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와 역사의 정치 딕테 시리즈 3
조앤 스콧 지음, 정지영 외 옮김 / 후마니타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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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론과 차이론 간의 오래 이어진 갈등은 이분법적인 구조를 거부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평등과 차이, 개인과 집단정체성 간의 문제는 어찌 보면 당연하며 이 긴장을 인정하고 그 긴장을 오히려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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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3-15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려요! 🎉🎉🎉 저는 아주 많이 남았습니다 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5-03-19 13:13   좋아요 1 | URL
재독하는 책이라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재독해도 한 번에 다 읽지는 못하겠더라구요. 여러 번 나눠 걸쳐서 읽었습니다. 끝까지 완독 화이팅이에요!

책읽는나무 2025-03-21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독하신 겁니까? 와. 대단하십니다. 저는 어려워서 겨우 겨우 읽고 있어요.^^ 재독하신 책이셨군요? 그래도 대단하십니다. 재독해도 어려울 것 같아요.ㅜ.ㅜ 암튼 화가 님 존경합니다.^^

거리의화가 2025-03-24 16:28   좋아요 1 | URL
이 책이 생각보다 어렵죠. 여성의 노동사를 다루고 있는데 사례가 미국도 아니고 유럽이다보니 낯설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재독할 기회를 얻은 것에 저는 참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무 님 잘 지내고 계시죠? 모쪼록 건강이 제일입니다.

책읽는나무 2025-04-01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독하고 화가 님 백자평 다시 읽으니 완전 쏙쏙 눈에 들어오네요. 신기하게두요.^^ 그래도 이 책을 재독하신 화가 님 다시 봐지구요.ㅋㅋ

거리의화가 2025-04-01 13:11   좋아요 1 | URL
완독의 힘 아니겠습니까?ㅎㅎ 재독은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거죠. 그래도 책을 구입하고 얼마 안 되서 초독하고 1년 남짓 지나 이 책을 다시 읽을 기회가 생긴 것이 신기합니다. 함께 읽으면서 다른 분들 글도 읽고 비교해보고 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더 좋았을텐데 그러지는 못했네요. 아무튼 나무 님 완독 고생하셨습니다^^

다락방 2025-04-01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거리의화가 님도 평등과 차이에 대해 언급하셨네요. 그 부분은 정말 좋았어요. 제게도 재독이 필수로 보입니다!!

거리의화가 2025-04-04 14:45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도 그 부분이 좋으셨군요. 수월한 책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새로운 사례를 얻었습니다. 특히나 차티스트 운동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게된 것 같아요.
 

우리가 이 같은 정치적 맥락 속에 있는 한,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차이"
나 "여성의 문화"에 대한 주장들이 원래의 목적과 다르게 사용될 수 있는실제적 위험성을 인식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런 주장들이나 그것이 열어 준 지적 지형을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정식화를 할 때, 그것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분명히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밀크맨이 조심스럽게 정식화한 내용은 평등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가장 안전한 방향임을 함축하지만, 그녀는 또한 차이를 전적으로 거부하고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만,
그것이 어느 쪽인지가 문제다. 밀크맨의 양가적 태도는 법이론가인 마사미노우가 다른 맥락에서 "차이의 딜레마"라고 부른 것의 일례다. 종속 집단에 관해 이야기할 때 차이를 무시한다면 "잘못된 중립성을 방치하게"
되며, 차이에 집중하면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강조하게 될 수 있다고 미노우는 지적한다. "차이에 집중하는 것이나 무시하는 것 모두 차이를 재창조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차이의 딜레마다." - P292

평등론은 어떤 명시된 목적을 위해 명백하게 서로 다른 사람들을 (동일하지는 않지만) 동등하다고 간주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한다. 이용법에서 평등의 반대말은 불평등 또는 부등가, 즉 특정 목적을 위해 특정상황에 놓인 개인들이나 집단들 사이의 통약불가능성noncommensurability)된다. 그래서 민주적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동등함을 갖추고 있느냐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시대별로 자립성이나 자산의 소유, 인종이나 성별 같은것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평등이라는 정치적 개념은 차이의 존재에 대한인식을 포함하며, 실제로 이런 인식에 의존하고 있다. - P300

페미니즘의 역사와 정치 전략은 차이의 작동 방식에 주목하면서도차이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이분법적 차이를 다분법적차이들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기댈 곳이 모두에게 좋은 다원주의는 아니기 때문이다. "차이의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을 규범적으로 구성된 그대로의 차이를 무시하거나 포용하는 데서 찾을 수는 없다. 대신 비판적 페미니즘 관점은 항상 두 가지 행동을 포함해야 한다. 첫째는, 범주를통해 설정된 차이들의 작동에 대한 체계적 비판, 그것이 만들어 내는 배제와포함의 유형들 - 그 위계의 폭로, 그리고 그 궁극적인 "진실성"에대한 거부이다. 그렇지만 이런 거부가 동일성 혹은 유사성을 내포하는 평등이라는 명목 아래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것이 두 번째 움직임인데) 차이들에 근거한 평등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여기서 차이들이라는 것은 모든 고정된 이분법적 대립항의 의미를 혼란스럽게 하고, 방해하고, 모호하게 만드는 것들을 말한다. - P306

역사학을 민주주의를 향한 진전에 대한 연구로 인식하는 견해는 그속도와 형태는 다를지라도 모든 사람에게 단선적이고 보편적인 과정을적용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단일성과 보편성을 가정함으로써 온갖 종류의 집단들을 역사 속에 포함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그들의 차이를 특정할 필요도 없어졌다. 단일하고 원형적인 [인간 형태, 즉백인 서구 남성이 역사적 주체의 전형이 됐다. - P316

「역사학』에서 여성이 비가시화된 것은 활발하게 활동하는 역사가나 미국역사학회 회원 중에 여성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보편적 (백인, 앵글로 색슨) 남성 형상이 역사적 주체를 전형화하는데사용될 수 있다는 가정이 낳은 결과였다. 보편적 남성 형상과 다른 존재들은 그 형상에 의해 대표되는 동시에 배제되었기 때문에 사소하고 덜 중요 - P326

한 것이 된 것이다. - P327

여성 역사가들의 다양한 전략들은 모두 차이의 문제를 개념적이고구조적인 현상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차별의 조건을 어떻게 인식하고 거부해야 하는가. 또 별개의 여성 영역이라는 "현실"을 확정하지않으면서 어떻게 여성을 위해 집단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 이 문제들은 - P337

나에게 역설은 양자택일을 강요해 논쟁을 양극화하려는 광범위한 경향에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과 집단, 평등과 차이가 대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대신에 오히려 이것들이 필연적으로 긴장 관계에 있는 상호 의존적 개념이라고 주장하고자한다. 그런 긴장들은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도덕적·윤리적 선택의 문제가 아닌 구체적인 정치적 사례의 문제로 분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1. 평등은 절대적인 원리다. 동시에 역사적으로 우연히 일어나는 실천이다.
2. 집단 정체성은 개인을 규정한다. 동시에 개인성의 완전한 표현 혹은실현을 거부한다.
3. 평등에 대한 주장은 차별의 결과인 집단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 P347

거부하는 것과 관련된다. 바꿔 말하면, 차별의 전제가 되는 배제의 조건들은 포용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거부되는 동시에 재생산된다. - P348

사실 나는 누군가가 보기에는 비결정적이고 수수께끼 같겠지만 가장 다루기 힘들고 깔끔하게해결되기도 어려운 바로 그 문제들이야말로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생각한다. 정치는 가능성의 기술로 알려져 있지만 나는 오히려 그것을 불가능을 협상하는 일이라 부르고 싶다. 이는 민주적인 사회에서 정의와 평등의 원칙에 가능한 한 가까운 해결책에 도달하려 하지만 항상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새로운 체계, 새로운 사회적 배치, 새로운 협상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 그런 시도인 것이다. 오늘날 최고의 정치적 해결책은 집 - P370

단이든 개인이든, 평등이든 차이든) 최종적이고 총체적인 해결책을 주장하는 것의 위험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내가 설명해 온역설들이야말로 물질적인 것임을 말하고 있다. 바로 그 물질적인 것을 통해 정치가 구성되고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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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일하는 독립 여성을 표현하는 용어는 모호했다. 성매매 감시 제도 아래서 ‘독신여성‘ femmes isolées은 성매매 허가업소에 등록하지 않고 비밀리에 성매매를 하는 여성으로 여겨졌다. 1848년 파리 상공회의소가 마련한산업통계』와 같은 노동자 실태 조사에서 ‘독신 여성‘은 기성복 산업내에서 생산 건수에 따라 임금을 지불받으며 가구가 딸린 셋방에 혼자사는 임노동(보통 여성 봉제사나 여성복 재봉사를 하는) 여성을 의미했다. - P252

독신 여성 문제를 제시하는 방식에서 우리는 정치경제학이 부의 생 - P260

산에 대한 담론에 도덕과학을 통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조반나 프로카치는 이런 과정을 훌륭하게 묘사했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19세기 전반기에이루어진 "도덕과 경제학의 접목"은 "개입을 위한 모든 기술적 수단의 정교한 발달을 가능하게"했다. 그런 기술적 수단이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했는지는 여기서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지만, 그 개입이 경제가 아니라 가족을겨냥한 것이었음에 주목하는 것은 중요하다. 가족은 자연적인 도덕 규제의장치인 반면, 경제는 인간의 통제 영역 밖에서 스스로를 규제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법칙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자석의 인력법칙이나 중력 법칙"처럼 과학적 관찰에 의해 정치경제학적 언어에서발견될 수 있었다. - P261

공장에서 일하는여성들은 저속한 동료들에게 노출되고, 유혹당하며, 가정에서 분리되어가정과 아이를 돌볼 수 없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동료들과 어울리며 관능적 쾌락, 사치스러운 기호, 성적 욕망과 물질적 욕망을 쉽게 채울 것이라고 여겨졌다. 이들은 작업장의 여성이나 집에서 돈을 버는 여성들과 자주비교되었는데, 여성들만 고용된 작업장(보통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여성들 또는 집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순결하고 질서정연하며 결혼과 모성에 관한 책임을 질 준비가 잘 되어 있다고 이야기됐다. - P266

시몽의 책은 여성 노동자들의 생활 실태에 대한 연구로 제시되었지만, 그것은 무엇보다 처방을 내리고 이상화하려는 시도였다. 그가 가장절박하게 여기고 열심히 권고했던 점은 노동이 아니라 여성성에 관한 것이었고, 그는 자신이 묘사했던 문제들에 대한 실질적 해결책을 논의하지않았다. 시몽은 입법과 강제가 사회조직의 방향을 바꿀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교육과 제도화의 과정이 결과적으로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63 여성다움을 이루어야 할 목표로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규범적 진술을 담은 그의 책은 교육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다. 여성이중심에 있는 이상화된 가족은 사람들이 점점 더 선망하는 모델이 되었다.
기대되는 해결책은 "어머니가 가족으로 …………… 가정생활로......
・가족의 미덕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 P278

도비에는 물질적 인과관계와 도덕적 인과관계가 결부돼 있음에 주목했지만, 자신이 다루었던 두 문제에 대해 두 가지 해결책을따로 제시했다. 첫째, 독신 여성에게는 직업 시장에서 누릴 수 있는 평등을, 둘째, 기혼 여성에게는 아버지의 책임을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주는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두 번째 해결책은 첫 번째 해결책의 급진적 의미를 무효로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제안한 것은 평등이 하나의 보상 수단이라는 것이었고, 이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성, 또는 결혼하지 못한 여성,
또는 의무에 태만한 남편을 둔 여성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생계의 주요원천이 (노동력 재생산에 대한 경제적 책임이 있는) 남성이라는 정치경제학적 견해를 지지함으로써, 도비에는 (기혼이든 미혼이든 하나의 범주로서의)여성을 "불완전한" 임금노동자로 정의하는 이론적 공식을 그대로 남겨두었다. - P284

여성 노동자들은 도덕과학의 개념 용어의 골자를 이루게 되었고, 이는 규범적 원칙을 명확히 하고 현실에 적용하는 수단이었다. 여기에는 이중적인 움직임이 작동하고 있는데, 하나는여성 노동자들을 보다 큰 노동 세계에서 동떨어진 독특한 일탈적 사례로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시 노동계급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핵심적 위치에 두는 것이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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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통계 보고서는 완전히 중립적인 사실의 수집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강요도 아니다. 그보다는 사회질서에 대한 특정 시각의 권위를 확립하는 방식, 즉 "경험"에 대한 인식을 조직하는 방식이라 할수 있다.

통계 보고서는 현실에 대한 시각과 사회구조에 대한 모델이 정교화 - P208

되거나 수정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한 사례다. - P209

가족은 『산업통계』의 분석에서 매우 중요했다. 그것은 임금뿐만 아니라 모든 경제적·사회적 생활과 관련한 측면에서 핵심이 되었다. 저자들은 가족에서 생산을 조직하는 모델뿐만 아니라 개인의 도덕 발달의 원천을 찾아냈다. 가족은 사회의 건전함과 번영에 필수적인 개인 규율과 순종의 자질을 양성하기에 자연스러운 환경이었다. - P230

자유무역과 개인의 자유를 지지하는 자들은 규율이나 통제를 옹호하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오라스 세와 그 동료들은 사회주의자들과는 다른 노선을 걸었다. 그들은 사회주의자들이 경제를 규제하려 한다고 공격했고, 자신들이 자연적 현상으로 정의한 것에 인위적 법을 부과하지 않으려 했다. 대신 그들은 가족이 자연스러운 규제 기능을 맡고, 국가는 그런가족의 존속과 행복을 증진하는 기능을 맡아야 한다고 여겼다. 도덕과학의 역할은 이런 자연적이고 위계적이며 억압적인 제도를 보호하고 육성할 방안을 찾는 것이었다. 정치경제학의 "보호주의"가 경제정책으로서는절대 반대해야 할 것이었다면, 사회정책으로서는 시대의 추세였다. - P235

이른바 노동자로 불린 이들의 불확실성은 가족, 노동, 경제, 교환이라는 정상적인 맥락에서 벗어난 채 살고 있는 독신 여성의 상황을 알아내는 방식에 커다란 문제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성매매에대한 암시는 이 여성 노동자들이 난잡하고 타락했다는 느낌을 전달했다.
노동자이지만 노동자가 아닌 이 여성들은 파리 산업 세계에서 주변화되어 있었지만 분명 그 일부였다. - P240

보고서에서 계급에 대한 재현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재현은 서로를 대체했다. 독신 여성 노동자의 형상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했다. 『산업통계』에서 나타난 여성의 "의심스러운" 행동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는 또 다른
"현실"에 대한 일련의 관찰과 경고가 함축돼 있음을 볼 수 있다. 노동계급의(사실은 인간 성격의 어둡고 위험한 측면인 그 "현실"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반드시 먼저 알려져야 했다. 82 이 "현실"은 항상 표면 아래 감추어져 있었으며, 보고서 서문에서 저자들이 자랑스럽게 극찬했던 바쁘게 돌아가고 예술적이며 번창한 노동 세계가 가진 이면이었다. - P241

오랜 세월이 흘러 산업통계』가 행정적으로든 논쟁의 도구로든 쓸모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의심할 여지 없는 데이터를 찾고 있던 역사가들은 이를 액면 그대로받아들임으로써 그 범주와 해석을 의문시하지 않은 채 그 기록을 자신의연구에 포함했다. 이런 과정은 경제학과 통계학을 본질적으로 객관적인것으로 보는 특정 관점을 영속화하고 역사가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시대 정치의 특정 분파의 입장을 지지하도록 만든다. 이와는 달리 대안적인 접근법은 모든 기록을 그것이 쓰인 담론적 맥락 속에 위치시키고, 그것을 외부에 놓인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그런 현실 자체에 내재된 부분이라고독해한다. 다시 말해, 무언가를 정의하거나 의미를 정교화하고 사회관계, 경제 제도, 정치 구조 등을 만들어 내는 데 영향을 주는 요소로서 기록을 독해하자는 것이다. 이런 접근법을 따른다면 역사가들은 모든 기록에사용된 용어 그 자체를 의문시하고, 그 용어들이 과거의 "현실"을 구성하는데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질문해야만 한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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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시대의 탄생 - 1980년대의 시간정치
김학선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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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는 대한민국 현재 시스템의 대부분이 형성된 시기다.


대표적으로 박정희 독재 정권과 차별화를 두고자 했던 신군부 정권은 야간통행 금지를 해제하면서 국민들을 24시간 체제로 편입시켰다.

국민의 피와 땀이 녹아 있는 (이제는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기는 하지만) 1987년 헌법 체계가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또 지금의 텔레비전 편성 시스템이 갖춰진 시기이기도 하다. 아침 드라마를 비롯하여 연속극, 아침-저녁 뉴스 등 정기적인 시간에 고정적인 방송을 해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유튜브, OTT 등 다양한 매체가 생기면서 TV 방송도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시스템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함께 읽는 독서 모임에서 이 책의 제목을 알게 되었다. 당분간 독서 모임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음에도 책의 제목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북으로 보이길래 바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일상사, 문화사, 정치사, 경제사 등 다양한 관점을 일정 부분 각각 차용하고 있다. 읽기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히며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익숙한 이야기다.


1980년대 역사를 다룬 책은 보통 3s 정책, 경제 발전에 집중하여 기술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이 그것과 비교하여 어떤 차별점을 두어 신선함을 줄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근대적 시간체계의 시간은 기억정치의 장(場)이다. 때문에 시간의 기억을 둘러싼 여러 주체들 간의 충돌은 계속된다. 

같은 사건, 같은 경험을 한 시간을 무엇으로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 그중 어떤 시간은 삭제하고 어떤 시간은 기념할 것인가의 문제, 그 시간의 의미 부여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는 한 국가 또는 사회의 갈등을 유발함과 동시에 통합으로 이끌기도 한다.


과거에 모두에게 달랐던 시간은 근대에 오면서 동질화되고 수량화되면서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추상화된 시간은 모든 인간에게 같은 기준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24시간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기업이 노동자를 쥐어짤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밤샘 근무를 비롯하여 노동의 강도는 더 높아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가 되면 더욱 심화된다. 


'노동자의 날'은 본래 '법의 날'에서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메이데이가 그 기원인데 대한민국 정부는 그 의미는 삭제하고 법의 날로 만들었다. 

1989년 정부는 법의 날 행사를 개최했고 한국노총은 같은 날 세계노동절 행사를 개최하려다 정부에게 저지당했다.

지금은 당연한 '노동자의 날'(근로자의 날은 박정희가 명명한 개념이다)이 이런 과정을 거쳐왔던 것이다. 

같은 날을 두고도 해석을 달리 했다는 것은 이를 비롯해서도 많다.


국경일과 법정공휴일을 정하는 과정이 특히 그랬다.


정부는 양력으로 국경일과 법정기념일과 법정공휴일을 제정했다. 이후 미군정의 서머타임제를 받아들이면서도 연호는 단기를 채택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5.16 이후에서야 국가 연호는 서기로 채택되는 과정을 거쳤다.

서머타임제는 대한민국 실정과 맞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서구 근대를 받아들인다는 명목 하에 적용되었다.

그러나 신군부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는 현 정권에 저항하는 시위 시간이 연장되고 야간화되어 시위를 확산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은 명절이 공휴일에 포함되는 과정이었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설, 추석, 한식을 의미 있게 보냈다.

그러나 이는 1980년이 되어서야 공론화되고 지금의 시스템을 갖게 된 것이다.

1980~1984년까지 음력설을 공휴일로 하자는 의견이 공론화되었고, 1985~1988년에 관공서 공휴일로 법제화되었다.

이처럼 1980년대 이전까지는 명절이 공휴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음력설을 명절로 쇠는 것은 마치 이중과세 논리로 치부되어 억압되었다.

추석은 이전까지 추수절로 불렸는데 1989년이 되어서야 음력설과 더불어 법정공휴일로 비로소 안착되었다고 한다.

한식은 일제강점기 때 식목일로 그 의미가 변경된 뒤로 그 의미가 굳어져버린 경우다(요즘 한식이라는 명칭을 아는 이들도 드물 것 같다).


이 책은 1980년대를 설명하기 위해 멀게는 대한제국 시기의 역사부터 일제강점기, 해방 전후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24시간 시대가 되면서 대한민국 주체들은 같은 시간을 살면서도 시간정치에 의해 다른 삶과 기억을 가졌다는 것에 여실히 공감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정권은 자기들 구미에 맞는 정책을 펼치지만 국민은 그 논리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오히려 이것이 정권에 반작용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알튀세르에 의하면 한 사회는 상이한 역사적 시간성을 가진 주체들에 의해 구성된다고 한다.

이는 근대적 시간의 전일성을 부정하는 동시에 근대적 시간체제에서 생활하고 있는 주체들 간에는 시간 분배와 배치를 둘러싸고 시간기획과 시간정치가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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