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치가 말했다. "안 됩니다. 우리를 공격하는 것은 실제로는 진나라이고, 헛된 이름으로 우리를 돕겠다고 하는 것은 초나라입니다. 왕께서 초나라의헛된 이름에 의지하여 강력한 진나라와 가볍게 관계를 끊고 적으로삼는다면, 반드시 천하의 큰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또한 초나라와 한나라는 형제 나라도 아니고, 또한 평소에 약조를 하거나 모의하여 진나라를 공격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진나라와 한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할 움직임이 있자, 군사를 일으켜 한나라를 구원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진진의 계책임에 틀림없습니다. 더욱이 왕께서 이미 사람을 보내 진나라에 알렸는데도 지금 가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진나라를 속이는 것입니다. 강력한 진나라를 가벼이 속이고, 초나라 모신謀臣의 말을 믿는다면 왕께서 후회하실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한나라 왕은 이를 듣지 않고, 마침내 진나라와 관계를끊었다. 진나라는 이로 인해 크게 노여워하여 병사를 증강하여 한나라를 공격해 크게 싸웠는데 초나라의 구원병이 한나라에 오지 않았다. - P598
"당신께서는 반드시 한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진나라를 나중에 생각하며,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장의를 나중에 생각해야 합니다. 당신께서는 빨리 나라를 제나라와 초나라와 연합하는 것이 더 나으니, 그리 되면 제나라와 초나라는 반드시 당신에게 나랏일을 맡길 것입니다. 당신이 미워하는 바는 장의의 계책이지만 실제로는 진나라를무시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 P602
한나라가 제나라와 위나라를 끼고서 초나라를 포위하면, 초나라는 반드시 당신을 존중할 것입니다. 당신께서진나라와 초나라의 권위를 끼고 한나라에 덕을 쌓는다면, 공숙과 백영은 나라를 공에 의지하여 운영할 것입니다." - P602
무우가 죽었을 때, [아들] 무자개武子開와 희자기釐子乞가 태어났다. 전희자기는 제나라 경공景公이름은 저구杵臼을 섬겨 대부가 되었으며, 그가 백성들에게서 거두어들인 세금은 작은 말로 받았고, 그가 백성들에게 창고의 곡식을 베풀 때는 큰 말로 주었으므로, 백성들에게 음덕을 베풀었고, 경공도 못하게 하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전씨는 제나라 백성들의 마음을 얻게 되었고, 종족은 더욱 강성해져 백성들은 전씨를 그리워하게 됐다. 안자가 여러 차례 경공에게 간언하였으나, 경공은 듣지 않았다. - P613
"덕을 베푸는 것은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바이니 왕께서 그것을시행하시고, 형벌이란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이니 신이 청컨대 그것을 집행하겠습니다." 이렇게 시행한 지 오 년이 되자 제나라 정권은 모두 전상에게 귀속되었다. 전상은 이에 포鮑, 안봇, 감지와 공족들 가운데 세력이 강한 자들을 모두 죽이고, 제나라 영토 가운데 안평安平의 동쪽에서 낭야郞邪에 이르는 땅을 떼어 내어 자신의 봉읍으로 삼았는데, 그봉읍은평공의 식읍보다도 컸다. 전상은 이에 제나라 여인 중에서 키가 일곱 자(尺] 이상 되는 이를후궁으로 삼으니, 후궁이백여 명이나 되었고, 빈객과 사인들로하여금 후궁에게 드나드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 전상이 죽을 때에는아들이 칠십여 명이나 되었다. - P619
양혜왕이 말했다. "과인과 같이 작은 나라에도 한 치 되는 진주가 수레 앞뒤에서 비추고 있고 열두 대 수레에 진주가 열 개가 있는데 어찌하여 만 대의 수레를 내는 나라에서 보기가 없겠습니까?" 위왕이 말했다. "과인이 보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왕과는 다릅니다. 우리 신하 중에 단자檀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로 하여금 남성南城을 지키게 하면, 초나라 사람이 감히 도적이 되어 동쪽으로 쳐들어오지 못하고, 사수가의 열두 제후들이 모두 조회하러 옵니다. 우리 신하들 가운데 반자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 고당高唐을 지키게 하면, 조나라 사람들이 감히 동쪽으로 황하까지 고기 잡으러 오지 못합니다. 우리 관리 중에는 검부黔夫제나라 신하 이름라는 사람이 있어, 그에게 서주徐州를 지키게 하면, [우리가 침입할까 두려워] 연나라 사람들이 제나라의 분문에 제사를 올리고, 조나라 사람들이 제나라의서문에 제사를 올리며, 그를 따라 옮겨 다니는 무리가 칠천여 가구나 됩니다. 우리 신하 중에는 종수種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도적들을 막도록 하면 길에 물건이 떨어져도 주워 가지 않습니다. 이는 천리를 밝히는 것인데, 어찌 단지 수레 열두 대만을 밝히겠습니까!" - P628
선왕宣王이 문학과 유세하는 선비를 좋아하였으니 추연, 순우곤, 전병田騈제나라 사람, 접여接제나라 사람, 신도愼到조나라 사람, 환연環淵초나라 사람 같은 무리들 일흔여섯 명 모두에게 큰 집을 내려 주고, 상대부上大夫로 삼고, 정무政務를 다스리지 않고 자유롭게 토론하게했다. 이 때문에 제나라 직하稷下에는 학사들이 다시 많아져, 거의수백 명에서 천 명에 이르렀다. - P632
안영이 진언하여 말했다. "유학자는 해학으로 말재주를 부리지만 법으로 그를 규제할 수는없습니다. 거만하고 스스로 멋대로 해도 그를 아랫사람신하으로 삼을 수 없으며, 그는 상례를 숭상하고 슬픔을 다한다면 가업을 탕진하면서까지 장례를 후하게 치르니 그들의 예법을 습속으로 삼기 어렵고, 유세 다니며 관직을 구하고 녹봉을 취하니 그에게 나라를 다스리게 할 수도 없습니다. 옛날의 어진 사람이 사라진 이래 주周나라가 쇠미해졌고 예악禮樂이 무너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지금 공자는 용모와 복식을 추존하고 번잡스러운 예절만을 따지고 세세한 절차만을 따르고 있으나 그것은 몇 세대를 지나도 아마 다 배울 수 없 - P656
으며 평생 동안 그 예법을 다 마칠 수도 없습니다. 군주께서 그를 채용하여 제나라 풍속을 바꾸려 하신다면 이것은 백성들을 먼저 인도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뒤 경공은 공손히 공자를 만나고도 그에게 예를 묻지 않았다. - P657
섭공葉公초나라 대부로 이름은 심제양沈諸梁이며 섭 땅에 봉해졌음이 공자에게 정치를 물으니 공자가 말했다. "정치란 먼 곳에 있는 어진 사람을 오게 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의마음을 얻는 데 달려 있습니다." - P678
자로가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군자도 이처럼 곤궁할 때가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곤궁해도 절개를 지키지만 소인은 곤궁해지면 분에 넘치게 된다." 자공이 안색이 변했다. 공자가 말했다. - P681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의 도가 지극히 원대하기에 천하의 그 누구도 선생님을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찌하여 도를 약간 낮추지 않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사야, 훌륭한 농부가 비록 씨 뿌리기에 능하다고 해서 반드시 잘거두어들이는 것은 아니고, 훌륭한 장인匠人이 비록 정교한 솜씨를가졌을지라도 반드시 일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군자가 그 도를잘 닦아서 기강을 세워 그것을 다루고 계통을 세워 그것을 다스리더라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 지금 너는 너의 도는 닦지 않고서, 스스로의 도를 낮추어서까지 남에게 받아들이기를 구하고 있다. 사야, 너의 뜻이 원대하지 못하구나." - P683
안회가 말했다. "도가 닦이지 않는 것은 우리의 치욕입니다. 그러고는 도가 잘 닦여진 인재를 등용하지 않는 것은 나라를 가진 자의 치욕입니다. 받아들여지지않는다고 해서 무슨 걱정이 되겠습니까? 받아들여지지 않고 나서군자의 참 모습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공자는 기뻐서 웃으며 말했다. "그렇던가, 안씨 집안의 자제에게 이런 일이 있었던가! 자네가 만일 많은 돈을 번다면 나는 너의 재가 되겠다." - P684
"거칠구나, 유여!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일어나지 않고, 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들어맞지 않고, 형벌이 들어맞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과 발을 잘못 두어도 어찌하지 못한다." - P686
공자는 네 방향으로 제자들을 가르쳤으니 문文학문, 행行품행, 충忠충서, 신信신의이다. 그러고는 네 가지를 못하게 했으니, ‘억측하지말 것‘, ‘무단으로 하지 말 것‘, ‘고집하지 말 것‘, ‘아집하지 말 것‘ 등이다. 이 사람이 신중히 했던 바는 재계齋戒, 전쟁, 질병이었다. - P691
자뢰가 말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등용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기예를배울 수 있었다.‘ 라고 하셨다." - P693
태사공은 말한다. "천하에는 군왕에서 어진 사람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모두 살아 있을 때에는 영예로웠으나죽으면 끝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벼슬을 하지 않았지만 여남은 세대를 전해내려 오면서도, 학자들이 그를 받들었다. 천자와 왕후로부터중원의 각 나라 중에 육예六藝를 말하는 자는 모두 공자에게서 그 절충점을 찾고 있으니 가히 공자는 지극한 성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P699
"너희들은 비를 만나 모두 기한을 어겼다. 기한을 어기면 마땅히목을 베어야 한다. 만약 너희들이 목 베임을 당하지 않더라도 변경을 지키다 죽는 사람이 본래 열 가운데 예닐곱은 된다. 하물며 장사는 죽지 않을 뿐인데, 만약 죽으려 하면 바로 커다란 명성을 남겨야 하는 것이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어찌 씨가 있겠느냐?" - P707
박태후는 친정이 위魏나라 왕의 후손이고, 일찍이 부모를 여의었으며, 그 박 태후를 받든 여러 위씨 가족 중에는 힘이 되어 준 자가 있다고생각하고, 이에 위씨 가족의 요역과 세금을 면제하도록 했으며 가깝고 먼 것을 따져서 각기 달리 상을 내려 주었다. 박씨 가족 가운데에서 후侯에 봉해진 사람은 통틀어서 한 명뿐이다. - P734
오나라와 초나라 등이 모반하였을 때, 두태후는 사촌 동생의 아들 두영을 따라가 유협들과 스스로 교류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군대를 거느리고 군공을 세움으로써 위기후魏其侯가 되었다. 두씨 세 사람이 모두 후가 된 것이다. 두 태후는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의 학설을 좋아하였으므로, 경제景帝와 태자 및 두씨의 외척들은 모두 『황제』와 『노자』를 읽지 않을수 없었으며 그들의 학설을 받들었다. - P738
저 선생은 말한다. 남편은 용과 같이 변한다. 전하여 말하기를 뱀이 변하여 용이 되는 - P748
데, 그 무늬는 변하지 않는다. 가家가 변하여 국國이 되었지만 그 성씨姓氏는 변하지 않는다." 라고 했으니 남편이 부귀할 당시에는 온갖 죄악이없어지고 가려져 영화만이 빛나지만, 빈천할 때에는 어찌 그리 잘 연루되는가? - P749
위발은 소평을 속여 말했다. "왕이 군대를 일으키고자 하지만, 한나라 조정의 호부虎符왕이 신하에게 병권을 맡길 때 주는 징표로써 시험해 볼 수 없소. 그리고 당신이왕궁을 포위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오. 내가 청하건대 당신을 위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왕궁을 지키는 임무를 다하겠소" - P778
소평은 이 말을 믿고, 즉시 위발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왕궁을 포위하게 했다. 위발은 군대를 거느리게 되자 그 군대들을 데리고상국의 집을 포위했다. 소평이 말했다. "아! 도가道家의 말에, ‘마땅히 끊어야 할 것을 끊지 못하면 도리어 그 재난을 입는다.‘ 라고 했으니 이런 말이구나."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제왕은 사균을 상국으로 삼고, 위발을 장군으로 삼았으며, 축오를 내사로 삼았고, 나라 안의 모든군사를 징발했다. - P779
"제왕의 외가인 사균은 사납고 오만하여, 호랑이가 갓〔冠)을 쓴것 같습니다. 바야흐로 여씨들 때문에 거의 온 천하를 어지럽게 하였는데, 지금 다시 제왕을 추대함은 다시 여씨 집단을 세우려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代王의 외가 박씨薄氏는 군자 중에서도 장자長者이고 또한 대왕은 고조의 친아들로 지금까지 아직 살아 있으며 아울러가장 나이가 많습니다. 고조의 아들로서 순조롭게 양위하고 사람들을 잘 대하게 되면 대신들이 마음을 편안히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 P782
한왕이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삼진三秦을 평정할 때, 소하는 승상으로 남아 파촉巴蜀을 지키며, 지역을 안정시키고 명령을 깨우쳐알려 주고 백성들로 하여금 군대에 양식을 공급하게 했다. 한나라 2년, 한왕은 제후들과 초나라를 공격하였는데, 소하는 관중을 지키며 태자를 모셨으며, 역양을 다스렸다. 그는 법령과 규약을 만들었고, 종묘, 사직, 궁실과 현읍을 세워, 그때마다 한왕에게아뢰어 한왕이 옳다고 하여 허락을 하면 일을 처리했다. 만일 한왕에게 아뢰지 못하여 갑자기 편리한 대로 시행하면 한왕이 와서 직접들었다. 소하는 관중에서 호적과 인구를 관리하고 식량을 징수하여수로를 거쳐 군대에 공급했다. 한왕이 여러 차례 군대를 버리고 달아났으나, 소하는 항상 관중의 병졸을 징발하여 군대의 빠진 인원수를 메웠다. 한왕은 이런 이유 때문에 소하에게 관중의 일을 전적으로 맡겼다. - P798
"사냥에서, 들짐승과 토끼를 쫓아가 죽이는 것은 사냥개이지만, 개 줄을 풀어 짐승이 있는 곳을 알려 주는 것은 사람이오. 지금 여러분들은 한갓 들짐승에게만 달려갈 수 있는 자들뿐이니, 공로는 마치사냥개와 같소. 소하로 말하면 개의 줄을 놓아 방향을 알려 주니, 공로는 사냥꾼과 같소. 더욱이 그대들은 단지 혼자서 나를 따랐고 많아 봤자 두세 명뿐이었소. 지금 소하는 그의 모든 가문의 수십 명을거느리고 나를 따라 전쟁을 치렀으니, 그의 공은 잊을 수 없소." 여러 신하들은 모두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P800
며칠이 지나, 왕씨王氏 성을 가진 위위衛尉가 고조를 모시며장차 나아가 물어 말했다. "상국이 무슨 큰 죄를 저질렀기에 폐하께서는 그를 그렇게 심하게 묶으셨습니까?" 황상이 말했다. "내가 듣기에 이사가 진 황제진시황를 보좌할 때 업적이 있으면 주상에게 돌렸고 과실이 있으면 자신이 가졌다고 했소. 지금 상국은 간사한 상인들에게 뇌물을 받고도 백성을 위한다며 나의 상림원을 달라고 하는데, 이는 스스로가 백성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것이므로 그를 묶어서 다스리려는 것이오." 왕씨 성을 가진 위위가 말했다. "직책상 만일 백성들에게 편리함이 있어서 백성들을 위하여 요청한 것은 진정 재상의 일인데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상국이 상인들의돈을 받았다고 의심하십니까? 또한 폐하께서 초나라와 대치하신 지여러 해 되었고, 진희와 경포가 모반했을 때 폐하께서는 스스로 장수가 되어 평정하러 갔는데, 이때에도 상국이 관중을 지키면서 발을빼고 동요하였더라면 함곡관 서쪽 지역은 폐하의 소유가 아닐 것입 - P805
니다. 상국은 그 당시에도 이익을 취하지 않았는데, 설마 지금 상인의 돈으로 이익을 도모하였겠습니까? 또한 진시황은 자신의 과실을듣지 않아 천하를 잃었고, 이사가 허물을 나누어 맡는 것도 무슨 본받을 만한 것이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재상을 의심하는 수준이 이다지도 낮습니까?" 고조는 기분이 언짢았다. 이날, 사신에게 지절을 가지고 가게 하여 상국을 풀어 주었다. 상국은 나이가 많았는데 공손하고 삼갔으므로 궁궐에 들어와 황제를 뵙고 맨발로 사죄했다. 고조가 말했다. "상국은 이러지 마시오! 상국은 백성을 위하여 상림원을 요청하였는데, 나는 허락하지 않았으니, 나는 걸傑과 주紂 같은 군주에 지나지 않고, 상국은 어진 재상이오. 내가 상국을 구금한 까닭은 백성들로 하여금 나의 잘못을 듣도록 하고자 함이었소." - P806
조참의 공적은 다음과 같다. 대체로 두 제후국과 백이십이 개 현을 함락했고, 제후왕 두 명, 재상 세 명, 장군 여섯 명을 사로잡았으며 대막오大莫敖초나라 작위 이름으로 경계에 해당 군수郡守, 사마司馬, 후侯, 어사御史 각 한 명을 사로잡은 것이다. - P818
조참이 아직 벼슬하지 않았을 때에는 소하와 사이가 좋았으나, 나중에 한 사람은 장군이 되고 한 사람이 승상이 되었을 때에는 틈이생겼다. 그러나 소하가 죽음을 앞두고 현명하다고 추천한 사람은 오직 조참이었다. 조참은 소하를 대신하여 한나라의 상국이 되어 모든일을 바꾸거나 고치는 일이 없이 한결같이 소하가 제정한 법령에 따랐다. - P820
태사공은 말한다.
"상국 조참이 성을 공격하는 야전野戰의 공이 이와 같이 많다고볼 수 있는 근거는 회음후와 같다. 한신이 멸망하고 나서 열후의 공을 봉한 것 중에 조참만이 그의 명성을 휘날렸다. 조참이 한나라의상국이 되자, 청정淸淨을 온 힘으로 말하여 도가의 원칙과 합치시켰다. 그러나 백성들이 진秦나라의 잔혹함에서 벗어난 이후에 조참은그들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도록 하였으므로 천하 사람들이 모두 그의 미덕을 찬미한 것이다." - P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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