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음 / 동녘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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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은 여러 번 접했지만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간인 이 책이 노동사이자 한국 광업의 역사의 단면을 볼 수 있겠다 싶어 관심은 있었으나 읽은 분들의 후기가 궁금했다. 좋은 책이라는 반응이 많아서 믿고 읽어도 좋겠다 싶어서 구입은 해놓았으나 다른 책들에 밀려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우연하게도 이 책을 이달 함께 읽는 책읽기 모임에서 읽을 기회가 생겼다. 읽을 순간은 이렇게 더 빨리 찾아왔다.


작가의 아버지는 양양의 광업소에서 30년을 넘게 일을 했다. 작가는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양양에 살면서 광부들의 삶과 생활을 보고 들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부모는 가능한 그녀가 광산의 일에 거리를 두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일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곁에서 보고 들은 것이 있었으니 그녀는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광산이 들여다 보아야 할 과제로 마음 속에 남아 있었다. 국내 광산은 공급 감소와 가격 경쟁력에 밀려 상당수가 사장길을 걸었다. 그녀의 아버지도 1994년 일하던 광업소가 폐광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이제는 다 죽었어.”라는 그녀의 아버지의 말이 미뤄둔 숙제를 결행해야할 때임을 주지시켰다. 


광부하면 동굴에서 채광을 하는 모습만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광업은 여러 일로 나뉘어져 있다. 크게는 직접 작업장에서 일하는 생산직과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무직으로 나뉜다. 이 생산직은 다시 갱 안에서 일하는 부서와 갱 밖에서 일하는 부서로 나뉜다. 갱 안에서 직접 광물을 캐는 채광직이 우리가 흔히 보아온 광부의 모습이고 이 채광을 위해 각종 기술을 지원하는 부서, 채광한 광물을 운송하는 부서 등 여러 부서가 있고 갱 밖에서도 전기나 중장비를 다루는 각종 기술직과 운반직, 채광한 광물을 선별하는 업무인 선광과가 있다. 쇳돌을 고르는 ‘선광’은 거의 여자들 몫이었다고 한다. 1950년대 한국 수출품 중 2위가 흑연, 철광석이었다 하니 그 규모를 가늠할 만하다. 


양양 광업소는 국내 최대 자철을 생산하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인 1933년 시험 채광을 시작하여 1938년 광산사업소를 짓고 광산 채굴을 시작했다. 1941년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시작한 이후 양양 동굴에서 캐낸 철광석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1956년 국유화된 후 채굴을 재시작했고 1973년 포항 제철이 생기기 전까지 양양 광업소는 국내에 필요한 수요를 담당하다가 이후에는 생산된 철을 일본으로 수출했다 한다. 

해방 후 양양은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해방 후 38선이 그어지자 양양은 북한 땅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후 휴전이 되자 남한 땅이 된 것이다. 양양하와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으나 정작 뜻을 찾아볼 생각은 못하고 막연하게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차별과 혐오가 들어 있는 말이었다.  

‘양양하와이‘라는 속어를 연구한 이한길은 "양양하와이란 단어의 의미를 역사적 맥락, 군사적 충돌, 당시의 사회적 긴장 속에서 그 의미"를 찾는다. "5년여의 인공생활, 다시 5년여의 전쟁과 점령지로서의 생활, 도합 10여 년의 생활은 이 시대의 양양 사람들의 의식을 완전히 황폐화시키기에 충분했다며 양양하와이의 유래를 더 구체적으로 정리한다. "양양 사람들은 남쪽 사람들과 대화를 할적에는 항상 말 한마디마다 조심을 하였다. 그러니 말이 느릿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상대하던 남한 사람들은 양양 사람들을 가리켜 하와이라고 하였다. 마치 외국 사람이 한국말을 하는 것과 같았다고 비유했던 것"이다. 멀리서 보기에는 ‘다 비슷해 보이지만 양양과 강릉은 가까운 지역임에도 미묘하게 말씨가 다르다. 지금도 나는 강원도말을 ‘북한 말씨 같다‘고 하는 사람들을 볼 때 웃기 어렵다. - P180

조심해서 느릿하게 말을 하는 것 뿐인데 이를 하와이라고 표현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되짚어보면 강원도 사람들의 말이 북한 사람들의 말과 비슷하다고 하여 매체 등에서 너무나 안일하게 코미디 소재 등으로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이를 생각 없이 퍼나르고 배우지 않았나 곱씹게 되었다. 

양양의 이런 이력은 작가의 가족력과도 이어지는 면이 있다. 작가의 할아버지는 1921년생으로 남로당 당원으로서 좌익 활동을 했다. 한국 전쟁 중 할아버지가 실종이 되자 월북을 의심받으면서 가족들은 연좌제에 걸려들었다. 연좌제는 남은 가족들을 정서적으로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을 뿐 아니라 남한 사회 내에서 제도적으로 불이익을 주었다. 원래 작가의 아버지는 군인이 되기를 원했으나 연좌제라는 발목은 그가 온전한 직업을 가질 수 없게 했다. 작가의 어머니는 “네 아버지가 주저앉았잖아. 광산에.”라며 그때 그의 스트레스는 말도 못했다며 삶이 온통 울분에 차 있었다고 표현한다.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는 말에 함축된 삶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 못하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 1978년 여러 노력 끝에 할아버지의 사망신고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그녀의 아버지는 광부라는 직업을 비로소 얻을 수 있었다. 그 전에는 늘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니며 감시 받는 세월을 견뎠을 것이다. 연좌제로 피해를 겪은 그는 광산의 불합리한 환경을 바꾸어보고자 광산 노조를 결심했으나 빨갱이에게는 그마저도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여러 번 시도하여 결국 노조위원장까지 갔다고). 게다가 당시 노조는 어용노조로 정부의 구미에 맞는 인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1980년 4월 일어난 사북항쟁은 신군부가 노조를 정화하겠다며 벌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과 충돌의 현장이었다. 신군부의 비상계엄령 후 노동법이 개정되어 노조는 산업별 체제에서 기업별 체제로 전환되었고 노조의 힘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1987년 직선제가 시작되면서 노조도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분출했다. 그렇지만 이무렵이 되면 광산은 이미 규모가 축소화되면서 노조의 힘도 발휘되기 힘든 환경이 되었다.

철광산업이 사장길에 접어든 것은 수입산 철광석이 증가하면서 국내 철광 가격이 경쟁력에 밀린 탓이 크다. 석탄산업이 사장길에 접어든 것은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아파트가 증가하고 석탄 대신 기름 보일러를 때기 시작하면서 연탄 소비량이 감소되었고 1989년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에 의해 강제된 측면이 있다. 1995년 정선의 탄광촌은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며 투쟁한 끝에 합의를 보기도 했다. 이를 비롯해 여러 광산에서 생존권을 위한 투쟁이 벌어졌다. 


광산 투쟁은 다른 산업 노조 투쟁과는 달리 여성들의 참여율이 상당히 높은 것이 특징이(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광업소와 사택의 거리가 가까워서 자연스레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성들은 사택촌에서 노동가를 익히기도 하고 서로 정보를 주고 받으며 노조에 힘을 던지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작가의 어머니는 작가의 아버지가 노조 위원장으로 집에 몇 달간 자리를 비우는 동안 강릉에서 작가와 함께 있으며 투쟁과는 거리를 두었다. 그런 영향 때문에 작가도 양양 철광산이 폐광 투쟁할 때 여성들의 활약을 몰랐다고 한다. 가정(과 아이)을 생각했던 측면도 있을테고 아버지의 활동이 그녀에게 부담을 준 측면도 있었으리라 보인다.


적지 않은 여성들이 ‘어머니마저‘ 밖에서 투쟁에 참여했을 때 자식들의 위치가 더욱 취약해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그가치를 지키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만 정상적인 어머니로 인정받는다. 다른 자원이 없는 여성에게 모범적인 어머니 되기는 중요한 가치다. 1980년 사북항쟁에서도 자식 때문에 참여하지 않은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집단생활이나 다름없는 지역에서 투쟁에 참여하지않는 아내/어머니의 복잡한 입장이 있다. - P272


세상이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직업도 사라지고 새로 생겨난다. 어떤 직종은 어차피 ‘없어질 직업이기에 사라지는 수순으로 가는 게자연스럽게 여겨진다. 그러나 직업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사라지진 않는다. 직업은 사라져도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로 꾸준히 이동한다. 그들이 다 죽을 때까지 사회가 그들의 이동경로에 무심할 뿐 사람들 대부분은 사는 동안 꾸준히 일을 바꿔가며 생존한다. 무언가를 이루는 삶이 아니라 ‘견디는‘ 삶은 이름 없이 소멸하고, 이 삶의 경력은 무수한 노동으로 채워진다. - P45~46


일자리를 잃고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공포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나도 최근 몇 년간 지속해오는 걱정과 불안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AI가 등장하면서 인력이 기계로 대체되는 흐름을 더는 막을 수가 없게 되었다. 대부분의 광업 종사자들은 그 일에만 익숙하던 사람들이라 실직에 많은 이들이 무너지곤 했으리라 짐작한다. 과연 그들이 어떤 식으로 삶을 이어갔을지 궁금했는데 그 이야기도 담겨 있다.


광부들은 공통적으로 경제적 상실을 겪었고 일하던 환경과의 단절 속에서 관계가 분리되었으며 그리움(향수)를 경험했다. 그렇지만 광산 이후의 삶은 천편일률적으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어떤 이들은 다른 광산을 찾아 떠났고 아예 다른 직종을 찾기도 했다. 아파트가 늘어나던 1990년대 중반에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직하거나 시험을 봐서 주택관리사가 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편 카지노 기계실에서 일하다 이제는 사회복지가이자 서예 강사, 아마추어 연극인이 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죽어도 여기에서 죽겠다며 그곳을 떠나지 않고 채굴노동자에서 현장 관리 소장이 된 사람도 있다. 광산을 떠나 직업을 찾은 이들은 공부를 해서 시험을 보거나 구직을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 들고 여러 취미를 가지며 정서를 돌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폐광 후 그 도시는 어떻게 변모했을까. 정동진은 1991년까지 석탄 광산이 있었다가 폐광된 후에는 해돋이 관광지로 성공적으로 변모한 경우다. 광명도 탄광이 있었으나 지금은 테마 산업인 황금 동굴로 알려지게 된 곳이다. 동해는 노천 광산이 있었으나 지금은 거대한 테마파크로 변모했다. 문경도 대표적인 탄광 도시였으나 지금은 사극 촬영지로 더 유명해진 곳이 되었다. 정선 사북은 폐광 후 지역 경제를 진흥시키겠다는 목적으로 들어선 강원랜드로 이미지가 많이 변화한 곳이다. ‘극단 광부댁’은 광산 이야기를 전하는 연극 단체로 구성원들 중 광부 부인들이 있어서 이름이 그렇게 지어졌다. 처음에는 정선 아리랑을 배우는 동아리에서 출발했는데 이제는 도박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시민 연극 단체로 활동 중이라고 한다. 


광업은 이제 한물 간 산업이고 광부도 빛바랜 존재로 느끼는 경우가 많아졌음을 느낄 때 정작 광업 종사자(였)던 사람들과 가족들은 힘을 잃는다(고 한다). 정작 국내 광산은 여전히 300개 정도가 운영 중이고 석회광산은 특히 많이 남아 있다고(정말 몰랐던 사실이다). 


작가는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러나 기억은 온전히 믿기가 어렵고 회고는 증언이 될 수 있는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아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1980년대 이후 자신이 온전히 기억할 수 있는 시기는 해석과 판단이 개입할까봐 거리두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우려스러웠다고. 


작가는 우려스러웠다지만 나는 이 책이 한 가족의 노동사이자 양양의 광업사로 확장되고 그곳에 살던 사람의 광부로서의 삶과 이후의 세계까지 담아낸 점이 정말 좋았다. 일반 역사책처럼 딱딱하지 않고 쉽게 읽히는데다가 사람들의 이야기에 녹아들다보면 감동과 함께 생각할 점을 많이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것은 남성 광부의 삶 뿐 아니라 선광부로 일하는 여성의 삶, 그리고 광부 아내로서 사는 여성의 삶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광부는 결코 혼자 존재할 수 없다. 매일 출근하는 이를 위해 도시락을 싸고 가족을 챙기던 여성들의 삶을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탓이다. 그들의 지원은 국내 광업이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던 힘이 되었다고 믿는다. 


싸우는 사람들이 특별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일상의 평범한 얼굴 속에 이미 투쟁과 저항의 역사가 흐른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다. 특별하게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 싸우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것. 또한 이 싸움은 완벽하지 않고 모순과 뒤엉킨 채 일상을 살아가는 얼굴들이라는 것. 평범한, 싸우는 사람들이 지탱해온 역사의 일부를 기록하고자 했다. 혀가 없다고 취급받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목소리를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그저 평범한 삶을 살다가 거대한 사건의 깊은 서사 속으로,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 작은 사람의 역사"는 여전히 부족하다. - P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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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화이트칼라라고 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노동자가 되었는데, 정작 우리는..... 요즘 대기업들은 주 4일 한다, 뭐 한다 그러는데 우리는 여태 주 6일 하다가 이제 격주로 토요일 휴무고, 한노총이고 민노총이고 다 마음에 안 들어. 같이 가야 하잖아. 골고루 나눠야 하잖아. (잠시 침묵) 독재라고는 하는데, 그래도 박정희, 전두환 때는 우리를 산업역군이라고 했거든. 지금은......" - P405

"이건 팔자예요. 팔자라는 게 무슨 말이냐면, 재주가 없는데도 계속 좋아하는 거죠. 제가 재주가 있었다면 서예를 40년이나 했는데 아주 손꼽히는 일인자가 되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전혀 그렇진 않거든요. 그래도 계속 좋아해요." - P438

어떤 집단을 일반화할 수 있는 면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집단 안의 다름을 계속 탈락시키면 같은이미지만 지루하게 반복 재생된다. 안전모를 쓰고 있는 순간도 있지만 안전모를 벗고 일상을 살아가는 순간도 있다. 그 삶 안에 다양한개인, 그 개인의 관계, 취미와 같은 일상이 있다. 나는 계급을 강조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에게서 때로 누구보다 계급적 편견에 사로잡힌사고를 발견할 때가 있다. 구체적 개인을 모를수록 계급과 취향에 대한 도식적 상상 안에 갇힌다. - P456

가까운 지역에 카지노가 들어서면서 지역민들이 - P457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지만 도박중독으로 인한 우울한 이야기도많이 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태백에 돌아와 문화 기획을 위해 이런저런 지원 사업 공모에 많이 참여하면서 그는 자신이 받는 지원금이강원랜드에서 많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카지노 때문에 망가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카지노 덕분에 지원금을 받아 새로운 활동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 P458

세월호 참사로 안산에다수의 희생자와 유가족이 생긴 사건은 그들에게도 고통을 안겼다.
안산에는 강원도민 출신이 17만 명 정도 거주한다. 나는 그제서야 세월호 참사 희생자 중에 강원도민 출신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실제로강원도민 출신 재안산 주민의 자녀 22명과 교사 1명이 희생되었다.
고통이 이렇게 이어졌다. - P474

광산노동자의 기술은 광업계 바깥의 도로, 건설 등으로 스며들었다. 그들의 어둠 속 노동은 근대사회 이후 중요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광산에서 석탄을 캐내어 증기기관차를 운행하고 그로 인해 대량 운송과 생산이 가능해졌다. 터널을 뚫는 기술은 지하에 배관을 만들도록 했으며 이것이 근대적인 위생 시스템을 만들었다. 나아가 지금의 지하에는 디지털 통신을 위한 광섬유 케이블이 매설되어 있으니 광물을 캐내는 노동에서 디지털 기술에 이르기까지 채굴 기술은 - P476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 P477

1980년대 이후의 광산은 전혀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폐광촌에 마련된 과거의 광산 모습을 본다. 1980년대 탄광에서 집단의 기억은 멈춰버렸다. 경제성장과 기술 발전 속에서 과거가되어버린 광업은 이처럼 현재의 광업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 P496

사라질 직업에 대한 불안, 자신의 일이기술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그러나 수많은 노동자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대체되어왔다. 노동자들은 진동벨이 되고, 키오스크가 되고, 계산기가 되고, 서빙 로봇이 되었다. 어떤 직군은 마땅히 기술로 대체되고 그 직종이 사라지는것을 기술과 사회의 발전이자 역사적 진보로 받아들인다. 머리가 없다고 여겨지는 손과 발이 대체될 때는 발전이라 여긴다. 머리가 없는존재이기에 이때 사라지는 이들의 목소리는 쉽게 소거당한다. 직업이 사라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직업 안의 사람을 돌보지 않는 게문제다. 사양산업 속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그렇게 외면해왔다. - P518

기후위기에 대응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그에 따라 광산들이 폐쇄되는 절차는 응당 필요한 절차로 보인다. 그런데 기후와 환경을 위해 어떤 국가의 광산은 닫히지만 어떤 국가의 광산은 활발하게열린다. 친환경을 위해 각광받는 광물이 생겨나고 중국이나 아프리 - P558

카에서 희토류나 리튬 광산을 열심히 개발 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아프리카 광산이 뜬다", "아프리카 자원부국과 핵심 광물 협력모색", "중, 리튬 등 핵심 광물 이미 장악, 일은 아프리카에 42조 투자",
"아프리카 광물에 쏠리는 관심", "중, 남미 아프리카 광산 눈독"...... 쉽게 찾을 수 있는 기사들이다. 독일과 영국 등에서 ‘마지막 광산 폐쇄‘
소식을 전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현상이다. - P559

여성들이 서러움을 표현할 때 가부장제는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한맺힌 ‘우리 어머니‘나 서러운 ‘딸‘ 혹은 ‘며느리‘ 등은 오히려 가부장제와 공존한다. 희생이 곧 역할이기에 서럽다고 하면서도 자신처럼 희생하지않는 사람에게 분개한다. 물론 1980년대는 이 서러움을 기반으로 노동자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들의 언어를 만들어가던 시기였다. 서러움이서러움에서 멈추지 않고 이 서러움을 공격의 무기로 전환시키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 감정을 기반으로 연대할 때 투쟁이 가능해진다. 그렇기에 서러움에 저항적 힘이 내재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감정은한계도 명확하다. ‘덕분에‘와 같은 말로 대응해버리고 구체적인 문제는회피할 수 있다. 또한 ‘나의 서러움‘을 바탕으로 분노하지만 타인의 서러움‘에 대한 공감과 연대로 확장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막연한 서러움보다는 정확한 고통의 실체와 부당함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 P563

많은 지식인이 서구의 지식인과 소통하지만 자국의 지역/노동계층과 소통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자국의 지역/노동계층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국사회의 문제를 미국이나 유럽의 석학에게 문의할 수 있는 실력 있는 한국의 지식인들은 정작 자국 노동자의언어에 무관심하다. 몰라도 되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은 계층적으로편협하게 살아도 ‘글로벌‘해질 수 있는 문화권력을 가졌다. - P617

싸우는 사람들이 특별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일상의 평범한 얼굴 속에 이미 투쟁과 저항의 역사가 흐른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다. 특별하게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 싸우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것. 또한 이 싸움은 완벽하지 않고 모순과 뒤엉킨 채 일상을 살아가는 얼굴들이라는 것. 평범한, 싸우는 사람들이 지탱해온 역사의 일부를 기록하고자 했다. 혀가 없다고 취급받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목소리를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그저 평범한 삶을 살다가 거대한 사건의 깊은 서사 속으로,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 작은 사람의 역사"는 여전히 부족하다. - P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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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0 23: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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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직업도 사라지고 새로 생겨난다.
어떤 직종은 어차피 ‘없어질 직업이기에 사라지는 수순으로 가는 게자연스럽게 여겨진다. 그러나 직업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 일을 하는 - P45

사람이 사라지진 않는다. 직업은 사라져도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고어딘가로 꾸준히 이동한다. 그들이 다 죽을 때까지 사회가 그들의 이동경로에 무심할 뿐 사람들 대부분은 사는 동안 꾸준히 일을 바꿔가며 생존한다. 무언가를 이루는 삶이 아니라 ‘견디는‘ 삶은 이름 없이소멸하고, 이 삶의 경력은 무수한 노동으로 채워진다. - P46

여전히 여성의 노동과 투쟁보다 자궁 단속에 더 관심이 많다. - P73

연좌제는 비시민화시키기이다. 국가와 정부는 권력 유지를 위해 비국민을 꾸준히 발명해낸다. 중산층 지식인 남성의 위치는 가장안정적인 시민이다. 한편 노동계층과 여성은 원래 비시민이기에 이들의 시민되기 탈락에는 극적인 요소가 없다. 농부가 농부로 살아가고, 노동계층이 노동자로 살아가고, 여성이 여성으로 살아갈 뿐이다.
탈락된 자들은 원래 자리가 없었기에 그들의 고통과 상실은 사회문제가 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일부 지식인 남성의 서사가 역사를 과잉 점유한다. 지식인 남성은 그 위치 때문에 희생자 서사를 가지기도 쉽다.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중산층이되지 못한 지식인 남성‘ 서사로 급격히 좁아진다. 이들은 문학으로 울분을 표출하며 사회에서 지적으로 망명한 지식인의 자리를 만들어갔다. 이데올로기의 피해자라는 위치는 저항하는 위치보다 안전하다. - P114

나는 동네에서 정말로 가사만 하는 여성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농사를 짓거나 시내에서 장사를 했다. 가게나 논밭이 없는 보통의 여성들은 대부분 집 안에서 부업을 했다. 조금 멋지게 다니는 여성들은
‘보험 아줌마‘였다. 어떤 아줌마는 군부대가 있던 춘천에 가서 미제물건을 가져와 야매로 팔았다. 화장품, 코코아, 커피, 농축 주스 등을가져왔고 어머니도 그 물건을 샀다. 아주 가끔 진한 오렌지 주스 농축액에 물을 타서 마신 적이 있는데 그 음료가 야매로 구입한 것이었다. 겉보기에 ‘집에서 살림하고 애 키우는‘ 여자들은 다들 집에서 부업을 했다. - P141

‘양양하와이‘라는 속어를 연구한 이한길은 "양양하와이란 단어의 의미를 역사적 맥락, 군사적 충돌, 당시의 사회적 긴장속에서 그 의미"를 찾는다. "5년여의 인공생활, 다시 5년여의 전쟁과점령지로서의 생활, 도합 10여 년의 생활은 이 시대의 양양 사람들의의식을 완전히 황폐화시키기에 충분했다며 양양하와이의 유래를더 구체적으로 정리한다. "양양 사람들은 남쪽 사람들과 대화를 할적에는 항상 말 한마디마다 조심을 하였다. 그러니 말이 느릿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상대하던 남한 사람들은 양양 사람들을 가리켜 하와이라고 하였다. 마치 외국 사람이 한국말을 하는 것과 같았다고 비유했던 것"이다. 멀리서 보기에는 ‘다 비슷해 보이지만 양양과 강릉은 가까운 지역임에도 미묘하게 말씨가 다르다. 지금도 나는 강원도말을 ‘북한 말씨 같다‘고 하는 사람들을 볼 때 웃기 어렵다. - P180

3교대를 하는 노동자들이 시간을 아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일터에서 도시락을 먹으려면 누군가는 그 도시락을 싸야 한다. "간부들이나 밥 먹을 데가 있지. 그 시절에 무슨 구내식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요즘 같지 않아." 모순되게도 1960년대에 할머니는 광업소에서밥을 했지만 그 밥을 먹는 사람들은 간부들이었다. 밥 짓는 노동계층여성은 정작 자신과 같은 계층의 노동자를 위한 밥 짓기 노동으로는돈을 벌기 어려웠다. 노동자의 밥은 주로 아내들의 무임노동으로 굴러갔다. 광산노동자인 남편의 도시락을 싸는 한 아내가 "도시락 씻는게 싫더라고. 탄가루 막 묻혀 오고"라고 말하며 일회용 그릇에 도시락을 싸는 장면을 티브이에서 봤다. 이 여성의 목소리를 들으며 일회용품 사용을 비판하는 마음을 꺼내기는 어려웠다. 밥 위에 계란프 - P230

라이, 반찬으로는 두부 부침에 김치, 나물이 담긴 도시락이었다. 오늘날 광산은 대부분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제공한다. 여성들의 도시락싸는 노동이 그나마 줄었다. - P231

폐광촌에서 옛 광부들의 희생과 서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힘들게 번 돈을 가족에게 가져다주고 자신은 남은 돈으로 값싼 고기와 소주로 배를 채웠다‘는 식으로 서술하는 방식을 만날 수 있는데, 다분히 가부장적 시선이다. 노동자들의 궁한 식사에 시선을 두다가도 여지없이 내 눈에 들어오는것은 남성들보다 더 먹을 기회가 없는 여성들의 위치이다. 집 밖에서식사할 기회가 많은 남성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음식을 접할기회가 더 많다. 아버지가 1980년에 처음 삼겹살을 먹었다면 어머니는 1980년대 중반이 지나서야 처음 삼겹살을 먹어봤다고 했다. 음식에 대한 어머니의 기억에는 남편을 위한 보양식이 아니라, 결혼을 해서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여성을 통해 새로운 조리법을 발견한 사례들이 엿보였다. - P239

적지 않은 여성들이 ‘어머니마저‘ 밖에서 투쟁에 참여했을 때 자식들의 위치가 더욱 취약해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그가치를 지키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만 정상적인 어머니로 인정받는다. 다른 자원이 없는 여성에게 모범적인 어머니 되기는 중요한 가치다. 1980년 사북항쟁에서도 자식 때문에 참여하지 않은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집단생활이나 다름없는 지역에서 투쟁에 참여하지않는 아내/어머니의 복잡한 입장이 있다. - P272

아버지는 일흔을 넘기면서 이런 말을 종종 했다. "내가 가만히생각해보니까, 나는 이 집에서 지금 당장 없어져도 아무 문제가 없더라고. 내가 없어진다는 게 정말 이 집에서 더 이상 아무 문제도 만들지 않아. 그런데 네 엄마는 아니야. 지금 우리 집에 니 엄마가 없어지잖아, 그럼 다 마비야. 엄마가 없으면 큰일이더라고.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 쓸모가 없어." 어머니는 아들네집 돌봄노동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집 밖에서 임금노동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자신의 ‘쓸모없음‘을 느꼈고, 그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집 밖의 일을 찾아 나섰다. 아버지는 이제 한 달에 29만 원을 받는 노인일자리에 의존한다. 집 밖에서 쓸모를 다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노인일자리는 ‘일하러 밖으로 나간다‘는 기분을 안겨주었다. 한 달에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국민연금이나 노령연금 외에 수입이 전무하고재산도 없는 노인들에게 노인일자리는 꽤 인기다. 어느 날 집 앞에서아버지는 우연히 옛날 양양광업소 동료와 마주쳤다. 그는 폐지 줍는일을 했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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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리얄리 2026-04-06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감사합니다!

거리의화가 2026-04-08 16:32   좋아요 0 | URL
기대만큼 역시 좋더라구요. 도움이 되셨다니 기쁩니다.
 

케렌스키 내각의 잔당들이 아무런 구원의 희망도 없이 공작석응접실에서 은거하고 있던 그 겨울궁전을 ‘급습‘한 전설적 사건은 차라리가택연금과 더 비슷했다. 볼셰비키당원 블라디미르 안토노프-오프세옌코Vladimir Antonov-Ovseenko가 이끌었던 그 습격은 예이젠시테인의 영화제작팀이 재연 과정에서 궁전에 입힌 것보다도 더 적은 피해를 입혔다. 볼셰비키의 습격이 시작되기 전에, 궁전을 수비하던 병력들 대부분이 굶주리고 실의에 빠져 이미 집으로 가고 없었던 것이다. 볼셰비키의 내란에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의 수는 크지 않았다(또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도않았다). 아마도 궁전 광장에 모인 1만 명에서 1만 5000명가량의 노동자,
군인, 수병 정도였을 것이다. 비록 나중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습격‘에 가담했다고 주장하게 되겠지만, 그들 모두가 실제로 ‘습격‘에 참여했던 것은 아니다. 일단 궁전이 장악되자, 궁전과 궁전의 거대한 와인 저장고를 약탈하기 위해 많은 수의 군중이 후에 가담했던 것이다. - P146

그들의 관점에서 내전은 계급투쟁의 필수적인 단계였다. 그들은 내전을 더 집약적이고 군사적인 형태의 혁명의 연장으로 여기면서 환호했다.
트로츠키가 6월 4일 소비에트에 이렇게 선포했다. "우리 당은 내전을 지지한다." "내전이여 만세! 노동자와 붉은 군대……………를 위한 내전, 반혁명에 대한 직접적이고 무자비한 투쟁을 위한 내전.
레닌은 내전을 대비하고 있었고, 어쩌면 자기 당의 세력 기반을 세우기 위한 기회로 여기면서 환호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충돌의 결과는 너무뻔했다. 그것은 바로 나라 전체를 ‘혁명 지지세력‘과 ‘반혁명 지지세력‘으로 양극화하는 것이었다. 또한 국가의 군사력과 정치력을 신장시키는 것이자, 반체제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테러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레닌은이 모든 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통치의 승리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보았다. 레닌은 파리코뮌의 실패의 원인은 내전 개시에 대한 코뮌 지도자들의실패였다고 자주 말했다. - P165

백군의 대의에 대해 공감하는 역사가들은 자주 백군에 대한 방해물을낳았던 ‘객관적 요인들‘을 강조한다. 붉은 군대는 수적인 면에서 압도적이었다. 그들은 명망 높은 수도가 있는 중부 러시아의 광대한 지역을 지배했다. 그곳에는 석유 시설은 아니더라도 나라 전체의 기간산업 대부분몰려 있었고, 그들의 병력을 이 전선에서 저 전선으로 자유롭게 이동시킬 수 있게 해주는 철도망의 핵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 P178

백군은 여러 전선에 뿔뿔이 흩어져 작전을 통합하는 것이 어려웠으며, 그래서 군수품 공급의 상당부분을 연합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요인들이 작동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패배 근저에는 정책의 실패가 있었다. 백군은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정책을 만들 수도 없었고, 만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백군은 볼셰비키의 선전 선동에 버금가는 도구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붉은 깃발이나 붉은 별에 도전할 만한 그들 자신의어떤 정치적인 상징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 P179

볼세비키는 내전으로부터 다음의 것들을 물려받았다. 희생에 대한 숭배, 그들의 군사적 통치방식, ‘전선‘마다 끊임 - P183

없는 ‘전투‘와 ‘선전‘을 벌이는 방식, 외부의 적이든 내부의 적이든 도처에서 발견되는 혁명의 적에 대항해 끊임없이 싸워야 할 필요성에 대한강조, 농민들에 대한 볼셰비키의 불신. 그리고 노동의 군사화와 새로운사회의 창조자로서 국가를 보는 유토피아적 전망을 가진 계획경제의 원형을.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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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봄꽃이 피는데 언제나 봐도 좋다. 올해는 작년보다 빠르게 개화를 시작하여 벚꽃도 거의 반 이상이 폈다.
도심에 있으면 아무래도 삭막한데 이 시즌이 오면 만개한 봄꽃들을 볼 수 있다는 즐거움에 매일이 설레는 것 같다.
어제는 특히 날이 좋았다. 이틀 연속 날이 흐려서 피어난 꽃을 찍어도 우중충해서 아쉬웠는데 어제는 날이 쨍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는 살짝 나쁨이었지만 봄 치고는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은 수준이었다.
점심 먹고 산책 나갔다 역시나 많은 인파에 놀란…!
사람들이 꽃을 배경으로 웃으며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니 ’봄은 봄이네.‘ 싶었다.
물가는 고달프고 전쟁 소식 때문에 암울하지만 그래도 봄꽃이 핀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잠시 행복 회로를 돌리게 하는 듯하다.
원래라면 벚꽃이 이번 주말이 피크일텐데 오늘 밤부터 비가 온다고 한다.
남은 봄 예쁜 풍경 많이 마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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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04-03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사한 벚꽃길 예뻐요 여긴 아직 벚꽃은 군데군데 펴있기만 하거든요 아직 개나리가 대세. 다음주에 활짝 필 것 같아요😄 뉴스는 온통 암울하지만 그래도 봄은 봄이라 산책 나가면 참 좋더라고요ㅠㅠ

거리의화가 2026-04-04 09:47   좋아요 0 | URL
올해도 개나리가 만개하는 모습은 제대로 못 보고 지나쳐버렸어요. 이제 좀 피나 했는데 어느새 지고 있더라구요^^; 벚꽃은 역시 화사하죠. 뉴스 보면 안 좋은 소식뿐이라 한숨만 나오는데 산책하면서 그나마 힐링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일상을 소중히 여겨야겠어요. 망고 님도 남은 봄 만끽하시기를 바랍니다^^

책읽는나무 2026-04-04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 만개했네요. 봄이 풍성합니다.^^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있어 점심 먹고 잠깐 휴식삼아 걷기 좋겠어요. 도시는 사람이 만든다고 하더니 자연과 인공물을 조화롭게 잘 만든 듯합니다.ㅋㅋㅋ
그곳도 주말에 비소식이 있군요. 이곳도 자고 일어났더니 비가 오고 있네요.
비 그치면 기온이 계속 올라가겠거니. 봄이 참 짧다. 그런 생각을 해마다 더 자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암튼 화가 님도 짧은 봄 어여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거리의화가 2026-04-04 09:50   좋아요 1 | URL
이제 정말 봄이죠^^ 회사 근처에 산책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꽃피는 3, 4월이 되면 사람이 유독 몰리지만 그 또한 이 기간에만 볼 수 있는 광경이랍니다^^ 이곳은 비가 오긴 했는데 많이 내린 건 아니라서 다행히 꽃이 많이 날아가진 않을 것 같아요. 다만 바람이 변수지만ㅋㅋ 말씀처럼 봄은 정말 짧아요. 좋은 계절을 좀 더 길게 즐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제는 그것도 허락하지 않는 듯합니다ㅜㅜ 나무 님도 예쁜 풍경들 보며 행복한 일상 보내세요.

단발머리 2026-04-04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동네도 목요일, 금요일 화려하게 벚꽃 대잔치 중입니다. 저희는 상가에서 지하철역 가는 길에 쭈욱 피었거든요.
회사 근처의 산책로라니 너무 근사하네요. 이 정도면 거리의화가님을 위한 벚꽃 대잔치라고 해도 무방하겠어요~~~~
뉴스로 지친 마음을 꽃사진으로 달랩니다.

거리의화가 2026-04-05 18:25   좋아요 0 | URL
어제는 비오고 흐려서 밤산책을 하고 오늘은 날이 개었길래 낮산책을 했는데 제가 사는 동네도 이제 벚꽃이 절정이더라구요. 나무들이 쪼매나서 아쉽지만~ㅎㅎ 꽃보고 나무들이 푸르러지는 것을 보는 것이 요즘은 정말 힐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