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 구운몽 최인훈 전집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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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예전에 읽었으니 가지고 있던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디에 둔지 알 수가 없어서 결국 새로 구입한 책이다. 이전에는 같은 출판사이지만 최인훈 전집으로 나온 판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판본이었다.

어쨌든 광장은 재독이었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문학 작품으로 손꼽히는 광장. 1960년 11월에 발표된 소설이다.
출간 당시가 전쟁이 끝난 지 6~7년, 4.19 혁명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다. 남북한은 갈라진 상태에서 전쟁으로 막심한 피해를 겪었고 인간에 대한 증오와 불신이 여전히 남아 있을 때였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는 비동맹 선언, 중립주의 등의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진다.
공교롭게도 이명준의 선택은 당시 사람들의 상황과 선택지 중 하나를 예상케 한다.

명준이 남한과 북한 어디에도 가지 않겠다면서 중립국을 선택하는 모습은 비장미마저 느껴진다. 남한과 북한 사회의 모습들을 친절하게 보여주는 모습에서 명준이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납득할 수 있도록 한다.

구운몽은 처음 읽게 되는 것이었다. 
(근데 이전에도 같이 실려 있었을텐데 왜 나는 구운몽을 함께 읽지 않았을까.)
우선 읽기 전 왜 하필 구운몽이 광장과 나란히 한 책에 묶였을까 궁금했다.
어떤 배경도 접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전달받고 감정을 겪자 생각하여 곧바로 읽게 되었다.

완독 후 첫 감정은 혼란과 어지러움이었다.
독고민이 몇 차례의 꿈을 꾸고 환각을 경험하던 것처럼 나도 마치 악몽을 꾸었다 현실로 돌아왔다 다시 비슷한 악몽을 꾸는 과정을 여러 번 겪듯 메스꺼움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구운몽을 이끌고 가는 인물은 독고민 뿐 아니라 김용길, 시사회 해설자 등 다양하다. 이 때문에 장면의 전환이 빨라서 혼란스러움이 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작가의 의도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구운몽은 1962년 4월에 발표된 소설로 5.16 군사 쿠데타의 상황을 그렸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혁명군 방송에서는 혁명이 위기에 빠졌다며 시민군이 일어서기를 반복적으로 종용하고 자유를 부르짖는다.

독고민의 내면을 끊임없이 괴롭히던 것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반복되는 내면의 상황들이 독고민의 마지막을 짐작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광장>의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광장이라면 <구운몽>의 광장은 썰렁하고 시멘트 바닥의 느낌처럼 차갑고 얼어 붙어 있다.

같은 작가의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광장과 구운몽은 형식이 달라서 새롭게 느껴졌다.
<광장>은 명준이 선택하는 외부 상황에 대한 묘사에 집중하는 모습이라면 <구운몽>은 철저히 인물에 대한 내면에 치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독자들은 한 권의 책에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 두 개를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역시 두 소설을 한 권에 담은 더 큰 이유는 역사적인 이유가 아닐까 한다.
4.19 이후 독재에서 벗어나 이제 진정한 자유를 찾는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던 대한민국 국민들은 5.16 으로 그것이 송두리채 무너지게 되니 말이다.


남한 시절의 그에게는 철학이 모든 것이었다. 부모도 없고 돈도 없고 명예도 없는 청년에게, 철학이란 모든 것을 갚고도 남을 꿈을 보여주는 단 하나의 것이었으리라. 또는 양반과 종놀음으로 헤아릴 수 없는 세월살아온 고장에서, 꿈을 이룰 엄두조차 내지 못할 사회에서, 철학이란, 양심의 마지막 숨을 곳이었으리라. 아니면 그 신분이 임금이건 종이건 사람이 산다는 일에 놀라움을 느끼고, 그 뜻을 캐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마음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어느 것이든 좋고, 철학이란 그 모든 것을 다 뜻한다. 어쨌든 그는 철학의탑 속에서 사람을 풍경처럼 바라보았다. - P106

인류는 슬프다. 역사가 뒤집어씌우는 핸디캡. 굵직한 사람들은 인민을 들러리로 잠깐 세워주고는 달콤하고 씩씩한 주역을 차지한 계면쩍음을 감추려 한다. 대중은 오래 흥분하지 못한다. 그의 감격은 그때뿐이다. 평생 가는 감정의 지속은 한 사람 몫의 장에서만 이루어진다. 광장에는 플래카드와 구호가 있을 뿐, 피묻은 셔츠와 울부짖는 외침은 없다. 그건 혁명의 광장이 아니었다. - P158

에덴 동산에서의 잘못에서 법왕제에 이르는 기독교의 걸음걸이는, 그대로 코뮤니즘의 낳음과 자람의 걸음에 신기스럽게 들어맞는 것이었다. 그들은 쌍둥이 그림이었다. - P184

그는 지금, 부채의 사북자리에 서 있다. 삶의 광장은좁아지다 못해 끝내 그의 두 발바닥이 차지하는 넓이가 되고 말았다. 자 이제는? 모르는 나라, 아무도 자기를 알 리 없는 먼 나라로 가서, 전혀 새사람이 되기 위해 이 배를 탔다. 사람은, 모르는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 성격까지도 마음대로 골라잡을 수도 있다고 믿는다. 성격을 골라잡다니! 모든 일이 잘될터이었다. 다만한가지만 없었다면. 그는 두 마리 새들을 방금까지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무덤 속에서 몸을 푼 한 여자의 용기를, 방금 태어난아기를 한 팔로 보듬고 다른 팔로 무덤을 깨뜨리고 하늘 높이 치솟는 여자를, 그리고 마침내 그를 찾아내고야 만 그들의 사랑을. - P208

마음이 추우면 죽는다. - P223

더 많은 탐조등 빛이 도시의 하늘에서 갈팡질팡 엇갈리고 있다. 폭격, 혁명, 누가 혁명을 일으킨 것일까. 스피커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거리고 나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개 한 마리 얼씬 않는 거리는 사방이 괴괴할 뿐, 총소리 한 방 들리지 않는다. - P249

불사조처럼 날아오르는 그대의 양심을. 그대의 사랑을. 양심과 사랑에 거듭나서, 심연의 그 아득한 거리에 승리하고, 저 높은 자유를 향하여 날아오르는 그대의 앞날을 봅니다. 이 도끼를 받으십시오. (총성. 또 총성. 뒤따라 기관총이 이어쏴) 안녕히. 연인이여. 그래도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 자유 만세. 공화국 만세. - P278

현대는 성공의 시대가 아니라 좌절의 시대며, 건너는 시대가 아니라 가라앉는 때며, 한마디로 난파의 계절이므로, 다음에 현대인의 인격적 상황은 극심한 자기 분열이다. -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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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06-04 22: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광장은 몇 년 전에 재독했는데, 같이 실린 구운몽은 아직 못 읽었어요^^; 구운몽 쪽이 더 읽기가 어려울 것 같군요. 화가님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거리의화가 2022-06-04 22:59   좋아요 3 | URL
괭님도 구운몽 못 읽으셨군요ㅎㅎ 구운몽 내면 묘사가 좀 많고 장면 전환이 휙휙이라 어지럽더군요^^ㅎㅎ
월요일까지 쉬니 여유가 더 생긴 것 같아요~ 연휴 잘 보내세요^^

mini74 2022-06-04 23: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광장, 밑줄 그으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고딩때 읽었었는데, 반공교육이 익숙했던 세대로 주인공의 선택이나 결말이 꽤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ㅎㅎ 화가님도 연휴 즐겁게 보내시길 *^^*

거리의화가 2022-06-04 23:11   좋아요 2 | URL
저도 처음에 읽을텐 명준의 선택이 아쉽기도 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다시 읽으니 명준의 마음이 더 이해되는 측면이 많더라구요 가면 갈수록 명준이 혼란스러워하는 걸 보니 말이죠. 그 시기를 직접 겪은 분들의 심정도 돌아보게 됐어요^^ 연휴 잘 보내세요!

바람돌이 2022-06-05 15: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책 가지고 있는데 왜 광장만 읽었을까요? 광장 처음 읽은게 중학교때였던 거 같아요. 순전히 집에 책이 있어서.... 그런데 진짜 그때는 이해가 하나도 안돼는.... 학교에서 하는 반공주의 교육에 찌들어있던 어린 영혼이 뭐가 이해가 되었을까 싶어요. 그 뒤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면서는 1960년대에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다는데 정말 놀랐었고 감격했던 기억이 나네요.
구운몽은 아마 제목 때문에 안 읽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고전 소설 구운몽을 연상시키는데 저는 그 구운몽 싫어했거든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2-06-06 21:43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구운몽 제목 듣자마자 예전 고전 소설 떠올렸거든요~ 진짜 그게 연상되서 꺼려진건가 싶기도 하군요ㅋ 저는 어릴 때 읽지는 않아서 처음 읽을 때도 나름 잘 읽긴 했는데 그때는 명준의 마지막 선택이 강렬해서 다른 건 순삭되었었던 것 같고 이번에 읽으니 주변의 여러 상황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어쨌든 잘 쓴 소설인 것 같긴 합니다!

scott 2022-06-06 0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쓴 독후감으로 상을 받았었는데
이후 두번 다시 읽지 않았던!ㅎㅎ

화가님 환각 경험까지 일어 나셨다고 하니
진심으로 명준의 선택에 아쉬움 가득 ㅠ.ㅠ

거리의화가 2022-06-06 21:45   좋아요 2 | URL
오~ 스콧님 독후감으로 상 받은 적이 없어서^^; 역시 능력자 스콧님! 근데 왜 두번 다시 읽지 않으셨어요...ㅋㅋ

환각은 뒤에 읽은 구운몽 때문에 생겼어요. 어찌나 상황이 어지럽던지ㅋㅋㅋ
명준의 선택은 충분히 이해되는 면이 있어서 괜찮았습니다! 제가 그 시절이었고 명준의 상황이라면? 전 물도 무섭고 겁이 많아서 육지에 내리긴 했을 것 같긴 한데 말이죠ㅋㅋㅋ

희선 2022-06-12 0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목만 아는 책이네요 구운몽은 옛날 소설도 있는 거 맞군요 그것도 제목만 알지만... 그것과 아주 다른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형식이 비슷할지...


희선

거리의화가 2022-06-12 07:02   좋아요 2 | URL
고전 구운몽 학교 다닐 때 분명 읽었을 것 같은데 내용이 가물거리네요^^;
최인훈의 구운몽 제목은 아마도 주인공이 현실과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의 꿈을 여러 차례 꾸거든요 그래서 이름을 가져다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희선님.
 

서구문명에 성별을 구성한 형식(사회적 역할, 법, 은유)에 대한 재정의를 통해 역사적 발전을 따라가보는 것
동양문명에서는?

기원들: 전통주의 -> 다윈 진화론, 프로이트 심리, 윌슨의 자연 선택 -> 마르크스 주의, 레비 스트로스 구조 문화주의 -> 모성주의

역사란 무엇인가? 우리는 기록되지 않은 소문자 역사(history) – 인류에 의해 재수집된 과거의 모든 사건 ㅡ와 대문자 역사(History)기록되고 해석된 과거를 구분해야 한다. - P16

현재 시점에서 집단으로서의 남성과 집단으로서의 여성이라는 차원에서 양자의 모든 차이가 구별지어지는 정도는 남성역사와 근본적으로 다른 여성의 특수한 역사의 결과이다. 이것은 문명보다 더 오래된 여성의 남성에 대한 종속 때문이며, 여성의 역사에 대한 거부 때문이다.

나의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남성과 여성이 과거에 대한 지식과 맺고 있는 관계는 그 자체로서 역사를 만드는 하나의 힘이라는 통찰이다. - P20

모든 관념의 행렬은 현실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어떤 것 혹은 적어도 자신들이 경험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경험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미지, 은유, 신화는 과거 경험을 통해 ‘형상이 미리 예시된‘ 형태 속에서 표출된다.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에 사람들은 새로운 방식들로 이 상징들을 재해석하며, 그것들은 다시 사람들을 새로운 조합들과 새로운 통찰력으로 인도한다. - P25

한쪽 눈으로 볼 때 우리의 시각은 범위가 제한되고 깊이가 없다. 우리가 다른 눈의 시각을 더할 때 우리 시각의 범위는 넓어지지만, 여전히 깊이는 없다. 우리가 전체적 시각과 정확한 깊이의 지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두 눈으로 볼 때뿐이다.
컴퓨터는 우리에게 또 다른 은유를 제공한다. 컴퓨터는 우리에게 삼각형 (2차원) 그림을 보여준다. 그 이미지를 유지한 채 삼각형은 공간을움직이고 피라미드(3차원)의 형태로 변환된다. 피라미드와 삼각형의 이미지를 유지한 채로 피라미드는 곡선을 만드는 공간(4차원)에서 움직인다. 우리는 그 어느 것도 놓치지 않은 채로 네 가지 차원 모두를 동시에보지만, 또한 서로간의 진정한 관계 속에서 그것들을 본다.
가부장적 용어로 말하자면, 우리가 보았던 대로 보는 것은 2차원적이다. 가부장적 틀에 ‘여성을 추가하는 것‘은 그것을 3차원으로 만든다. 그러나 그 세번째 차원이 완전히 통합되고 전체와 함께 움직일 때만이, 여성의 시각이 남성의 시각과 평등할 때만이, 우리는 전체의 진정한 관계와 부분들의 내적 연관성을 지각한다. - P28

해석을 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접근법 개념적 틀은 결과를 결정짓는다. 그것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우리는 현재 속에서 대답되기를 원하는 과거에 관한 질문을 제기한다. 오랜 역사적 시간 동안, 우리의 의문을 형성했던 개념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토론을 거치거나 도전을 받지도 않았다. - P33

전통주의자들은 당연히 남성지배는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 주장은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것은 하느님에 의해 그렇게 창조되었기 때문이라고 종교적 용어를 사용하여 제시되기도 한다.
전통주의자들은 알려진 모든 인간사회에서 발견되는, 여성과 남성에게 다른 일과 역할을 배정하는 현상인 ‘성적 비대칭‘(sexual asym-metry) 현상을 여성과 남성의 지위에 대한 증명이자 그것의 ‘자연스러움‘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로 받아들인다.) - P35

19세기에 종교적 주장이 힘을 잃자 여성의 열등성에 대한 전통주의자들의 설명은 ‘과학적이 되었다. 다윈주의이론은 종의 생존이 개인의 자기충족보다 더 중요하다는 신념을 강화시켰다. 미국사회에서 사회복음(Social Gospel, 노동자계급이 종교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한 교회지도자들에 의해 주도된 미국의 자유주의 신학운동으로서 19세기 후반에 시작되었으며, 자유주의적 진보사상과 수정다윈주의 등을 차용하였다― 옮긴이)이 부와 특권의 불평등한 분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자의 생존이라는 다윈주의적 관념을 이용한 것처럼, 가부장제의 과학적 변호인들은 모성역할을 통해 여성을 정의하는 것과 경제 및 교육기회에서의 여성배제를 종의 생존이라는 이익에 봉사한다며 정당화하였다.

현대 심리학은 성차가 자연스럽다는 가설을 의심조차해보지 않고 현존하는 성차를 관찰했고, 또 조상들만큼이나 생물학적으로 제약을 받는 심리적 여성상을 구축하였다. 성역할을 비역사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측정된 임상자료로부터 도출된 지배적인 성별역할을 강화하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 P38

윌슨(E. O. Wilson)의 사회생물학은 인간행동에 자연선택이라는 다윈주의적 사고를 적용함으로써 성별에 대한 전통주의적 시각을 제시하였다. 윌슨과 그 추종자들은 집단의 생존을 위해 ‘적합한‘ (adapative) 인간행위는 유전자 속에 새겨진다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이런 행위에 이타주의나 충성심, 모성주의(maternalism) 같은 매우 복잡한 성향까지 포함시킨다. 이들에 따르면, 여성이 자녀를 키우고 돌보는 기능을 담당하는등 성에 바탕을 둔 노동분업을 실천하는 집단이 진화에 이로울뿐만 아니라, 이같은 행위가 우리의 유전적 유산의 일부가 되었고 그런 사회적 역할배정에 필요한 심리적·신체적 경향이 선택적으로 발달하여 유전적으로 선택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 P39

양성의 본성에 대한 엥겔스의 기본 가설은 생물학의 진화론들을 수용.
하고 있지만, 그의 큰 이점은 성적 관계를 구조화하고 정의하는 데 사회적 · 문화적 영향의 중요성을 지적한 것이다. 엥겔스는 사회관계에 대한 이론적 모형과 함께,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의 일부일처제가 발전의 정점에 서 있다는 양성관계에 대한 진화론을 발전시켰다. 변화하는사회관계와 성적 관계를 연결시킴으로써, 그는 전통주의자들의 생물학적 결정주의와 결별하였다. 사적 소유관계에서 출현하여 제도화된 양성간의 갈등에 주목함으로써 그는 경제·사회적 변동과 오늘날 우리가 성별관계(gender relations)라고 부르는 관계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 P45

‘여성의 교환’은 그 속에서 여성이 상품화되고 ‘사물화된‘ (reified), 즉여성이 인간존재라기보다는 물건으로 생각되었던 교역의 최초 형태이다.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여성의 교환은 여성종속의 시작을 나타낸다. 그것은 다시 남성지배를 만들어내는 성별노동분업을 강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비-스트로스는 근친상간 금기를 인류문화 창조 과정에서 긍정적이고 필요한 단계로 보았다. - P46

모성주의(rmaternalist) 이론은 생물학적 성차를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입장 위에 구축되어 있다. 몇몇 최근의 이론가들이 이 입장을 수정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페미니스트 모성주의자들은 이러한 생물학적 차이 위에 구축된 성별노동분업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모성주의자들은 여성의 평등을 위해, 그리고 심지어 여성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이런 논리를 편다는 점에서전통주의자들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 P49

집단 내의 여성들이 남성권력에 영향을 미치거나 견제하는 상당한 힘을 가지는 사회와 생활의 많은 혹은 몇몇 측면에서 남성들과 권력을 공유하는 사회가 있었고, 아직도 있다. 개별여성이 그들이 대변하는 남성들의 모든 권력 혹은 거의 모든 권력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여왕이나 통치자와 같이 그들의 대역으로 행동하는 사회도 존재하고 또 역사적으로존재해 왔다. 이 책에서 보여줄 것처럼, 자신의 계급 혹은 그와 유사한 위치의 남성들과 경제 정치적 권력을 공유할 가능성은 일부 상위계급 여성의 특권이었을 뿐이며 그것은 여성들을 가부장제에 더 밀접하게 예속시켰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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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시절의 그에게는 철학이 모든 것이었다. 부모도 없고 돈도 없고 명예도 없는 청년에게, 철학이란 모든 것을 갚고도 남을 꿈을 보여주는 단 하나의 것이었으리라. 또는 양반과 종놀음으로 헤아릴 수 없는 세월살아온 고장에서, 꿈을 이룰 엄두조차 내지 못할 사회에서, 철학이란, 양심의 마지막 숨을 곳이었으리라. 아니면 그 신분이 임금이건 종이건 사람이 산다는 일에 놀라움을 느끼고, 그 뜻을 캐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마음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어느 것이든 좋고, 철학이란 그 모든 것을 다 뜻한다. 어쨌든 그는 철학의탑 속에서 사람을 풍경처럼 바라보았다. - P106

타지 않기는 명준의 심장뿐이었다. 그 심장은 두근거림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남녘에 있던 시절, 어느 들판 창창한 햇볕 아래서당한 그 신내림도, 벌써 그의 몫이기를 그친 지 오래다. 그의 심장은 시들어빠진 배추 잎사귀처럼 금방 바서질 듯 메마르고, 푸름을잃어버린 잿빛 누더기였다. 심장이 들어앉아야 할 자리에, 그는 잿빛 누더기를 담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돼 있었다. 그 누더기는 회색 말고는 어떤 빛도 내지 않았다. - P124

인류는 슬프다. 역사가 뒤집어씌우는 핸디캡. 굵직한 사람들은 인민을 들러리로 잠깐 세워주고는 달콤하고 씩씩한 주역을 차지한 계면쩍음을 감추려 한다. 대중은 오래 흥분하지 못한다. 그의 감격은 그때뿐이다. 평생 가는 감정의 지속은 한 사람 몫의 장에서만 이루어진다. 광장에는 플래카드와 구호가 있을 뿐, 피묻은 셔츠와 울부짖는 외침은 없다. 그건 혁명의 광장이 아니었다. - P158

에덴 동산에서의 잘못에서 법왕제에 이르는 기독교의 걸음걸이는, 그대로 코뮤니즘의 낳음과 자람의 걸음에 신기스럽게 들어맞는 것이었다. 그들은 쌍둥이 그림이었다. - P184

명준의 눈에는, 남한이란, 키르케고르 선생식으로 말하면, 실존하지 않는 사람들의 광장아닌광장이었다. - P186

중립국,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땅. 하루 종일 거리를 싸다닌대도 어깨 한번 치는 사람이 없는 거리. 내가 어떤 사람이었던지도 모를뿐더러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 - P192

총구멍에 똑바로 겨눠져 얹혀진 새가 다른 한 마리의반쯤한 작은 새인 것을 알아보자 이명준은 그 새가 누구라는 것을알아보았다. 그러자 작은 새하고 눈이 마주쳤다. 새는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눈이었다. 뱃길 내내 숨바꼭질해온 그 얼굴 없던 눈은 그때 어미 새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우리 애를 쏘지 마세요! 뺨에 댄 총몸이 부르르 떨었다. 총구에는 솜구름처럼 뭉실한덩어리가 얹혔을 뿐. 마스트 언저리에 구름이 옮겨왔다. 망가진 기계가 헐떡이듯, 밖으로 나갔던 몸을 간신히 창 안으로끌어들이면서, 총을 내린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에는 굵다란 진땀이 이마에 솟고, 볼때기가 민망스럽게 푸들푸들 떨린다. - P203

그는 지금, 부채의 사북자리에 서 있다. 삶의 광장은좁아지다 못해 끝내 그의 두 발바닥이 차지하는 넓이가 되고 말았다. 자 이제는? 모르는 나라, 아무도 자기를 알 리 없는 먼 나라로 가서, 전혀 새사람이 되기 위해 이 배를 탔다. 사람은, 모르는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 성격까지도 마음대로 골라잡을 수도 있다고 믿는다. 성격을 골라잡다니! 모든 일이 잘될터이었다. 다만한가지만 없었다면. 그는 두 마리 새들을 방금까지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무덤 속에서 몸을 푼 한 여자의 용기를, 방금 태어난아기를 한 팔로 보듬고 다른 팔로 무덤을 깨뜨리고 하늘 높이 치솟는 여자를, 그리고 마침내 그를 찾아내고야 만 그들의 사랑을.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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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월에 읽을 도서 중 《마이너 필링스》를 포함시켜 놓았다.
어제 알라딘에서 저자인 캐시 박홍이 내한을 하여 북토크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반가웠다.
물론 시간과 장소 상 북토크 직접 참석은 어렵겠지만 어찌 됐든 이 책을 더 잘 읽어내자 하는 주지를 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2. 

이 주에 눈에 띤 책들을 살펴보았다.

《한국 사회과학의 기원》은 역비한국학총서 중 하나로 작년에 나왔지만 역사비평에서 관련 칼럼을 읽고 관심이 갔었는데 잊어버리고 있다가 근간인 《한국 경제의 설계자들》이 나와서 묶어둔다.

《완경 선언》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내용일 것 같다. 여성의 폐경 시기가 점차 빨라지고 있는데 갱년기 이후의 신체적/정신적 변화에 대해서 고찰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추가로 오늘 아침 버지니아 울프의 산문집 시리즈도 발견하고 리스트에 넣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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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6-03 11: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캐시 박홍도 오고 파친코 작가도 오고 줄줄이 작가들 내한 하고 있네요 서울 북페어도 있고 이런저런 이벤트가 많아서 유월 책사랑 더 깊어 질것 같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06-03 13:01   좋아요 3 | URL
아 그러네요. 이민진 작가도 오죠^^;ㅎㅎ 반가운 내한들이 많네요~
저의 기준으로 매년 6월이 가장 좀 묵직한 책들을 많이 읽게 되더라구요ㅎㅎ 올해도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콧님 덕분에 버지니아 울프 산문선들도 찜해서 기분 좋아요. 감사합니다^^

mini74 2022-06-03 13: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완경선언. 제목이 확 와닿습니다 ㅎㅎ

거리의화가 2022-06-03 13:07   좋아요 2 | URL
저도 제목 보자마자 이거다 라는 생각이^^ 역시 다 같은 마음인가봐요. 책들이 넘쳐나고 있어요. 그치만 행복한 비명입니다~ㅎㅎ

얄라알라 2022-06-03 2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님께서도 이벤트 소식 보셨네요.
파랑새 극장이라니^^ 코로나가 정말 물러가고 있나봅니다. 80명 청중분들은 행복한 시간이 되실듯.

그런데 이민진 작가가 내한하나요? 우와! 그건 경쟁 엄청 더 치열하겠는걸요

독서괭 2022-06-03 22: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울프 산문집 시리즈 너무 갖고 싶어요 ㅠㅠ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있다가, 문득 무언가를 잊었다는 것을 깨달은 느낌이 든다. 무엇인가는 언제나처럼 생각나지 않는다. 실은아무것도 잊은 것은 없다. 그런 줄을 알면서도 이 느낌은 틀림없이 일어난다. 아주 언짢다. - P26

느닷없고 짤막하면서, 풀이되지 않은 것이 풀이된 것 같아 뵈는,
그 짤막한 글월들의 힘과 그 뜨거운 여름 햇볕 아래서 겪은 어질머리 사이에는 닮은 데가 있다.
깜빡할 사이에 오는 그런 복 받은 짬은 하기는 어떤 마이너스의 마당자리에서 일어나는 꿈일 것이리라. 비록 플러스의 자리래도 좋았다. 쉴새 없이 움직이고, 쫓아가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비치는 단단함 속에 젖어가면서 살 수 있는 삶. 명준이 찾는 삶이다.
아무 일에도 흥이 안 난다. 마음을 쏟을 만한 일을 찾아낼 수가 없다. 가슴이 뿌듯하면서 머릿속이 환해질, 그런 일이 없을까? 도낏자루 안 썩는 신선놀음 같은. - P43

아무도 광장에서 머물지 않아요.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광장은텅 빕니다.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광장은 비어있습니다. - P67

돈의 길이 삶의 길인데,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거니 돈을 잊고 살아온다. 제 삶을꾸려주는 돈 말이다. 밥을 먹고, 잠자리를 받고, 학비를 타고, 책을 사고 하는 데 쓰이는 돈이라는 물건을 한번도 ‘자기‘라는 것의살갗 안에 있는 것으로 느껴본 적이 없는 그였다. 젊고 가난한 철부지 책벌레다. - P73

사람이 사람을 안다고 말할 때, 그건얼마나 큰 잘못인가. 사람이 알 수 있는 건 자기뿐. 속았다 하고 때었다 할 때, 꾸어주지도 않은 돈을 갚으라고 조르는 억지가 아닐까. ‘사랑‘이란 말 속에, 사람은 그랬으면 하는 바람의 모든 걸 집어넣는다. 그런 잘못과 헛된 바람과 헛믿음으로 가득 찬 말이 바로 사랑이다. 어마어마한 그물을 읽어낸 철학자가 늘그막에 가서 속을 털어놓는 책을 쓰는데, 그 맺음말에서 ‘사랑‘을 가져온다.
말의 둔갑으로 재주놀이하는, 끝없는 오뚝이 놀음, 철학이란 그렇게 가난한 옷이었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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