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트널의 개입은 전투의 흐름을 거의 바꾸지 못했다. 미국 군대의 주된 공헌이라면, 그 파멸적 상륙 작전에서 영국 해병 예비대를 더 많이 죽음으로 이끈 것이었다. 그의 군사 일부는 영국포들을 가지고 포대들을 포격했고, 태트널은 영국 제독을 돌봤다. 미국 군사 한 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태트널의 중립 위반이 그날 벌어진재앙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미미했건, 그 일은 미국 군대에게 중국에서피 맛을 보게 해주었고, 영국과 미국 간의 우호적 관계를 위한 새로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 P118

그는 태평천국 측 관리든 청나라 측 관리든 중국의 다른 어떤 관리보다 외국인과 많이 접촉해보았고, 그들의 관습과 신앙을 잘 알고 있었다. 천왕은 홍인간의 경험이 제공하는 기회를 즉시 붙잡았다. 홍인간이 수년간 외국인들과 함께 살고 일하면서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기때문만은 아니었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홍인간이 외국인들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 홍인간이 외국인들의 종교 행위, 학문,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중국 유일의 인물이라는 것을 외국인들 스스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P149

에드킨스는 이렇게 썼다. "장발 반란군들‘의 잔혹에 대한 이야기가 숱하지만, 여기에는 과장과 잘못된 표현이 많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들이 살인이나 약탈 같은 전쟁 범죄를저질렀다 해도 그것은 오직 생존을 위해서였고, 게다가 그런 범죄들은 아직 상관으로부터 적절한 종교 교육을 받지 못한 신병들의 소행일 뿐이었다. 그 범죄자들은 태평천국군 고위 지도자가 올 때마다 즉시 처형되었다. 그는 점령 도시 쑤저우의 사망자들(그의 악몽에 나타나는 운하의 사망자들을 포함해) 대부분이 살해가 아니라 자살에 의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청국군이 훨씬 더 나쁜 범죄자들이었다.
시간이 가면(그의 정보 제공자 중 한 명의 예측에 따르면 2년 안에) 태평천국이 승리를 거두어, 중국의 유혈 사태와 무질서를 종식시키고 평화와 도덕의 새 시대를 열 것이다. - P174

이제야 비로소영국인들은 태평천국 반란군의 실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볼 수 있었던것 같다. "태평천국은 신화가 아니라" 권력이라고 이 필자가 선언하고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눈에 때로는 제국의 문턱까지 간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거의 잊힌 것처럼 보이기도 했던 10년간의 변화무쌍한 운명을 겪은 후 그들은 이제 수천만명이 되어 우리 앞에 서 있다. 그들은 중국에서 가장 좋은 땅의 지배자들이다. 그 땅에서 난 차가 우리 식탁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고, 그땅에서 난 비단이 우리의 몸치장을 세련되게 만들어준다. 그들은 대운하와 양쯔강을 장악하고 있고, 제국의 옛 수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베이징의 외세 왕조를 치려고 위협하고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은 현재 중국에서, 그리고 우리가 아는 한 동아시아 해안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토착 세력이다. - P180

황제는 후문으로 빠져나왔고, 하인, 궁녀, 만주족 참모로 이루어진 대규모 수행단과 함께 수도를 버리고 도망쳤다. 그가 향한 곳은 북쪽 산악 지대의 안전한 곳이었다. 공식적으로 어떤 언질도 없었고, 황실의 경극 공연장에서는 아무 일도없다는 듯 그날 저녁에도 여느 때처럼 공연이 계속되었다.
이튿날, 황제가 떠났다는 말이 결국 새어나왔고, 베이징의 관리들은 만주족이든 한족이든 다들 허둥대면서 수레에 소지품을 가득 싣고 수도를 빠져나가려는 데 필사적이었다. 수레를 빌리는 가격이 두배로 뛰었고, 남은 수레가 하나도 없을 때까지 값은 계속 올랐다. 관리들이 자리를 버리고 떠나면서 정부는 해체되었고, 민간 방위를 담당하는 부서는 베이징 주민 누구든 약탈자를 발견할 경우 즉시 때려죽여도 된다는 내용의 포고문을 게시했다. - P215

확산되는 큰 화재로 첫 연기 기둥이 하늘로 올라갈 때, 그날 일어난 일을 좀더 깊이 돌아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파괴와 방화의 고삐 풀린 기쁨이 누그러지면서 두려움과 후회가 뒤섞인 이상한 기분이싹텄다. 어떤 이의 표현에 따르면 "대체할 수 없는 것을 파괴해놓고기뻐하는" 자신들 내면의 본성이 보여준 어두움에 대한 불안 같은 것이었다. 붉은 화염 속에서 춤추는 악마들은 바로 그들 자신이었다.
그러나 황제, 청 왕조, 중국에게는 그것이 참으로 불길한 순간이었다.
형언하기 어려운 착잡한 기분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한 왕조의 종말을, 그리고 어쩌면 한 문명의 종말을 목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P220

이 우연한 승진은 오히려 그를 더 고집스럽게 만들었다. 중국역사에는 독립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지휘관들의 오랜 전통이 있었다.("장군이 수도 밖에 있을 때 통치자의 명령이 모두 이행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리고 증국번이 노련한 지도자로 발전해 전쟁수행에 대한 더 확고한 통제력을 갖게 되면서, 그가 왕조에 대한 충성심을 공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더 높은 권위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듯 보일 때가 있었다. 전쟁 전 수도 베이징에서 봉직하던 시기에 그는 중앙 정부의 관료들이 얼마나 무능할 수 있는지, 얼마나 경험이 부족하고 자기 만족적일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는 그들의미숙함이 자신의 전쟁 수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계속 발전하고 있는 자신의 전략 감각만을 믿었고, 자기 군대의 한계를잘 알고 있었기에, 베이징에서 내려온 명령 가운데 많은 것을 거의 무시했다. - P260

프레더릭 브루스는 반란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고수했지만, 형 엘긴 경은 그에게 열린 마음을 가지라고 충고했다. 엘긴 경은 동생에게 보낸 사적인 편지에서 이 시기에 동생 브루스는 대사가 되어 있었고, 베이징에 거처가 준비되기를 기다리며 톈진에서 겨울을 나고 있었다). 청나라와 태평천국 "둘 다 나쁘지만‘ 둘 중 태평천국의 미래가 더 밝다고생각한다고 말했다. 엘긴은 태평천국 통치 지역들에 가본 경험을 통해(브루스는 가본 적이 없었다) 반란군에게서는 "정직함과 힘"이 드러난다고 느꼈다. 그리고 브루스가 태평천국군의 상하이 도착에 앞서 받은 충왕의 서신을 읽길 거부했던 일에 대한 질책일 수도 있는 내용으로서, 엘긴은 반란군과의 접촉을 피하라는 청나라의 어떤 요청에도응하지 말라고 브루스에게 경고했다. - P290

홍인간은 오직 종교만이 아니라 태평천국의 종교적 신념과 중국의 유구한 역사 사이의 조화에 근거해 지지를 호소했다. 그것은 증국번의 틀과 경쟁하는 또 다른 틀의 주장이었다. 즉, 그는 유교 - P304

대 기독교가 아니라 한족 대 만주족이라는 틀을 내세운 것이었다. - P3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국인들과 동맹을 맺으려는 태평천국의 바람이 외국인들을들이지 않으려는 만주족의 오래된 노력과 극명하게 대조되던 시기에,
영국이 중국에서 원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청나라 당국보다 반란군에게서 얻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점이 분명해 보였다. 분명 청나라 정부에는 영국인을 "형제"라 부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두 가지 중요한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었다. 첫 번째는 중립의 원칙이었다. 즉, 태평천국과 우호 관계를 맺는 것은 청나라에 더큰 피해를 입힐 수 있으며(가뜩이나 엘긴이 이미 입힌 피해를 안타까워하는 마당에), 내전에서 한쪽 편을 들면 영국이 스스로 선언한 원칙에 위배된다는 생각이었다. 다시 말해, 중립은 영국이 만주족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면 동시에 태평천국과 우호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상 규정하고 있었다. 또 다른 문제는 태평천국이 영국과 동일한 의미에서 진정한 기독교인인지 여부였고, 이는 선교사들이 여전히알아내려 애쓰고 있던 문제였다. - P1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연이란 자연스러운 활동과전통적인 사건들의 조용한 흐름, 계절과 하늘의 장엄한 질서를 말한다. 자연이란 모든 시내와 바위, 별로 예증되고 구현된 도다. 자연이란 사람들이 지혜롭고평화롭게 살려면 반드시 순응해야 하는 행동 법칙을 지닌 사물들의 공정하고비인격적이지만 합리적인 법칙이다. 이 사물들의 법칙이 바로 우주의 도다. 이는 행동 법칙이 삶의 도인 것과 같다. 사실 노자의 생각에 의하면 도는 하나이며, 인간의 생활은 본질적이고 전체적인 리듬이라는 면에서 보면 세계의 리듬중 일부다. - P356

온 천하에 최고의 미덕을 보여 주고자 한 선조들은 나라를 먼저 질서 정연하게 만들었다. 나라를 질서 정연하게 만들려고 한 선조들은 먼저 가족을 다스렸다. 가족을잘 다스리려고 한 선조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다스렸다. 자신을 다스리고자 한 선조들은 먼저 자기 마음을 바르게 했다. 자기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한 선조들은 먼저 생각을 성실하게 가다듬으려고 했다. 생각을 성실하게 가다듬으려고 한 선조들은 먼저-지식을 최대한 넓혔다. 그렇게 지식을 넓히는 길은 사물을 살피는 데 있다.
사물을 살피다 보면 지식이 완벽해졌다. 지식이 완벽해지면 생각이 성실해졌다. - P371

생각이 성실해지면 마음이 바로잡혔다. 마음이 바로잡히면 자신이 다스려졌다. 자신이 다스려지면 가족이 다스려졌다. 가족이 다스려지면 나라가 올바로 다스려졌다.
나라가 올바로 다스려지면 온 천하가 평온하고 행복해졌다. - P3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국역사연구법
양계초 지음, 한성구 옮김 / 생각과종이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맹자는 "인물을 평가하고 세상을 논한다"라는 원칙을 제시했는데, 세상을 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현대적 언어로 옮기자면 시대적 배경을 관찰한다는 의미이다. 인류는 횡적으로는 사회적 존재이고 종적으로는 시대적 존재이다. 만약 사회와 시대를 떠나 사람이나 집단을 관찰한다면 사상과 행위의 껍데기만 보게 되므로 결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면서 경솔하게 비판하면 오류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아 반드시 배경을 먼저 그려야 하며, 역사를 읽을 때도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배경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 P319


양계초는 청말 지식인이자 사상가로 당시 빠르게 변하는 대외 정세를 배경으로 부패한 내부 정치 및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강유위와 함께 변법자강운동에 참여했고 이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다양한 글을 남긴 사람이다. 내게도 정치가이자 지식인, 사상가로 익숙했는데 이 책을 보면 그가 역사학자로서도 큰 몫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역사연구법>은 1922년 저작으로 전통 역사학을 비판하면서 역사의 개념과 의의, 연구 범위, 사료의 수집과 감별, 역사 서술의 체계 등을 담아 미래 역사학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 구체적인 실천 지침을 담은 책이다. 신해혁명이 있고 10년이 지난 시점인데 이 무렵 중국은 역사 방법론 붐이 일어 관련 저작이 다양하게 쏟아져나왔다. 이 책은 양계초가 1921년 남개대학에서 한 강의 내용을 같은 해 잡지에 연재 형식으로 발표했던 것을 다듬어 1922년 발간한 것이다. 당시 역사 방법론 관련 저작들이 그렇겠지만 양계초는 청말 개혁 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던 사람으로 근대 서양 역사학의 방법론을 적극 수용하되 청에 맞게 개조하여 자신만의 새로운 연구 방법을 내세웠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인간의 활동(활동의 생산물이자 정태)으로 사회성을 지니며 시공간적으로 끊임없이 이어져온 것을 말한다. 양계초는 전통의 역사는 군주 중심의 정사 위주로 쓰여졌음을 비판하며(사마천 이후 중국의 역사서는 황실 중심의 역사로 관 주도 하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관에서 여러 저자가 맡아 저작을 펴내다보니 편차가 있고 일관성이 없는 한계가 있었음) 현대는 역사에서 교훈을 삼아 자기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야 하며 역사서는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져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서는 더 이상 군주, 학자나 지식인만의 전유층이 아닌 개인과 사회의 이해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역사는 어떤 사람이 읽어야 하는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사람은 국민의 일원으로 국가 안에 존재하며, 동시에 인류의 일원으로 세계 안에 존재한다. 이들이 과거의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데 공감할 때 역사에 대한 필요성이 생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오늘날 필요한 역사는 "국민 자치통감" 혹은 "인류 자치통감"이다. - P20


양계초는 앞서도 말했듯 기존의 역사 서술 방식을 비판하면서 사회진화론, 국민국가, 사회발전론 등 서양의 여러 이론을 받아들였음에도 지나친 발전론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태도를 보인다. 


4장과 5장은 사료와 사료를 검증하는 방법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개인적으로도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다. 사료는 문자 기록 뿐 아니라 문자로 쓰여지지 않은 기록도 포함된다. 옛 역사서, 당안, 서신 등의 교류사 문헌, 철학서나 문학, 일반 가정의 장부, 족보나 가보, 경적, 원본이 사라진 발췌본, 불경 등의 고문서, 갑골문, 금석, 석화, 외국인이 기록한 이야기 등... 생각 이상으로 양계초는 사료의 범위를 넓게 다루고 있음에 놀라게 된다. 사료를 수집할 때는 예리한 감각으로 냉철하게 끈질긴 태도로 관찰한 끝에 얻어내야 하며 수집한 사료는 유력한 반증을 찾고 의심하는 태도로 바라보다 실마리를 얻었을 때 가설을 세워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동일한 역사 기록에서도 모순된 주장을 하는 경우는 시기적으로는 사건에서 가장 가까운 것을 택하는 것이 좋고, 역사를 기술한 사람과는 가급적 가까운 것을 택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그렇다고 맹신해서도 안 된다). 역사를 기술한 사람의 태도와 지식을 고려하되 편찬 시기는 사건의 중대성 때문에 나중에 편찬된 경우도 있으니 이도 고려해야 한다. 사료에는 수많은 위서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아예 오류인 경우도 있으나 그럴듯하지만 일부러 거짓말을 늘어놓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다양한 위서 검증 방법을 제시하면서 과거 편찬된 역사서를 예로 들어 설명해준다. 


인류의 사건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만큼 단편적으로 보아서는 안되고 복합적인 인과 관계가 고려하여 기술되어야 함을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서 비교적 최근인 위화단 사건을 예시로 언급하며 당시의 국제적 배경과 중국 정부의 대응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간접적으로 저자의 생각이 드러나기도 한다. 다만 그의 중화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글 속에 스며 있고 중국의 소수 민족 편입에 대한 생각도 불편한 점이 있어 그 점은 감안하고 읽는 것이 좋겠다. 


옮긴이는 이 책을 2017년부터 번역 작업을 시작하여 초벌 번역은 일찍 끝냈으나 책이 나온 것은 지금에서야 나왔으니 시간이 제법 걸린 셈이다. 이 책은 그야말로 신간을 훓어보다 얻어걸린 책이다. 평소 구입 목록을 바탕으로 한 추천 알고리즘이 아니었다면 알지도 못했을 책이리라. 제목을 보고 뭔가 궁금했다가 저자를 보고 '양계초? 설마 그 양계초?' 했고 목차를 보고 '이런 책을 썼다고?' 하면서 주워담았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그가 역사학자로서 중국의 역사학에 대해 가졌던 비판 의식과 고민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중국의 역사학에 대해 가졌던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이지만 시공간을 뛰어넘어 지금도 유효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구체적 지침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중국 역사를 읽거나 공부하는 사람, 역사와 역사학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가져야 할 문제 제기와 의식에 대해서 곱씹는 계기가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통 체계 혹은 다르샤나(논증) 가운데 여섯 체계는 크게 부각되어 브라만의 권위를 인정하는 모든 힌두 사상가는 곧 이 학파들 중 이런저런 학파에 가담하게 되었다. 이 여섯 학파는 모두 힌두 사상의 토대인 특정한 가정을 받아들인다. 베다는 영감을 받아 기록된 것이라는 가정과, 추론은 실재와 진리에 이르게 하는 지침으로는, 오랫동안 가르침에 복종하며 수행하여 영적인 감수성과민감성을 제대로 갖춘 개인의 직접적인 지각과 감각보다 신뢰성이 떨어진다는가정, 지식과 철학의 목적은 세상을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해방되려는 것이라는 가정, 사고의 목적은 욕망 자체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욕망이 좌절됨으로 인해 나타나는 고통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라는 가정이 그것이다. 사람들이 야망과 투쟁, 부, 진보, 성공에 싫증이 나면 다음과 같은 철학들을 찾는다. - P202

힌두 철학은 유럽의 철학이 끝나는 곳, 즉 지식의 본성과 이성의 한계를탐구하면서 시작한다. 그 출발점은 탈레스와 데모크리토스의 자연학이 아니라로크(Locke)와 칸트의 인식론이다. 힌두 철학에 의하면 정신은 가장 직접적으로 알려지는 것이다. 그런데 물질은 오직 정신을 통해서만 그리고 직접적으로만 알려진다. 그러므로 정신은 물질로 해소되지 않는다. 힌두 철학은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지만 우리의 감각이 그 세계를 있는 그대로 알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과학은 도표로 표현된 무지이며 마야에 속한다. 과학은 항상변하는 개념들과 말로 세상의 원리를 표현하지만 이성은 그 세상의 일부일 뿐이며 끝없는 바다를 떠도는 해류일 뿐이다. 심지어 이성을 지닌 인간조차 환영인 마야일 뿐이다. - P225

천성적으로 시적인 심성을 타고나는 힌두인이 볼 때는 기록할 만한 것은 모두 시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자연히 시적인 형태로 이끌리게 된다. 힌두인은 문학이란 큰 소리로 낭독되어야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또 자신의 작품도 기록된 형태보다는 구전 형태로 유포되어 존속하게 될 것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작품에 낭송하고 암기하기 좋은 시적 혹은 경구적 형태를 부여했다. 그 결과 인도의 거의 모든 문헌 - P259

은 시적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과학과 의학, 법, 예술 분야의 글도 운율이나 리듬 혹은 그 두 가지 모두의 형태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문법과 사전까지도 시의 형태로 바뀌었다. 우화와 역사도 서구의 경우에는 산문 형태로만족하지만 인도에서는 선율이 아름다운 시의 형태로 발견된다. - P260

인도 건축을 간단히 뒤돌아보면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힌두적인 것과이슬람적인 것 두 개의 주제를 발견하게 된다. 인도의 건축 교향곡은 이 두 개의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대부분의 유명한 교향곡에서 처음에 망치를 치는 것 같은 소리로 깜짝 놀라게 한 직후 무한히 섬세한 선율이 이어지는 것처럼, 인도의 건축에서도 힌두의 천재들이 보드가야, 부바네슈와, 마두라, 탄조르에 세워 놓은 대단히 힘 있는 기념물들에 이어서 파트푸르와 델리, 아그라에서우아한 멜로디가 등장한다. 그리고 두 개의 주제가 정교하게 뒤섞여 끝까지 이어진다. 무굴 제국에 대해서는 거인들처럼 건축하여 보석 세공인처럼 마무리짓는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이 말은 인도 건축에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나을 것이다. 힌두인은 거인처럼 건축하여 보석 세공인처럼 마무리 짓는다고말이다. - P303

인도의 영혼 자체인 종교적 신념을잃어버린 서구화된 힌두인들이 미망에서 깨어나 슬픈 모습으로 조국으로 돌아왔다. 수많은 신들이 죽은 모습으로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 후에는 유토피아가 천국의 자리를 채웠고 민주주의가 열반의 대체물이 되었으며 자유가신을 대신했다. 유럽에서는 이미 18세기 후반부에 진행된 일이 동양에서는 이제 진행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사상은 느리게 발전했다. - P3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