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契丹)의 주군은 나이가 어리어서 나라의 일을 그 어머니에게서 결정하며 한덕양(韓德讓, 941~1011)이 총애를 받아서 가까이 가서 용사(用事, 권력을 쥠)하고 있어서 그 나라 사람들이 이를 괴로워하고 있으니 청컨대 그 틈을 타고서 유·계(幽·?)를 뺏으십시오."
황제는 비로소 속으로 북벌(北伐)할 뜻을 가졌다.
조서를 내려서 친정(親征)을 논의하게 하였는데, 참지정사인 이지(李至, 947~1001)가 말씀을 올렸다.
"유주(幽州, 河北 北部와 遼? 일대)는 거란의 오른쪽 팔인데 왕의 군사가 가서 치게 되면 저들은 반드시 항거할 것입니다. 성을 공격하는 사람은 수만 명 밑으로 가지 않을 것이며 병사는 많고 비용은 많이 들며 형세는 반드시 널리 후량(?糧, 말린 음식으로 군량)을 준비해야 합니다.

조빈 등은 나머지 군사를 거두어 밤중에 거마하(巨馬河)를 건너서 역수(易水)의 남쪽에 영채를 만들었고, 이계선(李繼宣, 950~1013)이 힘껏 거마하에서 싸우자 요의 군사들은 비로소 물러났는데 추가로 도망하여 고산에 도착하였다.

바야흐로 거마하를 건너면서 사람과 가축이 서로 짓밟으니 죽은 사람이 계산할 수 없었다. 지유주행부사(知幽州行府事)인 유보훈(劉保勳, 925~986)의 말이 진흙탕 속에 빠졌고, 그 아들인 유리섭(劉利涉)이 이를 구하려고 하였지만 꺼낼 수가 없어서 드디어 함께 죽었다. 유보훈의 성품은 순수하고 삼갔으며 관리의 업무를 처리하는데 정예여서 일찍이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명령을 받고서 아직 일찍이 피하는 말씀을 드리지 아니 하였고, 동료들을 맞이하면서 아직 일찍이 실의(失意)하지 않게 하였으며 집에 재물을 쌓아서 아직 천금(千金)에 이르지는 않았다."
죽기에 이르자 듣는 사람들이 모두 이를 아파하고 애석해 하였다.

전중승(殿中丞)인 공의(孔宜, 941~986) 역시 거마하에 빠졌다. 나머지 무리들은 고양(高陽, 河北省 保定市 高陽縣)으로 달아나다가 요의 군사에게 충격을 받아서 죽은 사람이 수만 명이었는데 사하(沙河)는 이 때문에 흐르지 않았고, 창과 갑옷을 버린 것이 언덕처럼 되었다. 야율휴격은 송의 군사 시체를 수습하여 경관(京觀)을 만들었다.

"짐이 지난번에 군사를 일으키면서 장수를 선발하였는데, 단지 조빈 등이 웅·패에 주둔하면서 양식을 싸고 갑옷을 갈고 앉아서 군대의 성세(聲勢)를 넓히면서 한 달여 동안에 산의 뒤가 평정되기를 기다렸다가 반미·전중진 등과 군사를 모아서 나아가서 직접 유주(幽州)에 맞닥뜨려 힘을 함께하여 몰고 가서 물리쳐서 옛 강토를 회복하고자 하였던 것이 짐의 뜻이었소.
어찌하여 장수들이 이루어진 계획을 준수하지 않고 각기 소견(所見)으로 달려가서 10만 명의 갑옷 입은 군사를 관장하여 요새를 멀리까지 나가서 다투어 속히 그 군현(郡縣)을 빼앗고자 하였고 또한 군사를 돌리어서 치중(輜重)을 도움 받고자 하여 왕복하면서 수고롭게 하는 폐단이 생겼다가 적이 올라타는 바가 되었소. 이 책임은 주장(主將)에게 있는 것이요.

요주(遼主)가 남경(南京)에 갔다. 정유일(5일)에 요주(遼主)가 백관들을 인솔하고 태후에게 존호(尊號)를 책서(冊書)하여 올려서 예덕신략응운계화승천황태후(睿德神略應運啓化承天皇太后)라고 하니 여러 신하들은 요주의 존호를 올려서 지덕광효소성천보황제(至德廣孝昭聖天輔皇帝)라고 하였다.

예전에는 관부에서 배를 만들고 이미 완성하면 한 척에 세 호구(戶口)를 징조(徵調)하여 이를 지켰는데 황하의 흐름이 여울지고 급하여 그것이 표류(漂流)하여 잃어버리는 것을 대비하면 1년에 부역(負役)하는 백성이 수천 명이었다. 장평은 마침내 연못을 뚫어서 물을 끌어들이고 그 사이에 배를 묶어두니 다시는 백성들을 징조(徵調)하지 않았다.
도적의 우두머리인 양발췌(楊拔萃)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관중(關中)과 삼보(三輔) 사이에서 왕래하며 도적질하자 조정에서는 여러 주(州)의 병사를 파견하여 이를 쳤지만 이기지 못하였는데 장평이 사람을 파견하여 유세하여 그들을 항복시켰다. 업무를 관장하고서 무릇 9년이 되자 관부(官府)의 돈을 아낀 것을 계산하니 80만 민(緡)이었다.
염철사를 맡기에 이르렀는데 겨우 몇 달 만에 섬서전운사(陝西轉運使)인 이안(李安)이 그[장평]가 옛날에 간사한 일을 한 것을 들추어내니 장평은 걱정하고 화를 내다가 병이 되어 죽었다. 황제는 오히려 조회를 하루 동안 열지 아니하고 우천우위상장군을 증직하고 장사 지내는 일을 관부에서 공급하게 하였다.

조서를 내려서 안변책(安邊策, 변방을 안정시키는 대책)을 물으니 전중시어사인 조부(趙孚)가 주문으로 논의하였다. 대략적으로 마땅히 안에서 전비를 잘 닦고 밖으로 기쁘게 결맹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황제는 칭찬하고 이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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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국가, 거란 - 거란의 통치전략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총서 109
김인희 엮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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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사극을 계기로 고려 당대의 역사와 관련 인물들이 재조명되었다. 더불어 당시 강력한 힘을 가졌던 거란이라는 국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사실 이 책을 구입한 것은 한참 되었는데 이제야 펼쳐보게 되었다. 뒤늦게 읽었지만 기대만큼이나 만족스러웠다. 


《요사》는 거란의 전체 역사를 시기별로 세세하게 조명한다면 이 책은 거란이라는 나라와 거란을 구성하는 사람들에 대한 특징을 서술함으로써 거란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데 도움을 준다. 더불이 이 책을 읽으면서 송, 고려 등 주변 국가의 역사를 교차하여 읽는다면 통합적인 이해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거란의 국호 중 한자로 ‘요’라고 표기한 것은 한족들이 위화감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거란의 국호는 계속 ‘거란’이었다. - P24 


거란의 국호는 요, 대요, 거란 등 여러 개를 사용했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거란이 '요'라는 국호를 사용한 것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한족과 충돌하지 않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그래서 거란인은 개국 초부터 끝까지 거란이라는 국호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거란 성립 초기 석경당이 유주를 거란에 바친 사건은 중국 역사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베이징이 북방 민족의 손에 들어가게 됨에 따라 만리장성은 더 이상 병풍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중국 역사는 북방 민족과 중원의 대립에서 북방 민족의 우세로 기울기 시작했다.(P59) 태종은 938년 당의 유주성을 중수하여 남경성을 건립하고 유주를 남경으로 승격시켰다. 유주는 지금의 베이징으로 중원이 북방 민족을 만나는 경계 지점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거란국의 고유성과 문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었다면 나는 장례 풍경과 거란인의 외모, 황제의 '날발'이 있었다.


거란 황제는 1년 중 어느 도성에도 상주하지 않고 대신들과 호위병들과 함께 계절에 따라 움직였는데 이것이 '날발'이다. 중원의 황제가 황궁에서 고정적으로 업무를 보며 생활하던 방식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황제는 날발 기간에 중요한 국가 대사를 논하며 결정했다. 특히 춘날발(봄에 진행하는 날발)을 중요하게 챙겼다고 한다. 날발은 거란의 고유 습속이자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통치 방식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겠다. 


또 거란은 장례식에서 굿을 할 때 얼굴에 구슬을 늘어뜨리고 금속 가면을 씌우며 망자의 영혼을 달래고 귀신들로부터 보호하였다. 


거란 이전에도 중국에는 흉노, 돌궐, 위구르, 북위 등 다양한 민족이 거쳐갔지만 거란은 이전 국가와 다르게 '자신의 근본을 초원에 두고 전통과 정통성을 지키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백성의 2/3을 차지하는 한족문화도 부정하지 않았다. 거란 사회는 유목과 농경 그 사이 어디쯤에서 길을 모색한(P90)' 최초의 국가였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거란은 거란족 뿐 아니라 한족, 발해인 등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되었는데 이전 국가의 통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의 통치를 도모하려했기 때문에 약 200 년의 시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거란은 본래 ‘인속이치’ 방침으로 ‘나라의 제도로 거란을 통치하고, 한인의 제도로 한인을 대한다’는 ‘북면관’과 ‘남면관’을 두는 이원적인 통치 방식을 채택하였다(P182). 그러나 거란 중기 이후에는 한족과의 교류가 늘면서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받아들였고 한족 문화를 많이 흡수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북방 유목민족 가운데 첫 번째로 중원 유가문화를 접수한 거란은 유가문화가 확산되는 데 큰 공헌을 한 셈이다. 서하 등 이웃 나라에서도 이를 모방하였고, 모두 한족문화를 학습하였다. 거란은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은 다음 문으로 다스리는 문치 사상을 확립하였으며, 이는 사회 발전의 수요에 상당히 부합하였다고 볼 수 있다(P247). 그러나 거란이 유학을 통치에 이용한 것은 자신들이 이미 예법을 갖추었으므로 중화와 대등한 관계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유학과 중화라는 개념을 자신들보다 상위로 보거나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는 역사를 정주의 역사의 기준에서 바라보려고 하는 나의 인식을 개선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다음으로 살펴볼 부분은 거란과 주변국의 외교, 군사적 관계이다. 


10세기 말 거란은 송과 여전히 충돌하고 있었고, 고려와는 교류가 거의 끊어졌으며, 만주와 초원의 여진과 여러 부족들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했고, 대하와도 원만하지 못하였다. 거란은 송과 1004년 전연의 맹약을 맺음으로써 비로소 둘 간의 국경을 획정하고 연운 16주의 땅을 얻는다. 송은 연운 16주 이남의 땅을 확보하였지만 거란에 세폐를 내주어야 했고, 반대로 거란은 연운 16주 이남의 땅을 포기하는 대신 세폐를 받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고려와는 총 3차에 걸친 전쟁을 치루면서 많은 피해를 낳았다. 


그러나 이후 40여 년간 다원적 국제질서의 맹약체제를 구축하면서 1020년대 이후부터 12세기 초까지 1세기 동안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누렸다. 거란은 한족 중심의 조공체제와 천하관의 명분에 얽매이지 않고 송, 대하, 고려 등 이웃 국가들과 공존을 추구하였다(P129). 


얼마 전 종영한 <역사저널 그날> TV 프로그램에서 거란어에 대해서 다룬 적이 있다. 거란어를 연구하시는 분께서 직접 출연하셔서 거란 문자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는지, 거란어와 몽골어가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고려거란전쟁>에서는 사정상 거란어가 아닌 몽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거란어와 몽골어는 비슷할 것 같았지만 문자도 다르고 발음도 달랐다. 동호계의 하나인 선비어를 이은 거란어는 사어로 현재 사용되지 않는다. 거란어는 알타이어족 언어에 속하며,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몽골어의 조상어로 추정된다(P140). 

거란어는 현재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어 비석의 탁본 등에 남아 있는 것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거란의 문자는 왜 현재까지 살아남지 못했을까. 거란 대자의 경우 글자 수가 3,000여 자나 되고, 한자의 소리와 뜻 두 가지를 모두 활용하여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거란 소자의 경우도 원자가 450여 자나 되어 널리 사용하는 데 제약이 많았다. 결국 두 종류의 거란 문자는 제정할 때부터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거란 문자가 대중화에는 실패하였으나 이웃한 여러 민족의 문자 창제에 영향을 끼쳤다. 특히 1036년경 서하가 서하 문자를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금의 문자 정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금은 1119년 거란 대자를 본받아 여진 문자를 만들었으며, 이후 여진 소자도 제정하였다(P170). 


이 책은 거란의 정치 체계와 문화, 외교, 사회적 모습을 핵심을 담고 있다. 비교적 대중적으로 쓰여져서 일반인이 접근하기에도 좋을 것 같다. 


다민족 제국 거란은 필요에 따라 한족 제도와 전통문화를 부분적으로 활용하기도 했지만 거란과 한족의 전통 사이에는 긴장과 충돌이 존재하였다. 거란 제국은 정치 제도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일원적 체제였던 한족 왕조 송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정복왕조 거란은 지배자로서의 지위와 특권을 보장하고자 본래의 유목민족적 사회조직과 언어 전통 문화 종교에서 차별되는 이원적 체제를 시종일관 유지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거란은 자신의 민족성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한족과 한족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여 최초의 정복 왕조가 될 수 있었다. 거란이 연 정복왕조의 문을 통해 이후 금 원 청은 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더욱 세차게 내딛을 수 있었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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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3-11 2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책은 거리의 화가님 서재에서 검색해야겠군요.^^
 

가을에 賈復이 남쪽으로 陵과 息을 공격하여 평정하였다. 賈復의 部將이 에서 사람을 죽이자,川太守 寇恂이 체포하여 옥에 가두어 두었다.
이때는 아직 초창기여서 軍營에서 법을 범한 자들을 대부분 서로 용납해 주었으나 그 部將을 시장에서 죽였다.賈復은 이를 수치로 여겨 潁川지날 때에 좌우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恂과 똑같이 장수의 대열에 있는데 그에게 모욕을 당하였으니, 이제 寇恂을 보면 반드시 내 손으로 劍을사용하여 직접 그를 죽이겠다." 하였다.恂이 이 계책을 알고는 서로 만나보려 하지 않자, 누이의 아들 谷이 말하기를 "저는 장수입니다. 검을 차고곁에서 모시다가 갑작스럽게 변고가 생기면 충분히 당해낼 수 있습니다." 하였다. 寇恂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옛날 藺相가 秦王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廉에게 굽혔던 것은 국가를 위해서였다." 하였다.
마침내 屬에 명하여 군사들에게 먹일 음식을 성대히 장만하고 술과 막걸리를 준비해 두었다가 執金吾(賈復)의 군대가 경내에 들어오거든 한 사람마다 모두 두 사람 분의 음식을 겸하여 주라고 하고는, 寇恂이 나가 길에서 맞 - P241

이하다가 병을 칭탁하고 돌아왔다. 賈復이 군대를 무장하고 추격하려 하였으나 관리와 군사들이 모두 취했으므로 마침내 그대로 지나갔다.
이 谷을 보내어 이 사실을 보고하였는데 황제가 마침내 寇恂을 부르니, 寇恂이 조정에 이르러 인견할 때에 賈復이 먼저 와서 자리에 있다가 일어나서 서로 피하려고 하였다. 황제가 말하기를 "천하가 아직 평정되지 않았는데 두 마리 범이 어찌 사사로이 싸운단 말인가. 금일에 朕이 이것을 풀어주겠다." 하고는 이에 함께 앉아서 지극히 즐거워하고 마침내 함께 수레를타고 나와서 친구를 맺고 떠났다. - ≪後漢書 寇恂傳≫에 나옴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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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 미아 가족은 야오씨로부터 모텔을 인수받으면서 흐뭇한 결말로 끝을 맺었다. 2권도 역시 시작부터 재밌다. 불법 이민과 미 국경을 둘러싼 묵직한 이야기가 핵심이 될 것 같다.





[CH1] 

미아는 야오씨로부터 모텔을 인수받았다는 것을 여전히 실감하지 못하여 꿈을 꾸는 것 같다. 현실 주인이 되었음에도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느끼는 것이다. 아빠는 여전히 화장실 휴지로 코를 풀고 크리넥스 화장지를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16번 방에 있는 밀러씨가 립을 먹다가 불법인들이 오면 우리들이 남아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미아는 이를 듣고 최근 TV에서 입후보자 Kathleen Brown이 미국과 멕시코 간 국경에 그들이 오고 있다며 목소리를 낸다. Hank는 그들이 캘리포니아의 문제를 이민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약점을 가지고 책임을 지우긴 쉽다고 말한다. 

그래도 부모님은 더 이상 좀비처럼 걸어다니지 않고 Lupe는 프론트 데스트에서 등록하는 업무를 맡게 되어 미아는 참으로 기쁘다. 


[CH2]

중국계 전용 채널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후 가족들은 무척 기뻐했다. Hank는 호텔의 sign에 새로움을 불어넣겠다며 “AS SEEN ON TV”라는 문구를 추가해 넣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다음 날 아침 호텔에 사람들이 체크인을 한다며 줄을 서 있었다. 벤츠 한 대가 들어서더니 Jason이 안에 있었다. Mia가 호텔의 손님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니 Jason은 궁금해 했다. 그 때 Lupe가 끼어 들더니 Mia의 손을 잡아채가서 대화는 중단되었다. 홀에 들어가니 아이들은 마치 해를 보듯 경외심에 찬 눈빛으로 그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루페와 나는 Welch’s 선생님 수업을 같이 듣게 되었고 Jason은 같은 반이 아니었다. 그는 반을 바꿀 수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거부당했다. 미아는 Jason에게 여전히 우리는 수업이 아니라도 쉴 때 얼굴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한다.


[CH3]

6학년 시작이 좋지 않다. 담임 선생님인 Mrs.Welch는 이민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쓰라 이야기한다. 규율을 지켜야 한다며 말하는 도중 끊지 말라 했는데 5학년 때 미아를 비웃었던 Bethany Brett은 끼어들어 말을 하고 칭찬을 받는 반면 미아는 끼어들지 말라고 주의를 당한다. 이 불평등함. 

제이슨은 미아와 루페가 있을 때 자신의 집에 놀러오라 이야기하는데 루페는 아빠를 도와야 한다며 거절한다. 미아는 루페 때문에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어떨까 고민하다 결국 승낙한다. 

미아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부모님은 학교가 어떤지 좋았는지 물어보셨다. 미아는 좋았어라고 대답하고 만다. 포크로 밥을 먹는 미아를 보며 수저로 먹어야 한다고 아빠는 주의를 준다. 어렸을 때 나도 수저, 젓가락 사용에 익숙하지 않아서 처음 배울 때 무척 고되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젓가락은 지금도 사용이 어려울 때가 있다^^;


[CH4] 

다음날 루페는 미아에게 제이슨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아니라 대답했는데 갑자기 그 때 화장실에서 크게 이야기하는 여자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우리 반에 불법자들이 꽤나 있다네.” 그 중 한 명은 우리 반 아이가 아닌 글로리아였다. 글로리아의 친구가 말했다. “걔네들을 어떻게 구분해?” “간단해. 영어 발음 악센트를 보면 되지.” 둘은 키득거렸다. 우리는 그들이 나갈 때까지 미아와 루페는 잠자코 지켜 보았다. 방과 후 우리는 모텔에 가서 중국인 이민자들과 스페인 계열의 이민자 아이들에게 문장을 쓰는 법과 계좌 개설하는 법, 대중 교통 이용하는 법 등을 알려주었다. 행크가 돌아오더니 TV 광고 후 호텔 매출이 2배 올랐다는 기쁜 소식을 접했다. 엄마가 청소를 하고 와 미아는 근육을 풀어준다고 참깨 오일 롤링 마사지를 해주었다. 아빠에게도 마사지를 해 주었는데 그는 맛있는 전병이 생각난다고 했다. 미아는 “전병이 뭐예요?” 아빠는 전병이 기억이 나지 않느냐면서 미국에 오기는 했지만 이런 기억은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이야기했다. 미아와 Lupe는 호텔 이민자 아이들 중 Jalisco가 국경을 넘어오다가 친구와 헤어진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훔치는 상황을 마주한다. Lupe는 자신도 과거에 경험한 일이기에 속상해한다.


[CH5]

엄마는 머리를 자르겠다며 가위를 들고 미아 방에 들어왔다. 미용실에 가면 돈이 들기 때문에 엄마가 주기적으로 잘라주고 있는 것이다. “Can we just skip this year?”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Long hair wastes shampoo.” 

그날 밤 미아는 아빠의 친구들과 함께 파라다이스 뷔페 집에 갔다. “Remembember, when we get there, don’t fill up on a bread or rice.” 입이 짧거나 가리는 것이 많거나, 아니면 많은 양을 먹지 못하는 사람은 뷔페 집에 가는 것이 손해다. 아빠는 매달 모텔의 이익금을 친구들과 이렇게 나누는데, 이 때 그의 표정은 세상 행복해 보인다. Uncle Zhang은 중국에서 엔지니어를 했었다. 그래서 그는 “I was gonna try to take the electrical technician exam.” 엄마도 과거 과학자였기에 함께 준비하자 권하지만 “Too busy cleaning rooms.”라 대답한다. Prop 187 법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분위기는 어두워진다. 그것은 이주 증명서를 가지지 않은 아이들은 캘리포니아 학교에서 내보낸다는 이야기였다. “We immigrants are all in the same boat.” 미아는 아빠가 게 다리 갯수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 것이 자부심을 느낀다.


[CH6]

차를 타고 가던 미아 가족들. 이 때 second car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신용카드가 있으면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미아가 했는데 “좋네.”라고 이야기하는 엄마. 아빠는 그럴 여력은 안 된다고 냉정하게 말한다. 호텔에 도착한 뒤 미아는 행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그는 과거에 신용 카드로 공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말한다(그만큼 카드를 많이 썼다). 미아는 어제 자신의 발음에 대해서 들었던 이야기를 엄마에게 한다. 엄마는 발음은 네 고유의 시그니처라며 마치 여권에 찍힌 인장 같은 것이라고 말해준다. 엄마는 고민 끝에 처음으로 신용카드 신청서를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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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4-03-10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 👍 저도 분발하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4-03-11 09:03   좋아요 1 | URL
미미 님도 시작하셨군요^^ 화이팅입니다!
 
모든 것의 이야기 나비클럽 소설선
김형규 지음 / 나비클럽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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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내가 발 붙고 서 있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 많은 탓이다. 몇 달 전 서재 친구분께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신 것을 보고 작가도 나처럼 현실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관심이 갔다. 작년 말 희망 도서로 신청했는데 예산 때문에 잘려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비로소 내 손에 받아들 수 있었다. 


우선 작가의 이력이 흥미로웠다. 동양사를 전공하고 러시아 현대사를 연구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사회과학 분야의 출판사를 차리기도 했다. 현재는 티셔츠를 입고 대중 교통으로 출퇴근을 하는 변호사로 일한다. 


러시아 현대사와 동양사를 공부해서인지 소설의 배경에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한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다.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졌을 때 나처럼 어릴 때라 당시 한국의 노동계와 사회계에 일어났던 일들을 잘 모르던 사람도 이런 사실이 있었고 이런 대화가 오갔겠구나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와 ‘너’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나온다. ‘너’는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하고 질문의 대상이기도 하며 공포, 또는 연민의 대상이기도 하다. 


표제작인 <모든 것의 이야기>는 슬픔과 연민에서 시작해 이상과 희망으로 나아가고 싶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20년 대림동 수정커피호프에서는 슬픔과 외로움의 냄새가 진하게 흐른다. 나는 수정커피호프에서 일하는 탈북자 여성을 위험에서 구해준다. 나는 가난과 폭력 속에서 살아왔다.


있잖아, 내가 되게 무서운 사람이거든. 사람들은 나를 많이 무서워해. 

그런데 내가 집에만 들어가면, 들어가서 문을 닫으면, 곧바로 눈물이 막 쏟아져.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언제나 그래. 엉엉 울어. 무서운 것도 없는데 무서워서 온몸이 덜덜 떨려. 추워서 덜덜 떨려. - P24


내가 가진 것이 없고 나를 지켜주는 이가 아무도 없을 때,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나를 더 강하게 다그쳐야할지 모른다(사회적 가면). 세상은 폭력과 위협이 난무하고 나를 지키려면 그렇게 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세상에서 사람들과 온종일 부딪치며 돌아온 나는 피투성이가 된다. 이럴 때는 우는 것이 나의 마음을 해소하는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


2043년 화성 마오 기지에는 두 명의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은 중국의 우주본부가 핵폭격을 받고 인공위성도 격추되어 본부와 통신도 할 수 없고 지구로도 돌아갈 수 없는 고립된 상황이 되었다. 둘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아끼며 나아갈 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너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며 울음을 터뜨린다. 지구를 그리는 두 사람. 문을 열고 나아간 너. 둘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돌아갈 수 있을까.


1999년 마석 어쭈구리 테이블에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흐른다. 


우리의 꿈을 위하여!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한때나마 품었던 꿈들에 대한 이야기를 끝없이 쏟아낸다. 선생님, 용접공, 과일 가게 주인, 경찰관, 소방관, 사냥꾼, 가수, 우주인. 꿈은 일관성도 없이 다종다양하다. - P56


‘어쭈구리’라는 상호명을 볼 때 반가웠다. 대학 근처에 어쭈구리가 있었는데 만 원에서 이만 원이면 다양한 안주에 소주를 마실 수 있어서 친구들, 선배들과 무척 많이 갔던 기억이 난다. 대학을 다니면서 장학금을 얻기 위해 공부도 하고 동시에 돈을 벌기도 해야 했다. 당시는 IMF를 막 넘은 터라 여전히 경기는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취업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던 때였다. 그 시절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꿈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하루를 무사히 넘기길 바랐던 것 같다. 


1951년 하동군 양보면에서는 한국 전쟁이 한창이다. 

3년 간 이어진 한국 전쟁은 시시각각 전황이 바뀌었다. 인민군이 내려와 인민군의 세상이 되었다가, 얼마 후에는 국군의 세상이 되었다. 내가 알던 사람이 인민군으로 변신하고 사람들에게 평등 세상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반동분자를 가려내어 처형하는 일을 무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곳에서 인간이란 어느 장단에 맞춰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간절히 그리운데 누가 그리운지 모르겠고, 그리운 누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내가 누군지도,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가고 싶은 데가 있는지도,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어디로 갈지도 모르겠고, 거기 가면 너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거기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뜻을 헤아리려 애써보아도 헤아릴 수 없는 부서지고 조각난 말들이었다. - P90


앞이 보이지 않는 뿌연 세상 속에서도 결국 이야기의 마지막 말은 ‘네가 문을 열고 나아간다.’이다. 희망 섞인 바람이자 주문이라고 여겨진다. 그래도 가만히 앉아 있어서 기다리면 변하는 것은 없다. 문을 열고 나아가야 무엇이든 실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림동에서, 실종>은 차별과 배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대림동’하면 떠오르는 주입식 이미지들이 있지 않나. 대림동을 가자고 하니 택시 기사가 하는 반응은 너무나 뻔하다. “그 위험한 곳에 왜 가려고 하세요?” 계속 읽고 있으려니 부끄러워서 어디에 숨고 싶어진다.


대림동은 분지예요. 아무 건물이나 옥상에 한번 올라가서 보세요. 신도림동, 신길동, 신대방동, 구로동의 고층 아파트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요. 거인의 성벽처럼요. 대림동은 아파트가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그 성벽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여기서 누가 뭘 하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지 못하는 거예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거죠. 제대로 된 이름도 없고요. 조선족, 중국 동포, 그런 이름들도 웃기잖아요. - P113


가난한 사람들, 노동하는 사람들이 제 몫을 누리고 평등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꼭 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런 세상으로 가는 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면 하고 싶어요.

그게 연극이지? 있잖아,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은 늘 배신당해. 힘없는 목소리였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나는, 우리가, 이겼으면 좋겠어요. 이길 거라고 믿어요. 우리가 끝까지 함께 한다면요. 그러고는 모두 말이 없어졌다. - P165


<가리봉의 선한 사람>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다. 작가가 경험한, 보고 느낀 것이 가장 많이 담겨져 있는 이야기라 생각됐다. 선한 노동자는 거지꼴이 되거나 아귀들에 뜯겨 살아남지 못한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이 자신의 밥그릇을 뺏는다고 생각하고 사장은 노조가 만들어지거나 노조가 목소리를 내는 것을 혐오한다. 지금은 폭력으로 할 수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방법들로 노동자를 무너뜨리게 하는 일이 많다. 


- 정규직: 청소부들이 주제를 모르고 정규직이 되려 하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우리가 취준생으로 몇 년을 고생했나

  공정하지 않아 정의롭지 않아 도대체 정의란 무엇인가

  세상은 평등하지 않아 평등해선 안 돼 세상은 원래부터 불평등한 것

  오른쪽 공장 건물의 창문에서 누군가 얼굴을 내민다. 살집이 두툼한 사장님이다.

- 사장님: 공순이들이 겁도 없이 파업을 하려 하네

  세상 무서운 줄 몰라 백골단을 불러 묵사발을 내줄까

  하지만 나는 교양 있는 사장님 근로자를 자식처럼 사랑하지

  건전한 노조 활동을 육성하려 하네 건전한 어용노조를 육성해 - P176~177


<구세군>은 어떤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하는 이야기다. 기본 소득에 대한 이야기, AI의 등장으로 사람과 기계가 직업을 두고 싸워야 할지도 모르는 일 등.

기본 소득이 실현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일하지 않을까. 일반 납세자들, 무직자들, 재벌을 비롯한 기업가들 간에 충돌은 여전하지 않을까. 지금의 굳어진 양당제가 의원 내각제로 변화할 수 있을까. 


사육되기를 거부하라. 세계는 사람의 것이다. - P222


사육되기를 거부하라는 메시지는 ‘동물 농장’을 읽었을 때의 감정이 떠올랐다. 과학과 기술로 환경은 무너지고 인류는 기술과 실력을 겨루어야 하는 시대가 올 지 모른다.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시간 뿐 아니라 레닌그라드, 한국 등 공간을 뛰어넘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읽고 나면 슬프고, 벅차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뒤섞이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역시 읽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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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1 09: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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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1 18: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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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5 17: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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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8 21: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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