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3장까지 읽었다. 특히 2장이 많이 아쉬워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기존에 해왔던 이야기를 답습하는데다가 책의 주제와도 크게 관련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음을 먹고 3장을 읽었는데 다행스러웠고 읽기 잘했다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3장이 이 책의 가장 핵심이 담겨있는 듯하다.
내가 선사시대 여성들에 가졌던 생각은 여신의 이미지, 다산과 출산, 여성성과 아내의 표상, 풍요로움과 비옥함의 이미지였다. 특히 신석기 시대 이후는 말이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았는데 이는 역사 공부를 하면서 배웠던 자연스런 수용과정의 일환이었던 것 같다.
'신석기시대 농경과 목축을 시작했고 기존의 이동생활에서 정착생활로의 전환이 이루어짐으로 인해 여성은 아이를 돌보고 가정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다'라는 틀이 내 머릿속에 잡혔다.
대부분 우리들이 가진 선사시대 여성에 대한 이미지는 구석기 때는 동굴 생활을 하면서 무리 생활을 하고 거기서도 남성이 주로 사냥을 하고 여성은 채집을 한다 라는 식으로 정의되어 있고 신석기 때는 정착 생활을 하며 여성에게 가정을 안전하게 보살피는 역할이 강조된다는 식으로 자리잡혀져 있을 것 같다. 거기에 우리 머릿속에 18, 19세기 이후 여성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덧붙여지면서 여성이 특정한 일을 담당한 것으로 규정되고 강화된 것이 아닐까. 여기에 페미니스트들이 선사시대 여성에 대한 편견과 가설에 대한 해석을 폄하하는 경향도 불에 기름을 부은 것이라 여겨진다. 저자는 특히 보부아르의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바는 이것이다. 구석기시대에 여성이 사회, 경제, 문화적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배제할만한 고고학적 증거는 전혀 없다.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진화에 공헌했다.
"처음부터 원래 그랬다"라는 내용을 자주 읽지만, 신화는 원초적인 모습 그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새로운 버전이 나와 옛것을 덮어쓰고 대체하는 것이다. [P217]
새롭게 발굴되는 고고학 자료에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끊임없는 새로운 연구가 발견되면서 기존의 가설이 뒤집히기 때문이다. 과학에 '반증가능성'이라는 용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기존에 가부장제의 창조를 잘 읽었는데 이 책은 거기에는 담겨 있지 않은 최근 고고학의 발견을 통해 재정의된 여성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값진 점이 거기 있는 것 같다.
재미를 보장하기는 어렵지만 역사,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3장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사라 바트만의 이야기였다. 3장은 내용이 길기도 길어서 읽는데 시간이 제법 걸릴 수 있다. 나는 자료를 찾아보면서 이미지를 확인하며 읽느라 더 걸렸지만 그만큼 충분히 값진 경험이었다.
대다수 인류학자와 선사학자는 성별 노동 분업이 이미 구석기시대의 공동체에서도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성별 노동 분업을 인간 사회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사회적 노동 분업의 형태로 생각하는 연구자가 많지만, "사실 선사시대 노동의 대부분은 체력이 기본으로 되는 일은 거의 없고, 남녀 상관없이 기술적 능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P152]
성에 따른 노동의 분화는 신석기시대 초기의 예술에서 꽤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그림에서는 여성들이 채집만 담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뼈를 연구해보니 다른 활동도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신석기시대 중부 유럽의 여성의 팔은 현대의 여성 스포츠 선수보다 더 강했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에도 몸집이 다부지고 근육이 발달한 여성들이 확인되므로, 이들이 이 시기에 담당했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P193,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