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부 3장

갈등 해결은 상대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는 것을 빌리 브란트 총리를 통해서 느낀다.

고르바초프가 다른 사회주의 관료들과 달랐던 까닭은?

이라크 전쟁을 벌이고 이슬람 테러의 공포를 조장하면서 오히려 미국의 위신은 추락

중국 공산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의 개혁의 차이

달러가 국제 기축 통화가 된 사연

일본은 미국의 이익을 만드는 시장

모잠비크, 필리핀 여성들의 노동, 희생

1969년 10월 28일의 정부 성명에서 브란트는 독일 문제의 타협에 필수적인 중요한 양보를 제안했다. 즉 동독이라는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겠다고 말했다. - P121

정치 신참이었던 카터 대통령은 긴장 완화를 계속 추진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설프게 행동함으로써 오히려 합의를 점점 더어렵게 만들었다. 카터는 전략 군비를 제한하는 정도가 아니라 과감하게 감축하고 싶어 했다. 그 결과 미 국방부는 새 협상안을 마련했지만, 그것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어렵게 달성된 양보안을 다시 미국의 헤게모니 지위에 유리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소련 군부가 그것에 맞서는 요구를 제출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동시에 카터는 소련 내의 체제 비판가들에 대한 지지를 과시하듯이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그것은 오히려 체제 비판가들을 더 심하게 탄압하도록 만들었을 뿐이다. 게다가 그런 행동으로 인해 브레즈네프는 카터와직통선을 만들 수가 없었다.
아프리카에서 소련의 팽창 전략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카터는 안보 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의 자문을 받아 들여 ‘중국 카드‘를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1978년 5월에 카터는 브레진 - P133

스키를 베이징으로 보내 전략 협력과 기술 지원의 가능성을 타진하게 했다.
중국 정부는 미국이 중국과 소련의 국경 분쟁에서 중국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에 상응해 이전처럼 타이완을 포기하도록 종용하지 않고 미국과관계를 정상화할 의지가 있음을 밝혔다. 10월 중순에 미국과 중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외교 관계 채택을 알림으로써 세계 여론을 놀라게 했다. - P134

1983년 봄에 레이건은 소련 지도자들이 "악의 제국"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레이건은 미국이 그에 맞서 "강력함", 즉 군사와 경제와 도덕의 강력함을 재건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서구 세계의 지도적 역할을 떠맡아야 하며 나토도 더 강력 - P159

해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것이야말로 평화를 보장할 뿐만 아니라 소련을군축으로 강제한다는 것이다. "소련 지도자들은 군사 부문 생산을 더는 크게확대할 수 없다. 그들은 이미 민중을 죽음 직전까지 끌고 갔기 때문이다."55그러니 레이건 정부는 중거리 미사일 협상 합의를 실현할 생각도 전혀 없었고, 전략 군비 협상을 지속하는 일에도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 대신에 레이건 정부는 소련에 대한 공적 비판과 군비 증강 조치에만 집중했다. - P160

고르바초프는 ‘56’ 세대였다. 그것은 흐루쇼프가 스탈린주의를 공격할 때 사회화되었으며 기본적으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세계관을 가졌지만 사회주의의 ‘개선‘을 희망했던 당의 관료들을 말한다. 그를 서기장으로 끌어올린 ‘옛 동지‘ 대표자들과 고르바초프의 근본적인 차이는 고르바초프는 이데올로기의 확신에 사로잡혀 소련제국의 불편한 현실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 P167

부시는 이슬람주의 테러주의가 초래한 취약성에 대한 전 세계의 공포를 - P201

초열강 미국의 일방주의 헤게모니를 강화하는 근거로 활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다극화 경향만 강화한 채 종쳤다. 미국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 P202

중국 공산주의의 현대화는 같은 시기에 소련에서 시작된 공산주의 개혁과는 전혀 다른 길을 밟았다. 양자의 발전을 비교하면, 마르크스-레닌주의 정권의 유산을 극복할 때 결정적인 것은 최고 지도자들의 태도라는사실이 명료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덩샤오핑은 고르바초프와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어떤 선택이 적절했는지의 문제에 관해서는 정치 입장에 따라 서로다른 답이 나올 것이다. 분명한 것은 각 선택은 그에 따르는 대가가 필요했고두 경우 모두 또 다른 선택의 길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 P206

미국 금융계와 의회의 보수주의자들은 소련의 이탈에 개의치 않았지만, 실제로 미국의 힘과 이익을 구현할 금융거래에 노력을 집중했다. 그들은 브레턴우즈 체제로 미국이 잠재적으로 소모적인 대규모 해외 원조 정책을 그만두어도되리라고 기대하며 달러의 지위를 그 통화 체제의 ‘기축통화‘로 끌어 올렸다. 실제로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비록 각국은 자국 통화를 금에 ‘연동‘(국제통화기금체제 안에서 합의된 환율 패리티 범위로 통화가치를 고정하는 것)해야 했지만, 달러가사실상 환율을 결정했다는 사실이다. 본질적으로 달러는 새로운 금본위가 되었다. 국제 거래는 달러로 이루어졌고, 모든 국가는 자국 통화가치를 달러에 대한 비율로 규정했다.(35달러가 금 1트로이온스로 교환되었다.) 이 체제는 1950년대초 전후 재건 국면이 끝났을 때에야 비로소 제대로 작동되지만, 세계 전역에서 상품과 용역의 값은 달러로 지불되었다. 따라서 다자간 협정 체제의 토대는 달러였다. - P220

지역주의가 세계화의 토대를 흔들었지만, 유럽과 아시아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었다. 미국이 세계 전역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파괴할 수 있는 세력에 맞서 싸우기 위해 많은 노력과 자금을 투입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두 지역 모두 훗날 미국의 이익과 시장의 이상이 잘 침투할 수있도록 개방해 놓기로 결심했다. 케넌의 말을 빌리면 "동양과 서양의 가장 큰두 산업단지"였던 일본과 서독은 공산주의로부터 구원해야 했다. 두 나라는그렇게 면역력을 갖게 되면 반공 연합의 역내 기반이 될 수 있었다. 이는 또한 일본이 이류 경제의 대우를 받는다는 의미였다. 일본은 미국과 유럽의 시장이 아니라 개발도상국 시장에서 경쟁하게 될 것이었다. 일본 정부의 계획가들이 과학과 선진 기술, 고급품 제조업에 대한 장기 투자를 발판으로 최첨단경제를 수립하려 했다는 사실을 당시 미국인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둘 다냉전의 안보 위협이라는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달러 부족과 문호 개방 신조가 결합하면서 미국은 일본에 동남아시아로 팽창하라고 압박할 수밖에 없었다. 1930년대와 전쟁시기에 일본이 주장한 대동아공영권의 논거를 생각하면이는 뜻밖의 결과였다. 이로써 미국은 강경한 식민주의 반대자에서 유럽이 아시아에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지지하는 나라로, 그리고 중국의 오랜 우방에서 강경한 적으로 돌아섰다. - P241

미국 정부는 일본과 아시아의 다른 동맹국들에 안전한 자원 공급지와 안전한 무역을 제공하기 위해 호찌민이이끄는 민족주의적 공산주의자들의 저항에 맞서 인도차이나의 식민지를 지키려는 프랑스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미국의 베트남 전쟁은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십자군이 되지만, 애초의 목적은 회복 중인 일본을 아시아의 다자간 무역과 금융 체제의 중심 국가로 바꾸어 역내에 안정을 가져오고 일본에 평화를 정착시키며 더 큰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반공산주의 투쟁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제3세계 개발 정책은 자유기업 체제를 갈망하는 욕구만큼이나 안보에 대한 염려도 반영했다. - P247

경제협력이 불평등한 무역 관계와 약탈적인 금융협정, 불충분한 원조와 개발 노력을 시정할 것이었다. 반둥 회의참여국들은 상호 간에 교역을 증진하고 기술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세계경제문제를 직접 떠맡겠다고 서약하여 제3세계를 개발도상국들을 위한 다자간경제 운동으로 이끌었다. - P265

자유무역을 비판하는 자들은 여성에 불리한 뿌리 깊은 차별과 남성 지배의 전통이 착취 체제와 결합하여 노동시장을 젠더의 구분선을 따라 분할했음에 주목했다. 이는 실제로 세계화를, 그리고 그 어두운 측면을 강화했다. 동예를 들면 세계 최빈국인 모잠비크 여성들은 농사의 부담을 떠안아 가족을 부양했다. 1994년 이 나라는 국민총생산의 다섯 배에 가까운 54억 달러라는 막대한 채무를 지고 있었다. 세계 금융 체제와 생산 체제로부터 사실상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의 원조는 채권자였던 기부자들에게 되돌아갔고, 식량 원조는 전체 주민에게 혜택을 주지 못했다. 그 결과로 1995년 10월에수도 마푸토에서 대규모 기아와 식량 폭동이 발생하여 문제의 심각성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모잠비크 노동력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 그 나라의 여성들이이 위기를 정면으로 받아 냈다. 무자비한 세계화로 남성들이 도시와 외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던 반면 여성은 가구주로서 시골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전통과 환경 때문에 여성이 토지와 대출을 얻을 가능성은 제한되었다. 여성은 남성 친척을 통해서만 땅을 점유할 수 있었고 배타적인 사적 점유가 확대되면서 불모지로 밀려났다. 높은 식량 가격과 저임금, 국가 지원의 축소(낮은 식량 가격과 적절한 교통을 유지하기 위한 보조금의 폐지, 의료보험의 민영화 따위)로 곤경에 처한 여성들은 수도 인근의 작은 농장에서 일하며필사적으로 가족을 부양하려 했다.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농촌의 회복으로이어지지 않았고 (특히 모잠비크의 17년에 걸친 내전이 끝난 후에) 대신 일군의 서 - P324

비스에 대한 정부 지출을 제한했다. 그 결과로 여성들은 날마다 단지 일하러가기 위해 먼 길을 힘들게 걸어야 했고 이를 마친 뒤에는 땔감 줍기와 먹을 물긷기 같은 기본적인 허드렛일을 해야 했다. 여성은 수단을 갖지 못했기에 남자보다 훨씬 더 크게 시장에 희생되었다. 가족을 돌보아야 할 책임(아이 양육, 교육, 노인 돌보기)이 여성에 남겨진 상황에서 시장은 토지를 사유화하고 국가의 프로그램을 축소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여성은 건강도 해쳤다. 모잠비크의 여성들은 세계화로 널리 퍼진 노동조건과 선진 공업국이 개발도상국에강요한 자유로운 기업 체제 때문에 뒤처지게 되었다. - P325

높은 실업률과 빈곤에 처한 바탄Bataan주 농촌의 가구들은 딸들(상당수가 젊은 여자로 노동력의 평균 연령은 열일곱 살에서 스물아홉 살 사이였다.)을 수출자유지역에 보내 일하게 했지만, 임금은 마닐라의 공업지대에 비해 적었다. 실제로 여성의 약 40퍼센트가 법정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일했는데,(하찮은 대우를 받는 남성의 급여에 비해도 17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여성은 가난을 더 잘 견딜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생활 조건과 노동조건으로 보면 흔히 지독하게 과밀했고 비용이 많이 들었으며 위험했다. 여성들은 또한 그들에게 이러한 상황을 바꿀기회를 전혀 주지 않은 가부장적 제도에 직면했다. 욕실을 사용하는 것부터일터로 가는 것까지 모든 움직임은 남성의 규제를 받았다. 그리고 성희롱과판에 박힌 성적 관념이 만연했다. 그래서 수출자유지역의 필리핀 여성들은 세계화와 미국 시장 정책의 세력들과 대면한 다른 많은 사람처럼 경제적으로뒤처졌고 사회적으로 소외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은 아시아의 성공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고, 나중에 가서야 인류학자와 사회 평론가에 의해 발굴되어 빛을 보게 된다.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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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은 종무식을 하면 한 해가 끝나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올해는 별도로 하지 않고 며칠 전 회식으로 대체한다고 했다.
돈으로 주는 보너스가 있으면 좋겠지만 불황인데 회사가 유지되는 게 어디냐 생각했다.
돈이 아니지만 공짜로 생기는 휴가는 월급쟁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일이 아닐까.
직원들 사기를 북돋아주기 위해서겠지만 오늘부터 양일 공짜로 휴가가 생겼다.
사실 돈보다는 왠지 시간을 얻은 느낌이라 개인적으로 더 좋다.

남은 하버드 베크 세계사를 열독하면서 보내려 한다.

추가) 알라딘에서 그제 받은 선물인데 이제야 올린다.

그리고 어제 이 책을 받았다. 내년 1월에 나오지 않고 2023년부터 이 책을 매일 시작할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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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12-29 08: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꽁짜 휴가 받으셨네요? ^^ 즐겁게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12-31 18:17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 2022년 마지막날 잘 보내고 계신가요?^^; 2틀 연속 아주 잘 놀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책읽는나무 2022-12-29 08: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휴...시간 휴가비를 받으셨네요^^
경기가 어려우니....ㅜㅜ
그래도 알라딘 선물을 다 가지셨어요.
즐거운 연휴 되시길♡

거리의화가 2022-12-31 18:18   좋아요 2 | URL
네. 휴가비 받은 셈이죠^^ 알라딘 선물 4개나 받아서 사실 어떻게 써야 하나 행복한 고민입니다^^;
나무님 2022년이 정말 몇 시간 안남았네요.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파엘 2022-12-29 10: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버드 베크 세계사는 순서대로 읽고 싶어서 전반부 번역의 완결을 기다리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역사를 역으로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어요. 거리의화가님,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 😊

거리의화가 2022-12-31 18:19   좋아요 2 | URL
전편 번역이 되겠죠? 저도 기다리고는 있습니다만...ㅎㅎ
역순으로 읽는 것도 방법이겠네요ㅎㅎ 우리와 가까운 역사부터 공부하는 거라 생각하면 더 친숙하게 느껴질 것 같기도 합니다. 라파엘님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cott 2022-12-29 1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화가님에게 이런 휴일이 생겼으니
화가님 새해까지 맛난거 드시면서 따숩게 독서와 공부
정리의 시간을 ㅎㅎㅎ

저 붉은 색 표지를 보기만해도

미소가 ^^

거리의화가 2022-12-31 18:21   좋아요 1 | URL
연휴는 찰나 같아요! 어제는 산책할 때 바람이 따갑더니 오늘은 그래도 포근하네요. 계속 추워서인지 나가기 싫었지만 생존걷기도 하고 독서도 하면서 보냈습니다.

붉은색 표지라 더 따뜻하게 느껴져요. 스콧님 땡투 잘 받으셨죠?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로 2022-12-29 12: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짜 휴가라니요, 그거 다 돈이에요.^^;;
암튼 선물이 두 가지가 왔군요!!
저는 1월 3일에 받을 거라고 문자가 왔는데
오늘 다시 오늘 배송했다고,, 빨리 집에 가고 싶어요.
근데 두 가지가 왔군요!! 축하드려요. 휴가도 받으신 선물도요.^^

거리의화가 2022-12-31 18:22   좋아요 1 | URL
돈이라고 생각못하고 시간만 얻었다고 생각했네요. ㅋㅋ 그쵸. 회사 입장에서는 돈 주는 게 더 힘들 수도...ㅎㅎㅎ
1월 3일 어떤 선물을 받게 되실까 궁금하네요. 라로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mini74 2022-12-30 19: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남편도 분위기가 그런지 망년회도 많이 줄었다고 좋은데 불안한? ㅎㅎ 오붓하고 즐거운 휴가보내세요 화가님 ~ 올 한 해 감사했습니다 *^^* 내년에도 사이좋게 지내요 화가님 ~

거리의화가 2022-12-31 18:23   좋아요 1 | URL
코로나가 다시 유행이기도 하고 경기도 안 좋아서인지 송년회를 덜하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미니님 저야말로 정말 감사했어요. 항상 따뜻하고 정성어린 댓글 주셔서 힘이 많이 됐습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리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희선 2023-01-01 01: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 이틀 잘 쉬셨지요 뜻밖에 쉬는 날이 찾아와서 좋으셨겠습니다 북플 서재 다 되셨군요 축하합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3-01-01 18:20   좋아요 1 | URL
희선님 축하 인사 감사합니다. 잘 쉬었어요^^
 
[전자책] 석류의 씨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
이디스 워튼 지음, 송은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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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바깥, 밤의 불확실함과 미스터리 속 어딘가에, 문지방을 서성이는 형체‘ 의심과 불안은 끝없는 개미 지옥을 경험하게 한다는 생각, 차라리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는 게 아닐까 싶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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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구적 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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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화가 냉전의 틀로 해석되면서 유럽의 블록 형성은 더욱 수월해졌다. 1949년에 유럽에서 만들어진 여러 제도는 애초에는 임시적인 성격을 지녔다. 트루먼 행정부와 미국 여론은 북대서양조약으로 인해 미군이 유럽에서계속 주둔하는 것이 확정되었다고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점령 기간이 끝나면 군대를 철수하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독일연방공화국Bundesrepublik Deutschland: BRD(이하 서독)의 헌법도 다만 "이행기 동안" 서독에서 국가의 틀을 마련해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기본법"으로 구상되었을 뿐임을 강조했다. 다른 한편 스탈린에게 독일민주공화국DeutscheDemokratische Republik: DDR(이하 동독)은 "평화 지향의 민주 독일로 가는 첫걸음이었지만, 사실은 내키지 않는 방식이었다. 스탈린이 그 신생국가의 지도부에보낸 경축 메시지에 독일 사회주의라고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물론 그 임시 조치들은 곧 굳어졌다. 하지만 유럽 분단이 영속될 위험이생기자마자 곳곳에서 저항이 일었다. 유럽의 블록 형성을 둘러싸고 격렬한 대결이 전개되었다. 그 결말은 1950년대 중반에야 비로소 뚜렷해졌다. - P82

서독의 나토 가입을 막으려는 소련의 노력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소련 지도부의 새 권력자 니키타 흐루쇼프Nikita Khrushchev는 유럽 정책을 점차 사통당의 동독 지배를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바꾸었다. 1955년 5월 14일에 바르샤바에서 동유럽 블록의 정부 수반들이 "우호와 협력 및 상호 지원 협정"에 서명했을 때 동독 총리도 그 자리에 함께했다. 애초에 동독은 바르샤바 조약에 참관국으로만 참여했지만, 곧 정회원국이 되었다. 흐루쇼프는 1955년 7월의 제네바 정상회담에서 마지막으로 탐색한 뒤 그런 것이 아무 소용없음을 확인하고 동베를린의 한 집회에서 "독일민주공화국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독일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으며 "동독의 정치적·사회적 성과를 모두" 없애는 것은 불 - P90

가능하다고 밝혔다. 두 달 뒤인 1955년 9월 20일에 소련은 동독과 상호 관계 조약을 맺었다. 조약은 동독이 내정과 외정의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결정"한다고 규정하며 다만 "독일 전체에 미치는 4대 열강 협약에 대해서만 유예를 둔다고 밝혔다. 1956년 초에 동독의 병영 주둔 인민 경찰은 국가 인민군Nationale Volksarmee: NVA으로 바뀌었다. 1956년 1월 28일에 바르샤바 조약국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국가 인민군은 소련 최고사령부 휘하의 바르샤바 조약 군사 기구로 통합되었다. 이제 동쪽의 블록 형성도 완결되었다. - P91

핵전쟁 위협 체제로 인해 동유럽 국가들의 공산당 간부들은 지배를 수월하게 유지했고, 소련은 동맹국들에 대해 계속 손쉽게 헤게모니를 행사할 수 - P92

있었다. 바르샤바 조약은 탄생 때부터 그런 지배 유지의 도구임이 확인되었다. 이때 그것은 외부로부터 오는 위험뿐만 아니라 자기 진영 내부의 해방운동에 대해 더 맞서는 것이었다. 그동안 서구에서 노동운동과 지식인 자본주의 비판가들 사이에서 상당히 먹히던 소련 모델은 헝가리 봉기가 진압되면서매력을 크게 잃었다. 공산주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폭정은 서유럽의 경제재건 성공과 민주주의의 안정적 발전에 확연히 대비되었다. - P93

1966년 3월 7일에 드골은 대서양 간 통합에 맞서 자신이 추진했던 유럽적 대안이 점차 눈앞에서 멀어지자 나토의 군사 조직에서 프랑스는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프랑스는 대서양 동맹 회원국 지위를 유지했지만, 나토 사령부의통제권에서 자국 군대를 뺐고, 동맹국들에 프랑스 영토에서 군사기지를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동맹국들은 그 요구를 따랐다. 나토 본부는 파리에서 브뤼셀로 옮겼다. 그렇게 함으로써 드골은 핵 열강으로서 프랑스의 독립을 지켰지만, 6개국 정치 공동체는 이제 저 먼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유럽 국가들은 드 - P101

골이 일방적인 공세로 자신들을 함부로 대했다고 간주했고, 그 결과 다시 미국과 협력할 방안을 더욱 강력히 찾아 나갔다. 1967년 말에 잔존 나토 회원국들은 "유연한 대응"이라는 공동 전략을 통과시켰다. - P102

서구 열강과 동유럽 블록 국가 모두 재정적인 이유로 재래식 군비 계획을1950년대 초에 계획했던 규모대로 이행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미국과 소련의지도부는 모두 점차 핵 억지력에 의존했다. 핵폭탄 투입을 경고하면서 재래식군비의 결함을 보충하거나 고비용이 드는 재래식무기고의 감축을 가능하게만들 수 있었다. 물론 핵 억지 체제로 넘어가니 핵무기로 인한 절멸 공포가생겨났다. 그래서 핵무기를 보유한 양대 열강 지도부는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 - P106

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 때문에 생긴 인지 오류와 핵무기 대치 상태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인해 대화가 지속되기는 극히 어려웠고, 그 결과 동서준비관계에서 새로운 긴장이 계속 발생했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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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올해의 책을 정리했다.


내가 뽑은 책들은 대부분이 역사 분야의 책이고 문학은 단 2권이다.
하지만 그동안을 생각하면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해방 후부터 한국 전쟁 이전까지 한국과 관련된 역사 책들을 계속 읽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면의 역사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생각하며 늘 관심을 갖게 된다. 원래는 한국 근대사에 관심이 더 많았으나 이제는 이 시기 책에 더 흥미를 갖게 되는데 뒤이은 역사가 탈식민과 이념 전쟁과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버치 문서와 해방정국>는 또 하나의 해방 후 정국의 키를 알 수 있게 하는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버치 중위는 미군정기 하지 사령관에 의해 발탁되어 조선에 들어와 좌우합작위원회를 이끈 인물이다.
당시 그가 작성한 자료들과 시간 순으로 배치된 기록, 인물에 대한 평가들이 담겨 있다.
강용흘이라는 작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수확이 있었고(그도 미군정청에서 일했다) 1946년 쌀 추수 파동에 대한 실감나는 기록, 여운형과 김규식에 대한 평가 등이 흥미로웠다.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는 11월에 읽었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7권이었던 <남양과 식민주의>와 궤를 같이 할 것 같다.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는 양반 지주의 아들이었으나 전시 상황에 일본군이 되어 연합군 포로 감시를 위해 남방을 향한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손자였던 작가가 조부의 행적을 영웅시하거나 미화시키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려내려 노력했다는데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조선인 전범이 받았던 피해, 고통의 측면에 주목했었던 것 같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제대로 된 소감을 정리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잔상에 남는 책이었다.(재독하고 싶은 책이다) 민족주의는 일국사적 관점에서 이해될 수 없고 앞 세대의 희생자의 경험과 기억은 세습될 때 민족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주장이다. 작가의 모든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으나 지나친 민족주의 신봉과 숭배 의식은 곱씹어볼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남양과 식민주의>는 일본 제국주의의 확장의 전시의 장이 된 남쪽 태평양의 섬들과 도서부 동남아시아를 배경으로 일제가 펼친 남진 정책과 대동아공영권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이다. 일제가 남진 정책을 생각보다 일찍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과 내외부의 상황의 추이에 따른 정책의 변화를 확인해볼 수 있다.



통사는 몇 년마다 한 번씩 읽어주는 것이 좋다고 여기는데 읽을 시점이 됐을 무렵 마침 <시민의 한국사>라는 책이 나왔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지배층의 관점이 아닌 '아래의 힘'에 주목하여 쓴 역사다. 미국에도 민중사가 있는 것처럼 한국에도 이런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늦었지만 이런 통사가 나와주어 참 반갑고 감사하다. 지배층의 학정을 엎고 들고 일어난 이야기가 무수히 많은 한반도의 역사는 어쩌면 민중이 이끌고 간 역사라고 해도 무방할 지 모르겠다.
1, 2권으로 나누어 1권은 전근대편으로 조선 후기 개항 이전까지의 시기를 담고 있고 2권은 근현대편으로 최근 정권까지 범위를 다루었다.
통사의 특성 답게 정치사적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파트까지 잘 정리되어 있다. 그동안 통사를 읽을 때 정치와 경제가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이 책의 경제 파트는 핵심을 쉽게 정리되어 있으면서도 정치,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주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 시리즈의 꽃은 역시 2권이다. 보수/수구 정권의 눈치에 은폐되거나 축소된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 C.H.베크 세계사> 시리즈는 하반기 읽기의 핵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까지의 세계사를 거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또 한 시리즈의 책이라고 생각한다(1350년 이전의 역사도 출간되었으면!).

특히 1750년 이후의 세계사를 지역사를 모으고 단순하게 나열만 한 것이 아니라 지구적 관점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별로 특징을 뽑아내어 잘 정리했다고 느껴진다.
서양 중심의 세계사적 관점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한 흔적도 엿보였고 가려져 있던 인종 차별, 노예, 여성, 이주민들의 역사를 다양한 사례로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상반기에 읽었던 위르겐 오스터함멜의 <대변혁>을 읽으면서 미리 예열을 했는지 이 시리즈를 읽을 때 버겁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부족한 역사 공부의 시기와 장소가 무엇인지 체크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에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오랑캐의 역사>를 읽으며 내가 그동안 해왔던 책 읽기가 헛된 것이 아니구나를 느꼈다.
한중일 삼국의 역사, 만주족의 역사, 타이완사, 중국의 철학, 일본의 근세 이후의 역사, 합스부르크 제국사, 오스만 제국 등 중동의 역사를 읽었던 것이 이리 도움이 될 줄이야. 결코 이것들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고 다 연결되어 있음을, 역사는 통합되는 것임을 느끼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이런 책들을 과거에 읽지 않았다면 <오랑캐의 역사>를 소화하기 어려웠음에 분명하다. 이 책은 작가님의 블로그를 통해서 읽을 때만 해도 좀 어렵다는 느낌이었는데 막상 이번에 읽게 되었을 때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나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책은 그동안 저자가 내부의 역사를 외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작업을 꾸준히 하면서 진행되어온 결과물과 최근 역사계에서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내놓은 결과물들을 결합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랜동안 이어져온 저자의 노력과 내공이 느껴지는 결과물이었고 그만큼 확장된 시야를 갖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동남아시아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느꼈는데 앞으로 보충을 해야 할 것 같다. 저자가 앞으로도 좋은 책을 부디 꾸준히 내주면 좋겠다.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는 총 8권으로 학술연구서로 대중에게는 인기가 없지만 내게는 의미가 있었던 책이다. 모든 시리즈의 책들이 도움이 되었지만 앞서 7권은 이야기했고 1권과 8권을 더 꼽아보았다.(두 권은 저자가 같고 이야기도 이어진다)
일본 역사는 이전까지만 해도 '동양사'라는 개념이 없었고 '본방사', '지나사', '외국사' 등이 혼재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 근대 시기 나카 미치요의 주장으로 '동양사', '일본사', '서양사'로 구분되는 계기가 된다.(이 때 조선사는 '일본사'에 포함되어 있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본 근대론의 시작은 요시다 쇼인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유수록'이란 책을 남겼고 자신의 생각을 전파한 제자들을 길러내면서 침략주의를 후대에 전파하였다.
자유민권주의자였다가 황국주의자로 변신한 언론인 도쿠토미 소호도 주목해야 한다. 그는 요시다 쇼인의 평전을 쓰고 황실 중심주의 전통을 알리겠다는 목적으로 출간한 책으로 일본학을 제창했다. 일본학은 일본 국민이 알아야 할 일본에 관한 일체의 학문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와 대립하는 모든 관계에 입장은 이로써 비일본, 반일본적인 것으로 모는 주장이다.
1권에서 메이지 시기의 일본 근대에 주목했다면 8권은 쇼와 시기의 일본에 중심을 두었다. 동방문화학원과 도쿄대학, 교토대학 내 설립된 연구소에서 연구한 동방학이 일제의 식민주의에 어떻게 뒷받침된 이론들을 만들어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한 유일한 동아시아 국가라는 '신화'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주변국도 근대 시기 일본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다행히 최근에는 일본 지식계에서도 자국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 담론들이 나오고 있지만 일본 뿐 아니라 우리도 일본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제대로 모르거나 아예 거부하거나 그대로 믿거나 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비문학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균형 맞추기로 문학 책을 읽었다.
문학이 내게 어려운 이유는 물성이 느껴지지 않아서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눈에 그릴 수 있어야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모호하고 추상적인 묘사들이 항상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전히 문학이 어려우나 그래도 그 중 얻은 수확이 있어 기쁘다.


올해 국내 소설 중 단연코 TOP인 <이토록 평범한 미래>. 제목부터 내용까지 어디 하나 빈 구석이 없는 책이었다.
3년 간의 코로나를 겪고 나이가 들어가기도 하면서 '평범한 미래'라는 단어 자체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지금 현재, 그리고 먼 훗날이 아닌 바로 앞의 미래를 열심히 살아나가며 별 탈 없는 매일을 우리는 꿈꾸고 소망하게 되는 것 같다.
8편의 단편 소설 어느 편을 펼쳐도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소설의 상황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면 과거의 기억이 소환되며 추억에 젖기도 할 것이다.
회의주의자인 내가 조금은 희망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은 정말 마법 같은 책이다.



덴마크 작가 토베 디틀레우센의 내밀한 기록을 만날 수 있는 <코펜하겐 삼부작>.

과연 내가 해외 문학 작품을 읽으며 좋다고 느낄 때가 올까 생각했는데 있었다. 이 책은 작가의 삶이 반영되었으니 에세이라고 해야 맞겠지.
토베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어린 시절의 내가 자주 맞닥뜨렸던 공포와 불안, 좌절의 기억이 떠올라 어떨 때는 괴롭기도 했다.
불안한 청춘, 어딘가에도 기댈 수 없는 바람처럼 떠도는 유령 같은 자아가 그려졌다. 나도 그랬고 그도 그랬다.
그의 삶을 알고 있으면서도 책을 읽으며 응원하는 마음으로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의 글은 그만큼 나를 흔들어놓았던 것 같다.


작년 연말 올해 읽기로 했던 책들을 보니 거의 다 clear하였다(역시 계획은 중요!).

어쨌든 한 해동안 꾸준히 책을 읽고 정리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동안은 책을 읽기는 했어도 제대로 정리한 책이 많지 않아 대부분 뇌에서 휘발되버리고 말았다. 그렇다 해도 역사에 관련된 책은 1년에 단 몇 권이라도 이전부터 읽어왔었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나도 책 선정에 고심하는 편이다.
내가 주로 읽는 책은 역사/문화 분야인데 눈여겨보는 출판사에서 신간이 출간되었을 때 받는 알림 중 괜찮은 책을 고르거나 집에 묵혀둔 책 중 '이제 더는 미루지 말자'라고 생각하는 책들 중에서 선정하는 편이다.
내년에도 이렇게 비슷하게 갈 것 같지만 그동안 집에 쌓인 책들이 많아서 아무래도 후자에 좀 더 치중하자고 다짐한다.
테마는 중국사와 동남아시아사가 될 것 같다. 그동안 읽어둔 게 너무 없어서 한계를 느꼈기에 이쪽 읽기에 집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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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2-27 18: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거리의화가 님! 어쩌면 이렇게 제가 읽은 책이 한 권도 없을까요? 하하하하하
올해도 열심히 읽으셨네요. 우리 내년에도 열심히 읽읍시다!!

잠자냥 2022-12-27 22:09   좋아요 3 | URL
저도요! 하하하;;

프레이야 2022-12-27 18: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 님 역사 읽기를 언제 따라가보나 합니다.
페이퍼 따라 쫓아갈 날이 ;;) 그나마 딱 한 권 겹쳐서 다행이에요. 내년에도 영양가 높고 고급진 페이퍼 부탁드려요. 😊

단발머리 2022-12-27 19: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저도 인상깊게 봤는데 (대출해서 읽느라 완독 못 했음요. 뜬금 없는 고백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 화가님 올해의 책이라니 내년에는 꼭 완독하렵니다. 많이 읽으셨어요, 멋지십니다!
역사 관련해 책 읽고 싶으면 무조건 거리의 화가님 방으로 와야겠어요!!

라로 2022-12-27 2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딱 한 권 겹치는데 저는 아직 다 안 읽었어요. 빌레뜨 2 방금 다 읽었으니 내일 김연수 책 다 읽겠어요!!ㅎㅎㅎ

책읽는나무 2022-12-27 2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화가님 서재에서 많이 봐서 책 제목들이 눈에 익숙합니다^^
다 좋은 책이었군요!!
김연수 작가님 책은 소설가 50 인이 뽑은 1 위의 책이라고 오늘 유튭에서 보았어요.
저는 사다놓기만하고...^^;;;
암튼 계획한 책들을 모두 다 완독하셨다니 전 그게 더 대단하시단 생각이 드네요.
장하십니다^^

모나리자 2022-12-27 2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거의 역사에 관한 책을 꼽으셨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역사에 대해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할 듯합니다.
새해에도 왕성한 독서활동 이어가시길 바랄게요. 거리의화가님.^^

새파랑 2022-12-27 2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화가님은 역사 천재~!! 따라갈수가 없습니다~!! 전 역사 책 보면 전공서적 보는 느낌이 들어서 손이 잘 안가더라구요 😅 화가님을 통해 대리만족하고 있습니다 ^^

독서괭 2022-12-27 2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목록 멋지십니다. 특히 계획을 거의 다 실천하셨다니 대단!! 저도 계획을 세우고 독서를 해봐야겠어요.
“오랫동안 이어져온 저자의 노력과 내공”이 느껴지는 결과물 읽으시며 화가님도 오랫동안 이어오신 역사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보답받으신 느낌이^^ 꾸준함에 탄복합니다. 새해에도 많이 읽으세요!

페크pek0501 2022-12-27 22: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사에 관한 책을 고를 땐 앞으로 거리의화가 님께 여쭤보고 읽어야겠단 생각이 드는 멋진 페이퍼였습니다!!!

자목련 2022-12-28 08: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책은 김연수 소설집 하나뿐입니다. 계획대로 실천하는 화가 님, 멋지십니다^^

거리의화가 2022-12-28 10:24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저도 서재에서 친구분들의 다양한 책을 만날 수 있어 기쁜 한해를 보냈습니다.
내년에도 열독으로 채우는 한 해가 될 수 있길 기원하며!

수이 2022-12-28 2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랑 겹치는 책이 단 한 권도 없는!!! 화가님 만나서 행복한 한 해입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희선 2023-01-01 01: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죽 책을 보셔서 이런저런 걸 아셨겠네요 거리의화가 님 2023년에도 역사와 함께 다른 책도 즐겁게 만나시기 바랍니다


희선

희선 2023-01-08 0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 축하합니다 한해 읽은 책에서 좋았던 책 정리해서 그 책 한번 떠올리셨겠습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