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세가 - 개정판 사기 (민음사)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사기 세가는 패권을 장악한 일인자의 옆에서 도움을 준 참모나 제후들, 후비들의 이야기다.

세가는 총 3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기별로는 춘추 전국시대가 18편, 한나라 시대가 12편이다.
서술 방식은 본기와 마찬가지로 인물의 행적을 기본 바탕으로 역사적 사건을 연계시키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사기의 장점이라면 역시 대화문인데 인물의 일화를 보여줄 때 그것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자치통감에서 보여주는 평서문의 서술 방식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방식이다.

세가에 어떤 인물이 포함되었는지 살펴봄으로써 사마천의 시각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유방의 핵심 참모들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유방이 세력을 이끌고 초나라와 최종적으로 승리할 때까지 큰 도움을 준 핵심 참모라면 소하, 진평, 장량, 한신이 있다. 한신은 제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세가에서 빠진 반면 나머지는 세가에 나란히 올랐다. 세 명의 인물에 대한 사마천의 평가도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데 흥미로웠다.

그리고 공자와 진섭이 세가에 포함되었다.
공자를 세가에 포함시킨 것은 유가의 사상적 구심점이 된 인물이기도 하고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면서도 자신을 제대로 알아봐주지 않는 제후들에 대한 아쉬움과 한탄이 자신의 삶과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 같다.
진섭은 진나라가 멸하고 한나라가 설 때까지 그 흐름을 시작한 주자라는 것을 높게 평가한 것이 아닌가 한다.

사마천은 제후가 되었더라도 반역 혐의를 받아 제후 작위를 박탈당한 인물의 경우 세가에서 제외시켰다.
그는 원칙이나 질서가 중요하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에 비켜서 있으면 당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더라도 비판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본기에서는 ‘항우 본기’가 백미였다면 세가는 한 고조의 개국 공신들의 이야기인 ’소 상국(소하) 세가‘, ’유후(장량) 세가‘, ’조 상국(조참) 세가‘가 백미였던 것 같다.
각 인물들의 서로 다른 행위를 통해서 그들이 제후의 반열에 오른 이유, 그리고 제후에 오르고 나서 한 고조에게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행하는 행동들을 보는 것에 재미가 있었다.
소하가 살림꾼이었다면 장량은 비상한 계책을 낼 줄 아는 모사꾼이었고 조참은 현실적으로 자기 이득을 잘 챙길 줄 아는 자였던 것 같다.
유방은 권력의 정점에 오른 그들과 기싸움을 벌이며 그들의 힘을 끊임없이 견제한다.

공신에 대한 봉읍과 작위를 나누는 자리에서 소하와 다른 공신들의 차이를 말하며 사냥개와 사냥꾼의 차이에 비유하는 일화가 있다.
“사냥에서, 들짐승과 토끼를 쫓아가 죽이는 것은 사냥개이지만, 개 줄을 풀어 짐승이 있는 곳을 알려 주는 것은 사람이오. 지금 여러분들은 한갓 들짐승에게만 달려갈 수 있는 자들뿐이니, 공로는 마치 사냥개와 같소. 소하로 말하면 개의 줄을 놓아 방향을 알려 주니, 공로는 사냥꾼과 같소.” - P800
전쟁터에서 싸우는 장수들이 공신의 최고봉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소하는 유방이 항우와의 싸움을 하는 동안 관중의 땅을 지키고 백성을 잘 보호하였으며 유방의 군대의 수가 모자라지 않게 끊임없이 채우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고조가 장량에게 제나라 삼만호를 준다 이야기하자 그는 유현에 봉해지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삼만호는 감당하지 못한다 이야기한다. 이후에도 공신들을 봉하는 일에 잡음이 끊이지 않자 이를 잠재우기 위해 장량이 고조에게 계책을 내는 장면도 있다.
“황상께서 평생 동안 미워하시는 자로 여러 신하들도 다 아는 사람 중에서 누가 가장 심합니까?” 황상이 대답했다.
“옹치는 나와 오랜 원한이 있으니, 그는 일찍이 자주 욕되게 하여 내가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그의 공이 많기에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소.” 유후가 말했다. “지금 시급히 먼저 옹치를 봉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보여주십시오. 여러 신하들은 옹치가 봉해지는 것을 보고, 사람들마다 자신들도 봉해지리라 굳게 믿고 의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 P842
옹치가 후가 된 것을 보고 다른 공신들은 더는 안절부절하지 않았다.

조참과 소하는 사이가 좋았으나 소하가 승상이 되고 조참이 장군이 되자 자연스레 거리가 생겼다. 하지만 소하는 죽기 전 조참을 승상으로 추천했고 조참이 조 승상이 된 이후에는 소하가 해온 일을 잘 이어받아 한나라를 안정시켰다.
조참은 제나라를 분봉받은 후 황로학설에 정통한 갑공이라는 사람을 초청한다. 그는 국가를 다스리는 이치를 그에게 물었는데 “귀한 것은 맑고 고요한 것이니 그렇게 되면 백성들은 스스로 안정되며, …” 조참은 이 황로학설을 받아들이고 제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정책으로 삼은 뒤 나라가 안정되었다고 한다.

한나라 공신들의 세가 말고도 개인적으로 제나라가 강씨에서 전씨로 바뀌는 과정이 나오는 전경중완 세가, 한 문제와 무제의 아들들에 대한 세가들도 재미났는데 업적으로는 공이 있다고는 해도 인품이나 사생활 등에서는 일반 사가의 자제들만 못한 점이 엿보인다. 이들도 욕망에 휩쓸리기 쉬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로써 사기 본기와 세가를 모두 읽게 되었는데 본기를 읽으면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해간다는 생각으로 읽었다. 열전까지 읽으면 사기의 흐름이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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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4-03 0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마천이 쓴 글을 보면 그때 사람뿐 아니라 사마천도 조금 알게 되겠네요 이건 어느 역사가나 다르지 않겠습니다 사실을 쓴다 해도 자기 생각을 쓰기도 할 테니...


희선

거리의화가 2023-04-03 08:47   좋아요 1 | URL
네. 사기를 읽다 보니 사마천이 어떤 시각으로 이 책을 썼는지 느껴지더라구요. 비단 역사가 뿐 아니라 작가들도 자신이 쓴 저작에는 주관적인 관점이 들어가는 것이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읽으면 왕 노릇 하려는 자의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십년 후에 그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십삼 년 뒤에 젊은이가 또 제북濟北에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인데, 곡성산〔黃石〕이 나다."
누런 돌아래의그러고는 결국 떠나니, 다른 말도 없었고 다시는 만날 수도 없었다. 날이 밝아 그 책을 보았더니 곧 『태공병법太公兵法』이었다. 이에장량은 그 책을 기이하게 여겨 늘 익히고 외워 가며 읽었다. - P829

장량이 말했다.
"패공께서는 정녕 항우를 배신하려고 하십니까?"
패공이 말했다.
"소인배들이 나더러 함곡관을 막고 다른 제후의 군대를 거두어들이지 않아도 진나라 땅이면 천하의] 왕 노릇 할 수 있다고 하여 그말을 들은 것이오."
장량이 말했다.
"공께서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항우를 이길 수 있습니까?"
패공은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있다가 말했다.
"진실로 불가능하오. 지금 어떻게 하면 되오?"
장량은 한사코 항백을 만나자고 했다. 이에 항백이 와서 패공을만나자 패공은 그와 함께 술을 마시며 축수하고 혼인 관계도 맺었다. 그러고는 항백에게 패공은 항우를 감히 배반하지 않았으며, 함곡관을 지킨 것은 다른 도적들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 P833

장량이 한韓나라에 이르렀을 때, 한왕韓王 성成은[그 부하인 장량이 한왕漢王을 따라갔다는 이유로 항왕이 한왕그 봉국성을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고 자신을 따라 같이 동쪽으로 데 가고자했다.
장량이 항왕을 설득하여 말했다.
"한왕漢王이 잔도를 태우고 끊어 버렸으니 돌아올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장량은 제나라 왕 전영이 다시 모반했다는 것을 글로 항왕에게 아뢰었다. 항왕은 이 때문에 서쪽의 한왕漢王을 걱정하는 마음이 없어졌으므로 군대를 일으켜 북쪽으로 제나라를 공격하러 갔다. - P834

네 사람이 장차 나아가 대답하며 각각 이름과 성을 말하기를 동원공東園公, 각리선생角里先生,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이라고 했다. 그러자 황상은 크게 놀라며 말했다.
"짐이 공들을 가까이 하고자 한 것이 몇 년이나 되었는데, 공들은짐을 피하여 달아나더니, 이제 공들이 어찌하여 스스로 내 아들을따라 교유하는가?" - P847

"폐하께서는 선비를 하찮게 여기고 욕도 잘하니 신들이 의로움에욕을 먹지 않을까 하여 두려운 마음에 달아나 숨었던 것입니다. 저희들이 듣건대, 태자께서는 사람됨이 어질고 효성스러우시며 사람을 공경하고 선비를 아끼셔서 천하에는 목을 빼고 태자를 위해서 죽지 않으려 하는 자가 없으므로 신들이 찾아온 것일 뿐입니다."
황상이 말했다.
"귀찮겠지만 공들께서 끝까지 태자를 잘 보살펴 주기 바라오."
네 사람이 축수를 마치고 이윽고 떠나가자, 황상은 눈짓으로그들을 전송하면서 척부인을 불러 그 네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짐이 태자를 바꾸고자 하였으나, 저 네 사람이 보좌하여 태자우익羽翼이 이미 성장했으니 그 지위를 바꾸기 어렵소. 여후는 진정으로 그대의 주인이오." - P848

장자방張子房이 처음에 하비의 다리 위에서 만난 노인이 자기에게『태공서』를 주고 나서 십삼 년이 지나 고제를 따라 제북을 지나갔는데 과연 곡성산 아래에서 누런 돌을 보게 되어, 그것을 가지고 돌아와 보물처럼 받들며 제사까지 지냈다. 유후가 죽자 누런 돌도 함께매장했다. 그 후 사람들은 무덤에 오르거나 복일 日과 납일는 누런 돌에도 제사를 지냈다. - P850

진평이 말했다.
"신이 위왕을 섬겼으나 위왕은 신의 말을 쓸 수 없어 위왕을 떠나항왕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항왕은 다른 사람은 믿지 못하였고그가 신임하고 총애하는 사람은 항씨가 아니면 그의 아내의 오라버니들이었으니, 비록 빼어난 선비라도 등용될 수 없어 저는 곧초나라를 떠났던 것입니다. 듣건대 한왕께서 사람을 잘 가려 쓰신다기에 대왕께 귀의한 것입니다. 신은 맨몸으로 온 탓에 금품을 수수하지 않고는 자금으로 삼을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진실로 신의 계책 중에서 받아들일 만한 것이 있다면 원컨대 대왕께서는 그것을 쓰시고, 만약 쓸 만한 것이 없다면 금전이 아직 그대로 있으니, 청컨대잘 봉하여 관청으로 보내고 사직하여 집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 P863

"초나라에도 어지러워질 수 있는 것이 있으니, 저항왕의 강직한 신하들은 아보亞父, 종리매鍾離昧, 용저龍且, 주은周殷 같은 무리 등 몇사람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대왕께서 진실로 수만 근황을기꺼이 내놓으시어 이간책을 행하여 초나라 군신들을 이간질하여그들로 하여금 의심하는 마음을 품게 하시면 항왕의 사람됨이 시기하고 참언을 잘 믿으므로 반드시 안에서 서로가 주살할 것입니다.
한나라는 이 틈을 타 군대를 거느리고 공격하면 초나라를 반드시 격파할 수 있습니다." - P864

진평이 말했다.
"옛날에는 천자가 순수하며 제후를 만났습니다. 남방에 운몽이라는 곳이 있는데, 폐하께서는 그저 나가시어 거짓으로 운몽을 순수하시면서 제후들을 진陳땅으로 불러 모으십시오. 진 땅은초나라의 서쪽 경계인데, 한신은 천자가 순수하시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듣고, 그 형세상 반드시 아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교외에서 맞이하여 뵈려고 할 것입니다. 이 사람이 뵈러 올때 폐하께서 그 틈에 그를 사로잡으십시오. 이는 단지 한 사람의 역사가 할 일일 뿐입니다." - P867

한왕유방이 군사를 돌려 항적항우을 공격할 때, 왕릉은 비로소 군사를 한나라에 예속시켰다. 항우는 왕릉의 어머니를 잡아다군중에 두었다. [이에] 왕릉의 사자가 도착하자 왕릉의 어머니를쪽을 바라보며 앉게 하고는 왕릉을 불러들여 자신에게 귀의 시험고자 했다. 그러나 왕릉의 어머니는 비밀리에 사자를 보내면서 흐느끼며 말했다.
"이 늙은이를 위해서 왕릉에게 말하기를 한왕을 삼가 섬기라고해 주십시오. 한왕은 장자이니 이 늙은이 때문에 두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하시오. 나는 죽음으로써 당신을 전송하리다."
드디어 칼을 품고 죽었다. 항왕은 노여워하여 왕릉의 어머니를 삶았다. 왕릉은 마침내 한왕을 수행하여 천하를 평정했다. - P872

한왕이 팽성에서 패배하여 서쪽으로달아날 때, 초나라 왕은 한왕의 아버지와 여후를 잡아서 볼모로 삼았는데, 심이기는 사인舍人가신여후를 모셨다. 그 뒤 심이기는 한왕을 따라가 항적를 쳐부수어 후侯가 되었고, 여후에게총애를 받았다. 승상이 되어 궁중에 머무르자 모든 관리들은 다 그를 통하여 일을 결정하였다. - P873

태사공은 말한다.
"그는 항상 기이한 계책을 내어 아귀다툼하는 어려움을 구해 주었고, 국가의 근심거리를 떨쳐냈다. 여후 때에 이르러 사건이 정말 많았으나, 진평은 끝내 스스로 화를 벗어났고, 종묘사직을 안정시켜 영예로운 이름으로죽어 어진 재상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으니, 어찌 시작도 잘 하고 끝도 잘 맺었다고 하지 않겠는가! 지혜와 책략이 없었다면 누가 이와같을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 P877

주발은 사람됨이 순박하고 강하며 인자하여, 고조는 큰일을 맡길만하다고 생각했다. 주발은 문학을 좋아하지 않아서 유생과 유세객을 접견할 때마다 동쪽으로 향해 앉아 그들을 재촉하여 말했다.
"빨리 나에게 말하시오!"
그는 질박하고 꾸밈이 없는 것이 이와 같았다. - P887

"천자께서 곧 도착할 것이오!"
군문의 도위都尉가 말했다.
"장군께서 영을 내려, ‘군중軍中에서는 단지 장군의 명령만 듣고천자의 조서도 듣지 말라.‘ 라고 하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가 도착하였는데도 그 역시 들어갈 수 없었다. 이에 황상은 사신을 보내어 부절을 지니고 장군에게 조서를 내렸다.
"짐이 군대를 위문하고자 군영에 들어가려 한다."
주아부는 그제야 명령을 전하게 하여 성벽 문을 열게 했다. 성벽문을 지키는 관리들이 황제의 거기병의 속관에게 말했다.
"장군의 규약에는 군영에서는 말을 달릴 수 없습니다." - P892

이에 문제는 고삐를 잡고 천천히 걸어갔다. 군영에 이르니 장군주아부가 무기를 들고 공손히 절하면서 말했다.
"갑옷 입고 투구를 쓴 무사는 절을 하지 않는 법이니, 군대의 예로뵙고자 합니다."
천자는 감동하여 얼굴빛을 엄숙히 하고서 수레 앞 횡목에 의지하여 경의를 표하고는 사람을 보내 감사의 말을 했다.
"황제인 내가 삼가 장군을 위로하는 것이오."
예의를 갖추고는 떠났다. 이미 군영의 문을 나오자 여러 신하들이모두 놀라니 문제가 말했다.
"아! 이 사람은 진정한 장군이구나! 이전에 본 패상과 극문의 군영은 아이의 노리개 같다. 그곳의 장군은 정말 몰래 공격하여 사로잡을 수 있겠지만, 주아부라면 어찌 범할 수가 있겠는가!" - P893

태사공은 말한다.
"강후 주발은 처음에 벼슬하지 않을 때는 하찮고 소탈한 사람이었으며 재능이 일반 사람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가 고조를 따라 천하를 평정하니, 항상 장군과 재상의 자리에 있었으며, 여러 여씨가난을 일으키려 하자, 주발은 국가의 어려움을 바로잡아 그것을 올바른 데로 상태로 회복시켰다. 비록 이윤伊尹주공周公이라고 하더라도 어찌 그보다 낫겠는가! 주아부가 병사를 다룰 때 위엄과 무게를 유지하고 굳건하게 견뎌내었으니 사마저司馬穰苴라도 어찌 그보다 낫겠는가!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배우지 않고, 절조를 지켰으나 겸손하지는 않아, 결국 빈궁한 데에 이르렀으니 슬프구나!" - P899

양효왕은 두 태후의 작은아들인데 [두 태후는] 그를 매우 총애하여내려 준 물건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때 효왕은 동원東苑을 짓고있었는데 사방 삼백리 남짓이나 되었다. 또 수양성을 칠십 리나 넓혔다. 궁실을 크게 짓고 복도複道를 만들었는데 궁궐로부터 평대까지가 삼십여 리나 이어졌다. 천자의 깃발을 하사 받았으며,
외출할 때 일천 대의 수레와 일만 명의 기병이 따라갔다. 동쪽과서쪽으로 수레를 달리며 사냥하는 것이 천자에 버금갔다. 외출할때는 ‘필‘이라고 말하여 통행하는 사람을 끊게 하고 궁궐로 돌아올 때는 ‘경警‘ 이라고 말하여 경비를 강화했다. 사방의 호걸들을 불러들여 효산 동쪽에서 유세하는 선비들 가운데 오지 않은 자가 없었으니제나라의 양승勝, 공손궤公孫詭, 추양鄒陽문학가의 무리들이다. - P905

양 효왕은 자애롭고 효성스러워, 매번 두 태후가 병에 걸렸다는소식을 들으면 입에 음식을 대지도 않고 편안히 잠도 자지 않았으며항상 장안長安에 눌러앉아 두 태후를 모시고 싶어 했다. 태후도 그를매우 아꼈다. 양 효왕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자, 두 태후는 통곡하여 비통해하기 이를 데가 없었으며 음식을 먹지도 않고 말했다.
"황제가 과연 내 아들을 죽였구나!"
경제도 슬프고 두려워서 어쩔 줄 몰랐다. 그래서 장공주와 이 일을 의논하여, 양나라를 나누어 다섯 개의 작은 나라로 만들고, 양효왕의 다섯 아들을 모두 왕으로 세우고, 다섯 딸들에게는 탕목읍湯沐邑을 식읍으로 주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처리한 것을 두 태후에게아뢰니 두 태후는 그제야 기뻐하며 경제를 위하여 음식을 한 차례먹었다. - P908

태사공은 말한다.
"고조 때는 제후들이 모두 세금을 거두었으며 스스로 내사內史민정 담당 관리 이하의 관리를 임명했다. 한나라 조정은 승상만을 두었는데 그 승상은] 황금 인테을 찼다. 제후들은 스스로 어사, 정위정廷尉正형옥刑獄을 관장하는 관리, 박사 등을 제수할 수 있었으니 [위상이) 천자에 버금갔다. 오나라와 초나라가 모반한 이후 오종이왕이 된 시대에 한나라는 제후국에 이천 석급의 관리들을 두었고,
‘승상‘ 이란 말을 없애고 ‘상相‘ 이라고 부르며 은인銀印을 허리에 차게 했다. 제후들은 단지 세금만을 거두었고 그들의 통치] 권한은빼앗겼다. 그 이후의 제후들 가운데 가난한 자들은 우거소가 끄는수레를 타기도 했다." - P936

신 승상 장청적, 태복太僕신공손하, 어사대부를 겸한 태상 신조충,
태자소부 신임안은 종정의 일을 겸하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옵니다. 신장청적 등이 이전에 "대사마신 곽거병이 상소하여 아뢰면서 황자에게 아직 봉호와 작위가 없다."라고 아뢰었고 신은 삼가 어사대부장탕, 중이천 석, 이천 석급, 간대부 및 박사 신경慶 등과 더불어 죽음을무릅쓰고 황자인 신유굉 등을 제후왕으로 삼으실 것을 주청하였습니다. 폐하께서는 문무를 겸양하시고 몸소 스스로 엄격하였으나 황자들에게는 아직 가르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여러 신하들의 논으로는, 유학가儒家들은 입으로는 그들의 방법을 말하면서 간혹 속으로 그들의 마음과 어그러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폐하께서는 굳이 마다하시며 허락하지 않다가 황자를 열후에 봉해야 된다고 하십니다. 신 장청적 등이 삼가 열후인 신 성소의 현손인 찬후로 나중에 태상이 됨등 스물일곱 사람과 논의해 보니, 모두가 그것은 높고 낮음의 순서를 잃 - P948

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고황제께서는 천하를 세우시고 한漢나라에게는 시조가 되시며, 자손들을 왕 노릇 하게 하였으며 서자들의 보좌를 넓히셨습니다. 선제의 법칙은 바뀌지 않았으므로 따라서 지극히 존귀한 자리를 선양하였던 것입니다. 신은 청하건대 사관으로 하여금 좋은 날을 택하여, 예의를 갖추어 황제를 모시고, 어사로 하여금 전국 지도를 바치게 하고, 다른 것들은 모두 과거의 관례에 따라 처리하시기 바라옵니다.
이에 황제는 조서를 내려 말했다.
"허락하노라." - P949

태사공은 말한다.
"옛사람이 하는 말이 있으니 그를 아끼면 그가 잘살게 되기를 바라며, 그를 가깝게 여기면 그가 존귀하게 되기를 바란다.‘ 라고 했다. 따라서 제왕이 된 자는 구획을 정하여 나라를 세우고 자제들을세워 봉해 주었다. 친족을 기려 상을 주고, 골육을 구분하고, 주상을존중하고, 종족宗族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같은 성의 세력을 천하에넓히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형세는 굳세지고 왕실은 비로소 안정된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별다른 점이 없으므 - P952

로 논할 필요도 없다. 연나라와 제나라 사적事迹은 수집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삼왕三王을 책봉하는 데서 천자는 공손하고 겸양하여 군신들은 도의를 지키며 문사가 찬란하니 매우 볼 만한 것이있다. 따라서 이들을 『세가』에 덧붙인다." - P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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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한 세가
지리상으로 둘러싸여 불리함에도 조용한 강자로 오래 자리를 지킨 저력

16. 전경중완 세가
제나라가 전씨의 세상이 된 배경

17. 공자 세가

18. 진섭 세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19. 외척 세가
후비 세가. 인품이 바탕이 되어야. 여성의 정치적 역할

22. 제 도혜왕 세가
한신이 유방에 의해 죽임을 당한 뒤 유방이 자제들을 봉후한 제후국 중 가장 강력했던 나라가 제
도혜왕은 고조 첩 소생 중 유비

23. 소 상국 세가
소하. 유방에게 소하가 없었다면?

24. 조 상국 세가
조참. 소하의 뒤를 이은 재상으로 크게 욕심을 내지 않았다.(처세에 능한) <-> 한신과의 비교

공중치가 말했다.
"안 됩니다. 우리를 공격하는 것은 실제로는 진나라이고, 헛된 이름으로 우리를 돕겠다고 하는 것은 초나라입니다. 왕께서 초나라의헛된 이름에 의지하여 강력한 진나라와 가볍게 관계를 끊고 적으로삼는다면, 반드시 천하의 큰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또한 초나라와 한나라는 형제 나라도 아니고, 또한 평소에 약조를 하거나 모의하여 진나라를 공격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진나라와 한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할 움직임이 있자, 군사를 일으켜 한나라를 구원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진진의 계책임에 틀림없습니다. 더욱이 왕께서 이미 사람을 보내 진나라에 알렸는데도 지금 가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진나라를 속이는 것입니다. 강력한 진나라를 가벼이 속이고, 초나라 모신謀臣의 말을 믿는다면 왕께서 후회하실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한나라 왕은 이를 듣지 않고, 마침내 진나라와 관계를끊었다. 진나라는 이로 인해 크게 노여워하여 병사를 증강하여 한나라를 공격해 크게 싸웠는데 초나라의 구원병이 한나라에 오지 않았다. - P598

"당신께서는 반드시 한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진나라를 나중에 생각하며,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장의를 나중에 생각해야 합니다. 당신께서는 빨리 나라를 제나라와 초나라와 연합하는 것이 더 나으니,
그리 되면 제나라와 초나라는 반드시 당신에게 나랏일을 맡길 것입니다. 당신이 미워하는 바는 장의의 계책이지만 실제로는 진나라를무시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 P602

한나라가 제나라와 위나라를 끼고서 초나라를 포위하면, 초나라는 반드시 당신을 존중할 것입니다. 당신께서진나라와 초나라의 권위를 끼고 한나라에 덕을 쌓는다면, 공숙과 백영은 나라를 공에 의지하여 운영할 것입니다." - P602

무우가 죽었을 때, [아들] 무자개武子開와 희자기釐子乞가 태어났다. 전희자기는 제나라 경공景公이름은 저구杵臼을 섬겨 대부가 되었으며, 그가 백성들에게서 거두어들인 세금은 작은 말로 받았고, 그가 백성들에게 창고의 곡식을 베풀 때는 큰 말로 주었으므로, 백성들에게 음덕을 베풀었고, 경공도 못하게 하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전씨는 제나라 백성들의 마음을 얻게 되었고, 종족은 더욱 강성해져 백성들은 전씨를 그리워하게 됐다. 안자가 여러 차례 경공에게 간언하였으나, 경공은 듣지 않았다. - P613

"덕을 베푸는 것은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바이니 왕께서 그것을시행하시고, 형벌이란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이니 신이 청컨대 그것을 집행하겠습니다."
이렇게 시행한 지 오 년이 되자 제나라 정권은 모두 전상에게 귀속되었다. 전상은 이에 포鮑, 안봇, 감지와 공족들 가운데 세력이 강한 자들을 모두 죽이고, 제나라 영토 가운데 안평安平의 동쪽에서 낭야郞邪에 이르는 땅을 떼어 내어 자신의 봉읍으로 삼았는데, 그봉읍은평공의 식읍보다도 컸다.
전상은 이에 제나라 여인 중에서 키가 일곱 자(尺] 이상 되는 이를후궁으로 삼으니, 후궁이백여 명이나 되었고, 빈객과 사인들로하여금 후궁에게 드나드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 전상이 죽을 때에는아들이 칠십여 명이나 되었다. - P619

양혜왕이 말했다. "과인과 같이 작은 나라에도 한 치 되는 진주가 수레 앞뒤에서 비추고 있고 열두 대 수레에 진주가 열 개가 있는데 어찌하여 만 대의 수레를 내는 나라에서 보기가 없겠습니까?"
위왕이 말했다.
"과인이 보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왕과는 다릅니다. 우리 신하 중에 단자檀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로 하여금 남성南城을 지키게 하면, 초나라 사람이 감히 도적이 되어 동쪽으로 쳐들어오지 못하고,
사수가의 열두 제후들이 모두 조회하러 옵니다. 우리 신하들 가운데 반자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 고당高唐을 지키게 하면,
조나라 사람들이 감히 동쪽으로 황하까지 고기 잡으러 오지 못합니다. 우리 관리 중에는 검부黔夫제나라 신하 이름라는 사람이 있어, 그에게 서주徐州를 지키게 하면, [우리가 침입할까 두려워] 연나라 사람들이 제나라의 분문에 제사를 올리고, 조나라 사람들이 제나라의서문에 제사를 올리며, 그를 따라 옮겨 다니는 무리가 칠천여 가구나 됩니다. 우리 신하 중에는 종수種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도적들을 막도록 하면 길에 물건이 떨어져도 주워 가지 않습니다.
이는 천리를 밝히는 것인데, 어찌 단지 수레 열두 대만을 밝히겠습니까!" - P628

선왕宣王이 문학과 유세하는 선비를 좋아하였으니 추연, 순우곤,
전병田騈제나라 사람, 접여接제나라 사람, 신도愼到조나라 사람, 환연環淵초나라 사람 같은 무리들 일흔여섯 명 모두에게 큰 집을 내려 주고, 상대부上大夫로 삼고, 정무政務를 다스리지 않고 자유롭게 토론하게했다. 이 때문에 제나라 직하稷下에는 학사들이 다시 많아져, 거의수백 명에서 천 명에 이르렀다. - P632

안영이 진언하여 말했다.
"유학자는 해학으로 말재주를 부리지만 법으로 그를 규제할 수는없습니다. 거만하고 스스로 멋대로 해도 그를 아랫사람신하으로 삼을 수 없으며, 그는 상례를 숭상하고 슬픔을 다한다면 가업을 탕진하면서까지 장례를 후하게 치르니 그들의 예법을 습속으로 삼기 어렵고, 유세 다니며 관직을 구하고 녹봉을 취하니 그에게 나라를 다스리게 할 수도 없습니다. 옛날의 어진 사람이 사라진 이래 주周나라가 쇠미해졌고 예악禮樂이 무너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지금 공자는 용모와 복식을 추존하고 번잡스러운 예절만을 따지고 세세한 절차만을 따르고 있으나 그것은 몇 세대를 지나도 아마 다 배울 수 없 - P656

으며 평생 동안 그 예법을 다 마칠 수도 없습니다. 군주께서 그를 채용하여 제나라 풍속을 바꾸려 하신다면 이것은 백성들을 먼저 인도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뒤 경공은 공손히 공자를 만나고도 그에게 예를 묻지 않았다. - P657

섭공葉公초나라 대부로 이름은 심제양沈諸梁이며 섭 땅에 봉해졌음이 공자에게 정치를 물으니 공자가 말했다.
"정치란 먼 곳에 있는 어진 사람을 오게 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의마음을 얻는 데 달려 있습니다." - P678

자로가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군자도 이처럼 곤궁할 때가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곤궁해도 절개를 지키지만 소인은 곤궁해지면 분에 넘치게 된다."
자공이 안색이 변했다.
공자가 말했다. - P681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의 도가 지극히 원대하기에 천하의 그 누구도 선생님을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찌하여 도를 약간 낮추지 않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사야, 훌륭한 농부가 비록 씨 뿌리기에 능하다고 해서 반드시 잘거두어들이는 것은 아니고, 훌륭한 장인匠人이 비록 정교한 솜씨를가졌을지라도 반드시 일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군자가 그 도를잘 닦아서 기강을 세워 그것을 다루고 계통을 세워 그것을 다스리더라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 지금 너는 너의 도는 닦지 않고서, 스스로의 도를 낮추어서까지 남에게 받아들이기를 구하고 있다. 사야, 너의 뜻이 원대하지 못하구나." - P683

안회가 말했다. "도가 닦이지 않는 것은 우리의 치욕입니다. 그러고는 도가 잘 닦여진 인재를 등용하지 않는 것은 나라를 가진 자의 치욕입니다. 받아들여지지않는다고 해서 무슨 걱정이 되겠습니까? 받아들여지지 않고 나서군자의 참 모습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공자는 기뻐서 웃으며 말했다.
"그렇던가, 안씨 집안의 자제에게 이런 일이 있었던가! 자네가 만일 많은 돈을 번다면 나는 너의 재가 되겠다." - P684

"거칠구나, 유여!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일어나지 않고, 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들어맞지 않고, 형벌이 들어맞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과 발을 잘못 두어도 어찌하지 못한다." - P686

공자는 네 방향으로 제자들을 가르쳤으니 문文학문, 행行품행, 충忠충서, 신信신의이다. 그러고는 네 가지를 못하게 했으니, ‘억측하지말 것‘, ‘무단으로 하지 말 것‘, ‘고집하지 말 것‘, ‘아집하지 말 것‘
등이다. 이 사람이 신중히 했던 바는 재계齋戒, 전쟁, 질병이었다. - P691

자뢰가 말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등용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기예를배울 수 있었다.‘ 라고 하셨다." - P693

태사공은 말한다. "천하에는 군왕에서 어진 사람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모두 살아 있을 때에는 영예로웠으나죽으면 끝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벼슬을 하지 않았지만 여남은 세대를 전해내려 오면서도, 학자들이 그를 받들었다. 천자와 왕후로부터중원의 각 나라 중에 육예六藝를 말하는 자는 모두 공자에게서 그 절충점을 찾고 있으니 가히 공자는 지극한 성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P699

"너희들은 비를 만나 모두 기한을 어겼다. 기한을 어기면 마땅히목을 베어야 한다. 만약 너희들이 목 베임을 당하지 않더라도 변경을 지키다 죽는 사람이 본래 열 가운데 예닐곱은 된다. 하물며 장사는 죽지 않을 뿐인데, 만약 죽으려 하면 바로 커다란 명성을 남겨야 하는 것이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어찌 씨가 있겠느냐?" - P707

박태후는 친정이 위魏나라 왕의 후손이고, 일찍이 부모를 여의었으며,
그 박 태후를 받든 여러 위씨 가족 중에는 힘이 되어 준 자가 있다고생각하고, 이에 위씨 가족의 요역과 세금을 면제하도록 했으며 가깝고 먼 것을 따져서 각기 달리 상을 내려 주었다. 박씨 가족 가운데에서 후侯에 봉해진 사람은 통틀어서 한 명뿐이다. - P734

오나라와 초나라 등이 모반하였을 때, 두태후는 사촌 동생의 아들 두영을 따라가 유협들과 스스로 교류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군대를 거느리고 군공을 세움으로써 위기후魏其侯가 되었다. 두씨 세 사람이 모두 후가 된 것이다.
두 태후는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의 학설을 좋아하였으므로, 경제景帝와 태자 및 두씨의 외척들은 모두 『황제』와 『노자』를 읽지 않을수 없었으며 그들의 학설을 받들었다. - P738

저 선생은 말한다.
남편은 용과 같이 변한다. 전하여 말하기를 뱀이 변하여 용이 되는 - P748

데, 그 무늬는 변하지 않는다. 가家가 변하여 국國이 되었지만 그 성씨姓氏는 변하지 않는다." 라고 했으니 남편이 부귀할 당시에는 온갖 죄악이없어지고 가려져 영화만이 빛나지만, 빈천할 때에는 어찌 그리 잘 연루되는가? - P749

위발은 소평을 속여 말했다.
"왕이 군대를 일으키고자 하지만, 한나라 조정의 호부虎符왕이 신하에게 병권을 맡길 때 주는 징표로써 시험해 볼 수 없소. 그리고 당신이왕궁을 포위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오. 내가 청하건대 당신을 위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왕궁을 지키는 임무를 다하겠소" - P778

소평은 이 말을 믿고, 즉시 위발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왕궁을 포위하게 했다. 위발은 군대를 거느리게 되자 그 군대들을 데리고상국의 집을 포위했다.
소평이 말했다.
"아! 도가道家의 말에, ‘마땅히 끊어야 할 것을 끊지 못하면 도리어 그 재난을 입는다.‘ 라고 했으니 이런 말이구나."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제왕은 사균을 상국으로 삼고,
위발을 장군으로 삼았으며, 축오를 내사로 삼았고, 나라 안의 모든군사를 징발했다. - P779

"제왕의 외가인 사균은 사납고 오만하여, 호랑이가 갓〔冠)을 쓴것 같습니다. 바야흐로 여씨들 때문에 거의 온 천하를 어지럽게 하였는데, 지금 다시 제왕을 추대함은 다시 여씨 집단을 세우려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代王의 외가 박씨薄氏는 군자 중에서도 장자長者이고 또한 대왕은 고조의 친아들로 지금까지 아직 살아 있으며 아울러가장 나이가 많습니다. 고조의 아들로서 순조롭게 양위하고 사람들을 잘 대하게 되면 대신들이 마음을 편안히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 P782

한왕이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삼진三秦을 평정할 때, 소하는 승상으로 남아 파촉巴蜀을 지키며, 지역을 안정시키고 명령을 깨우쳐알려 주고 백성들로 하여금 군대에 양식을 공급하게 했다.
한나라 2년, 한왕은 제후들과 초나라를 공격하였는데, 소하는 관중을 지키며 태자를 모셨으며, 역양을 다스렸다. 그는 법령과 규약을 만들었고, 종묘, 사직, 궁실과 현읍을 세워, 그때마다 한왕에게아뢰어 한왕이 옳다고 하여 허락을 하면 일을 처리했다. 만일 한왕에게 아뢰지 못하여 갑자기 편리한 대로 시행하면 한왕이 와서 직접들었다. 소하는 관중에서 호적과 인구를 관리하고 식량을 징수하여수로를 거쳐 군대에 공급했다. 한왕이 여러 차례 군대를 버리고 달아났으나, 소하는 항상 관중의 병졸을 징발하여 군대의 빠진 인원수를 메웠다. 한왕은 이런 이유 때문에 소하에게 관중의 일을 전적으로 맡겼다. - P798

"사냥에서, 들짐승과 토끼를 쫓아가 죽이는 것은 사냥개이지만,
개 줄을 풀어 짐승이 있는 곳을 알려 주는 것은 사람이오. 지금 여러분들은 한갓 들짐승에게만 달려갈 수 있는 자들뿐이니, 공로는 마치사냥개와 같소. 소하로 말하면 개의 줄을 놓아 방향을 알려 주니, 공로는 사냥꾼과 같소. 더욱이 그대들은 단지 혼자서 나를 따랐고 많아 봤자 두세 명뿐이었소. 지금 소하는 그의 모든 가문의 수십 명을거느리고 나를 따라 전쟁을 치렀으니, 그의 공은 잊을 수 없소."
여러 신하들은 모두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P800

며칠이 지나, 왕씨王氏 성을 가진 위위衛尉가 고조를 모시며장차 나아가 물어 말했다.
"상국이 무슨 큰 죄를 저질렀기에 폐하께서는 그를 그렇게 심하게 묶으셨습니까?"
황상이 말했다.
"내가 듣기에 이사가 진 황제진시황를 보좌할 때 업적이 있으면 주상에게 돌렸고 과실이 있으면 자신이 가졌다고 했소. 지금 상국은 간사한 상인들에게 뇌물을 받고도 백성을 위한다며 나의 상림원을 달라고 하는데, 이는 스스로가 백성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것이므로 그를 묶어서 다스리려는 것이오."
왕씨 성을 가진 위위가 말했다.
"직책상 만일 백성들에게 편리함이 있어서 백성들을 위하여 요청한 것은 진정 재상의 일인데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상국이 상인들의돈을 받았다고 의심하십니까? 또한 폐하께서 초나라와 대치하신 지여러 해 되었고, 진희와 경포가 모반했을 때 폐하께서는 스스로 장수가 되어 평정하러 갔는데, 이때에도 상국이 관중을 지키면서 발을빼고 동요하였더라면 함곡관 서쪽 지역은 폐하의 소유가 아닐 것입 - P805

니다. 상국은 그 당시에도 이익을 취하지 않았는데, 설마 지금 상인의 돈으로 이익을 도모하였겠습니까? 또한 진시황은 자신의 과실을듣지 않아 천하를 잃었고, 이사가 허물을 나누어 맡는 것도 무슨 본받을 만한 것이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재상을 의심하는 수준이 이다지도 낮습니까?"
고조는 기분이 언짢았다. 이날, 사신에게 지절을 가지고 가게 하여 상국을 풀어 주었다. 상국은 나이가 많았는데 공손하고 삼갔으므로 궁궐에 들어와 황제를 뵙고 맨발로 사죄했다.
고조가 말했다.
"상국은 이러지 마시오! 상국은 백성을 위하여 상림원을 요청하였는데, 나는 허락하지 않았으니, 나는 걸傑과 주紂 같은 군주에 지나지 않고, 상국은 어진 재상이오. 내가 상국을 구금한 까닭은 백성들로 하여금 나의 잘못을 듣도록 하고자 함이었소." - P806

조참의 공적은 다음과 같다. 대체로 두 제후국과 백이십이 개 현을 함락했고, 제후왕 두 명, 재상 세 명, 장군 여섯 명을 사로잡았으며 대막오大莫敖초나라 작위 이름으로 경계에 해당 군수郡守, 사마司馬,
후侯, 어사御史 각 한 명을 사로잡은 것이다. - P818

조참이 아직 벼슬하지 않았을 때에는 소하와 사이가 좋았으나, 나중에 한 사람은 장군이 되고 한 사람이 승상이 되었을 때에는 틈이생겼다. 그러나 소하가 죽음을 앞두고 현명하다고 추천한 사람은 오직 조참이었다. 조참은 소하를 대신하여 한나라의 상국이 되어 모든일을 바꾸거나 고치는 일이 없이 한결같이 소하가 제정한 법령에 따랐다. - P820

태사공은 말한다.

"상국 조참이 성을 공격하는 야전野戰의 공이 이와 같이 많다고볼 수 있는 근거는 회음후와 같다. 한신이 멸망하고 나서 열후의 공을 봉한 것 중에 조참만이 그의 명성을 휘날렸다. 조참이 한나라의상국이 되자, 청정淸淨을 온 힘으로 말하여 도가의 원칙과 합치시켰다. 그러나 백성들이 진秦나라의 잔혹함에서 벗어난 이후에 조참은그들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도록 하였으므로 천하 사람들이 모두 그의 미덕을 찬미한 것이다." - P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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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 제7권

B.C.179

유사가 태자를 일찍 세우기를 요청하여 황제가 수락했다
황제가 조서를 내려 과부, 노인, 고아 등 스스로 돌보기 어려운 자들을 위해 베풀라고 지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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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읽은 책을 정리한다. 읽고 있는 책들은 후순위로 미루었다.

완독한 책들만 따지면 이렇게 11권이다.

대한민국의 첫 번째 봄 1919
토지 13
토지 14
역주 통감절요 1
사기본기
좌파의 길
하버드 중국사 진.한 최초의 중화제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Animal Farm
남성특권

이 중 Animal Farm은 합본으로 읽고 있지만 어쨌든 완독한 책이다. 3월을 넘기지 않고 끝내서 다행이다.

중국사는 계속해서 읽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본기에 이어 세가를 읽고 있고 열심히 읽는다면 주말 안에 끝낼 수 있을듯하다.

통감절요 1권을 오래 붙들고 있었는데 2권은 챕터로 따지면 하나를 끝냈다. 2권부터는 더 속도를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어려운 것은 인물 한자 찾아내기! 인물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것이 가장 난관이다. 주석이 친절한 책이지만 처음부터 주석에 의존하면 실력이 늘지 않으므로 원문을 먼저 보려고 애쓰고 있다.

토지는 이제 2/3 능선을 훌쩍 넘었다. 이보다 더 놀랄 일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읽는다. 독자의 무지를 자각하게 하는 작가님의 인물 묘사, 배경 지식에 감탄을 금하며.


사기세가 (ing)
小王子 (ing)
1984 (ing)


다음 달에도 현재 읽고 있는 이 세 권을 포함하여 흥미로운 책들을 읽어나갈 계획이다.
4.3이 코앞이니 순이삼촌을 재독할 생각이다(알릴레오에서도 다룬다고).


4월도 즐겁게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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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3-04-01 0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끄럽습니다 화가님, 👍

거리의화가 2023-04-03 08:48   좋아요 0 | URL
수이님 저도 부끄럽습니다^^; 저는 수이님의 열정에 늘 탄복하고 있어요. 항상 배웁니다^^ 4월도 힘차게 시작하세요!

새파랑 2023-04-01 08: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언제나 꾸준한 화가님! 대단하십니다. 토지 완독하시면 엄청 뿌듯하실거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3-04-03 08:49   좋아요 2 | URL
네. 토지 완독하게 될 날이 저도 기다려집니다. 새파랑님의 독서도 응원할게요*^^*

바람돌이 2023-04-01 2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토지가 절반의 고지를 넘어서 마지막 단계로 가고 있군요. 화이팅을 보냅니다. 3월에 읽은게 몇권 없는 저는 또 여기서 슬픔이 막 밀려오네요. 나는 뭐한거지????? ㅠ.ㅠ

거리의화가 2023-04-03 08:51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3월은 아마도 복직한 달이라 많이 바쁘셨을 것 같아요. 꽃 구경도 있었고...ㅎㅎ 남은 봄날을 즐겁게 보내시길^^

희선 2023-04-03 00: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토지 삼분의 이를 넘다니, 얼마 남지 않았네요 다 보시면 뿌듯하시겠습니다 거리의화가 님이 보시는 거 보니 보고 싶은 생각이 조금 들기도 했는데... 거리의화가 님 사월에도 즐겁게 책 만나시기 바랍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3-04-03 08:52   좋아요 2 | URL
20권이라 도전이 쉽지는 않지만 막상 읽게 되면 뒷 내용이 궁금해서라도 읽게 되네요^^; 희선님 이번 달에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책읽는나무 2023-04-03 09: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토지도 그렇지만, 잃시찾 벌써 3 권을 완독!
작년에 잃시찾 페넬로페님 진도 맞춰 읽어야지~ 하다가 놓치고, 화가님 진도 맞춰야지~하다가 또 놓쳤네요ㅋㅋㅋ
암튼 독서 응원합니다^^

거리의화가 2023-04-03 09:26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읽을 책이 참 많지요. 저도 매달 초 읽어야지 했던 책 중 계속 밀리는 책들이 있어요ㅠㅠ 구매하는 책들 속에서 점점 쌓여가는 책들. 잃시찾은 올해 초부터 매달 한 권씩 읽고 있어요.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결국 중단될 것 같아서... 나무님도 이달 독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