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무질서에는 질서가 있다. 행복 대상들의 다양성은 행복을 선택의 장으로(이게 좋으세요? 저게 좋으세요? 여긴 무엇이든 있습니다), 자유의 환영으로 창조하는 데 기여한다. - P365

행복은 멈춤점이 된다. 행복은 왜냐하면이라는 단어처럼, 우리가어느 지점에서 멈출 수 있게 해준다. 다음과 같이 아이가 질문하는 경우를, 혹은 내가 ‘아이처럼‘ 질문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건 왜 이런 건데요? 그러면 저건 왜 그런데요? 그렇다면 왜? 말줄임표 자리에는 뭐든 올 수 있다. 이 빈자리는 늘 다른 질문의 가능성을 나타낸다. 그 끝없는 유예는 모든 대답은 질문을 갈구한다는 것을, 대답을 한다는 것은 또다른 질문의 가능성의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것임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결국 당신은 멈춘다. 멈춰야 한다.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질문들을 멈추게 하기 위해 멈춰 서야 한다. - P367

애초에 모든 형태의 정념은 수동적이라고 간주돼 왔다. 실제로 정념passion이란 단어와 수동적passive 이란 단어는 모두 고통받다,라는 뜻의 라틴어 passio를 어근으로 한다. 능동/수동은 아주 단순히 행위와 정념감정을 구별짓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형식의 감정은 다른 것에비해 능동적"이라고 읽힌다. 행복은 부정적인 감정들과 대조를 이루며능동성의 형식이 된다. 행복하다는 것은 당신의 운명을 능동적으로 결정한다는 뜻이지만, 불행하다는 것은 당신의 운명을 고통스럽게 겪어 낸다는 뜻이다. 이 구별은 점점 더 뚜렷해진다. - P376

우리는 능동적 활동과수동적 활동을 경험하는 방식의 질적 차이를 설명할 언어를 개발해야 한다. 그러려면 능동과 수동의 구분 자체에, 그런 구분이 존재의 계급 구분을 고정하는 방식에, 행복한 사람과 길을 건너는 닭들을 고통 받는 영혼과 움직이지 못하는 길들과 구분하는 방식에 도전해야 한다. - P378

위기가 닥칠 때 우리는 "이 길이 무슨 길이야?"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길이 의문에 부쳐질때 우리는 가능성을 인식하게 된다. 당신이 살고 있는 삶에서 얼마나 많은 것이 불필요한 것인지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행복은 가능성에 대한이런 인식을 막는 방패로 사용될 수 있다. 이 책을 위한 조사를 하면서 놀랐던 점은, 이야기 속에서 "행복을 위해 이 삶을 떠나야지"라는 발화 행위를 통해 위기 국면이 해소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비록 이런 식의 말하기는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삶을 위해 행복을 떠남"으로써 어떻게 위기 국면이 해소될 수 있을까를 질문함으로써 행복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다. - P391

어리석음의 어원은 주목할 만하다. 그 말은원래 축복받은, 행복한, 지복을 의미하는 단어 sael에서 온 것이다. 이는시간이 지나면서 ‘축복 받은‘이라는 뜻에서부터 ‘경건한, 순진무구한, 해가 없는 측은한, 약하고 허약한‘으로까지 변화한다. 축복받은 것에서 허약한 것으로의 이런 변화, 어리석음의 계보가 지닌 이런 우울한 성격에서우리는 뭔가 배울 것이 있다. - P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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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4-21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답을 한다는 것은 또다른 질문의 가능성의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것.˝ - 한 권의 독서는 다른 또 한 권의 독서를 하게 만들죠.
395쪽의 글, 기억할 만하네요. 몰랐는데 배워 갑니다.^^

거리의화가 2023-04-21 12:45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고 가장 뇌리에 박힌 단어는 저는 ‘질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대답을 해야 다음 단계의 질문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공부와 독서에도 던질 수 있는 글귀 같아요. 감사합니다^^
 

천하가 종기를 막 앓고 난 후라 제후들이 반역하지 않도록 지금 뿌리를 뽑지 않으면 고질병이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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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행복한 미래

길을 잃으면 다른 길이 보일 수 있다.

조셉 맥카니가 지적하듯 "허위의식"에 대한 최초의 문서화된 언급은 엥겔스가 쓴편지에 등장한다. "이데올로기는 이른바 사상가가 의식적으로 수행하는과정이긴 하지만, 그 의식은 허위의식입니다. 그를 움직이게 하는 진정한추동력을 그 자신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결코 이데올로기적 과정이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허위의 혹은 외견상의 추동력을 상상합니다" (McCarney 2005: n.p.에서 재인용[553]). 여기서 허위의식은부르주아가 자신의 동기를 모른다는 것, 자신의 믿음과 자신의 이해관계가 우연히 일치함을 알지 못하는 상황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의식적인 믿음들은 이데올로기다. 사람들은 의식으로부터 그런 믿음의이해관계적 성격을 탈각함으로써 이해관계를 유지한다. - P299

노동자는 자신의 에너지를 노동 대상에 부여하지만 그 대상은 그들의 손을 떠나 상품이 된다는 점에서 자신이 만드는 것으로부터 소외돼 있다. "노동자는 자신의 생명을 대상 속으로 불어넣는다. 그러나 그 생명은이제 더 이상 그가 아닌 대상에 귀속된다" (106[86]).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자신으로부터 소외되는 이 과정이 "대상의 상실"이면서 동시에 "대상에 대한 속박"(106) 이라고 말한다. 다른 말로, 노동자들은 상실한 대상에매여 있다. 즉, 자본주의 자체가 우울증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는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불행하다" (110[89]). 마르크스는 노동자를 일종의 "살아 있는 자본"[105] 이며 그래서 "욕구를 가진 자본" (120)이라고 말한다. 살아 있는 자본이 되는 것은 일종의 "불운"(120)이다. 노동의 전유는노동자를 고통스럽게 한다. 노동자는 일을 하면 할수록, 생산을 하면 할수록, 더 고통받는다. 소외란 자기 노동의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 일종의 자기소외인 동시에 노동자가 세상에 몸담는 방식을 형성하는 감정-구조, 즉 고통의 형식이다. - P303

소외를 의식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인식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고통의 원인을 인식해야 한다. 소외를 의식하게 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어떻게 강탈되었는지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세상에서 소외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소외가 어떻게 이미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지를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소외로부터 소외될 수도 있다. - P304

샤를로테 블로크가 이야기하듯, "스트레스 경험에 대한 사람들의 설명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특징은, 시간 속에 있음이 문제시되고, 현실이 저항으로 느껴지고, 타인들이 장벽으로경험되며, 당연하게 생각했던 체화된 존재로서 내가 겪는 경험이 문제시된다는 것이다"(Bloch 2002: 107). 그래서 블로그는 "몰입이 애쓰지 않음,
흐르는 듯한 우아함 같은 특성들을 함축한다면, 스트레스는 긴장과 저항같은 특성들을 함축한다"(101) 라고 말한다. 혁명과 정서를 [이와 견주]생각해 보면, 몰입과 스트레스가 분배돼 있고 또 재분배될 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몰입했던 세계, 유연하고 손쉬운 것으로 경험했던세계도 그것이 하나의 세계였음을 의식할 경우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다. 실제로 혁명 의식은 기꺼이 스트레스도 감수하겠다는 의욕, 기꺼이현재를 내 피부 아래내게 거슬리는 것으로 두겠다는 의욕으로서만 가능하다. 반란이란 [거슬리는 현재를] "피부에서 도려내는‘ 경험이다. - P307

분노한 혁명가나 활동가의 형상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대안적 미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무의미한 폭력 행위를 저지르는 것처럼 비춰짐으로써 혁명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눈감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혹은 무엇을 폭력의 기원으로 보이게 하는지 바로그 정치학을 고려해야 한다. 혁명가들은 폭력을 폭로한다. 하지만 그들이 폭로하는 폭력은 폭력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구조적 폭력은 베일로 감춰진 폭력이다. - P308

비관주의와 낙관주의는 단순히 같은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이 아니다. 사물에 대한 우리의 정향, 우리가 그 사물을행복의 원인으로 보는지 아니면 불행의 원인으로 보는지가 그것이 미래에 우리에게 무엇을 줄지 혹은 주지 않을지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결정한다.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는 결국 현재 우리가 마주치는 것들에 대한 평가(어떤 것이 좋다 혹은 나쁘다, 행복 혹은 불행을 야기한다)인 동시에 미래 지향적이다. 한편으로,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는 점유의 기호들을 가지고 대상이차있는지 비어 있는지를 파악하는 방식이다(어떤 것이 그 대상을 이미 점유하고 있다고 봐야 그 절반이 가치로서 측정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는 대상이 가리키는 어딘가, 즉 미래의 잠재력 혹은 가능성을 파악하는 방식이다(내가마실 것이 얼마나 많이 혹은 적게 남아 있는가). - P314

희망을 가질 때 우리는 불안해진다. 왜냐하면희망은 어쩌면 일어날 수도 있고 어쩌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을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희망은 "어쩌면"을 욕망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어쩌면 아닐 수도"의 가능성을 계속 열어 두고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어쩌면"일 뿐이다. - P330

불행할 자유는 행복을 인간 행동의 합의된 종착점으로 간주하지 않으면서 행동의 목적에 대해 질문할 수 있게 해줄 새로운 정치적 존재론의 기반을 제공해줄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우리는 행동의 목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 근거로 정치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불행의 원인에 대한 인식은 정치적 대의명분을 제공해 줄 수있다. 모든 정의의 정치학이 (불행을 일으키는 게 애초 행동의 목적은 아니지만)불행을 수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만큼 행복은 고통의 은폐와 자신의 행복을 타협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눈길을 돌릴 자유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또 그것에 의해 약속된다. 반란이 상처가 될 수 있는 건, 당신이 상처에 근접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불행의 원인을 드러냄으로써 불행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당신 자신이 당신이 드러내는 불행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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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4-21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밑줄긋기 좋네요. 공부가 많이 될 것 같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4-21 12:43   좋아요 0 | URL
페크님 도움이 되신다니 저도 기쁩니다^^*
 

나는 어떤 특별한 사랑도 하지 않은 채 텅 빈 상태로 사방에서 - 마치랑에 빠진 연인이 자신이 반한 대상을 찾아 나서듯이 ㅡ ‘아름다움‘을 욕망하고 찾고 만나는 그런 젊음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단 하나의 실제 모습만으로도 ㅡ 멀리서 혹은 등뒤에서 여인의 모습을 얼핏 보기만 해도 - 우리 눈앞에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투사하고 어디서 본 듯한 여인이라는 생각을 불러일으켜 우리는 그 생각에 설레고 걸음을 재촉하다 여인이 사라지고 나면 분명 그녀였는데 하고 언제까지나 생각하다가 여인을 붙잡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 잘못을 깨닫는다. - P250

고독한 사람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하는 절대적인 칩거 생활은 원칙적으로는흔히 군중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연유한다. 이러한 사랑은다른 어떤 감정들보다 강력해서, 자신이 외출할 때 문지기나행인들 혹은 불러 세운 마차꾼의 존경을 받지 못하기라도면, 앞으로는 그들 눈에 영원히 띄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여 외출을 필요로 하는 모든 활동을 단념하게 한다. - P252

자전거를 밀던 그 뺨이 통통한 갈색 피부 소녀 옆을 지나다가 나는 한순간 그녀의 웃음기 머금은 곁눈질과 마주쳤는데, 그것은 이 작은 부족의 삶을 가둔 비인간적인 세계, 내가 어떤사람인지에 대한 관념 따위는 들어갈 자리가 없는 접근 불가능한 미지의 세계에서 온 시선이었다. - P259

원하는 대상에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불확실성에 의해 깨어난 상상력은 우리에게 다른 목표가 숨겨진 하나의 목표를 만들고, 또 관능적인 쾌락을 다른 삶 속으로 뚫고 들어간다는 관념으로 대체하면서, 쾌락을 알아보거나 쾌락의 참된 맛을 음미하는 걸 방해하여 쾌락을 관능적인 영역으로 축소하지 못하게 한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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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의가 또 상소하였다. 흉노가 변경을 넘보고 제후왕이 황제의 권력을 넘보고 역모를 꾀하다 죽임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자 황제에게 깨우침을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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