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타의 딸들 - 사라 처칠, 애나 루스벨트, 캐슬린 해리먼의 이야기
캐서린 그레이스 카츠 지음, 허승철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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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타회담은 막바지에 이른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사후 관리, 폴란드 정부 구성 협의 소련의 전쟁 참전 여부에 대한 의견 교환을 위해 1945년 2월 4일부터 11일까지 열렸다.

회담의 주인공은 연합국의 지도자들로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었다.
하지만 이야기 주인공인 얄타의 딸들은 애나 루즈벨트, 사라 처칠, 캐슬린 해리먼이다.
이오시프 스탈린의 딸이 아니라 소련 주재 미국 대사였던 애버럴 해리먼의 딸 캐슬린이 포함되었다.

여기서  애버럴 해리먼은 누구일까?
루스벨트는 1941년 2월 애버럴 해리먼을 무기대여 프로그램 책임자로 지명하였다. 무기대여 프로그램은 미국이 영국과 동맹국에게 전쟁 물자를 제공하고 영국은 종전 후 비용을 치르기로 정한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미국이 직접 참전하면서 무기대여 프로그램이 소련에도 제공되었다. 1943년 가을이 되자 해리먼은 루스벨트의 제안에 따라 모스크바 주재 대사 자리로 임명되어 모스크바로 향했고 회담 전까지 이곳에서 근무했다.

회담 장소가 얄타로 선정된 것은 스탈린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소비에트 지도자들이 휴양으로 과거 황실이 소유했던 궁전을 자주 이용했던데다 흑해 연안에 위치한 섬들 중 그나마 덜 파괴된 곳이었고 많은 인원들이 묵을 정도의 수용이 가능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1943년 11월 이른바 '3거두Big Three'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제2전선을 펼치는 문제를 놓고 테헤란에서 회담을 가졌다. 당시 스탈린의 마음을 사기 위해 루스벨트와 처칠은 런던이나 워싱턴보다 모스크바에 훨씬 가까운 테헤란까지의 고생스러운 여행을 기꺼이 했다. 이번에는 스탈린이 두 사람이 편한 곳으로 오는 것이 공평해 보였다. 두 지도자는 지중해 지역에서 회담을 열자고 제안했지만, 스탈린은 소련을 벗어나 여행하기에는 자신의 건강이 너무 안 좋다고 주장했다. 스탈린은 주치의들의 권고를 내세우며 소련 국경 너머에서 회담 갖기를 거절했다. 소련이 동유럽을 거의 장악한 상태에서 서방의 두 지도자는 전후 민주 세계에 대한 비전에서 스탈린보다 잃을 것이 많았다. 스탈린이 서쪽으로 가장 멀리 여행할 수 있는 경계는 흑해였다. 오데사부터 바투미에 이르는 흑해 연안의 여러 장소를 후보지로 검토한 다음 소련 당국과 미국은 얄타와 리바디아 궁전을 최선의 장소로 결론 내렸다. - P19~20

캐슬린은 어떻게 회담에 합류하게 된 걸까?
캐슬린은 해리먼의 막내 딸로 위로는 언니 메리가 있었다.
캐슬린의 부모는 그녀가 10살 때 이혼했고, 어머니였던 키티 러니어는 캐슬린이 열일곱 살 때 암으로 사망했다. 이후 에버럴은 마리 노턴과 재혼했는데 캐슬린은 다행히 새어머니하고도 잘 지냈다.
캐슬린은 모스크바에 있는 동안 러시아어를 배워 할 줄 알았다. 또 사업과 정부 일을 맡은 아빠를 따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사업 대리 운영을 맡기도 했기에 여러 명사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적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해리먼 가문은 사업으로 성공하여 엄청난 부를 지녔는데, 부를 과시하지 않고 절제된 생활을 했다. (다만 그 절제 기준이라는 것은 당연히 일반인들 기준에는 한참 높은 것이라 생각되기에 논외로 하겠다^^;)
애버럴은 가족과 함께 세계여행도 다니는 등 시간을 보낸 적이 많았다. 모스크바에서 해리먼과 15개월을 함께 보냈고 이전에 런던에서 종군기자 생활을 2년 간 하면서 그녀는 얄타 회담에 참석하는 연합국 지도자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존재였다.

런던과 모스크바에서 캐슬린의 생활에는 승마, 사격, 스키가 빠지지 않았다. 그녀의 새어머니는 당시 캐슬린이 '독신'인 점을 염려했지만, 그녀에게는 늘 열렬히 구애하는 남자들이 있었고, 그녀는 2주 전부터 스케줄이 꽉 찰 정도로 많은 남자를 만났다. 캐슬린 정도 나이에 여건을 갖춘 여자들은 대부분 결혼해서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았다. 그러나 캐슬린은 가정을 꾸리는 것은 나중 일이고,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 P41

해리먼과 캐슬린은 크림반도에 도착한 지 3일 후 해리먼은 처칠과 루스벨트를 만나 회담 사전 협의 참여를 위해 몰타로 갔다.
해리먼은 대표단 전 리바디아 궁전의 회담 준비를 캐슬린에게 맡겼다.

캐슬린이 리바디아 궁전에 도착해보니 상황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모스크바 호텔에서 자재들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궁전은 벌레와 해충이 들끓고 벼룩과 빈대가 넘쳐났다. 이 때문에 등유에 DDT를 섞은 용액을 가구에 살포하고 침대포에도 DDT 가루를 뿌렸다.

사라 처칠은 전쟁 전에 연극 배우의 이력을 갖고 있었는데 연극 극단과 함께 순회공연을 하면서 아빠와 떨어진 시간이 길었다.
사라가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연극배우인 빅토르 올리버와 결혼하기 위해 뉴욕으로 도망가자 부녀 사이는 냉랭해졌다. 하지만 전쟁으로 부녀는 관계 회복의 기회를 얻었다.
그녀는 영국 황실 공군의 여성항공대 소속 정찰 장교였기에 2년 간 몰타와 지중해의 항공 사진을 판독하며 근무하고 있었다.윈스턴은 1943년 테헤란 회담에 이어 이번에도 그녀에게 동행을 요청했다.
그녀는 똑똑했고 군사와 정치 현안에 이해도가 높았다.
그녀는 근무지인 런던 서쪽의 영국 공군 메드멘햄 기지로부터 특별휴가를 받아 아빠와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사라는 예민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서 또래 소녀들과 활발히 어울리며 우정을 쌓지 못했다. 중요한 메시지는 메모에 적어서 전했다. 다른 가족들이 그녀의 과묵함을 놀리려고 하면 아버지는 바로 나서서 이들의 말을 가로막고, "사라는 조개처럼 자기 비밀을 내면에 간직하려는 거야"라고 했다. - P56

루스벨트는 신체적 제약이 있었기에 주변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했다. 테헤란 회담 때는 아들인 엘리엇과 사위인 존 보티거가 그를 수행했으나 이번에는 애나가 선택된 것이다.
애나 루스벨트는 다섯 자녀 중 장녀이자 외동딸로 이전까지 그녀는 아빠를 따라 나선 적이 없었다.
38세의 애나는 세 자녀가 있었다. 증권거래사인 커티스 달과 첫 결혼으로 얻은 10대 딸과 아들, 존과의 두 번째 결혼 후 낳은 아들이었다.
1944년 남편이 북아프리카와 지중해로 군입대하자 애나는 백악관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그녀는 출장을 자주 다니는 영부인 엘리너 루스벨트를 대신하는 역할을 하면서 눈에 띄는 명사가 되었다.

외모를 떠나서 애나는 편하고 유쾌하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 P61

몰타에는 미국의 애버럴 해리먼, 해리 홉킨스 대통령 특별 보좌관, 에드워드 스테티니어스 국무장관과 영국 외상 앤서니 이든이 이미 와 있었다.
루스벨트는 2월 2일 미 해군 순양함 퀸시호를 타고 도착했다.

루스벨트는 회담 참석 당시 건강이 무척 좋지 않았다. 애나는 그런 루스벨트가 걱정스러웠으나 아빠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자 생각했고, 아빠에게 마음으로 다가서는 마지막 기회를 만들자 생각해서 따라나섰다.
애나는 아빠와 거리감이 있었지만 반대로 루스벨트는 딸 옆에서야 마음이 편했던 모양이다.

루스벨트는 애나와 같이 있을 때 편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애나는 여자로서 "다른 속셈을 품을 줄 모른다"고 루스벨트는 생각했다. 그녀는 가족을 위한 봉사를 삶의 우선순위에 두었고, 특히 가족의 남자들이 차분하고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데 성심을 다했다.

캐슬린은 얄타회담에서 루스벨트를 처음 만났다.
스탈린은 1944년 10월 모스크바의 발레극장에서 만났었고, 처칠 가족은 이미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였다.
자국 대통령을 가장 마지막에 그것도 자국이 아닌 얄타에서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캐슬린은 회담 동안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파멜라 처칠에게 편지를 보냈다.
파멜라 처칠은 윈스터 처칠의 며느리로 러시아의 정치 사안과 인물들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언니인 메리에게도 자주 편지를 보냈으나 주로 개인적인 이야기나 심경을 토로한 것이였고 회담 관련 이야기는 파멜라 처칠에게 전했다.  파멜라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회담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뒷이야기가 무엇인지 들여다볼 수 있다.

2월 4일 스탈린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그는 코레이즈궁 방공호에서 대표단의 도착 상황을 상세히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스탈린은 첫 일정으로 처칠이 머무는 보론초프 궁전을 방문했다.
처칠은 스탈린에게 독일 전선의 전반적 상황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으나 민감한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헤어졌다.
이후 스탈린은 리바디아 궁전에서 루스벨트와 회동을 가졌다. 이는 해리먼이 몰로토프와 합의하여 마련된 자리였다.
처칠은 전후 소련 세력이 부상할 것을 경계한 반면 루스벨트는 서방과 소련이 공동의 적과 싸우기 위해서 연합해야 한다고 보았다.
여기서도 루스벨트는 이를 강조하였고 스탈린은 전후 프랑스 하의 독일 점령 구역 문제에 대해서 고려가 필요하다고 한 뒤 둘은 대화를 마쳤다.

오후5시 3국 대표들이 전체회의를 위해 리바디아 궁전에 모였다.
비로소 연합국 지도자들과 참모들이 진행하는 첫 회의였다
3국의 지도자들 모두 각자의 군대가 독일군을 만나기 전 혼란을 극복할 합동 전략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회의록은 볼런이 기록했다. (볼런은 루스벨트의 통역관으로 자리했지만 미 국무부 내에서 소련 전문가 중 한 사람이었다. )
루스벨트는 낙관적 미래를 그리고 있었으나 볼런은 스탈린이 자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 생각하면 언제든 자기 길을 가는 데 주저함이 없을 거라고 적었다.

2월 5일 전체회의는 오후에 리바디아 궁전에서 열렸지만, 매일 열리는 군사회담, 외무장관회담은 세 궁전을 돌아가며 열렸다.
분위기는 유쾌했으나 해리먼은 이런 분위기가 오래 갈거라고 믿지는 않았다. 소련의 회담 패턴을 알고 있어서였다.

처음에 소련 측은 과도할 정도로 다정하고, 친절하고 협조적이며, 특히 중요성이 크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두 번째 단계에서 분위기는 급격히 바꾼다.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한다. 이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얼마나 상대의 입장을 배려했는가를 강조하면서 특정한 입장을 굽히기를 거절하고 무뚝뚝하고 거칠게 나오며 심지어 적대적 태도도 보인다. 그러나 협상이 끝날 때쯤이면 다시 유쾌한 친근감을 보이고 동맹의 힘과 협력 정신에 대한 건배를 거듭하며 축제 같은 분위기로 손님을 보낸다. 소련 대표들은 이런 협상 전술의 대가이고 필요할 때마다 이를 동원했다. - P193

오후 전체회의가 진행되었다. 루스벨트는 전날 무척 좋지 않은 컨디션이었지만 오늘은 훨씬 나아보였다.
스탈린은 독일이 재무장하지 못하도록 독일을 완전히 분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처칠은 독일의 역사, 문화, 경계를 연구하지 않은 채 무 자르듯 독일을 분할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루스벨트는 이 문제는 지금 논의할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에 스탈린은 독일 분할에 대한 조항을 독일의 최종 항복 조건에 추가해 넣는 정도로 만족한다고 의견을 피력했고 루스벨트와 처칠도 이에 동의했다.
다음으로 프랑스 점령 지역 문제였다. 루스벨트는 프랑스 자체에 관심이 없었지만 프랑스에게 점령 지역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에 스탈린은 주변 지역도 점령 지역을 요구할 수 있으므로 강력히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처칠은 프랑스가 독일을 관리하여 서방의 세력 균형을 맞추어야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소련 외무차관인 이반 마이스키가 이 때 나서며 소련이 독일군에 입은 피해가 막심하므로 이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처칠과 루스벨트도 이는 인정했으나 이 문제는 외무장관회의에서 배상 문제를 따로 다루는 것으로 하고 회의를 마쳤다.

스탈린은 자식 중에서는 아무도 회담에 데려오지 않았으나 최측근이었던 라브렌티 베리야는 데려왔다. 그는 크림타타르를 독일군에게 협력했다는 혐의를 씌워 강제로 이주시킨 장본인이었다. 회담장에는 그의 아들 세르고 베리야도 함께 왔다. 아들인 세르고 베리야가 맡은 역할은 소련 측이 설치한 도청장치를 운영하는 팀의 핵심 인물이었다.
회담장에서 이 도청장치가 늘 따라다닌다. 미국 측과 영국 측도 소련 도청 가능성을 짐작하고 찾으려 노력했으나 도청장치가 금속제가 아니어서 찾는 데 실패했다.

2월 6일 3정상이 평화 진작을 위한 국제기구 구성 문제와 폴란드 주권 문제를 논의하는 동안 세 딸은 흑해 연안의 역사 도시인 세바스토폴을 방문한다.
세 사람은 세바스토폴의 참상을 보며 충격을 받는다.
사라는 런던 대공습을 경험했고, 영국 공군에서 항공정찰사진을 분석하며 황폐화된 도시를 많이 봐왔는데도 세바스토폴의 처참한 광경과 인명 피해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기자였던 캐슬린과 신문 편집자였던 애나는 그동안의 경험 덕분에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능력이 있었다.

캐슬린과 애나의 편지에는 전쟁 파괴의 범위가 신문처럼 상세히 서술된 반면 사라의 서정시적 관찰에는 감정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사라가 세바스토폴에 대해 엄마에게 쓴 서술은, 아버지 처칠의 설득력 있기로 유명한 산문과 인간 감정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을 떠올리게 한다. - P237

세 번째 전체회의에서 폴란드 문제가 제기되었다. 스탈린은 폴란드 문제는 소련에게 있어 안보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처칠은 소련군이 서쪽으로 진격하면서 술을 마시고, 약탈하고, 강간을 저질러왔다는 사실을 폭로했고 또, 현재 폴란드 루블린 정부는 폴란드 국민의 1/3도 대표하지 못하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루스벨트는 지난 5백년 간 폴란드가 갈등의 진원지 였다고 말했고 처칠은 이에 이 갈등을 처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루스벨트는 이날 회담에 불만이 생겨 스탈린에게 편지를 적어서 전달해 스탈린에게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는 교회와 학계 인사를 포함해 국가 내 존경받는 폴란드 지도자 두세 명과 루블린 정부 대표 몇 명을 얄타에 오게 하여 루블린 정부와 런던 정부 간 중재자 역할을 맡기자고 한 것이다.

캐슬린은 2월 7일자 편지에서 회담의 진정한 전환점이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대단한 환희가 있었어"라고 캐슬린은 친구에게 썼다. 그날 오후 회담에 돌파구가 열렸다. 지난해 여름 워싱턴 덤버턴 오크스에서의 회담, 여러 달에 걸친 서신 교환, 그리고 얄타에서 이틀에 걸친 토론 끝에 드디어 "엉클 조(스탈린)에게 덤버턴 오크스를 팔았어"라고 캐슬린은 썼다. - P286

루스벨트가 구상한 평화기구에 대한 합의를 방해하는 요인은 스탈린과 몰로토프가 소련을 구성하는 16 공화국 각각이 총회에서 한 표씩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해서이다. 그날 오후 협상에서 몰로토프는 그 숫자를 2 또는 3으로 축소했고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가 전쟁에서 큰 희생을 치렀으니 두 나라가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연방 국가인 캐나다도, 인도 투표권도 주자고 했다. 영국과 미국 측이 몰로토프의 제안을 수용할 뜻을 보이자 스탈린은 평화기구의 안전보장이사회 표결 원칙을 수용하였다.

그녀의 요원들은 해리먼 대사의 업적을 그의 매력적이고 예쁜 딸에게 열심히 전달했다. "너도 상상이 가겠지만 애버럴이 투수 역할을 맡았고 지금까지 들어온 보고는 아주 고무적이야"라고 그녀는 파멜라에게 자랑했다. - P288

2월 8일 오후 전체회의에서 폴란드의 자유선거와 전후 독일 문제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스탈린과 처칠의 전투로 루스벨트는 힘이 소진되었고 미국 진영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자 더욱 상황이 악화되었다.
주치의는 상황을 캐치했으나 루스벨트는 그날 밤 스탈린이 주최하는 만찬이 예정되어 있었고 불참하면 자신의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추측한 소련에 그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라 생각하여 아픈 척 연기를 계속 이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

2월 9일 처칠이 폴란드 문제를 두고 스탈린과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세 사람은 마지막 오후를 함께 보낸다.
그날 오후 세 대표단을 최종 선언문에 동의했다.

사실 얄타회담은 결론적으로 논의한 것들이 뒤집히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스탈린은 얄타협정의 대부분의 합의를 파기하기 시작했다. 힘들게 만들어진 국제연합기구인 UN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소련은 차례로 동유럽 국가를 집어삼켰고 이들의 자치권을 제대로 보장해주지도 않았다. 소련의 야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중국, 베트남, 한국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세 여성을 보며 지도자의 딸로서의 모습, 한편으로는 개인으로서의 삶을 생각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버랩된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서 제법 많은 것을 얻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일단 지도자의 딸로서의 모습이다.
아무리 그녀들이 한 나라의 지도자인 수장의 딸이었다고 해도 정상들이 모이는 수뇌부 회담에 참석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회담에 참석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재미있다.
결과적으로 세 명의 여성이 회담장에 자리하게 된 것은 굉장한 기회였고 그것은 그녀들의 삶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두번째로 개인으로서의 삶이다.
세 여성 모두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개인사들이 있었다.
얽히고설킨 관계는 '아니 뭐야~ 이렇게 연결된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만큼 막장스러운데 또 그녀들은 그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수용한다.
특히 부녀관계를 이야기안할 수가 없는데 루즈벨트는 회담 참석 전까지 애나와의 관계가 껄끄러웠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루즈벨트의 내연녀였던 루시가 큰 몫을 했다.
그래도 루즈벨트가 죽기 전에 애나는 아빠로 그를 받아들이게 된다.
세 부녀 관계 중 사라와 처칠의 관계는 돋보였다. 회담 이전부터 둘의 관계는 좋았고 처칠이 죽을 때까지 사라는 아빠를 이해하고 존경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책은 회담에 참석했던 세 여성이 회담에 참여하게 된 경위와 그녀들의 삶에 주목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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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5-13 23: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얄타에 지도자들의 딸들이 참여했다니 이런 뒷이야기들 넘 재미있어요. 스탈린 딸은 오지 않았군요. 궁전 치우는 것도 넘 힘들었을거 같아요~ 재미있게 읽었어요 거리의 화가님 *^^*

거리의화가 2022-05-14 09:07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이런 뒷배경이 있는지 몰랐어요. 스탈린은 딸(스베틀라나)에게 무관심한 편이었고 스탈린의 엄마는 6살 때 자살했는데 이 사실을 16살 때 알았다고 하네요-_-; 그리고 그녀의 연인을 스탈린은 강제노동수용소에 보내버렸다는... 이를 비롯해 뒷이야기가 정말 많지만 여기 다 적기엔 너무 많더라구요^^; 궁전 치우는 거 장난 아니었을 것 같고 전쟁의 참상을 이야기하는 장면도 많이 나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scott 2022-05-14 16: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루스벨트 딸의 인생이 굉장히 드라마틱 했죠.
미국에서 퍼스트 도어터 중에 가장 진취적인 삶을 살아서 자주 화자 되었고 관련된 다큐도 많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부분이 넘, 적어서
섭섭 ㅎㅎㅎ


푸틴은 자기 자신, 혈육은 끔찍하게 아낀다는뎅

거리의화가 2022-05-14 18:40   좋아요 3 | URL
네 말씀하신대로 회담 이후 세 여성의 삶을 소개합니다만 사실 그러기엔 한 장의 내용이 다라 적긴 합니다 얄타회담에서 그녀들이 한 역할에 주목을 해서 그런 것 같고요. 스탈린과는 다르게 푸틴은ㅎㅎ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인류도 사랑해야할터인데-_-

mini74 2022-06-10 08: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 이런 역사의 뒷이야기 넘 좋아요 ㅎㅎ 축하드립니다 ~~

거리의화가 2022-06-10 08:5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미니님*^^*

새파랑 2022-06-10 09: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요즘 폭풍독서 모드 이신거 같아요. 당선 축하 드립니다 ^^

거리의화가 2022-06-10 11:13   좋아요 3 | URL
ㅇㅎㅎㅎ 새파랑님이야말로 열혈독서중 아니신가요?ㅎㅎ 축하 감사합니다^^*

청아 2022-06-10 12: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강약 조절로 협상을 하는 당시 러시아를 보니 국제적 관계에서
힘겨루기가 주요하다는 걸 짐작케 하네요.
소재도 독특한데 얄타의 딸들과의 연결고리가
중요한 인물들, 사건들과 얽혀서
더 재미있으셨을 것 같아요!! ㅎㅎ
거리의화가님 당선 축하드려요😊

거리의화가 2022-06-10 12:59   좋아요 2 | URL
물리적인 폭력만이 아니라 외교적인 싸움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 같아요. 당시에 강대국이라고 소위 불리는 국가들은 이 중요성을 철저히 이용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대한민국도 생각해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은 하수 전략이고 치고 빠지는 전략이라던가 더 나은 전략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 책 참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사건의 이면을 뒤흔든 인물들의 이야기라서 좀 더 다각도로 사건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네요.
감사합니다^^

scott 2022-06-14 00: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얄타의 딸들이 화가님에게 선물을!

화가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2-06-14 06:37   좋아요 1 | URL
스콧님 캄사합니다^^* 어제 자기 전에 스콧님 안보이시네 했는데 떡하니 나타나셨네요ㅎㅎ 스콧님도 추카드립니다!
 

성, 섹슈얼리티, 재생산은 개인과 사회의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구조화하는 하이테크 신화 체계의 중심에 있는 행위자들이다.

신기술은 로절린드 페체스키Rosalind Petchesky(1981)가 분석한 "사유화privatization" 형식에 깊이 연루된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사유화 형식에서는 군사화, 우익의 가족 이념과 정책, 기업 (및 국가) 자산을 더욱더 사적인 것으로 정의하는 현상이 시너지를 일으키며 상호작용한다.

신기술은 기아 및 세계의 자급 식량 생산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레이 레서 블럼버그Rae Lessor Blumberg(1981)는 여성이 전 세계적으로 자급 식량의 50퍼센트를 생산한다고 추정한다.

신기술의 사회관계가 지닌 또 다른 결정적 측면은 거대 과학기술 노동력을 위한 [삶의] 기대치· 문화 ·노동·재생산이 재형식화되는 현상이다. 심하게 양극화된 사회 구조의 등장은 사회·정치적으로 중요한 위협이 된다.

사회주의 페미니즘 정치가 적절한 형태가 되려면 특권화된 직업군, 그중에서도 과학기술의 담론·과정·대상을 생산하는 과학기술 업무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문제를 상정해야 한다. 이 문제는 페미니즘 과학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과정의 한 단면에 불과하지만, 중요하다.

지배의 정보과학이 갖는 특징을 서술하는 유일한 방법은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생존을 위한 네트워크를 이루는 데 종종 실패하여 불안정성과 문화적 빈곤이 크게 강화된다는 점을 지적하는 방법이다. 이 그림의 상당 부분은 과학기술의 사회관계와 엮여 있으며, 과학기술의 문제를 다루는 사회주의 페미니즘 정치가 긴급하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이테크 문화로 형성된, 통일성이 분열되는 현상에 대한 양가감정은 우리가 의식을 "탄탄한 정치적 인식론을 정초하는 명쾌한 비판" 대 "조작된 허위의식"이라는 범주로 분류하는 대신, 막강한 잠재력을 지닌 쾌감이나 경험 그리고 역량의 출현을 섬세하게 이해함으로써 게임의 규칙을 바꿀 수 있기를 요구한다.

나의 몸과 마음은 페미니즘 운동뿐 아니라 2차 대전 이후의 군비 경쟁과 냉전에 의해서 역시 구성되었다. 현재의 패배보다 정치가 발휘하는 모순적 효과에 주목하면 희망을 품을 이유가 더 많아진다. 체제를 옹호하는 미국 기술관료technocrats를 생산하기 위해 설계한 정책이 반체제자를 양산해내기도 한 것이다.

완벽하게 진실한 언어를 향한 꿈, 경험을 완벽히 충실하게 명명하는 가능성을 향한 모든 꿈과 마찬가지로 공통 언어를 향한 페미니스트의 꿈은 전체주의적이며 제국주의적인 꿈이다. 모순을 해결하려 하는 변증법 역시 그런 의미에서 꿈의 언어다.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동물 및 기계와의 융합을 통해 서구 로고스의 체현인 (남성)인간이 되지 않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학기술의 사회관계를 통해 불가피해진, 강력하고 금기시되는 융합에서 체험하는 쾌감에 주목하면 페미니즘 과학이 정말로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들은 유기체적인 것을 옹호하면서 기술적인 것과 대립시킨다. 하지만 그들의 상징체계 및 그와 연관된 생태여성주의 및 페미니스트 이교 신앙paganism 속에 넘쳐나는 유기체주의는, 20세기 후반에 적합한 ‘대립 이념’이라는 샌도벌의 용어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들은 기계나 후기 자본주의 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사이보그 세계의 일부다. 하지만 유기체와 기계의 구분을 비롯해 서구적 자아의 구조를 만드는 깔끔한 구분선이 무너지면서 출현하는 독특한 가능성을 단호히 포용할 때, 페미니즘은 엄청난 자원을 얻게 된다. 붕괴의 동시성은 지배의 기반에 균열을 내면서 기하급수적인 가능성을 연다.

"유색인 여성"은 과학 기반 산업에서 선호되는 노동력이며 전 세계의 성 시장, 노동 시장, 재생산 정치의 만화경을 일상으로 도입하는 현실의 여성들이다. 성 산업과 전자제품 조립 공장에 고용된 젊은 한국 여성들은 고등학교에서 모집되고 집적회로를 만드는 교육을 받는다.

사이보그 정체성이란, 오드리 로드의 "생물적 신화학biomythography"인 《제이미Zami》 (로드 1982; 킹 1987a, 1987b)가 서술하는 복합적인 정치?역사적 층 속에 퇴적된 "아웃사이더" 정체성들을 융합하여 합성되는 강력한 주체성이다.

글쓰기는 식민화된 집단 모두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글쓰기는 구술 문화와 문자 문화, 원시적 사고방식과 문명화된 사고방식을 구분하는 서구 신화에서 결정적인 위치를 차지해왔고, 더 최근에는 일신론적·남근적·권위주의적·단독적인 작업, 즉 유일하고 완벽한 이름을 경배하는 서구의 남근 로고스 중심주의phallogocentrism를 공격한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을 거쳐, 문제의 이분법들이 붕괴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글쓰기의 의미가 걸린 씨름은 현대 정치 투쟁의 주요 형식 중 하나다. 글쓰기 놀이의 해방은 더없이 진지한 문제다.

페미니스트 사이보그에게 가장 결정적인 남근 로고스 중심주의 기원 설화는 글쓰기 기술 세계를 쓰는 기술, 즉 생명공학 및 전자공학 안에 구축된 채, C3I의 격자 위에서 우리의 신체를 코드의 문제로 텍스트화했다. 페미니스트 사이보그 이야기의 과제는 소통과 통신을 재코드화해서 명령과 통제를 전복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무엇보다 사이보그의 기술로, 20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글자판이다. 사이보그 정치는 언어를 향한 투쟁으로, 완벽한 소통에 대항하며, 모든 의미를 완벽하게 번역해내는 하나의 코드, 즉 남근 로고스 중심주의라는 중심 원리에 대항하는 투쟁이다. 사이보그 정치학이 소음을 고집하며 오염을 긍정하고 동물과 기계의 불법적 융합을 기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결합은 남성Man과 여성Woman을 문제 삼고 언어와 젠더를 생산한다고 상상되는 힘인 욕망의 구조를 전복함으로써 자연과 문화, 거울과 눈, 노예와 주인, 육체와 정신이라는 "서구의" 정체성이 재생산되는 구조와 양태를 전복한다. "우리"는 본래부터 사이보그가 되기로 선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선택은 "텍스트"가 널리 복제되기 이전 시대의 개체 재생산을 상상하는 자유주의 정치와 인식론을 정초한다.

서구 전통에서는 특정 이원론들이 유지되어왔다. 이 이원론 모두는 여성, 유색인, 자연, 노동자, 동물 ?간단히 말해 자아를 비추는 거울 노릇을 하라고 동원된 타자 ?로 이루어진 모든 이들을 지배하는 논리 및 실천 체계를 제공해왔다. 이 골치 아픈 이원론에서는 자아/타자, 정신/육체, 문화/자연, 남성/여성, 문명/원시, 실재/외양, 전체/부분, 행위자/자원, 제작자/생산물, 능동/수동, 옳음/그름, 진실/환상, 총체/부분, 신/인간과 같은 것이 중요하다. 지배되지 않는 주체the One이며, 타자의 섬김에 의해 그 사실을 아는 것이 자아다. 미래를 쥐고 있으며 지배의 경험을 통해 자아의 자율성이 거짓임을 알려주는 이가 타자다. 주체가 된다는 것은 자율성을 확보하고 막강해지며 신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주체됨은 환상이며 그 때문에 타자와 함께 종말의 변증법에 들어가게 된다. 반면 타자됨은 다양해지는 것, 분명한 경계가 없는 것, 너덜너덜해지는 것, 실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하나는 너무 적지만 둘은 너무 많다.

하이테크 문화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이 이원론들에 도전한다.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서는 누가 생산자이고 누가 생산물인지 불확실하다. 코딩 작업으로 구성되는 기계에서는 무엇이 정신이고 무엇이 육체인지 분명치 않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생물학 같은) 공식 담론과 (집적회로 속 가사 경제와 같은) 일상적 관행 모두의 맥락에서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이보그, 하이브리드, 모자이크, 키메라임을 깨닫게 된다. 생물학적 유기체들은 생체 시스템, 다른 기계들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장치가 되었다. 기계와 유기체, 기술적인 것과 유기체적인 것에 관한 공식적 지식에서 근본적·존재론적 분리는 없다.

페미니즘 SF에 등장하는 사이보그 괴물들은 남성Man 및 여성Woman이 등장하는 세속적인 소설과는 사뭇 다른 정치적 가능성과 한계를 정의한다.
적이 아닌 모습의 사이보그 이미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여러 결과가 생겨난다. 우리의 몸들, 즉 우리 자신인 몸들은 권력과 정체성의 지도다. 사이보그도 예외는 아니다. 사이보그 신체는 순수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우리는 부활이 아닌 재생을 요구하며, 우리를 재구성하는 가능성에는 젠더 없는 괴물 같은 세계를 바라는 유토피아적 꿈이 포함된다.

사이보그 이미지는 우리 자신에게 우리의 몸과 도구를 설명해왔던 이원론의 미로에서 탈출하는 길을 보여줄 수 있다. 이것은 공통 언어를 향한 꿈이 아니라, 불신앙을 통한 강력한 이종언어heteroglossia 를 향한 꿈이다. 이것은 신우파의 초구세주 회로에 두려움을 심는, 페미니스트 방언의 상상력이다. 이것은 기계, 정체성, 범주, 관계, 우주 설화를 구축하는 동시에 파괴하는 언어이다. 나선의 춤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지만, 나는 여신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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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에 쉬었기 때문에 총 4일간의 연휴를 보냈다.
어린이날 부모님과 식사를 했고 (예약을 했어야 하는데 가는 곳마다 자리가 없어서 결국 칼국수집으로 갔다 다행히 맛은 나쁘지 않았으나 다음에는 꼭 예약을 먼저 해야겠다)
6일에는 남편과 집 근처 중국집에 가서 탕수육에 차돌짬뽕을 먹었다.
어제는 책도 읽고 한문공부도 하고 중드도 보았다.
오늘은 낮에 남편과 탄천 산책을 하고 돈까스 집에 가서 점심을 해결했다^^;
의도치 않게 외식을 많이 한 것 같다.

<해러웨이 선언문>을 읽기 시작했다.
다락방님께서 추천해주신 포켓 필로소피 팟캐스트를 듣고 시작했는데 역시 읽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소중한 타자성이라는 개념과 fact, fiction의 구분이 그리 무 자르듯 간단명료하지 않다는 사실, 연구자의 태도(정말 공감했다)가 특히 쏙쏙 이해되었다.
아! 그리고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라는 것도.
일단 해러웨이 선언문 부분부터 읽는 중이다.
사실 서문 읽고 흠칫 놀라서 며칠을 쉬었는데 읽고 보니 서문 때문에 지레 겁먹었다는 느낌이 든다. 뒷부분이 차라리 읽기에 더 수월한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이해가 되는 건 아니고~ 어렵지만 읽어나갈 수 있을 정도인 것 같다.
간간이 어려워서 지루해지는 고비가 오는데 ‘지배의 정보과학’ 챕터까지 일단 읽었다.

<올리브 키터리지>를 완독했다.
이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상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대부터 70대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세대별로 저마다 상실의 모습은 다르지만 그 시기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실의 경험들이 뭉클한데 그것이 결국 그들의 삶에서 중요한 자양분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관점을 상대방은 다르게 바라보는 관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죽을 때까지 알기 어렵지 않을까.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특히 나는 섭식장애를 겪는 소녀가 나오는 부분에서 너무 많이 울었다. 속상했고 마음이 아팠다.
올리브의 사랑 이야기는 짠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했다.
나의 마지막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때 내 곁에 어느 누구도 없다면 그리고 죽는 장소가 내가 아는 곳이 아니면 어떡하지 두려움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고통이 길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생각했다.

<얄타의 딸들> 1부를 읽었다.
생각만큼 재밌다. 얄타회담은 3정상 간의 회담으로만 인식되어 있는데 이들이 여기까지 오는 과정과 주변 인물들의 관계를 그려놓으니 빈 공간을 채워간다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다.
나머지 2, 3부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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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5-08 21: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탄천?
반갑네요~~

거리의화가 2022-05-09 08:35   좋아요 2 | URL
무의식 중에 탄천이라고 했는데 그냥 집 근처 천이 있고 공원이 있어요^^; 이름은 송방천인데 예전에 살던 곳에 탄천이 있어서 탄천이란 용어가 잘 안 벗어나네요ㅎㅎ

그레이스 2022-05-09 08:36   좋아요 3 | URL
^^

건수하 2022-05-08 21: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탄천이라는 말에 반가워요- :)

(포켓 필로소피 내친 김에 찾아봐야겠어요)

거리의화가 2022-05-09 08:36   좋아요 3 | URL
수하님 포켓 필로소피 찾아서 들어보심 도움되실 것 같아요^^
그리고 탄천은 보시다시피 입에 붙어버려서...^^;

건수하 2022-05-09 09:00   좋아요 4 | URL
앗 그랬군요 ㅎㅎ 그래도 반가운 마음에 평소보다 용기내어 댓글을 달았답니다 :)

일단 1화 들었는데 감이 좀 잡히면서 읽을 의욕이 나네요 ^^

거리의화가 2022-05-09 09:06   좋아요 3 | URL
ㅎㅎ 수하님 저도 반갑습니다^^; 자주 용기내주셔요!ㅎㅎ 저도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친한 척 이런거 잘 못하지만 그래도 이곳 알라딘 서재분들은 좋은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팟캐스트 들으니 역시 더 낫죠~? 철학에 문외한인 저도 재미나게 들었습니다. 즐거운 한주 되시길 바랍니다!

mini74 2022-05-08 22: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사이보그선언까지 읽고 잠시 쉬고 있어요 ㅎㅎㅎ저도 팟빵 찾아듣고 더시 읽어야 할 듯 합니다 ~돈까스 맛있어 보여요~~

거리의화가 2022-05-09 08:57   좋아요 4 | URL
오~ 미니님 많이 들으셨군요^^ 팟캐스트 듣고 읽으니 역시 더 낫더라구요^^; 뭐든 배경을 깔아주고 시작하면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이 책은 한 번에 이해는 안되니 한 번은 더 봐야 할 것 같은데 시간이 허락할지 모르겠습니다ㅎㅎ
돈까스 무지 맛있었어요. 치즈돈까스라 저것만으로 배가 많이 불렀답니다ㅋㅋ

다락방 2022-05-09 09: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컴북스 이론총서 의 <도나 해러웨이> 먼저 읽고 있거든요. 잔뜩 쫄아있었는데 이거 읽기 괜찮네요. 이거 읽고나면 아마도 <해러웨이 선언문>을 좀 수월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됩니다. 으아, 이해 못할까봐 너무 쫄려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2-05-09 09:57   좋아요 3 | URL
다락방님 안 그래도 컴북스 이론총서 이북으로 받아놨어요^^; 읽는 김에 읽어보려고 하는데 일단 저는 본문을 먼저 시작했네요!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 다행입니다^^ㅎ
너무 쫄리지 않으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다락방님의 경력 정도면 충분히 읽으실겁니다! 화이팅~!

scott 2022-05-09 16: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효녀!ㅎㅎ
어린이날 부모님 모시고 맛나는 거, 행복한 추억 가득!ㅎㅎ
오월 날씨가 넘 ㅎ
좋아서
책보다 밖이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ㅅ^

거리의화가 2022-05-09 16:16   좋아요 3 | URL
효녀와 전혀 거리가 멉니다. 살가운 성격이 못되어서 매번 부모님 만나뵙고 오면 후회하곤 합니다ㅜㅜ 어버이날 하려다가 어차피 사람 많은 주간일 것 같아서 어린이날 나갔는데 역시나 사람은 똑같이 많더군요ㅠㅠ 다음에는 맛있는 거 사드려야겠다는 생각들어요~
아마도 5월 지나면 장마 또는 폭염이 오지 않을까 싶어서 이달을 만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운동하기도 좋더라구요ㅎㅎ

페넬로페 2022-05-09 20: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4일간의 휴가를 보냈어요.
즐겁게 놀고 맛있는 것 먹고~~
책은 읽지 못했는데 거리의화가님은 무척 알뜰하게 보내셨네요~~
올려주신 음식들이 다 맛있어 보여요^^

거리의화가 2022-05-10 07:23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 휴가를 아주 제대로 보내셨군요^^ 저도 이것저것하며 보냈는데 많이 먹어서 몸이 무거워진 단점이ㅋㅋ 음식들은 다 맛있었어요ㅎㅎㅎ

페크pek0501 2022-05-13 15: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4일간의 연휴에다 예쁜 꽃에 맛있는 음식까지 행복한 시간들이었겠어요.
덕분에 구경 잘했어요.^^

거리의화가 2022-05-13 23:20   좋아요 1 | URL
페크님 보기에도 좋아보여서 제 마음도 흐뭇합니다^^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이런 시간들이 더 많아져야 일상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한국어로 번역된 개념이 더 난해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옆에 원문 단어를 같이 표시해주는 게 훨 나은 것 같다.
원문이 훨씬 더 개념을 명징하게 이해해주는 데 도움이 된다.

해방은 억압 및 억압의 가능성에 대한 의식, 즉 상상적 이해의 구축에 달려 있다. 사이보그는 허구이면서도 삶 속 경험의 문제로, 20세기 후반에 ‘여성 경험’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의 기준을 바꾼다. 이 문제는 삶과 죽음을 좌우하는 투쟁의 문제로, SFscience fiction와 사회 현실을 갈라놓는 경계는 착시일 뿐이다.

이 글은 경계가 뒤섞일 때의 기쁨, 그리고 경계를 구성할 때의 책임을 논한다. 이 글은 사회주의 페미니즘 이론과 문화에 기여하려는 노력의 한 갈래이면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비자연주의의 방식으로, 어쩌면 태초도 종말도 없을, 젠더 없는 세계를 상상하는 유토피아적 전통을 따른다.

사이보그는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의 소망과 달리, 아버지가 에덴을 복원해, 즉 이성애적 짝을 제작하고 도시와 조화로운 세계cosmos라는 총체를 제공해 자신을 완성해줌으로써 자신을 구원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사이보그는 이번에는 오이디푸스적 기획 없이, 유기체적 가족 모델을 따라 설계된 공동체를 꿈꾸지 않는다.

사이보그는 추상적 개체화로 지배력을 확장한다는 "서구의" 끔찍한 종말론적 목표telos, 마침내 모든 의존에서 벗어난 궁극적 자아, 다시 말해 우주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인본주의적 의미의 기원 설화는 본원적 일체original unity, 충만함, 은총과 공포의 신화에 의존하며, 이는 남근적 어머니로 표상된다. 인간이면 누구나 이 어머니로부터 분리되어야 하는데, 개인의 발달과 역사의 발전이라는 이 과제, 강력한 쌍둥이 신화는 특히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우리에게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사이보그는 포스트젠더postgender 세계의 피조물이다. 사이보그는 양성성bisexuality, 오이디푸스 이전의 공생symbiosis, 소외되지 않은 노동을 비롯하여 부분들을 상위에서 통합해 그 전체의 권력을 최종적으로 전유하여 얻어지는 유기적 총체성을 향한 유혹과 거래하지 않는다. 사이보그는 어떤 면에서 서구적 의미의 기원 설화가 없다. 이것이 사이보그 "최후"의 아이러니다.

사이보그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넘어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신화로 출현한다. 사이보그는 인간의 둘레에 장벽을 쳐서 다른 생명체와 인간을 서로 격리하는 것을 나타내기는커녕, 거북하고 짜릿할 만큼 단단한 결합을 암시한다. 수간bestiality은 현재의 혼인 교환 주기에서 새로운 지위를 지닌다.

20세기 후반의 기계들은 자연과 인공, 정신과 육체, 자생적 발달과 외부로부터의 설계를 비롯해 유기체와 기계 사이에 적용되던 수많은 차이를 철저히 섞어버리고 말았다. 우리가 만든 기계들은 불편할 만큼 생생한데, 정작 우리는 섬뜩할 만큼 생기가 없다.

문명의 기원에 관한 서구의 설화에서 글쓰기, 권력, 기술은 오랜 공범자다. 그 메커니즘의 경험을 바꾼 것은 소형화다. 소형화는 결국 권력의 문제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이보그는 에테르ether이며 정수精髓quintessence다.

단일한 시각은 이중적인 시각이나 머리가 여럿 달린 괴물의 시각보다 나쁜 환상을 만들어낸다. 사이보그 연합체는 기괴하고 위법적이다.

"여성female"됨에는 여성을 자연스레 묶는 것이 없다. 심지어 여성"됨being"과 같은 상태가 없으며, 그 자체가 성과 관련된 과학 담론 및 사회적 관습을 통해 구성된 매우 복합적인 범주다. 젠더·인종·계급 의식은 가부장제·식민주의·자본주의라는 모순적인 사회 현실을 경험해온 우리의 비참한 역사가 강제로 떠안겨준 성과다.

지배를 통한 통일 또는 통합을 통한 통일에 대항하는 이론적·실천적 투쟁은 가부장제·식민주의·인본주의·실증주의·본질주의·과학주의를 비롯해 사라져도 별로 아쉬울 것 없는 다른 여러 주의들의 근거만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유기체적 또는 자연적 관점을 옹호하는 모든 주장의 근거 또한 무너뜨린다.

사이보그 페미니스트라면 "우리"는 자연적 통일성의 기반을 더 이상 원치 않으며 총체적 구성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해야 한다. 순수성 및 그와 결부된 피해자됨victimhood을 유일한 통찰 근거로 삼는 바람에 생겨난 피해는 이미 겪을 만큼 겪었다. 하지만 새로 구성된 혁명 주체는 20세기 후반을 살아가는 인민에게 진지하게 생각해볼 여유를 주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 페미니즘이 본질화하는 것은 노동의 존재론적 구조, 혹은 그 유비물인 여성의 활동이다. 내가 볼 때 이 입장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마르크스적 인본주의를 계승하면 지나치게 서구적인 자아를 함께 물려받게 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경우, 단일한 여성이라는 실체와 같은 것이 있다는 식으로 자연화한 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위와 같은 공식화를 통해 여성들의 통일성을 만들고자 현실의 여성들이 일상에서 감당하는 의무를 강조했다는 점에 있다.

백인 래디컬 페미니스트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는 인종 문제에 관해 당혹스러울 정도로 침묵을 지킴으로써 무겁고 파국적인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계보를 세우려는 정치적 분류법 속으로, 역사와 다음성polyvocality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여성이라는 범주, 그리고 단일하거나 총체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전체로서의 여성이라는 사회 집단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폭로하겠다고 주장하는 이들 이론에, 인종(및 또 다른 많은 것들)을 위한 구조적 자리는 없었다

이제, 특정한 성과 성 역할 개념이 유기체나 가족 같은 자연적 대상의 유기체적 속성이라는 유성 생식 이데올로기는 설득력을 잃는다.

원시나 문명 같은 개념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우리는 통제 전략이 자연 대상의 온전성integrity이 아닌 경계 조건과 인터페이스, 경계를 넘나드는 흐름의 비율에 집중될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 서구 자아의 "온전성"이나 "진정성"은 의사결정 과정과 전문가 체계에 자리를 내주었다

대상, 공간, 신체는 그 자체로 신성하지 않다. 공통 언어common language를 매개로 신호를 처리할 수 있는 적절한 기준과 코드만 있다면, 모든 구성 요소가 인터페이스를 매개로 접합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세계의 교환은 마르크스가 그토록 잘 분석한 현상, 즉 자본주의 시장이 모든 것을 화폐로 교환할 수 있게 만들면서 도입한 보편적 번역의 한계마저 초월한다. 이 우주의 모든 구성 요소에 영향을 주는 특권적 병은 스트레스, 즉 소통의 실패다 (호그니스Hogness 1983).

사이보그는 해체되고 다시 조립되는, 포스트모던 집합체의 일종인 동시에 개인적 자아이다. 이것이 바로 페미니스트가 코드화해야 하는 자아이다.

정신과 육체, 동물과 인간, 유기체와 기계, 공과 사, 자연과 문화, 남성과 여성, 원시와 문명 등에서의 이분법은 하나같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의심스럽다. 여성들이 실제로 처한 상황은 지배의 정보과학이라는 생산/재생산과 커뮤니케이션의 세계 체제 속으로 통합/착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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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과 새마을 - 동아시아 냉전의 연쇄와 분단국가체제
허은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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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냉전 시기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곳은 어디일까.
전 세계가 그 영향을 받았겠지만 특히 동아시아 지역은 여러 정부를 거치며 오래 지속되었다고 본다.
특히 한반도는 동족 간의 전쟁 이후 냉전의 고리 속에 철저히 얽혀 분단체제를 이어갔고 이념 전쟁은 민족 간에 뿌리 깊은 증오와 불신을 남겼다.
정부는 냉전을 안보 전쟁으로 철저히 이용했는데 이는 현 정치와도 무관하지 않기에 탄식하며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식민지배와 분단, 이어진 전쟁에서 정부의 정치적 방향을 바탕에 따른 민중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구체적으로는 1930년대 만주국 터전에서부터 1970년대 한국의 농촌까지, 말라야 신촌에서 남베트남 신생활촌, 한국의 새마을까지 이어지는 연쇄적 역사를 담고 있다.

박정희 정부가 세운 1972년 분단국가체제는 동아시아 냉전의 근대화 원리를 구현한 체제였다.
그렇다면 '1972년 분단국가체제'의 특성은 어떠한 것인가.

첫째, 만주국 반만항일세력은 전후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을 진압하고 베트남 전쟁 평정에 참여한 세력이었다.
1930년대 일제는 만주국을 제국팽창의 최전선이자 방공의 최전선으로 만들기 위한 곳으로 집단부락을 대대적으로 건설했다. 집단부락은 '비민분리'를 통한 인구 통제, 중층 감시체계를 통한 자위대 운영, 집단 부락을 안정시키기 위한 농촌부흥 모색까지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의 원형을 담고 있는 공간이었다.
일제 시기 친일부역자들이 그랬듯이 만주국군은 전후 방공전사로 거듭나며 친일행위를 지우고 만주국에서의 집단부락 건설의 경험을 제주도에 그대로 이식시켰다. 만주군 출신 지휘관들이던 지리산 공산유격대 토벌군들은 만주에서의 대유격전 원리를 원용하여 군사 전략과 대민정책에 적극 활용하였다.
대표적 냉전 전사였던 박정희, 박창암, 박임항 등은 5·16 쿠데타 사건으로 집결하였고, 이들은 남베트남에 군사사절단을 파견하여 한국군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할 수 있는 가교를 만들었다.

둘째, 5·16 쿠데타로 동아시아 냉전의 연쇄에 능동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군정 세력이 집권하면서 한국사회는 진영대립 구도에 갇히게 되었고 남북문제와 근대화 노선을 모색할 가능성도 차단되었다. 거기에 군사력을 이용한 민주적 통제 기회 마저 사라졌다.
한국은 베트남전에 개입하면서 한국군 관할지역에 신생활촌을 건설하고 자매결연 관계를 수립하는 등 이전의 공작 경험을 그대로 이곳에 이식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남베트남 정부는 자위 자치 자체개발과 협동정신을 강조하고, 농촌 재편정책을 도시로 확대하는 방침을 추진했다. 박정희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새마을 운동을 통해 실체를 구현하였다.
여기에 미국의 역할을 빼놓을 수가 없다. 동아시아 냉전의 흐름에 대처하기 위해 케네디 정부는 한국에 적극적인 '대민활동' 지원을 통해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전투병을 파견하기 전 준비과정으로 삼았다.

셋째, 박정희와 친위세력이 국내외 변화를 인민전쟁 위협론으로 몰아부치며 영구집권을 추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1960년대 냉전질서는 다극화 경향을 보였고 미국이 중국에 대한 정책을 변화시키면서 한국 정부는 안보에 우려와 불신을 보였다. 정부는 1967년 9월 국가안전보장회의 이후 기존 안보 관련법을 검토한 뒤, 1968년 1·21 사태를 계기로 비상대권의 확보와 지도자 영도론을 부상시켰다.
그들은 1969년 개헌반대에 직면하여 이를 뒤로 미루었으나 1971년 특별조치법 제정과 1972년 유신헌법 선포를 거치며 이를 완결시켰다.
당시 여론은 안보를 문제로 민주주의 체제를 약화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공화당 내에서도 새 안보 프레임에 반대하는 견해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1971년 중국의 유엔 가입, 미국의 대중국 데탕트 정책 전환, 남북대화에 대한 한국사회의 반응을 박정희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로 바라보았다.

넷째, 비인간화 정책을 지속하는 체제, 전근대적 지배원리를 변용한 지배체제였다.
당대 지식인들은 공업화에 치중한 경제성장 제일주의 노선의 폐해를 지적하며 제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주장하였으나, 정부는 국민의 정신개조 측면을 강조하며 '국가안보제일주의', '경제성장제일주의' 양 노선을 추진하는 방안으로 내세웠다.
민주화 운동 세력은 전태일의 분신, 광주대단지 사건을 통해 비인간화를 초래하는 근대화 노선을 비판하며, 사회 경제적 민주주의의 확립을 통한 안보를 주장했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와 군은 북의 위협의 불변함을 강조하며 전 국민이 이에 대비하는 주체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냉전의 새마을'을 건설하기 위해 박정희 정부는 '대공새마을'로 불린 지배체제를 수립했다. 서로를 감시하는 체제로 마을 이장, 새마을지도자, 농협 이·동 총대를 배치하고, 이장과 반장에게는 민방위 책임을 맡겨 안보와 개발을 총괄하는 책임을 맡겼다.
이 지배체제는 중층적 감시체제 속에 '내부 적'으로 분류된 이들은 죽어서도 감시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고,이념 문제가 아닌 정신질환 등의 사람들을 순응하지 못하는 인물로 바라보며 잠재적인 내부의 적으로 분류하였다.
과거의 연좌제를 답습하여 그야말로 변용시켰다고 할 수 있다.

새마을운동 세대는 아니지만 어릴 적 새마을운동가를 나도 모르게 따라불렀던 기억이 난다.
국민학교 때 반공포스터를 그리면서 한반도가 나뉘어 있고 북한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는 교육을 받았다.
중 고등학교 때는 교련 수업을 받았다. 받으면서도 '대체 이걸 왜 하는거지?'라는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으나 그냥 잡혀 있는 수업이니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아이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교육이 아닐 수 없다.
마치 국민을 반공전사로 키워내듯 교육시키는 시대였다고 생각된다.

경제성장 제일주의를 내세웠던 박정희 정부는 역설적으로 국민을 불신하고 주체가 아닌 동원의 대상으로 바라보았으며 개인의 인권과 생명을 위험에 빠뜨린 체제였다.
이 체제는 박정희 사후에도 신군부 세력에 그대로 이관되었고, 광주항쟁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신군부는 민주항쟁을 '반란' '소요'로 규정하고 왜곡하며, 자신들의 국가반란 행위를 정당화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를 두고 보지 않았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일어났다.
6월 항쟁은 국민을 불신하고 적으로 두는 정부를 향해 칼을 겨눈 이들의 역사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는 현재의 역사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만주국 체제가 박정희 분단체제에 이식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언급된 추가 자료들 중 읽을 책들을 몇 권 꼽아놓았다. 시간이 된다면 읽어봐야겠다. 



올해로 1972년 유신체제 등장 50주년이 되었다. 이 뿌리 깊은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것은 언제쯤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과의 관계는 다시 틀어지게 되었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전 세계에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럴 때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와의 외교는 더욱 중요할 것이다.

다만 이제 곧 새 정부가 들어설텐데 안보의 위기를 불안감으로 조장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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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5-07 0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새마을세대
저 시골 살아서 국민학교때는 아침마다 저 노래소리 들리면 동네 공터에 가요. 그러면 거기 동네 애들이 다 모이고 그럼 6학년 오빠가 든 깃발 아래 모두 줄서서 학교 갔어요. 아 진짜.... ㅠㅠ 고등학교 교련수업에 이걸 왜하지라는 의문조차 못품었던... ㅠㅠ 근데 초반에 만주국 출신들을 반만항일세력이라고 얘기하는건 어떤 의미에거 항일이라고 하는건지 좀 궁금하네요. 제가 알기로 이지역 광복군은 이름만 광복군이지 일제 패망 이후 박정희같은 만주군출신 한국인들이 재빨리 광복군으로 갈아탄것으로 알고있거든요. 그래서 실제 항일과는 관련이없을뿐 아니라 오히려 광복군의 이름을 도둑질한거나 다름없다고 알고 있는데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