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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남 곤충의 변태 - 과학적 지성과 예술적 미학을 겸비한 한 여성의 찬란한 모험의 세계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지음, 금경숙 옮김 / 나무연필 / 2023년 12월
평점 :
평소 곤충과 친하지도 않고 식물과도 친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은 알고는 있었으나 머릿 속에서 지웠었다. 그러다 어떤 강연을 듣고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삶과 작업 세계를 보면서 ‘궁금하다’ 싶었고 그 자리에서 바로 주문해서 집으로 받았던 책이다. 그동안 이런 저런 일들로 읽지 못하다가 이제야 읽게 되었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예술과 출판을 가업으로 하는 환경에서 자라났는데 아버지는 출판사 주인의 딸이었고 새아버지는 꽃 정물을 그리는 화가였으며 이복 오빠는 동판화 화가였다. 나중에 새아버지의 제자와 결혼을 하는데 남편도 건축물을 그리는 화가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결혼 생활이 소원해지고 심신을 안정시키기 위해 종교공동체에 5년간 몸을 담았다가 결국 이혼을 한다. 암스테르담에서 새 삶을 시작한 그녀는 곤충의 기원과 생식에 대한 설명을 찾고자 둘째딸과 함께 남아메리카 수리남으로 향했다(수리남은 당시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는데 당시 나이가 50세가 넘었던 때였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녀는 수리남을 가기 위해 누군가에게 빚지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돈을 마련해 여행을 감행했고 그곳에서 관찰한 결과를 충실히 정리해 책으로 출판해 냈다. 당시 표트르 대제가 메리안의 그림의 팬이어서 그림을 사기도 했다는 것을 보면 그녀의 그림 실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그림 때문에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을 그저 식물세밀화를 그린 화가로만 인식하면 곤란하다. 식물과 곤충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직접 관찰한 결과에 대한 묘사력을 보면 과학자라고 해야 맞다. 과학자인데 그림까지 잘 그린 화가라고 해야 정확할 것 같다. 과학과 예술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 이 책은 그 본보기를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서 온갖 애벌레와 나비, 곤충을 만났다. 어릴 때 곤충의 변태 과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이후 아마 책으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지 않을까. 정말 그림이 세밀해서 묘사를 넘어선 느낌이었다. 그림이라지만 2D로 찍은 사진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또 다양한 식물(에서 열리는 열매)을 만났다.
총 60개 식물의 생김새와 꽃의 모습, 효능(줄기와 가지, 뿌리, 잎) 등을 소개한다. 식물마다 달라붙는 곤충이 있는데 그걸 함께 설명하는 식이다. 직접 관찰하지 않았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결과물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가시여지’라는 것이 있는데 모습이 꼭 파인애플처럼 생겼다. 하지만 열매는 파인애플과 달리 겉은 노란색에, 안은 흰 과육에 검은 씨가 있다.
‘카사바’는 식물의 뿌리로 빵을 만든다고 한다. 줄기를 잘라 심으면 증식한다고.
우리도 잘 아는 ‘라임’은 수리남에서 가장 흔한 과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라임이 열매 이외에 용도가 또 있었다. 꽃과 껍질에서 기름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바코버’는 바나나와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설탕과 물을 섞어서 식초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소돔의 사과’라는 열매는 독성이 강해 사람과 가축이 먹으면 죽는다고 한다.
‘그리스도 종려나무’는 기름나무라 불리는데 씨앗을 물에 넣고 끓이면 기름층이 분리되어 기름을 얻을 수 있는 형식이라고 한다. 상처를 치료하기도 하고 등불을 밝히는 용도로도 사용한다니 여러 모로 재능이 많은 나무다.
‘장미’는 카리브제도에서 가져왔다고 적혀 있다. 신기한 것은 아침에는 흰색 꽃이 피었다가 낮에는 붉은 꽃, 저녁에는 진다는 사실이다. 마치 하루살이 같지 않나?
‘포도나무’는 온난한 기후 때문에 1년 내내 재배가 가능한데도 수리남 사람들은 심을 생각을 안한다는 저자의 푸념이 재미 있었다.
‘머스크꽃’은 이름만 들어보면 향기가 폴폴 날 것 같지만 꽃 자체에 향기가 없다고 한다. 꽃이 진 자리에 씨방이 자라는데 그 안에 갈색 씨앗이 있고 그곳에서 머스크 향이 나는 것이라고 한다.
‘플로스 파보니스’는 씨앗이 분만 촉진제로도 쓰이지만 낙태를 할 때도 이용했다고 한다. 이곳이 네덜란드 식민지였음을 앞서 이야기했다. 네덜란드인 아래 제대로 된 대우도 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노예로 생활하던 이들은 아이를 가져도 낙태를 감행했던 것이다.
‘타브로우바’는 열매즙을 짜내 햇볕에 말리면 검게 변하여 몸에 문양을 찍는 염료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비누로 지워지지 않고 90일 정도를 유지한다고 한다.
인상적인 곤충에 대해서 설명하기 전, 나방과 나비, 투명 나비의 차이점을 아는가?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는데 나방은 털로 덮여 있고, 나비는 깃털, 투명 나비는 비늘로 덮여 있다고 한다.
또한 ‘가장 아름답고 독특한 애벌레가 가장 평범한 곤충으로 변하고, 가장 평범한 애벌레가 가장 아름다운 나방과 나비로 변하는 일을 나는 수차례 보았다(P61)’고 고백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카사바’에 ‘달라 붙은 노란 줄무늬 애벌레는 수리남 식물들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장본인이라고 한다.
‘아메리카 자두나무’ 꽃 위를 다니는 애벌레는 꽃을 먹다가 꽃이 떨어지면 나무의 잎파리를 먹는다고 한다. 천성이 굼뜨고 온종일 먹기만 한다는 저자의 소개에 웃음짓기도 했다(그런데 변태 과정을 거치고 나면 아름다운 푸른 나비가 나온다).
‘중국 사과나무’에 있는 애벌레들을 설명하는 저자의 설명도 웃기다. ‘하도 뚱뚱해져서 굴러다닐 지경이며 1년에 세 차례 나타난다.’라고.
‘구아바 나무’에는 구슬 달린 애벌레가 있다. 애벌레에 구슬이 달리다니(정말이다)!!! 50개의 반짝이는 구슬이 각 면에 달려 있는데 이를 본 어떤 사람은 눈이 아닌가 라고 이야기했다고. 그러나 메리안은 구슬 위에 각막도 없고 사방 팔방에 달려 있는 구슬이 눈인데 왜 한쪽 방향으로만 가는가 생각해서 그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이 아이의 최종 변태물은 초록색 파리다.
‘노란 마카이’ 잎을 먹는 굼벵이가 있는데 굼벵이 시절은 머리, 꼬리는 검고 몸통은 누런색이다가 변태하면 노란 얼룩무늬 딱정벌레로 변한다. 그러다 다시 알을 낳고 굼벵이가 나온다고 한다. 보통 다른 곤충의 변태 과정은 애벌레에서 번데기가 되었다가 곤충(나비 또는 나방)으로 변하는 과정을 거친다.
‘풍각쟁이’는 짐작하듯 리라 소리를 내는 곤충이다.
메리안은 이 책을 ‘모든 자연 애호가 및 연구자에게’ 헌정했는데 그렇다는 것은 동식물에 취미를 가진 애호가나 전문 연구자 모두를 타겟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다. 그녀는 관찰대상을 수채화로 그리고 동판을 제작한 후 두 딸과 함께 채색했다고 한다. 곤충은 실제 크기로 묘사하고 그림이 글에 압도되지 않도록 숫자나 알파벳을 붙이지 않았으며 제목도 붙이지 않았다는 것이 눈에 띈다.
박물학자 메리안은 얼추 5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방과 나비를 연구했으며, 수리남에서 체류한 두 해 동안 100여 종의 곤충과 53종의 식물을 관찰한 성과를 세상에 내놓았고, 후에 린네는 이 그림들을 참조했다(P26).
‘과학적 지성과 예술적 미학을 겸비한 한 여성의 찬란한 모험의 세계’ 부제가 이 책을 잘 증명해준다. 옮긴이의 해제 또한 저자가 활동한 무대와 그녀의 삶을 이야기해주어 그림과 설명을 이해하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흥미롭게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