 잊어버린 채 몇 시간이고 꼼짝 않고 서서는 내 마음 깊숙이에서 망각의 강으로부터 빠져나온 땅이 건조해지며 단단해져서는 건물이라도 지을 수 있다는 듯이 기억을 더듬는다. 혹시 내가 길을 잘못 들지나 않았는지 확인하려고 뒤돌아보던 행인은 이런 내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면 난 아마도 조금 전 행인에게 길을 물었을 때보다도 더 초조하게 가야 할 길을 찾으며길모퉁이를 돌겠지만………… 그러나 그 길은 내 마음속에 있기에……… - P124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듯이, 나도다른 사람들의 두뇌라고 하는 것은 거기에 무엇을 넣든 특수한 반응을 일으킬 수 없는 무기력하고 온순한 그릇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할아버지 댁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람의 소식을부모님의 두뇌에 넣으면서, 동시에 그녀를 소개받은 일에 대한 내 호의적인 판단도 내가 바라는 대로 부모님께 전해질 수있다고 생각했으며, 또 조금도 그 사실을 의심치 않았던 것이 - P145

다. 그러나 불행히도 부모님께서 할아버지의 행동에 대한 판단을 하려고 했을 때에는, 내가 그분들에게 암시한 것과는 전혀 다른 원칙을 따르는 것이었다. - P146

방안은 겨우 책을 읽을 정도로 밝았고, 빛의 찬란함에 대한 감각은, 퀴르 거리에서 카뮈가 먼지 쌓인 상자를 두들기는 망치 소리로 느낄 수 있었는데(카뮈는 프랑수아즈를 통해 우리 아주머니가 ‘쉬고 계시지 않으니까‘ 소리를 내도 괜찮다는 연락을 받았다.)그 소리는 더운 날이면 더욱 낭랑하게 울려 퍼져서 대기 속으로 진홍색 행성들을 멀리 날려 보내는 듯했다. 또한 빛의 감각은 내 앞에서 여름 실내악을 연주하듯, 작은 음악회에서 연주하는 파리 떼가 윙윙거리는 연주 소리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실내악은 우연히 날씨 좋은 계절에 들으면 나중에그 계절을 기억하게 되는 인간의 음악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빛의 감각을 환기한다. 파리 떼의 음악은 보다 필연적인 관계로 여름에 연결되어 있다. 화창한 날씨에 태어나 화창한 날씨와 더불어서만 다시 태어나는 이 음악은, 그런 나날의 본질을 함유하면서 우리 기억 속에 그 이미지를 일깨우는 동시에, 그런 나날이 돌아왔다는 것을, 실제로 우리 주위에 있다는 것을, 그래서 즉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음을 확인해 준다. - P151

내가 독서를 하는 동안, 안에서 밖으로 진리 발견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 중심적인 믿음 다음에 오는 것은, 바로 내 - P153

가 참여하는 행동들이 주는 감동이었다. 그런 날들의 오후는평생 동안 경험하는 것보다 더 많은 극적인 사건들로 가득 차있었다. 그것은 내가 읽고 있는 책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로, 그사건들과 관계되는 인물들은 사실 프랑수아즈의 말대로 ‘실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 인물의 기쁨이나 불운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모두 이런 기쁨이나 이런 불운에 대한 이미지의 매개를 통해서만 생겨나는 것이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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