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학자들은 도가철학을 새롭게 개념화하면서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통해 유가철학을 새롭게 정초하고자 했다. 반면 죽림칠현은 진정한 유가적 심성을 간직하면서도 도가적 철학과 실천으로 힘겨운 시대를 뚫고나가고자 했다. 여기에는 양자의 ‘입장‘ 차이, 새로운 천하통일을 눈앞에두고서 새로운 정초를 꿈꾼 현학자들과 이미 썩어버린 유교제국에 맞닥뜨려 그것으로부터 탈주하고자 한 죽림칠현 사이의 차이가 있다. 내용상으로다르지만, 이런 관계는 일면 키케로와 세네카의 차이를 연상케 한다.
현학자들은 여전히 ‘천하‘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론적 정초를 위해도가철학을 필요로 했지만, 그들의 주안점은 유가철학의 새로운 정초였고천하통일의 준비였다. 반면 죽림칠현은 ‘강호‘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본연의 의미에서의 유가적 심성을 간직했지만, 그들이 꿈꾼 것은 도가철학을 통한 강호에서의 탈주였다. 그러나 죽림칠현은 소요의 길을 꿈꿀 수 있었을 뿐 투쟁의 길은 걸어가지 못했다. - P485

서진(나아가 동진)의 역사는 또한 죽림칠현의 악영향, 정확히 말해 속화와 희화화의 과정이기도 했다. 속화(vulgarization)와 희화화(parody)는 그 어떤 사상에도 따라다니는 어두운 그림자이다.102) 당대의 많은 명사들이 죽림칠현과 같은 정치적 맥락과 내면적 고뇌도 없이 오석산(五)을 먹고, 술과 가무에 취해서 살면서, 온갖 사치를 부렸으며, 재치는 있으나 실질은 없는 청담을 일삼았다. 이는 미인 서시가 미간을 찌푸리고 다닌다고 뭇 여성들이 같이 찌푸리고 다니고, 선비 곽림종이 두건 한쪽을 폈다고 뭇 남성들이 같이 펴고 다니는 꼴이었다. 이 때문에 후대인들은 죽림칠현을 극히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본류와 말류를, 본래의 사상과 그 속화·희화화된 것들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서진 왕조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팔왕의 난‘과 ‘영가의 난‘을 겪으면서 속절없이 무너져버린다. - P486

사실상 AD 3~6세기에 걸친 긴 다원화 시대가 전개된 것이다. 정치적 - 군사적으로 이 시대는 AD 5~8세기의 지중해세계에서와 같은 암흑시대였다. 그러나 문화적 측면에서 볼 때면 놀랍게도 동북아의 이 시대는 오히려각종 문화가 다채롭게 꽃핀 시대이기도 했다. 이 흥미로운 대조는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이 시대는 지중해세계의 암흑시대에서처럼 동북아에서도 북방의 이민족들 중원의 문화에서 본다면 야만족들이 남방으로 밀려온 시대였다. 또 이 시대는 한편으로는 사분오열된 북방과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중원 문화를 이어간 남방으로 나뉜 시대이며, 이 점에서도사분오열된 서방과 기존 로마 문명을 이어간 동방으로 나뉘었던 지중해세계의 역사와 흡사하다. 다른 차이들을 접어둔다면, 유라시아 동과 서의 같・시대에 유사한 구도의 역사가 진행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러나 문화적 특히 사상적 측면에서 본다면 동과 서는 판이하다. 왜였을까?
우선은 동북아 문명에서 ‘문‘의 우위와 이를 뒷받침하는 문사-관료들, 문사- 귀족들 즉 ‘사대부‘ 계층의 존재를 들 수 있다. - P489

지중해세계에서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종교가 도래했다면, 동북아세계에서는 불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도래했다. 그러나 동북아에서는
‘기독교 vs. 이슬람교‘ 같은 격한 구도는 성립하지 않았다. 물론 도교와 불교는 서로 경쟁했고 때로는 대립하기도 했지만, 유교와 도교 그리고 불교는 종교전쟁을 일으키기는커녕 많은 수준 높은 사상적 - 문화적 결실들을가져왔다. ‘종교전쟁‘이 없었다는 것이야말로 동북아 문명의 위대한 측면이다. 지중해세계의 서방은 동방으로 십자군을 보냈지만, 동북아세계의 동방은 구도(求道僧)들을 서방=서역으로 보냈다. 이러한 차이를 통해 동북아세계의 ‘암흑시대‘는 오히려 문화가 찬란하게 꽃핀 시대, "빛나는 암흑시대"가 되었던 것이다. - P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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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인(仁)의 도덕형이상학 사실 ‘도덕형이상학‘이라는 표현은 훗날의 - P211

맹자나 성리학자들에게 더 어울리는 말이지만을 세움으로써 ‘예‘를 철학적으로 정초했다. 공자는 단순히 주례를 복권시키고자 한 것이 아니라그것을 새롭게 정초하고자 한 것이다. "사람이 어질지 않다면 ‘예‘가 다 무엇이란 말이냐? 어질지 않다면 ‘악‘이 다 무엇이란 말이냐?"(人而不如禮何人而不如何공자는 법은 예에 의해 정초되어야 하고, 예는 인에 의해 정초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또 하나, 공자는 동북아 문명에인문세계라는 새로운 삶의 차원을 도래시켰다. 공자는 인간에게 먹고사는것, 싸우는 것, 권력을 잡는 것 등등 외에도 어떤 다른 세계, 인문학적 차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가 교육했던 시, 예, 악 등은 예전과는다른 차원의 뉘앙스를 띤 것이었다. 그는 "시로 일으키고, 예로 세우고, 악으로 갈무리한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고 했고, 이렇게 이루어지는 세계는 인간이 오직 인간이기 때문에 도달할 수 있는 삶의 또 다른 차원이었다.
한편으로 윤리의 근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다른 한편으로 인문세계라는새로운 차원을 열었다는 점에서, 공자는 동북아 문명사에 결정적인 지도리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공자는 그의 이 숭고한 가치를 순수학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실제의 정치적/사회적 삶에도 구현할 수 있기를 갈망했다. - P212

가장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가장 현실적이고 가치론적인 문제들을 해결코자 한 것이 소크라테스 사유의 핵심이다. 반면, 공자의 사유는 역사적이다. 공자 역시 인, 효, 충서, 예악 등등에 대해 새롭게 사유했으나, 그 양태는 논리적 정의가 아니라 ‘조술(祖)‘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주공단에 의해 정립되고 이후 계속 변해온 역사를 반추하면서 ‘경(經)‘들을 새롭게 정리하고 그 과정에서 당대의퇴락한 가치들을 새롭게 하려 한 것이다. 또한, 자신으로서는 ‘인‘이나 ‘군자‘를 비롯해 삶에 대한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공자는 바로 자신의 앞에 있는 제자들 또는 다른 인물들의 고유한 인품과 개성에 세심하게 주목하면서 가르침을 베풀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그는 자로와 염구에게, 또 자장과 자하에게 각각 반대로 이야기했던 것이다. 이는 소크라테스와 대조적이다. 소크라테스 역시 자신이 대화를 나누는 인물(들)의 고유함 및 대화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했지만, 그가 추구한것은 바로 그런 개별성과 상황성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보편성과엄밀성이었기 때문이다. - P243

지중해세계에서 소크라테스의 사유는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구체화 또는 변형되어 이어졌으며 주로상당 수준의 지식층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근대 이후에도 ‘서구적 지성‘이라 할 만한 과학적 - 철학적 사유는 소크라테스의 사유를 그 근간으로 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대중적 차원에서 지중해세계와 훗날의 서구를 지배한 것은 유대-기독교 사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특히 미국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근대 이후의 자연과학적 전통 점차 즉물적 형태를 띠어가는 과학기술과 다른 한편으로는 유대 - 기독교적 가치가 기묘하게 공존하고 그 사이에서 소크라테스적 - 플라톤적 지성은 쇠잔해져버린 것이 오늘날 서구 문명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동북아사회의 경우 공자의 가르침은 지식인들의 차원은 물론 이 사회/문명 전반에 스며들었다. 그것은 유가철학일 뿐만 아니라 ‘유교‘로서 동북아 문명을 지배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도교나 특히 불교가 유교를 압도했을 때도 있었지만, 동북아사회 전반을 이끌고 간 정신적축은 역시 유교였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어떤 면에서는 오늘날까지도그렇다. - P248

묵가사상은 강호의 철학으로 자리 잡기에는 너무나 비- 낭만적이었고, 종교가 되기에는 너무나 합리적이고 실용적이었다. 또, 혁명의 종교가 되기에는 너무 봉건적이었고, 아르카디아의 사상이 되기에는 ‘천하의철학‘의 성격이 너무 강했다. 또, 묵가의 논리학, 언어철학 등의 작업은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는 했으나 명가와 마찬가지로 결국 동북아 사상사의 굵직한 갈래로는 성립할 수 없었다. 동북아의 사유는 생래적으로추상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묵가는 유가와 같은 인문주의를 제공하지 못했고, 법가적 통치술로서 발전되지도 못했고, 도가적 자연주의로서 받아들여지지도 못했고, 자신의 장기인 논리학, 언어철학으로서 뻗어나가지도 못했다. - P298

모든 동물들은 각각의 종류에 따라 고유한 본성을 가진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여서, 모든 인간은 공통의 본성을 가지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순임금과 같이 될 수 있다. 물론 삶의 과정에서 이 본성은 발휘되지 못하고 어그러진 형태로 현실화될 수 있다. 하지만 황폐화된 산을 보고서 그 산이 본래 그랬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류이듯이, 아무리 많이 일그러진 삶 앞에서도 그 안에 원래부터 깃들어 있는 성선을 보지 못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방심(心)‘을 극복하고 ‘존심(心)‘을 지향하라는 맹자의 가르침은 "네 영혼을 돌보라"라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과도 통한다. 맹자의 이런 생각은 그 논변의 - P354

당성에서나(위의 논변들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의 갈래들이 존재한다) 결론의 타당성에서나 많은 논쟁거리를 안고 있다. 맹자의 입장은 성의 미규정성을주장한 고자나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 등에 비해 거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훗날 유가사상이 동북아세계의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그의 입장은유가사상/유교의 기본 입장으로 자리 잡게 된다. - P355

장자가 추구하는 것은 (전국시대의 많은 사상가들이 추구했던) 논쟁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요, 어떤 지식을 얻는 것도 아니요, 세상을 바꾸는 것도 아니었다. 장자는 꿈과 깨어남을 이야기했으면서도 그 자신이 실제 지적 타자들과 부딪치는 것은 달가워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에게 ‘논쟁‘이란 삶의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반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문제가 된 것은 더 큰 타자성들이었다. 그래서 그의 학문은 맹자 등의 학문처럼 당대의현학(學)이 아니었다. 그가 원한 것은 그의 실존을 송두리째 바꾸어 삶과죽음의 질곡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다. 장자의 철학은 위대한 ‘변신‘의 철학이다. 그 변신이 향하는 곳은 물론 ‘실‘의 세계가 아니라 ‘허‘의 차원이다. - P366

맹자의 사유와 장자의 사유는상앙으로 대변되는 전국시대 변법의 질서에 대한 두 상이한 응답이었다고할 수 있다. 맹자는 민본사상을 역설함으로써 법가적 냉혹함에 저항하고자 했고, 장자는 무위사상을 전개함으로써 작위의 폭력으로부터 탈주하고자 했다. 그러나 역사는 비극적이게도 이 두 길이 아니라 상앙의 길, 진(秦)의 제국화라는 길을 걷게 된다. - P368

이익을 탐하는 것, 타인을 질시하는 것, 감각에 미혹되는 것, 이 세 가지가 인간을 악한 존재로 만든다. 순자는 인간이란 그 본성이 바로 이렇기에
‘예‘를 통한 교화에 의해서만 선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또는 달리 해석하면,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예가 필요하다기보다는 예가 없는 곳에서는 인간은 악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장자와 대조적으로, 문명/문화야말로 인간을 선하게 만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순자가 생각하는 문화세계는 상대적으로 내면적이고 인문적인 공자의 것에 비해 보다 외면적이고사회적이다. - P382

군주가 허정(虛靜)한 마음을 유지할 때 거기에 도가 깃들게 되며, 마음이 빌 때 몸이 편하듯이 군주가 ‘무위함으로써 백관이 ‘유위‘할 수 있다.
북극성이 제자리를 지킬 때 뭇별들이 그것을 중심으로 돌 수 있는 이치와도 같다고 하겠다. 황로지학은 군주의 내업, 심술(心), 백심(心)을 통해무위지치의 정치철학을 정초하고자 했다.
이 구도를 기 중심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황로지학에서 생명은 ‘정기‘
로 표현되며, 이 생명을 지키는 양생술이 핵심을 이룬다. 이 경우 도와 기그리고 심과 생/신은 거의 동일시되며, 도/기를 자신의 몸 안에 축적하 - P394

고 보존하고 발달시킬 때 ‘덕‘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된다. - P395

법가사상의 요체는 형명지학 또는 ‘신상필벌‘에 있다. 법가 사상가들은상보다는 벌에 무게를 두긴 했지만, 상이 백성들의 충성을 끌어내는 방법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핵심적인 것은 신민이 제시한 목표(名)와 실제 이룬 업적(刑=形)이 일치하는가의 여부를 확인해 상벌을 공정하게 실시하는 것이었다. -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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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세계의 경우 자연철학이 기저를 이루었고 때문에 인문 현상들도 ‘지스‘로 환원해서 설명코자했다면 (그 극한은 원자론이다), 동북아세계의 경우 인문학이 기저를 이루었기 때문에 자연 현상들도 그 의미에 기반을 두고서 해석되었다. 그런 만큼이 문명에서 자연(天地)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탐구했던 객관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해주는 의미로서의 자연이다.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은 우리에게 나타나는 현상 이면에서 어떤 본질을읽어내려 했고, 이 본질은 ‘실재‘였다. 반면 동북아의 ‘무‘ 등은 자연 현상에서 인간적인,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의미를 읽어내려 한 것이다. 전자의경우 자연 현상 저편으로 넘어가 실재를 찾았고, 후자의 경우 자연 현상이편에서 그 의미를 읽어내려 했다. - P33

지중해세계와 지리적 구조는 전혀 달랐지만, 고대 동북아세계 역시 무수한 이민족들이 명멸한 공간이었다. ‘중국‘의 역사가 마치 어떤 공동의 틀 내에서 성씨들만 교체되어간 역사라고 보는 것은 훗날 중원 대륙을 차지한 사람들이 사후적으로 구성한 역사일 뿐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제‘ 황제, 전욱, 제곡, 요, 순ㅡ를 정립하고 하·은·주 삼대에 연속성을 부여했다. 아울러염제와 치우 등을 악역으로 배치함으로써 동북아의 역사를 일종의 선/악의 구도로, 정통/이단의 구도로 정립했다. 이렇게 본래 극히 이질적이고 역동적이었던 역사를 추후에 매끄럽게 재단하고, 또 선/악, 정통/이단의 구도로 구성해냄으로써 비로소 "중국"이라는 하나의 동일성을 마련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바로 『서경』이 이미 이러한 재구성의 원형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상고 시대를 논할 때, 우리는 사후적으로 구성된 이동일성 아래로 내려가 다채롭고 역동적인 차이생성을, 실제 역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동북아 ‘중원‘의 역사를 말할 수는 있어도 ‘중국‘이라는특정한 나라의 역사를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중원의 역사는 다양한종족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만들어낸 역사일 뿐이다. - P54

그리스 자연철학과 동북아 역학의 차이는 다음 인용문에 특히종합적으로 나타나 있다.
성인이 ‘괘‘를 긋고 ‘상‘을 관찰해 ‘사‘를 걺으로써 길함과 흉함을 밝히려 했다. 강함과 유함이 서로 밀어 (剛柔相推) 변화가 생겨나니, 그로써 길함과 흉함은 얻고 잃음의 상이요, 후회와 부끄러움(悔)은 안타까움과 짓눌림 (憂)의 상이요, 변함과 화함은 나아감과 물러남의 상이요, 강함과 유함은 낮과 밤의 상이다. 6효의 변화가 하늘·땅· 사람의 길(三極之道)을 세운다.
하여 군자는 ‘역‘의 배열에 입각해 편안히 안거할 수 있으며, 효사를 읽음으로써 즐 - P127

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군자가 거할 때는 ‘상‘을 보고 ‘사‘를 즐기지만 동할 때에는 ‘변‘을 보고 ‘점‘을 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이 그를 도우니 이롭지 않음이 있겠는가"라 한 것이다.(「사전 상」, 2장) - P128

동북아의 세계는 ‘작(作)‘의 세계가 아니라 ‘생(生)‘의 세계이다. 따라서 조물주 개념은 탈각된다. 역학에도 기학에도 조물주의 개념은 없다. 동북아에도 ‘신‘들은 있지만, 이들은 세계에 내재적 - P186

이다. 또, 이 ‘생‘의 사유에서 설계도 같은 것은 없으며 다만 기 자체에 내재해 있는 질서만이 인정된다. 이 때문에 기에 구현되는 선험적 질서로서의 이데아 개념 또한 없다. 다만 기 안에 잠재해 있고 기가 특정한 물(物)로서 개별화될 때 비로소 확인되는 내재적 질서만이 있을 뿐이다. 결국 기의세계는 코라의 세계이다. 물론, 이렇게 말할 경우 코라의 의미는 현저하게바뀐다. 그것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물질성, 생명성, 정신성을 내함(含)하고 있는 유일의 실체이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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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8-05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멋져요!! 거리의화가님 완전 신세계 펼쳐집니다~~~ 뭔 말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근사합니다!!

거리의화가 2024-08-05 16:18   좋아요 1 | URL
동양철학을 공부하려고 하니 역시 ‘주역‘을 알지 않고서는 어렵더군요. 이 책 주역 이해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4-08-11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주역 읽고 공부하려고 시도하다가 금세 포기했는데 거리의화가 님, 화이팅 입니다. 빠샤!!

거리의화가 2024-08-11 17:05   좋아요 0 | URL
주역 이해에 도움이 많이 되더라구요. 저도 예전에 중국철학서 읽을 때 주역이 나왔었는데 너무 어려웠었거든요. 주역은 해석서가 꼭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 7 - 1990년대 성차화된 개인과 여성주의적 각성 한국 여성문학 선집 7
여성문학사연구모임 엮음 / 민음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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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문학 선집 시리즈 읽고 쓰기, 드디어 마지막 권까지 왔다. 1990년대의 시간은 내게도 기억이 비교적 뚜렷한지라 작품의 배경이 익숙한 것이 많았다. 당시 좋았던 시간도 있고 힘들고 아팠던 시간도 있었으나 어쨌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임은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작품을 읽으며 뭉클했는데 추억 거리가 이제는 실물로 만날 수 없는, 거의 다 사라져버렸다는 안타까움이 일어서가 아닐까 싶다. 


1990년대 여성문학은 여성을 고립과 침묵에 이르게 한 것이 무엇인지 드러내고 여성의 말해지지 않은 욕망과 가치를 복원함으로써 광장과 방의 부당한 분리에 맞서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이 작업은 한편에서는 1980년대 운동권 문학을 여성주의적 개입과 성찰을 통해 바라보며 성 평등이 병행되지 않은 민주화는 여성을 주변화시키는 가부장적 기획의 연장이라는 점을 밝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금기와 제도적 억압에 가로막힌 여성들의 욕망과 열정을 드러내어 여성의 자유를 실험하는 것이었다. - P17


1990년대는 군부 독재가 사라지고 동구권의 공산주의가 유효하지 않게 되면서 억눌렸던 개인의 자유와 욕망이 폭발하듯 분출하기 시작한 시기다. X세대, 오렌지족 등이 등장해 ‘나는 내 뜻대로 움직인다.’를 표방하며 과거와는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하려고 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1980년대 강렬했던 민중 분노에 의한 서사와 문학은 공산주의와 자유주의로 나뉘어져 있던 세계에서 한 축이 무너지면서 동력을 일부 상실했다. 1980년대 노동 현장이나 집회에 뛰어든 여성들은 남성 노동자를 비롯한 활동가와 함께 연대하며 평등을 꿈꾸었지만 현실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990년대 들어오면 자유주의 체제 하에 자본주의가 더욱 강화되며 집단의 힘은 무너지고 각자도생을 해야 하는 악조건에 부딪치게 된다. 이 때 ‘여성들의 자유는 어떻게 표현되었는가’가 이 시기 문학의 주안점이 되겠다.


1990년대 초까지는 1980년대의 민중 운동에 대한 성찰과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애도에서 쓰여진 글들이 여전히 많이 발표되었다. 


최윤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되어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소설을 통해 역사적 비극과 고통을 재현한다. 

5.18 때 엄마를 잃은 딸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엄마는 오빠가 사망한 뒤 정신줄을 놓은 것이다. 역사적 비극 앞에 한 가정은 이리 쉽게 무너진다. 선택할 수 없는 비극이 인간을 더 비극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닌지… 기억은 쉽게 잊힐지 모르지만 글 속에 재현된 장은 이를 다시 생생한 사건으로 마주할 수 있게 한다. 


마침내 나는 엄마 손목을 양손으로 꼭 쥐고 놓지 않았지. 그리고 엄마는 미친 학처럼 춤추러 갔어. 사람들의, 함성의, 냄새의 홍수에 실려 그 물살에 뼈가 녹을 때까지 나도 물살에 섞였지. 점점 더 물살이 높아졌어. 사방에 소리와 높은 벽이 앞으로 앞으로 나를 운반했어. 엄마는 내 손을 으스러지게 움켜잡고 내 가랑이가 찢어질 정도로 앞으로 앞으로 나갔다가는 밀물처럼 밀려오곤 했어. … 내 머리 뒤에서 합창하는 수많은 얼굴들. 잊어버릴 수 없는 얼굴들. - P134

죽음은 죽은 자에게는 사건이 아니다. 그 죽음은 남아 있는 사람에게만 혹독하게 생생한 사건이 된다. 죽음은 대답이 없기 때문에. 모든 죽음은 완성되어야 할 것의 미완성이기 때문에. - P139


최영미는 1980년대를 종식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는 의미를 담은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1994년 발표했다. 여성이 노동 운동에 뛰어든 경우 운동은 운동대로 하지만 집안일과 돌봄은 이어졌을 것이다. 운동가나 투쟁가의 남편을 둔 여성이었다면 그를 위한 뒷바라지가 필요했을 테고 말이다. 투쟁가 뒤에는 여성들이 있는데 이를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란 생각을 한다. 늘 한 편에는 여성의 전폭적인 노력이 숨어 있음을.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채익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P413


1990년대 여성 문학에는 가부장 가족제도에 도전하고 홀로 길을 떠난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다. 


공지영은 학생 운동 및 구로공단에서 활동가로 생활하고 시위에도 참여하는 등 현장 경력을 쌓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자신과 비슷한) 운동권 여성들이 결혼을 하고 가부장 제도에 얽매이자 진보적 기치와는 다르게 불합리한 현실에 처하게 되는 위태로운 상황을 담은 소설이다. 모성을 강요당하고 가정 주부 역할을 (판타지를) 강요받는 현실에서 여성들은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넌 결국 여성해방의 깃발을 들고 오는 남자를 기다리는 신데렐라에 불과했던 거야.

누군가와 더불어 행복해지고 싶었다면 그 누군가가 다가오기 전에 스스로 행복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재능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면 그것을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모욕을 감당할 수 없었다면 그녀 자신의 말대로 누구도 자신을 발닦개처럼 밟고 가도록 만들지 말아야 했다. - P525~526


공선옥은 5.18 때 민주화를 경험했다. 이후 전남대에 들어갔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중퇴하고 20대 초반에 시민군이었던 남자와 결혼했다 이혼을 했다고. 아이들과 함께 상경해 미싱사로 일하다가 원고료가 좀 더 높아 소설을 쓰게 되었단다.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겪은 경험이 그의 소설의 재료들이 되었다. 


<목마른 계절>에는 영구 임대 아파트를 배경으로 이웃 사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파트 주차장에는 자동차들은 몇 대 없고 화물차들이 가득하여 새벽마다 발차하는 소리로 소음 전쟁이 벌어진다. (‘나는 나는 저팔계. 왜 나를 싫어하냐아~’라는 노래가 흘러나올 때는 나도 모르게 따라 불렀다. 그 때 만화 본다고 부모님 눈치를 봤던 기억도 나고.) 

아파트 공터를 비롯한 놀이터에는 하교 후 부모님이 돌아올 때까지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퍼져 나온다. 어릴 때 아파트에 두 차례 살았는데 한 번은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잘 안나고 다른 한 번은 아파트 공터에서 아이들과 고무줄 놀이, 땅따먹기 등을 하던 기억 때문인지 그 장면만 스냅샷처럼 남아 있다. 

비록 아파트였지만 지금의 아파트 문화와 달리 이웃 사촌이라는 개념이 그 때만 해도 존재했던 것 같다. 소설에도 나오지만 카페 장사를 하는 이웃 사촌의 아이를 대신 맡아서 돌보아 주는 ‘나’가 있다. 한 사람은 소설을 쓰고 다른 한 사람은 카페 주인인데 둘 다 이혼녀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사건에 휘말려서 좋지 않은 일을 겪게 되고, 가난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사람도 나온다. 모두 다 그 시절 이야기인 것 같지만 여전히 지금도 우리 주변에 있을 이야기다. 


목이 말랐다. 속쓰림과 동시에 갈증이 한꺼번에 덮쳐 와 죽을 것만 같았다. … 물 주전자를 기세도 좋게 기울였다. 냉장고에도 물은 없었다. 끓인 물은 아무 데도 없어서 수도꼭지를 틀었다. 이상했다. 수도꼭지에 힘이 없다. 가르륵가르륵, 수도꼭지 속에서 가래 끓는 소리만 난다. … 제한 급수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가뭄이라 하였다. 수원지의 물이 모자라서 격일제 급수를 하는데… - P501

“옘병. 죽을 각오로 살자 그거여. 누구 좋으라고 죽냐 죽기를.” - P513


전경린은 둘째 아이를 출산한 뒤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작가로 등단했다. 지금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의 필명은 전혜린의 이름을 본떠 지은 것이라고 한다. 

<염소를 모는 여자>에는 여러 명의 친구들이 나온다. 나는 3달 전부터 어떤 남자가 염소를 4일 간 맡아 달라는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건 남자는 염소에 어떤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는 것일까. 마치 영혼의 단짝처럼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염소가 어떻게 될 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인다. 주변에는 그런 그를 정신병이 있다 이야기하지만. 권태와 냉담 속에 결혼 생활을 하던 나는 남편이 이웃 사무실 여자와 노닥거리는데도 불구하고 애써 무시해왔다. 


“조용한 한낮에 아파트에서, 칸칸이 벽만 나누어진 닭장 같은 다른 집들을 바라보면, 그 어떤 기이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도 더 어처구니없는 기분에 사로잡히게 돼. 칸칸마다 한 명씩 성숙한 여자들이 들어 있고, 남자를 위해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밤에 남자가 들어오면 섹스에 응해 주고, 남자의 집에 제사를 지내러 가고… 그리고 하나씩 둘씩 아이를 낳고 남자는 처자식 때문에 죽지도 못해 하면서 툴툴거리고, 그 닭장 안에서 멀쩡한 여자 하나가 혼자 아이를 키우느라 오 년씩 십 년씩 매달리고… 그리고 어느 날 새벽에 깨어나 보면 발이 뻣뻣하게 굳어 영영 걸어 나갈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거야. - P431


그러던 어느 날 자신에게 ‘아름다움은 형태가 아니라 본질에 있다. 당신은 아름답다.’라는 말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비로소 자신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벗어날 용기를 얻는다. 수영을 배울 때 물을 먹는 것을 결심해야 하는 것처럼 변하기 위해서는 한 발을 내딛어야 가능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소설은 <바리-길 위에서>다. 소설을 쓴 작가는 송경아인데 전산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 국문학과 대학원을 가셨다는 이력을 가지고 있다. 전산학과를 나오셨다는 부분에서 이미 내적 친밀감이 느껴졌는데 실제로 쓴 작품들이 SF, 판타지, 장르문학 쪽이 많다. 2000년대에는 진보계 쪽에서 정치 활동도 하셨다고 해서 참 다양한 활동을 하셨구나 싶었다. 지금보다 SF라는 장르가 훨씬 낯설었을 1990년대에 이미 그런 글을 쓰기 시작하여 현실과 가상 세계를 넘나 드는 다양한 글을 써 오셨다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바리야. 세계가 멸망하는 원인에 나는 나름대로 두 가지 가설을 세워 봤어. 이 세계, 이 시스템에 어쩌면 레지스탕스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게 그 하나지. 그 레지스탕스들은 혼란을 가중시키고 연산에 오류를 범하게 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의 의미를 상실해 버리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이야. … 또 하나는 이 세계, 이 우주, 이 시스템, 네가 무어라고 불러도 좋은데, 하여간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우리도 포함되어 있는 이곳이 처음부터 잘못된 프로그램이었다는 거야. 혼란은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고 혼란의 정도가 점점 가중되도록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 - P701~702

넌 다른 개체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특성이 있어. 호기심과 지적 욕구지. 호기심과 지적 욕구는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달라. 호기심은 어떤 사건, 우연히 일어나는 어떤 사고들에 대한 관심이지. … 지적 욕구를 가진 개체들은 자기 자신을 확장할 줄 알아. 그들은 어떤 사물을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사물 뒤에 있는 의미를 바라볼 줄 알아. 바라보려고 노력해. … 한 사람이 자신의 왕국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건지도 몰라. ... 난 네가 그런 경지에 도달했으면 좋겠어. - P703


바리를 비롯한 7명의 자매가 있다. 불라국은 잉여, 부족도 아닌 아름다운 곳이라 바리는 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언니들은 불라국이 병에 걸렸다 생각한다. 서천 서역국은 불로초와 불사약이 있는 곳이라는데. 나는 성선설보다 성악설을 믿는 지라 인간은 원래부터 악하기 때문에 선해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세계도 원래부터 엉망진창이었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작가님의 SF 세계는 지금 보면 전혀 가상 세계 같지 않다. 초기 SF작이라는 것을 감안해야겠지. Data-flow, 서브루틴, 테스터, 포인터, dummy, 변수/상수, 프로그램, 에러, 시스템, garbage, 패킷, 부동소수, 프레임, 패리티 검사, 매개 변수 등 내가 평소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이 소설에 등장하여 읽을 때마다 반갑기도 하고 피식거리기도 하면서 읽었다. 자매들은 계속해서 모험을 떠날 것이다. 


근 3주 정도의 시간을 한국 여성문학 선집을 읽으면서 올 여름의 일부를 의미 있게 보냈다. 선집을 통해서 많은 여성 작가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소중한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종종 꺼내어 읽어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관심 가는 작가는 나중에 깊게 파 들어가기도 하고 말이다. 좋은 기회를 마련해준 여성문학사연구모임에 독자로서 감사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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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8-05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멋지다… 화가님.. 멋져요 😭

거리의화가 2024-08-05 16:20   좋아요 1 | URL
쟝 님 오셨군요^^ 이 시리즈 쟝 님도 반할 만한 컨텐츠입니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지만 유튜브 컨텐츠 다시 올려주셔서 넘 좋아요. 저 어제 솔닛 부분 듣고 녹아내리는줄요!ㅎㅎ 무더운 여름이지만 건강하게 잘 보내시길!

공쟝쟝 2024-08-06 11:12   좋아요 1 | URL
... 제가 반한 것은 화가님의 독서력입니다....!!.....
읽기로 한 걸 읽어버리시는 이 능력이........... 넘 부럽지 말입니다.......... 3주만에.... ㅜㅜ 아..... 저는 사놓고 뜯지도 않고 있습니다... ㅜㅜ 읽게 되면 다시 글 읽으러 올게여 ㅋㅋ
허... 제가 인용해 오신 공선옥 작가를 좋아한답니다...!?! (나 아는 작가 한명 나옴ㅋㅋㅋ)

유튜브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기본 소득은 너무 먼 일이라 노동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동 수익화를 만들수 있는 유명(과연?)인이 되서 한가한 독자로 활약하고 싶습니다...

거리의화가 2024-08-08 08:42   좋아요 1 | URL
펀딩 100자평을 안 읽고 쓰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번에는 읽고 쓰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사두고 안 읽으면 결국 시간이 지나가서 흐지부지되는 것도 있고^^;
덕분에 저도 전체적으로 한국 여성 문학을 갈무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리고 쟝님 유튜브는 점점 번창하리라 믿습니다. 컨텐츠 양도 그렇지만 컨텐츠를 질적으로 어떤 식으로 표현하느냐도 중요하더라고요. 앞으로도 화이팅입니다!

자목련 2024-08-08 0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지고 멋지고 멋진 화가 님!!
이번에는 아는 작가가 나와서 더 반갑고요 ㅎ
덕분에 저도 이 시리즈를 읽은(?) 것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4-08-08 08:37   좋아요 0 | URL
90년대라 역시 친숙한 작가들이 많죠^^ 저와 무관하지 않은 시대라 배경도 익숙해서 더 읽기 편한 것도 있었고요.
ㅎㅎ 계속 열심히 읽여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