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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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통해 이어지는 삶과 죽음의 연결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는 시간과 기억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람과 인연도. 같은 운명을 마주해도 선택하는 방식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나는 누구를 감히 구원할 수 있을까, 질문하는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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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인문학 -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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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이 긴장한다. 한쪽 다리가 기둥처럼 땅과 하늘 사이에서 몸을 지탱한다. 다른 쪽 다리가 뒤에서 휙 옮겨 온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다. 몸무게가 앞쪽 발볼로 쏠린다. 엄지발가락이 바닥을 밀어내면, 몸무게는 또 한 번 미묘한 균형을 찾아간다. 두 다리가 위치를 바꾼다. 그렇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이 이어지면서, 탁, 탁, 탁, 탁, 보행의 리듬이 생긴다. 더없이 자명하면서도 더없이 모호한 이 보행이라는 주제는 어느새 슬며시 종교, 철학, 풍경, 도시 정책, 해부학, 알레고리, 그리고 애통함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날씨에 상관없이 어디서든 걷는다. 예전보다 새로운 곳을 찾아나서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같은 풍경을 마주 대하더라도 걸을 때 신기하게도 새로운 경험을 얻기에 계속 걷게 되는 것 같다. 걷기는 신기하게도 지루하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걷기가 좋아서 계속 해왔는데 역사 속 과거의 많은 사람들도 걷기를 예찬했던 것을 보면 이것에 분명 어떤 효능이 있는 것이 아닐까.

지난 주 대마도를 짧게 여행하고 왔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 일본의 단절된 국교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때 이르러 재개되자 조선은 일본에 조선통신사를 에도 시기 총 12차례 파견하였다. 조선통신사는 문화사절단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양국 간 평화를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조선통신사 기록은 2017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대마도는 조선통신사가 가장 먼저 상륙했던 곳으로 에도(도쿄)까지 총 17차례의 지점에 걸친 대장정의 시작점이었던 곳이다. 대마도는 섬의 90% 이상이 산지로 척박하여 옛부터 어업 이외에는 자체 농업 생산을 할 수 없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찍부터 그곳은 무역이 발달했던 곳으로 대마도의 ‘대마(对馬)‘가 ‘말을 대기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것을 확인해봐도 주민들이 섬의 활로를 어느 곳에 방점을 찍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남과 북으로 길게 뻗은 대마도는 북단(히타카츠)과 남단(이즈하라)에 항구가 각각 있을 정도로 서로 거리가 있었다. 나는 가는 날은 남단으로 가면서 여행을 시작하고 떠나야 하는 날은 북단으로 이동하여 여행을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했다. 대마도는 산길에 구불구불한 길이 많은 데다 도로폭이 무척 좁았다. 그래서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렌트를 이용하거나 관광 버스를 이용해서 이동하거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일 생활해야 하는 주민들은 이런 불편함을 받아들이며 생활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현재는 쓰시마섬으로 불리는 이곳이 만약 대한민국령이었다면 어떤 모습일지 잠깐 생각해보았다. 개발을 명목으로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는 널찍한 도로를 내었을 것이고 바닷가 앞에는 수많은 펜션과 주점을 만들며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현재의 훼손되지 않은 빽빽한 나무숲과 께끗한 바닷물을 보며 느끼는 바가 많았다. 비교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대마도의 자연이 유지되는 것은 최소한의 인위성을 배제하고 자연을 지켜낸 덕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덕혜옹주의 결혼기념봉축비를 보면서 당시의 어두운 시대와 신산한 그녀의 삶을 생각했고 구권 5천엔의 주인공인 소설가의 삶과 사랑을 생각하기도 했다. 수백 년간 이곳을 지나다녔을 조선통신사 사절의 모습을 상상하며 떠올려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2차 대전이 끝난 뒤 부산에서 송환선이나 밀선을 타고 대한해협을 건넜을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보게도 되었다. 지금도 부산에서 대마도까지 뱃길로 최소 1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인데 당시는 본토까지 가려면 위험천만한 순간들이 많았을 것 같다.
이런 저런 골목길을 구경하는 즐거움도 좋았고 어선들이 항구에 떠 있는 모습을 바라볼 때는 고즈넉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무엇보다 울창한 나무숲을 바라보고 걷는 일은 힐링이었다. 초여름의 뜨거운 볕 사이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는 기분은 짜릿했다.

꿀 같은 휴가를 보내고 일상에 복귀했다. 낮에는 30도에 육박하는 더위가 시작된 걸 보니 이제 여름에 진입했구나 싶다. 아무튼 이번 여름도 즐겁게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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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6-10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다뿐 아니라 숲도 만나셨군요 섬이지만 산이기도 하네요 예전에 조선 통신사가 처음에 간 곳이라니... 조선 통신사로 간 사람은 조금 힘들었을 듯합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꽤 오랫동안 걸렸을 테니 말이에요 그런 시대가 있기도 했는데...

유월이 오고 하루하루 잘 가는군요 오늘이 가면 삼분의 일이 가겠습니다 거리의화가 님 남은 유월 건강 잘 챙기면서 보내시기 바랍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5-06-11 15:37   좋아요 1 | URL
산이 90% 이상인 곳인데 신기한 것은 높은 산들이 없어서 어디 막혀 있다는 느낌이 안 든다는 거에요^^
그 시절에는 정말 먼 길이었겠죠. 17코스를 거쳐서 에도까지 갔을테니~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고를 반복하며 이 길이 언제 끝나나 잘 돌아갈 수 있을까 뭐 그런 생각하며 갔을 것 같아요.

대선이 끝나고 여행 다녀오고 나니 이 달도 1/3이 지나가버렸습니다. 희선 님 남은 달 즐겁게 마주하시기길 바랍니다^^

책읽는나무 2025-06-11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대마도!
날씨가 좋은 날엔 부산 바다에서도 살짝 보이던 대마도로군요.
대마가 말을 대기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군요.
근데 요즘 기온이 올라 좀 더웠겠어요. 그래도 바다 근처라 바람은 시원했을 듯도 하구요.
숲 속 풍경 멋집니다.^^

거리의화가 2025-06-11 15:39   좋아요 1 | URL
맞아요. 역시 나무 님 잘 아시네요! 제가 갔던 날은 날이 흐리고 해무가 껴서 얼핏 형체만 보이는 정도였습니다^^
햇빛이 세서 양산과 선글라스는 필수였고... 바람 불면 시원했어요. 어딜 가나 초록초록을 볼 수 있어 힐링 잘하고 왔습니다^^
 

보행의 리듬은 생각의 리듬을 낳는다. 풍경 속을 지나가는 일은 생각 속을 지나가는 일의 메아리이며 자극제이다.

걷는 사람에게는 모든 곳이 연결돼있다.

한 장소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 장소에 기억과 연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씨앗을 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수동적 육체는 인간의 보편적 육체가 아니라 도시 사무직 노동자의 육체다.

육체가 실제성의 기준이라면, 두 발로 읽는 것은 두 눈으로 읽는 것보다 실제적이다.

걷기는 곧 읽기이다.

책은 걷기라는 ‘읽기’를 통해 세계를 그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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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힘 우리 시대의 고전 16
자크 데리다 지음, 진태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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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법의 중요성과 당위를 이렇게나 깨달았던 적이 있었던가. 메타 질문(해체적 질문)은 비단 법과 정의, 도덕, 정치에 대한 질문이 아니더라도 적용해볼 수 있는 질문이라 생각했다. 특히 책임 있는 방식으로 개입하여 세계를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의식이 중요하다는 말에 대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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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새기는 빛 - 서경식 에세이 2011-2023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연립서가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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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선생님이 타계한지 어느덧 1년하고도 수개월이 지났다. 재일조선인에 대한 책에 이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2011년부터 2023년까지 칼럼의 내용을 엮어서 모아 놓은 것이다. 저자의 글을 읽고 있으려니 어쩐지 안타까움과 함께 씁쓸함이 몰려왔다(사실 눈물을 좀 훔치기도). 2차례의 큰 세계 전쟁을 거친 후 최소한의 선의와 도덕, 양심에 기반한 정책들이 후퇴하고 전 세계적인 반동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저자처럼 타자에 대한 선의와 양심을 가진 지식인은 세상을 뜨고 있고 자기 자신만 알고 잘못된 혀와 지식을 놀리는 인간은 배를 두드리는 형국이라니 생각할수록 열이 받는다.
책에 플래그를 붙여나가다가 포기했다. 공감가는 말들이 대부분이라 어느 순간에 플래그를 더 이상 붙이지 않고 계속 읽었다.

서두에 노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늙음을 마주한다. 갑작스런 사망이 아니라면 자연스레 누구나 노인이 되기 마련인데 우리는 노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곱씹어야 한다. 우리는 노인을 더 이상 생산력이 존재하지 않는 무용한 존재이자 짐짝처럼 취급하려하지 않는가 말이다. 저자는 그런 압력에 반기를 들며 결코 생산력이나 이윤으로 잴 수 없는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얼마 후 다가올 나의 노년을 위해서라도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해볼 질문이다.

재일조선인으로 살아온 저자에게 ‘디아스포라’는 저자의 삶에 응축된 단어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을 차지한 것도 디아스포라, 경계를 넘나든 지식과 이를 설파한 사람들의 향연이었다.

악몽의 시대 예술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여겨진다. 예술마저 권력에 빌붙은채 눈치를 본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숨구멍을 찾을 것인가.
허가를 받아야 하는 예술. 예술가는 그런 허가에 눈치를 보게 되는 현실. 그러나 예술가는 허가가 있든 진실을 발굴하고 이야기하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종말‘의 도래를 막을 수 없다.(P151)
이 책에서는 많은 예술 작품과 예술가를 다루지만 그 중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윤이상이다. 그는 동베를린 사건(1967년 7월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대규모 공안 사건. 대한민국에서 독일과 프랑스로 건너간 유학생과 교민 등이 동베를린의 북한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며 간첩 교육을 받고 대남 적화 활동을 펼쳤다)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으나, 서독 정부 등의 항의로 복역 2년 만에 석방되었다(2024년 7월 대법원 결정에 따라 윤이상에 대한 재심이 확정되었다).
어느 예술가가 ˝꿈이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꿈을 모방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는데, 실로 윤이상의 생애는 이 꿈처럼 절대적인 해방의 환희에 겨우 4분의 1음을 남기고 도달하지 못하는 경험의 연속이었다. 또 그것은 그 개인적 좌절의 역사라기보다 우리 민족의 경험을 상징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4분의 1음이라는 미세한 공극이 만들어 내는 음의 울림이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美)‘을 낳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P206~207)
그의 생애는 너무나 안타깝다. 한반도의 분단 이후 지나치리만큼 매몰된 이념 사회로 그는 남한을 결국 끝끝내 방문할 수 없었다(남한은 끝끝내 자신들의 입장을 윤이상에게 강요했으나 그는 거부했다). 그는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영상>(1968)을 작업했다. 당시를 생각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에 간 것이었을텐데 정말 많은 용기를 갖고 떠난 것일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사고가 난 이후 여러 차례 주변 지역을 방문해서 기록을 남겼다. 후쿠시마에 갈 때마다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현실만이 지니는 비현실감‘이라고나 해야 할까. 이미 결정적으로 손상당했고 지금도 계속 위협에 노출된 환경.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얼핏 보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고 있다. 현실 그 자체를 바라보고 있는데도 그것이 매우 비현실적으로 생각된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방사능 재난의 특질이 아닐까. 요컨대 방사능 재난은 우리의 감각이나 상상력의 원근법에 도전한다.(P227)
후쿠시마의 일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보게 된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으니 괜찮겠지, 거기서 많이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으니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 말이다. 저자는 그것을 ‘동심원의 패러독스’라고 명명하는데 우리는 거기에 갇혀서는 더 나아진 환경을 만들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공간과 시간을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이 요구된다는 저자의 일침에 자극을 받게 된다.
프리모 레비는 나치 수용소의 만행에 대한 증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타자의 고난에 대한 상상력과 존중 의식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알고 있다. 특히나 증언의 불가능성을 깨고 용기를 내주었기에 그의 말이 계속 살아남아 유효성을 가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상화는 1922년 간토 대지진을 목격하고 돌아와 조선의 식민 지배 수탈을 확인하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를 지어 조선인의 마음을 대변하는 동시에 재일조선인의 마음을 노래하였다. 그 무렵 재일조선인의 1세대가 일본에 형성되었다. 조선의 환경이 악화되어 떠밀려 일본에 정착한 이들이었다.
프리모 레비의 말과 글, 이상화의 시와 후쿠시마를 관련 짓는 일은 동심원의 패러독스를 뛰어넘는 하나의 행위가 되었다.

냉전은 끝났으나 그 후 분단이 고정화되면서 세계는 오히려 극우화되어가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전후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더욱 사태는 심각해졌다고 느낀다.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악마화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여기에 미국과 유럽, 중동의 책임도 무관하지 않다). 남북한의 대립과 끊임없는 위기, 미국과 유럽의 이민 배척의 심화(이는 한국도 마찬가지), 일본의 평화헌법 폐기와 군사국가 행보, 장기 집권하는 푸틴에 빌붙어 권력을 30년 이상 놓지 않고 있는 벨라루스의 루카셴코, 여전히 진행중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등.
피에르 비달-나케는 기억을 부정하려는 자들을 향한 경고의 저술을 남겼다. 기억을 살해하는 것은 언어를 살해하는 것이라는 말이 인상깊다. 일본이 패전을 종전이라 표현하고 전멸을 옥쇄라 명령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을까. 일본의 전후 지식인인 가토 슈이치는 <언어와 탱크>에서 ‘탱크는 모든 목소리를 침묵시키고 환경을 파괴시킬 수 있지만 탱크라는 존재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무력하지만 압도적인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잔혹함의 역사는... 언제 끝을 고할까. 애당초 그것이 ‘끝날‘ 수는 있을까.(P272)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왜 인간은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는지였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나를 냉소주의로 점점 몰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어차피 안되. 그래봤자 안되. 이전에도 똑같았잖아.’ 이런 생각들 말이다. 이상이 없으므로 힘과 돈만을 진실로 여기는 시대, 국가주의가 횡행하고 이념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국가주의를 앞장서 추종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상마저 포기한다면 결국 돈과 권력 같은 욕망에 정복당해 파멸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인간이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연대‘다.(P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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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6-03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 형제의 삶이 마음 아팠었습니다.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 발을 디딜까도 생각했었습니다.
문제의식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이산민을 머물게 해주는 곳이 없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거리의화가 2025-06-03 20:34   좋아요 1 | URL
형님의 복권을 위해 애써주신 분들이 참 많더라구요. 재일조선인의 위치에서 늘 자신이 경계에 있다 생각하셨고 그래서 난민, 소수자 등 타자에 눈과 귀를 기울이셨던 것 같습니다. 부디 영면하시길... 그리고 오늘 투표 결과에도 귀를 기울이고 계실거란 생각도 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