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ends #1 : Real Friends (Paperback) - 『진짜 친구』원서 Friends Series 1
섀넌 헤일 / First Second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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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친구는 없어.‘ 샤넌의 친구 찾기 여정을 보면서 너무 안쓰러웠다. 그리고 누구나 친구 찾기에 골몰하여 전부를 내보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가 되기도 한다. 나 스스로가 당당해져야 하는 것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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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2-07-02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구가 한 말이 떠오르네요. 친구란 존재는 파도와 같아서 쓩 오고 갑자기 쓩 가고 그런다며 사춘기 딸에게 넘 마음 상하지 말라고 한 말 ^^

거리의화가 2022-07-03 09:39   좋아요 0 | URL
맞아요 너무 애쓰면 역효과가 나는 것 같아요. 책에서도 샤넌이 너무 몰입한다 싶을 때가 있었어요. ‘이 친구 아니면 안돼’ 이런 것이요^^ 적당히 기대하는 것이 관계에서는 현명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희선 2022-07-03 0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영원한 친구는 없다, 슬프기도 한 말입니다 있으면 좋을 텐데... 어떻게 하면 오래오래 친구로 지낼지 그거라도 생각해야겠네요 그것도 쉽지 않은 거군요 사람 사이는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2-07-03 09:41   좋아요 1 | URL
저는 친구를 만든다는 것이 젤 어려운 듯 싶어요. 서로에게 진심인 친구라면 더더욱이요. 저는 얕은 관계만 많아서 깊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 참 어려워요.
 
회색인 최인훈 전집 2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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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과 구운몽에 이어 이 작품을 읽으니 최인훈은 한국 전후문학의 세태와 현실을 잘 반영하는 작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광장과 구운몽이 4.19혁명과 5.16쿠데타를 배경으로 씌여져 1960년대를 대표하는 문학이라고 한다면 회색인은 1958년과 1959년 사이가 배경이라 오히려 1950년대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책은 4.19 혁명 딱 직전의 상황을 그린다.


국문학도이자 소설을 쓰는 독고준의 하숙집으로 친구인 김학이 찾아온다. 학은 학술 동인지 『갇힌 세대』에 실린 준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준에게 동인회 가입을 권하지만 준은 스스로를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데올로기의 피해자로 여긴다. 학은 정치학도로서 사회변혁을 꿈꾸는 급진적 행동주의자인데 반해, 준은 사색적이며 관념적이며 사회의 변혁에도 회의적이며 소극적이다.


주인공 준은 패배주의에 젖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혁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은 그의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것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친구인 학은 여전히 혁명을 이야기한다. 준은 그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흘린다. 

고향인 북한을 그리워하지만 갈 수 있다고 해서 마음의 배고픔이 사라질까? 그의 배고픔은 상실이 아니라 마치 붙잡을 희망조차 생기지 않게 되버린 젊음을 잃어버린 늙은이 같다.


그는 벌써 오래전부터 자기의 몸속 어디선가 자라고 있는 식물의 지극히 은밀한 성장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그 식물의 형태를 눈으로 보지는 못했다. 만져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사람이 제 몸속에 자라는 암을 언젠가는 눈치를 채듯이 그도 속의 부스럼이 자라고 있는 기척을 알고 있었다. 그는 가끔 심란하게 스스로 의심해보기도 했다. 나는 정신병의 초기나 혹은 상당히 깊어진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런데 몸의 탈과는 달리 마음의 그것인 바에야 환자가 스스로를 진단하는 힘이 있는 동안에는 아직 그의 정신은 파멸까지에는 이르지 않은 것일 테지. 그리고 나는 파멸은 원치 않아. 그리고 아니, 나는 행복을 원한다. 다만 그 행복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는 것 뿐이다. - P37


폭격은 계속되었다. 폭탄이 떨어져 오는 그 쏴 소리와 쿵, 하는 지동 소리는 한결 더한 것 같았다. 준은 금방 까무러칠 듯한 정신 속에서 점점 심해가는 폭음과 그럴수록 그의 몸을 덮어누르는 따뜻한 살의 압력 속에서 허덕였다. 폭음, 더운 공기.

더운 뺨. 더운 살. 폭음. 갑자기 아주 가까이에서 땅이 울렸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웅성거렸다. 폭음. 또 한번 굴이 울렸다. 아우성 소리. 폭음, 살냄새··· - P62


우리에게는 단 한 가지 길만 허용되고 다른 길은 용납되지 않아. 요 먼저 어느 야당의 국회의원이 남북통일은 무력이 아니라 평화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지 않아? 그랬더니 어떻게 됐어? 국시를 어겼다, 용공容共이다, 괴뢰들에게 동조한다고 야단이더군. 앵무새처럼 한 가지 말만 하라. 이것이 정부의 요구야. 인생과 정치를 좀 다원적으로 보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터부에 속해. - P94


준의 상황은 아마 그 시기를 살아낸 사람이라면 전부 같지는 않더라도 경험해봤음직한 일일 것이다. 

일부는 북한에 다른 일부는 남한에 흩어져 살게 된 가족의 상황, 끊임없이 의심을 받으며 사상 검증을 해야만 하는 현실, 어느 곳에도 귀속되지 못하고 방황하는 마음이 소설 속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같은 하늘 아래 시작된 전쟁이란 상황은 가족의 목숨조차 보장할 수 없는 비극의 장소였다.

하지만 전쟁의 폭격과 화마 속에서도 삶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여줄 때는 희망도 엿볼 수 있었다.

정전 후 남북한 국민들은 재건이라는 이름 아래 단결을 요구받았다. 

4.19 이전 남한의 젊은이들은 '(봇물처럼 들어온) 미국 문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하는 이도 있었던 반면 '우린 무엇을 해도 안돼' 라며 자조하는 이도 있었다. 

이후 혁명이 일어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해방을 가져다주지는 못했음을 알고 있다.

우리는 정치와 사상으로부터 그 후로도 몇 십년간 구속받는 세월을 보냈으니 말이다.

결과론적으로는 그렇게 되었지만 소설 속 인물들이 고뇌하며 자아비판을 하거나 세태를 풍자하며 토론을 벌일 때는 당시의 젊은 지식인들을 떠올리게 되어 흐뭇했다. 세상을 바꾸지 못했어도 괜찮다. 그들은 그 시기를 충분히 살아내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현대 한국인이 방황하고 자신이 없는 것은 어떤 ‘연속‘의 체계 속에 자기를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P126


인생의 두 가지 길. 투쟁과 체념 사이의 조화를 얻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의 생활. 격식도 없고 믿음도 없는 시대. 도시에 나가 소란한 장바닥에서 부대끼다가 고향에 돌아오면 모든 것이 작아 보이고 무지스러워 보이는 그러한 마음. 그것을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이겨내는 길은 한두 가지에 손을 대는 것으로써는 되지 않는다. 갑이 을과 얽히고 을이 병과 얽히고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이 얽혀 있으므로 그 속에서 사는 어떤 개인이 아무리 절박한 위기를 느낀다 해도 일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신경만 갉아먹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세상은 저 갈 데로 간다. - P163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사건이라면 1959년 2.4파동이다. 2.4파동은 자유당 정권이 1958년 12월 24일 국회에서 야당의원들을 폭력으로 몰아내고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여러 법안들을 통과시킨 일련의 정치사건으로 '보안법 파동'으로 불린다. 1956년 이승만이 당선되었으나, 진보당의 조봉암이 2백만 표를 얻은 것은 자유당 정권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결국 1958년 1월 12일 진보당의 조봉암 및 간부들을 체포하고 정당 등록 취소로 이어졌다. '보안법 파동'은 자유당이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예산안 등 10개 법안 27개의 의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 사건은 결국 1960년 선거에 영향을 주었고 4.19혁명으로 이어지게 된다.


1959년은 이른바 2.4 파동의 떠들썩한 소문을 안고 시작되었다.크리스마스이브에 한 무리의 무인들이 국회에 나타나서 눈부신 활약을 한 이 사건은 분명히 한국의 정치사에 길이 남을 만한 큰일임에는 틀림없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2천만 국민이 모두 다 이일에 비분강개해서 인심이 흉흉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고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신정은 도시에서 여전히 축하되었으며, 여전히 새해의 태양(조금도 다르지 않은 싱싱한)은 솟아올랐고, 사람들은 열심히 사랑을 하고, 사무실에 나갔다. - P175


혁명은 사상과 엘리트와 대중의 삼중주라고 할 수 있어. 이 셋 가운데 어느 하나가 빠져도 혁명은 성공하기 어려워. - P208


준에게 김순임과 이유정이라는 여자가 있다. 김순임은 기독교 전도를 하려 한다. 이유정은 서양화를 전공한 유학파다. 둘은 배경도 성격도 다른데 준에게도 마찬가지다. 준은 둘 사이에서 마음이 갈팡질팡한다. 누구를 선택한다는 것이 마치 그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 같이 여겨졌다. (마지막에 누구를 선택했는지는 직접 읽어보시길.)


비 내리는 어느 여름날 저녁, 친구 김학이 준을 찾아온다. 두 사람은 함께 술을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김학은 준을 또 다시 설득하려 하지만 준은 끝내 거부한다.


누가 앞설지 뉘라서 알리오. 앞서지 않아도 좋다. 내가 안 하면 그만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누워 있다. 나는 뛰지 않는다. 나는 농촌계몽도 안 하고 사회 조사도 안 한다. 여울이 망하는 것보다 내가 망하는 것이 더 아프니까. 살여울이 망하는 것은 너도 망하는것이다? 그렇지 않다. 나는 망할망정 살여울의 주민은 망하지 않는다. 적어도 앞으로 올 세계에서는 그리고 살여울은 망하지도않을 것이다. 김학이 같은 사람들이 한사코 지킬 테니까. 나의 무대는 그 다음이다. 나는 회피하는 것인가. 그렇다. 회피하는 것이다. 정치의 악을 ‘에고의 사랑‘으로 해결해보겠다는 생각을 나는거부한다. - P289


"자네가 말하는 혁명이란 뜻있는 분들이 모여서 당파를 만들고 폭력으로 정권을 인수한다는 것이겠지? 

"학은 웃으며,

"그게 혁명이잖아?"

"그러니까 싫어. 이것 봐. 혁명은 실천하는 거 아니야? 지금 당장에 민주주의를 대신할 새 신화란 걸 생각할 수 있나? 없단 말야. 그렇다면 그건 혁명이 아니라 강제적인 정권 교체, 즉 사람을 바꾸는 것밖에 안 되는 건데, 난 새 신앙을 제시하지 않는 사람의 교체는 위험스런 일이라고 봐. 이 자네 글에 있는 상황과는 달라. 자네 말처럼 상해의 권위를 장한다는 신화적인 후광이 있는 인물이나 집단인 경우라면 몰라도 지금 우리 사회에 어디 그런 인물이나 집단이 남아있나? 어느 날 이천만 민중이 홀연 인간적 모욕을 실감하고 일제히 폭동을 일으킨다면 그땐 나도 그 대열 속에 있을 거야." - P371


나는 당시를 직접 겪어내지 못했지만 책이나 1차, 2차 사료들을 통해서 간접 경험해왔다.

1960년대보다는 1940년대와 1950년대 관련 문헌들을 많이 읽어서인지 회색인이 상대적으로 더 잘 읽혔고 공감이 많이 갔다.

경험한 만큼 보인다고 해야겠지. 나는 준과 학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갇힌 세대였지만 그들은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했고 미래를 꿈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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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7-01 1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친척 모임에 할 수 없이 나간 적 있었는데요. 그곳에서 나이 지긋하게 잡수신 이종사촌 오빠가 우리 남매들 앞에서 자주 참석하지 않는다고 꼰대 비슷하게 연설을 하시는데 대화 속에 얼핏 자신은 최인훈 작가를 좋아한다고 맥락없이 얘기를 하셨던 적 있었어요^^
그 유명한 광장 읽어 보려고 구입도 해뒀었는데...^^
광장이랑 이 책도 꼭 한 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근현대사를 잘 몰라 얼마만큼 공감하고 읽을 수 있을까? 늘 제쳐두게 되더라구요. 화가님의 이런 리뷰들은 늘 자극 받게 되는 좋은 글입니다^^

거리의화가 2022-07-01 13:09   좋아요 1 | URL
어르신뻘 되는 분들에게 최인훈 작가의 글은 더 가까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걸 기억하신 나무님 최고입니다!
역사를 알면 읽는 맛이 더 생기겠지만 소설은 문장 자체만으로 몰입을 주는 것이 있잖아요. 최인훈 작가는 어쨌든 글을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칭찬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무님 7월 활기차게 시작하셨길!ㅎㅎㅎ

scott 2022-07-02 0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인호의 작품은 시대를 넘어 세련됨이 느껴져요
주인공들의 이름이나 생각 말투 등이 !ㅎㅎ

이미 고딩때 주요 상 수상하고
대딩 이년때 이름 날린 소설가가 된!

말년에 혀 암 투병 하면서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모습이 떠오르네요
종이만 보며 가족에게 소홀 했다고,,,

거리의화가 2022-07-02 09:00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문장이 고급스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름이 있는 작가란 게 이런거구나 싶습니다ㅎㅎ 아주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내다니 멋지고 당대를 넘어서 지금까지 읽힐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는 게 참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작가 등 예술가들이 아무래도 가족들에게 잘하는 사람이 많이는 없는 것 같아요. 예술에는 매진한다해도 일상은 내팽개치는 경우도 많고요~^^

희선 2022-07-03 02: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기 나오는 시대가 지나고 혁명이 일어나도 세상이 아주 좋아지지는 않았군요 그래도 그때 사람은 나름대로 살았겠지요 그런 시대에도 사람은 살아가네요 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다르지 않았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07-03 10:07   좋아요 1 | URL
네 이후 바로 4.19혁명이 일어나서 세상이 바뀌나 했지만 박정희가 집권하면서 암울한 시기가 시작되었죠. 물리적인 힘에 의한 것 뿐만 아니라 사상에 대한 폭압, 반공주의를 끊임없이 주입시키며 국민들을 피폐하게 만듭니다ㅜㅜ
 
여기, 아르테미시아 - 최초의 여성주의 화가
메리 D. 개러드 지음, 박찬원 옮김 / 아트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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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아르테미시아> 라는 제목을 보고 아르테미시아라는 화가를 이 시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등의 의미로 정한걸까 짐작했었다. 하지만 이는 그녀의 묘비명이라고 한다. 알고 나니 내가 생각했던 이유보다 제목이 잘 선정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르테미시아 하면 으레 떠올리는 대표작이 있다. <유디트> 시리즈. 나는 그 중에서도《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라는 작품을 보고 어딘가 낯선 느낌이 있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우피치 미술관>에 있다. 벌써 10여년 전 일이지만 이탈리아에 여행을 갔을 때 우피치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봤던 것이다. 수면 위에 잠자고 있다가 기억이 떠오른 것. 우피치 미술관에서 유명한 작품은 사실 보티첼리의 <봄>이나 카라바조의 그림들, 라파엘로의 <성모 승천> 등이지만 나는 아르테미시아의《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를 보고 당시에도 강렬한 느낌을 받아서 기억 속에 박혔었던 것 같다. 심지어 내가 그 때 한국어판 도록을 샀었는데 확인해보니 그곳에도 이 작품이 들어가 있어 반가웠다. 이건 마치 운명이랄까. 소름의 연속이었다.



이 책에는 아르테미시아 개인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그녀의 이야기만 담겨져 있지 않고 당시의 환경에서 활동한 다양한 작가들과 화가들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시기별로 정리되어 있어서 흐름을 쫓아가다 보면 마치 당시를 여행하듯 탐사하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다양한 여성 지식인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당시의 환경 속에서 남성 지식인들에 대항하여 어떤 목소리를 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아르테미시아는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활동하였다. 따라서 당시의 역사와 예술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라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다만 외국인 이름들이 줄기차게 나오는지라 너무 그 이름에 의식하다보면 힘들 수 있으니 적당히 넘어가는 센스를 발휘하기를 권고한다.


이쯤에서 그녀의 개인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지. 그녀는 아버지의 동료로부터 그림을 도와주다가 성폭행을 당하고 재판정에서 자신이 당했던 수치를 밝혀야 했다. 아버지의 동료라는 작자도 열받지만 나는 아버지란 사람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딸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1620년 이후에 아버지와 말도 섞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둘은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달랐던 게 분명한 듯하다. 


그러나 얼마 전 <완전한 이름>을 읽으면서 생각한 바가 있었다. 사람들이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의 서사에 함몰되어 그녀의 작품에 정작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맞는 이야기다. 그녀는 예술가이자 화가이다. 개인사가 극적이라고 해서 그것에 주목하다보면 작품은 상대적으로 뒷전이 될 수도 있다. 이제는 정말 그녀의 개인사보다는 작품으로  평가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책에는 다양한 그녀의 그림들을 만날 수가 있다. 직접 보고 오롯이 느껴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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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6-27 22: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그녀의 그림 너무 훌륭한데 그녀의 삶의 서사에만 집중하고, 또 <유디트>만 떠올리는 것 같아요.
저도 갖고 있는 책이예요!

거리의화가 2022-06-27 21:49   좋아요 3 | URL
네 맞습니다. 이야기보다는 예술가니까 그의 작품으로 평가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다양한 작품이 많으니 좀 더 그것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 책 역시 좋았습니다~ 그녀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도 보여주고 또 당시의 사회상도 알려주어서 좋았습니다^^

희선 2022-06-28 03: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르테미시아 몰랐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밑에 그림 다른 데서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고도 잊어버렸겠지요 아르테미시아를 말하는 책이 이게 처음은 아닐 텐데... 한번 보고 잊어버리면 다른 걸로 만나도 괜찮겠지요 거리의화가 님은 저 그림을 실제 보셨군요 보고 기억에 남았다니... 그 사람 삶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남긴 그림이나 글도 중요하겠지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06-28 07:45   좋아요 4 | URL
아마 희선님도 한 번쯤은 본 그림일 수도 있을 겁니다. 실제로 본 그림을 책에서 만나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개인의 삶이 승화된 예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파랑 2022-06-28 06: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글에서 자주 보던 그림이군요~!! 역시 예술의 영감은 개인적 경험에서 오는건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화가님의 닉네임에 딱 어울리는 책이군요 ^^

거리의화가 2022-06-28 07:47   좋아요 4 | URL
ㅎㅎ 10년 전 그림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것이 신기합니다. 그만큼 강렬한 느낌이었던 거겠죠. 아르테미시아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고 이야기도 만날 수 있어 좋은 책이었습니다^^*

mini74 2022-06-28 13: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름 전문화가로서 운영도 잘 하신거 같아요. 저도 리뷰 남겨야 하는데 ㅎㅎ작품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만 하죠 ~

거리의화가 2022-06-28 16:08   좋아요 2 | URL
지난 번에 올리신 게 리뷰 겸 올리신 거 아니에요?ㅎㅎ 미니님 글 읽으면서 이 책 찜했던 기억이 나네요~^^ 유익했던 책이었습니다. 늦었지만 감사해요~
 
구술로 본 한국현대사와 군 현대한국구술사연구 총서 3
정용욱 외 지음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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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현대한국구술사연구사업단이 "한국현대사와 군"이라는 주제로 2009년부터 10년에 걸쳐 구술 채록을 한 것을 바탕으로 연구한 결과물이다. 100명이 넘는 군 관련 인물의 증언을 수집했고 933시간 분량의 동영상과 음성 파일, 녹취록 등의 결과물이 나왔다. 이 구술 자료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현대한국구술자료관의 아카이브를 통해 누구나 확인 가능하다.(mkoha.aks.ac.kr)

군은 한국현대사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에도 그동안 군의 활동에 대한 연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당 연구는 한국현대사의 또 하나의 자료로서의 기능과 군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위해 군 관련 인사들의 증언을 수집했다는 것에 의의를 지닌다. 다만 한계성도 있다. 구술한 군의 인사들이 군을 대표한다고 하기에는 인원의 수가 너무나 적고, 또 인사들 대부분이 고령의 나이(1920년대 생이 많음)인데다 사건이 발생하고 이미 많은 시간이 흐른 뒤이기 때문에 그 기억을 온전히 믿기에는 어렵다고 본다. 그럼에도 이 연구의 장점은 국방부에서 공식으로 내놓은 자료들과 비교할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같은 인물이라도 군 공식자료에서 이야기한 내용과 이 내용이 다른 경우가 있었다.

해방 후 살아남아 귀국한 학병들 중 일부는 군대를 만들려는 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미군정이 한국에 들어와 한국군 창설에 직접 참여할 때 학병들이 중심 역할을 했다. 한국군 창설 초기에 좌익 성향의 군인을 솎아내는 숙군 작업이 전개됐다. 과거 전력이 있는 인물이나 특정 인물에 대한 개별적인 감시가 이루어졌고 1947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것이 여순사건 이후 육군 정보국 주도 하에 전군 차원으로 확대되었다. 월남인들은 대부분 정치 사회적 동기보다는 연고 없는 낯선 땅에서의 삶과 생활고, 교육의 연장 등 개인적 동기이거나 본인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한국군에 가담했다. 월남인들은 대체로 분단 상황을 단기적인 것으로 보고 홀로 내려온 경우가 많았다. 곧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시간이 길어지자 먹고 살기 위해 군 입대를 하게 된 경우가 많았다. 미군은 한국군에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군대를 만들려고 시도했으며, 이 때 한국군 장교들이 선발을 거쳐 미국으로 유학을 가 교육을 받았다. 1965년 이후에는 서독으로 군사 유학을 가는 경우가 생겼다. 이후 군사유학을 미국으로 가느냐 서독으로 가느냐에 따라 군인의 진급 및 정체성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의 '독자적 작전권'에 대한 미군과 한국군의 갈등이 첨예했으나 지휘권은 한국군이, 작전권은 미군이 갖는 방식으로 결론이 났다. 이는 한국군의 군수물자의 보급과 수당 등을 사실상 미군에 의존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애초부터 한미동맹 관계의 틀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한진, 현대 등의 한국기업은 베트남특수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끌어 모았다. 한진과 미군은 서로 용역을 제공하고 대가를 지불받는 관계였는데 한진이 수행하는 용역제공에는 미군과 한국군의 맹호부대에게 미군으로부터 받은 물자를 수송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맹호부대는 한진이 물자를 수송하는 과정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969년 말부터 베트남에 주둔하던 미군이 부분 철수하고 군비절감정책이 추진되었는데 이 때부터 한국 기업들도 나누어 철수하였다. 베트남전에서 비정규전이라는 특성상 우호적 대민관계 유지가 중요했고 한국군은 특수교육대를 통해 전투 기술과 더불어 대민 관계 관련 교육을 실시했다. 그러나 실제 교육 내용은 빈약하여 대다수 한국군은 베트남 현지 문화와 습속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로 베트남에 도착했다. 베트남에서 한국군은 구호사업, 건설사업, 의료사업, 농경지원, 자조사업 등에 주력하여 필요한 물자와 자금을 미군에게 지급받아 사업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한국군의 민사작전은 긍정적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도난사건, 교통사고, 살인, 성범죄 등의 사건에 연루되며 베트남의 민간사회와 충돌했다.

하나회는 비밀 사조직으로 관련 인물들이 육군본부 인사과의 주요 보직을 차지하면서 군내 인사권을 장악했고, 주로 선후배나 동기들과의 관계에 따라 형성된 인맥이었다. 이들은 고위층이나 재벌로부터 활동비를 받기도 했고 하나회 선발은 은밀하게 이루어져서 동기들 간에도 알 수 없는 구조였다. 하나회가 세간에 알려진 것은 1973년 '윤필용 사건'이다. 수도경비사령관 윤필용이 술자리에서 이후락에게 "각하의 후계자는 형님이십니다"라고 말한 것이 발단이 되어 체포되었고 윤필용이 하나회의 후원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하나회 이름이 거론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윤필용과 그 부하들이 쿠데타 혐의로 군법회의에 넘겨졌으나 전두환과 노태우 등은 살아남아 12.12 사건을 넘어 신군부의 주체가 되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박정희 정권의 자주국방을 실현시키기 위한 핵심기관이었다. 70년대 초에는 모방에 가까웠고 70년대 중반 이후가 되어서야 자체기술개발과 무기개발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 이후가 되면 미국이 한국의 자주국방정책을 경계하여 자주국방정책은 적극적으로 추진될 수 없었다.

이 책을 통해서 한국군이 창설되는 과정과 한국전쟁 시기의 군의 역할, 베트남 전쟁에서의 한국군의 모습, 한국군이 정권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군에 대한 시각이다. 해방 이후 극렬한 좌우 대립에서 소련군과 미군이 인민군과 국군에 미친 영향을 느낄 수 있다. 장우주 같은 인물의 발언은 뼛속같이 친미파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해못할 바는 아니라고 본다. 배고픈 와중에 미군이 건넨 초콜릿 하나에 넘어가듯이. 어쨌든 미군은 여전히 한국군에 미친 영향이 너무나 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미군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이후 베트남전에서 국군이 행한 일들은 불편하고 눈살이 찌뿌려질 수 밖에 없다. 군은 여전히 작전 수행으로 행한 일이라고 명명하지만 그것이 감춘다고 감추어질 일인가. 여러 증언을 통해서 이미 상당 부분이 수면 위로 올라와 있는 상태인데 말이다. 진정한 사과와 보상이 필요하지 않을지.
또한 하나회와 윤필용 사건에 대해서는 이름만 들어보고 제대로 사건에 대한 전개, 이면을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또 자세한 이야기를 확인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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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6-27 09: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나회가 이렇게 시작된거군요. 정말 잘 읽었어요 화가님 ~~

거리의화가 2022-06-27 09:30   좋아요 2 | URL
네 미니님 저도 하나회 전두환 노태우 법정에 서면서 이름만 듣고~ 이면에 복잡한 사정이 많더군요. 하긴 비밀 사조직이었으니 누가 불지 않는 한 수면에 드러나지 못했겠죠^^

바람돌이 2022-06-27 12: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은 1차 자료가 되겠네요.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 정말 존경스러움요. 그걸 읽어내는 화가님도 존경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2-06-27 13:03   좋아요 3 | URL
네 맞습니다. 10년 동안의 작업이라니요. 녹취를 하고 그걸 정리하면서 발췌하고 자료 조사도 병행해야하니 얼마나 어려웠을지. 연구자들의 녹과 공으로 저는 자리에 앉아 편하게 읽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읽어주는 독자가 있어야 이런 작업이 지속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존경은 그분들께!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2-06-27 19: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서독으로 간 이들의 후예가
훗날 독사파가 되지 않았나
추정해 봅니다.

일본군 내의 고질적 병폐인
파벌다툼이라는 악습을 유
산으로 건네 받은 게 큰 문
제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6-27 21:46   좋아요 0 | URL
독사파라고 하셔서 잠시 웃음이...^^;
저는 일본군의 악습과 잔재 중에서 받은 가장 큰 문제가 군기와 상명하복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파벌 다툼도 있지요~ 이 때문에 현재 정치가 이리도 난투극을 벌이는 걸까요-_-;

그레이스 2022-06-27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정희, 하나회, 소설 무기의 그늘 ... 여러 비화들이 막 생각나네요
저도 잘 읽었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6-27 21:47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뿌리 깊은 군의 개입은 우리 한국 현대정치와 뗄레야 뗄수가 없더군요. 하필 전쟁이 연이어 일어났고 세계는 냉전이었으니 더욱 개입하기 좋은 조건이긴 했던 것 같습니다.
 
[eBook] 프랑켄슈타인 - 세계문학전집 094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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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아, 내게 입힌 이 상처를 끝내 후회하고야 말 것이다.'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사람의 시체로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킨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피조물의 모습을 본 빅토르는 경악하고 도망친다. 괴물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지만 인간들은 그의 모습을 흉측하게 바라보고 혐오감을 표출할 뿐이다. 그렇게 그는 방황하면서 떠밀려 간 어느 집 축사에 몸을 숨긴다. 여기서 한 가족을 만나고 그들의 생활을 통해 무지에서 언어를 익히고 나아가 책을 읽는 능력까지 키운다. 또 따뜻한 마음을 품은 이들이기에 자신을 받아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된다. 하지만 그들도 이전에 사람들이 자신을 봤던 것과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일 뿐이었고 괴물은 충격을 받고 분노한다. 이 분노는 자신을 만든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복수로 변하고 빅토르의 가족들을 망가뜨릴 계획을 세운다. 빅토르를 만나 자신과 같은 이성의 형체를 만들어달라고 하지만 그는 그 요구를 거절한다. 마침내 빅토르가 낳은 괴물은 자신의 계획을 결행한다.

괴물은 자신이 원해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을 창조한 주인에게도 거부 당하고 인간 세계에 비친 그의 모습은 이질적이다는 이유로 매도당한다.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받아줄 친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단 한명이라도 그의 마음을 받아주는 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가 건 기대와 희망은 절망으로 변했다. 이는 지금까지 수많은 역사가 증명했듯 인종이 다르다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그것이 폭력의 빌미가 되는 인간 세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괴물이 우연히 얻게 된 책들을 읽으면서 지력을 키워나가는 모습은 교육의 순기능을 떠오르게 한다. 아무 것도 모르던 사람도 말을 듣고 또 말이 쓰여진 언어를 익히고 나아가 그 언어가 쓰여진 문장을 읽어 나가는 행위는 결국 사고력을 키우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한국의 교육열은 아주 높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때 남한의 지역도, 북한의 지역도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학교를 열어 교육을 했다는 기록을 본 적이 있다. 교육에 대한 열망은 개인을 발전시키고 나아가 사회에 이득이 되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연구의 대상과 목적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만드는 지점도 있었다. 현대의 과학 기술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극단적인 예로 편리하다는 이유로만 어떤 물체가 만들어진다면 과연 그 연구는 옳은 것일까. 윤리와 도덕적 측면이 바탕에 있지 않으면 그것은 위험한 연구가 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는 지구라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도 필요한 생각으로 여겨진다. 인간만 홀로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지 않나. 공생을 생각하지 않고 지구를 마구잡이로 비틀어, 현재 자연과 동물은 비명을 지르는 사태가 발생되었다.

메리 셸리의 글발의 탁월성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했는데 곳곳에 등장하는 책의 인용문은 그녀가 얼마나 많은 글을 읽었고 독학했는지 여실히 증명해준다. 젊은 베르테르를 통해서 박탈과 우울을 이야기하고, 플루타르코스를 통해 고결한 사고를 이야기하는 등 말이다.

액자 구성이 눈에 띄었다. 이 글은 로버트 월턴이 세빌 부인에게 전하는 서한에서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그 내부에는 프랑켄슈타인과 가족들 간의 서한도 존재한다. 사실 이런 액자 구성의 글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프랑켄슈타인의 서사와 그것을 외부자가 바라보는 서사가 이 책에는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 교육, 자연, 인간. 이 책에는 다양한 키워드를 뽑아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어떤 시선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하나의 사건도 다른 경험으로 느낄 수 있는 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야말로 이상적인 목표였다. 내가 최초로 돌파해 어두운 세상에 폭포수처럼 빛이 흘러들게 만들었기에. 새로운 종(種)이 생겨나 조물주이자 존재의 근원인 나를 축복하리라. 헤아릴 수도 없는 행복하고 탁월한 본성들이 내 덕에 탄생하리라. 나만큼 자식의 감사를 받아 마땅한 아버지는 이 세상에 다시없으리라. 이런 생각들을 따라가던 나는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지금은 불가능해도) 시간이 지나면 겉보기에는 죽음으로 부패된 육신에도 새 생명을 줄 수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 어째서 인간은 짐승보다 훨씬 우월한 감수성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것일까? 그로 인해 훨씬 더 유약하고 의존적인 존재가 될 뿐인데. 우리의 욕망이 굶주림, 갈증, 그리고 성욕에 국한되었다면, 거의 완전한 자유를 만끽하는 존재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바람 한 줄기, 우연한 한 마디, 아니면 그 말로 전달되는 풍경 하나하나에 흔들리지 않는가.

나는 무엇이었던가? 내 탄생과 창조주에 대해 나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돈도, 친구도, 사유재산도 전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흉악하게 일그러진 추한 외모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사람과 같은 본성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보다 훨씬 더 민첩했고, 더 형편없는 식사를 먹고도 견딜 수 있었다. 지독한 열기와 추위를 견디고도 몸이 덜 상했다. 키는 사람보다 훨씬 더 컸다. 주위를 둘러봐도 나 같은 존재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나는 지상의 한 점 얼룩 같은 괴물일까? 모든 사람들이 도망치고, 모든 사람들이 내치는?

지구는 인간에게 위험하고 공포로 가득한 곳이 될지도 모른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영원히 이어질 후세에 이런 저주를 퍼부을 자격이 있는 것일까? 전에는 내가 창조한 존재의 궤변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 악마의 협박에 무너져 분별을 잃었다. 그러나 이제 처음으로 그 약속의 사악함이 내게 밀어닥치는 것이었다. 후대가 나를 종족의 역병과 같은 존재로 저주할 거라는 생각에 온몸이 떨렸다. 일신의 평안을 구하는 대가로 전 인류의 생존을 주저 없이 팔아버린 이기적인 인간으로.

우리 감정이란 얼마나 변덕스러우며, 이 참담한 불행의 극한에서도 끝내 놓지 못하는 목숨에 대한 애착이란 얼마나 기이한 것인가!

그들을 향한 내 사랑은 얼마나 괴롭고 괴로웠던가! 심지어 눈을 뜨고 있을 때도 내 온 마음을 사로잡던 그네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얼마나 필사적으로 매달렸으며,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으려 얼마나 애썼던가. 그런 순간 내 안에서 불타던 복수심은 심장 속에서 죽어버리고, 그 악마를 파괴하기 위한 행보는 내 영혼의 열렬한 갈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늘이 내린 사명, 나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힘의 기계적 충동 같았다.

내가 저지른 악행들은 억지로 견뎌야 했던 지긋지긋한 고독이 낳은 자식들이다. 그러니 동등한 존재와 함께 살게 된다면 미덕들도 당연히 표면으로 떠오를 것이다. 그때는 내가 지각 있는 존재의 애정을 느낄 것이고, 지금은 이렇게 소외되어 있지만 존재와 사건의 사슬과도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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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6-25 11: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한테 좋은 책은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것과, 어느 시대에든 인간에게 통용될 수 있는 보편성이 나타나 있는 책인데 프랑켄슈타인이 이 두가지를 주었어요.
특히 지금 시대를 이 책으로 고민할 수 있어 좋았어요 sf소설에서 요즘 많이 등장하는 인공반려인의 문제도 그렇고요.
김영하작가의 신작에서도 이 프랑켄슈타인이 연상되더라고요^^

거리의화가 2022-06-25 21:16   좋아요 3 | URL
네 페넬로페님 저도 배울 거리가 있는 것, 그것이 특수하지 않고 어느 시대나 장소에 통용될 수 있는 것이어야한다고 생각해요 프랑켄슈타인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한국 SF문학도 보편성을 다루면서 다양한 형태의 방식으로 이야깃거리를 던져주면 좋겠습니다.

미미 2022-06-25 11: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저는 비슷한 우려를 가지고 있는데요 그 영향력은 전인류적임에도 불구하고 윤리적문제에 대한 고민은 극소수의 과학자들에게만 맡겨진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최근 구글에서 내부고발이 나왔었는데 결국
‘어떻게‘는 없고 ‘혁신‘만
있는것 같아요. 게다가 발생되는 문제는 비공개로 처리하니
두려움만 키우는 꼴이죠ㅠ

거리의화가 2022-06-25 21:19   좋아요 2 | URL
미미님 말씀대로 기술이라는 것에 윤리나 도덕의 고려가 없다면 아마 이 세계는 파괴의 길로 나아가고 말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각하면 섬뜩하네요. 근대 이후 집약적 과학 기술의 발달이 이루어졌지만 얻은 것이 있기도 한 반면 많은 손실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인류가 고민해봐야 할 지점인 듯 합니다.

페크pek0501 2022-06-25 12: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잘 쓰셔서 이 책을 제가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 생각하게 만드시네요.
책을 읽으며 성장해 나가는 것 - 제가 좋아하는 지점입니다.
곳곳에 등장하는 인용문 - 그 인용문이 뭔지도 궁금해지는 책이네요.^^

거리의화가 2022-06-25 21:22   좋아요 4 | URL
앗 페크님 과한 칭찬이십니다^^; 저는 문학 읽는 것도 어렵지만 리뷰 쓰는 것은 더 어렵네요ㅠㅠ
성장이야말로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지요. 인용문은 너무 많아서. 워즈워스를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의 문장이 등장합니다. 직접 읽어보시면 더 감흥이 오실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2-06-27 19: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엔가 소설 <프랑켄
슈타인>을 느즈막이 만나게
되었는데, 그간 알고 있던 이미
지와 너무 달랐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영화
는 별루였지 싶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6-27 21:48   좋아요 2 | URL
영화도 있군요~ 뭐든 원작이 있는 영화는 원작이 더 나은 듯 싶습니다^^;

제목이 주는 강렬함보다는 내용이 주는 메시지가 다양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희선 2022-06-28 03: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생각하지 않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면 안 될 텐데, 만들었다면 책임을 져야 할 텐데 책임도 지지 않고 바로 버렸네요 그러니 괴물은 이름도 없고 그저 괴물이라 하는군요 사람이 편하게 살려고 만든 것 때문에 지구가 안 좋아졌네요 만들 때는 그걸 몰랐겠지요 사람은 그런 게 없으면 살기 어려우니...


희선

거리의화가 2022-06-28 07:40   좋아요 3 | URL
인간들의 욕심으로 지구에 재앙이 오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ㅠㅠ 괴물을 피하는 이들의 속내는 결국 자신과 같지 않은 존재를 내치고 싶은 욕망이겠죠. 편리함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더욱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