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 출범 후에도 노동자의 죽음은 계속 되었다.

전 정권의 바통을 이어받아 신자유주의 정책을 잇고 법을 강조하며 노사관계의 갈등엔 손을 놓았다.
이는 노동운동을 더욱 위기로 몰고 갔다.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해고자이며 활동가였던 윤주형 씨는 2013년 1월 28일 자신의 집에서 죽음을 택했다. 박근혜 당선 이후 여섯 번째 노동자 죽음이었다.
그는 회사 측의 간교한 탄압 때문에 억울한 해고를 당했고, 다른 해고자들이 복직될 때에도 끝내 복직이 되지 않은 채 생활고에 시달렸다. - P137

윤주형 씨는 단순한 개인주의자나 운동 이탈자가 아니다. 그는 형제들의 단잠과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을 걱정하는 섬세한 존재다. 또한 여전히 탄압과 굴욕에 대해 "우리"의 회복을 생각하는 상처받은 자다. 하지만 그것조차 우선 외롭고 지친 자기 자신의 회복을 통해서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을 때" 가능하리라는 것이었다. - P141

유서 작성자는 "열사의 칭호"를 거부하고 다만 잊히고 싶다고 명시했다. 이는 어떤 관습적인 ‘열사’로서의 호명이나, 자신의 죽음에 대한 타자들의 의미화를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열사들이 의식한 방향과 반대의 길을 갔다. 개별자로의 소멸 또는 회귀의 의지로 집합적 주체성과 ‘순교’를 거부한 것이다. - P142

과거에는 노동자-열사의 정치학이 ‘주체의 구성’(또는 ‘계급의 형성’) 과정과 연동 촉진된 작용이었다면, ‘지금-여기’의 노동자들의 죽음은 ‘주체의 해체’ 또는 ‘주체 구성의 불가능성’과 더 깊이 연관된다. - P1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름다움이란 가치도 권력관계의 표현이라는 것에 동감했다.
웬디 브라운이 말했던 구절이 떠올랐는데 서구 정치는 남성 권력의 지배 체제 안에서 굴러온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아름다움은 보편적이거나 변함없는 것이 아닌데 우리는 아름다움에 목을 맨다.

과거 여성들이 집안 살림에서 벗어나 사회로 걸어나왔지만 그 대신 얼굴과 몸에 칼을 들이댄 것이다.

나오미 울프의 마지막 말처럼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려면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여성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돈과 권력과 기회를 누리고 법적으로 인정도 많이 받는데, 신체적으로는 해방되지 않았던 우리 할머니 세대보다 자부심을 느끼지 못한다. - P30

"아름다움"은 금본위제 같은 통화 체계다. 모든 경제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정치에 의해 결정되며, 현대 서양에서는 그것이 남성의 지배를 온존시키는 마지막 남은 가장 좋은 신념 체계다. 문화적으로 강요된 신체 기준에 따라 여성의 가치를 매겨 수직으로 줄을 세운다는 점에서 이는 권력관계의 표현이며, 이러한 권력관계 속에서 여성은 그동안 남성이 전용해온 자원을 놓고 싸워야 하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진다. - P34

아름다움의 신화를 정당화하는 역사적 생물학적 근거는 없다. 오늘날 아름다움의 신화가 여성을 제약하는 것은 권력구조와 경제, 문화가 여성에게 반격을 가할 필요에 의한 것이지 결코 그보다 숭고한 목적에서 온 것이 아니다. - P35

제약과 금기, 억압적인 법의 처벌, 종교적 명령, 임신과 출산의 노예화가 충분히 힘을 발휘하지 못하자, 대신 그것이 해방된 여성의 얼굴과 몸에 그 모든 것을 가했다. - P39

원래 철의 여인은 중세 독일의 고문 도구였다. 인체 형상의 관에 미소 짓는 젊고 사랑스러운 여성의 팔다리와 이목구비가 그려진 것인데, 불운한 희생자를 넣고 천천히 뚜껑을 닫으면 안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굶어죽거나 그 안에 박힌 쇠못에 찔려 죽었다. 여성을 가두거나 여성 스스로 갇히는 현대의 환각도 똑같이 엄격하고 무자비하며, 완곡하게 채색되어 있다. 오늘날 문화는 철의 여인의 이미지에 관심을 돌리면서 현실에 있는 여성의 얼굴과 몸을 검열한다. - P41

철의 여인이라는 환각과 나란히 또 다른 환각도 일어났다. 못생긴 페미니스트라는 캐리커처가 부활해 여성운동을 졸졸 따라다녔다. 이러한 캐리커처는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19세기에 페미니스트를 조롱하려고 만들어낸 것이다. - P42

한 세기 전에는 노라가 인형의 집에서 문을 박차고 나오고, 한 세대 전에는 여성이 온갖 기기로 가득 찬 소비자 천국인 고립된 가정에 등을 돌렸는데, 오늘날에는 여성이 갇혀 있어도 박차고 나올 문이 없다. 오늘날 맹위를 떨치는 아름다움의 반격은 여성을 육체적으로 파괴하고 심리적으로 고갈시킨다.
우리가 여성이라면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려면,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투표용지나 로비스트나 플래카드가 아니다. 바로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 새로운 시각이다. - P43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02-10 11: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철의 여인. 사진으로 봤는데 넘 끔찍했어요. 마녀 관련 책에서 다양한 도구들을 보면서 저 시대 성직자나 법률가들이 사이코나 변태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02-10 11:43   좋아요 3 | URL
저도 이 책 보고 이런 고문도구가 있다는 걸 찾아봤는데요 마녀사냥을 이렇게 잔혹하게 할 수 있구나 싶더군요 고문도구가 최근 들어서까지도 여전히 사용되었잖아요 예전 남영동 대공분실도 그렇고 일제의 잔혹 고문기구들도 동시 떠올랐네요ㅡㅡ

scott 2022-02-11 12: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문 도구 라뇨 ㅠ.ㅠ

美의 가치가 이런식의 학대와 차별로 이어졌다니 ㅠ.ㅠ

거리의화가 2022-02-11 12:44   좋아요 3 | URL
철의 여인 도구 사진으로 보니 사람 형상으로 하고 안에는 사방에 못들이ㅜㅜ 그 안에 들어갔을 사람 생각하니 너무 잔혹하고 끔찍하더라구요. 저렇게까지 해서 마녀사냥으로 몰고 가려는 그들의 몰염치함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신자유주의와 2000년대 이후 노동자의 죽음

민주화가 되었지만 경찰은 여전히 노동자 앞에서 폭력을 자행했다.
쟁의 사후에도 정권은 물론이고 법원, 검찰, 경찰은 기업의 구미에 맞게 흘러가고 노조와 노동자에 대한 극심한 탄압과 보복이 이어졌다.
손해배상청구라는 살인병기는 2000년대 이후 노동 억압의 극심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노무현 정부하에서 노동관계법은 개악되었으며, 부당노동행위와 부당해고 건수도 늘었다. 이는 이른바 "자유시장경제 모델의 조절양식"으로 이행하기 위한 시도가개별 사업장 단위에서 전개되면서 빚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노동‘에 대한 개별 기업의 자의적 행동과 전횡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에 노무현 정부는 방임하거나 노조탄압을 거들었다. 노동자 계급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고용불안과 유연화, 노동조합활동 억압에 저항했으나 강도 높은 탄압을 불러왔다. 그래서 마치 노태우 정권의 공안정국 시기의 대립 양상이 재현됐다. - P113

노무현은 자신의 집권이 곧 ‘민주화의 완성이라 여겼던듯하다. 그는 노동자들이 분신으로 죽어나가던 바로 그때,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라며 분신한 노동자들을 모욕했다. 심지어 화물연대 노동자의 분신 이후 가혹한노동 현실을 완화하겠다고 한 법무·노동 장관을 오히려 질책하기까지 했다. 한때 노동·인권 변호사였던 그의 이런 인식이 노동 현실의 악화에 크게 일조했다. 이는 노무현 자신을 배반하는것이었으며, 대통령선거 때 그를 지지한 노조와 시민사회를 공격하고 정권의 중요 지지기반을 스스로 허무는 자해적 행동이었다. 그리고 이는 노동조합 운동과 ‘노동‘이 ‘시민‘으로부터 멀어지고 약화되는 데 치명적으로 일조하는 일이었다. - P117

폭력과 냉전이데올로기를 동반한 야비한 수법의 전통적인 노조탄압이 수행되는 동시에, 업무방해·명예훼손등에 관한 법률이 새로운 노동탄압의 도구가 된다. 그러한 상황에 내몰린 노동운동가들은 해고나 구속을 당하며 고립된다. 그래서 결국 절망적이고 지난한 투쟁 끝에 죽음을 결심한다. - P118

2000년대 이후의 자본과 권력은 비교적 간접적이고 합법적인 노동통제 방법을 개발해냈다. 물론 그 또한 가혹하고도 일방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노동 유연성‘이라는 미명하에 정리해고와 노동 전반의 비정규직화를 정당화하면서 동시에, 쟁의와 파업에 나서거나 그에 준하는 집단행동을 한 노동자들을 업무방해죄와 손해배상소송 따위로 고소·고발하는 일이다. ‘노동 유연성‘의 증가가 사회안전망이나 기본적 노동인권의 확보와 연동되지 못했기에 해고는 치명적인 일이 되었고, 노조는 이에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21세기형 노동탄압의 기초로서, 노동자를 인간으로 살지 못하게끔 내모는 ‘합법적 수단들이다. 물론 그것은 ’노동계급뿐 아니라 거의 모든 시민과 ‘노동하는 사람을 위협해왔다. - P123

감히 노조와 노동자들은 이윤 실현이라는 지상(至上)의 승고하고 신성한 ‘영업‘을 방해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파업은 마치 패륜과 같은 짓이며, 대한민국 법원과 민법·노동관계법이 ‘불법‘을 자행한 자들에게 적절한 돈을 받아냄으로써손해를 벌충하게 하는 법과 제도가 완비돼 있다. 거기다 노조는경찰의 부상이나 보험사의 영업손실에 대한 민사 책임도 져야할지 모른다. 만에 하나 파업이 성공했다 하더라도 노동자들은월급을 압류당하고 평생 빚더미에 올라앉게 될 가능성이 있다. 노사 합의나 사회적 합의로 파업이나 해고 문제를 해결했다 해도 민사상의 청구는 별도의 문제로 간주될 수 있다. - P1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윤리로서의 민중주의’는 공동의 시공간에서 죽거나 또는 사는 타자들에 대한 연민의 감각과 관련된 것이며, 그래서 민중주의는 일종의 강력한 평등주의다. - P79

사회학자 김명희가 5.18을 소재로 연구했듯, 제대로 애도되지 못한 죽음은 트라우마로 내장되고 영혼을 찍어 누르는 억압이 되어, 알 수 없는 미래에 죽음충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광주항쟁은 모두에게 트라우마적 사건이었으되 오랫동안 매도당하고 억압당했다. 또한 광주의 죽음은 심각하게 모독당했다. - P83

반성하지 않는 삶. 반성하기 두려운 삶. 반성은 무섭다. 그래서
뻔뻔스럽다. 낯짝 두꺼워지는 소리….
아파하면서 살아갈 용기 없는 자, 부끄럽게 죽을 것.
살아감의 아픔을 함께할 자신 없는 자, 부끄러운 삶일 뿐 아니라
죄지음이다.
절망과 무기력.
이 땅의 없는 자, 억눌린 자, 부당하게 빼앗김의 방관, 덧보태어
함께 빼앗음의 죄.
(중략) - P87

제 길이 2만 학우 한 명 한 명에게 반미의식을 심어주고 정권
타도와 함께 힘썼으면 하는 마음에 과감히 떠납니다. 불감증의
시대라고 하는 지금 명지대 학우에 슬픔과 연민을 가지다 다시
제자리고 안주해 커피나 콜라를 마시는 2만 학우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해방의 코스모스-박승희 열사-추모문집’(2011) - P92

너희는 가슴에 불을 품고 싸워야 하리. 적들에 대한 증
오와 불타는 적개심으로 전선의 맨 앞에 나서서 투쟁해야 하리.
그 싸움이 네 혼자만이 아니라 2만 학우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고
하는, 함께 하는 싸움이어야 하리. 내 항상 너희와 함께하리니 힘
들고 괴롭더라도 나를 생각하며 힘차게 전진하라.
내 서랍에 코스모스씨가 있으니 2만 학우가 잘 다니는 곳에 심어
주라, 항상 함께하고 싶다. - P94

분단 내전 학살의 역사와 군부독재의 극악한 탄압은 운동에 참여한 학생 청년들의 부모에게 엄청난 공포심을 안겨주었다.
1980-1990년대 대학생의 부모들은 자식이 ‘의식화’되고 운동권에 참여할까 늘 전전긍긍했고, 대학생들은 기성체제와 가치에 물든 부모와 대립하거나 부모를 속이고 운동에 참여해야 했다. - P103

분명 그해 5월의 정념은 ‘죽음’이었으되 ‘그들/우리’ 또한 그 죽음의 사태-짐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나서야 그 죽음에 대해 사고하고 성찰하고 애도하게 되었다.
1991년 5월의 죽음들안, 1980년 이래의 죽음으로부터 이어진 것이며 동시에 한 시대의 종언이자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 P107

박혜정의 죄의식이나 박승희의 신념 같은 것은 ‘1980년대의 종언’과 함께 점점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민중주의도, 초월적 도덕도 마찬가지였다. 페터 슬로터다이크나 슬라보예 지젝의 말대로 ‘냉소적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학생 및 학생운동의 정치문화와 ‘사회’ 사이의 괴리는 더 이상 없게 되었다. 1990년대 말 이후 한국의 대학은 청년의 성소이거나 해방의 상상력이 꽃 피는 공간이 아니라, 가장 속화된, 대기업이나 공무원 입시 준비기관이 되기 시작했다. ‘각자도생’과 ‘무한경쟁’ 외의 다른 가치를 추구할 여지를 주지 않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 P1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살이 이 사회의 비참 또는 관계의 한계를 증거한다는 점을 당연히, 여전히 생각한다. 죽음이 아니라면 산 자들은 삶을 근본적으로 성찰해낼 방법이 별로 없는데, 죽음이 만연해 있어 무감해져가는 듯하다. - P6

거대한 패배는 역사의 거시적인 변화와 주체의 한계(또는 오류), 대중의 이반 같은 것들과 함께 온다. 또는 그렇게 반추된다. 그러나 실제로 현실에서 그 모든 것은, 패배는, 매우 느닷없이 닥쳐온 것 같았다. 그것이 남긴 의미를 되살려 패배 속에서도 무언가를 발견하려 누군가들은 애썼지만 설득력이 없었다. 그것은 확실한, 재앙 같은, 돌이킬 수 없는 패배였다. - P20

20대는 ‘삶/죽음’을 피상적으로만 느낄 뿐 사유하지는 못하는 것 아닐까, 그것은 그들의 삶을 이루는 젊은 몸뚱이와 마음 속 불길 때문이다. 그 사정은 스스로 죽은 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죽음’의 의미를 늙은이의 방법으로 찬찬히 숙고해보지 않은채 죽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들의 타나토스(죽음-본능)는 너무 뜨거운 에로스(삶-본능)가 순간 전화한 것이다. - P21

젊어 죽은 자들의 삶/죽음 자체를 재구성하고 그 비극을살펴보는 것은 윤리적이고 실존적인 작업이다. 그것은 어쩌면그렇게 젊어 죽은 자 자신도 알지 못하던 삶의 비의(悲意), 우리의 삶과 죽음 전체 또는 삶과 죽음의 변증법에 대한 것이다. 또한 ‘전체로서의 삶‘에 배어 있는 영성과 초월성을 생각해야 하는인간적 의무에 관계된 것이다. 익히 알려져 ‘열사‘라 불리는 이들뿐 아니라 때로 심지어 기타 열사들이라고 불린 그런 범칭(凡稱) 속에 개별의 삶/죽음을 가두지 않기 위한 것이다. 이른바 ’명문대생이 아니어서, 또는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해서 아예이름이 불리지도 못한 죽음들에 대해 말하고 쓴다는 것은 일종의 초혼(招魂)이며 애도다. - P26

나는 무덤가에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여기 거대한 공동묘지가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에 있는사이버 묘소다. 여기에는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세상을 떠난열사·희생자의 이름들과 삶/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수집·망라돼 있다. 대부분 청춘남녀인 그들의 꽃 같은 얼굴 사진도 있다. 이 사이버 무덤은 세계에서 드문, 가장 큰 정치적 공동묘지인지모른다. - P34

‘열사‘라는 요절한 사람의 도덕적 헤게모니는 살아남은자의 슬픔‘을 구성한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1980-1990년대 운동권의 집단적 심성을 가장 적절히 시화(詩化)하여 표현한키워드였다. 이 같은 집단심리적 과정이 곧 운동을 위한 윤리적동원의 기제로 오래 기능했다. 그리고 이는 한국 운동정치 특유의 ‘열사의 정치‘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진정성의 레짐과 정치가 이제 불가능해졌다는 주장이 맞다. 죽음의 권위와 도덕적 헤게모니가 모두 소실되어 과거의 것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 P39

자결‘이냐 ‘자살‘이냐 하는 양자 선택에서 어느 하나가 정답일 수 없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자결‘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은, ‘열사‘에 대해 ‘자살‘이라는 부정적 뉘앙스의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뭔가 불경하거나 무례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도 전태일 열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가리켜 ‘자살‘이라 하면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 P45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 조직에 속해 있지 않았으면서도민주화에 대한 뜨거운 열망으로 자기 목숨을 버린, 그야말로 ‘독립적이고 자생적인 사회적 죽음‘도 많았다는 것은 반드시 기억할 만하다. 말 그대로 무명(無名)‘인 이런 시민들에 의해 ‘민주화는 가능했을 것이다. - P46

열사의 죽음이라는 비극은 그것을 직접 목도하거나 (추)체험하는 자들에게 가장 극적인 도덕적 고양을 이루게 할 뿐 아니라, 아예 도덕적인 퇴로를 차단하는 공포와 숭고의 기획이다. - P55

전태일의 이름과 그 이야기가 계속 호출되고 만들어지는 이유는, 단지 전태일이 박정희 식 축적체제의 피해자이고 여전히 한국 사회가 약자에 대한 착취와 ‘근로기준’을 무시한 노동체제로써 ‘부’를 축적하며 희생자들을 만들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이 비판적으로 말하듯 전태일이 의례화된 ‘열사 정치’의 어떤 시조 같은 존재여서도 아니다. 전태일은 가장 낮은 바닥에서 일어난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저항자이며 실천가였다. 자신보다 더 여리고 힘든 타인을 늘 돕고자 했고, 친구들과 함께 조직을 만들어 국가와 지배에 저항했던 것이다. - P59

지금 우리 사회에는 ‘강성 노조가 이른바 국민경제와 노사관계에 해악을 끼쳐왔다는 선동의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비난은 아마 전노협과 민주노총으로 이어진 노동운동의 비타협성‘에 대한 비난의 맥락 안에 있는 것일 테다. 여기에는 보수언론은 물론 중간층적인 시민사회나 일부 지식인들도 동참해왔다. 최후(?)의 수단이어야 할 파업이 마치 민주노조운동의지표라도 되는 양 ‘투쟁 만능주의‘와 ‘비타협주의‘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며, 나아가 대중성의 상실‘과 노동자들 사이의 분열로 귀착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 P72

노조의 전투성은 "기업별 노조체계 속의 노동자들이 연대성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자연스럽고 또 의식적으로 추구해야 했던 것"이며, "민주노조운동은 바로 연대투쟁"이라는 자각도 포함한 것이었다. - P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