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군인 남성은전통적인 정신분석학에서는 무의식으로 숨겨야 마땅할 판타지를 절대숨기려들지 않는다. 기를 쓰고 반드시 떠벌린다. "거세 불안"은 의식적이다. 공산주의 총잡이 빨갱이 계집도 마찬가지로 의식적이다. 따라서결론적으로 군인 남성들에게는 억압 기제가 전무하거나 거의 없었다. 이들은 집단적으로 정신증적 / 변태적 심리 구조를 지닌 사람들이 아니었다. 정신적 표상 수준에서 꿈 분석 기법으로 언어를 분석했는데도 아무것도 발견한 게 없다면, 정말로 억압이 존재하고 욕망/공포가 숨겨져있을 곳에서 아무것도 발견한 게 없다면 어떻겠는가? 무의식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주어진 텍스트를 그 자체로 읽어보면 필연적으로 결론에 도달한다. 주관적 - 객관적 요소, 의식적 - 무의식적 생각과행동, 프롤레타리아 - 부르주아, 공산주의 - 파시즘 등의 상반된 개념쌍은 텍스트 이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 P148

"좋은" 어머니 상은 분열되어 있다. 하나는 자식을 한없이 사랑하고지켜주는 자신의 어머니다. 특히 아버지로부터 자식들을 지켜낸다. 다른 하나는 강인한 어머니다. 대개는 동료 등 남의 어머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길러낸 아들이 죽어도 눈썹 하나 까딱 않는강철 같은 어머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부드러움과강함 모두를 칭송하지만 다만말을 아끼는 편이다. 어머니에대한 언급은 부인에 대한 언급보다 훨씬 더 드물다. 하지만 과장된 어휘가 사용된다. 어머니는 "선하신 천사"이며 "최고의 여성"이고 "고향"이다. "무한한 사랑"을 바친다. "세상 그 무엇보 - P167

다 더 사랑한다. 이 정도 사랑은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독일만이 받는다.
또한 어머니의 특성은 순백의 귀부인간호부의 특성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한편으로는 사랑하고 보살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차갑고 도도하며 영웅적이다. - P168

프로이트는 이를 일찍이 간파했다. 억압적 부르주아 도덕관념 아래서 자라난 소년은 부모가 침실에서 하는 행동을 죄악으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어머니가 하는 짓을 창녀 짓과 동일시한다. (Freud, GW VIII, p. 73; XIV, p. 418.)이러한 이해 방식은 근본적인 반박을 못 할 뿐 아니라 근본적인 이해도 못 한다. 왜 "좋은" 여성은 좋고 ‘나쁜‘ 여성은 나쁠까?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좋은" 여자는 "나쁜 여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생명을 빼앗긴다는 점에서 차이 날 뿐이다. 이상화는 곧 비생명화다. 또 다른 형식의 살해일 뿐이다. "나쁜" 여자를 살해하는 것은 곧 어머니의 섹슈얼리티, 즉 창녀 짓을 격퇴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여성의 "치명적" 본질을 격퇴하는 것이다. - P172

군인 남성은 여성에 대해서 두 가지 강박을 동일한 강도로 느끼는 듯하다. 하나는 여성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아주 멀리 떨어뜨려두려는 방어다. 다른 하나는 여성을 아주 가까이에 잡아두고 꿰뚫으려는 강박이다. 살해 행위를 통해 상반되는 두 강박이 충족된다. 군인 남성은 여성에게서 목숨을 빼앗음으로써 아주 멀리 보낼 수 있다. 한편으로 아주 가까이에서 총알, 몽둥이, 개머리판 등을 삽입할 수 있다. 여성을 마음놓고 가까이 둘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성에게서 대상물의 성질을 박탈했기 때문이다. 육체 경계를 깨부수고 고유한 이름을 없애버린다. 그녀는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군인 남성들이 열광하는 것은 관능적 여성의피부와 겉표면 너머에 있다. 살해는 마치 교정 행위처럼 거행된다. 여성의 허위와 가식을 걷어내고 "진실" 본질을 폭로하는 작업이다. - P286

자아는 프로이트가 생각했듯 이드에서 분화되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아이의 공생 관계, 즉 이중 단일체 Dual - Union로부터 분화되어 생겨난다.
공생 분리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자아 기능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한다. 정상적인 발달이 불가능해지고 대상관계 능력에 심각한 장애가 반드시 생긴다. 공생 관계로부터 아이를 분리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양극단 모두에 존재한다. 지나치게 딱딱한 어머니라면 아이를너무 일찍 떼어놓거나 애초에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지나치게 "질척한" 어머니라면 아이를 감싸기만 하고 안 놓아줄 수도 있다. - P303

무의식은 "억압 장치가 내주는 것만을 ‘재현‘할 수 있을 뿐"이다". 욕망은 오직 변형된 욕망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
들뢰즈와 과타리는 프로이트가 변형된 욕망의 차원만 분석한다고 비판한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이란 사회적 억압이 재현된 것을 스스로 무의식이라고 받아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명칭 자체의 타당성을 문제 삼지 않는다. 프로이트는 "근친상간" "거세" 등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여 개념화했다. 그러나 무의식이이들로부터 형성되고 표출된다고 설명함으로써 무의식이 사실은 사회적 생산력의 폭발적인 지배 구조임을 간과하고 만다. - P313

오스트리아 출신이나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프란츠 안톤 메스머는 인간이 "유체, Flutstoff"의 바다에서 유영하고 있다고 봤다. 그에 따르면흐름은 인간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사이의 관계에도 흐름이 있다. 이는 스타로뱅스키에 따르면 피치노와 파라켈수스의 체액설을계승한 이론이다.
"피에르 자네는 메스머 이래로 과학계가 흐름 요법을 두고 찬반 양론으로 갈라졌다고 제대로 진단했다.
흐름 요법 찬성론자들은 자력이 있는 것과 자력을 받는 것 사이에 물리적 힘이 실제로 오간다고 믿었다. 반대론자의 주요 논리는 환자 내면의 심리적 과정에만 흐름이오간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두 가지 대립되는 입장이 생겨났다. 하나는 이른바 "유 - P365

체외래설Exo-Fluidismus"이다. 자력이 있는 것으로부터 유체가 흘러나와환자에게 전달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유체 내재설Endo-Fluidismus"이다. 신경 에너지는 움직임을 유발하는 물질이며 개인의 몸 안에 보존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정신분석학은 두 번째 입장을 계승했다.
"갇혀 있는 에너지의 흐름을 이론의 모델로 삼고 있다. - P366

자본주의는 전반적인 탈영토화를 초래했다.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은 모든 오랜 질서와 종교적, 철학적, 과학적 규범을 노후화하고 해체하고기능 변경했다. 새로운 세상이 개발되고 새로운 영역이 열렸다. 인간의 육체, 사상, 감정에 새로운 가능성이 범람했다. 심지어 기존 질서로부터의 도피 가능성도 활짝 열렸다. 모든 지배 세력은 지배력을 유지하고자 한다. 봉건 지주 세력이 그랬듯 부르주아 자본가 세력도 새로운 가능성을 막아서려고 했다. 존재를 지워버리고 막아서고 새로운 흐름을 돌이키려고 했다. 혹은 자신들의 이익에 맞도록 새로운 흐름을 "코드화"하여이용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자유라는 환상은 유포하려고 노력했다. - P398

초월성과 경쟁, 여성의 탈경계화와 탈인격화는 욕망을 대거 추상화하여 적절한 대상성을 결여시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욕망이 적절한 대상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바로 지배의 장벽이다. 지배의 장벽때문에 여성상과 욕망 충족 관념이 결합되는 것이다. 욕망이 결합 대상으로 삼는 것은 살아 움직이는 현실의 여성이 아니었다. 심지어 남성이자신이 상상한 바를 특정한 여성에게 체화시키는 경우에도 그랬다. 구체적인 예술작품도 마찬가지였다. - P418

핵가족은 초기부르주아 사회의 내부적 경계가되었다. 핵가족이 길러내는 "자아"는 세상을 목적 달성의 가능성으로 본다. 자신이 노리는 이해관계가 현실화될 무대라고 여긴다. 핵가족이라는 경계가 틀어막으려는 것은 세계의 판타지다.
무한하게 넓은 전인미답의 세계라는 총체, 인간의 욕망 생산을자극해 미처 몰랐던 쾌락을 널리 퍼뜨릴 세계라는 판타지다. - P454

탈경계화를 통한 유럽 세계의 외부적 영역 확장은 "원시 민족"을 향한제국주의로 전환되었다. 이에 상응하여 내면의 제국주의도 있었다는것이 내 추측이다. 내면의 제국주의는 여성 육체로 표상되는 정복된 자연에서 벌어지는 내면적 영토 수탈이다. 세계 원시 민족의 육체에서 외부적 황금이 약탈되었듯, 새로운 자유를 구가하는 남성적 자아라는 "내면적 황금"은 정복당한 여성성의 육체에서 탈취되었다. - P468

고귀한 여성의 육체는 도형화 과정을 거쳐 신체 부위별로 표상 장식물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토지의 중앙집권적 정복이 질서 있게 진행되었다. 여기서 드러나듯 고귀한 여성의 생산 능력은 잘못된 기계화를 겪게 된다. 이는 부르주아/절대주의 사회에서 경제 생산이 기계적으로 무한 확장되기 시작하는 과정과 맞물려 나타났다. - P515

본래 부르주아 지식인이었지만 출신 계급에 환멸을 느끼고 떠난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지배자의 권력 정당성을 무너뜨리려면더 높은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며 프롤레타리아를 격려한다. 이로써 그는 자신이 싸우려 했던 바로 그 일탈적 지배자와 다름없는 방식으로 직접적 지배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즉, 억압받는 이들의 욕망 생산 속에위계적 풍기 질서를 설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 전선 계층 출신의 전향자들이 이끄는 혁명 운동은 종종 새로운 풍기의 기치를 앞세워 진행된다. 이 과정은 최우선으로 여성을 겨냥한다. 새 시대를 창조하기 위해서 남자는 그저 순결하고 강직한 전사 노릇으로 충분하지만, 여자는 추가적으로 성적 순결도 지켜야만 했다. 독일 사회민주당과 그 뒤를 이은독일공산당은 사업가 가문의 요염한 따님들이 보이는 성적 풍기문란을노동자 처녀들의 육체에서 몰아내려고 했다. 그들은 노동자의 딸을 성처녀로 만들려고 했다.
"새로운 풍기"는 이런 식으로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억압 구조를과거 사회에서 다음 사회로 이어지게 만든다. - P526

소년의 눈앞에 유혹과 매력을 지닌 여성상이 내던져진다. 여성상 속에는누이와 어머니의 모순적 육체성이 마구 뒤섞여 있다. "네가 원하는 것은바로 이거야." 누이와 어머니는 도달할 수 없는 존재다. 그들을 "대체해주는 여성상은 소년의 각성된 욕망이 충족되지 못하도록 만드는 여성이다. 아들과 오라비가 자유롭게 다가와서 흐름에 동참하도록 내버려두질못하는 여성들이다. 무엇보다 어린 소녀, 누이들은 교육에서 배제되어성애화되지 못한다. 이들은 남자를 겪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순진한 소녀들은 남자들의 비밀스러운 성관념이 얼마나 끔찍한지 전혀 모르고 있다. 소녀는 결혼에서 "구원"을 기대하도록 교육받는다. 부 - P541

부관계는 모르지만 결혼생활은 기대한다. 애초부터 소녀는 결혼을 통해사회적 삶을 기대하고 자식을 낳을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미래의 신랑감은 아내에게서 "온 세상"을 기대한다. 자신의 모든 욕망을 성취시켜주리라 기대한다. 아내는 남자들이란 웃기고 별나다고 생각한다. 남자의 숭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므로 아내는 세상의 필터 역할을기꺼이 떠맡을 수가 없다. 남성의 욕망을 순화하고 걸러내 사회적으로수용시키는 역할을 떠맡을 수 없고 해낼 수도 없다. 아내의 욕망은 억제된다. 여성 생산력은 반생산력으로 변신한다. 여성은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없도록 교육된다. 사회와 인생으로부터 뭔가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오직 남편에게 요구하고 기대해야 한다. 남편을 잘 만나야 안정감,
돈, 집, 지위, 자식들을 얻을 수 있다. 아내의 내조로 남편은 사회적 기능과 연결된다. - P542

공화국을 "늪"이라고 부른 것은 한 단어를 다른 단어로 대체하는 단순 비유가 아니다. 이들 남성은 스스로의 육체가 정말로 가래와 곤죽이된 듯 느꼈다. 달리 느낄 방법이 없었다. 언제나 금지되고 부정적인 것으로 육체에 발생하는 생리 현상이었다. 군인 남성들이 노동자 반란군을 붉은 홍수와 연관 짓는 데에는 그다지 긴 연상 작용이 필요치 않았다. 한눈에 명백했다. 저들은 억누르고 살지를 않는구나. 나는 필사적으로 억누르는데. - P592

직업 군인과 군대, 장교에 대한 왜곡된 열광적 존경은 하루아침에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1870년, 1871년의 프로이센 - 프랑스 전쟁승리와 독일 제국의 성립은 독일 소년들의 육체에 체계적으로 주입되었다. 독일이 존재하게 된 것은 승리 덕분이다. 군대 덕분이며 군인‘
분이다. 군인이 안 되겠다는 것은 독일 남자로 불릴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건립된 승전비 아래에서 다음 세대가 길러졌다. 하지만 독일 제국은 - P610

곧 군사독재의 성격을 드러냈고, 여타 제국주의 열강과 세계시장 및 식민지를 두고 경쟁에 돌입했다. 그래서 장차 군인이 될 청년들을 육성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필요해졌다. 이와 병행하여 독일 처녀들은 군인을사랑하도록 훈련되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앞둔 독일은 생산 능력,
원자재 확보 등에서의 확연한 물질적 열세를 "벌충하기 위해 "최고의병사"를 양성하는 데 의존해야만 했다. 40한편으로 군인에 적합한 특정 남성들이 있고 군인 아내에 적합한 특정 여성들이 있다. 그들의 육체에는 흐르지 말라는 금지가 깊이 각인되어 있다.
다른 한편으로 1918년 11월 혁명과 그 결과들이 있었다. 군중은 망설임 없이 모든 금기를 넘어섰다. 군인 남성을 훈련시킨 엄격한 금기들이무너졌다. - P611

파시즘은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했다. 파시즘은 직접적으로는 공개적제의를 통해 여성의 복속을 과시했다. "자연"의 정복, 그리고 무의식의욕망 생산을 연출했다. 그러나 더 중요했던 것은 군중의 복속, 특히 남성 군중의 복속이었다. 사회주의의 현실적 위협을 격퇴하고 여성 육체의 "자연성"을 과시적으로 정복하는 것만으로는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 P623

파시즘은 남성 내면으로 파고들어서 무의식의 재료를 침탈하고자 했다.
파시즘은 남성에게 약속한다. 내면의 적대적 일부를 한데 묶어 견딜 만하게 만들어주겠다고. 내면에 숨어 있는 위험한 "여성성을 남성성으로 눌러 정복하게 해주겠다고. 파시즘 언어에서 "경계"는 주로 육체 경계를 의미했다.
애초부터 공공 영역과 남성적 생산 영역에서 여성을 배제했던 파시즘은 새로운 형태의 여성 억압을 추가한다. 파시스트 남성은 반항적이고 성애적인 "흐르는" 여성을 무찌른다. 심지어 남성 자신의 무의식과욕망 생산 안에 들어 있는 여성성을 무찌른다. - P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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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질병, 낙인 - 무균사회와 한센인의 강제격리
김재형 지음 / 돌베개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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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한센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과거 문둥병, 나병이라고 불렸던 단어에 더 익숙하지는 않은가? 혹시 한센병의 발병 모습으로 감염력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센병은 감염병이지만 실제 감염력이 상당히 약해 감염자와의 접촉횟수, 면역력에 따라 발병률이 달라진다. 솔직히 나는 한센병이라는 단어보다는 나병이라는 단어에 더 익숙했다. 소록도라는 곳에서 병을 치료하는 환자들이 있었는데 환경이 상당히 열악해 문제가 있었다 정도만 인식하던 세대였다. 1980년대만해도 2만 7천여 명에 달했던 한센인이 있었다는데 대다수가 시설에서 생활하거나 도시에 나가 산다해도 사회적 인식 때문에 자신의 병을 철저히 숨기며 살았다고 한다. 일부러 들여다 보지 않으면 나처럼 이들의 존재와 역사를 제대로 모르고 살아왔을 확률이 클 것이다. 저자는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한 ‘한센인 인권 실태조사‘에 참여하면서 한센인들을 처음 만났고, 이후 그들의 삶과 역사를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한다.

한센병은 1873년 노르웨이 의사인 한센이 원인균을 발견한 이후 명명된 질병이다. 한센병은 그 역사가 길지만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세균을 통해 감염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한센병에 걸린 사람을 찾아내 고립시키거나 격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현실로 구체화되었다. 제국주의 바람이 불면서 인종주의에 과학주의가 결합하여 식민지 환자에 대해서 별도의 강제격리 정책의 필요성이 부각된다. 그렇게 조선에서도 1916년 소록도에 병원 건립이 시작된 뒤 1917년부터 병원에서 환자를 받기 시작했다.
1917년 부랑 한센병 환자에 대한 격리가 시행되면서 1920년대 이후 부랑 한센병 환자들이 급증하였다. 1915년에 만들어진 전염병 예방령에는 급성전염병에 대한 제한만 담겨 있었으나 전염율이 낮은 한센병에도 적용되었다. 이후 명확히 감염 경로가 밝혀지지 않는 경우에도 의심되는 모든 것을 규제, 거부하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한센병 환자는 가족의 기피, 냉대는 물론이고 심하면 가족 간 불화로 이어지면서 자살하거나 가족 구성원에 의해 살해당하는 일까지 발생하였다. 문제점을 인식한 이들이 조선나근절책연구회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었으나 조선총독부에 의해 해산된 후 가담한 주요 인사들이 총독부 주도의 단체로 흡수되었다.

그렇다면 한센병에 관한 초기 치료법은 무엇이었을까? 효과가 입증된 치료제로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대풍자유로 1910년대 서양 나병원과 소록도자혜의원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풍자유는 대풍자나무의 열매인 대풍자 속 씨앗에서 추출한 기름으로 고대부터 인도, 버마 등지에서 피부병에 쓰이던 것이라 한다. 1857년 경 인도 벵갈에서 활동하던 의사 모넷이 한센병 치료에 써 효과를 보면서 유럽에도 알려졌으나 특유의 악취, 자극이 있어 주로 다른 물질과 혼합하여 사용하였다. 조선에서는 1915년 무렵부터 쓰이기 시작, 서양 나병원에서 사용을 하다가 1921년경부터 소록도자혜의원에서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풍자유는 병이 더 심해지지 않도록 막는데 효과가 있었을 뿐이었다. 병의 완치 기준을 두고 세균학자와 임상의의 입장이 서로 달랐다. 세균학자는 세균 유무로 판단했다면 임상의는 건강의 회복 여부로 판단했던 것. 때문에 1920년대 중반 이후 사회 내에서 한센병이 완치할 수 있다는 인식이 약화되며 나병원을 점차 요양소(요양원), 수용소로 변경해서 부르기 시작했다. ‘소록도자혜의원‘은 1934년 ‘소록도갱생원‘으로 변경되었다.

초기만 해도 소록도자혜의원은 치료의 목적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변경된 명칭을 보면 느끼겠지만 1930년대 이후 일본과 그 식민지에서 한센병 관리 정책의 강화로 모든 한센병 환자를 시설에서 죽을 때까지 격리하는 정책이 발표되며 그 성격이 바뀌었다. 더불어 1935년 조선나예방령 공포로 환자들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 출입하기 어려워지고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워졌다. 병원 내 환자들의 수용 인원이 점차 늘면서 확장 공사를 위해 환자들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1935년 1차 확장 공사, 1936년 2차 확장 공사가 진행되며 부족한 예산 문제에 봉착하자 병원은 환자들을 더 쥐어짠다.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환자들을 상대로 강제모금을 하고 먹는 배급량까지 줄였으며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구금하는 등의 짓을 벌인다. 1939년 3차 확장 공사 때는 선착장 공사 및 도로 공사, 직원 관사, 병사, 창고 등의 건물을 건설하는 일에 환자들을 동원하여 마침내 세계 최대 규모의 수용시설이 탄생하게 되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일에 동원되니 환자들의 생활 수준은 급격히 나빠졌고 소록도는 그렇게 죽음의 섬으로 변화했다. 남녀를 분리하여 수용하던 것에서 1936년 단종수술을 전제로 한 부부생활을 허용하면서 단종수술과 낙태수술을 가했다. 이는 환자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한 방편이었다. 참다 못한 환자들은 섬에서 탈출을 시도하기도 하고 직원을 살해하거나 다른 환자를 살해하거나 원장을 살해하는 사건(1942년 이춘상이 원장 스오를 칼로 찔러 죽였다)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한센병 환자들에게도 광복은 찾아왔다. 그러나 광복은 조선사회에서 한센병 환자에게 가해지던 폭력성을 제어할 통치자가 사라진 것 뿐이었다. 직원들의 폭력은 여전했고 먹을 물자는 계속 부족했다. 그러나 김형태 원장이 부임한 후 소록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에 환자들은 반색했다. 학교를 설립하고 환자 자치제를 도입하는 등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반면 직원들은 그의 행보에 불만을 표했다. 결국 김형태 원장이 해임되고 횡령 혐의로 체포되면서 소록도 시스템은 다시 이전의 식민지 정책으로 회귀했다. 특히 흉골골수천자법으로 한센병균을 검출하려는 시도는 심각한 인권 침해였다. 사실을 알게 된 환자들은 조직적인 저항을 벌였다. 불만 일부를 해소하기 위해 병원 당국은 흉골골수천자와 노역을 중지시켰으나 환자 자치회를 해산시키고 병원 명령을 수행할 조무원 제도를 부활시키며 환자의 요구를 외면했다. 병원을 탈출한 환자들이 도시에서 부랑하자 전국적인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에 미군정이 개입한다. 1945년 말부터 전국 각지에 임시수용소를 두어 부랑 한센병 환자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일부 나병원은 국영으로 전환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센병 신약도 개발되어 도입되었다. 1953년 프로민 등 DDS제가 표준 치료제가 기존의 대풍자유보다 치료 효과에 도움이 됨이 증명되었고 인도에서 개발한 댑손이 1951년 한국에 수입되어 1953년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 특히 댑손은 경구용인데다 효과도 더 좋고 저렴하여 주요 치료약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국제사회는 엄격한 강제격리에서 점차 상대적인 격리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변화함에 따라 환자의 인권도 고려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WHO나 UNICEF를 통해 남한의 보건정책 수립, 실행을 지원하기로 한다. 한국전쟁으로 한센병 지원 사업은 1961년부터 시작되었고 그 결과 한국의 한센병 상황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1949년이 되면 소록도에 환자를 집중 격리하는 한센병 관리체계에서 환자를 전국에 분산하여 격리하는 체제로 변환하라는 정책이 결정되면서 지역 분산 격리체제가 완성된다. 1957년 2월 28일부터 시작된 전염병예방법은 식민지 시기 전염병과 관련된 여러 법을 통합시킨 것으로 한센병은 만성전염병으로 분류되어 제3종 전염병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환자 관리에 있어서는 중대 질병으로 분류되는 제1종 전염병과 동등하게 취급하고 이전처럼 격리시설에서 환자를 격리하여 통제 권한을 시설 원장에게 부여하는 한계가 있었다. 1963년 개정된 전염병예방법을 통해 완치된 환자와 전염성이 없고 정부 방침을 잘 이행하며 머무를 집이 있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에 한해 강제격리 대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때문에 한센병 환자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강제격리가 폐지된 것처럼 보여 격리가 폐지되었다는 평가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전염병예방법에 신설된 조항과 이후 개정된 내용, 한센병 관리 운영 방식을 통해 그런 평가와는 현실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한센병 환자의 사회복귀를 위해 기능복구사업과 궤양치료, 정형(+성형)수술, 재활훈련과 이동진료 등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격리 환자들은 여전히 감금실, 결핵병동, 정신병동 등 또 다른 격리시설에 수용되어 이중격리를 경험했다. 특히 격리 환자들의 자녀는 언제든 발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부모와 분리, 국립삼육학원에 수용되어 보육되었다. 아이들은 전염병 관리대상인 동시에 연구대상으로 쓰였다고(상상하기도 싫다). 정부는 임상 증상이 사라지고 균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아직 완치되지 않은 환자를 음성나환자로 분류하여 정착마을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정부는 사업 부담을 음성나환자와 정착마을 인근 주민에게 떠넘기면서 갈등을 조장했고 그로 인한 한센인에 대한 낙인, 차별은 영속화되었다. 한센병 환자들은 한번 환자로 등록되면 음성환자가 된 후에도 평생동안 기록에서 제거되지 않고 계속 환자로 남았기 때문에 이는 편견과 차별을 강화하는 기제가 되었다.
1970년대 이후 한센병 환자가 다시 재발하는 문제가 일어나 정부의 고민이 깊어진다. 1983년 MDT 치료제가 도입되고 나서야 비로소 환자 수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치료약으로 한센병 완치가 가능해졌음에도 한센병 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 시장 개방화와 축산업의 기업화로 축산업으로 생계를 잇던 정착마을 중 대도시는 가구공장 임대업으로 전환하며 살아남았으나 농촌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한센인들은 정착마을에 대한 법률적제도적 개선 방안을 정부에 요구하기 시작했다.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는 일본에서 먼저 이루어졌다.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한센인의 소송(그 결과 2006년 법이 개정되고 한국 한센인들이 보상을 받음)은 한국사회에서 한센인의 낙인, 차별, 배제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시민사회가 먼저 일본법에 근거해 피해보상을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 소송을 계기로 한국도 한센인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가 사회적으로 알려진다. 이후 한센인사건법이 제정되어 피해자에게 의료지원금과 생활지원금을 지급하고 국가가 한센인 피해사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결실을 거두었다. 그러나 일본과 대만의 한센인 보상법은 한센인이 국가에 의해 일정 기간 강제격리됐다는 것이 인정되면 일괄 보상하도록 명시한 반면 한국의 한센인사건법은 인정받은 피해자에 한해서만 생활지원을 하게 했다. 더군다나 1963년 강제격리가 폐지되었다고 규정함으로써 이후 강제격리문제를 비가시화하고 그 피해를 온전히 규명하지 못했다. 또 피해 대상을 한센인으로 제한해 그 가족에 대한 피해 조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센인권변호단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소송한 제기에서 정관수술, 낙태수술 등의 강제수술을 받아야 했음을 알렸다. 2017년 최종 원고승소 판결이 확정되었는데 위자료 산정에 있어 병원 측에서 원고인 한센인 측에 예산과 인력을 투입한 점을 감안해 감액하여 원고 측 요구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렇게 한센인을 위한 법률적, 생활적 지원의 길은 열렸으나 여전히 사회구조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국가가 선택하여 시행한 정책이 무엇이었고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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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6-05-21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게 오래 이어지고, 예전에만 그랬던 건 아니네요 한센병은 쉽게 전염되는 건 아닌데, 그렇게 알기도 했다니... 마쓰모토 세이초 소설 《모래그릇》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한국에는 이청준 작가 소설 《당신들의 천국》이 있군요 이 소설은 못 읽어봤지만...


희선

거리의화가 2026-05-21 16:52   좋아요 0 | URL
희선님이 언급해주신 책 중 이청준 작가 것은 이 책에도 소개가 되더라구요. 오래도록 한센병 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이 이어져 온 것은 세균을 통한 감염이라고 알려지면서 격리 정책이 시작된 탓이 큰 것 같습니다. 거기에 대중에 대한 오해가 불러온 나비효과도 있구요. 이 책은 한센병을 다루지만 결국 확장하면 한 사람과 그 가정을 사회적으로 차별하는 문제까지 확장할 수 있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느덧 장미가 지천인 계절이 되었다. 주말에 산책을 나갔다가 장미를 많이 만났는데 참 좋았다. 장미는 붉은 잎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이맘때쯤 연둣빛, 초록빛 나무와 대비되어 더 쨍한 느낌을 준다. 더군다나 요즘 햇빛이 참 눈부신지라 그 색깔이 더 곱게 느껴진다. 

사실 나에게는 장미가 6월의 꽃이다. 예전에도 페이퍼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고등학교 때 교화가 장미였고 항상 6월에 축제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축제 준비로 5월부터 바빠서 축제가 지나고 나면 번아웃 비슷한 것이 왔었다ㅋㅋ 세월이 흘러도 등나무 그늘과 써클실, 운동장 교단은 여전히 그 기억이 또렷하다. 













지난 주말은 산책 말고는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책을 읽고 낮잠을 자고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주말에 읽은 책은 <질병, 낙인>, <오월의 정치사회학>이다. <질병, 낙인>은 이번 주 책모임용 책이었는데 읽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덧 일정이 코앞이라 후다닥 읽었고 <오월의 정치사회학>은 5.18에 맞춰서 읽었다. 원래 낮잠을 자는 편이 아니었는데 생체 리듬이 바뀐 건지 아침 나절 책을 몇 시간 읽고 나면 졸음이 쏟아져서 종종 자곤 한다. 졸면서 책을 읽을 수는 없으니까^^; 요즘 보는 드라마는 <삼국지>랑 어느 가족드라마다. <삼국지>는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으나 95부작으로 워낙 길어서 아직 1/3쯤 봤나보다. 명장인 여포의 죽음이 나왔는데 그가 죽을 때보다 그의 책사인 진궁이 죽을 때 더 감동적이었다. 조조는 진궁을 잡고 싶었으나 진궁은 자신을 보내달라며 죽음을 택한다. 조조가 노모와 가족들을 보살펴줄 것을 알고 있다고... 멋진 풍경을 보며 한 마디 하고 감탄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가족드라마는 사람 많은 집에 바람 잘 날 없다고 돌아가면서 사고를 치는 통에 울화통이 터진다. 그럼에도 서로를 보듬고 나아가는 과정을 보면 따뜻함을 느끼기도 한다. 늘 느끼지만 결국 가족이 없는 이는 없으니까 결국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더라도 그들만의 관계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다.


지난 주말은 사실 지지난주 주말에 너무 놀아서 체력이 방전된 탓에 쉬어줘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오랜만에 시가 모임을 갔더니 술을 마셔야 해서 힘들고(어찌나 말술들인지...) 사람들과 수다를 떨어야 해서 힘든 상황이ㅎㅎㅎ 그래도 항상 우리가 가면 반가워하고 챙겨주려고 하셔서 감사한 마음은 든다. 매년 6~7월쯤 모임을 하다가 5월에 모임을 가지니 날씨도 더 쾌적하고 여행하기에 좋았다. 게다가 매년 시가 근처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이번에는 장소를 아예 바꾸어서 진행했더니 새로웠다. 몇 년만에 충주를 다녀왔는데 놀멍 술멍하며 즐겁게 놀고 왔다. 일찍 출발하여 오전에 시간이 있길래 옆지기와 데이트를 했다. 탄금대 공원이랑 충주박물관을 보고 맞은편에 중앙탑공원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칠층석탑을 구경했다. 탄금대 공원에 갔다가 길을 잘못 들어 계단을 몇 번 더 오르락내리락했는데 덕분에 옆지기는 관절통을 호소하고ㅎㅎ 충주박물관은 스탬프를 다 찍으면 칠층석탑 키링을 주어서 덤으로 기념품도 챙겨서 기분이 더 좋았다. 석탑 인증샷 찍으려고 기다렸지만 사람이 계속 와서 석탑만 찍는 것은 포기했다.









5월도 어느덧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젠 낮에 초여름 이상의 기온으로 올라서 덥다 느껴진다. 그래서 저녁에 산책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그래도 아카시아 향을 맡으며 장미를 품을 수 있는 계절이 지금이다. 만끽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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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5-18 16: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 님 술... 잘 드시는 줄 알았는데 힘들다고 하셔서 엥? 했더니 말술들이시군요. ㅋㅋㅋㅋ
(책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소소한 일상 이야기가 더 재미난 것인가..;;)

충주 탄금대 진짜 아름답죠? 저 거기서 서울까지 자전거 타고 온 적 있어요! 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6-05-19 08:40   좋아요 1 | URL
시간이 지나도 시가 어른들 주량이 안 줄더라구요~ㅋㅋ 저랑 비슷하거나 아래인 연배도 있는데 하나같이 술을 잘 마셔서 모임 가는 날은 좀 각오를 하게 되는 편인 것 같습니다!ㅎㅎ
제가 주로 재미없는 책을 읽긴 하죠. 그렇더라도 책 이야기를 재미나게 쓰시는 분들이 부럽습니다^^
충주 탄금대 참 좋더라구요. 쨍한 날씨에 잔잔한 물결 위에 비치는 햇빛이 눈부셨답니다. 안 그래도 거기 국토 자전거종주길이 있던데... 거기서 서울까지요? 얼마나 걸리셨을려나 궁금합니다!

다락방 2026-05-18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저녁 먹고 동네 산책 갔다가 장미를 보고 아아, 5월이로구나! 했어요. 물론 절반이 다 지나버렸지만요. 그래서 장미 사진도 찍고 그랬습니다. 장미는 볼 때마다 참 아름다워요. 그래서 꽃중의 꽃이라고 하는가봅니다. 이렇게 화가 님 서재에서 장미꽃 보니 또 너무 예쁘네요.
여행 사진 보면서는 아 역시 여행이 좋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 낯선 곳에 간다는 것은 삶에 있어서 큰 활력인 것 같아요. 아름다운 봄을 만끽합시다. 물론 여름같지만...

거리의화가 2026-05-19 08:43   좋아요 1 | URL
점점 꽃들이 피고 지는 시기가 빨라지고 있지만 결국 장미 시즌이 돌아오긴 했네요. 동양에서는 모란을 꽃중의꽃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현실에서는 장미만한 게 없는 것 같긴 합니다. 햇볕 위에 빛나는 붉은 장미는 정말 아름다워요!
말씀대로 어딘가로 떠나는 경험은 일상을 새롭게 보게 하는 마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또 떠나고 하는가봐요. 남은 봄 소중하게 보내시기를!

희선 2026-05-19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에 장미가 보여야 할 때 같은데 하다가 보니 피기는 했더군요 그때는 조금 피었는데 어제 가서 보니 많이 피었더군요 하룬가 이틀 사이에 많이 피었어요 흰 장미여서 더 반갑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장미와 닮은 찔레꽃도 봤군요 거리의화가 님 사진에도 있는 것 같은데, 흰색이 찔레꽃이 맞을지...

공원 좋네요 박물관은 스탬프 찍으면 기념품도 주고... 좋은 시간 보내셨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6-05-19 13:57   좋아요 2 | URL
꽃을 구경하는 것은 좋아하는데 막상 꽃들 이름을 잘 알지는 못해요ㅠㅠ 흰꽃의 정체는 저도 잘...ㅎㅎ 민망합니다. 오늘은 살짝 날이 흐리네요. 아직은 많이 덥지 않고 꽃들이 많이 피어 있어서 산책하는 길이 즐겁습니다. 남은 5월 행복한 시간 만드시길!
 
오월의 정치사회학 - 그날의 죽음에 대한 또 하나의 시선
곽송연 지음 / 오월의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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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어떤 죽음에 관한 보고서’이다. 그러나 그 죽음이 어떻게 남은 자들의 삶 속에서 재인식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국가의 기억은 억압된 그리고 저항하는 개인의 기억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또 수용소 정치, 그리고 ‘감시와 처벌’이 잇따른 총체적 권력의 횡포는 질식된 시민으로서의 자유를 애도하는 근거가 된다. 폭력의 그늘은 평화의 빛으로 더욱 밝게 반사되고, 이성을 회복하라는 국가의 경고는 내 이웃들의 희생에 기꺼이 공감하는 감성에 무력해진다.

5.18이 다가오기에 어떤 책을 읽을까 하다가 눈에 들어와 고른 책이다. 사실 매해 기념일마다 관련 책을 읽지 못하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그 중요함과 가치를 망각하고 흘려보내기 쉬운 것 같다.

저자는 제노사이드와 민주주의 정치문화를 연구하는 정치사회학자로 박사논문이 다름아닌 5.18이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그는 남도 부근에서 성장했으나 그때 쉬쉬하던 분위기를 기억한다고 한다. 그는 5.18에 대해 가해자의 행동에 주목하고 그 의도가 대체 무엇이었을지 질문한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이 한낮의 폭력을 전시한 잔인한 군인들과 지휘관들. 그들은 왜 그런 일을 벌였나?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광주는 왜 고립된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는가?‘ 이 책은 5.18에서 벌어진 학살의 실태, 그 원인과 영향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내놓은 결과물로 가해자에 대한 논의를 다룬 것이 특징이다.

5.18 가해자들은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5.18 당시 가해자들은 고위간부&지도자와 정규군(특히 특전사)으로 나뉜다. 고위간부&지도자는 안정, 안보, 발전에 따른 군부 권위주의 정권 담론에 기대 12.12와 5.17에 이르는 다단계 쿠데타를 기획하고 5.18에서 신군부 조직을 이용하여 실행했다. 정규군은 친위부대, 장기근속자 위주의 전문특수부대로 명령체계에 따른 복종, 이데올로기를 주입받았다. 그들은 반공주의의 영향 하에 동료집단을 압박, 순응하는 시스템에 있었으며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을 통한 제노사이드의 경험으로 인해 실행력이 더해졌다. 특히 5.18의 죽음은 정규군, 그중에서도 특전사 부대원들이 계엄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제노사이드의 가해자들은 일반적으로 범죄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국가안보에 대한 도전 상황에서 지배 엘리트와 군대가 집단학살을 그 전략적 대응으로 선택하는 것에 이미 익숙할 것이며, 이들에 의해 지목된 집단은 대부분 완전히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다.
제노사이드와 정치적 학살의 정의에서 핵심적인 개념은 ‘희생자의 특성’이 아니라 ‘국가의 성격과 의도’이다.

그렇다면 당시 대중은 왜 침묵했는가? 저자는 이를 스탠리코먼의 부인전략 이론을 기반으로 설명한다. 부인전략은 총기발사&자위권 발동의 전면적 부인, 완곡어법&책임전가의 해석적 부인, 필요성 강조&피해자의 존재부정&맥락화&자기중심적 대비인 함축적 부인이 있다. 먼저 5.18 당시 언론통제로 공식적인 논의 진행에는 한계가 있었다. 또 소문으로 떠도는 집단잔학행위에 대해 대중은 부인하거나 불신하는 태도를 보였다. 마지막으로 지식인은 사건을 방조하거나 협력했다. 사건에 대한 부인은 당시 뿐 아니라 현재까지 사람들 간 반목을 조장하고 사회와 국가 내 갈등을 심화시켰다.

학살 후 진실은 어떻게 은폐될 수 있었나? 국가는 학살을 정당화하거나 망각하는 방식으로 국가 공식 역사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오래도록 한민족이라는 기제는 민족의 통합이 당연하다는 논리 하에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게 만들었고 여기에 남북한으로 정부가 나뉘면서 이념에 기반한 차별은 더욱 강화되었다. 신군부 정부는 국보위 상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삼청교육대를 설치하여 운용함으로써 전체주의의 지배원리를 실현시키고 배제를 합법화하는 법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이를 구체화시켰다. 이는 국가 공식 기제에 반하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보고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했다. 정부에 의하면 안정, 발전을 위해 안보는 필요하고 그 반대 급부로 민주주의는 극단적 민주론, 교조주의로 치부되었다.

보편/특수, 서양/동양, 선/악, 적/아我의 구분을 전제한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 구조는 이 시대의 지배 담론을 관통하는 인식론적 기저였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일명 교조주의, 극단적 민주론으로 지목된 민주주의의 가장 큰 과오는 위기를 자초하는 ‘혼란’이다. 이로 인해 ‘혼란’은 국가가 지목한 서구식 민주주의의 가장 큰 폐해인 동시에 시대를 진단하는 대표 키워드로 반드시 경계해야 할 ‘절대 악’으로 상정된다. 그 이유는 ‘국제정치와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북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서구와는 다른 ‘특수’ 상황에 있으며, 민주주의는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 안보와 안정, 발전을 저해하고, 결국 ‘국기마저 위태롭게’ 하는 망국의 위기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화문이 진단하는 이 시대는 “구시대”의 위기와 혼란을 극복하고 “새 시대”를 맞이하는 일종의 “전환기” “분기점” “분수령”이며, 이를 위해 “총화” “단결” “단합” “통합”이 요구된다.

국가는 개인, 정당, 지역을 국가의 단결과 통합에 반대되는 사적인 이해 집합체로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주체로 대비시킨다. 광주는 불순분자의 배후가 있는 진원지로 대표되며 지역주의의 실현 모델이 된다.

그렇다면 학살은 왜 일어날까? 집단 간 격렬한 갈등이 있을 때 반드시 학살로 이어지는가? 저자는 5.18이 정치적 학살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인) 제노사이드는 불평등이 민족, 종교, 인종, 사회경제적 차별 위에 중첩된 사회에서 벌어질 확률이 높다. 정치적 학살은 여기에 국가의 성격과 의도가 포함된 형태다. 한국의 쿠데타(들)는(은) 대항세력에 의한 체제 전복 위기를 폭력적 수단으로 해결하려 하면서 발생했다. 이념 갈등에 의한 사회균열운 정치적 균열을 만들어내며 유신체제를 복원할 것이냐, 아니면 민주화로 나아갈 것인가로 나뉘게 만들었다. 미국의 카터 집권 후반기 동북아 정책은 남한 정치의 국내 불안요소는 동북아 안정에 해가 된다 인식했고 이에 따라 5.18에 침묵(묵시적 동의)을 선택했다.
결론적으로 5.18은 반공주의, 배제적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군부 권위주의 엘리트들이 불특정 다수 민간인을 희생시킨 사례라 할 수 있다.

끝나지 않는 학살을 직면하기 위해서 우리는 남은 문제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2021년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이 개정,공포되었다고는 하나 전두환을 포함한 5.18 학살의 책임자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 또 현재도 여전히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 조작하고 이를 지역, 사회 갈등으로 만들어내려는 세력이 존재하기에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는다.

반인권 범죄와 그 최극단인 학살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민주주의의 내면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다시 시선을 돌려 우리 안의 배제의 문화를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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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게이트우드 할머니의 발자국 - 숲으로 걸어간 할머니, 엠마 게이트우드의 놀라운 여정
벤 몽고메리 지음, 우진하 옮김 / 수오서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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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게이트우드는 미국 에팔레치아 트레일 도보 여행을 추진한다. 67세 여인이 두 발로 140여일의 시간을 걸어 트레일을 완주하다니 놀라웠다. 사실 67세가 할머니라고 하기에는 이제는 그 호칭이 어색한 것 같지만 1950년대만 해도 고령의 나이에 속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는 도보 여행을 떠나기 전 자식들에게 그 사실을 숨기고 몰래 떠났다. 그 용기와 대담함이 놀라웠다. 자식들의 반응도 놀라웠던 것이 ˝어머니는 그러고도 남을 분이죠.˝라며 쿨하게 받아친다.

물론 그녀는 트레킹을 하기 전 충분한 준비를 했다. 평소에도 걷기는 꾸준히 해와서 체력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준비물을 최소한으로 하고 짐은 봇짐 하나가 다였다(무게는 7kg 정도).
에팔레치아 트레킹은 몇몇 사람이 도전하기는 했지만 게이트우드 전에 풀코스로 완주한 이는 단 몇 명에 불과했다.

트래킹을 하는 동안 그녀는 길을 잘못 들어 헤매기도 하고 폭풍우를 만나 휩쓸릴 뻔하는 등 여러 번 위기에 처했다. 그 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손을 내미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녀를 놀랍거나 신기하게 본 이들이 지역 신문에 소식을 퍼나르면서 기사화가 되어 이후 인터뷰를 요청받는 등 점점 유명세를 타게 된다. 나중에는 그녀가 인터뷰를 피해다니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그렇게 게이트우드는 에팔레치아 트레일 풀코스를 끝내 완주한다. 심지어 한 번만 완주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두 차례 더 완주했다고. 이후 그녀는 홍보대사 활동, 강연을 진행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녀의 이름을 딴 트래킹 코스가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그야말로 미국 트레킹 여행의 전설이 되었다 할 수 있다.

헌데 이 책의 장벽이 있다면 남편(페리)이다. 그의 이야기가 언급될 때마다 분노가 치미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제발 헤어져, 헤어지라고!‘를 수없이 외쳤다는. 11명의 자녀를 두었다는데... 어휴, 그 과정과 마음을 생각하면 내 속이 문드러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집을 박차고 나서 독립한 이유, 그리고 길을 나서서 또 다른 인생을 개척한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자식들의 인생 때문에 그녀는 몇 번이고 제자리에 앉았지만 결국 스스로 살기 위해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입장과 마음을 이해해준 자식들의 마음도 공감이 갔다.

여행기이자 에세이지만 1950년대 전후 미국의 역사를 설명해주어 역사를 좋아하는 내게도 안성맞춤이었다. 내용이 그래서인지 자기계발서의 느낌도 좀 있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결국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스스로를 보듬었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덕분에 나도 희망과 긍정, 위로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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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6-05-16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삶은 예순부터라는 말도 있군요 아이를 열하나나 낳았다니... 그때는 그런 사람 있기도 했겠습니다 한국에도... 자신이 자기 대로 살 길을 찾았군요 그게 즐거움이었을 것 같아요 아이도 중요하기는 하겠지만 열하나는... 꽤 오랫동안 아이를 낳고 길렀겠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6-05-18 13:00   좋아요 2 | URL
저희 어머니 식구도 8남매였다고 하더라구요. 당시로 생각하면 11명이 많지 않은 것일수도 있지만... 페리 같은 사람이 그때나 지금이나 있다는 것이 소름끼치는 현실입니다. 아무튼 게이트우드는 자신을 찾고 스스로 살 길을 찾아나간 용감한 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