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하가 죽고 그 자리에 조참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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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3-26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하야말로 한고조가
초한쟁패전에 최후의 승리
를 거두게 한 일등공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패공이 초패왕과의 대전에서
판판히 져도 후방에서 계속해
서 병력을 모집하고, 병참을 제
공한 공신이 바로 승상 소하였
지요.

거리의화가 2023-03-27 08:59   좋아요 1 | URL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소하는 진짜 살림꾼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쟁에서 중요한 것이 전장을 지휘하는 장수, 그리고 병사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뒤가 탄탄하지 않았다면 전쟁을 이어나갈 수 없었을 테니까요.
 

10. 초 세가

1) 장왕
- 초반부터 정치를 잘한 것은 아니고(일부러 그러는 줄 알았으나 그건 아니었다) 오거와 소종의 말에 정신을 차렸구나
- 구정의 무게 묻기, 답한 이는 왕손만. -> 구정의 무게. 무엇이 중한데? 덕행에 있다

2) 영왕
백성들의 어려움은 헤어리지 않고 자신만 아는, 남의 자식을 죽였으니 자기 자식은 무사할 것인가

3) 평왕
오사와 큰아들 오상을 죽이다. 오자서는 달아남. -> 복수의 칼날을 갈다.

4) 회왕
- 진진(소진, 장의와 같은 유세가)이 소양에게 한 사족(뱀다리) 이야기. 위나라 공격에 성공했는데 제나라 공격하려다 실패하면 어찌될까, 더 올라갈 관직도 없다는 것
- 장의 위험에 빠졌으나 기지로 풀려남. 굴원은 회왕에게 그를 죽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말하고 뒤쫓았으나 잡지 못했음

11. 월나라 왕 구천 세가

- 와신상담
- 오나라 부차의 굴욕
- 오나라에는 오자서가 있었다면 월나라에는 문종과 범려가 있었다. 둘의 마지막은 달랐다.

12. 정 세가

1) 장공.
어머니와 형제 간의 갈등

2) 자산의 집정
어진 재상으로 유명했던 자산. 간공 때 재상을 지냈다. 공자도 칭송했던 인물.

오거가 말했다.
"원컨대 수수께끼를 하나 올리겠습니다."
그러고는 이어서 말했다.
"새가 언덕에 앉아 있는데, 삼 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으니 이것은 무슨 새입니까?" - P357

장왕이 말했다.
"삼 년 동안 날지 않았으나, 날면 하늘로 치솟아 오를 것이고, 삼년 동안 울지도 않았으나,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다. 오거, 그대는 물러갈지니 나는 이 말뜻을 알겠다."
몇 달이 지나도록 장왕의 음란함은 더욱 심해졌다. 대부 소종蘇從이 입궐하여 간언했다.
장왕이 말했다.
"그대는 간언을 금하라는 명령을 듣지 못하였는가?"
[소종이] 대답하여 말했다.
"제 몸을 죽여 임금을 깨우치는 것이 신의 바람입니다."
장왕은 비로소 음란하게 즐거움을 일삼는 것을 그만두고 정사를처리했는데 그에게 죽임을 당한 자가 수백 명이었고 자리에 등용된 사람도 수백 명이었다. 장왕이 오거와 소종을 임명하여 국정을다스리게 하자 나라 사람들이 매우 기뻐했다. - P359

초나라 왕이 구정九鼎의 크고 작음과 가볍고 무거운 것을 물으니, [왕손만이] 대답하여 말했다.
"덕행에 있는 것이지, 보정에 있지 않습니다." - P358

[영왕] 12년 봄, 초나라 영왕은 간계에서 즐거움을 일삼아 그곳을떠나지 못했다. 초나라 사람들이 요역 때문에 힘들어했다. 이전에영왕은 신읍에서 군사들을 모아, 월나라 대부 상수과常壽過를 능멸하고, 채나라 대부 관기觀起를 죽였다. 관기의 아들 관종觀從은 오나라로 달아나서 오나라 왕이 초나라를 정벌하기를 권하여 월나라대부 상수과에게 난을 일으키라고 부추기고는 오나라의 간첩이 되었다. 사람을 보내 공자 기질의 명령을 거짓으로 알려 주고, 진晉나라에서 공자 비를 불러들여 채읍에까지 이르렀으며, 관종은 오나 - P366

라와 월나라 군대와 함께 채읍을 습격하려고 했다. 공자 비로 하여금 공자 기질을 만나게 하고, 등읍물에서 맹약을 맺었다. 드디어[초나라 수도인 영에 들어가] 영왕의 태자 녹祿을 죽이고, 비를 받들어 세워 왕으로 삼고, 공자 자석을 영윤에 삼았으며, 기질을사마司馬군사권을 장악한 고위직로 삼았다. 먼저 왕궁을 청산하고, 관종은 군대를 거느리고 간계에서 초나라 군사들에게 말했다.
"나라에 왕이 새로 생겼으니 먼저 돌아가는 사람은 원래 가지고있던 관직과 봉읍, 전답, 집을 회복해 줄 것이며, 늦게 돌아가는 사람은 멀리 쫓아낼 것이다."
초나라 군사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영왕을 떠나 돌아갔다.
영왕은 태자 녹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마차 아래로 몸을던지며 말했다.
"사람들이 아들을 아끼는 것이 이와 같은가?"
시종이 말했다.
"이것보다 심합니다."
영왕이 말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자식을 많이 죽였으니 이런 지경에 이르지않을 수 있겠는가?" - P367

오상이 오서에게 말했다.
"아버지의 죄가 용서된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지 않는 것은 불효이다. 아버지가 죽임을 당했는데 복수하지 않는다면 지모가 없는 것이다. 능력을 헤아려 일을 맡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다. 너는 달아날지니 나는 돌아가서 죽음을 맞이하겠다."
오상은 마침내 [영으로] 돌아왔다. 오서는 활을 당겨 화살을고는 나가서 사신을 보며 말했다.
"아버지가 죄를 지었는데 어찌하여 그의 아들을 불러들이는 것입니까?" - P376

활을 쏘려고 하자 사자가 달아나니 [오서] 또한 마침내 오나라로달아났다. 오사는 이 소식을 듣고는 말했다.
"오자서가 달아났으니, 초나라는 위험해질 것이다!" - P377

"지금 당신께서 초나라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 위나라를 공격하여 군대를 쳐부수고 장군을 죽였으니 공로가 이보다 큰 것은 없으며, 높은 관직이라 이보다 더 높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지금 또다시 군대를 옮겨 제나라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어도, 관작은 이보다더 높아질 수 없습니다. 만약에 공격하여 이기지 못하면 몸은 죽고작위도 빼앗겨 초나라에게는 손실이 될 것이니 이것은 곧 뱀에게 발을 그리는 이치가 됩니다. 그러니 군대를 이끌고 떠나 제나라에게은덕을 베푸는 이것이야말로 만족함을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 P388

진나라 왕이 말했다.
"초나라가 마침 그대에게 마음을 얻으려고 하니 어찌하면 좋겠소?"
장의가 말했다.
"저는 초나라 왕의 측근 근상과 잘 알고 지냅니다. 근상은 또한 초나라 왕이 총애하는 애첩 정수를 모시고 있습니다. 정수가하는 말이라면 초나라 왕도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저 장의가 이전에 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초나라에 상과 오 땅을되돌려준다는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지금 진나라와 초나라가 크게싸우고 서로 미워하니 제가 초나라 왕 앞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원한이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제게는 또한 대왕께서 살아 계시니, 초나라가 함부로 저를 취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 초나라가 진실로 저 장의를 죽여 나라에 이로움이 있다면 그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 P393

[구천] 원년, 오나라 왕 합려는 윤상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즉시 군대를 일으켜 월나라를 정벌했다. 월나라 왕 구천이 죽음을무릅쓴 병사들로 하여금 싸우게 하니, 그들은 세 줄을 이루어 오나라의 진영에 이르러 크게 외치고 스스로 목을 쳤다. 오나라 군대가바라만 보고 있는 사이 월나라 군대가 이 틈을 타 오나라 군대를 몰래 공격하자 오나라 군대는 취리지명에서 무너지고, 오나라 왕합려를 쏘아 부상을 입혔다. 합려가 죽으려 할 때 아들 부차에게 일러 말했다.
"월나라를 절대 잊지 말라." - P421

"월나라가 마음속으로 신하가 되었으니, 그를 용서해 주시면 이는 우리나라의 이익이 됩니다."
오나라 왕이 허락하려 하자, 오자서가 나아가 간언하여 말했다.
"지금 월나라를 멸망시키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뉘우치게 됩니다. 구천은 어진 군주이고 문종과 범려는 훌륭한 신하이니, 만약 지금 그들을 월나라로 돌려보내면 난을 일으킬 것입니다."
오나라 왕은 이를 듣지 않고 마침내 월나라를 용서해 주어, 군대를 거두어 돌아가게 했다. - P424

오나라 왕이 월나라 왕을 용서해 주자 월나라 왕 구천은 원나라로돌아가서 몸소 고통을 겪으며 고심하는데, 앉은 자리에는 쓸개를 두고, 앉아 있거나 누워 있거나 항상 쓸개를 바라보며, 마시거나 먹을 - P424

때도 쓸개를 맛보았다. 그러고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너는 회계산에서의 치욕을 잊었는가?"
그 자신은 직접 밭을 갈아 농사짓고, 부인은 직접 길쌈질했으며,
음식으로는 고기를 먹지 않았고 옷은 화려한 옷을 입지 않았으며,
몸을 낮추고 어진 사람에게 겸손하고 손님을 후하게 접대하며, 가난한 사람을 돕고 죽은 자를 애도하며 백성들과 더불어 수고로움을 함께했다. - P425

월나라 대부 문종이 말했다.
"신이 보건대, 오나라 왕은 정권을 잡고 나서 교만해졌으니, 시험삼아 식량을 빌려 달라고 하여, 우리나라에 대한 태도를 헤아려 보십시오."
식량을 빌려 달라고 하니, 오나라 왕은 주려고 하였으나, 오자서가 주지 말라고 간언하였다. 그러나 [오나라] 왕은 이내 빌려 주니,
월나라 왕은 속으로 기뻐했다.
오자서는 말했다.
"왕께서 내 간언을 듣지 않으니 삼 년이 지나면 오나라는 아마도폐허가 될 것이다." - P427

월나라는 마침내 고소산에 오나라 왕을 다시 가두었다. 오나라 왕은 [대부] 공손웅公孫雄으로 하여금, 맨살을 드러내고 무릎으로 기어 나아가 월나라 왕에게 강화를 청하며 말했다.
"외로운 신하인 부차는 감히 속마음을 털어놓겠습니다. 다른 날일찍이 회계산에서 죄를 지었는데, 저 부차는 감히 왕의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며, 군왕과 강화를 맺고 돌아가기를 청합니다. 지금 군왕께서는 친히 저를 주살하려 하시는데, 외로운 신하인 저는 오직명령만을 따를 것이니, 바라건대 회계산에서 제가 당신에게 그렇게용서해 준 것처럼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 P429

범려가 말했다.
"회계산의 일은 하늘이 월나라를 오나라에게 준 기회인데, 오나라는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늘이 오나라를 월나라에게 주는데,
월나라가 어찌 하늘의 뜻을 거스른단 말입니까? 또한 군왕께서 일찍이 조정에 나가셔서, 저녁에 돌아가셨으니 오나라를 [치기] 위한것이 아니었습니까? 이십이 년간 일을 도모하였는데, 하루아침에이를 저버린다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또한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는다면 오히려 벌을 받는 법입니다. 『시경詩經』에서도 ‘나무를베어 도끼 자루를 만들려면, 도끼 자루 모양과 멀리 있는 것을 찾지마라.‘ 라고 하였으니 당신께서는 회계산에서의 화를 잊으셨습니까?" - P430

"나는 새가 다 잡히면 좋은 활은 감추어지고, 교활한 토끼가 모두잡히면 사냥개는 삶아지는 법이오. 월나라 왕 구천이라는 사람은 - P431

이 길고 입은 새처럼 뾰쪽하니, 정녕 어려움은 함께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할 수 없소. 그대는 어찌하여 월나라를 떠나지 않는 것이오?" - P432

범려가 바다를 떠다니다가 제나라에 이르러 성과 이름을 바꾸고스스로 치이자피夷子皮‘"라고 했다. 그는 해변에서 농사를 짓는데, 온갖 고생을 하고 힘을 다하여, 아버지와 아들이 산업을 다스렸다. 그곳에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재산이 수십만 금에 달하게 되었다. 제나라 사람들이 그가 어질다는 것을 듣고서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범려는 한탄하며 말했다.
"집에 있을 때는 천금의 재산을 얻고, 관직에 있을 때는 경상에 이르렀으니, 이는 보통 사람들로서 정점에 도달한 것이다. 존귀한 이름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
그러고는 재상의 인수를 돌려주고, 자신의 재산을 모두 나누어 아는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중에서 귀중한 보물만가지고 몰래 빠져나와 도陶 땅까지 이르렀다. 이곳이야말로 천하의 - P437

중심이므로 교역을 하면 각지와 통할 수 있어 장사를 하면 큰돈을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스스로 ‘도 주공陶朱公‘ 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다시 부자가 함께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물건을오랫동안 쌓아 놓았다가 때가 되면 물건들을 내다 팔아 십 분의 일의 이윤을 남겼다. 그는 오래 지나지 않아 엄청난 재산을 모으니 천하 사람들은 그를 도 주공이라고 일컬었다. - P438

단은 경읍에 가서 무기를 정비하고 병사를 훈련시켜, 그의 어머니무강과 함께 정나라 수도를 습격하기로 모의했다.
〔장공] 22년, 과연 숙 단이 수도를 습격하자, 무강이 성 안에서 그에게 호응했다. 장공이 군대를 출동시켜 단을 정벌하자, [단은] - P452

아나 버렸다. 장공이 또 경읍을 정벌하자, 경읍 사람들은 숙단을 배반했다. 숙 단은 [또] 언읍으로 달아나 버렸다. 언읍의 백성들이흩어지자, 숙 단은 또 공부나라로 달아났다. 이에 장공은 그의 어머니 무강을 성영城으로 옮겨 살게 하고는 맹세하며 말했다.
"황천에 가기 전에는 다시 서로 만나지 맙시다." - P453

계자는 자산을 만났는데, 마치 옛 친구를 만나는 것같이 하면서자산에게 말했다.
"정나라에서 정권을 잡은 자는 사치스러우므로, 난리가 곧 닥칠것이며, 정권은 당신에게 이어질 것입니다. 당신이 정치를 하게 되면 반드시 예법으로서 해야 할 것이니.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정나라는 무너질 것입니다."
자산은 계자를 후히 대우했다.
[간공] 23년, 여러 공자들이 총애를 얻으려고 서로 죽였으며, 자산도 죽이려고 했다.
공자 중에 어떤 이가 간언했다.
"자산은 어진 사람이고, 정나라가 생존할 수 있는 까닭은 자산이있기 때문이니, 죽이지 말아야 한다!"
이에 죽이는 것을 그만두었다. - P472

성공 5년, 정나라의 재상 자산이 죽자, 정나라 사람들은 마치 친척을 잃은 것처럼 모두 통곡하여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였다. 자산은정나라 성공成소의 작은아들이었다. 사람됨이 어질어 백성을 사랑하였고 임금을 섬김에 있어 충성스럽고 돈후했다. 공자가 일찍이 정나라를 지났는데, 자산과 형제처럼 지냈다고 한다. 자산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공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그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인애로운 사람이다." - P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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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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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에서 보통 몇 번인가 부딪혀야 하는 어려운 상황 중 하나를 나는 통과하려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과 부딪혔을때 성격이나 기질은 변하지 않지만 우리는 나이에 따라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대처하지 않는다. 그때 우리 삶은 나뉘며, 또 저울에 배분되듯 양쪽 접시에 고스란히 놓인다. - P278~279
사람마다 인생에 몇 차례의 어려움과 곤란이 찾아온다. 부모님 사업의 실패, 사랑·친구 관계의 파괴, 지인의 죽음,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 직장에서의 해고 등. 이런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비슷한 어려움이더라도 처음, 다음, 그 다음...에 각각 다르게 대처하는 듯하다. 이는 본인의 경험에 따른 판단일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 외부 매체 등에서 배운 것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도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이전보다는 감정적으로 덜 아파했고 좀 더 현명한 방식으로 대처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나무의 나이테가 나이를 말해주듯 사람의 나이는 경험치를 쌓이게 한다. 그것은 똑같은 방식을 낳지 않고 대처한 방식에 따라 삶은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그것이 찬성과 반대처럼 이분법으로 나누어진다면 선택이 쉽겠지만 그리 간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선택지가 다양하다면 오히려 나중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을 때 그 선택지는 더 늘어날테니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3권의 전반부는 화자의 꿈, 예술, 작가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후반부는 질베르트와의 사랑-이별이 주 테마다.

어느 날 집에 아버지 지인인 외교관 노르푸아 씨가 찾아온다. 나는 극장에서 하는 공연 「페드르」를 보러 가고 싶었다. 헌데 담당 의사가 모든 여행을 금지했고 당연하듯 부모님도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자신을 걱정하는 것에 대한 염려, 공연을 보러 가고 싶은 충동과 열망. 이 두 저울에서 그는 선뜻 선택을 내리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내가 결정 장애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노르푸아 씨가 구세주가 되었다.

저울 하나에는 ‘엄마를 슬프게 하고 샹젤리제에 가지 못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또 다른 저울에는 ‘장세니스트적인 창백함과 태양의 신화‘를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런 낱말 자체가 내 정신 앞에서 점차로 모호해지면서 더 이상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았고 또 모든 힘을 잃었다. 나의 망설임은 점점 더 심한 고통이 되어 만일 지금 내가 극장에 가기로 결정한다면 그건 단지 이 망설임을 중단하고 거기서 영원히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 P38

공연장 뒤의 모습을 상상해 본 일이 있는가? 배우나 가수, 스탭들이 무대 뒤에서 정신없이 준비하는 모습. 나는 이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이 장면을 생각하면 가슴 속이 흥분으로 공기처럼 차오른다.
고등학교 시절 합창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어느 날 도 경연이 있어서 대회에 참석했다. 몇 개월을 노력해 준비한 대회였다. 대기 전 무대 뒤 장막에서의 순간, 본 무대가 시작되었을 때 쏟아지던 조명의 빛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 감정은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다. 걱정, 불안, 두렵고 공포스러운데 무대를 경험해보고 싶은 흥분과 설레임이 복합적으로 들어 있었던 것 같다.

내 기쁨은 커튼이 내려진 막 뒤에서 마치 병아리가 알껍데기를 까고 나오려 할 때처럼 어렴풋한 웅성거림을 식별하기 시작하면서 커졌고, 이윽고 그 웅성거림이 높아지면서 갑자기 우리 시선이 뚫고 들어갈 수는 없지만 그쪽에서는 우리가 잘 보이는 그 세계로부터, 마치 화성에서 온 신호만큼이나 그렇게도 감동적인 개막을 알리는 세 번의 위압적인 두드림 형태로 분명히 전해졌을 때 더욱 커졌다. - P43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할머니에게서 오페라글라스를 받아오기까지 했지만 그럼에도 내 망막을 통과한 형상은 내가 기대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보는 모습은 실재가 아닌가. 그렇다면 무엇이 실재인가. 화자는 어지러움 속에서 집으로 돌아온다.

내가 연구하고 싶었던 장면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자 할머니가 오페라글라스를 주셨다. 우리가 사물의 실재를 믿을 때 단지 인위적인 수단을 써서 사물을 보여 주는 것과 그 사물 가까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완전히 같지 않다. 확대경에서 내가 본 것은 더 이상 라 베르마가 아닌 그녀의 이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페라글라스를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어쩌면 내 눈이 받아들인 이미지는 거리감으로 축소되어 더 이상 정확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두 라 베르마 중 어느 것이 진짜였을까? - P47

우상과의 만남은 짜릿하고 흥분되는 일이다. 베르고트는 나의 어린 시절 우상이었다. 온화한 모습의 백발 시인을 상상했던 나는 키가 작고 다부진 체형에 근시이며 코가 달팽이 껍데기 모양으로 붉은 턱수염을 가진 그를 만나고 실망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몸 안에 있던 베르고트 작품의 아름다움마저 사라지는 지경에 이른다. 베르고트는 삶을 글로 옮기는 법을 아는 대가였던 반면 노르푸아 씨는 작가가 꿈인 나에게 이리 저리 훈수를 두며 일명 '명예를 얻거나 돈 되는 글쓰기'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해댄다. 노르푸아 씨는 그를 (때로 저속하며, 남에게 책처럼, 그것도 자신의 책이 아니라 지루한 책처럼 떠들어 대는 작자) 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베르고트가 '예술을 위한 예술'을 하는 작가는 아니라고 보인다. 삶을 반영한 예술과 예술을 위한 예술은 분명 다르다는 생각이다.

부모님은 내가 게으르다고 하지만 위대한 작가와 같은 살롱에서 보내고 있으니 내 재능에 가장 유리한 생활을 한다고 여겼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이 재능을 자신의 내부에서 만드는 일로부터 면제받으며, 또 타인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의사와 자주 시내에서 식사하는 것만으로(모든 건강 규칙을 무시하고 최악의 무절제한 생활을 하면서도) 건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무모하다. - P271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나타가 가져다주는 모든 것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지만, 난 한 번도 소나타를 완전히 소유할 수 없었다. 소나타에는 우리 삶과 닮은 데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삶보다 덜 환멸스러운 이 위대한 걸작은 처음부터 작품이 가진 최상의 것을 주지 않는다 - P185

클래식 음악 작품 중 일명 걸작이라고 불리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 전혀 감이 오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몇 번 이상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그 작품이 내 머리와 가슴에 각인되면 그것이 추억처럼 박혀 버려 그 작품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마성처럼. 이는 미술 작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 번 보고 어떻게 느낌이 딱 오겠는가. 작품이 나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수도 있다. 처음부터 개인에게 걸작은 없다. 그렇다고 하니까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또 어떤 음악을 들을 때 음악 자체의 예술성을 이해하여 그것이 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어쩌면 그 음악을 들을 때의 내 주변의 상황과 풍경이 그 음악 감상에 더 큰 감상을 불러일으켜 뇌리에 박히는 것일 수도 있다.

가장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이들은 가장 세련된 환경에서 살고 가장 재치 있는 화술과 가장 폭넓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갑자기 그들 자신만을 위해 살기를 멈추고 자신의 개성을 거울처럼 투명하게 만들어, 비록 현재의 삶이 사회적으로 또 어떤 점에서는 지적인 면에서조차 초라하다 할지라도 그 삶을 거울에 반영하는 자이다. 천재란 사물을 반영하는 능력에서 나오지 반영된 광경의 내적인 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 P227


질베르트는 스완 부부의 딸이므로 나는 자연스럽게 그 집에 드나들 수 있었다. 물론 나의 부모는 그 집안을 전체적으로 탐탁치 않게 여겼지만. (부모님이 원하는 친구는 내가 원하는 친구와는 언제나 다른가보다)

어쨌든 나는 질베르트를 좋아했다. 하지만 질베르트도 한 얼굴이 아니다. 어떤 사람을 좋아할 때 분명 그 사람의 전체적인 모습이 다 100% 만족스러울 수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어느 단면을 좋아할 뿐이다. 내가 질베르트에게 기대한 것은 모든 것을 만족하는 수호천사 같은 그런 얼굴이었을까. 인간은 선과 악을 함께 갖고 있는데 선만 갖고 있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너무 순진한 것 아닌가.

질베르트가 외동딸인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거기에는 두 명의 질베르트가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나온 두 성질이 단순히 그녀 안에서 섞이는 데 그치지 않고, 이 두 성질이 서로 그녀를 가지려고 다투었고, 게다가 두 성질이라는 말도 정확한 표현이 아닌데, 제3의 질베르트가 그동안 다른 두 질베르트의 희생물이 되는 고통에 시달렸음을 추측하게 하기 때문이다. - P247
이 두 질베르트 사이의 간극은 너무 커서 당신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기에 이렇게 사람이 달라졌는지 생각해보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 P248

내가 바라보는 상대는 언제나 움직인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테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항시 변하고 움직이는 존재다. 멈춰 있지 않다. 

어쨌든 나는 질베르트와 헤어질 결심을 한다. 그러면서도 그녀에게서 올 편지를 기다린다. 어느 순간 이후에는 그마저도 기대를 스스로 접어갔지만. 어쩌면 사랑이나 감정으로 인한 아픔이나 고통보다는 주변의 상황이나 그런 것으로 인해 타격을 받았을 때, 또는 그것으로 인해 흔들리는 느낌을 받을 때 슬픔은 더 가중되는 듯하다.

사랑하지 않을 때라야 우리는 그 사람의 움직임을 고정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움직인다. 따라서 우리에겐 언제나 실패한 사진만이 있다. - P117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시간을 보내지 않고 다음 날 약속의 가능성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낸다. 사랑을 단념하는 사람들은 슬픔이 무엇인지 알려 하지 않고 가장 다정해 보이는 표현을 그 슬픔을 초래한 사람에게 전하고자 한다. 말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지만 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걸 말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만 말한다. - P326

그 어떤 것도 영속성과 지속성을 보장받지 못한다. 우리 고통조차도.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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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3-27 0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을 실제 만나고 실망하다니... 그럴 것 같기도 합니다 글을 보고 사람을 상상하면 실제와 다를 때가 더 많을 테니... 그렇다 해도 그 사람을 자꾸 보면 다른 생각이 들겠습니다 겉만 보고 그 사람이 어떻다 생각하면 안 되겠네요 음악이나 그림을 한번이 아니고 여러 번 듣고 보는 것과 같기도 하겠습니다 사람은 한가지 면만 있지 않군요 좋은 점도 안 좋은 점도 다 있겠지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3-27 09:04   좋아요 2 | URL
너무 큰 기대로 기대치를 높인 상태에서 상대를 만나면 마치 신화화되어서 그 실망감이 오히려 커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는 사진이라는 기술이 있어서 유명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니 긍정적인 것 같기도 하고 부정적인 것 같기도 하네요.
어떤 예술 장르든 작자와 작자가 펼치는 예술이 동일시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작가의 생각이 일부가 담기거나, 아니면 아예 안 담길 수도 있고... 보는 사람도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7. 위 강숙 세가
8. 송 미자 세가
9. 진 세가

주공은 「자재梓材」라는 시를 지어 군자가 지켜야 할 법과 원칙을 알려주었다. 따라서 그에게 「강고康誥」, 「주고酒誥」, 「자재」라고 이름을 지어 가르쳐 주었다. 강숙이 봉국에 이르러 이러한 주공의 명을 잘 따랐으므로, 그곳 백성들을 화목하게 하고 안정시키니백성들은 크게 기뻐하였다.
성왕이 어른이 되어 정사를 처리하게 되자, 강숙을 천거하여 주나라의 사구司憲사공의 다른 이름로 삼고, 위衛나라의 보배로운 제기祭器를 내려 주어 그에게 덕이 있음을 널리 알렸다. - P216

선공은 [제나라 여자를 얻어] 아들 수와 삭朔을 낳았으며,
좌공자左소로 하여금 그들을 보좌하게 했다. 태자 급의 어머니가죽자 선공의 정부인夫人은 삭과 함께 태자 급을 헐뜯고 미워했다.
선공은 스스로도 그가 태자의 아내될 여자를 빼앗은 일이 있은 후로 마음속으로 태자를 미워하여 그를 폐위하려고 했다. 그에 관한악평을 듣고 선공은 크게 노여워하여 태자 급을 제나라에 보냈다.
떠나보내면서 태자에게 백모(경대부가 제후에게 초빙되어 갈 때 몸에지니고 가는 일종의 신표)를 주고는 도적에게 백모를 들고 가는 자를 보거든 국경에서 그를 죽여 버리라고 일렀다. - P220

의공은 자리에 오르고 나서 학을 기르는 것을 좋아하였으며, 음탕한 것을 즐기고 사치스러웠다.
의공 9년, 적나라가 위나라를 치자 의공은 군대를 일으켜 막으려하였으나 군사들 중 일부가 모반했다.
대신들이 말했다.
1964
"당신께서 학을 좋아하시니 학을 보내어 적나라를 치도록 명령하십시오."
적나라는 이에 마침내 쳐들어와서 의공을 죽였다. - P222

[군각] 21년, 진나라] 이세가 군각을 폐위하여 평민이 되게 하자 위나라의 제사가 끊어지게 되었다.

태사공은 말한다.
"내가 「세가」에 기재된 것들을 읽다가 선공의 태자가 부인 문제로주살되었고, 그의 동생 수가 죽음을 다투어 서로 양보하는 대목에이르렀는데, 이는 진나라 태자 신생申生이 여희驪姫의 과실을 거론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니 이 모두가 아버지의 뜻을 심하게 손상하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죽음에 이르렀으니찌 슬프지 아니한가! 어떤 때는 아버지와 아들이 죽이고, 형과동생이 서로 없애려 하니 이 또한 어찌된 일인가?" - P235

미자가 말했다.
"아버지와 아들 간에는 골육의 감정이 있고, 임금과 신하 사 - P241

이에는 도의道義로 묶여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에게 잘못이 있으면아들이 세 차례 간할 것이나, 그래도 듣지 않는다면 그를 따라다니며 외치면 되지만, 신하된 자가 세 차례 간하여도 군주가 듣지 않는다면 신하는 그 도의상 떠나면 될 것이다."
이에 태사와 소사들이 미자에게 떠날 것을 권하니, 미자는 마침내떠나 버렸다.
주나라 무왕이 주왕을 정벌하여 은나라를 무너뜨리자, 미자는 종묘의 제기를 가지고 [무왕의] 군문軍門으로 가 윗옷을 벗고 손을 등뒤로 묶고는, 사람을 시켜] 왼쪽으로는 양을 끌도록 하고 오른쪽으로는 띠〔茅]를 쥐게 하고는 무릎으로 기어가면서 무왕의 앞으로나아가 아뢰었다. 이에 무왕은 미자를 즉시 풀어 주고 그의 작위를이전과 같이 회복시켜 주었다. - P242

무왕은 즉시 기자를 조선에 봉했으나, 그를 신하로 대우하지는 않았다. 그 뒤 기자가 주왕을 조회하기 위하여 옛 은나라의도읍지를 지나가다가, 궁실이 훼손되어 벼와 기장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다. 기자는 상심하여 소리 내어 울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고,
울먹이려니 아녀자들 같아서, 「맥」라는 시를 지어 노래했다.
그 시에서 말했다.
"보리 이삭은 점점 끝이 뾰족해지고, 벼와 기장은 싹이 올라 밝디밝구나. 저 교활한 아이가 나에게 친하게 대하지도 않네!"
여기서 말하는 교활한 아이는 주왕을 가리킨다. 은나라 백성들이듣고는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 P249

가을, 초나라가 송나라를 치면서 정나라를 구하려고 했다. 양공이싸우려 하자, 자어가 간하여 말했다.
"하늘이 상 왕조를 버린 지 오래되었으니 맞서서는 안 됩니다."
겨울 11월, 양공은 초나라 성왕과 홍수에서 싸움을 벌였다.
초나라 군사가 미처 강을 다 건너지 못하였을 때, 목이가 말했다.
"저들은 많고 우리는 적으니 그들이 아직 건너지 못했을 때 그들을 칩시다."
그러나 양공은 듣지 않았다. 그들이 이미 건너기는 했으나 전열을 - P256

갖추지 못했을 때, 목이가 다시 말했다.
"지금이라도 공격하면 됩니다."
양공이 말했다.
"그들이 전열을 갖출 때까지 기다립시다."
초나라 군사가 전열을 갖추고 나서야, 송나라 사람들은 그들을 공격했다. 송나라 군대는 크게 패하였고 양공은 넓적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송나라 사람들은 모두 양공을 원망했다.
양공은 말했다.
"군자는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빠져 있을 때 그를 곤궁에 빠뜨리지 않고, 다른 사람이 전열을 갖추지 못했을 때 북을 두드리지 않는법이다.".
12자어가 말했다.
"전쟁이란 승리하는 것을 공으로 삼아야 하거늘, 어찌 일상적인말을 하십니까? 당신 말대로 하면 [틀림없이] 노예가 되어 다른 사람을 섬기게 될 뿐이니, 또한 무엇 때문에 전쟁을 하십니까?" - P257

"송나라 왕은 주왕이 했던 만행을 다시 저지르고 있으니, 죽이지않을 수가 없습니다."
모두들 제나라가 송나라를 정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나라 왕언이 왕의 자리에 오른지 사십칠 년 만에, 제나라 민왕은 위魏나라, 초나라와 함께 송나라를 정벌하여 송나라 왕언을 죽이고 마침내 송나라를 멸망시키고는 그 땅을 세 나라가 나누어 가졌다.
F태사공은 말한다.
"공자가 일컫기를 ‘미자는 [은나라 주왕을 떠났고 기자는 노예가 되었으며 비간은 간언하다가 죽었으니, 은나라에는 어진 세 사람이 있었다.‘ 라고 했다. 『춘추』에서는 송나라의 내란은 선공이 태자를 자리에서 내쫓고 동생을 내세워 군주가 되게 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나라가 편안함을 얻지 못한 것이 십 대나 된다고 풍자했다. 그러나 양공 때는 인의仁義를 닦아 맹주盟主가 되고자 했다. 그의 대부 - P264

大夫 정고보正考父는 그를 찬미하여, 설契, 탕湯, 고종高宗7 시대를거슬러 서술하였고, 은 왕조가 일어난 것을 바탕으로 「상송商頌」을지었다. 양공이 홍수에서 패하기는 하였으나, 군자들 중에 어떤 이는 칭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였으니, 당시 중원의 나라들이예의가 없는 것을 슬퍼하면서, 그를 기린 것은 송나라 양공에게는양보의 예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 P265

헌공은 몰래 여희에게 말했다.
"나는 태자를 폐하고 해제로 그를 대신하고자 한다."
여희가 흐느끼며 말했다.
"태자를 세운다는 것은 제후들 모두 이미 그것에 대해 알고 있으 - P278

며, 그는 여러 차례나 군대를 거느렸고 백성들이 그에게 의지하고있는데 어떻게 천첩 때문에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세울 수 있겠습니까? 주군께서 꼭 그렇게 하시겠다면 천첩은 스스로 목숨을 끊겠습니다."
여희가 태자를 추켜세우는 척하였으나 몰래 사람들로 하여금 태자를 비난하게 하여 자기 자식을 태자로 세우려고 한 것이었다.
[헌공] 21년, 여희가 태자에게 일러 말했다.
"군왕께서 꿈에 제강을 보았사온데 태자께서는 빨리 곡옥으로 가서 제사를 올리고 그 음식은 군왕께 보내시오."
태자는 이에 곡옥으로 가서 그의 어머니 제강에게 제사지내고 제육祭肉제사 고기 헌공에게 바쳤다. 헌공은 이때 밖으로 사냥을 나갔으므로 제육을 궁중에 놓아 두었다. 여희는 사람을 시켜 고기 속에독을 넣었다. 이틀이 지나 헌공이 사냥에서 돌아오자 주방장이 제육을 헌공에게 바쳤다. - P279

어떤 사람이 태자에게 말했다.
"이 독약을 만든 사람은 여희이거늘 태자는 어찌하여 스스로 해명하는 말을 하지 않으십니까?"
태자가 말했다.
"우리의 군왕께서는 늙으셔서 여희가 아니면 잠도 편안히 주무시지 못하고 식사도 달게 드시지 못하오. 만약에 그것을 해명하면 군왕께서 여희에게 노여워하실 테니, 그리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태자에게 일러 말했다.
"다른 나라로 달아나는 것이 괜찮겠습니다."
태자가 말했다.
"이 더러운 이름을 뒤집어쓰고 밖으로 도망친다면 그 누가 나를용납하겠소?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뿐이오." - P280

혜공 7년, 중이를 두려워하여 환관 이제로 하여금 장사들과 함께가서 중이를 죽이라고 했다. 중이는 이 소식을 듣고 조최 등과 의논하여 말했다.
"처음 내가 적나라로 달아났으나 적나라가 내가 일어나는 것을도와줄 거라 생각지 않았소. 다만 거리가 가까워 쉽게 도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잠시 머문 것이오. 이만하면 오래 머물렀으니 정녕 큰나라로 옮겨 가기를 원하오. 제나라 환공은 선한 일을 좋아하고 패왕이 되는 데에 뜻을 두고 있으며 제후들을 구휼하는 데 뜻이 있소. 지금 관중과 습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이때 또한 현명하고 능력 있는 선비의 보좌를 얻고자 한다는데 [내] 어찌 가지 않겠는가?"
드디어 제나라로 떠났다. - P297

중이가 제나라에 머문 지 대략오 년이 흘렀다. 중이는 제나라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 제나라를 떠날 마음이 없어졌다. 조최와 구범이 뽕나무 아래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상의하고 있는데, 제나라 여인의 시종이 뽕나무 위에서 그들의 계획을 듣고 그녀의 주인에게 알렸다. 그 여인은 시종을 죽이고 즉시 행동에 옮기기를 권했다.
중이가 말했다.
"사람이 태어나 편안하고 즐거우면 누가 그 다른 것을 알려고 하겠소? 반드시 이곳에서 죽을 것이니 떠날 수는 없소."
제나라 여인이 말했다.
"당신은 한 나라의 공자로서 곤궁하여 이곳에 오셨지만 저 몇 분의 선비들은 당신에 의해서 운명이 결정됩니다. 당신께서는 빨리 나라로 돌아가서 수고로운 신하들에게 보답하지는 않고 여색만을 마음에 품고 있으니 저는 당신이 이 점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만약 추구하는 바가 없다면 언제 공을 이루시겠습니까?" - P298

문공은 처음 귀국하여 즉위할 때, 나라 사람들이 자신을 거스를까 봐 평상복 차림으로 다녔고, 왕성王城에서진나라 목공을 만났으므로 나라 사람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3월 기축일, 여성과 극예는 과연 배반하여 궁성을 불태웠으나, 문공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문공의 호위병들이 그들과 싸웠다. 여성과극예 등이 군대를 이끌고 달아나려 하자 진나라 목공이 여성과 예등을 꾀어내어 황하 가에서 죽이고 진나라가 회복되어 문공은 귀국할 수 있었다. - P305

도공 주의 조부는 첩으로 진양공의 작은아들이라 왕의자리에 설 수 없어서 환숙이라고 불렀는데 환숙은 [양공에게]가장 총애를 받았다. 환숙이 혜백伯 담談을 낳았고, 담은 도공 주를 낳았다. 도공 주가 자리에 올랐을 때의 나이는 열넷이었다.
도공이 말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임금의 자리에 서지 못하였기 때문에주나라에서 난을 피하다가 객사하였소. 인도 스스로 진나라와는거리감이 있다고 생각되어 왕이 된다는 희망을 거의 갖지 않았소.
지금 대부들이 문공과 양공의 뜻을 잊지 않고 은혜롭게 환숙의 후예를 세웠으니 종묘와 대부들의 영령들에게 의지하여 진나라의 제사를 받들어 어찌 감히 조심하고 삼가지 않겠소? 대부들은 정녕 과인을 잘 보좌해 주시오!"
이에 신하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자 일곱 명을 내쫓고 옛 공을 닦으며 덕을 베풀고 문공이 나라 안으로 들어올 때의 공신들의 후손을거두었다. 가을에 정나라를 정벌했다. 정나라 군대가 패배하자, 〔애공은] 드디어 진나라까지 쳐들어갔다. - P334

[도공] 3년, 진나라가 제후들을 모이게 했다. 도공은 여러 신하에게 쓸 만한 인재를 물어보니 기혜자는 황양이며 진나라 헌후默侯의 후예가 해호解狐를 추천했다. 해호는 기혜와 원수지간이었다. 도공이 다시 〔인재를〕 물어보니 기혜는 자신의 아들 기오를 천거했다.
군자가 말했다. - P334

"기혜는 당파를 만들지 않는다고 할 수 있구나! 밖으로는 원수임을 숨기지 않고 추천하였고, 안으로는 자식임을 숨기지 않고 추천하였구나." - P335

[평공] 14년, 오나라 연릉계자가 [진나라] 사신으로 와 조문자,
한선자, 위헌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했다.
"진나라 정권은 결국 이 세 사람에게 돌아갈 것이다."
[평공] 19년, 제나라가 안영으로 하여금 진나라에 가게 하여 숙향叔向과 이야기했다.
숙향이 말했다.
"진나라는 쇠락하는 시기에 이르렀습니다. 군주는 세금을 무겁게하여 누대나 연못을 만들면서 정사를 돌보지 않아서 개별 가문에 의해 좌지우지되니 어떻게 오래갈 수 있겠습니까?", - P337

이때 진나라 정치는 모두 지백에 의해서 결정되었고, 진나라 애공은 그에게 어떠한 제재도 가할 수 없었다. 지백이 마침내범씨와 중항씨의 봉토를 차지하게 되어 [세력이] 가장 강성해졌다.
애공 4년, 조양자, 한강자, 위환자가 함께 지백을 죽이고 그의 봉토를 다 차지하였다. - P340

정공 2년, 위나라 무후, 한나라 애侯문후侯의 아들, 조나라경후敬侯열후烈侯의 아들가진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땅을 셋으로 나누었다. 정공은 강등되어 평민이 되었고 진나라는 제사가 끊어졌다.
태사공은 말한다.
"진나라 문공은 옛날에 현명한 군주로서 나라 밖으로 망명하여십구 년이나 지내면서 지극히 곤궁하였으니 군주의 자리에 오르고서 [공신들에게 상을 내리면서 오히려 개자추를 잊어버리기도 하였으나 하물며 교만한 군주이겠는가? 영공은 이미 시해되었고 그녀의후예 성공과 경공은 엄격하였으며 여공에 이르러 매우 자비하여 대 - P341

부들이 모두 주살 당할까 두려워하였으므로 화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도공 이후 [진나라는 나날이 쇠약해져 육경들이 권력을 휘둘렀다. 따라서 군주가 된 자가 그의 신하를 부리는 것은 정녕 쉽지 않구나!" -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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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관심 없는 일에 대해서는 별로 까다롭지 않으며 그리 예리한 심판관노릇을 하지도 않는다. - P351

인간은 불행해지면 도덕적인 존재가 된다.
길을 건너면서 마차에 조심하기만 하면 위험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듯 우리는 이 형벌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부의 위험이 있다. 이 사건은 우리가 생각하지 않았던 곳, 우리 내부로부터, 우리 마음으로부터 온다. - P353

그 어떤 것도 영속성과 지속성을 보장받지 못한다. 우리 고통조차도. - P354

어쩌면 당시 귀족 사회 여인들 틈에 섞인 레이디 이스라엘이라든가, 훗날 귀족 사회 여인들과 교제하게 된 스완 부인을 포함하는 이 특별 계층은 포부르생제르맹에 영합하는 처지였으므로 포부르생제르맹보다는열등했지만, 거기 속하지 않은 계층보다는 훨씬 신분이 높은중간 계층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이 계층은 이미 단순한 부자 세계로부터 벗어나, 여전히 부자이면서도 유연성이 있어어떤 목적이나 예술 사상을 추종하며 돈을 탄력적으로 만들고 시적으로 다듬으면서 미소 지을 줄 아는 계층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아마도 오늘날 이런 계층은 적어도 당시와 똑같은형태나 똑같은 매력을 지닌 채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 계층에 속했던 여인들은, 나이와 함께 거의 모두가 아름다움을 잃었으므로, 그 여인들이 군림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조건을 이제는 잃은 셈이다. - 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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