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는 총 12권의 책을 완독했다. 월초에 여행을 다녀오고, 복귀하자마자 바빠져서 주말이 아니면 책 읽을 시간이 부족했다. 다행히 3월은 평년보다 우중충한 날들이 많았고 꽃도 피지 않아서 주말에는 대부분 집에서 보냈기에 중후반 힘을 내서 책을 읽었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심적인 스트레스를 거두지 못했을 것 같다. 책에 빠져 있는 시간만큼은 오롯이 현재의 일을 내려둘 수가 있었다.

<속자치통감 12권에서 15권은 송이 주변의 10국을 통합하고, 송-거란 간의 전투(기구간/서하 전투)와 협상 과정이 그려진다. 더불어 송은 내치를 통해서 안정을 추구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모든 것의 이야기>는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을 바탕으로 그려진 소설들이어서 눈길이 갔다. 차별과 혐오가 비일비재한 세상에서 작가는 기본적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기와 장소의 폭이 넓어서 읽는 재미도 있었고 특히나 작가의 역사적 이해에 바탕한 접근이 특징적이었다.

<캠브리지 중국사 10>은 19세기 초중반까지의 중국의 대내외적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 눈에 띄는 사건은 아편전쟁과 태평 천국의 난, 중국과 러시아 간의 국경 분쟁, 종교 수입에 의한 갈등 등이 있겠다. 특히 개인적으로 아편 전쟁 전 광저우 무역에 대한 진행 과정과 종교와의 갈등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은 청나라의 역사에 대한 큰 흐름을 알고 있을 때 특히나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은 개인적으로도 읽고 싶은 책이기는 했으나 독서 모임 책으로 선정되어 급박하게 읽었다. 좀 여유를 두고 세세하게 읽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다. 평전이라 개인의 역사를 담고 있으면서도 현재 북한에서 사용하는 조선어에 대한 이론의 기초의 전개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주시경, 김두봉이라는 인물만이 아닌 김수경이라는 언어 학자를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다.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역시 도나 해러웨이 책은 쉽지 않다. 3장의 내용은 <사이보그 선언문>, 현대의 페미니즘 이론에 대한 전반적인 전개 과정이 포함되어 있어 그나마 읽을만했지만 마지막 장도 어려웠다는 건 함정. 과학과 자연을 반대로 두지 않고 잘 이용하자라는 접근 정도만 확인하고 간다.

<세계철학사 1>은 지중해를 둘러싸고 고대부터 중세까지 서양 철학의 원류를 따라가는 여정이었다. 그리스 아테네 철학부터 자연 철학, 신 플라톤주의, 스토아 철학, 스콜라 철학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서양 철학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이 이 때 만들어졌다. 개인적으로는 삶을 중요시여기는 철학들에 눈길이 아무래도 더 가는 것 같다.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역사와 지리, 인물에 대한 이해와 더해져서 이루어져야함을 재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근대 용어의 탄생>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들의 기원을 추적하는 과정을 확인한다. 처음 만들어질 때와는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쓰이는 용어도 있는 반면 비슷한 의미지만 조금씩 덧붙여가며 확장된 경우도 있었다. 같은 용어라도 한국에 들어오면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발견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난처한 동양미술 이야기 1>은 인도 미술을 다루고 있다. 무른 돌을 이용하여 토기나 석상을 만들기 시작했던 그들은 석가모니 이후 마우리아 제국의 아쇼카 왕과 쿠샨 제국의 카니슈카 왕은 인도의 불교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스투파로 대표되는 인도 미술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탑 등의 다른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스투파 전시회를 가기 위한 사전 작업차 읽었다.


읽고 있는 책들이 점점 많아지지만 전집 종류가 많아 그렇지 단행본은 몇 권 없다. 그렇지만 신경 안 쓰면 계속 쌓일테니 등한시하면 안 될 것 같다.
특히 멈춤 상태인 도스토옙스키 시리즈를 다시 시작해야지.

이번 달에도 독서 모임이 예정되어 있는데 이를 위해서 읽어야 할 책은 브뤼노 라투르의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다. ‘행위자 네트워크’라는 용어가 처음이라 읽기 전 영상으로 간략하게 확인하고 책에 뛰어들어야할 것 같다.


이번 달은 꽃도 피고 날도 좋아 아무래도 책을 덜 읽을 것 같지만 그래도 최대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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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4-04 1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역시 어마어마한 화가님의 독서목록!
Three keys도 끝나가시죠? 저도 4 월엔 크리스틴 델피 도전~!

거리의화가 2024-04-05 08:23   좋아요 1 | URL
Three Keys 매일 한 챕터씩 읽고 있어서 4월 마지막 날 끝날 것 같은데요? 크리스틴 델피 받았는데 책 사이즈는 엄청 작지만 안에 글씨는 나름 커서 다행이었던! 얇은 책이 더 어려울 것 같아 쫄립니다ㅋㅋ 괭님도 이 달 즐독하세요^^

자목련 2024-04-04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 님이 읽으실 4월의 책도 기대가 되지만 산책에서 만날 하늘과 꽃들의 사진도 궁금합니다!

거리의화가 2024-04-05 08:24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도 꽃을 만날 수 있는 4월을 좋아하시죠? 이 곳에 벚꽃이 만개했는데 하필 어제, 오늘 날이 흐려서 아쉽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오며 가며 찍고 있어요. 이 계절에 만날 수 있는 행복과 즐거움이죠^^ 공유하겠습니다. 봄날 일상도, 독서도 응원합니다^^

희선 2024-04-05 0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으로 안 좋은 마음을 달래셨다니, 사월에도 책 즐겁게 만나시기 바랍니다 거리의화가 님 사월 건강하게 잘 보내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4-04-05 08:26   좋아요 1 | URL
닥치면 어떻게든 하게 되어 있긴 한데 스트레스를 뿌리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도 걷기와 독서가 있어 힐링이 되네요. 희선님도 행복한 4월 되시길 바라요!

새파랑 2024-04-05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철학 역사 미술 하면 화가님~!!
3월에 12권이니 4월에는 16권?

도스토예프스키 저 전집도 소장하고 싶네요 ㅜㅜ

거리의화가 2024-04-05 15:58   좋아요 1 | URL
ㅋㅋ 4월에 16권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할 것 같아요. 꽃구경도 하고 놀기도 하고 하려면?ㅎㅎ
그나저나 도스토옙스키 마니아시라 전집 장만하셨어야하는데 제가 다 아쉽습니다ㅠㅠ 새파랑님 4월에도 독서 생활 즐겁게 이어가셔요^^
 

비록 1840~1860년 사이의 시기에 미미하게나마 서구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긴 했지만 서구와의 관계에 대한 중국인들의 견해는 여전히 오해와 사상적·제도적 타성으로 인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외국의 현실을 고려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훨씬 더 강력한 충격이이 세계의 중심에 있는 왕국을 아연실색게 할 때까지 중국은 전 국민적인 절박감을 가질 수 없었다. 그리하여 결국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근대적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에서 20년의 세월을 완전히 ‘허송해버리는 결과가 빚어지고 말았다. - P263

서구와의 관계에 대한 중국의 관점은 1840~1895년 사이에 계속변화했는데, 1860년 이후 그러한 변화는 한층 더 가속화되었다. 일반적으로 말해 대외 정책에 대한 견해는 1840년대의 쇄국‘ 정책에서1860년대에는 유가의 성과 신에 기초한 ‘수신‘ 정책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근대적 외교술, 특히 국제법 사상은 이후 20년 동안 계속강조되었다. 1880~1890년대에는 권력 정치, 특히 세력 균형론과 강대국과의 동맹론이 한때를 풍미했다. 다른 한편 1860년대 중반에는민족의식이 등장해 날로 강력해져갔다. 1840~1860년 사이에는 상업을 이용해 오랑캐들을 견제하자는 원칙이 인기를 끌었으나 1860~1870년대에 그것은 ‘상전‘이라는 좀더 역동적인 관념에 자리를 내주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대외 정책에 대한 견해에서 나타난 이러한 변화들은 유교의 이상주의적 태도에서 실용주의적 태도로의 전환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 P327

근대화는 어떤 의미에서는 서구화를 의미했다. 많은 사대부들이 ‘양무‘ 운동에 찬성했던 것은 그것이 근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서 중국을 망국의 위기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는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그것이 서구적이라는이유로 ‘양무‘ 운동에 반대했다. 그것이 유가 학설을 대체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중국을 구하는 동시에 중국 고유의 방식을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직면한 그들은 모순적인 태도를 가질수밖에 없었다. -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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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쟁은 민족주의를 통해 정부와 국민이 하나의 목표로 굳게 단결해 근대 국가를 건설하려던 나라와 정부와 백성이 전체적으로 완전히 따로 놀았던 나라 사이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전쟁에 나선 일본은 거국적인 역량을 총동원한 반면 청의 일반 백성들은전쟁과는 거의 동떨어져 있었으며 조정은 거의 전적으로 북양 함대와이홍장의 회군에게만 의지했다. 둘째, 청은 명확한 지휘 체계가 서 있지 않아서 명령이 일사불란하지 못했고 거국적인 동원도 없었다. 총리아문, 지방 당국, 무책임한 청류파 관료들의 상충된 건의들은 청조의 우유부단함만 초래했을 뿐이다. 조선의 외교와 군사 업무를 관장하고 있던 이홍장은 정책 결정권이 없었으며 자기 관할 밖에 있는 전함과 군대에 대한 통제권도 없었다. - P188

셋째, 조정과 북양 함대 사령부의 부패는 처음부터 청의 노력에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서태후가 여름 별궁인 이화원 건축을위해 해군 기금에서 수백만 냥을 전용한 것, 그녀의 환관 총애, 사회전반의 도덕성 타락도 패전의 원인이 되었다. 이홍장이 정직성보다는개인적 충성심과 복종심에 따라 인선한 북양 함대의 사령부에서 특히부패가 만연했다. 많은 군관들이 태감 이연의 환심을 사려고 애썼으며 공금을 빼돌려 그에게 선물을 보냈다. 그러면 그는 이들의 불법 행위를 비호해주었다. 외형적으로는 엄청난 규모였지만 북양 함대는 사실상 약체였다. 이홍장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으로 번지기 전에 먼저 외교적 수단을 총동원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홍장의 외교는 국제 정치에 대한 이해 결여, 개인의 협상 능력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 구태의연한 이이제이 정책에의의존 등으로 말미암아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러시아의 중재가무산되자 이홍장은 영국과 미국의 지원을 구했으나 양쪽 다 일본을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없었다. - P189

의화단 운동은 만주 조정의 보수파, 보수적인 관료와 신사들, 무지몽매하고 미신을 믿는 민중의 힘이 결합해 전개된 것이었다. 이 운동은 외국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와 반감이 완전히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폭발한 것으로, 내재적으로는 애국적인 요소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일부 다른 역사가들은 이 운동을동기는 타당했으나 방법은 부적절했던 일종의 원시적인 애국적 농민봉기로 간주하고 있기도 하다. - P219

1905년 일본이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영국과 좀더 긴밀한 동맹 관계를 재설정한 것은 동아시아의 국제 관계에서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었다. 그것이 중국에서의 열강들 간의 경쟁을 종식시킨 것은 아니지만 1895년부터 빈사 상태의 청 제국을 위협해온 영토 분할 위협을제거한 것만은 분명했다. 러시아가 승리했다면 거의 틀림없이 만주그리고 아마 몽골까지 합병했을 것이고, 다른 열강들로 하여금 영토배상을 요구하도록 부추겼을 것이다. 그러나 패전한 러시아는 발칸반도로 눈을 돌렸고, 이 지역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독일과•충돌해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할 장을 마련하게 된다. 이제 남만주에•확고하게 자리 잡게 된 일본은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독립과 영토 보존까지 위협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1905년 만주에 대 - P238

한 청의 통치권 회복은 비록 일본과 러시아가 소유한 특권에 의해 제한된 것이기는 했지만 만주가 여전히 중국 땅으로 남을 것임을 보증해주었다. 1907년 4월 20일 조정은 만주족의 발상지라는 만주 지역의특별한 정치적 지위를 종결시키고 그곳을 정식 성으로 개편하기 위한조치를 취해 쉬스창을 총독 겸 흠차대신으로 임명하고 펑톈, 지린, 헤이룽장 3성에 각각 무관 순무 대신 문관 순무를 파견해 총독을보필하도록 했다. 100)아울러 주목할 만한 것은 러일 전쟁의 충격으로 인해 중국에서 입헌 운동이 등장한 것이었다. 학자 출신으로 뒤에 기업가로 변신한 장젠은 "일본의 승리와 러시아의 패배는 입헌주의의 승리와 군주제의패배를 의미한다"고 선언했다. 1906년 9월 1일 조정은 마지못해 입헌정부를 세우겠다는 의향을 발표했으나 결코 그것을 진지하게 고려하지는 않은 탓에 조정은 한층 더 백성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으며, 혁명 운동은 새로운 동력을 얻어 가속화되었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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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이 되면 청의 경제는 이미 이 나라가 동원할 수 있는 기술(기계적·조직적)로 도달할 수 있는 발전의 한계에 이르러 있었고, 1911년까지 극소수의신(‘선진적‘, ‘근대적‘)기술만이 수입되어 채택되거나 내부에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가 부문이나 민간 부문 모두 이념적으로나 재정적으로 ‘경제 발전을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할 만한 역량을갖고 있지 못했다.
다른 한편 각 부문 간의 긴장과 지방 간의 긴장에도 불구하고 청조가 종말을 맞이할 무렵까지도 이 경제 체제가 치명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거나 전복되고 폐기되어야 할 단계에 이르렀음을 암시하는 징 - P125

조는 거의 없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최저 생활수준에 근접한, 하지만그래도 여전히 그로부터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이 점을 언급하는삶을 살고 있었다. 사회 혼란과 계급 갈등은것은 아주 중요하다-
지역적인 것으로 그쳤다. 그리고 그러한 소란은 근본적이고 체계적인악성 병폐의 징후라기보다는 범위와 강도 면에서 경제 체제 자체와는무관하게 가뭄, 홍수, 흉작, 비적 떼, 내전, 외세의 침입, 관료 부패 등과 같은 일시적이고 우발적인 위기와 연동되어 발생했던 것처럼 보인다. 기술의 진보가 없는 상태에서 토지에 대한 심각한 인구 압력은 결국 경제 전체의 생존 능력을 위협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중대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20세기 초에는 아직 의제로 등장하지 않았다. ‘평년‘ 에는 도시와 농촌 사람 모두 비록 형편없는 수준에서이기는 해도 옷을 입고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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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용어의 탄생 - 역사의 행간에서 찾은 근대문명의 키워드
윤혜준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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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는 학자들이 때로는 ‘근대성’이라 부르는 대상, 즉 근대적 의식, 담론, 사상 등과 부분적으로 일치한다. 그러나 그것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근대’는 ‘담론’이기도 하지만 시대와 공간이기도 하다. - P7

이 책은 근대 문명의 키워드가 된 ‘말’의 역사를 다룬다. business, constitution, democracy, president, project, revolution, university… 현대에도 사용되는 이 말들의 기원이 되는 단어는 무엇이고, 이후 어떤 발전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의미로 변화되었는지를 들여다본다. 한 마디로 말의 유래를 살피고 그 변화 과정을 확인하는 것이다. 말의 탄생지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차례도 알파벳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America’는 첫 챕터이기도 하면서 우리와도 관련이 깊어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었다.

‘America’는 청나라 시절 아메리카’에 대한 중국어 소리 ‘메이’를 표현한 글자로 한자, 아름다울 미를 써서 ‘미국’이 되었다. ‘아메리카’는 피렌체 공화국 지도자였던 ‘아메리고 베스푸치’에서 따온 것이다. 그가 함선을 타고 신대륙을 향해 갔으나 독일어 지리학 연구자인 발트제뮐러가 세계전도에 그의 이름을 넣지 않았다면 아마도 ‘아메리카’가 아닌 다른 이름이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된 ‘자본주의’는 ‘capitalism’의 번역어다. 원어는 라틴어 ‘capitals’인데 머리를 뜻하는 ‘caput’에서 따 왔다. 지금의 ‘자본’이라는 의미는 원래 ‘stock’을 주로 쓰다가 1880년 이후 경제사회체제 개념으로 ‘capitalism’이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이것이 사회주의에 대응하는 정치적 용어로도 확장되었다.
이처럼 키워드의 의미가 시작부터 지금까지 같은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번역어와 영어의 의미가 서로 맞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경쟁competition’도 라틴어 어원으로는 ‘함께 노력하다’라는 의미였는데 이것이 ‘다툼이나 경쟁’으로 변화한 것이다.
통화로 쓰이는 ‘currency’의 한자어의 부수는 책받침 부수로 ‘쉬엄쉬엄 간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반면 ‘currency’는 ‘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서로 연결되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currency’는 18세기 이후 화폐 경제에 의한 경제 활동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지금의 돈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영어 ‘revolution’이나 프랑스어 ‘revolution’은 원래 어원적 의미만 따지면 획기적인 정치적 격변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라틴어 어원 ‘revolutus’를 그대로 따른다면 ‘원래 자리로 되돌아갔다’는 뜻이다. 앞으로 ‘전진’하는 혁명과는 오히려 정반대다.
‘industry’는 원래 ‘근면’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가 기계 산업 시대 이후가 되면서 지금의 ‘산업’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reform’은 ‘되돌리다’라는 의미로 종교 개혁 시기에 ‘과거로 되돌리다’라는 의미로 변화했다가 현재의 ‘(사회 경제적인) 개혁’이라는 의미로까지 변했으니 상전벽해가 된 경우다.
물론 ‘소비consumption’은 ‘다 가져가다’로 애초부터 지금과 같은 부정적 의미로도 쓰인 경우도 있다.
또, 번역어 ‘프로젝트’, ‘리뷰’, ‘유토피아’ 등은 이제 완전히 우리말처럼 되어 버린 경우도 있어 흥미로웠다.

대부분은 기원어가 라틴어가 많았는데 ‘민주주의democracy’는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리스가 기원이라는 점도 주목이 되었다. 기원어의 의미는 ‘평민, 인민에 의한 지배, 통치’로 직접 민주정을 가리켰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이 되면 알렉시 드 토크빌이 주장한 기회의 평등, 지성의 평준화에 의한 미국식 민주주의의 의미로 보편화된다.

키워드와 내용을 확인하면서 눈에 머무는 것이 있다면 관심이 가는 주제일 것이다. ‘헌법constitution’도 그런 경우다. 영국이 헌법에서 말한 바와 달리 그들은 식민지를 만들고 노예를 부리며 그들의 인격을 강탈했다. 워런 헤이스팅스의 말에 분노하며 도자기 회사에서 만들었다는 저 문구를 보니 더 착잡함이 일 수 밖에 없었다.

에드먼드 버크가 워런 헤이스팅스를 기소하는 연설에서 ‘constitution’은 주요 쟁점 중 하나였다. 워런 헤이스팅스는 탄핵 재판장에서 자신이 통치한 인도 지역의 토착 ‘constitution’이란 원래 다수의 민중을 소수의 지배자가 “저급하고 미천한” 상태에 머물도록 억압하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반면 에드먼드 버크는 고유의 억압적인 정치문화가 아니라 영국인 지배자 워런 헤이스팅스가 주도한 “부패”가 “그 나라헌정질서의 모든 이득을 상실하게 한 진정한 원인”이라고 단언했다.

18세기 내내 북아메리카 및 서인도제도(카리브해) 영국 식민지에 아프리카인 노예들을 파는 노예무역은 영국의 중요한 ‘기간산업’ 중 하나였다. 워런 헤이스팅스를 탄핵하던 시기인 1780년대 후반에는 온갖 사업자와 투자자가 관여하던 영국의 노예무역을 법으로 금지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의회 안팎에서 터져나왔다. - P67~68


웨지우드 도자기 회사에서 만든 ‘폐지론자’ 메달에 새겨진 메시지는 “나도 사람이고 (당신의) 형제 아닌가요?”다.


노예무역 페지론자들 중 한 명인 토머스 쿠퍼는 ‘consumption’이란 말속에 인간 생명의 ‘소모’와 설탕의 ‘소비’를 다음과 같이 연결하고 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900만 명의 노예가 유럽인들에 의해 소비되었다. 이러한 통계도 이미 한 10년 전 것이므로 한 100만 명은 더 추가해야 한다. 노예 하나를 포획하기 위해 열 명씩은 살육해야 한다는 계산을 해보면 그렇다. 그중에서 5분의 1은 배에 실려오는 도중에 죽고, 3분의 1은 농장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죽는다는 점을 감안하자. 전혀 과장하지 않은 계산을 해보아도 유럽인들의 탐욕이 보여주는 악마적인 게걸스러움은 무려 1800만 명의 우리와 같은 동료 인간에 대한 살인을 통해 채워지는 것이 아닌가! 하느님 맙소사, 그들은 도대체 무슨 목적에서 그렇게 하는가? 깜짝 놀란 독자는 이렇게 말할 법하다. “유럽의 신사 양반들이 마시는 차에 설탕을 타기 위해서!” 독자에게 해줄 답은 이것이다. - P84

‘계몽’이라는 단어에서도 비슷한 감상을 받았다. ‘빛’에서 기원한 이 개념은 점차 서구중심주의의 문명사적 개념’으로, 시대 정신이자 사상으로 확장되었으나 과연 그들만이 문명인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계몽’은 이전의 ‘가르침, 훈육’에 의미에서 이제는 너무 변질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메이지 시기 일본에 의해 번역된 ‘president’의 대응어인 대통령’도 의미가 너무 변질된 경우다. 미국의 정치 체제의 의장에서 온 것으로 ‘위임 받은 권위를 행사하는 대리자’라는 의미가 대한민국에서는 ‘권력자’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삼권 분립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도 사실 의문이다.

이처럼 이 책은 역사의 흐름에서 근대 문명의 키워드를 확인할 수 있다.


‘민주주의’로 번역한 말은 ‘-ism’으로 끝나지 않는데도 그렇게 번역되고 고착되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이 ‘demokratia’에 부여한 기능은 무슨 ‘-주의’가 아니라 특정 유형의 정치 체제를 지목하는 것이었다. 원리와 본질을 중시하던 플라톤이었지만 그가 법률에서 ‘demokratia’와 관련한 다음과 같은 발언은 ‘-주의’와는 관련성이 적다.
정치 체제에는 두 개의 모형이 있고 나머지는 다 여기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이 둘 중 하나는 왕정이고, 다른 하나는 공화정(demokratia)이지요. 전자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페르시아의 정치 체제고, 후자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아테네입니다. 그 나머지는 모두 이 둘을 조정하고 배합한 것일 뿐이지요. 어떠한 체제 속에서 자유와 박애를 지혜와 배합하려면 이 둘 중 하나의 형태를 채택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 P101

‘계몽’이 형용사englighten로 ‘교육받은, 지식인의, 문명화된’으로 주로 쓰이던 18세기가 지나고 19세기가 된 이후로 시대정신이나 사상을 지칭하는 칸트식의 용례가 영국에서도 ‘계몽시대’ 같은 표현에 종종 등장한다. 이 단어가 이러한 뜻으로 사용될 경우 단어의 머리글자 ‘E’를 대문자로 구별했다. 대문자로 시작하는 일종의 고유명사가 된 ‘Enlightenment’를 ‘계몽주의’로 옮기지 않을 이유는 물론 전혀 없다.
‘계몽주의’를 이어받은 과학기술문명은 “가장 무지하고 야만적인 시대”와 “잔혹함과 부당함”을 놓고 여전히 경쟁했다. 종교적 양심의 ‘계몽’에서 해방된 근대과학과 “인류의 무한한 진보를 위해 이성의 힘”을 숭상하는 ‘계몽주의’는 19세기와 20세기에 권력욕 및 “저급한 탐욕”과 결탁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 P130~131

미국 헌법이 규정한 ‘아메리카의 주 연합 의장’을 ‘미합중국 대통령’이라 부르는 순간 삼권분립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해낸 온갖 거추장스러운 제약과 견제 장치들이 슬그머니 사라진다. 이러한 오역의 과정을 거쳐 통용되는 ‘대통령’이라는 말에는 ‘대권’을 휘두르는 권력자의 모습이 중첩되어 보이기 마련이다. - P200

“합리적인reasonable” 사람이라면 “쓸모없는” 질문에 매달리지 않는다. 삶의 유익한 바를 깨닫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존 톨런드가 인정하는 ‘합리성’의 내용이기에 존 로크가 말하는 ‘reasonableness’와 유사하다.
‘합리적 의심’은 윌리엄 블랙스톤, 에드워드 쿡 경, 존 로크, 존 톨런드가 이해한 신축적인 실천성과 실무적 감각을 법정에 적용한 법 원칙이다. 그러한 ‘합리성’은 상식의 또다른 이름일 뿐이다. 한 피고인의 권리와 심지어 생명에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는 형사 판결을 비전문가 일반 시민들의 상식에 근거한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배심원 재판이다. 법률 전문가들의 뒤틀린 말장난과 정치판의 편싸움에 끼어드는 기괴한 논리에 따라 사법 정의가 왜곡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대한민국에서 이 표현이 나온 배경을 충분히 이해할 자세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법하다.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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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4-04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담아가요~~
리뷰 감사합니다

거리의화가 2024-04-04 11:06   좋아요 1 | URL
도움을 드렸다니 저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