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족의 역사 - 변방의 민족에서 청 제국의 건설자가 되다
패멀라 카일 크로슬리 지음, 양휘웅 옮김 / 돌베개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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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은 오랜동안 조선에게 복잡한 감정을 갖게 하는 국가였다.
유학자의 나라를 자처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이민족의 집합체였던 청은 인정하기 싫은 존재였던 것이다.
조선인들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발생하고 나서도 그들을 인정하지 못했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에 인질로 다녀온 후에 보인 다른 반응과 행보는 왕실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봉림대군이 효종이 되었을 때 그는 북벌을 주장하기도 하는 등 여전히 지배층은 청을 하대하고 멸시하는 느낌이 강했다. 18세기까지 되면 유럽에까지 인식될 정도로 세계적으로 청의 영향력은 커지게 된다. 하지만 19세기 이후가 되면 청은 내란과 외세의 개입으로 안팎으로 고전하게 된다. 이는 조선의 미래이기도 했다.

만주족은 청나라를 구성했던 민족으로 곧잘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청나라는 다양한 민족 구성원이 존재했고 심지어 만주족의 비율은 청 말에 가면 소수가 될 정도로 낮았다.
물론 만주국은 1930년대 일본이 만주에 세운 정권의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책은 만주족의 근원이 어디인지 찾고 그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세밀히 기록한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몇 년전 구독하던 블로그를 통해서였다. 그 때 찜해놓았으나 잊고 있다가 작년에 생각나서 구입했다. 출간된지 몇 년전이라 혹시나 품절이 됐을까봐 걱정했는데 남아 있는 것이 천행이었다.

책의 내용은 만주족에 대한 오해를 걷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만주족과 몽골족은 다른 민족이지만 그들의 역사는 서로 얽혀 있다. 1600년대 이전까지 만주족으로 알려진 민족의 조상은 당시에 만주족으로 불리지 않았고 여진이라는 이름 등으로 불렸다. 동만주 지역의 몽골족은 타타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청조는 1600년대 중반에 만주족이 중국을 침략하여 명 제국을 멸망시키고 들어선 정복왕조였다. 만주족은 모순된 정체성을 가진 민족으로 평가되었다. 사실 전통적 만주족 문화나 정체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만주족의 문화와 정체성 모두 청 제국이 들어서면서 만들어졌다. 그들도 자신들을 자각하기 시작한 계기는 청이라는 국가가 성장하면서부터였다.
만주족은 그들만의 독특한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기(旗)'라는 조직이었다. 이는 청이 성립되기 이전부터 일부 조직되어 있었고 1924년까지도 유지되었다. '기' 명부에는 누르하치가 초기 추종자들의 가족구성원과 조상에 관해 기록이 되어 있었다. 기 구성원들은 지휘계급에 따라 조직되고, 교육의 기회를 제공되었으며, 부대에 임금과 보급품 토지 지급 등이 이루어졌다. 청 제국 아래에서 모든 만주족, 몽골족과 한군은 '기인'이라고 불렸다. 17세기에 정치적인 신분이었던 기인은 19세기까지 민족적 정체성이 되었다(P32~33).

만주족의 기원은 어떨까. 그들은 최초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의 섬에서 온 이주자들로 바다를 건너 북상하여 후기 구석기 시대 즈음 만주 지역에 도착했다. 대략 2,500년 전부터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있던 많은 이들이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만주에 거주하는 민족들을 정주 경제와 유목 경제로 구분하는 일은 결코 명확하지 않았다(P48). 일부는 수렵과 채집 등 유목 생활을 하기도 하고 다른 일부는 농경 생활을 하기도 하는 등의 생활을 겸했다. 우리가 잘 아는 부여와 발해가 이 지역 문화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제국이 되기 전 여진족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여러 민족과 어울리며 사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외부에서 부르던 이름들도 '골드족', '오로촌족', '오로크족'이었는데 자신들은 '나나이족'이라고 지칭했다.(나나이는 송화강의 지류를 가리킨다.)
1234년 금이 몽골족에게 멸망당한 후 여진족 중 일부는 한족에 동화되고 다른 일부는 만주 지역에서 그들만의 관습을 지키며 몽골로부터 작은 간섭을 받으며 생활했다. 원이 멸망한 후에도 여진족은 명과 조선과 계속 교류하였다. 1500년대 후반 건주여진과 조선 사이의 관계는 매우 좋지 않았는데 건주여진과의 충돌로 인해 조선 조정에서는 신충일을 누르하치의 성으로 파견한다. 신충일은 누르하치의 기 조직을 확인하고 조선으로 돌아온다.

누르하치은 말년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자신의 지지자들에 의해 칸khan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사후에 개정된 기록에서는 그를 항상 황제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누르하치는 대부분의 일생 동안 버일러라고 인식되었다. 버일러는 여진족의 종족 또는 연맹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용어이다(P107). 건주연맹의 지휘권은 오도리 여진의 족장이 가진 지휘권에서 기원했다. 오도리 여진의 지도자는 몽케 테무르였는데 그는 명조와 조선왕조 모두에 인정을 받았다. 여진족 일족의 구성원들은 12세기에 한자로는 '가고'로 표현되었고 만주족 이름으로는 '기오로'였다. 누르하치는 마침내 명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1619년 사르후에서 명의 첫 원정군을 격퇴하면서 명조 요동 행정수도인 심양을 차지한다. 누르하치는 여진족, 요동에 근거지를 둔 몽골족, 요동에 있던 일반 농부들을 모두 소중히 여겼고 그들을 자신의 정치조직 안으로 통합시키면서 팔기 체제 안으로 끊임없이 편입시켰다. 누르하치의 국가는 독점적인 경제권의 집행과 부의 통제를 기반으로 설립된 지역 정권이었다(P140).

홍타이지는 누르하치가 사망하고 난 뒤 수년간 일족을 교묘히 조종하면서 버일러들 중 칸으로 선출되었다. 1635년에서 1636년 사이 홍타이지는 칸이 다스리는 지역을 제국으로 변형시켰다. 여진족이라는 이름을 폐지하고 아이신 기오로 일족의 공식적인 역사를, 본질적으로 만주족의 역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확고히 정립했다(P148). 만주족은 만주 동부에 정착하면서 국호를 청으로 개정했다. 이 때 한군기인은 팔기제도 내에서 만주족과 몽골족의 수를 이미 초과한 상태였다. 홍타이지는 정복한 한족 관리들을 믿지 못하여 행정을 맡을 기인 계층을 양성하려고 했다. 이로 인해 만주어와 중국어로 응시할 수 있는 과거 제도를 시행했고 합격 할당제로 5(만주족):5(한족):2(몽골족) 비율을 고수했다. 1669년부터 엘리트 사이 균열이 일어나며 만주족과 몽골족 사이에서, 만주족과 한군기인 사이에서 일어났다. 

강희제 현엽은 부친과 달리 어려서부터 정치에 능력을 보이면서, 임기 동안 눈부신 치세를 이루었다. 몽골족은 팔기군에 편입되면서 몽고팔기가 되는데 그들은 만주팔기와 비견할 만한 조직으로 성장했다. 당시에도 중국 내에는 비(非)한족이 많았다. 요족, 장족, 묘족, 동족, 이족, 태족 등은 토착적 색을 가진 민족들이었던 만큼 한족 정권에 맞서 끊임없이 이주와 동화의 압박을 받아야 했다. 강희제는 티베트와 중앙아시아 지역과 몽골족의 전략적 결합을 경계하여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로 인해 티베트는 정치 독립권을 박탈당한다. 몽골 지역이 재편되면서 스텝지대의 몽골족은 청 황실의 귀족으로 편입되었다. 이들은 행정관 직위의 세습을 보장받았고, 혼인동맹을 통해 황족으로 편입될 수 있었다. 북만주를 둘러싼 러시아와의 갈등의 결과는 네르친스크 조약(1689)과 캬흐타 조약(1727)이었다. 양국은 만주 지역에서 두 나라 사이의 국경선을 확정하고 관세제도를 확립했다.

18세기 유럽에서는 중국 열풍이 불었다. 중화제국은 유럽의 중산층과 상류층이 높게 평가하는 물건들이 생산되는 원산지로 높게 평가받았다. 건륭제 시대 많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청에 와서 고문관, 의사, 조정의 건축설계자 겸 화가로 활동했으나 예수회 선교사들의 종교활동은 어느 순간 청 조정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1773년 영국 의회는 보스턴 차 사건이 발생한 북미를 안정시키고 영국 동인도 회사의 국내 영향력을 낮추고 아시아산 차 접촉을 통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무역 구조가 재편될 필요성을 느꼈다. 영국 정부는 매카트니 사절단을 청에 파견였으나 삼궤구고두 문제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채 런던으로 돌아간다. 이후 토머스 스톤턴 사절단이 파견되기도 했으나 그들의 임무는 마찬가지로 실패했다. 청과 영국 사이에 아편전쟁이 발발하고 1842년 남경조약을 맺으며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전쟁은 끝이 난다. 청이 남경조약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자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북경을 재침략하며 청에 대한 배상금을 늘렸다. 여기에 홍수전이 이끄는 태평군의 난까지 벌어지며 청조의 국고는 바닥나고 지배층의 무능과 부패까지 더해지며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이다.

중국에 살든 대만에 살든 이제 자신을 만주족으로 규정하기로 한 최근의 젊은 세대에 의해 만주족의 민족적 '정체성'이 다시 회복되었다. 20세기에 만주족이 겪은 고통은 많은 근대 소수 민족집단이 겪은 공동의 경험이다(P322).

이 책은 누르하치를 비롯한 광서제, 건륭제, 도광제, 자희태후, 푸이 등의 인물을 다면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 어떤 입장을 세워놓고 그것에 맞추려하다보면 인물이 평면적으로 그려지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은 인물을 평가할 수 있는 다양한 기록을 제시함으로써 독자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늘린다.
또한 짧지 않은 만주족의 역사를 대중들이 읽기에도 어렵지 않게 풀어냈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당연히 번역자의 공이 커 보인다. 흐름이 끊기지 않고 부드럽게 읽히는 역사 번역서를 자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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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7-11 23: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타타르 오도리 팔기군애 누르하치에. 이 모든것이 이렇게 연결되는군요. 그저 만주에 살았던 사람은 만주족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넘 잘 읽었어요 화가님 *^^*

거리의화가 2022-07-12 09:03   좋아요 2 | URL
네.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막연하다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저도 좀 단편적이고 넘겨짚듯이 만주족을 생각해왔었는데 그들의 뿌리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역사까지 담아놓아 만주족에 대한 거의 대부분의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었어요. 미니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2-07-12 0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만주 하면 거리의 화가님이군요~!! 타타르가 몽골인지 첨 알았습니다 ㅡㅡ 전 역사에 대해 아는게 없는데 이렇게 또 배우고 갑니다~!!

거리의화가 2022-07-12 09:39   좋아요 2 | URL
ㅋㅋㅋ 만주하면 저라뇨~ㅎㅎ 넘 띄우셨습니다;;;(그래도 감사하게 받아들일게요.) 최근에 만주 지역 관련하여 책을 여러 권 읽기는 했네요ㅎㅎㅎ
새파랑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희선 2022-07-13 0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주족은 만주에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여진족이라는 건 들어본 듯한데... 중국에도 소수 민족이 많이 살지만, 소수 민족으로 인정해주지 않기도 하네요 중국을 더 크게 만들고 싶어서 그런 거겠습니다 중국은 중화합중국(중화연방)이라고도 한다는 게 생각났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2-07-13 09:36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희선님.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사는 중국은 정작 종족을 갈라치기하고 있고 인권 문제도 심각하죠.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한데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서양사정 - 완역
후쿠자와 유키치 지음, 송경호 외 옮김 / 여문책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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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 유키치는 서양 사상을 받아들이면서 일본이 '문명개화'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는 일본 메이지시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국 내에서 평가를 받았고 조선의 개화파에도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다. 임오군란 이후 박영효와 김옥균을 필두로 한 개화당은 후쿠자와와 긴밀히 교류하였고 귀국해서는 신문을 발행하고 개혁을 주장하며 갑신정변을 일으키기도 한다. 유길준은 1881년 '조사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가 후쿠자와가 세운 게이오기주쿠에서 수학했다. 그가 지은 '서유견문'에는 일본이 서양 정치를 본받아야 하는 모습을 담은 조항을 통치의 근본으로 소개하였다.

후쿠자와는 평가가 갈리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가 일본 개화에 중요 역할을 한 지식인이었음에는 분명하다. 『서양사정』 초편은 후쿠자와 첫 저작임에도 당시에도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책이라고 한다. 원래는 『서양사정』을 두 편의 책으로 발간할 계획이었으나, 「초편」 발간 이후 서양 사회의 기본 원리를 담은 「외편」을 기획하면서 「초편」, 「외편」, 「2편二編」의 총 3책으로 구성되었다.

후쿠자와는 1860년에 미국에 다녀왔고 1862년부터 1년 동안 유럽사절단의 통역관으로 유럽을 시찰하고 돌아왔다. 「초편」은 그 때 작성한 일지와 유럽에서 수집한 자료, 막부가 소장하고 있던 참고 서양 서적에 기초하여 정리한 것으로 서양의 풍속과 아메리카, 네덜란드, 잉글랜드 각 나라별 역사, 정치, 군, 경제의 항목을 담았다. 「외편」은 버튼John Hill Button의 Political Economy for Use in Schools and Private Instruction(PE)를 읽고 새롭게 알게 된 서양 지식을 소개한 것으로 사회 경제, 정치 경제에 대한 여러 개념을 담고 있다. 「2편」은 「외편」에서 부족했던 개념을 블랙스톤William Blakstone의 글을 통해 보충하고 러시아, 프랑스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외편」에서 그가 주목했던 버튼은 19세기 중반 사람으로 자유주의자로 자유권을 바탕으로 자립한 인간들이 구성하는 경쟁 사회가 문명의 근간을 이룬다는 생각을 가졌던 인물이다. 또한 웨일랜드Francis Wayland의 『정치경제학의 요소Elements of Political Economy』에서는 정부의 직분을 좀 더 상술하기 위해 끌고 오기도 했다. 웨일랜드는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을 주장하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2편」의 블랙스톤은 18세기 영국 법률가이자 정치인으로 'right'라는 개념을 그의 사상을 통해 더 구체화하려고 했다.

이렇게 보면 후쿠자와가 주목했던 인물들의 공통점은 자유주의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증명하는 현장으로 18세기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19세기의 미국, 러시아 등에 서양인들이 주목했고 후쿠자와, 나아가 일본이 주목한 것이 이해가 된다.

이 책은 일차적으로 당대 유행하던 서양 서적을 번역한 책이다. 때문에 독창성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으나 후쿠자와는 서양 서적을 번역하여 일본에 소개하면서 일본이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 일본 근대 사회의 기본 토대가 될 이념들을 제시하는 작업을 했다는 면에서 가볍게 볼 수 없는 책이다. 실제로 이 책은 일본의 근대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나 주변국인 조선,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근대가 어떤 모습으로 형성될 것인지 보여준다는 의미도 있다.

내가 감히 생각하건대, 오직 해외의 학문(文學)과 기예(技藝)만을 강구할 뿐 각국의 정치풍속이 어떠한지를 자세히 알지 못한다면, 설령 그 학문과 기예는 얻었을지언정 그 경국의 근본은 살피지 않은 것이기에, 실용實用에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를 초래함도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본디 각국의 정치풍속을 살피기 위해서는 그 역사를 읽는 것만 한 것이 없다. 그러나 세상사람은 앞서 언급한 지리 이하의 여러 학문을 빨리 배우기만 원하기 때문에 역사를 읽는 자가 매우 드물다. 실로 학자의 결점이라 하겠다. - P23

후쿠자와 뿐 아니라 유길준도 주목했던 문명의 정치 6조란 무엇인지 확인해보자(P29~30).
제1조. 자주임의自主任意 사농공상 간에 조금도 구별을 두지 않으니 본디 문벌을 논하는 일 없고 조정의 지위를 가지고 사람을 경멸하지 않는다. 상하 귀천이 각각 그 소임을 얻어 조금도 타인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천품의 재능을 펼치게 하는 것을 취지로 한다.
제2조. 신교信敎 사람들이 귀의한 종교를 받들어 정부에서 이를 방해하지 않음을 말한다.
제3조. 기술과 학문을 장려해 새로운 발명의 길을 여는 것.
제4조. 학교를 세워 인재를 교육하는 것.
제5조. 보임안온保任安穩 정치가 일정해 변혁하지 않고 호령號令은 반드시 믿음이 있고 속임이 없으며 사람들은 국법에 의지해 편안히 산업을 경영함을 말한다.
제6조. 인민이 굶주림과 추위를 걱정하지 않게 하는 것.
-> 이는 비단 오늘날의 정치에서도 고려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조목들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의 자유와 인민의 구제에 대한 법이 눈에 띈다.

징세법, 국채, 지폐, 상인회사, 외교, 군사제도, 학문과 기술, 학교, 신문, 도서관, 병원, 구빈원(고아원), 농아원, 맹원, 정신병원, 특수학교, 박물관, 박람회, 증기기관, 증기선, 증기차, 전신기, 가스등 근대 사회에 필요한 정치와 경제, 군사, 외교법을 비롯해 다양한 문물과 제도를 담고 있다. 근대를 대표하는 박물관, 박람회, 증기기관/선/차, 전신기, 가스등의 산물은 근대를 상징하기도 하면서도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갈등의 씨앗을 뿌리내리게 만든 곳이기도 했다.

머리가 어느 정도 크고 나서부터 틈만 나면 박물관을 다니곤 했다. 어릴적 동물원을 들락날락했던 기억도 난다. 대부분 무료이거나 싼 값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샌가 때론 불편한 마음이 들었는데 이는 문명의 이기라는 명목 하에 도굴하거나 약탈해온 물건, 또는 자신들이 개발한 것이 최고라는 것을 경쟁하듯 전시하는 행태가 못마땅해졌기 때문이다. 1904년 세계 박람회에서는 세계 여러 인종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전시하기도 했다. 이의 의도는 분명하다. 인종에 따라 우수함과 열등함이 차이가 난다라는 것이다. 우수한 인종이 되기 위해서라면 다른 인종은 짓밟아도 된다는 발상은 끔찍하고 잔혹하기만 하다. 이는 인간의 편리에 따라 동물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동물원도 마찬가지다. 야생성을 억지로 잠재우고 순함을 길들이면서 인간의 패턴에 맞추는 작업은 동물에게 과연 행복일까 질문하게 된다. 인간만 편하자고 이런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제도와 문물이 증기기관이나 전신기를 제외하고는 더 나은 문물로 대체되었을 뿐 현대로 그대로 이어졌다. 오늘날을 볼 수 있는 것들은 산업혁명 이후를 기점으로 발전된 근대의 산물들이다.

세상의 문명개화에 대해서 다룬 부분을 살펴보자(P179~181).

야만의 세상에서 행해지는 자유란 것은 마치 사람이 굶어죽도록 내버려두는 자유고 힘으로 포학하게 제멋대로 하는 자유며 죄를 범하고도 벌을 받지 않는 자유다. 어찌 이를 진정한 자유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문명개화에 따라 법을 세우고 세상이 한결같이 이를 시행하고서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라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은 야만은 천연天然이고 문명은 인위人爲라고 말하지만, 필시 글자의 의미를 오해한 주장이다. 문명의 세상에서 행해지는 것 중에 하나라도 천연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다. 세상의 개화를 진전시키는 법칙을 세우면 그 법이 관대하지만 이를 위반하는 사람이 없고 각 사람이 힘에 제어당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제어당하는 것이 문명의 모양이다. - P179

문명의 세계 안에 있으면서도 교화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은 세상의 폐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폐해는 문명이 성대해짐에 따라 저절로 제거될 것이다. 또한 문명이 진보함에 따라 가난한 사람이 마음을 선동 당해 악한 일에 빠지거나 과거의 상공업이 산업을 일시에 잃고 곤궁해진 사람이 많아지는 일이 있으니, 문명의 폐해다. 이러한 폐해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세상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의 전반적 형세를 이해하게 하고 그 심력을 써서 새롭게 생계를 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 P181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일정한 법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는 것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 또 문명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는 것이 눈에 띈다. 문명으로 인한 폐해를 논한 것은 의외였다. 당시에도 문명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증기기관이 들어오면서 산업의 형태에 많은 변화가 생겼고 이에 따라 사양 산업은 생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국으로 생각하면 석탄 산업도 그런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때 한국의 일부를 이끌었던 석탄 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이제는 거의 남지 않았다. 그들은 강제로 쉬게 되거나 다른 산업으로 뛰어들어가야 했을 것이다.

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외교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각국 정부의 부정함과 강포함을 제어해 완전히 이를 그칠 수 있는 방책은 없으니, 이것이 곧 천하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 까닭이다. 문명한 나라에서는 두 사람 사이에 쟁론이 일어나서 다툰다 해도 정부의 법으로 이를 중지시키고 그 쟁론을 제어할 수 있다. 문명의 교화를 입은 자는 모두 전쟁이 흉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힘써서 이를 피하지만 외교에서는 그러지 못한다. - P206
오늘날은 문명개화한 행복한 나라라고 칭하는 것도 내일은 뼈를 늘어놓고 피를 흘리는 전쟁터가 될 수 있으니, 단지 상전벽해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문명의 가르침은 전쟁의 근원을 그치기에는 충분치 않지만 점차 그 참혹함을 완화할 수 있다. - P207
잉글랜드에서 무역의 법을 새롭게 바꿔 이를 관대하게 한 이래로 각국의 외교가 한층 친근함을 더했다. 그 나라들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잉글랜드와의 무역을 방해하게 되고 이에 따라 인민의 손해가 생길 수 있음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자가 많다.
각국이 전쟁하는 원인을 근절하는 것은 무역의 법을 관대하게 하는 데 있다고 한다. - P208

사람 간에도 다툼이 발생하는데 국가 간 싸움은 더 할 것이다. 문명국이라고 해도 자국의 이익은 최우선이기 때문에 오히려 갈등이나 전쟁의 상황이 발생할 소지는 더 커지는 것이다. 여기서는 정치적 외교보다 경제적 해법에 주목을 하여 무역의 법을 관대하게 함으로써 전쟁의 원인을 근절할 수 있다라고 해놓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해결법이 된다고 하기에는 부족해보인다. 물론 국가 간에 정치적 싸움보다는 결국 경제적 싸움이 더 우위를 차지할 수도 있지만. 그렁메도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은 분명하고 이를 위해서 외교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이는 오늘날에도 더없이 중요한 일이다.

정부의 종류로 우리가 흔히 아는 세 가지를 다루고 있다. 군주제, 입헌정치, 공화정치. 이 책에 등장하는 국가들 중 영국은 입헌정치를 선택했고, 프랑스와 러시아는 군주제, 미국은 공화정치를 선택했다. 오늘날도 여전히 세 가지의 정부 형태는 존재한다.

이 책은 서양 근대를 대표하는 여러 나라의 요약한 역사와 정치, 경제, 군사를 다루고 있다. 당시 서양을 주도하던 국가에 대해서 살펴봄으로써 이들이 걸어간 역사를 바라보는 후쿠자와 유키치와 일본 근대 지식인들의 모습, 나아가 조선의 개화 지식인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서양인이 바라본 문명은 어느 정도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있다고 여겨진다. 이 책을 통해서 이들이 따르고 싶었던 문명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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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07-13 03: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후쿠자와 유키치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이름인데 했습니다 일본 돈 만엔에 있는 사람 맞군요 이름만 듣고 뭘 한 사람인지 몰랐습니다 이때 한 일로 지폐에 얼굴이 나오기도 했군요 일본 게이오대학을 세우고 일영 사전도 처음 만들었다니... 이건 지금 찾아보고 조금 알았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2-07-13 09:38   좋아요 4 | URL
오 맞습니다 희선님^^ 저도 만엔 주인공이라는 거 쓰려고 했었는데 넣었다가 뺐거든요ㅋㅋ 일본 지폐에 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국민들 입장에서 위인(!)으로 숭앙받는 사람이구나 싶었습니다. 게이오대학의 전신을 세웠고 거기에 유길준을 비롯한 조선인 유학생들이 많이 입학했답니다. 일영 사전을 만든 것은 처음 알았네요. 덕분에 알아갑니다^^ㅎㅎㅎ

scott 2022-08-10 16: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이달의 당선 추카!
비 피해 없으신지요.
서울 무섭게(태어나서 첨으로 이런 비가 하늘에서)
쏟아졌네요

8월에도 열독 응원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2-08-10 16:33   좋아요 1 | URL
이틀동안 미친듯이 비가 내려서 이제 좀 그만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점심시간에 파란 하늘이 나왔었는데 다시 또 우중충해졌네요. 오늘 퇴근길은 제발 무사하길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콧님 감사해요~*^^*

그레이스 2022-08-10 16: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당선 축하드려요

거리의화가 2022-08-10 16:33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mini74 2022-08-10 16: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하며 읽었던 글입니다. 축하드려요 *^^*

거리의화가 2022-08-10 16:33   좋아요 2 | URL
미니님 언제나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2-08-10 17: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화가님~!! 축하드립니다~!!
거리의 화가가 아니라 미술관의 화가로 ^^

거리의화가 2022-08-10 17:20   좋아요 3 | URL
ㅎㅎㅎ 언제나 유쾌한 새파랑님의 댓글이 기분을 업시킵니다! 감사해요^^

미미 2022-08-10 1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어려워보이는 책들도 워낙 많이 읽으시고 리뷰까지 잘써주셔서 항상 감탄하고 있습니다. 당선 축하드려요^^*

거리의화가 2022-08-10 21:10   좋아요 2 | URL
부끄럽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써보도록 해야겠어요. 미미님도 당선 곱절로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2-08-10 2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님 글을 읽으며 ‘탈아입구‘를 추구한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지식인들과 개화기 구한말 지식인들에게 근대화란 어떤 의미였을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살기 위해 마지못한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세계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싶었던 것인가에 따라 근대화의 우선순위도 달라졌던 것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거리의화가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거리의화가 2022-08-11 08:52   좋아요 2 | URL
조선 말 근대 개화 지식인들에게 일본의 지식인들이 끼친 영향은 아주 컸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청일전쟁을 기점으로 일본의 근대화라는 키워드가 조선에 충격을 줬을 테고~ 물론 그 이유가 말씀하신 대로 자구지책일 수도 있고 또는 내가 이 기회에 출세를 해보겠다라는 심산도 있을 것 같습니다. 중인 계급이었던 역관이 통역에 대한 구인이 많아질 만큼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 이전과는 분명 달라진 점을 일본의 많은 서양 번역서 등을 통해서 받아들이고 깨우친 면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선두주자가 후쿠자와 유키치였을테고요.
겨울호랑이님 감사합니다.

희선 2022-08-11 0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 축하합니다 날이 바뀌었습니다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08-11 08:52   좋아요 1 | URL
희선님. 축하 인사 감사드립니다^^ 희선님도 당선을 축하드려요!

페넬로페 2022-08-11 01: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역사에 대해 깊게 탐구하는 독서를 하시는 화가님께 항상 감탄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8-11 08:53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페넬로페님 이관왕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thkang1001 2022-08-11 13: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거리의화가 2022-08-11 13:09   좋아요 1 | URL
thkang1001님 축하 인사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8-11 1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8-12 0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사는 이제 화가님께로!!
더 깊은 세계로 나아가는 화가님께로!!!
축하드립니다^^

거리의화가 2022-08-12 09:04   좋아요 1 | URL
나무님의 댓글이 저를 힘나게 합니다~ 애정 어린 댓글 감사드려요^^*

러블리땡 2022-08-12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거리의화가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ㅎㅎ 좋은 밤 되세요 ^^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민음사 탐구 시리즈 4
임소연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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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가 과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나는 컴퓨터공학과, 남녀 성비는 대략 좀 더 보탠다고 해도 8:2 정도였다. 남자 과 동기들은 우스갯소리로 입학한 여자들은 꽃이라며 추켜세웠다. 그런데 이는 놀랄 일이 아니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과학기술계의 성비 불균형 현상을 찾을 수 있다(P185)고 한다. 졸업 후 남자 동기들은 대부분 관련 일을 찾아 시작했는데 여자 동기들은 대부분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자 동기들은 나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5~6년이 지나고 10년 쯤 지나도 이 일을 하는 나를 보고 동기들은 모두 놀라워했다. 대학 졸업 후 과학기술인의 진로를 밟아 관리자 직책까지 올라가는 여성의 비율은 10.6퍼센트에 불과하다(P184).

내가 일하는 세계는 능력이 가장 중요한 분야라고 이야기들한다. 실력이 있으면 남자든 여자든 관계 없다고 말한다. 나조차도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작가는 실력만 있으면 여자든 남자든 누구라도 과학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과학자의 길을 단념하거나 힘겹게 과학자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못 본 체하는 말이다(P187)라고 말한다. 능력주의를 부르짖는 것은 과학기술계의 남녀 성비가 그렇게 꾸려진 것은 능력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편견에 갇혀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10년도 넘게 이 일을 하면서 실력으로 꿇리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왔다. 그런데 이 견고한 성비 불균형의 바닥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뛰어난 여자들이 과학기술계에 진입하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이 비율을 뒤집을 수 없다. 과학이 진정 변화하려면 잘하는 여학생이 아니라 평범한 여학생이 더 많이 필요하다(P190). 이는 내가 증인이다. 나는 뛰어난 사람도 아니고 그저 어떻게 하다 보니까 공학계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지금까지 일을 지속해서 하고 있다. 뛰어난 이들만 하라는 법 있나, 평범한 이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뛰어난 여자들 몇 명이 과학기술계를 바꿀 수 있을까? 작가의 말처럼 평범한 다수의 여자들이 필요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고 열어 젖혀야 견고하다고 믿는 이 과학기술계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페미니즘과 과학기술이 만나는 여러 곳을 소개한다. 성염색체, 뇌과학, 임신, 난자 냉동, 인공지능, 로봇, 진화론, 사이보그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이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소개해본다.

성별 간의 능력이 다르다는 주장은 뇌의 성차 연구를 사용하여 논리적으로 뒷받침되어 왔다. 여성의 뇌와 남성의 뇌의 크기는 다르니 능력의 차이도 다른 것 아니냐는 오래된 주장으로 이어져왔다. 하지만 예상할 수 있듯이 남성의 뇌가 여성의 뇌보다 대체로 크다는 것과 남성이 여성보다 더 똑똑하다는 주장은 빈약하다. 2020년 7월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발달 뇌 유전학자 아민 라즈나한 연구팀은 남녀 뇌의 차이를 해부학 관점에서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남성의 뇌는 시각과 기억력에 관련된 부위의 뇌가 더 컸고, 여성의 뇌는 의사 결정과 미각, 자기 조절 등과 관련된 부위가 더 컸다(P40). 특정 부위가 크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뇌를 가진 사람이 관련 기능을 더 많이 학습한 증거는 되지만 해당 기능이 우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작가는 성별, 국가 등에 따른 뇌의 차이보다 호르몬 활동성, 신체 크기, 직업 등 세부 항목을 만들어 뇌의 성차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들여다보자고 제안한다(P45). 성차로 구분하는 것은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를 새롭게 디자인하려면 '모자이크 뇌'라는 개념을 끌고 와야 한다. 실제 뇌는 남과 여가 구분되지 않고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되는 여러 특징이 중첩되며 혼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 나는 하는 행동도 모습도 남자 같아서 '선머슴' 또는 '톰보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어떤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별의 범주에 갇히게 하고 젠더 정체성을 고정하는 말은 어떤 사람에게든 폭력이 될 수 있다.

젠더라는 신화는 내가 가진 시간과 돈을 어디에 투입할 것인가,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 무엇을 내 인생의 중요한 가치로 둘 것인가 등 삶의 모든 순간에 개입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삶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이 신화는 지금껏 과학적인 방법론과 언어로 충분히 규명되지 못했다. 젠더에서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화의 영역에 있는 젠더가 보다 적극적으로 과학의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모두가 각자의 모자이크 뇌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편안하고 즐거울 것이다. - P48

임신에 대해서 아버지의 역할에 주목하자는 저자의 말은 통쾌했다. 여성이 임신할 수 있는 시기는 20~30대로 경력이 중요시될 때이다. 30대 중반 이후 가임력이 떨어지므로 여성의 난자를 냉동하여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이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냉동 난자 산업이 등장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13~2015년 난자를 동결한 한국 여성들의 62퍼센트가 늦은 결혼 및 출산에 대비한다는 사회적 동기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P92). 같은 난자 냉동을 선택한 미국과 유럽 여성 응답자의 88퍼센트가 '현재 파트너가 없어서'라고 답했다. 보통 나이가 많은 여성은 경력이 안정될 때쯤이면 좋은 파트너를 만날 확률이 낮아진다. 기껏 난자된 냉동을 꺼내쓸 수도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난자 냉동 시나리오에는 남성의 역할이 없다. 정작 냉동 난자를 써야할 때 남성의 나이에 대한 고려는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남녀의 생식 세포 모두 노화의 영향을 받고 남성의 나이가 들수록 정자의 질이 떨어지고 가임력이 감소한다는 연구는 많다(P95). 임신에는 난자와 정자가 필요하듯 남성도 반드시 자기 역할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또한 여성은 임신을 한다고 해도 10개월의 시간을 태아에 좋은 것을 위해 노력하고 운동 및 식이 조절로 체중 감량을 해야 하는 고통에 시달린다. 자궁 속 태아는 어머니를 둘러싼 환경과도 연관이 있다. 빈곤한 환경이라면 부실한 영양 섭취로 제대로 된 몸 관리를 하기 어렵다. DNA 메틸화로 대표되는 후성유전학적 표지가 세대를 거쳐 전달된다는 보고가 있다. 지금까지의 사실을 보면 남성이 경험하는 환경이나 남성의 생활 습관이 정자 속 DNA의 메틸화 양상을 변화시키고, 이 변화가 수정된 배아는 물론 그 배아가 태어나 생산하는 생식 세포까지 전달된다(P83)고 한다. 아버지의 식습관이나 생애 경험이 태어날 아이의 습관이나 체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비만 연구는 현재 진행형이다. 신생 학문인 후성 유전학은 아직 밝혀지지 않거나 논쟁적인 부분이 특히 많다. 그럼에도 이 분야의 최신 연구는 유전자와 환경이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며 개인의 건강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무엇보다 지금껏 유전자를 전달하는 역할만 담당한 남성에게 태어날 아이의 건강을 위한 새로운 임무가 부여된 점은 의미심장하다. 나의 몸은 어머니의 자궁 밖 아버지의 삶과도 연결되어 있다. - P84

<사이보그 선언문>에서 헤러웨이는 남성적 기술로 여겨지던 사이보그를 무조건 비판하지 않고 기술이 여성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기술을 통해 해방되기도 한다는 양면성에 주목하면서 기술을 소비하고 생산하는 것에 여성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촉구했다는 것에서 선구안적이었다. 하지만 정작 한국에서 사이보그는 성형 수술의 현실로 나타난다. 성형 수술을 받은 여성들은 부러움과 비판, 희화화의 대상이 되는데 정작 수술 이후의 효과에 대한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는다(P164). 성형 수술 이후 변화한 몸과 적응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현실의 사이보그는 선언과 선택만으로만들어지지 않는다. 성형 기술의 실제 작동은 다른외과 수술이 작동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성형 수술의 수행에는 의사 외에 간호 및 상담, 병원 경영 등을 담당하는 인력이 필요하며, 수술중은 물론이고 수술전후 상담 및 회복 과정에 여러 약품과 도구, 장비, 공간 등이 동원된다. 성형 수술을 받는 여성이 사이보그가 되는 과정에는 정상적인 몸을 규정하는 의학 지식체계와 외모지상주의 담론 외에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물질과 지식, 노동이 개입한다고 보아야 한다. - P162

과학기술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남는다. 일상에도 다양한 과학 기술이 존재한다. 자연과 사물, 육체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하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몸을 이해하는 것, 나를 둘러싼 세계를 과학적으로 바라보는 것, 나의 삶에서부터 시작하는 과학기술이 필요하다.

눈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본다는 것은 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고 배움에는 실패와 반복이 동반된다. 당연하고 익숙한 방식으로는 새로운 것을 볼 수 없다. 자연과 사물 그리고 그것들과 얽혀 있는 우리의 몸과 삶도 그럴 것이다(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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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7-10 10: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직 다 읽지못했지만 평범한 여성들도 과학기술계에 필요하다는 말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남성위주 분야도 마찬가지인것 같아요. ‘뛰어난 여성 인재가 없는 것이다‘라고들
말하지만 본질은 그게 아닌거죠.
컴퓨터공학 전공하셨군요^^ 거리의화가님처럼 꿋꿋하게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갈수있는 여성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거리의화가 2022-07-10 10:45   좋아요 3 | URL
저도 그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과학기술계에 몸담은 다수가 남자라는 사실에 대해서 불만 자체를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이죠. 평범한 다수가 필요하다는 것이 저에게도 힘이 되는 말이었습니다^^
네. 계속 이 일을 하는 중입니다.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초반에는 편견으로 참 힘들었네요. 여성들이 과학계, 공학계로 많은 이들이 나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어요.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7-10 17: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라떼 시절엔 정말 공학 계열은 남녀 성의 비율이 엄청나게 차이가 났었던 것 같아요. 건축, 토목 쪽은 여학생이 한, 두 명 있던 곳도 있었다는 후문도 있었습니다. 과에 한 명이었던 여학생은 적응 못하고 전과 하거나, 자퇴 했었다는 소문도 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을테지만, 그 시절엔 왜 평범한 여학생이 더 필요한 세상이라는 인식을 못했을까요? 어쩌면 지금도 전 과학기술 쪽 분야 종사자 여성들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여성들일 것이란 생각을 은연 중에 하고 있기도 하구요.
저도 화가님이 전공을 살려서 일을 하고 계신다니 그저 놀랍습니다^^
특히 IT쪽은 일단 남자들이랑 대등한 실력을 갖춰야 가능한 곳이 아닌가? 넘겨짚게 되는데, 화가님 글을 읽으며 생각해 보니, 대등한 실력을 갖추기 위해 동등하게 공부를 계속 해 왔다면, 어쩌면 어려울 것도 없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똑같은 시간의 똑같은 노력을 해 왔었다면 똑같은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싶네요.
이 당연한 것을 우린 너무 편견에 사로잡혀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한 탓에 어쩌면 지금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네요.
암튼 계속 화가님은 오래 다니셔서 기술계 전문직 여성들의 롤모델이 되어 주셨음 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7-10 20:36   좋아요 2 | URL
저희 학교에도 토목공학과 있었는데 여학생 1~2명이었던 것 같아요^^; 입학할 때 별 생각이 없었는데 애들이 하나 둘 흥미를 잃더니 졸업 이후에는 관련 일하는 애들이 없더라구요 안 그래도 여자애들은 수가 적었는데 이쪽일 아닌 곳으로 가는 경우가 훨 많았어요ㅡㅡ; 교육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요. 과학자나 공학자가 뭔가 대단하고 뛰어나야할 수 있는 것처럼 묘사되잖아요. 박사님 이미지?ㅎㅎ 끈기가 저를 여기까지 이끌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포기하는 것이 싫은 것보다 그때는 어쨌든 빨리 돈을 벌어야했고 뭐라도 해야했어요. 나무님 응원 감사드려요*^^*

건수하 2022-07-11 11: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공학계열이시군요 저는 자연대.. 괜히 반갑습니다 ^^
저도 사두었는데 아직 펴보진 못했어요. 이번 달 내로 읽어보고 다시 오겠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07-11 11:47   좋아요 2 | URL
오 수하님은 자연대생이셨군요^^
이 책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독자마다 꽂히는 파트가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수하님은 어떤 부분에 꽂히실지 궁금해집니다^^

mini74 2022-07-11 12: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모대학 공대나 건축계열쪽 예전엔 아예 여자화장실도 없었다고 하죠. 그래서 가정대쪽으로 막 뛰어가서 볼일 본 이야기들 읽은 적 있습니다. 평범한 여자들이 평범한 다수가 필요하다는 말 공감이 갑니다.

거리의화가 2022-07-11 12:49   좋아요 3 | URL
화장실 불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불편하다고 생각했지만 바꿀 의지는 갖지 못했어요. 소수의 여학생을 위해 화장실 늘려달라 개선해달라 하면 왜 오버냐 라는 소리 들을 것 같아서. 음~ 저조차도 갇힌 사고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ㅜㅜ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감사합니다.

희선 2022-07-13 03: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본 만화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게 하는 게 바로 과학이다 했는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기도 하네요 아주 잘하는 사람이 아닌 평범한 여성이 과학을 해야 한다는 말 맞네요 앞으로는 늘면 좋겠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07-13 09:39   좋아요 2 | URL
네. 현실은 이상과는 다릅니다^^; 여전히 일상 속에서도 성평등이 잘 되지 않고 있는데 과학계라고 다를까요. 오히려 더 갈라치기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ㅠㅠ 평범한 다수들이 많이 등장하길. 감사합니다.
 
[언리미트] 식물성 육포 양꼬치맛 - 양꼬치맛 [언리미트] 식물성 육포 2

평점 :
절판


갈비맛을 먼저 시식해보고 나서 이걸 먹으니 비교가 되었는데 내 입맛엔 이게 낫다. 양꼬치 먹을 때 찍어먹는 가루 비슷한 것이 뿌려져 있어서 더 좋았다. 맥주를 부르는 맛~! 양꼬치 싫어하는 분들이라도 괜찮을 무난한 맛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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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7-05 1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갈비맛 조카들이 먹어보겠다 해서 줬는데 둘이 엄청 잘 먹더라고요. 양꼬치맛도 역시 사야겠어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2-07-05 11:02   좋아요 1 | URL
갈비맛 잘 먹었다면 양꼬치맛도 좋아할 것 같습니다^^
옆지기랑 어제 맥주 한잔하면서 양꼬치맛 육포를 먹어봤는데 저보다 더 좋아하는 듯해서 종종 사주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책을 사는거죠ㅎㅎㅎ

바람돌이 2022-07-05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두분의 육포 사랑!!! 짠합니다.
그래도 저는 진짜 육포를 사랑해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07-05 16:2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바람돌이님 저도 당연 진짜 육포가 좋습니다^^ 진짜 육포맛은 당연히 못 따라갑니다만 책 살 때 한 번씩 식물성 육포 뜯으며 진짜 육포 한번 덜 먹는 것으로 자기위안을 삼으려하는 것뿐^^;

단발머리 2022-07-05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건 육포 주문해서 먹고 있는데 이거 한 번 먹어보고 싶어요. 양꼬치맛이라는 데 맘이 동합니다. 제가 주문하는 데는, 보통맛이랑 매운맛만 있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2-07-05 21:16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은 이미 다른 비건 육포를 시식하고 계셨군요^^ㅎㅎㅎ 저도 비건 육포 종종 보았지만 양꼬치맛은 특이했던지라 주문해봤습니다. 책 살 때마다 같이 주문하면 될 것 같아요. 단발머리님도 다음에 한 번 시험해보세요~ㅎㅎ
 
드립백 파푸아뉴기니 쿠아 마운틴 #4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1월
평점 :
품절


드립백이라서 역시 편리하고 10g에서 12g으로 늘어서 더 좋다. 신맛이 강하지 않으면서도 약한 산미에 고소한 향이 느껴진다. 균형감 있는 바디감이 좋았고 아침에도 부담감 없는 산미여서 종종 애용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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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7-04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드립백 가격 올리지 않기롱 ^^

거리의화가 2022-07-04 08:29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러게요. 가격 유지 부탁합니다.